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와 관련있는 히스토리아의 글 목록16건

  1. 2009.03.11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편> - 16화. 고구려의 불교 이야기 (9)
  2. 2009.01.31 역사 속의 불교 이야기 - 15화. 평생을 불교와 싸운 신문학인 - 한유 (1)
  3. 2009.01.11 역사 속의 불교 이야기 - 14화. 보리달마와 선종 : 지식은 권력층만의 것이 될 수 없다. (3)
  4. 2008.11.26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13화. 정토종 : 정통 미륵에서 벗어난 아미타 부처 (11)
  5. 2008.11.23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12화. 여황제 측천과 법장의 뜻이 딱 맞아 떨어진 이유는? (2)
  6. 2008.11.22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11화. 삼장법사의 구법여행과 훗날 등장한 손오공 이야기 (3)
  7. 2008.11.20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10화. 천태종 이야기 : 화엄종과의 라이벌 1라운드 (1)
  8. 2008.11.19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9화. 서로 우위를 점하려던 불교와 도교의 한판 승부... (2)
  9. 2008.11.19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8화. 인도식 불교가 중국식 불교로 바뀌다. (2)
  10. 2008.11.16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7화. 불교의 참뜻을 알리려던 고승들 (1)
  11. 2008.11.15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6화. 현학, 청담에서 시작된 격의 불교 이야기 (1)
  12. 2008.11.13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5화. 불교의 외침 : 이젠 인도를 떠나고 싶어요 ~ (1)
  13. 2008.11.13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4화. 인도 불교의 대중화 - 대승 불교 이야기 (1)
  14. 2008.11.12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3화. 브라만교에 반대하는 사문들과 석가의 불교 탄생 (1)
  15. 2008.11.12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2화. 아리아인의 시대와 인도 초기의 종교들 (1)
  16. 2008.11.08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서문. 넌 대체 어느 지역의 종교니? (1)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편>

16화. 고구려의 불교 이야기

1. 불교가 원시 신앙을 대신하다.

자, 이번 회부터의 불교 이야기는 우리 역사 속의 불교 이야기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한반도의 불교 이야기는 인도나 중국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일화로 구성하기가 힘들다. 특히, 고대 불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등 일부 자료와 중국측 기록 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불교 이야기를 적더라도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일단, 삼국유사에 따르면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전진왕 부견이 승려 순도를 통해 불상과 불경을 전파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뒤 아도화상이라는 스님이 다시 건너오자 성문사에 순도를, 이불란사에 아도를 머물게 하여 불법을 전수받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첫 번째 이야기는, 고구려에 전해진 불교가 372년이라는 점에서 추론할 수 있다. 372년은 전진왕 부견이 불도징을 초빙하여 불교가 뭔지를 간신히 깨닫고 있던 시기였다. 아직 도안, 구마라습 등은 불도징의 초빙조차 받지 못한 시기였다.

참고링크 :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6화. 현학, 청담에서 시작된 격의 불교 이야기

따라서, 고구려에 전해진 불교는 불교이론이 확립된 도안이나, 구역경을 번역한 구마라습의 시기가 아니라 초기의 원시적인 불교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주술로 꽃을 피우거나, 도교의 신선 이야기로 부처의 이론을 설명하는 격의불교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불도징, 도안, 구마라습 이야기는 위 6, 7 화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수준 낮은 불교를 왜 국가가 도입했느냐는 점이다. 그 이유는 고대 민간 신앙에서 추론해볼 수 있다.

고구려 초기의 민간 신앙은 상당히 다양했다. 특정 부족신을 숭배하는 부족신 신앙, 동물을 숭상하는 토테미즘, 다신교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정령숭배사상(애니미즘), 주술사를 통해 하늘과 지상을 이어준다는 무격 사상(샤머니즘) 등이 여기 저기에 존재했다.

다양한 종교 사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 체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증거다. 국가에서는 주몽이나 유화부인을 숭배하는 사상(시조신 숭배)을 강조했지만, 각 지역별로 다양한 민간 신앙이 존재했다. 이러한 민간 신앙들은 종교적 역할 뿐만 아니라 일반민들의 사회생활을 지배했고, 심지어 국가가 아닌 지역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마저 유발하는 것이었다.

당시 백제에 의해 고국원왕이 죽고, 중국 북조의 압박으로 정치적 입지가 약해진 고구려의 왕실은 부족 통합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불교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알맞은 것이었다.

2. 전진왕과 소수림왕의 정치적 거래

소수림왕 때 들어온 불교는 사실 제대로 된 석가모니의 참 뜻을 이해하기 힘든 불교였을 것이다. 전진왕 부견도 불교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스님은 전쟁의 수호신이거나, 불법으로 국가를 지켜주는 주술사> 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불교를 왜 고구려가 받아들였을까?

첫 번째 이유는, 불교가 이미 고구려 민간 신앙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적으로는 소수림왕 당시 불교가 전파되었지만, 민간에서는 이미 불교 신앙이 전파되어 있었다. 해동고승전(석망명전)에는 이미 청담사상가들이나 격의불교를 이해하고 있는 중국 고승들이 고구려 불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왕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기록은 고구려인들이 신선 사상과 불교 사상을 이미 접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두 번째 이유는, 소수림왕의 왕권 강화를 위한 사회적 구심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소수림왕은 태학 설립, 율령 반포 등을 통해 중앙 집권 국가로 나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국왕이 신성하다는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이전보다 약화되어 있었다. 고조선부터 전해내려온 제천의식은 더 이상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동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와 같이 대부분의 군장국가부터, 고구려 내부의 각 부족까지 모두 제천의식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신사상과 다른 새로운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위해 불교의 수용은 필요했다.

마지막 이유는, 소수림왕의 대외 정책 때문이었다. 소수림왕은 국가안정을 위해 전진왕 부견과의 화해가 필수적이였다. 전진왕 부견은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고구려와 화해가 필요했다. 소수림왕은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기 위해 그동안 적이었던 중국 북방의 전진왕과 손을 잡았다.

이것은 중국 북방과 동아시아 북방이 화해를 함으로서 각각 자신들의 영토를 통일할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 획기적인 외교적 전환이었다. 이제, 이들은 치고 받고 싸우지 않는다. 그 결과 소수림왕의 후대에 광개토대왕, 장수왕, 문자왕이 동북아를 평정할 수 있는 외교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3. 격의 불교와 호국불교

고구려 초장기 민간에서는 불교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천신 신앙이나, 신선 신앙으로 불교를 이해하려고 햇던 듯 싶다.

이제 주술사(샤먼)의 역할은 스님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명칭만 바뀌었을 뿐 스님이 곧 샤먼이었다. 스님이 손으로 마법을 부려 백성들을 치유하거나, 전쟁에서 수호신 역할을 한다는 믿음은 전진왕 부견 시대의 <불도징>이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 활용했던 전략이었다.

주술사들의 웅얼거림과 마법적인 이야기들은 그대로 스님들의 이야기로 전해졌고, 그것이 스님들과 관련된 <향가 이야기>로 전해졌다. 부처와 보살, 미륵을 제대로 구분할 방법이 없었던 고구려에서는 보살을 산신령으로, 미륵을 하늘에서 내려온 지배자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절은 원시신앙에서 제천의식을 행하던 신성한 자리에 건립되었고, 전통적 재래신과 보살은 구분이 애매하였다.

특히 고구려는 산신령이나 도사와 같은 <도가 신앙>이 초기부터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도교 사상으로 불교를 이해하는 격의 불교가 쉽게 전파되었다. 부처의 <색즉시공>은 노자의 <무위자연>으로 이해하였고, 불교의 <해탈, 열반>은 도가의 <신선>으로 이해하였다.

반면 지배층은, 불교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하는 중국 방식을 철저히 응용하였다. 특히, 불교에서 강조하는 윤회설, 업설 등을 묶어 <인과응보>로 정리하여 지배층의 우월함을 강조하였다.

특히 <업설>은 전생의 행위에 따른 윤회를 강조한 것으로 국왕의 신성함을 극대화 시켰다. 국왕은 전생에 높은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만민의 지배자로 다시 태어났다는 논리를 강조했다. 왕은 곧 부처의 화신이며, 귀족들은 왕을 도와 불국토에서 안락을 누릴 미래의 보살들인 것이다. 노예들은 전생의 악덕함 때문에 현실의 고뇌가 시작된 것이므로 누군가를 탓해서는 안되는 신분이 되었다.

또 하나 왕권 강화를 위해 제시한 것은 <연기설>이다. 연기란, <인연>을 말하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모든 만남은 이전의 원인과 결과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내가 누군가와 만난 것은 수십만개의 인연이 돌고 돌아 이루어진 것이다. 즉, 모든 현상은 홀로 이루어진 것이 없으며, 상호 관계 속에서 돌고 돌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개체는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사실 우주 안에 살아가는 수많은 현상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어떤 원인이 없었으면 지금 너와 나의 만남이란 없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전체 속에 포함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을 왕권에 대입하면? 모든 개인은 국가 속에서 활동하며, 국가의 흥망이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 모든 부족들도 왕권이라는 공동 운명체 속에서 인연을 만들어 갈 뿐,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개인과 부족이라는 개체를 떠나 초부족적인 통합의 법(다르마)이 존재한다. 따라서 국왕의 행동과 국가의 율령은 모든 개체들의 운명을 위해 절대적인 것이 된다.

이것이 고구려의 초기 불교 이념이었던 것이다.

4. 광개토대왕과 불법

광개토대왕, 장수왕, 문자왕은 고구려 최전성기의 3대 태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왕들은 모두 불법의 수호자였다.

소수림왕이 불교를 받아들인 후 다음 왕은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나왔던 <고국양왕>이다. 고국양왕은 소수림왕이 불교를 받아들인 참 뜻을 깨닫고, 광개토(담덕)에게 <불교를 받들어서 복을 구해야 한다>는 충언을 하였다.

광개토대왕은 선대 왕들의 유지를 깨닫고 불교를 통한 국가 보호 사업을 추진하였다. 광개토대왕 2년에 평양에 9개의 절을 지었는데, 그 이유는 선대 왕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강력한 백제군을 부처님의 가호로 막겠다는 뜻이었다.

평양은 남방으로 내려가는 길목이자, 백제군과 계속적인 전투를 벌었던 요지이다. 또 고조선의 수도이자, 대동강을 통한 국제 무역의 공식 루트였다. 광개토대왕의 불심으로 미루어 북방에도 많은 절들을 건립했을 것이지만, 기록에 없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단, 당시 5세기의 불교는 구마라습의 구역경이 번역되어 전파된 시기이기 때문에, 국왕이 곧 부처라는 북조의 <왕즉불>사상이 전파되었음은 예측할 수 있다. 광개토대왕도 불법의 수호자이자, 자신이 곧 전륜성왕이라는 이념을 생각했을 것으므로, 세계 지도자로서의 불법왕을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5. 장수왕과 불교 첩보전

광개토대왕이 북방으로 영토를 넓혔다면, 다음 왕인 장수왕은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기 위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남진정책을 실시한 왕이다. 장수왕 때에는 불교에 관련된 재미있는 고사가 나온다.

