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단 조선혁명 선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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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선을 다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 천택, 철도, 광산, 어장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빠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 가옥세, 인구세, 가축세, 백일세, 지방세, 주초세, 비료세, 종자세, 영업세, 청결세, 소득세,,,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은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어지간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집중의 원칙하에서 멸망할 뿐이오, 대다수 인민과 일반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일년 내내 소득으로 자기 한 몸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갖다바치어 그 살을 찌워주는 영원한 소,말이 될 뿐이오, 끝내는 그 소,말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이민의 수입이 해마다 높고 빠른 비율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당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 가 굶주린 귀신으로부터 떠돌아 다니는 귀신이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 경찰정치를 힘써 행하여 우리 민족이 한 발짝의 행동도 마음대로 못하고, 언론, 출판, 결사, 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울분과 원한이 있으면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오,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 뜬 소경이 되고, 자녀가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 하는 노예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속여 스사노오노미코토의 형제'라 하여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이 다스리는 땅'이라 한 일본놈들의 적은 대로 읽게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하면 강도정치를 찬미하는 반일본화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세상을 비관하고 절망하는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하에 감옥에 구류되어, 주리를 틀고 목에 칼을 씌우고, 단근질, 채찍질, 전기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팔다리를 달아매는, 콧구멍에 물 붓는,새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 사전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 감옥문에서 나온대야 평생 불구의 폐인이 될 뿐이라.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단절하며, 진취 활발의 기상은 처한 형편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하게 각 방면의 속박, 채찍질, 구박, 압제를 받아, 바다에 둘러싸인 삼천리가 하나의 큰 감옥이 되아, 우리 민족은 아주 인류의 자각을 잃을 뿐 아니라, 곧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부터 기게가 되어 강도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 뿐이며,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지푸라기로 보아, 을사 이후 13도의 의병 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군대가 행한 폭행도 이루 다 적을 수 없거니와, 즉 최근 3.1운동 이후 수원, 선천 등이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 서간도, 노령 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에 주민을 도륙한다. 촌락을 불지른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능욕한다, 목을 끊는다, 산 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몸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잔혹하게 다룬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의 '산 송장'을 만들려 하는도다. 이상의 사실에 따라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조통치가 우리 조선 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죽여 없앰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2부 내정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평화' '한국독립보전' 등을 담보한 맹약이 먹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던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인민 생명재산 자유보호' '조선인민 행복증진' 등을 신명한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2천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 보느냐? 3.1운동 이후에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운동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준, 민원식 등 한 두 매국노를 시키어 이 따위 미친 주장을 부름이니, 이에 부화뇌동하는 자-맹인이 아니면 어찌 간사한 무리가 아니냐? 설혹 강도 일본이 과연 관대한 도량이 있어 이들의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내정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선민족은 온통 굶주린 귀신이 될 뿐이 아니냐? 참정권을 획득한다 하자. 자국의 무산계급의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몇몇 노예 대의사의 선출로 어찌 굶어죽는 화를 면하겠느냐? 자치를 얻는다 하자. 그 어떤 자치임을 막론하고 일본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간판인 '제국'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여기에 딸려 있는 조선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헛된 이름으로써 민족적 생존을 유지하겠느냐? 설혹 강도 일본이 갑자기 부처, 보살이 되어 하루아침에 총독부를 철폐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돌려주며, 내정과 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일본의 군대와 경팔을 일시에 철수하며, 일본의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이름뿐인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모두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받든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할지니라. 일본 강도 정치하에서 문화운동을 부르는 자-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약탈의 제도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망이 있으랴? 