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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청 태종이 인조에게 보낸 굴욕적인 편지 내용

한국사사료모음/9.조선시대정치사 2007/03/08 09:50

청 태종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숨은 인조에게 보낸 편지 원문

1. 주요 내용

<(前略)내가 요동을 점령하게 되자 너희는 다시 우리 백성을 불러들여 명나라에 바쳤으므로 짐이 노하여 정묘년에 군사를 일으켜 너희를 정벌했던 것이다. 이것을 강대하다고 약자를 없신여겨 이유없이 군사를 일으킨 것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너는 무엇 때문에 그 뒤에 너희 변방 장수들을 거듭 타이르되, '정묘년에는 부득이하여 잠시 저들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 화약을 맺었지만, 이제는 正義로 결단을 내릴 때이니 경들을 여러 고을을 타일러 충의로운 사람들로 하여금 지략을 다하게 하고, 용감한 자로 하여금 적을 정벌하는 대열에 따르게 하라'는 등등의 말을 했느냐. 이제 짐히 친히 너희를 치러왔다.

너는 어찌하여 지모 있는 자가 지략을 다하고 용감한 자가 종군하게 하지 않고서 몸소 一戰을 담당하려 하느냐. 짐은 결코 힘의 강대함을 믿고 남을 침범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도리어 약소한 국력으로 우리의 변경을 소란스럽게 하고, 우리의 영토 안에서 산삼을 캐고 사냥을 했으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그리고 짐의 백성으로서 도망자가 있으면 너희가 이를 받아들여 명나라에 바치고, 또 명나라 장수 공유덕과 경중명 두 사람이 짐에게 귀순코자 하여 짐의 군대가 그들을 맞이하러 그곳으로 갔을 때에도, 너희 군대가 총을 쏘며 이를 가로막아 싸운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짐의 아우와 조카 등 여러 왕들이 네게 글을 보냈으나 너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정묘년에 네가 섬으로 도망쳐 들어가 화친을 애걸했을 때, 글이 오고간 상대는 그들이 아니고 누구였더냐. 짐의 아우나 조카가 너만 못하단 말인가. 또 몽고의 여러 왕들이 네게 글을 보냈는데도 너는 여전히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었지, 그들은 당당한 원나라 황제의 후예들인데 어찌 너만 못하랴!

원나라 때에는 너희 조선이 끊이지 않고 조공을 바쳤는데, 이제 와서 어찌 하여 하루아침에 이처럼 도도해졌느냐. 그들이 보낸 글을 받지 않은 것은 너의 昏暗과 교만이 극도에 이른 것이다. 너희 조선은 遼, 金, 元 세 나라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고 대대로 臣이라 일컬었지, 언제 北面하여 남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편안히 지낸 적이 있었느냐.
짐이 이미 너희를 아우로 대했는데도 너는 갈수록 배역하여 스스로 원수를 만들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도성을 포기하고 대궐을 버려 처자와 헤어져서는 홀로 산성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설사 목숨을 연장해서 천년을 산들 무슨 이로움이 있겠느냐.

정묘년의 치욕을 씻으려 했다면 어찌 하여 몸을 도사려 부녀자의 처소에 들어앉아 있느냐. 네가 비록 이 성 안에 몸을 숨기고 구차스레 살기를 원하지만 짐이 어찌 그대로 버려두겠는가.

짐의 나라 안팎의 여러 왕들과 신하들이 짐에게 황제의 칭호를 올렸다는 말을 듣고, 네가 이런 말을 우리나라 군신이 어찌 차마 들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대저 황제를 칭함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도우면 필부라도 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천자라도 외로운 필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방자하고 망령된 것이다.

이제 짐이 大軍을 이끌고 와서 너희 팔도를 소탕할 것인데, 너희가 아버지로 섬기는 명나라가 장차 너희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를 두고볼 것이다. 자식의 위급함이 경각에 달렸는데, 부모된 자가 어찌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네가 스스로 무고한 백성들을 물불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니, 억조중생들이 어찌 너를 탓하지 않으랴. 네가 할 말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분명하게 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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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문

산셩일긔 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 필사본

 

