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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로마인 이야기 2 - 로마, 평민들은 끝없이 성장하고, 끊임없이 요구하다.

로마, 평민들은 끝없이 성장하고, 끊임없이 요구하다.

1. 평민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이탈리아 반도가 통일되다.

초기 로마에서는 귀족이 중심이 된 귀족정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로마라는 국가가 확대되어 이탈리아 전역에 영향력을 뿌리내리는 국가로 변하면서 로마 국가의 성격은 달라지게 됩니다. 즉,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평민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빈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로마 귀족들은 평민들에게 더 많은 권리를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귀족들은 평민들에게 최소한의 권리만을 내주려고 하였지만, 로마의 평민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확대된 권리들을 계속 요구합니다. 이렇게 귀족과 평민간에는 권력을 어느 정도까지 주어야 하는 가의 문제가 로마 사회에 대두하게 되었고, 이 속에서 평민들은 계속 성장해 나갔습니다. 평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귀족들과 끊임없이 항쟁하여 수많은 권리를 찾을 무렵, 로마는 이미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할 정도의 큰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평민의 권리 성장과 전투참여는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과정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그럼 평민들의 성장과정을 여러 각도에서 한 번 볼까요?

2. 법의 정비로 본 로마 평민의 발전

로마의 평민들은 자영농을 중심으로 하여 군대 참여나 무역 등으로 점차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귀족들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 전쟁을 치루는 동안, 정복지를 땅이 없는 무산자들에게 분배하는 정책으로 평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기 때문에 자영농민들은 더욱 성장할 수 밖에 없었죠. 이렇게 평민들이 전쟁을 통해 토지를 얻어가면서, 평민들은 자신들의 근거지와 시민생활을 군제개편과 맞물려 구성하게 됩니다. 로마에서 평민이 중심이 된 민회를 보면, 시민회가 군사단위로 편제된 병사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이따가 설명할께요.

먼저, 평민의 성장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성산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평민들이 귀족들에게 대항하여 전쟁참여를 거부한 사건한 사건이죠. 평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자신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민회를 달라며 귀족들에게 항의합니다. 전쟁을 앞두고 시민들이 귀족들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권리를 추구한 이 <평민분리운동>은 결국 귀족들이 평민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게 되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제, 평민들은 자신들의 시민회인 <트리부스회>라는 것을 만들 권리를 얻었고, 이 트리부스회에서는 평민의 대표인 <호민관>을 선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민관은 로마 원로원이 결정한 사항에 대하여 <거부권과 간섭권>을 갖는 평민 최고의 자리입니다.

호민관은 집정관과 유사하게 운영됩니다. 임기는 1년이고, 2명의 합의제로 운영되며, 호민관의 신체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입니다. 이들은 평민회에서 선출되며, 평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을 주임무로 합니다. 결정적으로 정무관과 원로원의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가집니다.

이제, 평민들은 정치에 직접 참여하기 위하여, 귀족들이 관습이나, 억지를 써서 정치하는 것을 막으려 하였고, 그 결과 법을 제정하는 운동을 벌입니다. 그 결과 나타난 법이 바로 그 유명한 <12표법>이지요. 12표법은 최초의 성문법으로서 평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내용이 포함된 법입니다. 실례로, 귀족과 평민이 결혼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 이 12표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민들은 계속 성장하였고, 정복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이탈리아 반도를 모두 통일하여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평민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고, 평민들은 전쟁을 통하여 수많은 정복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평민들은 점차 적극적으로 국정에 참여하려고 하였고, 이제는 아예 시민회 자체를 군대단위의 <병사회>로 개편하기에 이릅니다.

이 <병사회>라는 시민회가 출현하면서 시민들은 더욱 더 정치참여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평민들은 아예 자신들의 대표인 호민관을 넘어서서 로마 귀족 공화정의 최고 자리인 2명의 집정관 자리까지도 넘보게 됩니다. 평민들은 집정관 중 1명은 평민이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그 결과 <리키니우스법>이 통과되면서 집정관 1명을 평민에서 선출하였습니다. 이제 높은 정무관직과 신관직에도 평민들이 진출하게 됩니다.

단, 여기에는 한가지 함정이 존재합니다. 전술했듯이, 로마에서 집정관, 신관 등의 높은 고위직은 보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평민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력을 갖춘 평민이어야 합니다. 이 정도 재력을 갖춘 평민이라면, 평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귀족에 가깝지 않을까요?

로마의 귀족들은 이 점에 착안하면서 집정관의 1자리를 평민에 양보한 것입니다. 즉, 형식적으로는 평민과 귀족이 모두 동등한 사람인 것 처럼 보이는 법이 <리키니우스법>입니다. 그러나, 실제 귀족들의 목표는 권력의 절반을 평민에게 넘겨주는 것처럼 하면서, 부유한 상층 평민들에게 권력을 주어 그들을 귀족사회로 흡수하는 것이였습니다. 이렇게 귀족층에 흡수된 새로운 신귀족층을 역사에서는 <노빌레스>라고 합니다. 영어에서의 귀족 <노블>은 바로 여기에서 어원이 나온 것이지요.

이렇게 새로운 귀족층이 형성되자, 귀족사회는 다양해졌습니다. 혈통을 중시하는 로마 초기 귀족에, 새롭게 등장한 벌족들이 가세하여 점차 로마 귀족사회가 다수 귀족에 의한 <과두정치체제>로 변화하는 것이지요.

반면, 평민들도 계속 신분상승을 추구합니다. <리키니우스법>에서는 집정관이 평민을 사형시키려고 할 때, 민회에 상소하여 민회가 거부권을 가질 수 있다라는 항목까지 포함되었으니까요.

