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의 서원 정리
사족이 있는 곳마다 평민을 못살게 굴지만 가장 심한 곳이 서원이었다. 먹도장을 찍은 다음 편지 한통을 고을에 보내서 서원 제수전을 바치도록 명령하였다. 사족이나 평민을 물론하고 그 편지를 받으면 반드시 주머니를 쏟아야 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서원에 잡혀가 혹독한 형벌로 위협을 받았고 화양동 서원 같은 곳은 그 권위가 더구나 강대하여 그곳에서 보내는 편지를 화양동 묵패지라 하였다. 백성들은 탐학한 아전들에게 시달렸는데 여기에 또 서원 유생에게 침탈을 당하니 모두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원망을 하고 이를 갈아도 하늘만 쳐다볼 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대원군이 영을 내려 나라 안 서원을 죄다 허물고 서원 유생들을 쫒아 버리도록 하였다. 감히 항거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 하니, 사족이 크게 놀라서 온 나라 안이 물 끓듯 하였고 대궐 문간에 나아가 울부짖는 자도 수십만이나 되었다. 조정에서는 어떤 변이라도 있을까 하여 대원군에서 이렇게 간언하였다. <선현의 제사를 받드는 것은 선비의 기풍을 기르는 것이므로 이 명령만은 거두기를 청합니다.> 대원군은 크게 노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진실로 백성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으면 비록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 하물며 서원은 우리나라 선유를 제사하는 곳인데 지금에는 도둑의 소굴로 됨에 있어서라.> 드디어 형조와 한성부 나졸들을 풀어서, 대궐 문 앞에서 호소하려는 선비를 강 건너로 몰아내 버렸다. 여러 고을에서 모두 두려워하여 감히 영을 거행하지 못했는데, 대원군이 먼저 한 고을 원을 파면시키고 무거운 벌을 시행하니, 이에 여러 도에서는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일시에 서원을 철폐시킬 수 있었다. 다시 8도에다 암행어사를 보내니, 사족으로서 평민을 침해한 자가 있으면, 그 몸에 죄를 주고 재산을 몰수하니 떵떵거리는 집안들도 숨을 죽이고 감히 나쁜 짓을 못하였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춤추고 칭송하는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
참고글 : 대원군이 지방 통치 사업에 가장 중점을 두었던 서원 철폐입니다. 토호의 발호를 누르고, 양반의 근거지이자 당쟁의 진원지인 서원을 정리함으로서 왕권 강화를 추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한 서원 철폐는 최익현 등 보수 유생들의 반발을 가져오게 되어 고종의 친정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퀴즈풀이 > 역사 사료와 데이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원군의 쇄국정책 - 통상수교 거부정책 사료 (1) | 2007.01.13 |
---|---|
최익현의 대원군에 대한 반발 상소 (2) | 2007.01.13 |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사료 (2) | 2007.01.13 |
대원군의 왕권 강화와 인사등용 사료 (1) | 2007.01.13 |
대원군의 호포제와 사창제 실시 사료 (1) | 2007.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