산셩일긔 병

만력(萬曆) 십칠년 긔츅(己丑) 구월의 노라치 란 오랑로 뇽호쟝군(龍虎將軍) 을 이다 노라치  녀진국(女眞國) 오랑니 졔 한아비와 아비 다 다 오랑 난(亂)의 죽고 노라치  동방(東方)으로 라니 븍녁 모든 오랑 침노야 긔세 졈졈 즁고 잇다감 노략 한인(漢人)을 도로 보여 즁도(中朝)의 헌튱(獻忠)더니 다 오랑 근오십 등이 싀합호  노략고 지휘 뉴부  죽이고 건(建州) 로 라거 노라치 즉시 근오십 의 머리 버혀 듕됴(中朝)의 드리고  조흔 말을 공(供)고 졔 한아비와 아비 듕국을 위야 병화(兵禍)의 죽은 곡졀&을

알외여  쟝(大將) 일홈을 어드니라 노라치 졈졈 강셩야 제 아 합치  죽이고 군 아오라 모든 오랑 침노더니 무오(戊午) 긔미(己未)년간(年間)의 무슌셩(撫順城) 을 함몰고 총병 쟝승 을 등이 죽고 경냑(經略) 양효 등이 대고 쳠 반춍안 등이 다 죽다 됴션국(朝鮮國) 도원슈(都元帥) 강홍닙(姜弘立) 과 부원슈(副元帥) 김셩《경》셔(金景瑞) 종관(從事官) 니민환(李民寏) 쇼쟝(小將) 김응하(金應河) 등이 막아  조 삼 니 드러가 도젹의게 힌  되니 김응하  힘 화 종시 굴치 아니코 죽으니 이 닐온 김쟝군(金將軍) 이라 됴졍이 병됴판셔(兵曹判書)  츄증(追贈)고 강홍닙(姜弘立) 이하 다 항복니라 긔미(己未)의 노라치 아국(我國)을 통코져 야 홍&닙 은

머무러 두고 민한《환》 등은 여 보니라 이  오월의 노라치 국호(國號) 금(金)이라 고 황의(皇衣) 닙고 딤(朕)이로라 며 그 후의 심양(瀋陽) 을 함몰(陷沒)니 텬(天子) 원숭환 으로 경냑(經略) 을 야 광녕 의 가 도젹을 막게 엿더니 병인(丙寅)의 노라치 원숭환 의게 야 분통야 등챵 나 죽으니 (次子) 홍타시 셔니라 원 노라치 가 노다가 뫼 엽  계집이 오좀을 누고 지나가거 보니 오좀이 뫼 러 깁희 가 드러가니 노라치 긔이히 너겨 그 겨집을 다려다가 을 흐니 이 니바 홍타시 라 뎡묘(丁卯) 졍월(正月)의 강홍닙(姜弘立) 이 홍타시  다여 군(大軍)을 니혀 아국(我國)을 침범 압녹강(鴨綠江) &을

어름으로 건너 이 밤의 의(義州)  엄습(掩襲)니 부윤(府尹) 판관(判官) 이 다 죽고 안(安州)  함몰니 병(兵使) 목(牧使) 들이 다 죽다   샹(上)이 강화(江華) 의 피란시고 셰 뎐쥬(全州) 로 분됴시다

초의 갑(甲子) 니괄(李适) 의 난(亂)의 괄 의 쟝슈(將帥) 한명년(韓明璉) 의 이 도망야 오랑게 가 거즛말노 아국(我國)이 홍닙 의 일문(一門)을 다 즛지다 니고 홍닙 을 다여 도젹을 인도여 오니 이의 니러 됴졍(朝廷)이 홍닙 의 삼촌(三寸) 진쟝《창》군(晉昌君) 강인(姜絪) 과 홍닙 의 쳐 진쳔(鎭川) 의 보여 홍닙 을 뵈니 홍닙 이 비로쇼 뉘웃고 도젹도 굿여 아국을 칠 의 업고 아국도  신(使臣)을 보여 화친(和親)기 쳥니 젹이 허락다   샹이 노&로