하지만, 평민들의 신분상승요구는 더 많은 것까지 요구합니다. 그들은 이제 아예, 평민회의에서 결의한 것이 로마 원로원의 승인조차 필요없는 절대적인 것임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현대 민주정치로 따지면, 아예 <입법권>을 통째로 달라는 요구지요. 이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법이 <호르텐시우스법>입니다. 이 법은 평민회의 결의는 절대적이며, 평민회가 원로원과 대등한 실질적인 최고 민회임을 천명한 법입니다. 이 법을 마지막으로 귀족과 평민은 완전히 정치적으로 동등해졌습니다.

3. 민회의 발전으로 본 평민의 성장

이번에는 로마 평민들의 성장을 민회가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에서 민회라는 것은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격은 처음에 민회는 완전 귀족중심으로 민회였다가, 차차 평민중심의 민회로 변해가고, 나중에는 평민회 자체가 로마 원로원의 권위와 동등해지는 것입니다.

로마 최초의 민회는 <쿠리아회>라고 불리는 귀족중심의 민회입니다. 이 쿠리아회의 특징은 초기 로마 사회가 소수 귀족중심의 씨족적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귀족중심으로 이루어진 민회에서는 소수 귀족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였고, 이 소수 귀족들은 원로원의 멤버들이자, 집정관이자, 신관이였습니다. 즉, 민회라는 것이 별 의미 없는 기구였던 셈이죠. 이 민회는 귀족 총회라고 보면 무난합니다.

두 번째 민회는 <트리부스회>입니다. 이 민회는 평민들이 <성산사건>을 통해 얻어난 평민들의 민회였습니다. 이 민회는 평민들의 거주지인 행정구(트리부스)를 단위로 투표를 하여 모든 안건을 결정하는 시민회입니다. 이 트리부스회의 기능은 2명의 호민관을 선출하는 것입니다. 트리부스회의 호민관은 초기에는 원로원에 대한 <거부권> 정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후기에는 아예 <입법권>을 갖게되는 기관입니다.

세 번째 민회는 <병사회>입니다. 평사회는 <성산사건> 이후 12표법이 제정되어 평민들의 권리가 성장되는 시기에 탄생하였습니다. 특히, 로마에서 리키니우스법, 호르텐시우스법 등 법제가 정비되면서 확대되는 민회이죠. 이 민회의 특징은 평민들의 전쟁참여가 높아져서 이탈리아 반도가 통일되어가는 과정과 관련된 민회라는 점입니다. 이 민회는 <팔랑크스 전술>과 이에 따른 시민군의 편제를 바탕으로 한 민회입니다.

이 병사회의 구성을 자세히 볼까요?

병사회에서 <토지(그리스에서의 클레로스)>를 가진 로마시민은 신분의 구별없이 <재산을 가진 정도>에 따라 100인대에 소속됩니다. 이 100인대는 재산에 따라 기사 및 5등급으로 세분화되어 총 6등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 혈통과 신분이라는 귀족적인 폐쇄성을 극복하여 <재산>을 시민의 기준으로 하게되어, 로마의 핵심적 민회로 성장합니다. 모든 시민은 중장보병(팔랑크스)로서 시민군에 편제되었고, 이러한 군대에 편제된 사람이 시민으로 인정받게 되어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사조직을 토대로 한 시민총회로서 평민들의 권리신장이 정점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귀족들의 함정이 있습니다. 귀족들은 평민들에게 형식적으로 국정 참여의 기회를 보장해 준 것처럼 보이며, 시민들은 만족해합니다. 그러나 이 병사회의 투표를 잘 보면 100인대 단위의 투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병사회는 시민 1명이 1표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단위인 100인대 당 1표의 투표권을 줍니다. 1명이나, 100명이나 시민의 의견이 모이는 것인데, 무슨 차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100명 단위에서 1표가 나오는 투표방식은 100명이 1표를 행사하기 위해 의견을 모아야 하며, 그 의견은 100인대의 대장의 발언권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즉, 민주적인 방식의 평민회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투표를 함으로서 로마 시민 전체에게 시민이라는 일체감을 주는 동시에, 비민주적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귀족들의 이런 함정에도 불구하고, 이 병사회는 평민중에서 집정관 1명을 선출하고 전쟁과 입법 등에 관여함으로서 로마 최고의 시민회로 성장하게 됩니다.

4. 이런 평민의 권리 향상의 의미는?

이런 평민들의 권리 향상은 로마 사회가 팽창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실제, 평민들이 성장하고, 전쟁에 계속 참여함으로서 로마는 영토가 계속 넓어지게 됩니다. 또, 모든 시민들이 전쟁을 통하여 토지를 획득하면서, 시민들은 로마에 소속되어 있다는 국가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고대 사회에서 로마처럼 통일된 <국가의식>, <시민의식>을 가진 나라는 보기가 드물죠.

귀족들은 평민의 권리 성장을 이용하여, 평민중 재력이 많고 부유한 계층을 로마의 지배층으로 흡수하면서, 로마의 지배층이 더욱 견고해진 측면도 있습니다. 실제,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세계제국화하는 단계에서는 평민들의 권리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며, 신흥귀족들의 성장만이 두드러집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의 영토팽창기의 평민들은 귀족과 직접적인 전쟁을 치루지 않고, 단계별로 법제를 정비하면서 발잔하였기 때문에 로마는 내란이나 내부적인 갈등없이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축척되고, 단합된 이들의 힘은 로마가 세계제국화하는 큰 보탬이 됩니다.

다음 장에서는 로마에서 어떤 사람들이 시민이였는가에 대한 시민권 이야기를 잠시 하고, 그 다음 장부터 로마의 세계제국화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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