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대는 낙서 세계사 (7)
<테오도시우스>의 이루지 못한 제국의 꿈
1. 게르만의 이동과 몰락하는 로마 오늘 이야기는 테오도시우스에 관한 이야기야. 우린 이 인물에 통해 크리스트교가 로마의 상징인 <독수리>를 제압하게 되는 이야기를 하게 될 거야. 독수리는 전통신인 제우스의 상징이기도 했던거 알지? 이 이야기는 로마 제국의 전성기였던 기원후 2세기부터 시작하지. 역사에서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4세기 무렵>이라고들 이야기하지. 그런데, 그건 대이동을 말하는 것이고, 실제로 게르만 족의 일파가 로마 사회에 진출하려고 했던 건 2-3세기 부터야. 아참, 게르만의 이동은 알고 있지? 게르만족의 이동은 멀리 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한명으로 여겨지는 한나라의 <한무제>는 동아시아 전역을 중국의 지배권에 두려고 했어. 동으로는 고조선을 멸망시켜서 한사군을 설치했고, 남으로는 한서사군을 설치하는 등 지배 영역을 넓히고 있었지. 그런데, 한무제도 해결하지 못한 골치거리가 바로 북방의 <흉노>야. 흉노는 중국식 표현이고, 사실은 <훈>족이라고 부르는 민족이지. 원래 중국애들이 주변 민족을 낮춰 부르고, 자기네만 높여 부르는 <중화 사상>인지 뭔지가 강하잖아.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동이, 서융, 남만, 북적... 이런 말들이 다 오랑캐를 지칭하는 말이듯, 흉노(匈奴)는 한자 그대로 흉약한 노예같은 넘들이라고 중화인들이 지칭한 말이지. 뭐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한무제가 결국 훈족을 토벌했다는 사실이 중요해. 한나라에서 밀린 훈족은 중앙아시아로 진출해서 월지국을 공격했는데, 그 결과 인도에 생긴 왕조가 쿠샨 왕조야... 위 표의 빈칸 (1)에 쿠샨 왕조가 들어가면 되겠지? 남하하지 않고 서부로 계속 진출한 일부 훈족들은 동유럽과 북유럽에서 놀고 있던 게르만 민족들을 공격하게 돼. 훈족에 밀린 게르만 애들은 로마로 넘어와서 용병 생활을 하게 되지. 하지만, 훗날 게르만 족들이 로마 곳곳에 게르만 국가를 세워 버리면서 서쪽 로마는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되고, 거기에 훈족의 왕까지 서로마를 협박하게 되지... 여기까지가 교과서적인 설명이야. 그런데, 사실 4세기 이전에도 게르만의 이동은 있었어. 중국 진나라의 유명한 <진시황제> 알지? 그 양반도 골치아픈 흉노족이랑 열심히 싸우다가 만리장성까지 만들잖아. 그리고 게르만 애들도 뭐 꼭 훈족에게 밀려서 로마로 갈 필요는 없었겠지... 조금씩이지만 이미 로마 영내에 게르만 용병들이 존재했거든. 실제로, 게르만 족의 무서움을 로마가 뼈져리게 느낀 건 378년 동로마와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 족의 대 전투부터야. 378년...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은 서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훈족의 기마부대에 밀리다 밀리다 로마 제국의 국경까지 도망쳤어. 서고트인들은 울면서 로마 황제에게 애원을 했지. 게르만인 : 제발 도나우강을 건너게 통나무라도 던져주세요. 물에 뜨는 것들을 던져주세요.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학살당할 겁니다. 로마황제 : 내가 너희를 어떻게 믿냐? 모두 무기를 버리고, 아이들을 로마에 맡겨라. 그럼 국경을 건널 수 있게 해주마. 게르만인 : 정말이죠? 약속하신 겁니다. 모두 무장을 해제하고 도나우강을 건너자. 그런데, 서고트인들은 속은거야. 겨우겨우 로마 국경을 넘은 서고트인들을 로마는 학살해 버렸지. 늙은이는 죽이고, 젊은이는 노예로 만들었지. 어린 소녀들은 로마 귀족에게 팔려가고 말았어. 로마의 이민족 탄압은 로마 제국 내에 용병으로 있던 게르만족들을 자극하고 말았지. 