쇠망한 인도족, 유태족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하나는 금전의 힘으로 그 조상의 종교적 유업을 계속함이며, 하나는 그 토지의 넓음과 인구의 많음으로 오랜 옛날 자유롭게 발달한 남은 혜택을 지킴이니, 어디 모기와 등에같이, 승냥이와 이리같이 사람의 피를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일본의 입에 물린 조선 같은 데서 문화를 발전 혹 지킨 전례가 있더냐? 검열, 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 잡지를 가지고 '문화운동'의 목탁으로 스스로 떠들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이상의 이유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내정독립,자치,참정권 등을 주장하는 자)나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 자(문화운동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3 부 강도 일본의 구축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다음과 같은 논자들이 있으니, 첫째는 외교론이니, 이조 5백년 문약 정치가 '외교'로써 나라를 지키는 으뜸 계책으로 삼아 그 말세에 더욱 심하여, 갑신 이래 유신당, 수구당의 성쇠가 거의 괴욱의 원조 유무에서 판결되며,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이 나라를 끌어들여 저 나라를 제압함에 불과하였고, 그 의뢰하는 습성이 일반 정치사회에 전염되어 즉 갑오, 갑진 양전쟁에 일본이 수십 만의 생명과 수억 만의 재산을 희생하여 청,러 양국을 물리치고, 조선에 대하여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 하는 이들은 한 자루의 칼과 한방의 총알로 어리석고 탐욕스러우며 포악한 관리나 나라의 원수에게 던지지 못하고, 청원서나 여러 나라 공관에 던지며 탄원서나 일본정부에 보내어 국세의 외롭고 약함을 슬피 호소하여 국가존망, 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합병'-곧 '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 천년 만의 처음 당하던 치욕에 조선민족의 분노적 표시가 겨우 하얼빈의 총, 종로의 칼, 산림유생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과거 수십 년 역사야말로 용기 있는 자로 보면 침 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어진 자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리고도 나라가 망한 이후 해외로 나아가는 아무개 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교'가 그 제1장 제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미일전쟁, 러일전쟁 등 기회'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고, 최근 3.1운동에 일반 인사의 '평화회의 국제연맹'에 대한 과신의 선전이 도리어 2천만의 민중의 용기있게 분발하여 전진하는 의기를 쳐 없애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둘째는 준비론이니, 을사조약 당시에 여러 나라 공관에 빗발돋듯 하던 종이쪽지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헤이그 밀사도 독립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 아니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하겠느냐? 산림유생들은 춘추대의에 성패를 생각하지 않고 의병을 모집하여 높은 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사냥 포수의 화승총을 몰아가지고 조일전쟁의 전투선에 나섰지만 신문 쪼가리나 본 이들-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러할 용기가 아니난다. 이에 '오늘 이 시간에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은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졸병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 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느껴지고,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 이외까지 확장되어 교육도 진흥해야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다. 경술 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북간도의 삼림을 더듬으며, 혹 시베리아의 찬바람에 배부르며, 혹 남,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돌아가며, 혹 경향에 출몰하여 십여 년 내와 각지에서 목이 터질 만치 준비!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없는 모임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의 부족이 아니라 실은 그 주장의 착오이다. 강도 일본이 정치, 경제 양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기관이 전부 박탈되어 입고 먹을 방법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의 일에 비교되게라도 할 수 있느냐? 실로 한바탕의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4부 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구축할지며, 강도 일본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느뇨? 구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이상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곧 '을'의 특수세력으로 '갑'의특수세력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하여 다만 갑,을 양세력 곧 신,구 양상전 중 누가 더 어질고 누가 더 푸악하며 누가 더 선하고 누가 더 악한가를 보아 그 향배를 정할 뿐이요, 직접 관계가 없었다. 그리하여 '임금의 목을 베어 백성을 위로한다'가 혁명의 유일한 근본취지가 되고 '한 도시락의 밥과 한 종지의 장으로써 임금의 군대를 맞아들인다'가 혁명사의 유일한 미담이 되었거니와, 오늘날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 고로 '민중혁명'이라 '직접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 팽창의 뜨거운 정도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 돈 없고 군대 없는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국의 도적도 구축하나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첫 걸음은 민중각오의 요구니라. 민중이 어떻게 각오하느뇨? 민중은 신인이나 성인이나 어떤 영웅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이 아니요,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열렬한 부르짖음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오.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 부자여느 불합리한 민중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하는 유일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먼저 깨달은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됨이 민중각오의 첫째 길이니라. 