장수왕이 백제에 보낼 간자(첩자)를 찾고 있었는데, 승려 도림이 자발적으로 첩자가 되겠다고 했다. 도림은 고구려에 큰 죄를 짓고 망명한 스님으로 위장하여 백제 개로왕에게 접근을 한다.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하자 도림은 왕의 바둑 친구가 되어 왕의 신임을 얻는다.

도림은 개로왕에게 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거대한 건축 사업을 제안한다. 궁궐 보수, 왕릉 개축 등을 위해 백성들을 징발하여 화려한 건물을 짓도록 한 것이다. 이 사업으로 백제의 창고는 비게 되고, 백성들은 고된 노동을 하게 되면서 국가를 원망하게 되었다. 도림은 장수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고, 장수왕은 총공격을 실시하여 백제 수도를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죽였다.

즉, 스님이 첩보활동까지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몇가지 고구려 불교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먼저, 불교 스님이 불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국왕을 위해 헌신한다면서 간첩질까지 한다는 점이다. 초기 고구려의 불교가 얼마나 국가 권력에 종속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또, 국가를 지키기 위해 백제의 백성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은, 불교 자체가 성숙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중생 구제라는 참 뜻 조차 파악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불교 전파를 신라가 크게 반대한 이유도 설명이 된다. 신라에서 이차돈의 목까지 잘라가며 불교를 믿으라고 절규할 만큼 불교가 전파되지 못한 점 중 하나가 이런 <불교를 이용한 침략작전>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불교를 전파받는 국가의 지배층은 새로운 사상 자체가 기득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 이유로 <불교라는 종교가 기존 사회체제를 흔들기 위한 선진국가의 함점>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나온다.)

6. 장수왕 이후 불법의 참뜻을 파악한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까지의 불교가 왕권에 휘둘리던 호국 불교였다면, 그 이후의 고구려 불교는 진정한 불교의 뜻을 파악하기 시작한 <종파 불교>였다.

부처의 진정한 뜻을 탐구하고자 노력한 고구려 스님들의 노력은 장수왕 말기 <승랑>에서 시작된다.

승랑법사는 중국에서 구마라집이 인도불경을 번역하여 불경의 참 뜻을 해석하자 그의 경전을 읽으면서 불법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북위로 건너가 중국 대승불교의 참 뜻을 연구하였다.

춘추전국시대

위진남북조

5대10국

BC770 -

BC221-

BC206 -

265 -

581 -

618-

907 -

960 -

혼란기

통일기

통일기

혼란기

통일기

통일기

혼란기

통일기

제가백가

법가

유가/불교유입

격의 불교

종파형성

종파불교

유교중흥

유학완성

 

그는 특히 반야(지혜)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성실종>을 연구하면서 인도 대승불교의 창시자인 용수의 반야사상을 연구하였다. 그가 연구한 학문을 <삼론학>이라고 한다.

삼론종 7대조 : 구마라집 - 승조 - 법도 - 승랑- 승전 - 법랑 - 길장

특히 승랑은 중국의 성실종과 달리, 오로지 순수한 인도의 대승불교만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삼론종의 계보를 잇는 7대 대사로 이름을 날렸다.

삼론학파란?

중론, 백론, 십이문론의 3가지 이론을 내세우는 불교 학파.

이들은 모든 사물은 원래 실체가 없다는 공(空) 사상을 주장하기 때문에 중관학파(공사상 학파)로 분류된다. 아무 것도 없다는 3론은 다음으로 정리해 본다.

1론 :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는 것이 곧 진리이다. 집착은 언어가 만들어낸 허구적 형상이므로,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불법의 최고 단계이다.

2론 : 만물이 실제한다는 것과 실체가 없다는 것도 언어에 의한 말장난일 뿐이므로,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중도를 걸어야 한다.

3론 :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탄생도, 소멸도, 영원도, 순간도 없다. 하나도 아니며 여럿도 아니다. 오는 것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다. (팔부중도)

삼론종은 성실종에서 주장했던 <마음으로 인식하여 언어로 표출>한다는 인식론을 아무 것도 없다는 공 사상으로 체계화하여 정리하였다. 이 삼론종은 중국보다는 고구려에서 더 활성화 되었는데, 수나라 때 길장은 삼론종 7대사에 들어가며, 제자인 혜관은 일본 삼론종을 개창하였다. 이 삼론종은 훗날 법성종으로 불리며 명맥을 이어간다.

반면, 공 사상과 별도로 <유식> 사상을 주장한 이들도 있었다. 중국에서 유식학을 공부한 원측은 눈에 보이는 <본질>이 실제 존재한다는 이론을 주장하였다.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인가, 눈에 보이는 본질이 존재하는가의 문제는 <공유논쟁>으로 학문적 논쟁을 야기시켰다. 비록 고구려 불교 교단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지만, 불교 자체가 왕권을 벗어나 스스로 발전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7. 승군으로 활약한 고구려의 불교 교단

점차 독립적인 불교 교단으로 발전한 고구려의 불단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하였다.

불교에서는 불법을 연구하는 교단도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있다. 신라 원광 법사의 세속오계, 고구려 불법 단체들의 몽골 항쟁, 임진왜란 등에서 보여준 스님 의병들의 모습이 대표적인 예이다.

불교 단체가 <호법>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이유는 2가지이다.

첫 번째 이유는, 이 땅이 국왕의 땅이기 이전에 진리를 연구하는 불국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처의 땅을 지키기 위해 외적은 반드시 물리쳐야 한다는 호법 사상이 있는데, 이것을 정의를 지키는 정법(다르마 : Dharma)라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국가가 불법을 보장하고 지켜주는 한 불법이 펼쳐지고 있는 국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 때문이다. 불법의 <연기설>에 의하면 국가가 없으면 불법도 없다. 국가가 불법을 인정한다면 불교 교단은 국가의 위기에서 국가를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고구려에서도 국가의 위기 때 직접 전장에 뛰어든 스님들이 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우리는 살수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 때, 7 승려들이 살수(청천강) 위를 홀연히 걸어갔는데, 수나라 병사들은 스님들의 행동을 보고 물이 얕다고 생각하여 청천강을 건너기 시작했고, 그 결과 수 많은 군사들이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이후 7 스님의 동상을 세워서 공적을 칭송한 절이 바로 <칠불사>이다. (동국여지승람)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고구려 스님 3만명이 당 군대와 치열하게 항쟁하여 물리친 기록도 있다. (고려서 열전 외전)

그러나, 실제 남아있는 기록 및 유물과는 다르게 삼국사기에는 이러한 기록들이 모두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몇몇 사료와 남아있는 사원 등을 통해 짐작해 볼 수밖에 없다.

8. 번성한 고구려의 불교와 쇠퇴 과정

점차 독립적으로 발전하게 된 고구려의 불교는 일본에 전파되었다.

혜편은 일본 불교 최초로 비구니를 양성하였는데, 선신, 혜선 두 일본여인을 가르쳐 출가시켰다고 한다. 혜자는 고구려의 공식 사절로서 쇼토쿠 태자의 스승으로 활약하다고 귀국하였는데, 지금도 호류사에는 혜자법사 상에 존경의 예를 표하고 있다.

담징은 법정과 함께 불교와 더불어 종이, 먹 등의 기술을 전파하였고, 호류사의 금당 벽화를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949년 화재로 벽화가 타 버린 이후 재현된 모사 벽화에는 담징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빼 버렸다.

혜관은 일본 2대 승정이 되었고, 도현은 일본세기를 저술하였으며, 승륭, 운총 등은 일본 사절로 일본을 방문하여 많은 문물을 전파해 주었다.

그러나 5-6세기 전성기를 맞이했던 고구려 불교는 7세기에 급격한 쇠퇴를 맞이하게 된다. 그 이유는 최고 집권자인 연개소문의 불교 탄압 때문이었다.

중국 불교를 이야기하면서 불법이 고유한 철학을 찾아가게 되면 도교나 유가를 이용한 탄압이 뒤따른다는 점을 언급했었다. 우리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에 왕권 강화에 이용되었던 호국 불교가 사라져가고, 불교가 독립성을 주장하자 집권자인 연개소문은 중국 당나라에서 유행하는 <호국 도교>를 이용하여 불교를 배척하였다.

그 결과 많은 스님들이 망명하게 되고, 고구려의 불교가 쇠퇴하게 되었다. 특히, 고구려 말기에는 모든 백성들이 부처가 될 수 있으며, 깨달음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열반종 사상까지 들어오게 되자 탄압은 더욱 심해졌고, 보덕이 개창한 우리식 열반종은 백제, 신라 등 남방 국가로 이전되어 전파되었다.

반면, 북교 교리가 심화되자 불교 교리를 통합하기 위한 통합 종교들도 유입되었다. 중국에서 사상 통합을 위해 활용되었던 천태종, 화엄종 등의 교리가 고구려에 유입되었고, 특히 천태종은 고구려 말기에 불교 통합 사상으로 등장하였다.

고구려는 연개소문 이후, 급격한 국력쇠퇴와 내분으로 멸망하였고, 고구려의 종파 불교도 그 꽃을 다 피우기 전에 사라졌다. 다음 편에서는 백제, 신라, 가야의 불교 역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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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편>

15화. 평생을 불교와 싸운 유학의 아버지 - 한유

1. 맹신적인 종교가 국가를 망치는 것이다. 

중국 불교를 마무리 하면서 어떤 상징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쉽게 이해될까 고민하느라 포스트가 지연되었다. 오늘 이야기는 불교를 배척하면서 평생을 살아간 <한유>의 이야기로 중국 불교편을 정리하고자 한다.

중국 당나라 시기... 불교는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국가 권력과 밀착한 화엄종, 천태종 등 교종 종파 뿐 아니라, 백성에게 직접 뛰어들어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정토종, 선종에 이르기까지 불교천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힘이 너무 강해질 때마다 중국 황제는 종교에 태클을 걸었다. 그 이유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국왕이 불교를 용인하는 것은 불교가 왕권 강화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제에게 불교, 도교, 유학의 구분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종교가 황제권을 넘어서려 한다면 그 종파를 찍어 눌러야만 했다. 특히 유교, 도교, 불교라는 세 종파가 공존하던 중국 고대 사회에서 황제의 선택권은 넓었다. 황제가 불교에 위협을 느낄 때마다 유교, 도교를 이용하여 불교를 탄압하였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몇몇 <폐불사건>으로 알려진 것이다.

링크 : 불교편 9화. 서로 우위를 점하려던 도교와 불교의 한판 승부

특히 유교는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대세는 불교와 도교였고, 특히 불교는 당나라 측천황제(측천무후)의 불교 중흥 노력으로 최강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당나라의 국운이 기울던 당 말기부터 불교의 위세는 꺽이게 되었다.

당나라는 측천황제 이후, 불교가 사회를 지배하였다. 황제는 미륵의 화신으로 생각할 정도였고, 귀족들은 스스로가 보살이라고 여기며 성불을 기원했다. 천태종과 화엄종의 <경전>은 귀족들의 교양지침서였다.

공식적인 당나라의 통일 사상은 유학의 일종인 <훈고학>이었지만, 훈고학은 옛 성인들의 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수준이었다. 백성들은 불교를 믿고, 집집마다 향불이 올라왔다.