서고트족의 난민들과 로마 제국내의 게르만 용병들, 또 노예로 팔려간 게르만인들까지 반로마 운동에 가담하면서 엄청난 전쟁으로 번진거야. 378년... 동로마 황제 발렌스의 로마부대와 게르만족의 부대는 엄청난 대 전투를 벌이게 되지. 그런데 말야. 이미 로마의 국경을 게르만 용병들에게 맡기며, 탱자탱자~ 놀면서 향락에 빠져있던 로마인들이 게르만 투사들을 이길 수가 없었어. 로마를 지탱하던 제국의 부대는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황제마저 죽어 버린 거야. 4세기... 바야흐로 게르만 용병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지. 이 때 죽은 황제를 대신해서 동로마 황제로 등극한 것이 바로 <테오도시우스>, 이 사람이야. 379년의 일이지. 2. 군인 황제의 탁월한 군인 정치 349년... 스페인에서 <테오도시우스>가 태어났지. 그의 아버지 <플라비우스>는 로마의 뛰어난 장군이었어. 일단 이름이 기니깐 대충 <테오>라고 부르자. 테오는 아버지를 따라 수많은 전장을 누비고 다녔어. 특히 374년 사르마티아족을 무찌를 때는 선두에 서기도 했지. 문제는, 아버지가 너무 뛰어난 장군이라는 점이야. 테오의 아버지는 로마의 귀족들의 질투와 시기 때문에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당했지. 이 사건으로 테오는 싸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처세술>이라는 점을 배웠을거야. 서고트족에게 동로마 황제가 죽자, 서로마의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테오를 동로마 황제로 임명했어. 게르만 부대를 제압하려면 테오같이 전장에서 뼈가 굵은 장군이 필요했던 거지.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민족들을 다스리기 위한 <처세술>이 그라티아누스보다 뛰어났다는 점이야. 그라티아누스 : 지금, 게르만족들 때문에 로마는 위기에 빠졌네. 자네를 동쪽 황제로 임명한다면,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는가? 테오 : 사치와 향략에 빠진 로마의 군대로서는 게르만족을 막을 수 없습니다. 로마군대와 튜튼족, 게르만족을 모두 군에 포함시키고 그들을 로마의 시민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라티아누스 : 로마인들은 게르만인들을 야만인이라고 하여 무시하네. 수많은 이민족들이 어떻게 로마인으로 융합될 수 있겠는가? 테오 : 일단, 게르만인을 <변방의 야만족>이라고 차별하는 로마인의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은 뛰어난 군인들입니다. 싸움보다는 협상을, 차별보다는 화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로마 시민이 되었을 때, 그들을 로마로 흡수할 수 있는 공통된 사상이 필요합니다. 그라티아누스 : 그것은 무엇인가? 테오 : 바로, 콘스탄티누스가 제국 통합을 위해 제시했던 <크리스트교>입니다. 바로 그거야. 군인 황제는 테오는 로마인과 튜튼족, 게르만인을 모두 동등한 군인으로 대우하면서, 그들에게 크리스트교를 통한 <로마시민 사상>을 강조하려고 한거야. 379년... 왕이 된 바로 그 해. 테오는 크리스찬들과의 관계를 해결하려고 했어. 하지만, 제우스교를 믿는 로마 군인들도 문제였고, 아리우스파, 아타나시우스파 등 다양한 크리스트교 교파 문제도 복잡했지. 380년. 테오도시우스는 아주 심한 병을 앓더니, 신의 도움으로 살아났다고 말하곤 <세례>를 받았어. 그리곤 <로마의 모든 백성은 크리스트교로 통합해야 한다>는 칙령을 발표해 버리지. 이것이 역사에서 유명한 <크리스트교의 국교화>야. 사실, 크리스트의 국교화와 가톨릭이란 말은 <콘스탄티누스>가 먼저일 수도 있어.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종교 공인>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고, 가톨릭이란 표현을 당대에 사용하지는 않았어. 