일반민중이 굶주림, 추위, 피곤, 고통,처의 울부짖음, 어린애의 울음, 납세의 독촉, 사채의 재촉,행동의 부자유,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 하여도 죽을 바를 모르는 판에, 만일 그 압박의 주인 되는 강도정치의 시설자인 강도들을 때려누이고, 강도의 일체 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에 전하며 뭇 민중이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사람마다 '굶어죽음' 이외에 오히려 혁멍이란 한 길이 남아 있음을 깨달아, 용기있는 자의 그 의분에 못 이기어 약한 자는 그 고통에 못 견디어, 모두 이길로 모여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보편적으로 전염하여 거국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사, 교활, 잔혹, 포악한 강도 일본이 마침내 구축되는 날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깨우쳐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십만이 한 번 던진 폭탄만 못하며 억천 장 신문, 잡지가 한 차례 폭동만 못할지니라.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아니하면 그만이거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에는 마치 낭떠러지에서 굴리는 돌과같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안하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라, 우리 지나온 경과로 말하면 갑신정변은 특수세력이 특수세력과 싸우던 궁중의 한때 활극이 될 뿐이며, 경술 전후의 의병들은 충군애국의 대의로 분격하여 일어난 독서계급이 사상이며, 안중근, 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중심을 가지지 못하였도다. '민중, 폭력' 둘 가운데 하나만 빠지면 비록 천지를 뒤흔드는 장렬한 거동이라도 또한 번개같이 수그러지는도다.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이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니라' '일본을 구축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 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가사 교활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처절하고 장엄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뒤에는 어두운 함정이요, 나아가면 그 앞에는 빛나는 활기이니, 우리 조선민족은 그 처절하고 장엄한 기록을 기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이제 폭력-암살, 파괴, 폭동-의 목적물을 대략 열거하건대, 1.조선총독 및 각 관공리 2.일본천황 및 각 관공리 3.정찰군, 매국노 4.적의 일체 시설물 이외에 각 지방의 신사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완화하고 중상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써 마주할지니라. 일본인 이주민은 일본 강도정치의 기제가 되어 조선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또한 우리의 폭력으로 구축할지니라. 5부 혁명의 길은 차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사에서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를테면 우리가 일본세력을 파괴하려는 것이, 첫째는 이족 통치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이란 그 위에 '일본'이란 이족 그것이 전제하여 있으니, 이족 전제의 밑에 있는 조선은 고유적 조선이 아니니, 고유적 조선을 발견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를 파괴함이니라. 둘째는 특권게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민중'이란 그 위에 총독이니 무엇이니 하는 강도단의 특권게급이 압박하여 있으니, 특권계급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민중은 자유적 조선민중이 아니니, 자유적 조선민중을 발견하기 위하여 특권계급을 타파함이니라. 셋째는 경제 약탈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탈제도 밑에 있는 경제는 민중 자기가 생활하기위하여 조직한 경제가 아니요, 곧 민중을 잡아먹으려는 강도의 살을 찌우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니 민중생활을 발전하기 위하여 경제 약탈제도를 파괴함이라. 넷째는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자 위에 강자가 있고 천한 자 위에 귀한 자가 있어 모든 불평들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탁, 서로 질투, 서로 원수로 보는 사회가 되어, 처음에는 소수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해치다가 마지막에는 또 소수끼리 서로 해치어 민중 전체의 행복이 끝내 숫자상의 공이 되고 말 뿐이니, 민중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함이니라. 다섯째는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전해내려오는 문화사상의 종교, 윤리, 문학, 미술, 풍속, 습관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도구가 아니더냐? 일반민중을 노예화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를 반항치 못함은 전혀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니,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민중은 권리사상이 박약하며 자유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라. 그러므로 민중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함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의'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등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깃발'이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할 어리석은 생각만 있다 하면 5백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이요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민중이 한 편이 되고 일본 강도가 한 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2천만 민중은 일치하여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우일한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탈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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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글의 전문을 여기서 만나게 되는군요.
필요한 글이였어요. 감사합니다.
보석같은 블로그를 발견했네요.
좋은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네 자주 놀러오세요.
강도가 아니고 완전히 개 돼지 같은 놈들이 일본이다. 그런 인간들은 인간도 아니다. 개,돼지 만도 못한 놈들이 일제 강점기 36년동안 우리나라의 역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반성을 할 줄 알아야 인간으로 보지...반성을 모르는 인간들은 인간도 아니다. 개,돼지만도 못한,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쓸모없는 놈들이다. 지구를 떠나라.
일본이 지구를 떠나면, 화풀이할 대상도, 욕할 대상도 없어져서 심심해집니다.