2. 유학자들의 반격

유학자들은 불교 세력이 성장하자 불교에 대한 비판을 공론화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황제권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불교 사원을 짓는다는 것은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고, 종교 사원은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을 누린다. 그것은 왕권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죽은 뒤 내세가 기다리며, 내세는 현생의 죄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과응보>에 대해 국가적 차원으로 비판하였다. 유학에서는 현실 사회에 대한 모순을 파악하고, 현실 개혁과 사회 안정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죽은 뒤 영혼이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현실성이 전혀 없으며, 백성들을 현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국왕으로서 당연히 막아야 되지 않겠는가?

셋째, 불교가 왕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당나라 이전의 불교는 왕권 강화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불교의 교리가 심화되어 강력한 <종파>가 생겨나자 문제가 발생했다. 불교가 석가모니의 참 뜻을 내세워 중국 전통 사회의 윤리에 도전한 것이다. 유학에서는 충성, 효도를 강조하지만, 불가에서는 출가릃 하여 부모와 국왕을 떠나는 것마저 허용하고 있다. 세금을 내야할 백성들이 줄어들고, 전통 윤리에서 멀어지는 것을 국가가 보고만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넷째, 불교 교단의 승려들이 <국사>가 되어 정치적 힘을 갖게 되었다. 왕권이 약해지는 시점에서는 이것도 골치아픈 것이었다. 백만대군보다 무서운 것이 종교적 힘을 가진 백만 민중 아니겠는가?

결국 당말기 폐불사건은 남북조시대 이후 계속 되어온 왕권과 불법의 대립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남북조와 수나라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폐불을 당해본 불교였지만, 당말기에 대놓고 진행된 폐불에서는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경전으로 중심으로 귀족층과 밀접했던 <교종>은 교단이 박살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간략한 선법 수행과 <믿음>을 강조했던 <선종>은 그 피바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나라 말기에 살아남은 불교 교파는 <선종>이었고, 결국 선종이 후대 중국 불교를 이끌어가게 된다. 그러나, 불교 자체가 위축된 만큼 불교의 힘은 떨어졌다. 당나라를 이은 송나라는 신유학인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았고, <교종> 교파는 송대 이후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었다.

3. 불교도 싫어, 귀족도 싫어...  NO 만을 외치던 <한유>

당송팔대가의 으뜸이라 불린 한유는,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불교>에서 찾았다.

백성들이 죽은 뒤 <윤회>를 생각하면서 현실을 암흑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귀족들이 불상앞에 재산을 기부하면서 사회적 역할을 못한다는 것을 모두 <불교>탓으로 여긴 것이다.

특정 종교에 매달려 모든 것을 버리는 행위가 생긴다면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종교가 <종파>적 철학까지 잃고 지배층이 맹신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면 국가 존립 자체가 위험해진다.

한유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신유학>을 제시하였다. 노장사상은 허무주의이며, 불교는 현실이 아닌 <내세>의 종교라고 주장하고 다닌 것이다.

한유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스스로 제자백가를 독서하고 과거에 합격한 뒤, 특출한 학식으로 승승장구 승진하던 엘리트 관리였다. 하지만, 지배층이 숭배하는 <불교>에 정면 도전하면서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당나라 덕종에게 지배층의 문란함을 비판하였다가 귀향을 갔었지만, 뛰어난 학식을 인정받아 다시 조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또 다시 지배층의 사상을 비판하여 귀향을 가게 되었고, 이것이 그의 일생에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귀향갔다 돌아왔다, 또 귀향갔다 돌아왔다....

특히, 한유가 미움을 받은 것은 당나라 헌종 때 <황제>의 불교 숭배를 비판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당 헌종이 법문사라는 절에서 석가의 손가락 뼈한마디를 구해 궁궐로 가져온 뒤 제사를 지내고 다시 절로 보낸 일이 있었다. 그것을 본 지배층 인사들과 백성들이 모두 그 뼈한마디를 찾아가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부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그 뼈마디에 기부했고, 백성들을 생업을 포기한채 뼈마디 앞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어찌 인도에서 죽은 석가모니란 인물이 중국 사회 전체를 흔들어놓는단 말인가? 진짜인지 알 수도 없는 석가의 썩어 문드러진 뼈조각이 국가를 망친단 말인가?

한유는 헌종에게 <불교를 신봉한 군주들은 모두 단명했다>는 글을 올리며, 황제를 직접 비판하였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당나라의 지배층들도 비판하였다. 소위 <귀족>이라고 불리며, 남작, 백작, 자작 등 작위를 받고 살아가는 지배층들은 개념(槪念)이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지배층들의 문학인 <시문학>까지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사륙변려체 등으로 구절을 맞추어 술자리에서 돌려말하는 싯구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아무 의미없는 유흥일 뿐이다. 문학이란,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하며, 진정한 <도>를 깨닫기 위한 노력 속에서 나와야 한다.

당나라 지배층이 쓰는 화려하고, 아름답기만 한 문장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요즘으로 따지면 원더걸스나 빅뱅의 노래가 귀에 착 붙게 반복적인 멜로디로 구성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뜻은 아무 의미없는 것과 같다. NOBODY를 백번 외쳐봐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유는 한나라 이전의 고문들을 회복시켜 아무 의미없는 당나라 지배층의 문학을 부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왜 하필 한나라 이전의 고문으로 돌아가자는 고문부흥운동(古文復興運動)을 전개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불교가 한나라 이후에 성행했기 때문이고, 유학이 한나라 때까지 전성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지배층 성향을 가진 한유.... 그 결과는? 오랜 시간 귀향살이었다. 그러나, 인생의 절반이 중앙정권에서 배제된 그였기에 백성들과 직접 만날수 있는 기회도 많았고, 많은 친구를 사귈 수도 있었으며, 성리학의 토대가 된 저서들도 적을 수 있었다.

4. 불교를 비판했으나, 유학도 내 버려두지 않은 한유

한유는 불교, 노장사상 등을 비판했고, 그것을 신봉하는 지배층과 무지한 백성들을 동시에 비판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옛 유학을 그대로 옹호하지도 않았다.

한유는 한나라 이전의 유학들도 비판하기 시작한다. 공자와 맹자의 말씀부터 시작된 고대 유학을 당나라에서 <오경정의>로 압축하였다. 당나라에서는 과거시험의 명경과를 보기 위해 <오경>을 공부해서 암기해야 했다.

하지만, 한유는 그것을 비판한다. 왜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단순히 암기해야만 하는가? 그들의 사상이 절대적이라고 맹신한다면, 불교를 절대적으로 믿는 이들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어떤 사상에 대한 맹신은 결국 교조주의일 뿐이다.

한유는 불교 자체가 나쁜 것이라 말하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불교의 교조주의적 성향을 비판하기 위해 평생을 불교와 싸우며 살아갔다. 그의 역사관은 이렇다.

중국의 전설시대에는 인간 윤리를 지키며 살아간 태평한 시기(태평성대)가 있었다. 그러고, 중국인의 전통 윤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유학>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한나라 이후 불교라는 외래 종교가 유입되어 황제들이 단명하고, 국가의 전성기도 단축되었다. 위진남북조의 긴 혼란기가 불교의 전성기였으며,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황제는 불교를 견제하면서 국력을 낭비하였다.

따라서 고대 유학을 부흥해야 하지만, 시대가 달라진만큼 새로운 유교 철학이 필요하다. 한유는 새로운 유학 철학을 <성선설>에서 찾았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의 성을 인, 의, 예, 지, 신 등으로 구분한 뒤 본성이 착한가를 따지는 철학이었다. 반면, 한유는 성선설, 성악설을 모두 보완하면서 인간의 성품은 3가지로 나뉜다고 말한다.

성 상품

  태어나서부터 선한 성품

성 중품

  선과 악 어느쪽으로나 갈 수 있는 성품

성 하품

  태어나서부터 악한 성품

한유의 책 중에서 널리 알려진 책은 <진학해, 원도, 원성>이라는 3권의 책이다. 진학해는 자서전으로 불교비판에 대한 내용이 많이 실려있고, 원도는 유학의 나아갈 길과 불교의 문제점이 실려있다. 원성에서 성삼품설을 적어두었다고 한다.

5. 불교의 시대가 가고 성리철학의 시대가 오다.

당나라 말, 한유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 성리학의 태동은 불교의 입지를 비좁게 만들었다.

한유의 벗인 유종원은 한유의 철학마저 비판하면서 <유물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역사 발전의 핵심을 <세력>으로 파악하였다. 공자, 맹자와 같은 성인이 역사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 그대로 성인이거나 종교인일 뿐이다. 우주나 음양오행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우주는 단순한 음과 양이 모인 기(氣)일 뿐이다. 기(氣)는 살아있지도 않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우주의 기가 인간행위에 벌을 내린다거나, 복을 준다는 말 자체가 미신일 뿐이다. 결국, 인간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역사를 이끌어가려는 <힘있는 인간 집단>일 뿐이다.

유종원과 한유의 후학인 이고는 스승 한유의 철학에 선종 종파의 <수련법>까지 더하였다. 선종계열의 불가에서는 인간이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맹자가 인간의 성이 모두 선하다고 말한 것처럼, 부처 역시 누구나 착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성인이든, 군자든, 평민이든 모두가 선할 뿐이다. 단지,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외부(기 : 氣)의 영향을 받아서 훗날 선과 악으로 갈릴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선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의 수련법인 <선>을 행해야 한다. 선종의 명상법과 수양법, 좌선과 대화는 학문과 종파를 넘어서 모두에게 유용한 수련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말기, 새로운 유학 사상가들은 불교를 비판하면서도, 옛 유학의 참뜻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 하려고 노력하였다.

새로운 유학은 당나라 귀족층들이 농담따먹기 하듯 적어내는 의미없는 글귀나 고사모음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의 본성을 연구하는 <뜻>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이 고문부흥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문부흥운동은 화려한 문구의 시를 벗어나, 현실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을 철학적 명제로까지 끌어내려는 노력이었다.

당말의 유학자들은 국가 권력이나 지배층과 밀착된 교종 종단을 철저히 배척하였다. 그러나, 신유학 역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뜻을 찾는다는 점에서, 선종 교단의 수련법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였다.

6. 불가와 도가의 철학이 성리학의 <태극>으로 합쳐지다.

당나라 다음으로 등장한 송나라에서는 성리철학의 틀이 완성되면서 사회 지배철학으로 자리잡은 시기였다.

그 역사적 철학을 <태극>으로 정리한 이가 바로 <소강절>과 <주렴계>였다.

절에서 거주하면서 불교철학과 유학을 두루 공부한 소강절은 불교, 도교, 유학의 철학을 두루 정리하여 태극(太極)이라는 불변의 원리를 만들어내었다.

태극이란, 절대 불변하는 우주의 진리로서,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理)와 같다. 태극은 불변하지만, 그것을 알아채는 인간의 정신(神)이 사물을 파악하는 것을 기(器 : 물질)리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과 기는 돌고 돈다. 세상에는 시작점이 있는데, 이것이 정신으로 표현되며, 또 물질로 표현되며 물질이 소멸되면 다시 정신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의 이론과 비슷하다.

