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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이규보의 동명왕편 - 서문

 

이규보의 동명왕편 - 서문

세상에서 동명왕의 신이하고 이상한 일이 이야기 되는데, 비록 배운 것 없는 어리석은 남녀들까지도 제법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이다. 내가 일찍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웃으며 <선사 공자님은 괴력난신을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이 동명왕 설화는 실로 황당하고 기궤하니 우리들이 논급할 바가 아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뒤에 <위서>와 <통전>을 읽어보니 역시 그 일을 실었으나 간략하지 못하고 자세하지 못하니, 자기네 일은 자세히 기록하고 외국의 일은 핵심만 기록하려고 한 때문일 것이다.

다음 계축년 4월에 구삼국사를 얻어서 동명왕 본기를 보니 그 신이한 사적이 세상에서 이야기되는 것보다 더 자세하였다. 그러나 역시 처음에는 이를 믿지 못하였으니, 귀신(귀)이나 환상(환)의 이야기같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여러번 탐독, 미독하여 차차로 근원을 찾아가니 이는 환이 아니고 성이며, 귀가 이나고 신이다.

동명왕의 이야기는 변화롭고 어지러워 중생을 현혹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은 실제 나라를 건국한 신이한 사실적 이야기이며, 즉 이것이 저술되지 않았음이 후에 어찌 보겠는가. 이로서 이 이야기를 시조 짓고,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무릇 천하에 우리 국가의 근본이 성인의 국가임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니라.

사료해석 : 동명왕편 서문이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민족적 발로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규보는 초기에는 유교적 합리사관에 의해 초기에는 유교적 합리주의 입장의 사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중세 사관인 무징불신, 필삭주의 등을 지키려 했었고 명확한 증거가 없는 것을 손대지 않으며, 신화와 같은 허무맹랑한 사실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규보는 점차 고구려 계승의식을 바탕으로 한 동명왕을 강조하면서 중국과 다른 독자성을 우리 역사에서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곧, 이규보가 유교 사관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역사 시대를 좀더 상고시대로 끌어올려보려는 절충적 관점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규보는 동명왕 신화는 유교사관에서 말하듯 괴력난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웅적 시조의 이야기을 잘 분석하면 우리 민족 고유의 독자적 혈연관계와 문화 공동체 의식을 찾아낼 수 있다는 민족의식의 발전성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최씨 무신 정권기에 사회 통합 기능 차원에서 어느 정도 목적성이 있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또한 삼국사기와 같은 직전 시대의 사서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것을 저술함으로서 묻혀 버린 과거 이야기를 진지하게 논의하고자 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조선시대 단군조선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마련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물론 비체계적인 서술과 감성적인 고대 전통으로의 복귀라는 문제점은 이 글의 가장 큰 약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