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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백제의 박사제도 사료

 

백제의 박사 제도

(응신천왕) 15년 8월 무신삭(戊戌朔) 정묘(丁卯)에 백제의 왕이 아직기(阿直伎)를 보내어 좋은 말 2필을 바쳤다. 경(輕)의 산비탈 부근에 있는 마굿간에서 길렀는데, 아직기에게 사육을 맡도록 했다. ... 아직기가 또한 경전을 잘 읽으므로 태자 토도추랑자(?道椎郞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 때 천황이 아직기에게 묻기를 "혹시 너보다 뛰어난 박사가 또 있느냐"라 하니 대답하기를 "왕인(王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매우 뛰어납니다"라 하였다. … 16년 2월에 왕인이 와서 태자 토도추랑자의 스승이 되었는데, 모든 전적(典籍)을 왕인에게서 배워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른바 왕인은 서수등(書首等)의 시조이다.

- 니혼쇼키 권 10, 응신천황 15, 16년-

백제는 … 오경박사(五經博士) 단양이(段楊爾)를 보냈다.

- 니혼쇼키 권 17, 계체천왕 7년 6월-

명오경박사 고안무(高安茂)를 바치고 박사 단양이를 대신하려고 청하였다.

- 니혼쇼키 권 17, 계체천황 10년 9월 -

고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백제는나라를 세운 이래 문자로 일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 때 박사 고흥을 얻어 <서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고흥은 다른 책에는 언급된 적이 없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삼국사기 권 24, 백제본기, 근초고왕 30년 -


사료해석 : 교육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백제의 학문과 교육수준은 고구려의 것과 비슷할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는 있겠지요.

백제의 박사제도는 구체적인 사료가 없는 관계로 주로 일본에 파견되어 일본인에 문물전파를 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료가 남아있습니다. 5세기 초에 아직기와 왕인 등이 진출하였고, 6세기에 오경박사 단양이와 고안무 등이 있다는 정도입니다. 이러한 왜에 백제인을 파견한 것은 일본인을 교화하여 백제인의 세력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삼았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습니다.

근초고왕대 역사서로 서기를 편찬한 것에 나오는 박사 고흥 등을 단편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구체적 기록은 없어서 백제의 박사제도는 활성화되었지만 구체적인 활동을 잘 알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