또, 돌고돌아 물질이 자연으로, 정신으로 돌아간다는 점은 도가의 무위자연과 추연의 음양오행설과 유사하다.(실제, 소강절이 불교, 도가의 철학을 의도적으로 인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돌고돈다는 법칙 자체는 변하지 않고 불변하는 진리로 남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태극>인 것이다. 태극은 모든 자연과 인간, 우주의 근본 법칙이다.

이 사상을 정리한 이는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인 <주렴계>이다. 그는 선종 선승들과 직접적인 교분이 있었고, 선종의 수양법으로 자신을 단련하면서 살았던 인물이다. 주렴계는 모든 현상의 근본 법칙인 태극에게 2가지 속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움직이는 것을 양(陽)이라 하고, 정적인 것을 음(陰)이라고 하는데, 이 음과 양이 돌고 돌아 우주의 법칙을 회전시킨다는 것이다. 음과 양은 오행(화,수,목,금,토)의 상극을 만든다. 양은 남성, 태양 등을 뜻하며, 음은 여성, 달 등을 뜻한다. 불(火)이 양이라면 나무(木)가 음이 된다.

그리고, 이 양과 음이 상호작용하면 우주가 돌게 된다. 만물의 생성을 주도하는 것이 건(乾)이고, 받아들이는 것이 곤(坤)이다. 하늘과 남자가 건이면, 땅과 여성이 곤이다.

주렴계의 철학은 결국 불교와 도교의 철학에서 파생되었다. 선종에서 말하는 공(空) 사상과 도가에서 말하는 무(無) 사상 등의 철학을 유가 형식에 맞춰 <태극>으로 정리한 것이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불교와 도가에서는 존재의 근거가 되는 불변의 진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논리적인 정신적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렴계는 <태극>이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님자, 여자, 하늘 등의 명칭을 가진 물질이라는 점에서 <유물론>적인 관점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태극의 실체를 리(理)라고 말하고 있다. (태극도설)

7. 선종 철학을 벗어나 이기론으로 향하는 성리학...

동시기를 살았던 장제는 좀 더 세밀하게 불교 철학과 성리학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불변의 본질인 태극 자체를 리(理)라고 말하면서, <리>는 단순히 변화의 법칙을 설명하는 원리라고 말하였다. 실제 우주를 구성하는 실체는 기운(기 : 氣) 인데, 이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존재자라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장제가 주장한 <주기론>은 불교사 입장에서 보면 아찔한 것이 된다. 불교의 <공>사상이나, 도가의 <무> 사상이 전면 부정되고, 우주에 실제 존재하는 기운(氣)이 명백히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장제의 입장에서 <기>란, 우주의 생성부터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며, 지금 이순간에도 변하고 있는 모든 사물인 것이다. 더 이상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은 어려운 말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우주의 기운(氣)를 받아 생겨나서 살아가다가 사라질 뿐이라고 말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내세도, 윤회도 이젠 없다. 기운(氣)은 살아있을 때 활동할 뿐이며, 죽은 뒤 사라질 뿐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정이천, 정명도 형제는 장제의 <기> 사상을 우주와 만물의 일치로 끌어올린다. 그들은 모든 만물에 기운이 있고, 그 기운은 우주에서 내려준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고, 모든 중화인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아는 단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의 기운(氣)은 불변하는 원칙인 이치(理)에 의해 움직이므로, 모든 우주의 기운에는 이치가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일물일리론 : 一物一理論)

이 이론을 정리하여 성리학을 완성한 이가 바로 성리학의 아버지 <주자>이다. 주자는 이치(理)와 기운(氣)의 상관관계를 정리하고, 그것을 중국민족의 우월성과 정당성으로 규정하면서 새로운 정치철학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불교의 교종 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정치철학으로 성리학에 지배권을 빼앗긴 불교는 이미 당나라 지배층이 무너지면서 정치적 실권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제 불교는 민중속으로 파고든 선종과 정토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송나라를 넘어 명, 청 시대로 이어지면서 서민 불교로 자리잡아간다. 그리고, 송나라 이후 역사적 변환점에 새롭게 자리잡게된 철학은 <유학>이었다.

자, 그럼 이 쯤에서 중국 불교이야기도 끝내고 한반도와 일본의 불교로 넘어가보자.

한반도의 불교는 인도, 중국 불교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될 것이다. 고조선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조계종까지의 불교를 역사와 관련해서 살펴보자. 그리고 일본의 불교는 우리 역사와 비교해서 다루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 했듯이 티벳이나 동남아 불교는 동아시아 역사와 큰 관련이 없기 때문에 관련 부분만 조금씩 이야기하려고 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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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편>

14화. 달마 이야기 : 지식은 권력층만의 것이 될 수 없다.

1. 선(禪)이란 본래 수행방법이었다.

선(禪)은 원래 인도 불교의 수행방법으로서 <요가의 명상법>과 비슷한 것이었다. 선은 범어로 드야나(dlhyana)를 번역한 것인데, 원 뜻은 <집중하여 생각한다> 이다.

그런데, 이 수행방법이었던 선이 어떻게 동아시아 불교에서 가장 큰 위상을 차지한 <종파>로 거듭나게 되었을까? 오늘은 선 사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중국에서의 <선종>은 보리달마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데, 달마가 중국에 건너오기 전의 <선>을 교학선이라고 한다. <교학선>이란, 소승불교에서 개인 수양을 위해 적어놓은 <호흡법> 등과, 대승불교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요가수행법 등을 바탕으로 한 <명상법>을 말한다. 경전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교종> 종파들이 책을 읽은 후 수행법으로 익힌 것이다.

따라서 <교학선>은 독자적인 선종 종파로 볼 수 없다. 교종의 진보적인 스님들이 수행법을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이 스님들도 선종과 관계없이 그냥 <선사>라고 부를 뿐이다. 원래 <선사>란, 종파와 관계없이 선법을 익힌 모든 스님들을 칭하는 호칭이었다.

그럼 선종(禪宗) 조사는 누구일까? 말은 많지만, 대부분이 <달마>를 조사로 인정하고 있다. 원래 인도에서의 선은, 신비주의적인 <도술>과 같았다. 숨쉬기를 통해 <공중부양>을 한다는 요가법을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중국인들이 종교로 인정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그래서 처음 달마가 중국에 선을 소개했을 때, 불교인들은 달마를 인정하지 않았던 듯 싶다.

지금이야 무협지에서 장풍을 쏘고, 축지법을 쓰고 난리도 아니지만... 무협지의 기본 배경이 되는 불교 종파가 바로 달마를 시조로 하는 선법 계열이다.

달마에 대해 남겨진 기록이 너무 적기 때문에 그는 소림사에서 장풍이나 날렸던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버렸다. 달마가 지었다는 <이입사행론>이나 그의 철학인 <일심사상>도 후대인들이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달마의 저서가 후대작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 책으로 그의 철학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2. 달마 : 마음으로 경전을 읽을 수는 없는가?

달마는 극심한 혼란으로 어수선한 남북조 시기의 <남조>에 건너왔다. 당시 중국 남부를 지배하고 있던 양나라의 무제는 <불법의 수호자>를 칭하는 인물이었다. 양조는 달마대사가 오자,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기 시작한다. 평생 절을 짓고, 경전을 번역하고, 승려들을 공경한 자신을 자랑하며,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었다.

당시, 남조의 왕은 스스로를 미륵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귀족들은 미륵을 보호하는 보살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공덕을 많이 쌓으면 부처가 될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경전을 읽고 있었다. 백성들은 글을 모른다. 사후세계의 주인은 <지식을 독점>하고 있는 귀족들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달마의 대답은 왕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당신은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마치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대답에서 선종의 선사상이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자연>과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선종은 가진 자들이 <스스로를 위해> 공덕을 베푼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공덕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인간성>을 먼저 아는 것이며, 본래 내가 누군가를 아는 것이다.

달마의 사상은 <이입사행론>에 자세히 나와있다.

이입사행론(理入四行論)의 핵심은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이다.

이(理)는 깨달음(이치)를 말하는 것이고, 행(行)은 실천을 말한다. 즉, 깨달음을 얻고, 실천하라는 것이 이입사행인데, 깨달음의 핵심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성>을 아는 것이고, 실천의 핵심은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을 말한다.

보리달마는, 남조의 왕이 <공덕>에만 욕심을 내고, 깨달음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남조의 지배층은 공덕을 무시하는 달마를 배척하였다. 달마가 쫓겨난 것인지, 수행을 위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는 숭산 소림사로 들어가 9년간 면벽 수련을 한다.

그런데, 면벽(벽관) 수련이란 어떤 수행법일까? 용어 그대로 벽을 보며 외부의 모든 것을 차단하는 수련을 말한다. 이것은 사방이 차단되어 아무런 번뇌도 나에게 들어올 수 없는 상태를 만들고,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었다.

3. 경전을 버려야 하는가, 경전에서 참뜻을 구해야 하는가?

중국 불교 초기에 선사상이 <교학선>이라면, 달마와 그 후계자들로 이어지는 선사상을 <여래선>이라고 한다.

여래선은, 부처라는 인격을 절대적으로 보려는 기존 교종 사상과 차별되는 사상이다. 여래선에서는 기존 경전보다 <능가경>에 나오는 <여래선> 사상을 강조한다.

보리달마가 가장 중요시한 <능가경>에는 4가지 선사상이 나온다.

1단계 : 우부소행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시작하는 단계

2단계 : 관찰의상선

모든 것이 무(無)라는 것을 알고 사물을 바로 알아가는 단계

3단계 : 반연진여선

진여(사물의 실제)를 알기 위해 경전의 진리(반야)에 집착히지 않는 단계

4단계 : 여래청정선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위해 실천하며 살며, 마음이 지배하는 단계

능가경은, 수행과 깨달음을 위한 선을 4단계로 분류한 뒤, 여래선이 최고의 선이라고 규정하였다. 달마 이후 선종 조사들은 스스로의 선을 여래선이라 불렀는데, 그 핵심은 <마음>이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다. 죽고 사는 것도 <마음>이 느끼는 것이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마음>이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마음은 인간이었던 부처와 다를 바가 없다. 마음은 모두 같은 것이기에, 부처의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여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에서 <마음>에 해당하는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우선인 것이다.

손을 하나로 모으는 <합장>은 악수와 다르게, 내 스스로의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수화이다. 사실 우리의 모든 것은 마음이 시키는 것이다.

<밥 먹을 땐 밥을 먹고, 이야기힐 때는 말하고, 차를 마실 때는 차를 마신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 마음이 시키는 하나의 행동이란 것을 중생들이 모를 뿐이다. - 보조국사 지눌 - >

여래선에서 말하는 마음은 크게 2가지이다. 진리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마음을 <진여문>이라고 하고, 죽음이 덧없음을 아는 마음을 <생멸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진리가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모두 <마음>에 달렸으니, 부처가 되어 <성불>하는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다. 따라서 능가경에서 주장하는 것은 부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마음>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종에서는 <경전의 말씀>만 강조한다. 그러나, 경전으로 깨닫는 것은 <지식의 독점>일 뿐이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없고, 심오한 철학을 접할 시간도 없는 일반민에게 성불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이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부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달마의 사상은 획기적이면서도, 지배층에게 배척당할 수 밖에 없는 사상이었다. 그리고, 달마의 후계자들 중에 <마음>을 강하게 강조하는 이들일수록 탄압받게 되었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자는 <달마의 직계 계승자>들이었다. 그 이야기를 계속 해보려고 한다.

