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박혁거세의 진한 육촌 사로국 설화

 

박혁거세 설화

진한 땅에 옛날에 6촌이 있었다. 전한의 지절 원년인 임자년 3월 초하루에 6부 시조들이 저마다 자제를 이끌고 알천 기슭 위에 모두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이 위에 군주가 없어 백성을 다스리려 하니 죄다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굴고 있소. 어찌 덕 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고 나라를 세워 도읍을 정하지 않을 수 있겠소?> 라고 하였다.

이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아래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내려오더니 백마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 보니 붉은 알이 하나 있고, 말은 사람을 보고 길게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알을 깨보니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 아이를 경이롭게 여겨 동천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기에 혁거세왕이라 이름하고 위호를 거슬감이라 하였다. 그 때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치하하며 <이제 천자가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있는 여군을 찾아 짝을 지어야 할 것이라>라고 말하였다.

이날에 사량리 알영정 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편 갈비에서 어린 여자아이 하나를 나으니 자태와 얼굴은 유달리 고왔으나 입술이 닭부리 같았다. 월성 북천에 데리고 가서 목욕시켰더니 부리가 빠져 떨어졌기에 그 내를 발천이라 하였다. 궁실을 남산 서쪽 기슭에 짓고 성스러운 두 아이를 받들어 길렀다. 남자는 알에서 태어났고, 또 알은 박처럼 생겼는데 이곳 사람들은 박을 박(朴)이라 하므로 성을 박(朴)이라 하였고, 여자아이는 태어난 우물 이름으로 지었다.

두 성인의 나이가 열세살이 되는 오봉 원년 갑자에 남자가 왕이 되매, 여자를 왕후로 삼고 국호를 서라벌이이나 서벌이라 하였다. 사리나 사로라 하였다고 하기도 한다. 또는 처음에 왕후가 계정에서 태어는 까닭에 계림국이라고 하였다고도 하니, 이것은 계룡이 상서로움을 나타내기 때문일 것이라. 일설에는 탈해왕 때 김알지를 얻을 때 닭이 숲 속에서 울었으므로 이에 국호를 계림으로 고쳤다고도 한다.   

