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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중국사 이야기 5 - 주나라시기에 종법에 기초한 씨, 성 제도가 확립되었다.

서주시대의 종법질서에 의한 씨, 성 제도가 있었다

1. 서주 시대의 정치

보통 은나라 다음으로 주나라 역사를 전개한다고 할 때, 주나라의 시기는 2시기로 구분됩니다.

먼저, 호경을 수도로 한 서주시대로서, 이 시대는 중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대로 평가합니다.

두 번째로, 낙양을 중심으로 하는 동주시대로서 이 시대는 주왕실이 문란해지고 각지에 제후들이 실권을 잡게 되는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춘추시대, 전국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주나라는 주 문왕이 건국하였고, 무왕 때 역성혁명을 일으켜 <주>라는 국가를 성립시켰습니다. 그러나, 주 무왕은 은나라의 귀족들을 몰살시키지 않았습니다. 은나라 자체가 도시국가의 연합적인 성격이 강하였기 때문에, 은나라의 세력 기반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은나라의 기반 세력>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주의 무왕은 은왕의 아들 및 일족, 공신들에게 주변의 토지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주왕실의 울타리 역할을 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에서 말하는 <봉건제도>인 것입니다.

주나라는 성왕 대에 가서 어린 왕을 보필하는 <주공 단>이 실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주공 단은 왕권에 욕심내지 않았고, 어진 정치로 백성들을 보살폈으며, 왕이 성장하게 성인이 된 이후 왕에게 자신의 실권을 고스란히 물려줍니다. 그리고 그는 낚시나 하면서 소일 하는 <강태공>이 되었다는군요.. <주공 단>은 훗날 중국에서 어진 재상을 뜻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게 됩니다.

특히 주공단은 은의 유민들이 사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반란들을 잘 다스렸다고 합니다. 관숙과 채숙이 일으킨 삼감의 난은 유명하죠. 삼감의 난으로 주공은 은의 유민들을 통제할 방법을 찾습니다. 주공 단은 효율적으로 주의 영토를 다스리고, 지방 제후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종주, 성주를 건설하였습니다. 그는 수도인 호경은 서방의 수도로서 <종주>라 하였고, 낙양은 은의 유민을 동방에서 이주시켜 <성주>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2중적인 거점 도시 건설은 은의 유민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주왕실에 복속시키기 위함이였습니다.

주공 단의 시대를 중심으로 주나라는 이민족 정벌도 꾸준히 시도합니다. 동쪽으로 나아가 은의 잔당인 동이족에 대한 토벌을 시도하고, 서쪽으로는 견융족과 험윤족을 정벌합니다. 그러나 남부의 양자강은 정복하기 어려워 아직까지 주의 영토는 황하강을 중심으로 한 북부지방에 머뭅니다. 남부는 미지의 세계로 남게 되지요.

2. 주의 사회 통제 장치 - 종법제도와 성씨제도

주 시대는 은나라 시대보다 중앙관직이 더 다양해졌습니다. 은대는 신성정치를 하면서 제사, 전쟁 위주의 관직분포라고 설명했었습니다. 주는 은나라와 같이 제정일치사회이긴 하지만, <신성정치>를 하는 국가의 색체는 약합니다. 건국부터가 <역성혁명>을 표방하며, 천손도 교체될 수 있음을 주장했으니까요. 따라서 주대의 관직은 다양하며, 국가규모가 커질 수록 관직수도 늘어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국가에 봉사하는 귀족들은 관직 복무의 댓가로 <채읍>이라는 땅을 받았고, 관직도 세습되었습니다.

이렇게 관직도 많아지고, 땅을 받은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주나라는 이러한 왕족, 친족, 관리들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러한 통제의 관점에서 종법제도가 정립됩니다.

종법은 혈연적인 친족관계를 명확히 하여 주 왕실에 대한 충성을 견고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탄생하였습니다. 종법은 아버지 혈통에 따른 부계씨족제, 장자 상속제를 기반으로 본가집과 분가집을 종적인 신분질서로 규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종법의 원리 속에서 성씨제도와 씨족제도라는 것이 탄생합니다. 성씨제도란, 종법사회에 있어서 혈연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성이 있어서 귀족들이 만든 것입니다. 성씨제도에서 <성>이란 일반 평민들도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씨>라는 것은 귀족들이 스스로의 집단을 다른 집단과 구분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귀족이 중심이 되는 사회나, 신분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성>보다 <씨>를 더 중요시 하죠. 우리 나라에서도 고려, 조선 시대에는 성보다는 가문(씨>를 훨씬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안동 김씨, 전주 이씨 처럼요..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씨> 안에서 <성>은 존재한다고 보았으니까요. 김씨, 이씨 등의 단순한 성은 옛날 사회에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고대의 성 중에서 女자변이 들어간 성이 많다는 점입니다. 이것으로 고대가 모계중심사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근거로 삼고 있지요.

3. 씨족제도를 좀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씨라는 것은 <성>에서 갈려져 나온 집단의 명칭입니다. <이씨>가 성이라면, <전주 이씨>는 씨입니다. 이렇게 씨와 성을 구분하는 것은 주왕실(공실)에서 분가하여 새롭게 자리잡은 집단의 시조는 누구인가, 이러한 집단은 공실과 어떤 관계인가를 규명하기 위함입니다. <주공 단>을 보면, 주공이 씨 이고 이름자는 단입니다. <주공>이라는 씨에서 주나라 공실 출신인 본가임을 알 수 있지요.

이러한 씨족제도로서 종법제도가 유지됩니다. 이 종법제도는 본가와 분가를 구분함과 동시에, 남존여비사상, 적서차별사상, 동성불혼 사상 등을 포함하는 사상입니다. 즉, 종법제도가 정작되면서 남자중심의 씨, 성 제도가 정착되고, 이것으로 여자의 지위는 끝없이 하락하게 됩니다. 바로 이 주나라 시대의 종법질서에서 유교적인 남성위주의 사회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죠.

대표적인 예로, <제잉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잉제는 왕실인 제후(공실), 대부(씨실)에게 출가할 경우 언니, 여동생이 동시에 출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공 단>에게 시집갈 경우, 언니, 여동생은 주공단과 동시에 결혼하는 것이죠. 단, 서민집단은 이러한 성, 씨와 관련이 없으므로 1부1처제였습니다.

 이 종법제도는 봉건제도를 다룰 때, 이것보다 훨씬 자세하게 설명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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