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단일민족은 무엇이며, 우리는 단일민족인가?

우리는 단일 민족인가?

1. 단일 민족이 뭐야?

한민족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단일민족이다.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

이 말에 대해서 혹시 의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우리가 모두 단군의 후예라고 주장한 사료는 <제왕운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삼한 70여 소국도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주장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의심하곤 한다. 뭐야? 수백번의 외침을 당해 서로간의 민족이 섞였을텐데... 고대에는 국가 경계가 없어서 민족간 이동이 많았을텐데... 고대인들 스스로가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 등등 의심은 끝이 없다. 또 한국성 중에서는 중국성씨도 많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체 유일한 단일민족이라는 대책없는 자부심의 근원은 무엇인가?

일단 우리가 말하는 민족의 개념부터 보자. 민족이라는 개념은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적 자료들을 살펴보면 특정한 학자 몇몇을 빼고는 별로 찾아볼 수 없는 단어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국가라는 단위를 지역공동체의 핵심으로 간주해왔다. 신라인, 고구려인, 백제인은 있었어도 당시에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서 삼한일통을 해야하고, 우리는 적이 아니라 동지라는 의식을 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고려도 국가단위로 역사를 서술하였고, 조선도 역시 그러하였다. 조선시대 몇몇 실학자들은 발해를 민족국가로 보기도 하고, 단군조선에 대한 세세한 책을 편찬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민족이라는 단위에 대한 심오한 고찰이라기 보다는 당시 그 시대의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이승휴가 제왕운기에서 단군을 논한 것은 몽고가 침략한 국가적 위기 상황이었고, 동명왕편 역시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발행되었다. 실학자들이 북방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역문제를 논한 것도 <청>이라는 여진국가가 등장하면서부터 국가의 정체성과 사대외교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과 연관이 깊다.

민족을 단지 생물학적으로 파악한다면, 전 세계에 단일민족은 없다. 우리 나라의 민족구성도 북방계인 몽골계통과 남방계로 나뉜다. 남방계는 눈썹이 진하고, 썽꺼풀이 있는 큰 눈에 오똑한 콧날과 뚜렷한 입술 윤곽을 특징으로 한다. 북방계통은 그 반대인 경우이다. 우리 민족은 북방계가 80%정도라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단일민족임을 주장하면 전 세계가 웃을 것이다.

2. 그런데 왜 단일 민족이야?

문제는 단일민족이라는 관점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일민족은 역사학적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즉, 우리 민족이 중국, 일본과 다른 독립된 민족이라고 생각하기 시작된 때가 언제인가를 기점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청동기 시대부터 역사적 단위를 형성하였고,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주변국가와는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그리고 주변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이 점은 모든 역사적 기원은 고대 로마로부터 나오며, 로마는 고대의 호수이자, 중세의 바탕점이다라고 보는 유럽의 시각과는 다르다. 유럽에서 영국사, 프랑스사, 독일사, 이탈리아사는 모두 따지고 올라가면 노르만, 게르만, 로마시대로 연결되어 뿌리가 좁혀진다. 즉, 그들에게 국가단위의 근대국가시기는 있어도 민족단위의 역사적 기점은 찾아보기가 애매한다. 어찌보던 중세이전의 그들은 역사를 공유한다고 보아도 된다. 그들 각국의 고대사는 로마사이며, 중세사는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나오며, 근대사는 서로 결혼으로 연결된 왕조들끼리의 결합속에서 이루어지니까...

우리는 이미 청동기 시대 이후 중국, 일본 등 주변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인도중심의 동남아사나, 이슬람 중심의 서아시아사와도 다르다. 우리는 중국에 종속되어 중국의 아류라 스스로 인식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인식은 분명해진다. 즉, 우리 나름대로의 동질적 집단을 구성하고 독자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독립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족의식이다. 우리는 성씨가 중국성이던, 지방에서 올라왔던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민족은 생물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단일 민족으로서의 역사

단순한 역사기록으로 살펴보자. 통일신라는 통일을 이루고 나서 <일통삼한>이라는 의식을 분명히 하였다. 즉, 뿌리가 같은 삼한 민족을 영광스럽게도 신라가 통일하였다는 뜻이다. 물론 신라에서 이런 의식은 아직 미약하다. 이 일통삼한의식은 고려로 가면 보다 명확해진다. 제왕운기는 단군에서 비릇된 우리 민족의 유구성은 <삼한 70여국이 모두 단군의 후손>임을 명백히 강조한다. 고조선 전통이 이후 <한>을 계승하였다는 의식은 <대한제국>, <대한민국>이라는 칭호까지 내려오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칭호는 개인적으로 별로 맘에 안들지만... 느려빠진 애국가라서 정말 맘에 안들지만, 우리 국가는 민족단결을 호소하는 애국가이다. 동해물이랑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보호하고 애국하라는 뜻이니... 프랑스처럼 혁명가를 쓰는 것도 아니고, 네덜란드처럼 역사책을 통채로 읊는 노래도 아니다.

