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4 - 동학농민운동의 논점들
1. 동학농민운동의 명칭은? 1894년의 동학교도와 농민들의 운동을 동학농민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학농민운동이란 말은 교과서에서 쓰는 말입니다. 개론서와 각 단체의 입장은 다릅니다. 먼저, 동학농민운동이 동학 교도들의 종교운동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을 <1894년 동학운동>이라고 합니다. 동학 교단과 비교적 보수주의적인 역사학자들의 입장입니다. 당시 운동은 최시형 등을 중심으로 한 동학이 주도하였고, 동학의 포접제, 집강소 등이 사건의 중심을 이루는 기구였기 때문에 동학운동이 맞다는 논리이지요. 그러나,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과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은 이 사건은 <1894년 농민전쟁>으로 부릅니다. 그 이유는 사건이 일어난 이유 자체가 사회모순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전국적으로 농민들이 참여하여 사회적 모순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을 높이 사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세계사적 보편성과 연결시키는 입장에서는 <1894년 농민 혁명>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구제도의 모순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프랑스 혁명과 유사한 진행과 요구사항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 전쟁을 통하여 주변 강국들을 물리쳤던 반면, 농민 혁명은 일본이라는 외세에 의해 좌절되었기 때문에 그 혁명성이 전해지지 않는다라고 봅니다. 이러한 3가지 입장을 절충하여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 바로 교과서의 <동학농민운동>의 관점입니다. 동학, 농민, 혁명성을 고루 압축하여 교과서에 적절하게 실어놓았죠. 역사를 바라볼 때 교과서와 같은 만들어진 텍스트가 진리라는 입장은 정말 위험합니다. 왜냐면, 교과서 역시 결론을 내리기 힘들어 무난한 절충적인 입장에서 기술한 용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의 진정한 명칭은 무엇이 좋을 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명칭을 그냥 사용한다고 할 때, 또 하나의 쟁점은 <누가 그럼 주도했는가?>라는 점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말은 동학, 농민이라는 두 주체가 이미 들어가 있네요. <동학운동>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동학운동의 주체가 동학운동론자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최시형과 동학의 집행부들이 <동학>이라는 종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 흐름에 농민이 동참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죠. 따라서 <동학>을 앞장서 이끌어간 사람들은 몰락양반인 교조 최제우를 비롯한 지식인층이나 몰락 양반이라고 말합니다. 동학 농민운동은 원래 몰락 양반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농민의 문제로 확대되었고, 사회 모순이 심화되면서 국가적 문제로 발전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즉, 초기부터 집행부는 지식인과 몰락양반이었고, 그들은 동학의 핵심 교도들이었다는 것이죠. <농민전쟁>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동학의 주체가 당연히 <빈민과 농민층>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동학은 단순한 사회 운동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 모순과 외세의 침략, 제국주의적인 자본이 들어오는 시점에서 발생한 <농민층>의 항쟁이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동학의 주체는 사회 모순에 피해를 입은 모든 농민, 상인, 도시빈민 들이었고, 그들이 주체였기 때문에 동학이 전국적인 전쟁이 될 수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동학혁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학이 서양의 시민혁명과 같은 혁명이었기 때문에 그 주체도 당연히 시민이라고 주장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부르조아, 영국 혁명의 젠트리가 바로 혁명의 주체라는 것이죠. 동학은 부르조아적인 부농층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일으킨 것으로, 그 마지막 목표는 자본주의 국가의 건설이었고, 그것은 곧 반국가, 반외세를 지향한 시민혁명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3. 