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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연의 침략과 위만의 배신

 

고조선의 변화 2

(연이 쳐들어 온 이후 뒤이어) 진이 천하를 아우름에 미쳐서는 몽염을 시켜 장성을 쌓아 요동에 이르렀다. 이 때 조선왕 비가 섰는데, 진이 자기 나라를 습격할까 두려와하여 책략으로 진에 복속했으나, 조회는 하지 않으려 하였다. 비가 돌아가고 아들 준이 왕이 된 지 20여년에 진항이 일어나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 제, 조나라 백성들이 괴로워하다가 차츰 도망하여 준에게 갔다. 준은 이들을 서쩍 지방에 와서 살게 하였다. 한이 노관으로 연왕을 삼자 조선과 연은 추수로 경계를 이루었다.

노관이 한을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한 뒤 연나라 사람인 위만도 망명하여 오랑캐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왕에게 항복하였다. 위만이 서쪽 변방에 거주하도록 해주면 중국 망명자들을 거두어 조선의 번병이 되겠다고 준왕을 설득하였다. 준왕은 위만을 믿고 사랑하여 박사에 임명하고 홀을 하사하며 땅 100리를 봉해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위만은 거짓을꾸며 준왕에게 사람을 보내 한나라 병사가 열 길로 쳐들어오고 있으니 들어가 숙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결국 돌아와 준왕을 공격하였다. 준왕은 위만과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좌우 궁인을 거느리고 달아나 바다를 건너 한 땅에 살면서 스스로 한왕이라고 하였다.                    

                                                             - 삼국지 위서 위략 -

사료해석 : 기자조선이 연의 침입 이후 영토를 잃어 중심지가 이동된 이후, 위만이 망명하여 위만조선의 왕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중국측 사료로서 사실여부의 신뢰성부터 의심이 가지만 딱히 반박할 자료가 없기 때문에, 한국사에서는 이 자료를 인용하여 모든 상황을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위만이 연나라 사람인가하는 문제인데, 그것에 대한 한국사의 입장은 부정적입니다.

위만이 상투를 틀고 조선복장을 하였으며, 조선의 토착민족들을 그대로 수용하였고, 관직 등을 유지시켰다는 점에서 위만을 조선인으로 보는 관점이 더 많습니다. 위만에 대한 논쟁은 한국사 자료실을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