후대인들이 <콘스탄티누스>가 가톨릭이란 말을 사용했다고 후대 문서에 남긴 것 뿐이지. 그래서 최초의 <국교화>, 최초의 <가톨릭>은 테오라고 말하곤 해. 381년. 테오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소집해서, 문서로 만들었던 <국교화>를 공식으로 선포해 버리지. 그리고, 로마 교황 다음으로,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 주교가 가톨릭 세계의 2인자라고 결정했어. 이제 서로마 동쪽의 교회는 모두 콘스탄티노플에서 해결하도록 조치를 취한 거야. 3. 크리스트교 수호 작전 383년. 제우스교를 숭배하는 막시무스가 서로마, 동로마 황제를 부정하면서 <정통 로마 군인> 시대로 돌아갈 것을 선언했어. 로마의 전통신인 제우스와 독수리를 상징으로 하는 반란군은, 로마 주변을 잠식하더니 서로마에 쳐들어갔지. 서로마의 어린 황제 발렌티니아누스는 동로마로 피신해서 테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 그러나, 테오는 서로마를 도울 수가 없었어. 로마군, 게르만군, 튜튼군 등을 통합해야 했기 때문에 대규모 전쟁에 나갈 시기가 아니였다고 판단한거야. 기독교 이념을 보급하고, 군을 하나의 사상으로 통일한 뒤, 388년.... 테오는 막시무스와 싸우기 위해 서로마로 향했어. 그리고 대승을 거두었지. 390년... 겨우 기독교 이념을 보급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하나의 큰 사건이 생겨. 그것은 역사에서 <테살로니카 폭동>이라고 불리는 사건이었지. 지난 번에 <빵과 서커스> 정책을 설명한 적이 있지? 그것 때문에 발생한 사건인데, 사건의 전말은 이런 거야. 게르만족들이 로마의 국경을 지키는 동안, 시민권을 얻어서 군대를 안 가게 된 로마인들은, 투기장에서 노예들의 싸움이나, 연극 등을 즐기고 놀았어. 저번에 이야기 했지? 3s 정책 말야.... 스포츠, 스크린, 섹스를 3대 산업으로 하는 거... 로마인1 : 야... 오늘 김나지움 밑에서 야한 연극이랑 스트립 쇼를 한데. 같이 보러 갈까? 로마인2 : 그것보다는 검투장에서 노예 경기를 보러가자. 요즘 스태리우스가 15명을 다 죽이고, 16연승에 도전하잖아. 진짜 멋지더라. 요즘 최고 스타는 그 넘이야. 로마인3 : 야... 소식 들었어? 요새 마차 운전으로 스타된 애 있잖아. 무지 멋있는 넘. 그넘이 범죄 용의자로 끌려갔대. 아니, 왜 영웅을 끌고간거야? 로마인1 : 뭐? 그럼 우리 이번주에 경기 못보는 거야? 무슨 낙으로 살라구? 이런 미친... 마차 경주의 기수가 끌려갔다는 소식에 대중들은 그를 석방하라고 폭동을 일으키고, 난리를 피웠어. 그런데, 이민족 출신인 총독이 단호하게 거부한거야. 하찮은 이민족 출신 따위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들의 요구를 거부하자, 로마인들은 이민족 관료들을 잡아다가 찢어죽였어. 테오는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먹었지. 테오가 원한건 이민족과 로마인이 같이 화합해서 살아가는 건강한 로마 제국이었거든. 인종 차별은 테오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구.... 테오는 크게 분노했어. 이민족 군대를 이끌고, 폭도들을 찾아간 테오는, 무차별 학살 명령을 내렸지. 로마인 1만 5천명이 끔찍한 학살을 당했어. 문제는 로마인을 학살한 테오를 교회가 비판한 거야. 주교 암브로시우스 : 어떻게, 로마인들을 끔찍하게 학살할 수가 있습니까? 폐하가 죄를 참회하기 전까지는 성당에 발도 들일 수 없습니다. 공의회는 폐화의 행동을 탄핵하고, 참회를 요구할 것입니다. 테오 : 그것은 모든 로마인들이 평등하기를 바란 내 소망의 표현이었네. 그것은 다 교회를 위한 일이었고. 그 참사로 억울하게 죽은 크리스찬이 있다면 내 사과하겠네. 주교 암브로시우스 : 아닙니다. 교회는 폐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반성하세요. 또 반성하세요. 