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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조선과 일본과의 서계 문제 - 구한말 일본과의 관계 악화

 

서계 문제

삼가 조선국예조판서 공 각하에게 글을 올리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래 정세가 일변하여 정권이 황실로 돌아갔습니다. 가까운 장래에 별사를 보내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겠으므로 여기서는 긴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재주 없는 이 몸이 직을 받들어 귀국을 찾았는데 우리 조정에서는 특히 옛 공로를 어여삐 여겨 작을 올리고 벼슬을 좌근위소장으로 진급시켰고, 다시 교린직을 맡도록 명하셨으니, 오랜 전통이 사라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별사가 가지고 가는 도서(인장)는 새로운 도장을 찍게 하여 우리 조정의 성의를 표하겠사오니 귀국 또한 잘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옛적에 귀국에서 받아온 도서는 원래 전적으로 후의에서 나왔기에 쉽게 이를 고쳐 바꿈이 옳지 않은 줄 아옵니다. 비록 그러하나, 이는 우리 조정의 특명에 따른 것이니 어찌 사사로이 공적인 일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불초 이 몸의 정황이 여차하오니 귀국이 양찰하길 깊이 소망하는 바입니다.

- 메이지 원년 11월 -

의정부에서 아뢰었다.

<대마도주가 보낸 서계 중에 자신을 좌근위소장으로 써온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도, 조선이라는 두 글자는 기왕의 격례에 크게 어긋납니다. 역관으로 하여금 이를 엄중하게 알리도록 하고, 대마도주에게 서계를 고쳐 올리게 하십시오. 직명이 전과 다른 것은 항식과 항례가 아니거니와, 300년이나 된 약조의 본의가 어찌 이와 같겠습니까. 그들에게 서계를 고쳐 올리도록 분부하심이 옳을 것입니다.>

이 말에 임금이 윤허하였다.

- 승정원일기, 고종 6년, 12월 13일 -

참고글 : 서계라는 것은 국가간 공식문서를 의미합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친 후 강국이 되어 조선에 대하여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통적으로 조선에 문서를 보낼 때 일본은 존대 형식의 문서를 보냈지만, 대원군기 이전부터는 점차 문서 용어에서 존대가 사라지고, 문서 형식도 격식을 갖추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히 메이지 유신은 일본이 한국을 능가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일대의 사건이었지요.

조선에서는 이에 항의를 하곤 하였지만, 일본과의 묘한 마찰은 계속되었고, 결국 외교문서를 받는다, 안 받는다라는 문제로 한, 일 양국간의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은 계속 성장하였고, 일본은 결국 당장 한국을 공격하자는 <정한론>까지 대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