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2가지 의미와 역사 해석
교과서에서는 역사의 의미를 크게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객관적인 의미의 역사로서 "일어난 모든 사건"으로서의 역사를 말합니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주관적 의미의 역사로서 "기록된 자료, 역사서"라는 측면에서 말하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역사를 말할 때는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모든 사실을 알 수도 없고 또 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큰 의미를 갖는다고는 볼 수 없죠. 어떤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면 역사를 잘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비효율적인 것이죠. 법을 공부하는 사람한테 일반상식 시험을 보면서 조기는 어떻게 손질하느냐라는 문제를 내는 것처럼 많이 아는 것이 효율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란 정리하자면 역사가가 선정하고 연구한 기록을 통하여 중요하다고 얻어지는 역사를 말합니다. 물론 역사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자체가 이미 주관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중요성이란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르기는 합니다. 따라서 기록으로서 역사를 조사하는 것은 엄밀한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데, 이러한 검증은 사회학에서의 통계, 실험과는 다릅니다. 역사에서는 과연 그 사실에 대한 해석이 정말 맞느냐라는 문제는 곧 그 해석에 기반이 되는 자료, 즉 사료에 충실하였는가라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렇게 볼 때 결국 역사를 배우고, 역사적 해석을 한다는 것은 과거의 사료에 얼마나 충실한 해석을 하였는가로 결정되어 진다고 볼 수 있죠.
이러한 역사적 해석에 있어서 고대동양과 서양의 역사 인식의 차이는 약간 다릅니다. 중국에서는 보통 원전에 충실한 역사 인용을 중시하였습니다. 즉, 과거에 일어난 사실 자체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았죠. 우리나라도 전근대 유교사관에서는 책을 쓸 때 "논찬을 달리한다"라면서 사실 자체와 필자의 해석을 따로 기록하곤 했답니다. 특히 동양에서는 역사가 유교적 합리성에 맞추어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서 역사를 논할 때, 2가지 사상이 첨가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감계주의와 상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인데요. 감계주의란 역사를 옛날의 거울로 삼는다는 것으로 일종의 "교훈으로서의 역사"를 뜻합니다. 상고주의란 옛 것(특히 중국의 상고시대)를 가치있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고대 이상사회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사상입니다.
서양 고대에서는 이와는 약간 다르게 역사가의 주관적 서술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즉 조사되어 기록된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존종한다는 것이지요. 먼저 고대 그리스인의 역사관을 볼까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물, 불, 원자 등 인간의 역사와 자연 현상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답니다. 최초의 교회(?)라고 볼 수 있는 오르픽교도 자연 속에서 인간이 순환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지요. 또 일리아드, 오딧세이,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와 같은 책들 역시 역사는 비슷한 일들이 순환되므로 그 곳에서 교훈을 얻어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대 역사가 투키디네스는 순환사관을 주장한 대표적인 사람이지요. 그러나 제정 로마 이후 기독교의 역사관은 좀 다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이 나올 쯤 역사는 더 이상 순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죠.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는 신의 세계로 나간다는 목적이 있고, 지상의 나라는 언젠가 종말이 있다는 역사관을 제시함으로서 시대, 발전 개념을 역사에 집어넣어 고대 순환사관을 정리하는 중세 직선론적 역사관을 제시하게 되지요. 중세 이후 근대 서양의 역사는 헤겔 이후 변증법적 역사관이라는 새로운 발전 사관이 등장합니다. 헤겔은 역사를 이성, 반이성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한 정, 반, 합의 개념을 역사에 도입하죠. 중요한 것은 서양 사람들은 동양과 다르게 '옛 것을 단순히 거울로 삼는 교훈보다는 현재 관점에 맞게 변화시켜 간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의 사회구조에서도 기인한는 것이겠죠. (그림 : 중세사관을 정립시킨 스콜라 철학의 토마스 아퀴나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