4. 이심전심(以心傳心) : 선종의 시조 마하가섭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보자. 선종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는 마하가섭의 이야기이다.

석가가 인도에서 전도할 때,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꽃 한송이를 여러 사람에게 보였다. 모두가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 할 때, 마하가섭이라는 제자가 씩~ 웃으며, 나는 석가모니의 뜻을 알 것 같은데요... 하는 표정으로 석가를 쳐다보았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정법과 원리가 이미 가섭에게 전달되었구나"

이렇게 마음으로 마음을 깨닫는 경지를 이심전심이라고 한다. 그 후로, 눈빛만으로 그 뜻을 깨닫는 이 일화를 <염화시중의 미소>라고 말한다. 이렇게 이심전심의 깨달음으로 창시된 종교가 선종이고, 마하가섭을 인도 선법의 시조라고 부르게 되었다.

선종의 역사를 정리한 <능가사자기>는 마하가섭을 시조로 달마를 중국선조(2대조)로 기록하고 있다.

달마는, 이렇게 마음으로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이심전심>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그 실천사상이 담겨있는 <능가경>을 핵심경전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시조 달마 이후 2조 선사부터 5대 선사까지의 시대를 능가경에 의지한다고 해서, <능가종>이라고 부른다.

1대 달마는, 기존 교종처럼 지식의 유무를 테스트하여 2조를 선택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 사람에게 의발을 전하여 후계자를 뽑은 것이다. 의발이란, 중들이 입는 옷(가사)와 지팡이를 말하는데, 이 두가지를 전수받은 제자가 종파 조사가 되는 것이다.

달마에게는 <혜가>라는 제자가 있었다. 혜가는 면벽수련을 하는 달마에게 법을 구했으나, 제자가 되지 못하였다. 정성을 다하여 달마를 모시고, 성실하게 생활하였으나 제자가 될 수 없었다.

혜가는 입실 허락을 기다리다가 다시 달마에게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달마는 혜가를 바라보았는데,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불안한 너의 마음이 무엇인지 가져오너라.>

혜가는 스승의 눈빛을 이해한 뒤, 칼을 뽑아 왼팔을 끊어 달마 앞에 보여주면서,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켜 달라고 하였다. 달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네 그 마음을 이리 가져오너라. 내가 널 편안하게 해 주어야겠구나.>

그리하여, 마음에서 마음으로 조사를 넘겨주는 선종의 전통이 생긴 것이다. 시조 달마에서 5대조 흥인까지는 이렇게 이심전심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능가경>을 경전으로 선사상을 실천해 나갔다. 그러나, 6대조 혜능에 이르러 <능가경>조차 버리게 되는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그럼 선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혜능>의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5. 혜능과 신수 : 남종선과 북종선으로....

선문의 5대조는 흥인이다. 흥인은 양자강 쌍봉산에서 <선>을 실천하고 있었다. 아직 선종이라는 종파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모임을 <동산법문>이라는 문파로 부르고 있었다. 이 종파는, 달마의 면벽수련과 정토종식 염불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흥인 역시, 부처와 인간의 심성은 동일하며 누구나 부처가 되어 성불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인간의 본성에 접근하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중국의 오랜 분열시기가 끝나고, 수나라에 의해 중국이 통일된 시기였다. 그 때문인지, 흥인은 안정적으로 불법을 설교할 수 있었고,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흥인의 제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신수, 혜능, 법지였다. 신수는 가장 뛰어난 제자로 흥인의 후계자로 지목받았던 인물이다.

반면, 혜능은 남조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흥인을 만나고자 일부러 찾아온 인물이었고, 절에서 방앗간 허드렛일이나 하는 자로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어느 날, 신수는 평소 자신의 사상을 5언률의 게어로 지어 스승이 지나가는 길목에 자랑스레 붙여놓았다. 모든 이들이 신수의 학식에 감탄했으며, 스승 또한 선사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며 칭찬하였다.

몸은 곧 보리수이고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다. 때때로 힘쓰고 털어내어서 번뇌가 다가오도록 해서는 안되겠구나.

그러나, 혜능은 신수의 게어가 이해되지 않았다. <선>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무를 깨닫고, 결국에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깨닫는 것이다. 보리수와 거울의 비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혜능은 글을 모르기에, 다른 사랑에게 부탁하여 글을 적었고, 자신의 게어를 신수의 게어 옆에 붙여두었다.

보리라는 나무도 본래 없는 것이고, 맑은 거울이란 것도 그 본질이 없는 것이다. 본래 아무 것도 없는 사물일 뿐인데, 어느 곳에 먼지가 쌓인단 말인가?

혜능의 게어를 본 흥인은, 진정한 선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깨달은 혜능에게 옷과 지팡이를 전해주고, 선문 6대조로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신수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혜능을 남쪽으로 피신시켰다.

30살을 갓 넘긴, 혜능은 남쪽으로 내려가 16년 동안 평민들과 어울려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종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는 것을 보고 난 후, 그의 토론하여 그를 <마음>으로 제압하였다. 그리고 정식으로 출가하여 <남종선>을 개창하였다.

혜능의 선사상은 달마의 수행법인 좌선수행을 벗어난 것이었다. 혜능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선문답>이었다. 혜능의 6대조부터 선종은 <여래선>을 벗어나 <조사선>이라 불리게 되었고, 동아시아 선종은 바로 이 <조사선> 계통이 된 것이다.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혜능이 6대조가 되어 <남종선>을 연 동안, 정통 제자로 여겨졌던 신수는 무엇을 했을까? 신수와 그를 지지하는 제자들은 <북종선>을 개창하였다. 훗날, 북종선이라 불린 신수의 선종 문파는 경전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승불교의 여러 교단을 선종의 이론으로 통합하려고 노력하였다.

원래 유교와 도교의 이론에도 정통하였던 신수는, 당나라 무측천(측천무후)의 신임을 얻어 대통선이라는 지위에 올랐다. 국가가 인정하는 최고의 선종 고승이 된 그는, 대승불교를 <마음>의 관점에서 통합하려 했지만, 그가 죽은 뒤 교단 자체가 힘을 잃게 된다. 당나라의 지배층 입장에서는 <마음> 따위를 강조하면서 <불교>를 평민들과 <공유>하려고 한 그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또한, 혜능의 진보적인 교단이 남부지방을 석권하면서 신수 일파의 북종선이 일방적으로 비판당했기 때문이다.

신수, 혜능과 같이 흥인의 제자였던 법지는 아예 독립적인 교단을 차려 나갔는데, 그가 주장했던 것은 염불을 통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종파를 <우두종>이라고 하지만, 염불을 강조한다는 교단 성격이 정토종과 비슷하기 때문에 곧 잊혀지게 되었다.

6. <직지인심>을 계승한 선종

일자무식이라 여겨진 혜능이 선종을 <종파>로 만들어 버린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혜능부터 <조서선>이라 불린 선종은 이론적으로 현재의 선종과 유사해졌다.

불립문자

문자에 의지하지 않음

교외별전

경전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음

이심전심

마음을 통해 마음으로 전함

직지인심

사람의 마음(본성)을 한번에 깨달음

견성성불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될 마음을 타고 났으므로, 부처가 될 수 있음

선종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음>인데, <마음>은 결코 경전으로 알 수 없다. 일상속에서 깨달을 수도 있으며, 수행을 통해 깨달을 수도 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으므로, 문자에 의지할 필요도 없으며 서로의 마음을 공유한다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혜능은 이러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주장하였다. 그는, 오랜 시간의 면벽(좌선, 참선)보다도 선문답을 통한다면 더 빠른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말하였고, 어느 순간 단번에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돈오견성)

또, 혜능은 수행을 통한 번뇌 해소보다 깨달음을 통해 바른 성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원래 번뇌와 지혜는 하나이다. 참과 거짓도 수행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에서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 것을 <돈오>라고 하자. 깨닫기 위해 문제를 파악하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을 <화두>라고 한다. 그리고, 큰 <화두>를 풀기 위해 고민하는 것을 <공부>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요즘 이슈가 되는 <화두>는 이거야... 대학갈려면 <공부> 안할래?... 이렇게 단어들은 모두 선종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불가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이다.

혜능이 말한 <조사선>은 자신이 알아야 할 <화두>를 열심히 <공부>해서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는 <돈오>에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깨달음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은 기존 <지식>에 얽매여있기 때문이다. 기존 교종의 입장은 <경전>을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성 자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화두>가 그것인데, 왜 <공부>만 시키려 드는가?

내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달은 안보고 왜 손가락만 보는가?

선종에서 말하는 비유는 위 문장과 같다. 석가가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교종은 석가의 손가락만 보면서 찬양하고 있다. 석가의 <마음>은 이미 달로 향했는데, 교종은 마음이 아닌 석가의 <손가락>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첫 번째 할 일은 석가의 손가락을 떠나 석가의 눈을 보면서 그가 향하고 있는 <마음>을 같이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심전심이다.

7. 선종 문파의 창궐...

혜능 이후, <남종선>은 중국을 대표하는 <선종>이 되었으며, 동아시아 각지에 전파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선종은 그 영향력 만큼이나 종파가 너무 다양해서 이름만 듣고서는 너무 생소할 정도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일본에 유입된 선종 종파들의 이름이기 때문에 간략히 언급만 하고 넘어가보자.

혜능의 문하에서 배출된 큰 종파는 마조도일의 <홍주종>과 석두희천의 <석두종>이다. 특히 혜능의 사상이 선종문파로 활성화 된 것은 <홍주종>의 영향이 크다. 홍주종에서는 마음으로 깨닫기 위해서는 <평상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조도일의 제자인 백장회혜는 선종의 계율을 만들었는데, 함께 수행하고 선문답하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규율이 불가에서 중요시하는 <백장청규>이며, 이 때 부터 선종이라는 종파가 독립적으로 사원을 짓고, 규율에 맞춰 생활하게 되었다.

선종은 <경전>과 <문자>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마음>을 중요하기 생각하기 때문에, <규율>이 강한 편이다. 또, 경전을 대신해서 선조 조사들의 <어록>을 경전과 같이 소중히 다룬다. 신약 성경이 예수의 말을 모아둔 제자들의 이야기라면, 선종의 <어록>은 선종 조사들의 이야기를 모아둔 <성경>이다.

선종에서는 석가모니의 제자였던 마하가습부터 달마, 혜능 등으로 이어지는 법통을 부처의 <직계 사상 계승>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석가모니부터 현재까지의 조사들의 말씀은 곧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후, 마조도일의 홍주종에서 위앙종, 임제종이 나왔다. 석두희천의 석두종에서는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이 나왔는데, 이들 5개의 종파를 선종5가라고 말한다. 또, 송나라 때 임제종에서 황룡파, 양기파가 나와 이 때는 선종7종이라고 부른다.



