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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신사조영웅전 2008에 나온 몽골, 이건 좀 너무하잖아?

  이번 사조영웅전은 많은 기대를 모았던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필자 의 경우, 이번 한 해 동안 김용의 무협소설들을 처음 읽기 시작해 무협의 매력에 푹 빠지기 시작할 무렵 사조영웅전 2008이 나왔기 때문에 나 역시 많은 기대를 했으며 한 화 한 화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개인적으로 중앙유라시아에 지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푸른 몽골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다가 독수리를 향해 활을 겨누는[각주:1] 호가(胡歌, 곽정 役)가 무척이나 멋졌다.
  물론 최신작인 만큼 우아한 영상미를 자랑했던 사조영웅전이지만,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장면이 몇몇 있었다.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나 역시 탓하고 싶은 부분은 아니지만, 이러한 부분은 조그마한 노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었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몇몇 이야기를 잠시 소개해보고자 한다. 

들어가기 전에. 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 그리고 중국인들의 몽골에 대한 인식
  우선 계절별 이동을 통해 유목을 하는 몽골인에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의 농토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이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원사元史에서 보면 중국을 점령한 몽골인들이 중국은 유목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많아 쓸데가 없으므로 논밭을 없애 초지草地로 만들고, 사람들을 노예로 삼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각주:2]
  또한 유목을 통해 가축으로부터 우유, 유제품, 고기를 얻어먹는 몽골인들은 “가축은 풀을 먹고, 사람은 가축을 먹는데, 사람이 어찌 가축이 먹는 풀을 먹는단 말인가?”라고 하며, 대체적으로 채식을 하는 정주定住 농경민들을 매우 경시輕視하였다.[각주:3]

  중국인들의 경우에도 중국인들의 몽골초원에 대한 평가는 그리 후하지 못하다. 흔히 여러 역사서에서는 몽골 초원을 “막북漠北”으로 표기하여 “(고비) 사막의 북쪽”으로써 인식하였다. 이러한 중국인들의 표기는 현대에 들어 더 박해지는데, 이미 대만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대막大漠영웅전』으로 출판된 김용의 『사조영웅전』의 예例나, 「사조영웅전 2008」에서도 곽정이 몽골초원을 계속 “대막大漠”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젠 사막의 북쪽이 아니라, 아예 몽골초원 자체를 사막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중국인들의 몽골인들에 대한 평가도 역시 후할 수 없는데, 몽골인들은 중국인들이 이야기 하는 북적北狄의 일부였다. 또한 중국인들은 이러한 북방 유목민들을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예禮를 모르는 짐승’에 불과하다고 하였는데, 흉노匈奴시절부터 ‘젊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먼저 먹고, 노인들이 남은 것을 먹는다.’라고 하며 예를 모르는(?) 이들을 매우 천시하였다.[각주:4]

 

1. 몽골인들이 남송을 침략한 것은 남송이 금수강산이기 때문?
  곽정, 황용과 함께 황궁으로 숨어들은 구지신개 홍칠공 with 주백통. 홍칠공은 황제의 요리를 훔쳐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조영웅전 2008」에서는 냄새만 맡고도 음식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엄청난 신공神功을 보이시는데, 몽골의 양 요리가 준비될 무렵, 홍칠공은 몹시 못마땅한 모양이다.

"몽고 요리가 맛나긴 하지만, 옛날에 칭기스 칸이 우리 대송과 동맹을 맺은 건 
우리 대송이 풍요롭게 뵈니까 침흘린 게야. 시커먼 속이 뻔해."
by 중국딱지님 번역, 엽고성님 싱크

  앞서 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에서 언급했듯이, 몽골인들이 남송을 친 것은 남송이 금수강산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땅을 친 것은 칸위汗位를 유지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을 뿐이었다. 예전에 어른들은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한 이유가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었기 때문’이라고 배운 모양인데, 그러한 어리석은 이야기가 여기서 또 한 번 재현되리라고는 상상 조차 하지 못했다.

 

2. WWE 슈퍼스타 테무친

자이언트 스윙을 시전 중인 칭기스 칸

  역시, 칭기스 칸이 잠든 유럽대륙을 깨운 까닭은 동서고금을 막론하였기 때문인 걸까? 화려한 중국의 권법에, 프로레슬링의 자이언트 스윙, 드롭킥까지 포섭한 그의 무공은 과연 고금에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다.
  원래 테무친이 그의 안다(의형제)였던 자무카와 대립하게 된 데에는 테무친이 칸이 되리라는 샤먼의 신탁과 더불어 많은 까닭이 있다. 결국 테무친을 배신한 자무카는 피를 쏟지 않는 ‘명예로운 죽음’을 당하게 되지만, 죽기 전까지 그들이 직접 주먹으로 치고 박은 것은 아니다. 김용의 원작 『사조영웅전』에서도 많은 기병을 거느리고 싸우는 테무친과 자무카를 볼 수 있는데, 「사조영웅전 2008」에서는 마치 이 둘의 싸움이 천하제일무술대회를 연상케 했다.

