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고사여행

양상군자(梁上君子) : 대들보 위의 군자

1. 청의가 사라지고, 탁한 자들이 설치니...

때는 후한 말, 삼국지에 원소가 지방 호족으로 등장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이다.

당시 중국은 중앙과 지방이 모두 혼란한 시기였다. 중앙에서는 환관이 득세하여 왕권을 농락하고, 대의정치를 외치는 지식인들을 옥에 가두고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청의 운동>이라고 하여, 혼탁한 환관들을 모두 죽이고 깨끗한 정치를 외치곤 했지만, 환관들에 의해 제거 당하곤 했다.

지방에서는, 중앙과 별도로 세력을 가진 <호족>들이 등장하였다. 호족들 중에는 환관들을 척결하고 <한나라 왕실>을 지키자는 <청의파>들도 있었다. 반면, 원소나 조조와 같이 자신의 영지와 군사력을 통해 한나라 왕실에 무력을 보여줌으로서 세를 늘리려는 세력도 있었다.

세상이 흉악하니, 농민들은 살기가 힘들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었고, 전쟁이 나면 그나마 땅마저 황폐해질 뿐이었다. 화적이나 도적이란, 원래 <먹고 살기 힘든 농민> 들이 변심한 것이다. 즉, 도둑은 국가의 책임이지 않겠는가?

2. 양상군자(梁上君子) : 대들보 위의 군자

궁중에 환관들이 설쳐대고, 한나라는 점점 망해가고 있었다. 유학을 받드는 지식인들은 환관들에게 잡혀가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태구현의 <현령> 진식이라는 사람도, <청류파>들을 잡아죽이는 사건에 연루되어 잡혀갔다. 시절이 수상하니, 도망을 치면 되었지만, <내가 도망가면 나의 백성들은 누구를 기대어 살란 말인가?> 라고 말하며 기꺼이 잡혀간 사람이다. <양상군자>라는 고사 성어는 바로 이 진식에게서 비롯되었다.

진식이 다스리는 <태구현> 역시, 흉년과 전염병, 전쟁으로 백성들의 삶이 힘든 상황이었다. 진식이 어느 날 책을 읽고 있는데, 한 사나이가 몰래 그 방에 들어왔다가 슬그머니 대들보 위로 올라가서 숨었다.

진식은 도둑이 든 것을 알았지만, 그를 붙잡지 않고 모르는 척 했다. 그리고, 아들과 손주들을 불러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무릇 사람이라는 존재는 스스로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나쁜 사람들도 원래 본성이 그런 것이 아니다. 습관이 잘못되어 반복되면 자신도 모르게 옳지 못한 짓을 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지금 대들보(양상) 위에 있는 군자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진식의 말을 듣고 있던 도둑은 밑으로 뛰어내렸다. 상황을 파악한 도둑은 방바닥에 이마를 대고 엎드린 뒤 벌을 받으려고 하였다. 진식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자네의 모습과 얼굴을 보니 자네가 악인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군. 아마도 가난이 너무 심해서 견디기 힘들었고, 그래서 이런 짓을 한 것이겠지.

그리고는 비단 2필을 주어 돌려보냈다. 그 일이 알려진 후, 태구현에서는 더 이상 도둑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3. 양상군자는 비꼬는 말이 되어....

진식의 일화는 후한서 <진식전>에 나온다.

원래, 진식전에 나오는 <양상군자>는 <가난함에 어쩔 수 없이 지붕위에 떠밀려 올라간 도둑>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 뜻은 점차 바뀌게 된다.

후대의 유학자들은, 비열하게 남의 이목을 숨기면서 지붕위로 올라간 사람을 <양상군자>의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진식은 <군자>라는 말을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는 뜻으로 사용했지만, 후대인들은 <군자>라는 가면을 쓴 도둑놈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한 것이다. 또, 대들보 위에 몰래 오르는 동물을 <쥐>라고 생각해서, <쥐새끼 같은 놈>을 뜻하는 것으로 와전되어 오늘 날에 사용되기도 한다.

후한 말에 살았던 진식은 <도둑>이란, 국가가 백성을 지켜주지 못해서 백성이 국가를 <배신>한 존재로 생각했을 것이다. <가난>은 본인의 죄가 아니라, 혼란한 <국가>가 낳은 것이다.

21c 대한민국... 지금의 정부는 실업도 해결하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내지도 못하고 있으며, 북한과의 대립각만 세우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고통을 국민들에게 떠 넘기면서도, 국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마저 탄압하고, 심지어 <촛불>하나 들고 거리로 나오는 것 마저 두려워하고 있다.

진식은, 후한 말 <하진> 대장군이 높은 벼슬을 줄 터이니 중앙 정치에 나오라고 있지만, 자신의 마을을 지키며 묵묵히 살다가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국가의 지도자도 아니였고, 유명세를 탄 인물도 아니였지만, 그가 죽을 때 나라 안에서 그를 추모하고 제사 지내기를 희망했던 사람이 3만이 넘었다고 한다.

서구에서 예수가 태어날 무렵 활약했던 옛 관리가 가졌던 인식을, 21세기의 현 정부 지도자들은 생각지 못하는 것일까? 진정 존경받는 인물은 어떤 인물인가라는 사실을 과거에서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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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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