- 삼국유사 기이편, 신라시조 혁거세왕 -

사료해석 : 나정 숲은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사적 제245호입니다.. 2000년 세계문화유적 등록되었습니다. 오래된 소나무 숲 속에 작은 정자가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자그마한 우물 하나와 기념비도 소나무와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설화를 간직한 숲입니다. 천 년 장대한 신라의 역사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죠.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기원전 69년 춘 삼월에 나정이란 곳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태어나자마자 동천이란 곳으로 옮겨져 씻겨집니다. 말하자면 세례를 받은 것이죠. 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도 태어나서 성스러운 물에 목욕함으로써 성인이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박혁거세가 백마가 난 알에서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백마가 하늘에서 운반해 온 알에서 태어난 것인지는 분명하기 않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박혁거세 즉위 5년(기원전 53년) 기사에 왕비인 알영부인의 탄생설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알영과 혁거세가 똑같은 날에 계룡의 왼쪽 겨드랑이 밑에서 태어났다고 한 반면, <삼국사기>에는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죠. 오른쪽과 왼쪽 겨드랑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김부식의 시기에는 우파(오른쪽 집단)세력이 강했고, 일연스님의 시기에는 좌파(왼쪽 집단)가 강해서 똑같은 사실을 좌우를 달리해 기록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알영이란 이름은 무슨 뜻일까요? 고대신라에서는 남자를 알노(閼老. 알치), 여자를 알영(閼英. 아로)이라고 했습니다. 알치에서의 ‘치’는 동냥치, 양아치, 그치, 저치 등에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고, 아로에서의 ‘로’는 남해왕의 여동생인 아로阿老, 남해왕의 왕비인 아루阿婁, 고구려의 소서노召西奴, 부분노扶芬奴 등에서 그 용례를 볼 수 있죠. 알閼은 ‘아리’의 한문식 표기이며, 아리란 우리 말은 ‘알’, ‘알짜’, ‘알통’, ‘처음’을 뜻합니다. 처음이고 알짜란 뜻의 ‘아리’에서 파생된 우리말로는 ‘아이’, ‘아씨’가 있습니다. 아씨는 원래 갓 태어나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동자(동자. 어린아이)를 뜻했다고 합니다. 이런 뜻에 비추어 보면 알영정이란 우물도 부락의 초입부에 있는 곳이었고, 여자들이 자주 물을 길렀던 곳으로 보입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알영을 서술성모西述聖母의 현신으로 봅니다. 서술성모는 쉽게 말해 마리아와 같이 동정으로 잉태할 수 있는 동양식 성처녀이지요. 알영의 이런 신화적 속성 때문에 문제가 좀 복잡해집니다. 즉 알영은 박혁거세의 아내이며 어머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아내와 어머니의 위상이 혼재되는 사회는 모계사회와 부계사회가 혼재되는 사회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런 과도기적 사회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결혼하는 모자혼, 아버지와 딸이 결혼하는 부녀혼, 형제 사이에 결혼하는 자매혼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알영을 박혁거세의 어머니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삼국유사>입니다. 삼국유사에서 계정은 계룡이 사는 우물이고, 그 계룡에서 알영이 태어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처음으로 왕이 되었다는 것이 증거입니다. <삼국유사>의 이 부분만을 보면 신라의 최초 왕은 박혁거세가 아니라 알영인데요, 이런 모순 때문에 어떤 학자는 초왕생어계정初王生於鷄井‘이란 구절에서 ’왕王‘자를 ’후后‘자의 오기로 보기까지 합니다. 즉 박혁거세가 계정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의 왕후인 알영이 태어났다는 것이죠.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박혁거세가 모두 나정 근처의 숲에 있던 알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일치합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신라의 최초의 건국시조인 박혁서세가 실은 알영이며, 그녀는 당시 모계사회의 여제사장이었을 것으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상 유일하게 여왕을 세 명이나 모셨던 신라이니,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단정지을 수만은 없습니다.

  알영이 태어났다는 계룡도 해석을 요하는 부분입니다. 계룡은 닭을 가리키는 계鷄와 용龍이 결합된 것이지, 닭처럼 생긴 이상한 용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죠. 동양의 설화에 등장하는 닭의 설화적 원형은 ‘세 발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三足烏입니다. 삼족오는 흔히 태양에 사는 새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태양을 숭배하는 북방계통에서 나오는 천손강림설화의 원형입니다. 북방계에서 새는 태양의 상징, 천신족의 상징이며, 천신족은 북방계 유목족을 가리킵니다. 천신족이 숭상하는 닭은 암흑과 귀신을 물리치고 광명과 상서로움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닭은 곧 새벽이요, 태양이다. 닭이 음양오행설과 결합하면 주작朱雀이 되어 남쪽의 수호신이 됩니다.

  용은 기본적으로 인도문화, 즉 남방문화의 상징입니다. 우리 문화에서 용의 원형은 거북(龜)이죠.  ‘구지가’나 ‘해가사’를 보면 거북이 당시 신라나 가야 등에서 얼마나 숭배를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거북은 남방문화가 강세를 띠면서 상상의 동물인 용으로 변화합니다. 용은 수신水神족과 농경족을 상징합니다.

  계룡을 그렇게 본다면, 알영이 탄생할 당시의 사회상을 어렴풋이나마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단군신화에서는 곰족과 호랑이족이 등장하고, 알영신화에서는 닭족과 거북족이 등장합니다. 단군신화에서는 곰족이 호랑이족보다 우세하여 곰녀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알영신화에서는 닭족보다 거북족의 힘이 더 셌다고 합니다. 그래서 닭은 열세이고 거북, 즉 용이 우세한 쪽으로 계룡족의 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알영에게는 남방계 농경사회의 모권적 요소와 북방계 유목사회의 부권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권적 요소가 강화되어 용이 닭을 대체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 이 해석은 옛날 어떤 책에서 내용을 노트에 옮긴 것인데, 지금 출처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생각나면 출처를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