위앙종

  무위무사 : 마조도일의 평정심 강조, 마음을 평안히 하면 번뇌가 사라짐

임제종

  임제의현의 개창, 황룡파와 양기파 배출, 즉시 깨달음을 강조, 간화선 강조



조동종

  설법과 언행이 중요함을 강조함, 묵조선 강조

운문종

  운문어록에 적힌 적은 글자 수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간결한 깨달음 강조

법안종

  화엄의 일심사상을 바탕으로 선을 받아들여 선종과 교종의 통합을 강조

선종은 고려 이후 한반도에서도 주류 불교종파로 명맥을 이어나갔다. 이 중 법안종은 고려시대 초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불교 통합을 시도하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졌고, 임제종은 불교가 침체되고 성리학이 유행했던 조선시대에도 명맥을 이어나갔다.

특히, 선종 5가 중에서 임제종과 조동종은 중국 송나라 시기 라이벌 관계였다. 그것은 간화선 사상과 묵조선 사상의 차이 때문이었다.

<간화선看話善>이란, 선종 조사들이 남긴 <어록>들을 공식 문서로 만들어 참고 자료로 활용한 다는 뜻이다. 만들어서 보고(看), 선조들과 대화하여(話) 자신의 본질을 알고, 바로 깨닫는 것이다. 간화의 <화>란 앞서 말한 <화두>의 약자이다.

<묵조선黙照禪>이란, 묵묵히(黙) 자신을 찾는(照) 수양법이다. 즉, 고요한 곳에서 수행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서로간의 토론을 통해 자신을 찾는 방법이다. 묵조의 <조>란 자신을 안다는 지(知) 자의 다른 표현이다.

   간화선이든, 묵조선이든 후대 선종 종파들은 한가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으며, 그 고민을 풀기 위해 각각 자신의 종파 이론이 달마의 뜻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안고 있던 고민은 조사 달마에 관한 것이였다.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도대체, 달마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인가? 그가 중국에 남기려고 한 선법은 석가모니의 인도 선법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그러나, 달마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그 정답은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달마에 대해 남긴 기록들은 후대의 제자들이 남긴 이야기일 뿐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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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선종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중국 불교에 대해서도 거의 정리된 듯 싶다. 중국 불교는 이제 끝이 났다. 왜냐면, 중국 송대 이후에는 성리학이라는 신유교가 사회 전반을 자리잡게 되면서 불교 이야기가 역사 속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중국 불교가 유학에 밀리는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고, 한국 불교로 넘어가려고 한다. 한국 불교 이야기는 딱딱한 불교 교리 설명이 거의 없을 듯 싶다. 중국 불교에서 다 짚고 넘어간 듯 싶으니까...

한국에서 불교가 유입된 배경과 불교와 관련된 정치, 경제, 문화적인 논리들, 몇몇 새롭게 등장한 독자적인 종파들을 설명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불교 이야기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처음 시작할 때 이야기 햇듯이 티벳과 인도 불교는 우리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필요할 때만 가끔 언급하도록 하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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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13화. 정토종 : 정통 미륵에서 벗어난 아미타 부처

1. 복잡한 인도 철학을 벗어나 민중의 신앙으로...

자, 지금까지 우리는 중국으로 전파된 대승불교 철학을 살펴보았다. 위진시대의 불교 수준은 노자 사상으로 부처를 이해하는 <격의 불교> 수준이었다. 그러나, 인도 대승 불교의 핵심사상이었던 <공>, <반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불교와 도교는 선후 논쟁을 벌였고, 그 결과 수, 당의 통일국가에서는 여러 종파 불교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당나라에서는 많은 종파의 이념을 하나로 묶으려는 화엄종이 성행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은 모두 <공> 사상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즉, 인도 불교의 참뜻을 알기 위해 철학적으로 불교를 접근한 것이다. 이렇게 <공>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적으로 접근한 종파들을 묶어 <교종>이라고 한다.

<교종>은 민중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인도 불교의 참 뜻을 알았지만, 그 복잡한 <공> 사상을 민중들보고 어떻게 이해하라는 것인가? 책 한권 읽을 돈도 없고, 농사짓기 바빠서 경전에 관심을 둘 시간도 없는 이들에게 <교종>의 심오한 철학은 먼 나라 불교였다.

반면에 쉬운 교리와 민간 신앙을 융합하여 백성들에게 쉽게 다가서려고 노력한 종파들이 있었다. 오늘부터 이야기 할 정토종과 선종이 그것이다. 이 종교들은 어떻게 생겨나 민중속으로 파고 들었는지 볼까나?

2. 정토종에서 만날 수 있는 부처 - 아미타

원래 <정토, 선> 등의 용어는 대승불교의 수행방법일 뿐이었다. <선>이란 말 자체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참선>을 뜻한다. <정토>란 <서방극락세계>를 뜻하는 말로 <정토>에 이르기 위한 수행을 강조한 용어였다.

<교종>이란, 정통 교리인 <공> 사상을 체계적으로 접근한 종파를 말한다. 반면 <선종>은 체계적인 <수양방법>을 우선시한 종파를 말한다.

정토종은 넓은 의미에서는 선종이지만, 실제 다른 선종과 수양체계가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정토사상>을 가진 종파이다. 오늘은 정토종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정토종은 정토삼부경이라 불리는 3권의 경전에서 출발한다.

<무량수경>    <아미타경>    <관무량수경>

이 3권의 경전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사상은 <아미타> 사상이다. 무량수경은 아미타 부처가 되기 전 인간이었던 법장 스님이 아미타불이 되는 과정을 쓴 <드라마>이다. <아미타경>은 아미타불의 세계인 서방극락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설명하고, 민중들이 아미타 세계로 가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다. <관무수경>은 부처도 아미타 세계인 <정토>을 알고 있었으며, 비구니들에게 수행방법을 가르쳐주었다는 내용의 책이다.

그럼 이 경전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아미타>는 누구인가? 아미타는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을 하고 있던 인도의 보살승 <법장>을 말한다. 법장은 부처가 되기 위해 서원을 세우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선행을 시작하였다. 부처가 되기 위해 세우는 서원을 <본원>이라 한다.

법장은 많은 중생들에게 착한 일을 해야 부처가 될 수 있었으므로, 48살때까지 48개의 서원을 세웠다. 그 서원들이 곧 서방극락정토의 설계도가 되어 훗날, 아미타 세계의 10만억 국토가 된 것이다. 이 <서방극락세계>는 고통도 번뇌도 없다. 오로지 즐거움과 진리만 있을 뿐이다. 누구든 이 곳에 초대 받으면 끝없는 기쁨 속에서 살 수 있다. 기독교로 따지면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이랄까?

<아미타>란 부처의 이름도 <영원한 구원>을 뜻한다. 아미타(阿彌陀)는 원래 아미타바(Amitabha)라는 인도어의 발음으로 <무한>이란 뜻이다. 발음으로는 아미타로 번역하지만, 의미로 해석하면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광불(無量光佛)이 된다. 무량수불이란, <무한 대의 수명을 가진 자>, 무한광불은 <무한 대의 밝음을 가진 자>라는 뜻이다.

자, 법장스님이 깨달음을 얻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그가 세운 낙원이 바로 <극락정토>이다. 그 극락정토는 서쪽으로 수천만의 불국토들을 넘어야 겨우 보이기 때문에 서방극락정토라고도 한다. 그런데, 극락정토는 하늘에 있는 도솔천과 달리 지상에 있다.

석가모니가 보살일 때 수양을 했고, 지금은 미륵부처가 설법을 하고 있다는 <도솔천>은 어디일까? 불교에서는 우주의 중심을 <수미산>으로 보고 있다. 그 수미산에서 하늘로 12km 정도를 가면 도솔천이 있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는 법장스님이 48개의 서원을 세운 그 곳에 있기 때문에 서쪽으로 십만억불의 세울을 지나가면 보이는 것이다. 어짜피 살아 생전에 갈 수 없는 것은 똑같다.

그러나 죽은 뒤 극락에 가는 방법은 <도솔천>에 가는 방법보다 훨씬 쉽다. <도솔천>은 <고급 보살>들이 깨달음을 완성하기 위해 가는 곳이다. 즉, <공>이 무엇인지 알고, 선행을 많이 한 선택된 자들이 간다는 뜻이다. 도솔천은 확실히 <교종>적이다. 그러나, <정토>는 누구나 쉬운 방법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기본 인성이 있기에 마음 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한다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극락에 가는 것을 <왕생>한다고 말하는데, 왕생(往生)이란, <가서 태어난다>는 뜻이다. 즉, 가고 싶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죽은 뒤 그곳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 가장 쉽게 가는 방법은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염불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10번을 외치는 것이다.

3. 말법의 시대를 예고한 정토종의 종말 사상

정토종이 처음 등장한 것은 혼란기인 남북조 시대였다. 남북조 시기는 <공> 사상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어 종파 교단이 성립되어 가던 시기였다. 반면, 백성들은 오랜 전쟁으로 지쳐 쉽고 빠르게 <천국>가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시기였다.

혼란기에 민중들이 <천국>가는 방법으로 숭배했던 것은 <도가>였다. 도교는 민중들 사이에 뿌리가 깊었다. 후한말 <황건적의 난>은 도교의 신선술을 숭배했던 <오두미교>의 민중 신앙에서 시작되었다. 전쟁에 지쳐 속세를 떠나고자 했던 청담 사상가들이 나누었던 이야기도 <도가> 이야기였다. 신비한 <도사> 이야기는 민중들의 시름을 달래주며, 새로운 세상의 희망을 주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도사들이 천살까지 수명을 누리며, 세상을 유유자적하며 산다는 이야기였다. 천살까지 수양을 마친 도사는 하늘로 올라가 구름과 학을 벗삼아 자유를 누린다.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남북조 시기, 또 하나 유행했던 사상은 <종말사상>이었다. 중국의 전통 종말사상엔 추연의 <음양오행가> 사상이 들어있다. 세상은 화,목,금,수,토의 오행이 돌고 돈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상극이 있다. 화(불)은 수(물)에 의해 제압당한다. 그러나, 수(물)은 토(흙)에 의해 제압당한다. 서로가 돌고 돌면서 상극을 이룬다.

그것을 정치에 도입하면? 앞 왕조에 상극인 새로운 사상의 왕조가 탄생한다. 그러나 왕조의 종말이 되면 또 다시 상극인 새로운 왕조가 탄생한다. 세상은 돌고 돌며 <종말>은 반드시 온다.

그러나, 음양오행에 의한 종말 사상은 한계가 있다. 우주가 계속 돌고 돈다는 원리를 지향히기 때문에, 영원한 종말과 평화는 오지 않는 것이다. 이 한계점을 메운 것이 도교와 불교이다. 도교에서는 왕조가 몰락하고 민중의 세상이 오면 도법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남북조의 혼란기, 불교는 종말 사상을 <말법사상>으로 체계화시킨다. 말법사상은 불가의 역사를 3단계로 나눠 인간의 종말이 있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불법이 체계적으로 잡혀가는 시기를 <정법의 시기>, 불법이 유지되는 시기를 <상법의 시기>, 불법이 사라지는 시기를 <말법의 시기>로 분류한다. 원래 3법의 시기를 나눈 것은 철학을 논의하던 <교종>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토종은 이 말법 사상을 확대하여 <불교식 종말 사상>으로 바꿔 버린다.

