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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김종필·오히라 마사요시 메모

김종필·오히라 마사요시 메모

김종필·오히라 마사요시 메모    1962년 8월 ∼ 10월


일본 : 청구권으로 우리가 지불을 인정할 수 있는 액수는 7천만달러 정도다. 그러나 청구권 해결과는 별개로 한국의 독립을 축하하고 민생안정과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무상 유상의 경제원조를 한다는 형식으로 상당한 금액을 공여 할 수 있다.
한국 : 청구원과 무상원조를 합친 개념으로 양보하겠다. 일본측은 청구원 해결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청구권과 무상지불이라는 명목 아래 최대한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일본 : 우리가 무상원조라는 한 가지 명목으로 내놓을 수 있는 액수는 1억5천만 달러다. 지불액수를 보충한다는 의미에서 장기 저리 차관도 생각하고 있는데 한국측은 국교 정상화 이후라야 차관도입이 가능한가.
한국 : 국내법상으로는 그렇다. 아직 논의할 단계는 아니나 차관액수는 얼마인가.
일본 : 한국측이 용의가 있다면 곧 결정하겠다. 한국측 숫자는 얼마인가.
한국 : 순청구권 3억 달러, 무상원조 3억 달러다.
일본 : 교섭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케다 수상도 말이 안된다고 할 것이다.
한국 : 한일관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특수하지 않은가.
일본 : 인도. 버마와 무엇이 다른가. 그들은 독립할 때 청구권을 받아낸 일이 없다. 6억 달러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절충을 계속할 수 없다. 또 청구권이라는 말을 표면에 사용할 수 없다.
한국 : 가령 한국측이 비공식적으로 1억 달러를 내리면 일본은 5천만 달러를 내려야 할 것이다.
일본 : 우리는 1억 7천만 달러다.
한국 : 그렇게 나오리라고 생각해서 비공식적으로 낸 것이다. 없던 것으로 하자.
일본 : 김 종필 부장이 10월 중순에 내일 한다고 하는데 대단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오히라 외상은 서로 최종 숫자를 내놓고 애기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 오히라 회담에서 합의해도 나타내면 안되고 정치회담에서 결정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한국 : 우리로서는 민정이양이 가까워지면 사정이 복잡해지고 민정이양이 되어 국회가 생기면 더 시끄러워진다. 되도록 빠른 것이 좋다.


  김 . 오히라 1차 회담 : 10월 20일

  의견 조정을 하고 김 종필은 미국으로 출발
  김 . 오히라 2차 회담 : 11월 12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로에 다시 도쿄에 들른 김부장은 박정희의장의 훈령을 검토하고 2차회담을 가졌다. 김부장은 훈령에 따라 '한일간의 청구권문제를 해결하고 경제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라는 명목을 제시했으나 오히라 외상은 받아들이려 않았다. 그러나 김부장은 명목은 뒤로하고 오히라 외상과 액수의 대강을 타결짓는 메모를 작성했다. 이 메모는 2차회담을 사흘 앞두고 '단독회담 후 생길 수 있는 해석 차이를 막기 위해' 메모를 납기자는 한국측의 제안을 일본측이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다.
A. 무상원조에 대한 한국측은 3억 5촌만 달러, 일본측은 2억 5천만 달러를 주장한 바 3억달러를 10년에 걸쳐 공여하는 조건으로 양측 수ㅚ에 건의함.
B. 유상원조(해외경제협력기금)에 대한 한국측은 2억 5천만 달러 (이자율 3% 이하, 7년거치 20∼30년 상환 상환) 일본측은 1억 달러 (이자율 3.5%, 5년 거치 20년 상환) 를 주장한 바 2억 달러를 10년간에 걸쳐(이자율 3.5%, 7년 거치 20년 상환) 제공하기로 양측 수뇌에 건의함.
C. 수출입은행 차관에 대한 한국측은 별개 취급을 희망하고 일본측은 1억달러 이상을 프로젝트에 따라 늘릴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한 바 양측의 합의에 따라 국교정상화 이전이라도 협력토록 추진할 것을 양측 수뇌에 건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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