그리고 이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칙령을 내리세요. 테오는 몇 달동안 계속 교회에 죄를 빌었어. 교회의 용서를 받아야만 로마인과 이민족이 같이 살수 있다는 이상을 실현할 수 있고, 크리스트교를 통해 제국을 재건한다는 꿈도 이룰 수 있었거든. 테오는 교회에게 반성문을 쓰고, 교회가 원하는 칙령까지 써 주었어. 교회는 황제를 이겼다는 기쁨에 <데 라우다무스>라는 찬미가까지 만들었지. 그래도 황제는 참고, 또 참았어. 참는 것만이 로마 제국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믿었거든. 이 사건은 크리스트교 공인 후, 교회와 황제권과의 최초의 싸움이었어. 황제가 참고 참으면서 교회를 얼르고 달랬거든... 392년. 테오는 아예 이교신 숭배를 전면 금지시켜 버렸지. 이제, 로마의 전통신들은 모두 역사에서 사라져야 했고, 소크라테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진 그리스 철학은 신학에 밀려 사라지게 된 거야. 하지만, 전통신을 믿는 장군들의 도전은 끊임없었지. 393년. 제우스신을 동경하는 전통주의자 아르보가스트가 반란을 일으키고, 서로마 황제를 죽여 버린 사건이 발생했지. 아르보가스트의 참모 유게니우스와 장군 니코마쿠스는 강력한 전통 군대를 이끌고 테오에게 도전했어. 아르보가스트는 번개창을 들고, 독수리를 날리는 제우스신의 동상을 전장에 늘어놓았지. 테오는 기독교의 순교자 성 요한네스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전쟁에 참여했어. 아르보가스트가 이교세력을 주축으로 한 군대라면, 테오의 군대는 서고트족과 반달족으로 이루어진 군대였어. 이 역사적인 전투에서 테오의 군대가 대승을 거두었지. 하지만, 이 큰 전투로 테오 역시 건강이 약화되어 죽고말았어. 테오는 모든 이민족들을 기독교로 통합해서 강대한 로마를 재건할 꿈을 꾸었어. 하지만, 그 꿈을 채 이루기 전에 죽은거야. 그는 죽어가면서도 훗날 로마가 이민족에 의해 분열될 생각을 하면서 슬퍼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 후손들은 테오의 꿈을 이해하고, 테오와 같이 노력했을까? 4. 이민족간의 전투 테오가 죽은 뒤 테오를 모시던 이민족들도 분열되었어. 반달족의 장군 스틸리코는 테오의 뜻을 받들어 모두가 힘을 합친 로마를 만들려고 했지. 스틸리코는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로마 집정관이 되었고, 테오의 꿈을 이루려고 했어. 반면, 서고트족의 장군 알라리크는 로마인들을 절대 믿지 못한다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어. 테오의 무덤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남긴 채... 로마의 귀족들은 <이민족>을 경멸했지. 감히, 반달족의 스틸리코가 집정관을 하다니... 반달족이 훗날 로마를 공격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돌았어. 그런데, 그 유언비어를 퍼뜨린 장본인은 테오의 아들로서 황제가 된 <호노리우스>였지. 결국 이민족 출신의 충신 스틸리코는 로마의 반역자라는 오명을 쓰고, 황제군에 의해서 참수 당했지. 스틸리코의 화합정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게르만 출신의 장군들은 갖은 죄명을 뒤집어쓰고 학살당했지. 반달족들은 로마에 협조한 죄로, 로마를 다민족국가로 만들려고 했다는 죄로 몰살당했지. 수만명의 게르만 용병들은 로마에서 탈출했고, 결국 로마의 적이 되어 버린 거야. 테오의 아들 <호노리우스>는 아버지의 꿈을 짓밟아 버렸어. 스틸리코가 죽은 뒤, 테오의 충신 중 한명이었던 알라리크 장군이 게르만족들을 모아 로마 제국에 쳐들어가지. 알라리크 역시 모든 민족을 융합해서 강력한 제국을 이루고자 했던 테오의 이상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지금의 로마는 썩어빠진 귀족들밖에 없었기에 멸망시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거야. 