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5)

왜, 교과서는 무적이 되야 하는 것일까?

1. 교과서의 절대성

오늘은 21세기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포스트모던으로 <교육>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많은 교사들이 포스트모던의 철학으로 <역사 교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한국 사회의 현실 때문이다. 입시를 위한 역사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하며, 입시에 강한 역사 교사가 우대받는 공교육에서 어떻게 <교과서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포스트모던의 역사 철학은 공교육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7차 한국사, 세계사 교과서의 첫 시작은 <역사란 무엇인가?>로 출발한다. 역사를 공부하면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을 쌓게 되며, 과거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다. 이 과거를 바라보는 눈을 흔히 <역사적 사고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한단원을 지난 후에는 교과서에서 <역사적 사고력>은 변질된다. 단순한 사료들을 나열해놓고, 그 사료들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지만, 해답은 교과서가 원하는 정해진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 틀 안에서 이루어진 정답이 곧 수능에서의 답이 된다.

교과서의 어투는 전혀 <사고력>를 키울 수 없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교과서는 <A는 B라는 계층이 주도해서 C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과거의 사건이다>는 식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미 정해진 문장에 답이 있는데, 더 이상 무슨 해답을 찾아내란 말인가?

한국의 공교육에서 교과서는 절대 불변의 진리이다. 그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결과물을 쉬운 표현으로 압축해서 적어놓은 것이며, 학생들은 그것을 비판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교사들은 교과서를 더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으며, 역사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제시하여 학생들을 <이해>시킨다.

결국, 학생들은 역사 수업을 통해 <역사란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교과서를 읽고 나면 이런 결론이 도출된다.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 중에서 역사가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간추려놓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진리>이다. 역사가들은 대중을 위해 헌신적으로 <역사적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교과서는 철저히 중립적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그 내용를 적은 이가 누구인지를 전혀 밝히지 않는다. 교과서는 가장 객관적인 말투로만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비판할 수도 없지만, 비판하고 싶어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알고, 과거의 중요한 사실들을 알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걸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부터 읽히는 공교육 제도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포스트모던으로 역사를 읽는 법이 필요한 것이다. 

2. 지식의 독점

교과서의 절대성에 대한 근거는 너무나 빈약하다. 역사를 기술하는 전문가 집단의 연구 성과를 검증한 것은 그들 스스로의 <학회>일 뿐이며, 그들의 주장 역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따름이다.

7차 국사 교과서를 보자. 신라의 중앙집권은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쓴 내물왕때 시작되어, 점차 왕권이 강화되어 간다고 말한다. 고구려의 중앙집권은 태조왕때 시작되었고, 백제는 근초고왕 때 중앙집권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의 어느 역사책에 그런 말이 나오는가? <중앙집권>이란 말 자체가 편의상 역사를 규정하는 <연구가>들의 분류일 뿐이다. 각국의 역사는 독특힌 발전과정을 겪었다. 신라의 통일 얼마전 까지도 가야가 존재했지만, 누구도 4국시대라는 말을 쓰지 않고 3국의 통일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이루었다고 기술하면서도, 삼국통일이 자주적인 것이었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모순을 남기기도 한다.

조선시대를 이끌어간 노론 지배층은 교과서에서 상당히 아름답게 기술되어 있다.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는 내용이 교과서에 강조되어 있지만, 왕조 실록이나 관찬 사서에 그런 기록은 없다. 송시열이 청나라 정벌을 위해 북벌을 주장했다고 하지만, 송시열은 실제로 내치주의(국내 안정)를 주장했다.

교과서는 실학의 주체로 <서울 근기에 사는 노론 자제>들이라고 서술한다. 그러나, 실학의 주요 인물이라고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들은, 서얼을 포함한 정조의 규장각 출신들, 강화학파의 인물들, 성호학파의 인물들이다.  집권 노론파 자제는 어디에 있는가?

조선말 노론의 지배층이었던 역사가들은 일제 시대를 거쳐 한국 사회의 명성있는 교수님들이 되신 분들도 많다. 그 분들이 주장하는 역사적 연구 성과를 우리가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스트모던 역사 교육은 <과거의 지식에 대한 독점>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식의 독점을 비판하는 학문을 지식사회학이라고 한다.

사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아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를 만들어 가는 자들이 누구인가?>이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고, 과거에 대한 진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많은 과거의 기록들을 확보한 뒤, 그 과거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합리적인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가 만들어놓은 하나의 사건과 현상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개개인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10개의 과거를 10명이 학습한다면, 100개의 과거가 창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를 독점한 자>들은 단 1개의 역사만을 진리인 양 포장한 뒤 나머지 과거들은 <근거없는 논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물이 교과서일 따름이다.

