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탈해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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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해석 : 석탈해 설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가락국기가 서로 다르며, 사료에 따라 세가지의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로 묘사됩니다.
1. 어업 세력으로서의 성격 : 탈해가 바닷길을 거쳐 신라로 들어왔고, 또 동해에서 어업으로 혁거세와 연결되어 있던 아진의선이 도와줘 중앙정계에 진출하였다는 내용입니다.
2. 야장(대장장이)로서의 성격 : 경주로 들어와 거짓 계략을 써서 호공의 집을 빼앗을 때 그의 선조가 대장장이라고 주장했다고 하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3. 무장으로서의 성격 : 탈해는 체구가 커서 천하의 역사로서 골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3가지를 종합하면, 탈해는 발달한 철제 무기와 도구를 배경으로 동해 일대에서 어업, 해상 세력을 장악한 무장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탈해는 남해왕의 딸과 결혼하였다는 것에서 그 세력과 연계했을 가능성도 크고, 이 사료를 토대로 신라에서는 해상 세력이 많은 권리를 누리며, 강성했음을 조심스럽게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탈해는 62세의 늦은 나이로 왕에 올라 24년을 왕에 있었으니 장수한 왕입니다. 이렇게 장기 집권한 왕이 유리이사금에 의해 왕이 되었기 때문에 유리 이사금의 아들에게 다시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것은 나이상으로도 약간 의문이 가지만, 또한 과연 이렇게 다른 성씨 세력끼리 평화로운 왕위계승이 가능했을까하는 의구심도 갖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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