자 그럼 정토종의 종말사상을 한 번 볼까?

말법시대는 불법이 사리지고 무법천지가 되는 세상을 말한다. 무법천지의 세상에 무슨 경전이니, 말씀을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필요한 것은 <믿음> 뿐이다. 믿음의 대상은 <인간>이다. 인간의 마음에 부처가 있고, 인간이 부처가 되겠다는 믿음만 있다면, 불법이 있고 없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믿음>이 있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며, 믿음이 없는 자는 불법이 사라지면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럼 누구에 대한 믿음을 보여야 할 것인가? 바로 <아미타>인 것이다. 인간으로서 태어나, 인간을 위해 살다가, 인간을 위해 지상 세계에 천국을 만든 이가 아미타이다. 멀리 있는 천국, 어려운 경전을 공부해야 갈 수 있는 천국이 아니라 모든 <인간 부처>들을 위해 10억만 국토를 준비한 아늑한 천국이 지상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극락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려운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의 명호를 계속 되새기면서 극락을 꿈꾸는 것이다. 아미타의 후배가 관세음이기 때문에, 아미타 신앙과 아미타를 도와 지상에 온 관세음도 믿음의 대상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것이 민중들을 끌어모은 정토종의 가볍고도 명쾌한 불교 진리인 것이다.

4. 미륵과 미타는 뭐가 다를까?

불가에서는 미륵이 인도의 4세기 경에 실존한 인물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증거는 없다.) 미륵은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라는 유식철학의 시조이다. 전통 대승 철학에서는 공사상과, 반야(지혜) 사상을 가장 중요시 했다. 다른 말로 하면 철학을 <공부>하라는 것이다.

미륵은 그 철학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상과 하늘 사이에 있는 도솔천에서 보살로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는 미래의 부처이다. 미륵의 제자인 무착은 삼매경에 빠져들어 미륵을 만났고, 그 때 미륵보살은 훗날 민중을 위해 내려올 것이란 믿음을 말하였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미륵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올 것이다.

원래 세상에 내려와 정의(정법)을 실현하고 민중을 구원할 패왕은 전륜성왕이다. 그 때 미륵은 성왕의 오른팔로서 어려운 세상의 민중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즉, 미륵은 <구원자>인 것이다. 기독교로 따지면, 예수와 같은 존재랄까?

미륵 신앙은 백성들에게 하늘에 있는 <절대자>를 떠올리게 했다. 백성들은 스스로 부처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포기했다.

미륵 신앙은 왕과 귀족들이 자기 합리화를 하는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국왕이 전륜 성왕이라면, 신하인 귀족들은 미륵이다. 왕은 곧 부처요. 왕에 대한 충성이 곧 <구원>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특히 위진남북조의 혼란기에는 수많은 국가에 국왕이 있었고, 불교의 미륵 신앙은 왕권 강화에 이용되기도 했다. 불교가 본 뜻을 주장하면서 반론을 제기하면 국왕은 불교를 금지시키는 <폐불>을 일삼았다. 불교, 도교, 유교라는 종교의 세력 균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불교의 심오한 참뜻이 이해되면서 미륵신앙의 정치적 이용도 줄어들었다. 대신에 지배층이 직접 하늘로 올라간다는 새로운 미륵 신앙이 생겨나기도 한다.

위진남북조 시기에 미륵이 구원하러 내려온다는 사상을 <하생 미륵신앙>이라고 해보자. 통일국가인 수, 당 시기에 미륵이 되서 올라간다는 사상을 <상생 미륵신앙>이라고 하면 되겠다.

<상생 미륵신앙>은 불교의 참 뜻을 이해하면서 생긴 기이한 현상이다. 지배층은 스스로가 미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현생의 보살>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마음을 닦고 수양을 하면 훗날 미륵이 되어 <도솔천>에 올라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배층>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일반 불신도들은 귀족들이 <보살 출신>이라고 믿어야 했다. 어찌되었던 <교종>의 철학은 지배층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민중들이 직접 부처가 될 수 있으며, 부처가 될 방법까지 상세히 알려준 것이 바로 <미타신앙>이었다.

귀족들처럼 경전을 읽을 시간도 없고, 심오한 불교 철학이 뭔지도 모른다. 그냥 <마음> 자체로 부처가 될 수 있으니 <나미아미타불>을 외치면 되는 것이다. 무량수경에는 <아미타불을 10번 외우라>는 구절이 있다. 이 10번의 정성스런 외침이 반복되면 <극락정토>의 문이 열린다. 아미타는 10억단위의 극락을 준비해놓고 모든 민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요즘으로 따지면, <우리 행복하게 잘 살께요>만 외치면 모든 국민에게 아파트 무료 분양을 해주는 것과 같다.

마음을 염(念)이라고 한다. 마음으로 부처를 생각하는 것을 염불(念佛)이라 하며, 염불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를 세는 도구를 염주(念珠)라고 한다.

<교종>의 핵심이 경전이라면, 정토종 미타신앙의 핵심은 염불과 염주이다.

염불을 대중화한 사람은 정토종을 종파로 일으킨 수나라의 도작이다. 도작은 <아미타불>을 얼마나 말했는지 콩을 세면서 잊지 않도록 했다. 나중에는 염주를 만들어 염불의 횟수를 세면서 마음을 가다듬도록 했다. 원래, 염주는 초기 불교에서는 쓰이지 않았던 도구이다. 초기 대승불교에서도 마음의 번뇌를 잊는 수양법으로 염주알을 세도록 했으나, 본격적으로 염주를 중요시 한 것은 정토종부터이다.

5. 정토종을 이끌어 간 사람들.

중국에서 미타신앙을 이끌어간 사람들을 알아보자.

본격적으로 미륵, 미타 신앙이 알려진 것은 위진시대 <도안>부터이다. 도안 이야기는 8장에서 다루었다. 도안은 노자와 부처를 구별조차 하지 못하는 불교 수준을 한심하게 여기며, <미륵 신앙>을 강조하였다.

중국인들은 미륵신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안은 <노장사상>에 있는 <제천사상>을 <제석천>과 결부시켜 미륵 신앙을 강조하였다. 격의불교와 종파불교의 중간쯤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도안의 제자인 혜원은 미타신앙으로 돌아선다. 미륵이 머무는 근거지인 <도솔천>보다 <서방극락정토>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백련사라는 염불 결사 단체를 만들어 아미타불 앞에서 염불을 외웠다.

그러나 혜원의 백련사는 그들만의 염불이었다. 아미타 신앙의 사상적 체계는 남북조 북위의 <담란>에서 시작된다. 정토종의 시조인 담란은 염불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스스로 노력해서 번뇌가 없는 무아 상태에 이르고, 그 상태에서 아미타불을 외치면 훗날 극락정토에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나라 초기 도작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정토에 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다. 혼란한 사회에서 백성들을 이끌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종파>가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도작의 생각을 정리한 사람이 제자인 선도이다. 선도는 염불을 외우고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만들었다. 극락정토에 가기 위해 미타불에게 공손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정토종의 간략한 수행방법과 예배 의식이 만들어졌다.

이 수행 방법에서 한가지 더해진 것이 바로 대승불교의 철학인 <나눔>이다. 염불을 외워서 자기 혼자만 극락에 가면 소승불교랑 다를 바가 없다. 대승불교의 철학은 만민의 구제이다. 따라서 선도는 수행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며, 수행에는 서로간의 예절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 서로의 수행 상태와 성취감을 서로 공유하고, 그 아름다운 공덕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로서 정토종은 민중적 불교 사상으로 토대를 잡았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가지 논쟁이 발생한다. 아미타불만 외치면 민중들도 극락에 간다는 정토종 사상과, 누구나 <즉시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선종의 사상은 그 본 뜻이 같은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이질적인 사상인가?

정토종 사상이 확립된 당나라 이후, 정토종은 선종과 최고 <선> 자리를 놓고 논쟁에 들어가게 된다. 그것은 수양방법상의 논쟁이었다. 아미타불에게 수양하는 것과, 좌선과 명상으로 수양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자, 그럼 다음 장에서 선종 이야기를 해보자. 선종의 역사적 배경과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정토사상과 선 사상이 같은 것일지 다른 것일지 이야기해 보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 불교사에 대한 이해 : 참고할 만한 책들

아미타경 사경 및 해설(상)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정여 (혜성출판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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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을 꿈꾸다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김정희 (보림,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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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원영 굉오 (불광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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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정토에 왕생하는길)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이태원 (운주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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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히로 사치야 (황금가지,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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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명료한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스티브 하겐 (우리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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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뜻깊은 불교 이야기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김달진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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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12화. 여황제 측천과 법장의 뜻이 딱 맞아 떨어진 이유는?

1. 모든 철학을 녹여 버리는 화엄의 철학

자 지금까지 우리는 <불교의 참뜻>을 알기위해 동분서주한 중국 불교의 혼란한 역사를 보았다. 위진남북조의 혼란기를 겪으며 성숙해진 불교는, 현장법사의 구법여행을 통해 <유식> 사상까지 포괄한 진정한 불교 교리를 모두 알게 되었다.

그럼 이제, 그 많은 불교 교리들을 통일해야 할 때가 왔다. 통일된 당나라에서, 통일된 종교 교리를 내세우는 종파가 있었으니, 바로 <화엄종>이다. 자, 그럼 화엄종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화엄종은 <화엄경>을 최상위 경전으로 규정한 뒤, 불법을 이야기하는 종파이다. 그럼 화엉경은 무엇인가?

화염경이란, <대방광불화엄경>의 약자로, <대>는 크다, <광>은 넓다는 뜻이다. <불>은 부처겠지? 한마디로 크고 넓은 부처들의 이야기이다.

화엄경은 보살 수행을 거쳐 부처가 된 <비로자나불>이라는 분이 <말씀하시는> 경전 이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간단하다.

   하나의 티클에 모든 세계가 들어있으니, 모든 세계는 즉 하나이고, 하나는 곧 전체인 것이다.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

무슨 말일까? 심오한 교리이지만, 역사적 배경 정도로 설명해보자.

혹시 양쪽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을 본 적이 있는가? 없으면 해 보시라. 거울을 일정거리에 두고 서로를 비추면, (ㄱ)의 거울에 (ㄴ) 거울이 비친다. 그런데, (ㄴ) 거울도 (ㄱ) 거울을 비추고 있으므로, (ㄱ)의 거울안에는 (ㄴ) 거울이 비추고, 또 그 안에 (ㄱ) 거울이 비치며, 또 (ㄴ) 거울이 비친다.

결국 (ㄱ) 거울 안에 (ㄴ) 거울, 그안에 다시 (ㄱ) 거울.... 이런 식으로 점점 작아지는 거울이 끝없이 비춰진다. 그러나, (ㄱ)의 맞은 편에 있는 (ㄴ) 거울을 치우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ㄱ) 거울은 다시 평온해진다.

우주가 그런 것이다. 거울이 거울을 비추듯, 우주란 어떤 사물의 상호 관계에 의해 이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ㄱ)이라는 거울 안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거울 안에 또 다른 거울이다. 그러나, 사실 그 본질은 (ㄴ) 거울인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은 가장 방대한 근원에서 출발하며, 그 카다란 근원이라는 것도 거울 안에서는 너무나 작은 존재일 뿐이다.