Please, DON'T TRY THIS



3. 몽골의 주력은 보병?

곽정 : 쟤넨 뭐하지?


병사들 : 우와아아아아아아!!

병사들 : 우와......(....)

곽정 : 아 씁(...)


  이건 좀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몽골인들의 드넓은 세계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병의 빠른 기동력을 살리기 위한 많은 수의 말들과 건조한 고기 “보르츠” 때문이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유독 「사조영웅전 2008」에선 몽골병들이 말을 타질 않는다! 그 때문일까? 유독 이번 사조영웅전에서 곽정은 유독 금金과 호레즘샤 연합군에게 무척이나 많은 패배를 겪으면서 애를 먹는다.
  현재에서도 몽골에선 유목을 하는 가정이라면 반드시 한 마리의 말은 있어야 한다. 초원에 양과 염소 등의 가축을 방목하는 몽골인들에겐 더 많은 가축을 돌보기 위해서는 말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몽골인들은 말을 가축 돌보는 일 이외에도 다른 집을 방문할 때나 놀러갈 때도 많이 쓰이는데, 이러한 몽골인들의 풍습은 “세 걸음 이상은 말(을 탄다)”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각주:5]이다. 하자노프의 저서에서 마이스끼(학자이름)은 20세기 초 몽골족 5인 가정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14마리 정도의 말이 필요하며, 그 외에도 기타 가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각주:6] 

  막상 쓰고 보니까 욕만 잔뜩 적어놓은 것 같은데, 사실 무척 재미있게 보았던 작품이다. 몇몇 어처구니가 없는 부분만 모아서 소개한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말았으면 한다.
  요즘 몽골 등지를 포함한 중앙유라시아에 대한 관심과 인가가 매우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그 인기에 부합할 만한 적당한 교양저서나 지식이 없다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나 역시 정작 이러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면서, 쓸모없는 자료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앞서지 않을 수 없다.


- 참고문헌 & 소개
  박원길 저, 『몽골의 문화와 자연지리』, 민속원, 1999.
   : 아마 몽골의 유목에 대해 다룬 책 중에선 최고가 아닐듯 싶다.
     다만, 책이 나온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각종 통계치는 신용할 수 없다.

  공재성 외 저, 『하늘과 맞다은 바람의 나라 몽골』, 이른아침, 2008.
   : MBC의 다큐멘터리와 함께 나온 책. 사진도 많이 들어있어 쉽게쉽게 읽을 수 있다.
 
    다큐멘터리와 함께 본다면 금상첨화. 
  하자노프 저, 김호동 역, 『유목사회의 구조 : 역사인류학적 접근』, 지식산업사, 2000.
   : 1990년에 나왔던 초판을 이번에 새로이 찍어낸 것이기 때문에 1990년 판과 다를 것이 없다.
     학술서적이기 때문에 인류학이나 유목에 대한 지식이 없는 분들에게는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 않다.
     학술서로써는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지만, 교양서적으로써는 글쎄.
  1. 독수리를 쏜 영웅射雕英雄은 주인공 곽정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2. 이는 김용의 무협소설 의천도룡기에서도 언급되기도 한다. 당시 몽골인들은 토지, 곡물, 물품 등에 세금을 매긴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는데, 거란 출신의 재상 야율초재耶律楚材는 이러한 사실을 몽골인들에게 깨우쳐주는 한편, 농토의 초지화를 막는데 큰 역할을 했다. [본문으로]
  3. 박원길 저, 『몽골의 문화와 자연지리』, 민속원, 1999. p. 121 [본문으로]
  4. 잠시 유목민들의 편을 들어보자면, 초원에서 부족의 형태로 널리 퍼져있는 초원의 유목민들에겐 부족 간의 항쟁이란 매우 빈번한 일이었다. 또한 부족한 물자를 보충하기 위해 주변 정주 사회를 약탈하곤 하였으므로, 초원의 유목민들에겐 항상 싸움에 대한 준비가 갖추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본문으로]
  5. 공재성 외 저, 『하늘과 맞다은 바람의 나라 몽골』, 이른아침, 2008. 참고 [본문으로]
  6. 하자노프 저, 김호동 역, 『유목사회의 구조 : 역사인류학적 접근』, 지식산업사, 2000. p. 6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