나쁜 짓이 뭔지 밝혀내야죠. ㅎㅎ
마후라님 글을 쓰는건 그사람의 수준을 말해줍니다
민족이 고통을 받거나 나라가 망하는 원인은
바로 그 민족 안에 있습니다
강국은 이미 부패하고 힙없는 나라를 들어온것 뿐 입니다
일본을 탓하기전에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겠지요
물론 착한 인디언들을 대량학살한 제국주의가
잘했다는건 아님니다
이명박이도 잘못가고 있습니다
각국혁명사, 세계혁명사를 찾다가
여기 들어왔는데 여기도 없네요
역사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다. 우리는 백제(百濟)라는 나라를 잘 알것이다. 백제는 거의 7백년간에 걸쳐 이 한반도와 중국대륙의 동해안 지역을 통치했다. 그리고 백제라는 나라는 하나가 아니고 두 나라였다. 온조계의 백제와 비류계의 백제가 있었다. 온조계의 백제국은 한반도에 있었고 비류계의 백제국은 현재의 만주대륙에 있었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냐구? 우선,완전히 믿을건 못되지만 <삼국사기 三國史記>에는 이렇게 적고있다.
서기 19년,대무신왕(大武神王)이 비류수 상류를 지나 부여를 공격하기 2년전의 일이다.
[백제 주민 1천여호가 귀순하여 찾아왔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보면 한반도의 백제라고 생각되어 지지만,비류수가 어디인가. 만주지역에 있었던 강이었다.
만약,한반도의 백제인들이 어떻게 수만리 떨어진 만주에 위치한 고구려로 찾아와 귀순한단 말인가.
중국의 역사서인 <자치통감 資治通監>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처음에 부여는 녹산(鹿山-송화강 유역)에 거처 하였는데 백제의 침략을 받아 부락이 쇠잔해져서 서쪽으로 연나라(燕) 근처로 옯겼으나 방비를 하지 않았다]
이 기록을 유심히 읽어보면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반도의 백제가 어떻게 송화강 유역인 녹산에까지 가서 부여를 공격했단 말인가? 어떤 이들은 만주백제를 고구려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것은 만주의 백제임이 명백하다. 이 기록은 사학자들도 증명을 한 기록 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삼국사기-백제 개로왕 21년>의 기록을 보면,
[...사람들을 모조리 징발하여 흙을 구워 성을 쌓고 그 안에다 궁실,누각, 정자를 지으니 모두가 웅장하고 화려했다. 강 따라 둑을 쌓아 사성(蛇城) 동쪽에서 숭산(崇山) 북쪽까지 닿게 하였다.....]
여기에서 숭산<崇山, 嵩(높을 숭)과 같이 사용됨> 이라는 산 이름이다. 숭산은 하남성에 있는 산인데,그곳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소림사(少林寺)가 있다.
게다가 숭산과 가까운 낙양의 북망산에는 1920년,백제 마지막왕인 의자왕의 아들 부여 융의 묘지석이 출토 되었다.
1997년 10월경,한국의 사학자인 이 도학(李 道學)씨는 10년간의 연구끝에 <대륙백제>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문을 정식으로 발표했다. 이 도학씨가 주장하는 논문에 반박되는 논문은 이제껏 없었었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인 천문에 관한 기록이다. 교수 박 창범씨의 천문기록에 의하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타난 일식등을 천문학 적으로 재현해본 결과,천문현상이 한반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중국대륙에서 발견되는 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고려도경 高麗圖經> 이라는 책을 보면,이렇게 기록돼 있다. 물론, 이것은 백제에 관한 기록이 아니고 고려왕조에 관한 기록인데 하도 이상해서 글을 올려본다.
[....고려,일본,유구,탐라,흑수,모인 등이 견아상제의 모양으로 서로 맞물려 있다.....]
여기에서 견아상제(犬牙相制)라는 단어가 괴이하다. 이것을 풀이하면,서로 개 이빨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라는 것이된다. 이상하면 고려도경의 봉경(封境)편을 한번 보시라.
모두 다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된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는것을 볼 때, 백제는 하나의 나라(한반도 백제)가 아니라 만주지역에 또 하나의 나라인 백제가 있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도 모두 다 저 반성할줄 모르는 개,돼지만도 못한 인간들이 36년간에 걸쳐 조작해 놓은 것이다(이른바 식민사관). 그놈들이 36년 강점기동안 무슨 짓인들 못했으랴. 만주가 우리 땅 이었다면 마음놓고 발굴 할 수 있을텐데... 안녕히 계시오.....^^..ㅜㅜ...ㅠㅠ...
이후리님...
혹시 블로그 있으신가요? 블로그나 카페 있으시다면 주소좀요... 놀러가보고 싶네요.
혹시 없으시다면, 그동안 올리신 글들을 따로 보관하고 계신가요? 걍 사장하기엔 시간을 많이 투자한 글들이 있으신거 같은데....