이러한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을 우리는 스스로 가지고 있었기에 수많은 외침을 물리쳤다. 여진, 거란 등 북방민족들이 강력한 전성기를 누리다가도 망한것도 비교해 볼때, 고대와 중세의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침과 위기는 있었으나 국가와 민족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의 단일민족이라는 생각 속에서 독자적 문화와 역사를 지켜온 자존심이 만든 결과이다. 몽골침입 때도, 임진왜란 때도 스스로의 터전을 지켜 싸워온 것은 백성들이다. 물론 그들이 신분제 사회에서 지배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민족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싸운 것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임진왜란 때 노비들은 일본군과의 싸움보다 노비문서를 불지르고 해방되는 일에 더 열중했으니까... 중요한 것은 농경사회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고, 생존을 위해서는 같은 공동체 집단이 뭉쳐야 한다는 것을 정말 오랜 시간동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보통 이러한 단일 민족에 대한 주장은 지나친 민족주의의 폐혜라고 보는 입장에서 보면 반박당하기 쉽다. 단일민족이라는 주장은 보수적이고,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세계화에 역류할 수도 있는 주장이니까. 하지만 그러한 반박 역시 서구적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서구에서는 민족주의의 주장하면 보수적이라고 오해를 받는다. 나치당이 순수한 아리아인의 혈통만 지구상에 남기고 유태인을 말살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히틀러의 모순이다. 유럽 역사에서 로마인 이래 순수한 민족은 없으니까... 라틴, 게르만, 노르만, 마자르, 회교도 등등 민족적 구성이 다양하지 않은 나라가 서유럽에는 없다. 역사 자체가 치열했으니까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서구적인 사회도, 역사적으로 민족적 구성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도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절실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실제, 민족이라는 개념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것도 일제시대 무렵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이었다.

4. 한국의 민족주의의 특수성은?

한국 민족주의의 특수성을 말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식민지배>속에서 민족개념이 형성된 것이라고 하겠다. 솔직히 전 근대사회는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이 되지 않는다. 민족이라는 개념도 국가 안에서 이루어지며, 단군의 후예라던가 하는 개념들은 구성원들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였다. 왜냐면 현실적으로 전근대 사회에는 신분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비들은 양반과의 관계가 중요하며, 중인들은 신분상승이 중요했던 것이지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느끼고 자부심을 갖기에는 현실이 너무 뒷받침되지 못한다. 같은 백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면 사라지고 민란, 반란, 반역 등 현실적인 문제가 더 대두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민족주의는 신분제가 철폐된 갑오개혁이후 표면적,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일제 강점기에 현실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절대 독립을 주장한 신채호에 의해서 <민중>이라는 개념과 국가를 무시한 민중들의 <무정부주의>라는 개념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하며, <의열단> 등을 통해 실제 민족적 활동이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거친다. 역사적으로 민족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 위해 낭가사상 등을 체계화 시키려고도 하였다. 박은식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수많은 위인전을 저술하고, 혼사상을 체계화한다. 신민족주의 학자인 안재홍, 정인보 등은 조선학 운동을 통해 민족의 해야할 바를 규정하려고 하였고, 민족정기, 얼사상, 심사상 등의 이론체계가 심화화기 시작한다.

즉, 한국의 민족주의는 서구열강에 점령당한 일본에게 우리가 재정복 당했다는 수치심에서 시작되어, 민족적 기운을 다시 잡아 절대독립을 추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성립된 정당한 것이다. 그것은 보수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것이었다. 또 일제 시대 민족운동은 편협한 우리 것을 찾는 운동이 아니라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 한국사의 특수성은 과연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운동이었다.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한국의 민족운동은 수많은 시련을 겪는다. 제국주의적인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일본이 주장한 자치론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유럽의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을 필연적으로 여기면서도, 우리의 전통사상은 지켜내려는 노력은 민족운동의 주 흐름이었다.

5. 지금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지금 한국사회는 다시 한번 <민족>이라는 개념을 앞에 두고 표류하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한국사를 왜곡하려 하고 있고, 고대사체계를 중국중심의 체계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화사상의 <민족>개념은 민족을 넘어 정치적 논리에서까지 진행되고 있다. 중극은 아시아의 중심에서서 미국과 같은 위치를 확보하려는 것이 사실 동북공정의 최종 목적이다. 반대로 일본의 자민당은 철저하게 친미 방향으로 선회하여 미국과의 공조를 통한 아시아에서의 역할 확보를 추구하고 있다. 6자 회담에서 중국과 일본은 자국의 입장을 철저히 옹호하면서 논리를 펼 것이다.

우리 사회는 내적으로 민족의 자존을 추구하는 민족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외적으로는 당당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미국에게는 끌려다닌다. 세계화를 추구하는 시기에 FTA는 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내적으로는 의견일치조차 보지 못한 상태이다.

지금 이순간의 한국사회는 갈등 속에 서있다. 과연 세계화 된 사회 속에서 한국이라는 국가중심의 사상을 가지고, 철저한 실리를 추구하면서 미래를 이끌어 갈 것인가? 아니면 국가중심사상보다 민족중심사상으로 주변국에 대응하면서 민족적 자긍심과 한국사회만의 독특한 조화을 통해 다원화된 사회에 적응해나갈 것인가?

민족주의 논의는 과거만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며,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난제인 것이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