더브러 피 마셔 텬디(天地)긔 세실 대신(大臣) 윤방(尹昉) 오윤겸(吳允謙) 병조판셔(兵曹判書) 니셩구(李聖求) 참판(參判) 명길(崔鳴吉) 이 가지로 세의 예니라 홍타시 홍닙 과 홍닙 의 호녀(胡女)와 한녀(漢女) 다 여 보니 아국이 노젹을 두려 홍닙 의  의논치 못더니 미구(未久)의 홍닙 의 일문(一門)이 의논야 닙 을 가마니 죽이다 경오(庚午)의 노젹이 븍경(北京) 을 침노니 황뎨 원슝환 이  막지 못다 샤 아다가 죽이시다 아국이 노젹으로 더브러 형뎨 되고 츈츄(春秋)의 신을 보더니 병(丙子) 츈(春)의 무신 니확(李廓) 과 쳠지(僉知) 나덕헌(羅德憲) 이 신으로 심양(瀋陽) 의 가니 홍타시 황뎨로라 칭고 국호 대쳥(大靑)&이라

며 니확(李廓) 등을 겁칙야 반녈의 예라 니 확 등이 죽기로 듯지 아니 모든 오랑 확 등을 치며 으니 의관(衣冠帶) 여지 종시 굴치 아니니라 확 등이 홍타시 의 답셔 타 오다가 가마니 셩 직흰 오랑게 두고 오니 당초의 그 편지 맛다 야 됴졍이 논(論罪)니라 년의 뇽골(龍骨大) 마부(馬夫大) 두 쟝쉬 인녈왕후(仁烈王侯) 국샹(國喪)의 됴졔(弔祭)라 오니  아국을 탐지(探知)랴 미라 됴졍이 야흐로 화친을 쳑 노 졉기 박(薄)히 고 피국(彼國) 왕 쥬샹(主上)긔 편지여시 답지 아니고 인목대비(仁穆大妃) 국샹의 오랑 와셔 됴졔(弔祭) 젹

뎐샹(殿上)의셔 녜(大行禮)기 허엿더니 이졔 당여 금쳔교(禁川橋) 의 쟝(帳)을 치고 치졔(致祭)더니 람이 부러 쟝이 열니 금군(禁軍)들이 이시믈 뇽골(龍骨大) 등이 크게 의려며 댱녕(掌令) 홍익한(洪翼漢) 과 관(館學)이 샹쇼(上疏)여 노 버혀지라 쳥니 뇽골(龍骨大) 등이 듯고 황망이 라니 경셩(京城)이 진동고 묘당(廟堂)이 황겁야 졔신(諸臣)을 라 보여 머믈기 쳥 듯지 아니고 도라가니라   샹이 팔방의 하됴(下詔)샤 화친을 파 을 니고 날마다 드 샹(上疏) 오랑 칠 말이라 부평(富平) 안산 의 돌이 올마 노히고 경샹(慶尙) 평안도(平安道) 의 올히 호고 대구(大邱) 의 구름이 진치고 쳥파(靑坡) 의 고리 호고

녜안(禮安) 의 강믈이 허지고 셔울 이 히 븕고 셩듕(城中)을 로 의 스믈 닐곱 곳을 별학을 치고 큰 믈이 급히 드러와 동대문(東大門) 길이 막히고 무지게  엿더라 녕의졍(領議政) 김뉴(金瑬) 등이 묘당의 이시 화친은 임의 밋을 거시 업고 호기와 직희기와 다 일 업더라 최명길(崔鳴吉) 이 샹쇼야 화(和使) 보기 쳥 교리(校理) 오공(吳公) 과 니조졍낭(吏曹正郞) 윤공(尹公) 이 샹쇼야 명길 을 버혀지라 쳥 됴졍이 이리도 못고 져리도 못야 더니 김뉴(金瑬) 와 명길 이 의논여 역관(譯官)을 심양(瀋陽) 의 보여 노젹을 탐지 홍타시 역관려 니로

"네 나라히 동지달 이십오일 젼으로 대신(大臣) 왕(王子) 보지 아니&면

 당당이 동으로 크게 나가리라"

고 그 답셔의 여시

나 드니 네 나라히 산셩(山城)을 만히 거니와  당당이 대노(大路)로 조 갈 거시니 산셩으로 날을 막을소냐 네 나라히 강화(江華)  밋거니와  팔도(八道) 즛 젹 조고만 셤으로 님군 노 소냐 네 나라히 의논 잡으 니 다 션니 가히 붓 둘너 날을 막을소냐

엿더라 묘당(廟堂)이 그 편지 보고 대신을 보고져 나 쳑화(斥和) 의논이 야흐로 즁기의 보지 못다가 오 후의 보 밋지 못니라 김뉴(金瑬) 김뎜(金自點) 이 의논야 의쥬(義州)  마산셩(白馬山城) 의 옴기고 황쥬(黃州)  젼《졍》광《방》산 듕(正方山中)의 옴기고 평산(平山) 을 쟝슈산셩(長壽山城) 의 옴기니 각&각