예를 들어보자.

모나리자의 그림이 있다. <다빈치>가 어떤 의도로 모나리자를 그린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모나리자의 미소를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한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미소의 각도와 색감, 원근법 등을 차례로 감상한다. 10명이 감상했다면, 그들은 각기 다른 감상평을 내 놓고, 그림을 평가할 것이다. 어떻게 모나리자에 단 하나의 감상평만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어떤 사건에 대한 다양한 사료들을 교과서에 던져 놓고서도, 그 사건에 대한 평가는 첫째, 둘째, 셋째로 규정되어 있다. 삼국통일의 의의는 공부한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인데도, 왜 3가지 납득할 수 없는 정의만이 <진리>로 규정되야 하는가?

   삼국통일은 당나라의 도움을 받은 후 당나라를 몰아내었기 때문에 <자주적>인 통일이다 라는 것만이 진리인 양 규정해 놓고, 발해의 건국으로 실제로는 남북국시대였다는 기술은 또 무엇인가?

포스트모던은 역사가의 <상상>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를 따지게 된다. 그 결과, 역사를 규정해 놓은 지배집단에 대한 비판이 <역사가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다.

3. 다양성에 대한 <교육>

포스트모던이 추구하는 역사는 <교실 구조>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교사가 교과서의 내용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교실은 교사의 귄위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교사는 아이들보다 높은 지적 귄위로 학생들을 압박한다.

역사가들은 스스로의 이론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수많은 학회 토론을 통해 <논리적인 헛점>을 최대한 줄인 내용들을 교과서에 적어 두었다. 그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언어들을 교사가 설명할 때, 아이들은 교사의 설명 내용이 좀 이상하긴 해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교사가 아이들의 사고력을 끌어낸다면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고 해도, 결국 교사가 원하는 것은 <교과서>와 입시에 합당한 정답을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고력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교사는 역사를 만든 지배집단의 충실한 대변인이 된다. 역사가들의 이론을 가장 쉽고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기능인이 역사 교사일 수 밖에 없다.

역사교사는 교과서의 역사 구조에 종속되어 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라고 규정한 서양의 시대 구분법이 아직도 교과서의 시대 구분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한국의 교사는 다른 대안으로 시대구분을 할 수가 없다. 그리스 신화는 청소년 필독도서이지만, 단군 신화를 다르게 해석한 책들은 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상호 토론이 가능한 웹 2.0 공간에서는 저마다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마음 껏 써내려가지만, 교실에 들어서기만 하면 입시에 필요한 역사적 지식만을 강제로 주입받는다. 웹 공간에서의 주장이 교실에서의 질문으로 전혀 이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사극을 보면서 수백개씩 글을 쓰고, 댓글을 달면서 토론하던 그 학생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렇게 경직된 교실에서 <포스트모던으로 교육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 교육의 목적 안에 <역사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인식시켜주면서 교사 자체가 권위를 버리고,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과거를 연구한 누군가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규정>해놓은 것이며, 새로운 발견이 있거나, 새롭게 사고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15세기 서유럽의 <대항해시대>를 몇몇 원인으로 규정한다.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의 고립감, 왕자들의 모험심, 향료 무역을 통한 차액 증가, 나침반의 유입 등등...

   그러나 우리 교과서와 달리 서양의 학자들은 이런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당시 흑사병 이후 유럽의 경제난이 심각했으며, 서양 사람들에게 꼭 필요했던 대구, 참치, 고래 등 먹거리를 찾아 좀더 먼 바다로 나가다 보니 항해술이 발달한 것 뿐이라고.... 물고기들의 대륙간 이동경로가 항해 경로와 일치한 것이라고...

우리는 나폴레옹이 키가 작았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나폴레옹의 주적이었던 영국의 길이 단위는 프랑스와 달랐고, 영국이 의도적으로 자국의 단위를 활용하여 나폴레옹을 키작은 못난이로 만든 거라고...

역사적 사건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 그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단순히 하나일 수 없다. 수많은 원인 중에 중요한 원인과 덜 중요한 원인이 있을 것이고, 그 중요도를 판단하는 것은 그 텍스트를 보게 된 개개인의 몫이다. 교과서가 하나의 원인으로 규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 방침은 자유교육을 실시하는 외국의 여러 학교들에서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공교육에서는 감히 이러한 교육을 실시할 엄두도 못내고 있는 현실이다.

