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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오리엔트의 통일 국가들 - 아시리아, 페르시아, 파르티아의 특징

오리엔트 문명이 드디어 통일되다.

1. 아시리아의 통일

길고 긴 오리엔트의 분립과 분열은 아시라아에 의해 최초로 통일됩니다. 때는 기원전 12세기였죠. 아시라아가 오리엔트를 통일한 원인을 찾으라면,

첫째는, 동서 무역의 요충지인 서아시아 지역에서 중계무역에 충실했기 때문에 탄탄한 경제력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지역 자체가 동서양을 연결하는 요지이므로, 이 지역의 모든 통일국가가 탄탄한 경제력은 다 기본이었기에 이 부분은 별로 부각되지 않습니다.

둘째 이유는, 철제무기를 가장 잘 활용하였다는 점이죠. 히타이트가 오리엔트에서 처음으로 철제 무기를 사용한 이후, 많은 국가들이 철제 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시리아는 철제 무기의 성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기마전술을 활용하였습니다. 철제무기를 든 중무장한 기마병의 등장은 이 당시 사회에서 공포의 대상이었겠네요. 주몽에서도 보면 철제 기마병이 나오기는 하던데, 사실 그건 허구입니다. 당시 한나라에는 철제무기로 무장한 기마병은 없었으니까요. 있었으면, 흉노 기마병 때문에 한무제가 그렇게 골치아프지 않았겠죠. 다 쓸어 버리면 되니깐....

암튼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아시리아는 건국하자마자 얼마 안가서 망합니다. 그 이유는 철제 무기를 통하여 피지배민족들을 가혹하게 통치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아시리아는 미탄니에서 철기를 배운 뒤 독립한 작은 국가였는데, 정복국가로 발전하면서 피지배민족이 자신들의 민족보다 많아진 것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전체 오리엔트 통일이 너무나 빨랐다는 것에 놀랐을 정도이니까요. 그들은 오로지 때리고, 죽이는 가혹한 정치로 정복당한 민족들을 학대하였습니다. 결국 아시리아는 메디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 이집트로 분열되었고, 이렇게 4국으로 분열된 이후에는 신바빌로니아가 오리엔트를 주도하며 어느 정도의 세력 균형을 맞추어 갑니다.

2. 페르시아의 재통일

아시리아가 망한 뒤 다시 오리엔트를 통일한 것은 그 유명한 페르시아입니다. 페르시아는 꽤 오래 가며, 훗날에도 같은 왕조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 때 통일한 페르시아를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라고 부르며, 왕조명을 붙여줍니다.

페르시아의 특징은 아시라아와는 달리 통일에 대하여 준비된 정책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정책을 한국사검정시험에서 답으로 물어본다면 아마 <관대한 통치>라고 하면 될 것 같네요. 페르시아는 그리스 지역의 에게해에서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의 인더스강유역까지를 영역으로 확장한 거대한 통일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민족간의 분쟁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피지배민족의 전통과 신앙을 최대한 존중해주었습니다. 또 고대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페니키아의 카르타고 지역의 무역도 보장해 주면서 무력이 아닌 세금을 징수하는 정책으로 피지배 민족을 다스립니다.

특히 유명한 다리우스 1세는 통일 후 강력한 아시아적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합니다. 군현제도 정비, 도로역전제 정비, 감찰관의 파견, 세금제도 정비, 화폐제도 개혁 등의 업적은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진시황제의 정책과 거의 흡사합니다. 단, 진시황제와 같은 법가적 무력통치가 아닌 관대한 통치라는 점만 다르네요. 다리우스 1세는 유대인을 해방시키고, 상업발달과 무역 및 외교를 장려합니다. 진시황제가 분서갱유로 유학자들을 다 때려죽인 것과 반대로, 다리우스 1세는 모든 종교의 화합과 단결을 주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한편, 관대한 통치 속에서도 제국의 단합을 위하여 국민적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정비하였습니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이원론적 종교라는 특징을 갖습니다. 불을 숭배한다는 의미에서는 배화교라고도 하죠.

용어를 좀 설명하자면, 고대 사회에서 유일신 여호와를 믿는 헤브라이, 유대, 이스라엘은 <일신교적> 종교라고 합니다. 신이 1명이기 때문이지요.

다양한 신을 가진 수메르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다양한 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신들의 성격이 선함 1가지로 규정되어 있어서 <다신교>이면서도 <일원론적> 종교라고 합니다. 일원론적 종교란 선한 신이 세상을 통치한다는 단순한 관념을 가진 종교적 신을 말합니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의 신은 하나의 신이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가진 <이원론적> 종교입니다. 이 종교는 조로아스터가 세상을 지배하는 신을 2명으로 규정하였는데, 어둠의 신이자 악신은 아리만이고, 그와 싸워 세상을 구원하려고 준비하는 신은 아후라마즈다입니다.

