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궁녀들 - 어떻게 살아가야 했을까?

1. <일평생을 혼자 사는 궁녀>로 만들기 위한 눈물겨운 부모의 선택

조선시대의 궁녀는 왕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결혼을 하지 못합니다. 조선 시대 궁궐에 사는 모든 여자는 왕의 여자로서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궁녀들 중에서 왕의 선택을 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10분의 1, 혹은 100분의 1일까요? 아닙니다. 조선시대 궁녀의 수는 적을 때에는 300 정도, 많을 때는 700이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많은 궁녀 중에서 왕의 눈에 들어서 왕의 잠자리 수청을 들었던 궁녀는 10명도 채 안된다고 합니다. 왕이 몇백명의 궁녀를 모두 책임질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궁녀의 일이 편하지도 않았습니다.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왕실의 예법에 규제된 생활만을 해야 했고, 평생을 질시와 투기가 만연하는 궁전안에서 살아야 했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도, 조선시대의 일반 백성출신인 부모들은 자신의 딸이 왕궁에 들어가기를 희망했습니다. 궁녀는 국가에서 강제로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의 의사를 물어서 입궁시킵니다. 그럼 왜 자신의 딸들을 궁녀로 보내려고 했을까요?

이유는 보릿고개조차 넘기기 힘든 가난 때문입니다. 가난한 백성은 자신의 딸을 궁으로 보내어 얼마안되는 국록이라도 받고, 딸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길 바라기 때문이었죠. 궁녀들은 어릴 때는 5-6살, 보통은 10살 정도에 궁에 들어오게 됩니다.

처음 궁에 들어온 궁녀들은 견습생 신분입니다. 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왕실의 예법과 서법, 다도 등을 배우게 되는데, 이러한 견습 나인들을 <생각시>이라고 합니다.

견습 나인이 지나면, 성년식을 거쳐 정식 궁녀가 되는데, 정식 궁녀를 <나인>이라고 합니다. 나인이 되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합니다. 견습나인들이 나인을 부르는 명칭은 <항아님>이라는 칭호인데, 대장금 등 사극에서 이 칭호를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보셨을 거에요. <나인>은 자신의 독립된 방을 가질 수 있고, 하녀도 둘 수 있습니다. 나인의 하녀를 <방아이>라고 부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왕에게 선택받아야만 산다.

궁녀들은 봉록을 받지만, 그 봉록은 보통 쓸데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순종 때 기록을 보면 궁녀의 봉록이 190원 정도라고 하는데, 현재 화폐가치로 약 150-20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실제 왕에게 눈도장 받은 궁녀들이 아주 극소수인 것으로 보아 궁녀들은 왕의 여자라기보다는 궁전 안의 사무를 맡아보는 여성 전문직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양반집 규수들은 나인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명문가의 딸이 궁전에서 독수공방하면서 살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궁에서 혹시라도 집안의 딸을 데려갈까봐 조혼을 시키는 풍속이 생기면서 폐단이 많았답니다. 18세기 영조는 이러한 폐단을 생각해서 조혼 금지령을 내림과 동시에 양가집 규수를 생각시로 모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이후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때 조혼 금지가 법제화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궁녀가 되기 위한 조건은 상상 외로 까다로웠답니다. 궁녀는 일단 선조에 죄인이 없고, 집안에 병에 걸린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또 첩의 자식은 절대 안되며, 집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어도 무조건 궁녀 선택에서 탈락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궁녀 선발 때 처녀성을 확인하는 절차였습니다. 왕의 여자가 부정하면 안되기 때문이지요. 이 테스트는 최소 12살 이상의 성숙한 여자에게 실시하는 테스트였는데, 앵무새의 피 한방울을 팔에 떨어뜨려 피가 묻지 않으면 처녀가 아니라고 해서 탈락시키는 방법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어렵게 궁녀가 되었는데, 이 중에서도 왕의 눈에 드는 궁녀는 몇백에 하나라는 점은 비극이네요. 궁녀들은 성년식을 치를 때, 결혼식도 함께 합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궁녀의 성년식은 왕의 여자가 성년이 되었다는 것을 축하하는 것으로 이것은 혼례를 의미합니다. 물론 신랑인 왕은 없이 혼자 하는 결혼입니다. 궁녀의 전각에서는 궁녀들에게 사은품을 보내고, 궁녀의 부모들은 살림살이를 보내줍니다. 이 성년식, 즉 결혼은 모두의 축복을 받는 행사이지만, 평생 혼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서글픈 일이기도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궁녀는 어디까지 출세가 가능할까?

궁녀도 왕실의 예법을 받고 그 위계질서가 뚜렷합니다. 보통 생각시로 출발한 10살의 궁녀가 최고 궁녀자리인 상궁까지 오르려면 최소한 40이 넘어야 합니다. 자 그럼 궁녀의 품계표를 한번 볼까요?