동학이 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였는가에 대한 논쟁 동학을 <동학혁명>이라고 보는 입장의 사람들은 동학혁명이 서구 시민혁명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로의 근대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것은 서양 시민혁명들과 마찬가지로 아래로부터 대중들이 일으켜 근대화와 자본주의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혁명을 일으켜 무기와 조직을 만들 수 있었던 일정 재산을 가진 부농층에 주목을 합니다. 그 이유는 아시아에서도 충분히 서양과 같은 시민혁명이 가능하였고, 정조와 같은 절대군주도 존재할 수 있었으며, 실학과 같은 정치, 과학혁명적인 사상도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기 위함입니다. 동학을 <농민중심의 전쟁>으로 보는 사람들은 서구중심적인 세계사적 보편성과 시민혁명의 가능성을 부인합니다. 우리 역사를 굳이 서양이 제시한, 혁명 단계에 맞춰 해석할 필요도 없으며, 자본주의가 근대적 국가의 지표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농민들의 주장은 자본주의를 이룩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모순을 타파하자는 반봉건, 반외세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봉건이란 개화를 주장하자는 개화파에 반발한 것이었고, 반외세란 제국주의적 자본을 가진 청, 일본을 배척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동학은 반자본적인 운동이었을 망정, 자본주의를 위한 운동이 아니였다는 입장이죠. 4. 폐정개혁안 12개조가 보여주는 동학농민운동의 성격 결국 동학농민운동의 성격은 수백개의 논문들이 얽히고 설켜 다양하고 상반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는 그러한 의견들을 절충해서 제시할 뿐이지, 명확하게 결론을 내린 것은 없습니다. 교과서에 동학농민운동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만 계속 나오는 것도, 이러한 견해들을 한쪽 입장에서 정확히 기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결국 실제 사료입니다. 그 중에서 동학농민운동의 핵심을 보여주는 사례가 집강소 시기의 <폐정개혁안 12개조>입니다. 이 사료를 분석하면서 4파트로 나눠 기술했던 동학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동학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반봉건적, 반외세적인 성격을 가진 운동이라는 점입니다. 1조에서 보면, <정부와의 원한>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 자체가 동학도, 농민들과 국가가 서로 반목하는 사이었고, 국가가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지 못하였음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2,3,4조 역시 탐관오리 처벌, 횡포한 부호, 불량한 양반 을 말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과 당시 사회적 대립구조를 보여줍니다. 5조의 노비문서 소각, 6조의 천인차별 개선, 7조의 청상과부 개가 등은 구제도의 모순에 대한 혁파를 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에서 보여준 길드 폐지, 신분에 대한 차별 금지 등과 비교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도 훨씬 더 강도 높은 개혁안들입니다. 신분제 폐지의 내용은 백성들로부터 이루어지는 개혁안의 핵심적인 내용이지요. 8조의 잡세 폐지는 농민들의 중요한 요구중의 하나입니다. 당시 국가가 농민에게 보여준 가장 큰 횡포였고, 농민들의 핵심요구 사항이 이것이었죠. 쉬운 말로 밥먹고 살 정도의 돈은 남겨주고 이득을 챙기라는 것이죠. 요즘으로 따지면, 비정규직도 먹고 살 것은 보장해달라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10조는 일본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왜와 통하는 자는 엄징한다네요. 11, 12조는 다른 개혁에는 볼 수 없는 농민들만의 개혁 내용입니다. 정부나 지배층의 개혁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독자적인 것이죠. 11조의 공사채를 무효로 한다는 내용은 가장 농민다운 발상입니다. 특히, 12조의 토지개혁은 농민들이 꿈꾸어왔던 이상적인 세상을 보여줍니다. 세금을 깍아주는 조세 개혁이 아닌 토지 자체를 공평히 달라는 것이죠. 그러나, 갑오개혁에서도 이 토지개혁만큼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기득권층은 보수층이든, 진보층이든간에 자신들의 토지를 개혁하여 농민에게 줄 정도의 아량이 있을리 만무하니까요. 자, 여기까지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제, 다음 장부터는 1894년의 또 다른 사건인 갑오개혁, 청일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1895년의 이야기(을미개혁, 을미사변, 을미의병)로 넘어가도록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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