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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청동기의 사용과 한반도의 변화상을 알아봅시다.

청동기의 사용과 사회의 변화상을 알아보자.

1. 청동기 시대의 특징

청동기 시대는 금속을 도구로 사용한 최초의 시기입니다. 금속을 사용하면서 달라진 점은 이 당시가 잉여생산이 일어난 시기라는 점입니다. 즉,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잉여생산이 발생하였고, 남는 생산력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 있는 계급을 발생시켰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생산에서 제외된 이들은 본격적으로 전쟁을 통한 정복사업에 들어갔고, 정복사업은 결국 지배층(군장, 족장층)과 피지배층(노예, 노비)계급의 분화를 촉진시키게됩니다.

우리는 보통 계층, 계급, 신분 등의 용어를 역사속에서 혼돈해서 씁니다. 청동기 시대는 계급사회입니다. 계급사회란, 생산수단을 가진 지배집단과 그렇지 못한 피지배집단을 나누는 용어로 마르크스 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계층이란 베버가 사용한 용어인데, 자신의 특정한 기준에 맞추어 다양한 집단을 임의적으로 나눌 때 쓰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보통 역사에서 계급을 나눌 때, 귀족, 평민, 노비 등을 일반적인 계층으로 나누기 때문에 그냥 지배계층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신분은 그 사회에서 그 계층이 갖는 지위를 뜻합니다. 신분은 노력으로 얻는 성취지위보다는 일반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얻는 귀속지위인 경우가 많습니다.

청동기 사회에서는 청동이라는 금속을 가지고 전쟁에 승리하여 노비를 획득하거나, 잉여생산을 많이 확보한 자가 지배계급(지배계층)이 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청동기는 기원전 3700년경에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발견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0세기 경 정도를 청동기라고 봅니다.

문제는 청동이라는 금속은 아연,구리,주석 등을 합금해야 했고,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청동은 강력한 힘을 가진 지배집단위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즉 전쟁과 제사 정도에만 청동이 사용되었고 일반민은 나무, 간석기 등으로 농사를 지었죠. 청동기 시대 가장 유명한 농기구인 반달돌칼도 석기입니다.

당시 농법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고랑, 이랑을 파서 농사를 짓는 방법이 있었다는 것만 봐도 밭의 지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또 탄화미의 발견으로 이 당시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도 있구요. 이러한 농법의 발달 속에서 사회분화와 진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2. 우리나라의 청동기

우리나라의 청동기는 시베리아 계통의 북방계 청동기가 먼저 들어왔습니다. 이 시베리아 계통의 청동기는 중국계 청동기도, 몽골계 청동기도 아닙니다. 유럽과 유라시아, 시베리아를 걸쳐 북쪽에서 청동기가 전파되었음이 유물로서 확인됩니다. 이러한 한국 청동기 문화의 특징은 민무늬 토기 문화와 함께 전파되었고, 또 고인돌(지석묘)가 많이 분포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강화도, 전라도 고창 등등에 분포하는 남방식 고인돌은 전 세계 고인돌의 60%에 육박할 정도로 많이 분포한답니다.

청동기의 사용은 곧 계급사회와 국가의 출현(고조선)을 예고합니다. 보통 교과서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기를 고대로 봅니다. 율령반포, 불교수용 등을 그 근거로 하죠. 그러나 최근에는 고조선 시대를 원시시대가 끝난 고대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파형동검, 세형동검 등을 통한 정복전쟁이 활발하였고, 천신에 대한 제사 등을 지냈다는 점에서 불교문화에 버금가는 문화가 있었으며, 삼국시대에 떨어지지 않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수립되었기 때문이죠.

어느 설이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꼭 유럽식 기준으로 고대를 바라보아서 삼국시대가 고대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대구분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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