4. 교과서를 전면 부정할 수 있는가?

포스트모던으로 역사 교육을 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교과서>를 부정한다고 했을 때, 어떤 역사적 사실을 가르칠 것인가이다. 사실 한국의 공교육에서는 <역사적 진리>를 부정한 채 교육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으로 역사교육을 한다고 해서 <교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에게 <진리란 상대적>인 것이며, 과거에 대한 <절대적 사실>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절대적 사실을 진리로 적어놓은 교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과서는 가장 좋은 <역사 교재>가 될 수 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역사에 있어 권력집단의 속성이나,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교과서>를 통해 이야기해 줄 수 있다.

<교과서>에는 이렇게 씌여있지만, 이것과 다른 견해와 해석이 있다는 점을 주지시켜준다면, 교과서의 내용으로 교육을 전개하면서도 <역사적 다양성>을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좌파라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만...)

입시교육에서 자유로운 대안적 교육을 추구하는 학교라면, 외국에서와 같은 포스트모던적 역사 교육이 가능할 수도 있다.

수업의 첫 단추는 <역사는 누구나 만들어 갈 수 있는 다양성을 내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고대사 부분에서 여러 사료 등을 통해 다양한 해석을 추구하면서 <역사를 사고>하는 교육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고대사에서 신화나 설화는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우리는 선덕여왕을 보면서 사극이 아니라 <판타지>라고 생각하면서 보게 된다. 극적 긴장감이나 탄탄한 스토리 전개를 위해 역사적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작가의 의도대로 줄거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의 관점이라면 실제 역사에서도 그런 것들이 가능하다. 고대사에 남겨진 단편적인 기록으로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전개하거나, 있을 법한 (개연성 있는) 재연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다른 역사적 사건을 바라볼 때, 비판적 읽기나 사료를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도 있다. (물론 선덕여왕의 미실궁주처럼 현대어를 쓰고, 21세기 인물의 성격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포스트모던적 교육이 기존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기록에 남겨진 역사적 사실들을 참고하여 그 시대상과 당시 인물들의 모습을 재창조하는 것이지, 모든 기록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단지, 포스트모던적으로 역사를 본다는 것은 그 과거 기록조차도 누군가의 의도 또는 목적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재해석해야할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특히, 일제시대 이래 현대사는 특정 역사관과 사관을 가진 이들이 사학계를 주름잡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과시하기 위해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는 <역사적 진리>을 만들어 왔고, 일제시대부터 특정 이념으로 살아온 이들은 그 이념에 맞게 <역사적 진리>을 구성해왔다.

현대사에서 포스트모던의 역사 교육은, 역사를 지배하고 기술한 이들의 목적과 방법, 내용까지를 비판하면서, 역사적 대상이 된 과거인의 입장과 역사를 서술하는 현대인의 입장을 고려해서 역사를 비판해야 한다.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공교육에서도 현대사 부분은 조심스럽게 간략히 원론적인 부분만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첨예하게 대립된 입장을 고려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으로 비판하는 역사 교육은 그런 부분들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교육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만약, 포스트모던적 역사 교육이 다른 외부적인 요인을 받지 않고 이루어진다면, 가장 좋은 교육 방안은 <교과서 창조>일 것이다.

먼저, 포스트모던적 이념을 가진 교사가 <진리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하나의 <교재>를 만들고, 다양한 역사적 내용들을 통해 학생들에게 비판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해준다.

학생들은 간단한 사료, 토론, 현장학습, 비디오 시청, 독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교재의 내용을 이해한 뒤 자신이 생각하는 역사를 직접 작성해고, 서로 토론한 뒤 그 내용으로 <교과서>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교과서>를 만들어보는 과정으로 역사적 지식의 생성과정을 알고, 스스로 역사적 지식과 흐름을 창조하는 것이다.

단, 이러한 포스트모던적 수업은 고대사부터 현대사를 일관적인 논리 구조로 풀어 설명하는 통사 수업에는 미흡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시대별, 주제별로 책정된 수업들을 전체적인 흐름으로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글은 가설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이 가능한 학교가 있다면 한번쯤 해보고 싶은 교육 방침이기도 하다. 물론 이론과 같지도 않을 것이도, 실패하고 고치고 할 부분도 많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시도해 볼 만한 일이 아닐까?

오늘 글은 포스트모던에 관련된 글들 중에서 가장 난잡한 글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문학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포스트모던의 역사 코드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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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