큰 길의셔 삼십 니(里)나 고 먼   이틀 길이라 냥셔(兩西) 큰 길이 사 업 히 되고 김뎜(金自點) 이 도원(都元帥) 되여 니로

"도젹이 반시 오지 아니리라"

고 사이 혹 도젹이 오리라 면 로고 셩 직흴 군 나토 더 뎡치 아니코 의쥬(義州) 져 편 뇽골산(龍骨山) 봉화(烽火) 셔울 가지 가면 소동(騷動)리라 여 도원슈(都元帥) 잇 졍방산셩(正方山城) 가지 오게 졍엿더니 납월(臘月) 초 뉵일 이후의 년야 봉화(烽火) 두  혀 뎜 이 니로

"반시 신(使臣)을  불이라 엇지 도젹이 올 니 이시리오"

초 구일의 비로소 군관(軍官) 신용(申榕) 을 의쥬(義州) 의 보여 젹병을 탐지 신용(申榕) 이 순안(順安) 의 니니 젹병이 임의

편만(遍滿)엿지라 신용(申榕) 이 도라와 보니 뎜 이 대로여 신용(申榕) 을 버히려 더니 다른 군관 이  보니 비로소 쟝계(狀啓)니라 대 젹병이 강을 건너니 로(大路)의 것칠 거시 업지라 오기 람 치 고 번의 쟝계(狀啓) 젹이 다 아 가진 고로 됴졍(朝廷)이 막연이 몰낫더라 이러므로 십이일 오후의 비로소 젹세(賊勢) 급 줄 알고 십삼일의 강화(江華) 의 들기 의논 김경징 으로 검찰  이고 니민구 로 부  삼다 김(金瑬) 그 아의 무샹믈 모로 거시 아니로 가속 피란기 위여 경징 으로 검찰  이고   샹이 무시니 김(金瑬) 알외 경징 이 당이다 더라 십&일의

  대개(大駕) 챵황이 남대문 을 셔 강화(江華) 로 향시더니 젹쟝 마부(馬夫大) 수 긔 거리고 임의 홍졔원(弘濟阮) 의 다라시니   샹이 남문의 뎐좌시 샹 황황고 셩듕의 곡셩이 텰텬더라 니판 명길(崔鳴吉) 이 쳥여 젹쟝을 나가 볼 훈련대쟝(訓練大將) 신경진(申景禛) 으로 여금 모화관(慕華館) 의 츌진(出陣)고   대가(大駕) 싀구문(水口門) 으로 나셔 남한산셩(南漢山城) 의 드시다 명길 이 마부(馬夫大)  보고 온 연고(緣故) 무 젹쟝이 답왈

"네 나라히 무단이 세 반여시 화친려 왓노라"

더라 김뉴(金瑬) 니셩구(李聖求) 등이 쳥(請待)여  강화(江華) 로 가시게 졍엿더니 십오일의   샹이 거러 시다가 여러

번 업더지샤 옥톄(玉體) 블평시니 도로 셩의 드시다 대쟝 신경진(申景禛) 이 동셩(東城)을 직희오고 대쟝(大將) 구굉(具宏) 은 남셩(南城)을 직희고 총육《융》(摠戎使) 니셔(李曙) 등은 븍셩(北城)을 직희고 슈어(守御使) 니시(李時白) 은 셔편 셩을 직희고 셩즁(城中) 군병은 셔울 과 외방으로셔 산군을 합야 겨유 일만 이쳔여 인이오 문무(文武) 남관이 이여 인이오 종실(宗室)과 삼의(三醫司) 여 인이오 모든 관원의 노봉《복》은 삼여 인이라 명길 이 니경진《직》(李景稷) 으로 더브러 홍졔원(弘濟阮) 으로셔 도라오니 마부(馬夫大) 대쟝이 아니왓기로 말노 명길 을 속이고 십뉵일 식후(食後)의 라 남한(南漢) 의 다니 셩 직흰 군 약고 겁야 나가 홀 의 업더라 마부(馬夫大) 왕 대신 여 보기 쳥&니