혹시 글들을 보관하고 계시다면 제가 블로그내에다가 방문자 게시판 하나 만들어보려구요.
거기에 글을 올리면 체계적으로 쌓일 수 있을 것 같네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무것도 없고,제가 전공한 것이 역사 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는것 같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의 진실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더군요. 그래서 조금 조사해 본곳도 있지만 제가 아는 지식을 동원해서 이렇게 글을 올린 겁니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 하네요.
차후, 만들어 보도록 생각해 볼께요....^^ ^^....
지금 중국 공산당 놈들은 동북공정(東北工程) 이라는 프로젝트를 국가적 역량을 동원해 진행시키고 있다. 그들은 이미 서북공정(위구르의 역사를 중국에 편입),서남공정(티벳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을 이미 완료 했으며 남은것은 동북공정이다. 우리나라는 몇년전에 중국이 동북공정 이라는 음모를 진행 시키고 있다면서 뉴스를 통해 떠들썩하게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는 어떤가. 물론,역사학자들이나 정부기관에서 힘쓰고 있겠지만 외형적으로는 너무나도 조용하다.
남의 나라 놈들이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특히 고대사-고조선,고구려,발해의 역사)를 도둑질해 가려는데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위의 글에서도 기술했듯,우리는 36년간의 일제강점기 시대에 남의 손에 의해 역사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만약,대한제국(1897~1910)이 쪽바리 놈들에게 합병되지 않고 독립된 상태를 이루었더라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역사책은 일제 시대에 개,돼지만도 못한 놈들이 조작해 놓은 역사책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정말 통분할 노릇이다.
이미 종영된 <주몽>이란 드라마에서는 주몽이 고조선의 유물을 발견 했다면서 고조선의 지도를 펼친 장면을 본것이 생각난다. 이것 또한,왜곡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 그만큼 정밀한 지도가 있었단 말인가? 중국대륙의 거의 전체와,지금의 만주지역,그리고 연해주지역까지 고조선의 영역으로 표현하고 있더라. 물론,고조선의 영역이 그만큼 넓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현재 고조선의 영토가 얼마만큼 광대 했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진게 없다. (현재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지도는 개,돼지만도 못한 놈들이 조작해 놓은 지도이다--자꾸 개,돼지 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하니까,개,돼지 들에게 미안하구만....^^ ^^ ^^미안하다 개,돼지들아...이렇게 하니까 더 이상하네...낄낄낄...)
고대에 국가의 영역을 표시하는 방법은,만약 강 하나가 있으면 서쪽은 너희땅,동쪽은 우리땅 이런 식이었다. 그 시대에 인공위성이 있을리 만무한 일이고...근대시대에 들어와 국경(國境) 이라는 명확한 개념이 성립돼 오늘날 선(線)을 그어놓고 국경을 표시해 놓고 있는 것이다. 얘기가 옆으로 약간 비껴 갔는데 여하튼지간에,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일반인들 중에서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러한 방송을 통해 아,저것이 사실이구나...이렇게 생각되어 진다는 것이다. 방송 작가분들도 고생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철저한 고증을 통해 대본을 써야 할것이다.
또 하나 있다. 요즘 <대 조영>이라는 드라마가 많은 인기를 끌고있다. 그런데(동명천제단)이라는 단어가 등장 하더라. 물론,그 당시의 사료(史料)가 미비해 작가분이 이런 허구를 만들어 냈는데 이거,모르는 사람들은 정말인줄 안다. 역사왜곡이 뭐,거창한것이 아니다.이런 사소한 작은 문제가 역사왜곡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 조영이 당나라에 들어가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무측천(武測天--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女皇帝)의 신임을 받는다는 내용인데,아무리 허구적인 드라마라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광복이래,친일파(親日派)라는 역적놈들을 완전히 처단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 후손놈들이 조상들의 땅을 돌려 달라고 하면서 법원을 상대로 소송을 건 일이 몇년전에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18년간 장기집권한 박 정희(朴 正熙) 전 대통령도 친일파였다. 전직 대통령이 이러했을진대,그 외의 친일파들은 어떠 했던가. 떵떵거리고 잘 살았다. 그들이 한국의 요직에 등용돼 이 나라를 이상한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 박 정희는 일본의 명치유신(明治維新)을 흉내내 유신체제를 선포하지 않았는가.
