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성’ 하면 <다세포소녀>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부담스러워요.” 의자에 앉자마자 ‘부담’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걱정’일 거다. 엽기적인 캐릭터가, 정말이지, 떼로 등장하는 <다세포소녀>에서 가장 엽기적인 캐릭터인 두눈박이. 주인공 꽃미남 안소니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전체 등장인물 중 가장 예쁜, 그러나 남자! 그렇다. 은성의 첫 영화 출연작은 의외로 남자 역할이다.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그럴수록 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태어나서 남자 역할을 제가 또 언제 해보겠어요. 현장에서 정말 티를 안 냈는데, 사실 저만큼 창피한 사람도 없었을 거예요.” 화장실에서 서서 볼일 보고 나서 부르르 떨었던 일이며, 에로 비디오를 ‘열심히 즐기며’ 봤던 일이며,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절대 해볼 일 없을 일들을 어떻게 해냈는지 이리 신나게 말하는 은성이 고고학자를 꿈꿨다니!
교실 뒤에 앉아서 조용히 책 읽는 아이.
그게 바로 저였어요. 심하게 낯을 가리고, 집-학교-도서관이 제 행동 영역의 전부였어요. 연예인은 관심도 없고, 노래방도 드라마 하면서 처음으로 가봤어요.” 유명 스타들의 데뷔담을 들으면 이런 사람 꼭 있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는데, 친구가 보러 간 오디션 장소에 우연히 갔다가 캐스팅됐다는 사람. 은성이 딱 그런 경우다. 소설부터 역사 분야까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다른 친구들과는 관심사가 전혀 달랐던 그녀가 갑자기 기획사에 발탁돼 연예 활동을 하겠다니, 보수적인 부모님들의 반대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처음으로 ‘불꽃’ 같은 걸 느꼈어요.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께서 ‘최고가 되지 않을 거면 때려치우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시작했어요.” 드라마 <반올림>을 시작으로 그렇게 연기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연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운 게 없어서 현장에서 한 일이라곤 기도한 거밖에 없다는 그 열일곱부터 은성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어버린 거다. 이후 <다세포소녀>에 캐스팅되고, 공포영화 <D-day>와 <오래된 정원>까지 앞으로 은성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연극영화과를 가려고요. 연기를 할 거지만, 학교에서 연출을 좀 배워보고 싶어요. 제가 워낙 파헤치는 거 좋아하는 데다, 연기하면서도 감독님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생각하는 적이 많거든요. 그걸 알게 되면 좀 더 연기를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감독님 이야기를 하니, 배우에게 ‘감독복’이라는 게 있다면 은성의 감독복은 대단한 거 같다고 생각했다. 단편영화계에서 일찌감치 스타 감독이었던 김은경, 이름만으로도 절대 작품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재용과 임상수 아닌가. “제가 첫인상이 강해서 제 얼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순해 보이는 얼굴이 부러워요. 키가 169센티미터인데, 저보다 아담한 사람들이 부럽고요. 이런 외모적인 면은 별로 맘에 안 드는데, 대신 저에게 인복을 주셨나 봐요.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신문을 봐도 연예면이 아닌 사회면을 먼저 본다는, 실제 나이는 19세지만 마음은 35세라고 순순히 ‘자백’하는 그녀가 이렇게 말하니, 어쩌면 은성은 감독복이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좋은 사람들을 일부러 찾아다닌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 안 쓰고, 우유부단한 거 싫어하고, 즉흥보다는 준비라는 말을 좋아하는, ‘용의 해에 태어난 사자자리의 AB형 소녀’는 그런 ‘계산’쯤은 하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겨버린 거다. “전 스무 살이 되는 게 싫어요. 그땐 정말 어른인 거잖아요. 어른이면서 현장에서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거처럼 보기 싫은 게 없더라구요. 자신을 책임져야죠. 제가 그런 위치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싫어요.”(웃음) ‘저주받은 사진발’이라며 호탕하게 웃어젖히고, 오디션에서 만난 배우와 단짝 친구가 되어버리는 은성은 자신에게 닥친 바로 지금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이미 어른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즐길 수 있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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