됴졍이 능봉슈(綾峯守) 로 대군(大君)을 삼고 형됴판셔(刑曹判書) 심즙(沈諿) 으로 대신이라 야 젹진의 보니 심즙 이 니로

" 평의 말이 츙실기로 오랑도 속이지 못리라"

야 마쟝(馬將) 려 니로

"나 대신이 아니오 능봉슈(綾峯守)  왕 아니니라"

능봉슈(綾峯守)  니로

"진실노 심즙 이 대신이오 나 진실노 왕라"

 젹쟝이 속은 줄 알고 도로 보니 능봉슈(綾峯守) 와 심즙(沈諿) 이 도로 셩즁의 오고 마지 못야 승샹(丞相) 홍셔봉(洪瑞鳳) 과 호조판셔 김국신 을 젹진의 보여 니로

" 봉님대군(鳳林大君) 과 닌평대군(麟坪大君) 이 강화(江華) 의 이시 못 보노라"

니 마쟝(馬將) 이 니로

"동궁(東宮)이 아니 오면 화친을 못리라"

거 좌샹(左相) 이 그져 도라오니라

그 날 밤의 녕샹(領相) 김신국(金藎國) 니셩구(李聖求) 최명길(崔鳴吉) 등이 동궁(東宮) 보기 쳥 녜조판셔(禮曹判書) 김쳥음(金淸陰) 이 이 긔별을 듯고 비변(備邊司)의 드러와 대언(大言)여 오

"이 의논 놈을  당당이 머리 버혀 세야 한 의 셔지 아니리라"

더라 십칠일의 샹이 남문의 뎐좌(殿座)시고 통교(哀痛敎) 리오시니  가득 졔신(諸臣)이 아니 울 니 업더라 십팔일의 븍문대쟝(北門大將) 원두(元斗杓) 군을 비로소 모 바다 나가 화 도젹 여셧 죽이니라 셩듕(城中) 챵고의 과 피 잡곡 합야 겨유 일만 뉵쳔여 셕이 이시니 군병 만인의 일삭(一朔) 냥식은 되더라 소금 쟝 됴희 면화 병기 잡믈(雜物)이 다 니세(李曙) 쟝만여 둔

거 니 니셔(李曙) 의 조 일컷더라 십구일의 남문쟝(南門大將) 구굉(具宏) 이 발군(發軍)여 화 도젹 이십 명을 죽이다 이 날 대풍 블고 비오려 더니 김쳥음(金淸陰) 을 명야 셩황신(城隍神)에 졔니 람이 즉시 긋치고 비 아니오니라 이십일의 마쟝(馬將) 이 통 뎡명슈(鄭命壽)  보여 화친기 언약 셩문을 여지 아니고 셩 우희셔 말을 뎐게 게 다 이십일일의 어영별쟝(御營別將) 니긔튝(李起築) 이 군을 거려 도젹 열아믄을 죽이고 동문대쟝(東門大將) 신경진(申景禛) 이  발군여 도젹을 죽이다 이십이일의 마부(馬夫大)  통  보여 니

"만일 황연이 다라 왕(王子) 대신(大臣)을 보면 뎡여 화친쟈"

   샹이 오히&려

허치 아니시다 븍문(北門) 어영군(御營軍)이 도젹 열아믄을 죽이고 신경진(申景禛) 이  삼십여 명을 죽이다   샹(上)이 뎡(內庭)의셔 호군(犒軍)시다 이십삼일의 동셔남문(東西南門)에 영문(營門)의셔 군 고   샹이 븍문(北門)의셔 홈을 독촉시다 이십일의 큰 비 오시 셩쳡(城堞) 직흰 군 어러 죽은  만흐니   샹이 세로 더브러  가온 셔셔 하긔 비러 왈

"금일 이의 니기 우리 부(父子) 득죄(得罪)미니 일셩(一城) 군민(軍民)이 무삼 죄리잇고 텬되(天道) 우리 부의게 화(禍) 리오시고 원컨 만민(萬民)을 사로소셔"

군신들이 드시기 쳥 허치 아니시더니 미구(未久)의 비 긋치고 일긔 온화거 셩즁 인민(人民)이 감읍(感泣)지 아니리 업더라

이십오일의 극한 묘당(廟堂)이 젹진의 신 보기 쳥오니   샹이 오샤

"아국(我國)이 양 화친(和親)으로 져의게 속으니 이졔  신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