저 유럽의 독일을 보라. 지금은 통일된 나라지만,과거의 서독(西獨)은 2차전쟁을 일으킨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 하였다. 그래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 지금은 아주 잘 사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독일인들은 반성을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가 잘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구한말에 고종황제가 황제를 칭하기는 했지만 힘이 없었다. 그 때문에 쪽바리들에게 나라를 잃어 버렸지 않았던가.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남북통일을 이룩,나라의 힘을 길러야한다. 나라에 힘이 없으면 이 살벌한 세상에 누구에게 먹힐지 모르는 일이다.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에 막혀있고, 서쪽으로는 요수(遼水)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거란의 옛땅을 접하며,동쪽으로는 거란,금나라,유구국,탐라국,흑수모인등의 나라와 접해있다]
[그 나라(고려)에 있는 서울의 동북은 연산(燕山)으로부터 육지로 연결되어 잇는 길을 쭉 따라 요의 동쪽까지의 경계가 무려 3790리이고,만약 바다로 나간다면 하북성(河北省)으로 나가야 한다]
[고려 서울의 동쪽은 회(淮)지방의 남쪽인 절강(浙江)과 광동(廣東)의 두 성(省)이며,남으로는 복건성으로 모두 갈 수 있다]
[그 나라의 서북쪽은 거란과 상접한 옛날 대요(大遼)와의 경계로 후에 (요나라가) 이곳으로 침략해와 내원성(來遠城)을 쌓았는데 압록강의 험하고 견고한,막힌곳을 의지해 쌓았다]
[백제(후백제)와 신라를 병합해 그 동북쪽이 넓어졌다]
위의 글은 고려도경(高麗圖經) 봉경편(封境編)에 있는 글이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 글을 적어 올렸는데 유심히 읽어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유구국,탐라국,흑수모인,금나라와 서로 접해있다라고 적고있다. 탐라라하면 지금의 제주도를 탐라라고 우리는 배워알고 있다. 그런데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접해 있다니?
그리고 핵심적인 곳이 내원성(來遠城)이라는 지명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事專)을 찾아보니,놀라지 마시라!!!!
위치가,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무산현 서남 30리...라고 적고 있다. 그러니까 고려의 서북끝은 현재의 감숙성이 포함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고려서울의 동쪽은 회지방의 남쪽인 절강과 광동 두 성이다라고 적고있다. 고려의 서울이라함은,개성이며 한반도에 고려가 존재하고 있다치면,이것은 전혀 말이 안되는 소리이다. 정말 허파 뒤비지겠네....
그리고 후백제와 신라를 병합해 동북쪽이 넓어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의 전라남,북도에 후백제가 있었고 경상남,북도에 신라가 있었다라고 배워왔다. 만약 고려도 한반도에 있었고 이 두나라를 합쳤다면 남쪽이 넓어졌다라고 적어야 하지 않는가? 또한,고려의 지경이 3790리라고 비교적 자세하게 적고있다. 한반도를 보라.남북이 3천리이고,동과 서는 천리도 못된다.
고려도경 이라는 책을 저술한 서긍은 북송의 황제인 휘종(徽宗,재위 1101~1125, 연호-- 선화 宣和)시대에 고려로 사신으로 파견돼 고려의 산천을 보며 자신이 직접 저술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책(원래는 선화봉사 고려도경)은 북송의 황제인 휘종에게 올려진 책이다.
그리고 서 긍이 바다를 통해 고려로 가기위해 명주(明州)에서 배를 타고 고려로 갔다고 적고있다(위의 글에는 이 내용이 없음).
그러면 명주는 어디인가? 현재의 강소성(북위 30도) 지방이다. 여기에서 의문점이 든다. 한반도의 고려로 가려면 산동성에서 출발하면 빨리 갈 수 있는데 왜 머나먼 명주까지 내려와서 다시 한반도(휴전선이 38도 근처에 위치--중국지도를 펴놓고 보면 대충 알 수 있다)의 고려로 뱃길로 올라간단 말인가?
위의 글을 자세히 아주 자세히 읽어보면 얼핏 한반도의 고려라고 생각될수 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글이 있어서인데,내원성의 위치를 알고 부터는 고려가 대륙에 존재해 있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만약,고려가 대륙에 있었다면 그 전대인 신라나,백제,고구려,고조선의 위치도 자연히 알게 될수 있는 것이다.
워메...힘들어....정말 허파 뒤비지겠네!!!!
놀랍다는 말밖에 안나오네요.