이 종교는 선과 악이라는 뚜렷한 문학적 대립구조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기가 쉽습니다. 또, 동서 요충지라는 점에서도 전파하기가 쉽습니다. 이 종교는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의 선, 악 사상에 모두 영향을 주는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또 마니교 역시 이 종교가 동방문화와 융합되면서 탄생하며, 힌두교와 융합하면서는 시크교의 교리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줍니다.

이러한 페르시아의 몰락은 그리스 세계와의 치열한 전쟁이었던 페르시아 전쟁에 패하면서 서서히 시작됩니다. 결국, 그리스 세계를 통일하고 동방진출을 하던 알렉산더 제국에 망하게 되죠.

3. 이 지역은 너무나 개방적이였다.

페르시아가 망한 뒤 역사를 쭈욱 살펴보면 이 지역의 역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설명하기 너무 벅찰 정도로 어지럽습니다. 동서 요충지인데다가, 개방형 평야지역이므로, 이민족의 침입이 너무 쉽죠. 인도문화가 수도 없이 유입되고, 유럽에서는 쉴틈없이 쳐들어오는 지역입니다.

수많은 나라가 많지만 이 지역에서 그나마 가장 강한 나라들로 역사를 잡아보겠습니다.

오리엔트 문명 - 아시리아의 통일 - 페르시아의 통일 - 헬레니즘(알렉산더) - 로마제국의 지배 - 파르티아 - 사산조 페르시아 - 이슬람의 점령(헤지라) - 셀주크투르크의 시대(십자군 전쟁) - 몽고제국(일한국) - 오스만투르크 - 터키

..... 대충 중심 국가들로 역사를 잡아도 이렇습니다. 정신없지요? 너무 이민족 국가의 침입이 많아 역사가 하나의 줄거리로 잡히지 않는 지역이죠. 그래도 전통 국가인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는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나머지 국가는 각각 그 지역 역사를 하면서 공부하셔도 될 듯 하니까요. 국가만 수십개인데.... ㅋㅋㅋ

4.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

이 지역은 전술했듯이 동서무역의 요충지라서 동서문화가 쉴틈없이 섞이고, 나뉘어지는 곳입니다. 하지만, 동서무역의 요충지라는 건 상업적 마인드만 있는 국가라면 언제든지 팍~~ 발전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는 이런 이점을 최대한 이용한 국가입니다. 이들은 페르시아의 전통과 헬레니즘(동서문화의 융합)의 장점을 잘 살려서 동서문화를 나름대로 조합하였고, 그 조합된 문화를 동서로 다시 재전파하면서 가장 선진적인 문화 강국이 되었던 국가들입니다.

일단, 여기서 아셔야 할 것은 전에 오리엔트를 통일했던 페르시아가 이란계 계통이라는 점입니다. 이슬람(아랍계)이 본격적으로 서아시아에 들어온 것은 마호메트가 활동하던 시기인 헤지라(632) 사건 정도에나 가능한 일이니, 그 이전의 통일국가들은 대부분 이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파르티아는 이란계 유목민족이 세운 국가인데, 이 국가의 특징은 중국의 한나라와 로마제국의 사이에서 중계무역으로 큰 이득을 챙기던 국가라는 점입니다. 중국 한나라가 흉노족이 이 지역에서 비단을 싸게 파는 것을 보고, 흉노족을 견제하기 위해 비단길까지 개척하여 이 지역에 왕래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그런데 파르티아의 특징은 동서문화의 요충지 답게 문화도 그리스 문화와 이란 문화를 동시에 존중하였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반면, 사산조 페르시아는 국가 명칭에서부터 과거 오리엔트를 통일한 페르시아의 성격을 닮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페르시아의 전통으로 완전 복귀하여 민족적인 조로아스터교를 국교화하였습니다. 이들은 그리스신이나 이교도들 보다는 민족적인 것을 수호하려교 노력하였지요. 그러나, 이들도 중계무역을 하면서 동서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불교, 크리스트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조로아스터교가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고, 그 결과 동서종교를 조로아스터 입장에서 융합한 마니교라는 종교가 탄생하였습니다.

파르티아와 페르시아는 결국 귀족적이면서도, 국제적이고, 화려하면서도 동서융합적인 성격을 가진 국가였습니다. 이들은 국제적이면서도 화려한 예술 속에서 동서 문화의 융합을 시도하였고, 그 시도는 동방과 서양에 큰 영양을 주게 됩니다. 예로 마니교가 동양, 서양에서 다 같이 숭배되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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