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 3세의 부인인데, 표트르 3세(1761~1762)는 제위기간이 짧았습니다. 표트를 3세가 추구하였던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무언가가 많은 지배층의 불만을 가져오게 되었고, 결국 표트르 3세는 러시아 장교 그룹에 의해 살해당하였습니다. 또 에카테리나 2세도 남편에 대항하여 직접 음모를 꾸몄다고 합니다.
에케테리나 2세는 남편의 죽음으로 왕위에 올랐는데, 그녀는 표트르 1세와 같은 강력한 러시아를 꿈꾸는 여제였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던 그녀는 마키아벨리즘에 감탄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녀는 장서 12권의 전집을 낼 정도로 글을 좋아했는데, 초기에 그녀는 디드로, 달랑베르, 볼테르 등 계몽사상가들을 후원하기도 하였다고 하니 계몽군주를 꿈꾸었는 듯 싶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왕을 죽이는 사건을 보고는 계몽사상은 금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지지자들에게 막대한 국유지를 하사였습니다. 따라서 지주들은 여제를 몹시 좋아하였습니다. 이것을 여제는 시스템으로 만들어 운영하였는데, 즉 귀족은 군사적인 봉사를 여제에게 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었고 의무적으로 문무관직을 가져야 했습니다. 반면 관직은 귀족들도 원하는 것이었고, 특히 이러한 봉사의 대가로 막대한 토지를 하사하는 제도입니다. 요약하자면, 러시아의 전제군주정은 막대한 토지를 하사받은 귀족계층에 의해서 운영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그녀는 농노제는 계속 강화하였습니다. 국유지를 귀족에게 주면서 반면 농노가 증가하였죠. 귀족은 병역과 세금이 면제되면서 농노는 힘들어지고 영주권은 절대적인 권한이 되어갑니다. 즉, 지배층인 귀족과 민중과는 엄청난 간격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적인 모순으로 대두하면서 <푸가초프의 대반란>이라는 사건을 초래하게 됩니다.
여제는 또 통일법전을 만들고, 교육을 보급하였으며, 병원과 고아원을 설립하는 등 러시아 발전을 위한 일이라 생각되는 새로운 일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여제의 업적 중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전통적 확장 정책을 계승하고, 그것을 더 강화하였다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동서남북으로 확장정책을 실시하였는데, 17세기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우랄산맥을 넘어 흑룡강까지 영토를 확장하다가 청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에카테리나는 이에 방향을 약간 돌려 캄차카 반도와 알레스카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또 유럽으로 진출을 추진하여 폴란드 분할을하게 됩니다. 폴란드 1차 분할은 에카테리나 여제가 프로이센(프리드리히 대왕), 오스트리아(마리아 테레지아)와 조약을 맺고 나눈 것입니다. 과거 폴란드에 대한 복수였지만, 이 때부터 폴란드는 끝없이 오랜 시달림을 받게 됩니다.
남하정책으로는 투르크와의 계속된 전쟁을 들 수 있는데, 1차 러투전쟁(1774)으로 여제는 흑해연안일대와 크리미아 일부를 획득하는 쿠츄크 카이나르지 조약을 맺습니다. 2차 러투전쟁(1791)에는 크리미아 종주권을 확보하고 흑해북부의 투르크령을 병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