알라리크는 황제 호노리우스가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도시들을 박살내 버렸지. 하지만, 테오에 대한 충성심에서 <기독교> 지역만은 절대 건드리지 않고, 동맹으로 삼았어. 반면, 황제 호노리우스는 기독교가 나라를 망친 원흉이라고 생각해서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전통 로마신을 섬긴다고 자랑하고 다녔지. 알라리크는 테오를 생각해서 로마에게 협상을 요청했어. 전쟁으로 테오의 제국을 모두 불태워 버리기는 싫었는지, 로마의 황제에게 최대한 기회를 주었지. 그러나 황제 호노리우스는 이민족을 무시하는 발언만을 계속 보내왔어. 결국 서고트의 병사들은 로마를 박살내고, 시민들을 학살하였지.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지역은 기독교의 보호를 받는 지역 뿐.... 로마제국은 바로 망할 것 같았어. 그러나, 로마를 최후까지 지킨 여제가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테오의 딸 갈라 플라타키아였지. 갈라는 알라리크 장군의 동생인 아타울푸스와 결혼을 한 뒤, 로마와 게르만의 다민족 국가를 만들 이상을 같이 나누었어. 하지만, 아타울푸스는 갈라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전장에 나갔다가 죽고 말았지. 갈라는 테오의 이상을 잇기 위해 호노리우스가 죽은 뒤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돼. 그리고, 테오와 갈라의 꿈을 알았던 서고트족은 전대의 인연을 생각해서 갈라 플라타키아가 여제로 있던 서로마를 건들이지 않았어. 갈라 플라타키아는 로마 최후의 현명한 여제였지. 서로마 주변에서 이민족들이 수없이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갈라의 서로마는 전쟁 대신 재건 사업이 이루어졌어. 하지만, 이미 망해가는 로마에서 갈라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어. 단지, 살아있는 동안 로마제국을 유지하고 주변국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 뿐이었지. 그녀는 테오가 남긴 최후의 사업을 추진하게 되지. 바로, 기독교를 보호해야 한다는 테오의 유언을 실천에 옮기는 거야. 에페소스 공의회, 칼케돈 공의회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공의회를 열고, 기독교의 공의회를 보호하는 데 전력을 다했어. 그리고, 기독교의 정신을 후대에 보급할 수 있는 <교부>들을 키워냈지. 갈라가 여제로 있는 동안, 네스토리우스파 등 다양한 계파들이 정통파로 분류되거나, 또는 이단으로 분류되었고, 콘스탄티누스와 테오도시우스가 확립한 정통 교리가 갈라 시대에 완성되지. 이 시대를 역사에서 <초기 교부>의 시대라고 해. 그녀가 죽은 뒤 얼마 안되서 서로마는 망했어. 그러나 그녀는 테오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기독교를 수호했고, 게르만과 로마인이 함께 공존하는 이상 제국을 위해 헌신한 마지막 황제였지.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그녀의 기독교 보호 정책에서 언급된 <교부>가 누구인지,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해보자. 그리고, 교부와 동시대에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 히파티아의 불행한 최후를 통해 그리스 철학과 교부철학의 갈등관계를 짚어보려구 해. 오늘의 글은 기독교에 우호적으로 적었지만, 다음 글은 반대편 입장에서 쓸 수도 있을 거야. 비교해서 보는 게 더 재미있거든. 그럼 계속 달려볼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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