앞글을 다 읽기도 전에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군요.
이후리님은 역사에 대해 자유자제로 표현할 수 있는 관점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부럽네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책을 많이 읽으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머리에 들어 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해서 뭘하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는 과거고,현재는 현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인데요. 이건,잘못된 생각 입니다. 역사가 무엇 입니까.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지난날의 생활 이었습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역사가 된것이지요.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거....뭐시냐...???? 거창하게 말하려니까 생각이 잘 나지 않네요.^^ ^^
저,여진족이나 몽골을 한번 보십시오. 과거에 그 나라 사람들이 어땠습니까? 중국,그 광활한 땅을 지배하고 세계를 호령했던 민족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몽골과 여진족은 어떻습니까. 몽골은 나라는 유지하고 있지만 후진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진족. 이 여진족은 지금의 만주 어느 한 구석에서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대부분 중국인들과 뒤섞여 동화 됐지만).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그 혼(魂)을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안녕히...더운 날씨에 몸 건강 하세요.
오늘 네이버(www.naver.com)을 검색하던 도중,놀라운 사실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한 왕조인 고려(高麗,918~1392,34대 475년)를 세운 태조 왕 건(太祖 王 建)이 중국 한족(漢族) 출신 이었다라는 내용 입니다. 내 이럴줄 알았습니다. 저놈들이 이제는 고구려,발해를 자기나라의 역사라고 우겨 대면서 들이대더니 이제는 고려왕조까지 자기들 한족출신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그 기사내용을 올려 보겠습니다.
<격월간 동북사지(東北史地) 2007년 3호(5~6월호)에 실린 "당나라(오대십국 시대의 後唐을 말함) 명종(明宗)이 고려태조 왕건의 족적(族籍)을 밝혔다"
이 논문은 고려사 태조세가(太祖世家)에 태조 16년(서기 933) 당나라 명종 이 사원이 고려에 책봉사를 보내 왕 건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책봉조서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그같은 강변에 대한 증거 자료로 제시했다.
"주몽이 개국한 땅의 상서로운 조짐을 쫓아 그 군장이 되고,기자(箕子)가 이룩한 번국(藩國)의 자취를 밟아 행복과 화락을 펴도다"
"경은 장회(長淮)의 무족(茂族)이며 창해(漲海)의 웅번(雄蕃) 이었다"고 하는 대목이다.
주몽이 개국한 땅과 기자가 이룩한 땅에 대한 언급을 한반도 역사에서 기자와 주몽에 이어 또 한 사람의 중국출신 통치자가 새로운 고려정권을 세우고 임금이 되어 행복과 화락(和樂) 가져다 주었다 라는 뜻이라고 논문은 풀이했다.
동북사지는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 연구중심에서 추진한 동북공정의 연구과제를 수행한 학자들이 대거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특히 발행자는 장 푸여우(장 복우) 길림성 당위원회 선전부 부부장이고,고문은 전 현직 변강사지연구중심 주임들인 마다정(마대정)과 리성이다.>
이상 입니다. 이거 완전히 속이 들여다 보이는 기사인데요.
고려를 세운 인물인 왕 건은 한반도의 토착 세력이 아니고 중국 회하 출신의 한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한반도에 고려정권을 세우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는 내용 입니다. 빨갱이들 하는 짓거리들이 참으로 가관 입니다. 기사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니 우리나라의 역사가 마치 저놈들의 역사인양 기술하고 있네요.
중국 공산당 정권은 소수민족들의 이탈을 막기위해 동북공정 이라는 프로젝트를 시행했습니다. 55개에 달하는 소수민족들이 중국 공산당 정권에 반대해 이탈해 보십시오. 중국은 그야말로 천하대란(天下大亂)이 일어납니다. 만약의 경우,티벳이라는 커다란 민족들이 반란이라도 일으켜 보십시오. 중국은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 들겁니다. 이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위에서도 글을 올렸지만 동북공정을 시행한 것이지요. 하지만 위의 기사는 좀 과하다 싶습니다. 이젠 고구려,발해를 자기나라 변방사라고 우겨 대더니 이제는 고려왕조까지 자기 한족출신의 통치자가 세운 정권 이라고 들이대고 있습니다.