궁녀의 품계

궁녀의 명칭

정 5품

상궁, 상의

종 5품

상복, 상식

정 6품

상침, 상공

종 6품

상정, 상기

정 7품

전빈, 전의, 전선

종 7품

전설, 전제, 전언

정 8품

전찬, 전식, 전약

종 8품

전등, 전채, 전정

정 9품

주궁, 주상, 주각

종 9품

주섭징, 주징, 주우, 주섭궁

궁녀의 삶으로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정 5품의 상궁입니다. 특히 상궁 중에서 가장 높은 상궁은 제조상궁인데, 제조상궁은 모든 궁녀를 총괄하는 최고 상궁을 말합니다. 제조상궁은 모든 내전의 재산을 관리하고, 왕의 측근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두 번 째 높은 상궁은 부재조 상궁인데, 부제조 상궁은 왕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고, 내전의 창고를 관리하였습니다.

또 왕의 심부름을 담당하는 지밀상궁(대령상궁)도 파위가 있는 상궁입니다. 이 지밀상궁은 왕의 최측근이기 때문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4살 이전에 뽑아 교육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왕의 자식에게는 교육을 위해 보모상궁을 뽑았고, 궁녀들을 감시하기 위한 감찰상궁, 왕실 가이드 역할을 하는 시녀상궁도 있었습니다.

4. 궁녀들이 각각 맡은 임무는 무엇일까?

궁녀의
임무

품  계

해야할 업무는?

상궁

정 5품

궁중의 최상위직이다.

상의

정 5품

예의와 기거에 관한 일의 총책임자이다.

상복

종 5품

복용, 채장의 수요와 공급을 맡는다.

상식

종 5품

반찬을 만드는 품종을 찾추어 공급하는 책임자이다.

상침

정 6품

일의 순서를 정하고, 행사를 담당한다.

상공

정 6품

여공과 정과를 담당한다.

상정

종 6품

계율, 죄, 벌을 담당한다.

상기

종 6품

군내 문부의 츨입을 관장한다.

전빈

정 7품

빈객, 조견, 연회를 담당한다.

전의

정 7품

의복, 수여의 일을 담당한다.

전선

정 7품

제팽전화(과리)의 일을 맡는다.

전설

종 7품

장식, 청소 등의 일을 맡는다.

전제

종 7품

의복과 재봉의 일을 맡는다.

전언

종 7품

선전, 계품을 맏는다.

전찬

정 8품

빈객의 조견, 연식을 돕는다.

전식

정 8품

고목건즐을 맡는다.

전약

정 8품

의약 처방과 시약을 맡는다.

전등

종 8품

등촉을 맡는다.

전채

종 8품

겸백사시를 맡는다.

전정

종 8품

상정(궁정)의 일을 맡는다.

주궁

정 9품

주궁, 주상, 주각은 궁상각치우의 5계이다. 내명부 궁품의 질서를 상정하기 위한 첨설직이다.

주상

주각

주섭징

종 9품

궁상각치우의 5음계 위에 변징, 변궁의 2음계를 더하여 7음계로 구성한 것이다. 내명부 위계를 위해 첨설한 첨설직이다.

주징

주우

주섭궁

5. 궁녀는 궁중문학을 이끌어간 선도자였다.

궁녀가 궁에 들어가면 먼저 한글로 궁체 쓰기를 익힙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것으로 필수사항이지요. 따라서 궁녀들은 전문적인 서예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입니다. 궁녀들의 문체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남성 문장가들의 문체와는 다르게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필체와 내용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인목대비의 궁중비사를 다룬 계축일기,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갈등을 다룬 인현왕후기는 궁정 문학의 꽃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6. 궁녀들의 복색은?

견습나인인 생각시의 복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인의 복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상궁의 복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7. 말년이 쓸쓸한 궁녀들...

궁녀가 가장 출세하는 길은 왕의 성은을 입어 출세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대부분의 궁녀는 40정도에 상궁이 되어 위세를 떨치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이것도 일부의 궁녀들만 가능했습니다. 상궁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에 대부분의 궁녀들은 그냥 늙어가는 것이었죠.

국가에서는 국가에 가뭄이 오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궁녀의 한으로 돌리곤 했습니다. 유교주의 사회이고, 남존여비의 사회인데다가 농업중심의 국가이기 때문에, 자연의 재앙을 음양의 조화가 깨진 것으로 해석하여 여자들에게 죄를 전가하는 것이지요.

가뭄이 들거나 국가 재정이 빈약해지면 쫒겨나는 것은 가장 힘없는 나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궁밖으로 나온 궁녀가 결혼이 가능했을까요? 궁녀들은 이미 왕과 결혼한 몸입니다. 말했지만, 성인식 자체가 결혼식이었으니까요. 조선사회에서 <여성의 재혼을 금지한다>는 사회 윤리상 궁 밖의 궁녀는 평생을 수절해야 합니다. 만약 궁녀가 남자와 불륜(?)의 관계였고 현장에서 적발되었다면 이것은 재판없이 참수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역사도서 모음

1. 이 포스트는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연구, 일지사, 1987>의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2. 포스트의 그림과 일부 내용은
http://cafe.naver.com/nouas.cafe을 참조하였습니다.
  3. 포스트 내에 정리된 표와 일부 내용은 <테마로 읽은 우리 역사, 김경수, 이영화, 동방미디어, 2007>을 참조하였습니다.
  4.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2003>의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포스트 내용 중 액박 된 사진들과 깨진 부분들이 있어서 다시 작성했습니다.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