하기야 뭐,중국 빨갱이 놈들은 몽골의 대영웅인 징기스칸(成吉思汗)도 자기네들 중국인 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보다 더한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나중에는 조선왕조도 자기네들의 변방사라고 우길까 참으로 걱정이 됩니다. 개,돼지 보다도 못한 놈들이 여기 또 하나 있었네요......^^ ^^ ^^ ㅠㅠ...ㅠㅠ...
중국에서 이러한 음모가 진행중인데도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참으로 한심 합니다. 올해 말에는 대선(大選)이 있어서 더욱더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정신 차려야 합니다. 모든 힘을 모아 중국 빨갱이놈들의 음모를 막아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다고 생각 됩니다. 중국 빨갱이 놈들은 저 6.25때에도 우리나라의 통일을 방해한 철천지 원수같은 놈들 입니다. 만약,그때 중국 인민해방군 놈들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통일을 이루었을 겁니다. (화가 나니까 별게 다 나오네요)
앞으로 중국은 계속 발전할 겁니다. 그리되면 저놈들이 더 기승을 부릴텐데 작은 나라인 우리나라가 이런 중국을 상대로 어떻게 대응할지 솔직히 조금 불안 합니다. 특히 역사(歷史)문제에 있어서 더욱더 그렇습니다.
왕건에 관련된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요즘,KBS의 대조영이란 드라마를 보니,뭐랄까...돼지도 않은 스토리(story)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오늘 저녁에 방송된 방영분을 보니,성질이 나더군요. 당나라의 여황제인 측천무후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그런 되지도 않은 장면이 나오더군요(물론,대 조영역을 맡은 최 수종씨는 줄곧 측천무후에게 충성맹세를 하지 않았음). 이건 뭐,우리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건지,아무리 자료가 빈약하더라도 이런 장면을 내보내는것이 옳은 방법 입니까? 대 조영이 뭐가 아쉬워서 중국놈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귀부산에서 인간사냥 이라니....이것 또한 돼지도 않은 소리 입니다.
만약 대 조영이 그만큼 당나라에 위협적인 존재였다면 당나라는 대 조영을 잡자마자 당장 죽여야 합니다. 아무리 측천무후가 당시 주변민족의 호걸들을 포섭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어도 그만큼 당나라에 피해를 준 인물을 어떻게 시험을 통과해 그를 신임하게 되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든 드라마 입니다. 그리고 설 인귀가 대 조영을 설득해 충성맹세를 받아내려고 하다니....말도 안되는 줄거리 입니다. 대 조영의 대본을 쓴 작가분은 기초적인 역사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그럽군요.
인간사냥 이라니.....무슨,액션 드라마도 아니고.....드라마라는 점을 볼 때 이해를 하지만 이것은 좀 심하다고 생각 됩니다.
대 조영은 역사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간단하게 올리겠습니다.
<신당서 新唐書>--[백두산의 동쪽을 확보하고,송화강을 천험으로 삼았으며,밀림을 벽으로 스스로를 견고히 하였다]
<삼국유사 三國遺事>--[신라고기 新羅古記 인용, 고구려의 구장 조영의 성은 대씨인데,남은 군사를 모아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발해라고 하였다]
그리고 대 조영은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하고 그 유민들을 각지로 분산시키자 대 조영도 영주로 당군에 의해 끌려와 이곳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거란족이 당나라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자 대 조영은 무리를 모아 동모산으로 이동,이곳에서 이 해고가 이끄는 당군을 크게 격파하고 나라를 세웁니다. 이것이 대 조영에 관한 정사(正史)의 기록 입니다. 너무 간단하게 기록된것이 아쉽네요.
이 정도의 인물이 당나라에 붙잡혔다면 앞에서도 기술 했지만 당나라는 당장 대 조영을 죽여야 마땅 합니다.
그리고 대 조영의 아버지인 대걸걸중상이 대 조영을 살려내기위해 당나라 장군인 설 인귀에게 무릎을 꿇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우는 모습을 봤는데요. 이것또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걸걸중상은 대 조영 못지않은 영걸 입니다. 이런 인물을 설 인귀앞에서 무릎 꿇리게 하다니....대걸걸중상이 지하에서 이꼴을 보면 통곡 하겠네요. 드라마 전개상 어쩔수 없는 일이라해도 줄거리 전개가 심해서 글을 올리는 겁니다. 내 이글을 그대로 대 조영 게시판에 올릴 예정 입니다.
드라마를 전개하더라도 역사적인 사실에 맞추어 전개 해야지,말도 안되는 줄거리를 가지고 나오니 이것 또한 시청자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생각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