한마디로 하나(개체)는 전체(본질)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상>인 것이다. 이렇게 거울 속에 거울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것을 <인드라망>이라고 한다. 뭐 그 당시는 거울이 아닌 구슬 속에 구슬이라고 했지만...

이 거울이 비추는 세계는 4가지 세계이다. 먼저 거울이 비춘 현상세계(사법계), 거울 본체의 세계(이법계), 현상과 거울의 관계를 아는 세계(이사무애법계), 현상 세계에서 비춰진 각각의 사물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세계(사사무애법계) 이다.

우리는 거울 본체가 아니라 거울 안의 현상 세계에서 보이는 것이 진리라 믿고 살기 때문에 <사사무애법계>를 가장 먼저 알아야 한다.

현상의 세계는 인연(연기)로 이루어진다. 육체는 태어나고 소멸된다. 흙은 땅이 되고, 비는 물이 되며, 흙과 물이 곡식이 된다. 곡식은 인간의 식량이 되고, 인간이 먹은 식량으로 새 생명이 탄생한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이고, 하나는 모든 원리가 된다. 그리고 그 모든 현상을 비추는 것은 거울이라는 본체이다.

예로, <인간의 모습>을 들어보자. 눈은 눈이고, 코는 코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절대 분리될 수 없다. 떼어놓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기관들이다. 각각의 기관이 뭉쳐야 인간이 되는 것이고, 하나 하나가 스스로를 고집한다면 인간이라는 본체는 아무 의미 없다. 눈, 코, 입 등은 모두 각각의 것들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하나일 뿐이다.

이대로 대입해보자. 수없이 많은 사물들은 각각이지만, 그것을 비추는 큰 거울 앞에서는 하나와 같다. 결국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본질을 알면 모든 것이 결국 <본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먼지(티클)가 거울이요, 거울이 티클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사물을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진리를 찾는 것, 깨달음을 찾는 것, 수행을 하는 것, 말씀을 찾는 것, 노력하는 것....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거울>이 비추는 다른 모습일 뿐이다.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화엄의 사상을 <원융사상>이라고 한다.

이 화엄의 철학이 수, 당 나라의 통일국가에서 체계화 된 것은 한 두사람이 어쩌어찌 정리하다 보니 탄생한 우연이 아니다. 화엄의 철학은 가장 통일 국가의 철학에 걸맞는 사상적 이념을 제공해 준 것이다. 한반도와 왜에서도 화엄종은 통일 국가 시기에 융성하였다.

왜 화엄은 통일 철학일까?

간단하다.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근원으로 통한다는 것은, 모든 분열된 국가가 <통일된 왕조>로 귀속된다는 정치 이념과도 딱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이다.> 이 말을 정치적으로 해석해보자.

<하나>란, 국왕을 뜻한다. <전체>란 백성을 뜻한다. 그렇다면, 국왕은 곧 국가이고, 국가는 곧 백성들의 모임이다. 백성은 곧 국왕으로 귀속되고, 국왕은 백성의 평안을 위해 노력한다. 불가의 화엄 사상이 유교의 <덕치주의> 사상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만약 북한 김일성 일가가 불교도였다면, 제일 먼저 화엄 철학부터 북한 주체사상에 집어넣었을지도 모른다.

또, 통일된 국가에서는 통일된 종교 사상을 원한다. 위진남북조의 혼란기처럼 수많은 종파가 난립할 경우, 국가로서는 골치 아프다. 국가 철학을 지지해 줄 핵심 사상이 정해져 있는 것이 편하다.

그런데, 화엄경은 모든 불교 사상을 화엄 철학으로 녹여 버릴 수 있다. 열반경에서 말하는 <모든 인간은 불성이 있다>는 것도 화엄은 인정한다. 우주가 비추는 거울 안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결국 <거울>이라는 본질이 비추어진 것이므로, 당연히 모든 인간은 불성이 있는 것이다. 단, 불성은 인간만 있는 것이기에 무생물에는 없다고 말하여 차별을 둔다.

법상종에서 말하는 <마음> 역시 화엄경은 받아들인다. <마음>도 <거울> 속에 비치는 것이 아닌가? 단, 화엄종에서의 <마음>은 인간의 번뇌와 고통이 아니라, 거울이 비춰주는 <깨끗한 마음>이다. 화엄종은 인간의 본질이 우주와 같이 때문에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쪽을 좀더 비중있게 말하는 것 같다.

수나라의 통일 철학인 천태종은 지식(교)과 깨달음(선)은 같은 것이라는 교선일치를 말한다. 화엄종은 이것 역시 받아들인다. 단, (교)와 (선) 중 어느 것이 먼저냐는 선후논쟁은 계속 전개한다.

모든 철학을 받아들여 녹일 수 있는 화엄의 <원융사상>은 통일된 왕조에서 통일된 철학으로 받아들이기 좋았다. 그럼 구체적인 화엄 철학을 한 번 볼까나?

2. 화엄의 교판 논쟁과 성기품설

혼란기인 남북조 시대, 화엄종도 초기에는 <도사>들과 싸우는 학단에 불과했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하나요, 하나란 모든 것이다>라는 이론을 도사들이 트집잡았던 것이다.

장자가 말하기를,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인 내가 꿈에서 인간이 된 것인가> 라고 하였다.

이 말에서 느낄 수 있는 장자의 철학은 이 것이다. 만물은 결국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하니,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된 내가 진짜 나이지 않을까? 결국 내가 만물 속의 하나이기에, 만물은 나이고, 나를 포함한 만물은 모두가 평등한 것이다. 진정한 평등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만물이고, 만물이 곧 나인 것이다.>

도사들은 장자사상과 화염 사상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격의 불교>시기엔 화엄종도 도교 이론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화엄학파는 <도사>들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받아들였다. 가장 먼저 열반종의 <불성>을 받아들인다. 만물 속에 인간이 있고, 인간은 결국 우주의 본질이다. 따라서 어떤 인간이든 우주의 본질인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품>이라고 한다. 따라서, 누구든 수양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 자체를 <성기품>이라고 하며, 그 수행 방법을 10가지로 나눠 놓은 단계를 <십지품>이라고 한다.

그와 동시에 <화엄경> 격상 작업이 시작된다. <화엄 철학>은 도교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모든 종교보다 화엄경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래서 5개의 종교와 열 개의 종파를 모두 순위를 매긴 후 <화염경>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화엄종은 산과 같고 바다와 같다. 산에 수많은 동물들(각 종파)가 산다면 화엄종은 산 그 자체이다. 바다에 수많은 생물(각 종파)가 산다면 화엄종은 그 모든 생물들을 끌어안고 생명을 주는 바다 자체이다. 그리하여, 흩어진 모든 종파는 화엄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는 것이다.

3. 법장과 측천무후

초기 화엄경은 두순(557-640)에서 시작한다. 두순은 도교의 도사들이 <화엄경>을 <노장사상>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발하였다. 그래서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기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열반종 사상을 화엄종에 포함시켰다. 그가 화엄종의 시조이다.

2대조 지엄은 화엄경의 주석서인 수현기를 저술하면서, <유식사상>을 화엄종에 포함시켰다. 전통 <공> 사상과 다르게 <마음>을 강조하면서, <모든 것은 마음이다>라는 사상도 화엄철학과 같다는 것이다. 지엄에게는 2명의 특출난 제자가 있었다. 한명은 한반도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이었고, 또 한명은 화엄학을 완성시킨 <법장대사>였다.

의상은 우리나라 사람이니, 우리 이야기에서 다루고 지금은 <법장>이야기를 해보자.

법장이 살았던 시기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중국 여황제였던 <무측천>의 시대였다. (유교사학자들은 보통 측천무후라고 부르며, 황제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 고조 - 당 태종 - 당 고종 - 당 중종 - 당 예종 - 측천무후 - 당 중종 (복위) - 당 예종 (복위) - 당 현종 - 당 숙종 - 당 대종 - 당 덕종 - 당 순종 - 당 헌종 - 당 목종 - 당 경종 - 당 문종 - 당 무종 - 당 선종 - 당 의종 - 당 희종 - 당 소종 - 당 애종

(표) 측천무후는 당 태종기부터 활동하여 당 현종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역사가들이 흔히 말하는 <여자의 난> 시기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데, 당나라 전성기를 모두 포괄하고 있으며, 당나라 역사의 1/4을 차지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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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의 젊은 시절, 고령의 시절 사진화>

무측천의 시기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특이한 시기였다. 무측천은 당 태종의 후궁으로 <무미랑>이라고 불린 여자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거대한 자금을 가진 개국공신으로서 산둥지방의 상인이었다. 그러나, 당 태종은 그녀의 집안 사정 문제로 무미랑을 멀리했다. 무미랑은 당시 황태자였던 <고종>을 사랑한다. 한 여자가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은 유교주의 입장에서는 상상 자체가 안되는 일이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고종의 왕비인 왕황후가 이쁜 첩들을 모함하기 위해 <무미랑>을 일부러 고종에게 붙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까? <무미랑>은 훗날 고종의 총애를 얻어 왕황후를 비참하게 죽여 버린다.

그러나 고종은 당나라 최전성기의 왕이었다. 그녀는 고종이 늙었을 때,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신의 아들과 남동생인 중종, 예종을 왕으로 두었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직접 여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유교사회였던 중국에서 여자만의 힘으로 여황제가 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창업공신과 남북조 시대 구귀족들의 대립을 이용하였다. 당나라 창업공신은 <관롱집단>이라 부르는 세력으로 북위 이래 이민족 집단에서 비롯된 인물들이었다. 무측천은 낙양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 <산둥귀족>들을 끌어들임으로서 창업공신 집단을 말살하고 새로운 나라인 <주>를 세웠던 것이다.

황제가 된 무측천은, 기존의 모든 사상과 종교를 새롭게 제시하였다. 창업공신의 특혜를 무시하고, <과거제도>라는 시험제도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였다. 장안 대신 낙양을 새 근거지로 하였고, 토지제도와 세금 제도를 고대 <주>나라의 제도로 복원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종교계에서도 새바람이 불었다.

당나라가 건국되고 국교는 <도교>였다. 남북조 시대 북위에서 구겸지가 <도교>를 창립한 이후, 도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아왔다. 불교 역시 철학체계와 교단, 종파를 두어 도교의 라이벌이 되었지만, 당을 건국한 이연은 도교에 좀 더 힘을 실어주었다. 

여황제가 즉위하자 국교인 도교와 달리 정권에 충실한 통일 종교 철학이 필요하였다. 이 때 법장이 등장한 것이다. 그동안 쌓인 중국 불교 이론을 집대성하여 <화엄학>을 완성하고, 그것이 얼마나 체계적인지 여황제에게 직접 설명하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일화가 바로 <금사자의 비유>였다.

비우컨대 이 금사자의 본체는 금이라고 하는 질료이고 사자의 모습은 현상에 불과합니다. 금사자의 형상은 허무하여 실제가 없고 변동합니다.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한 무더기의 금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은 한 무더기의 금으로 고양이나 개, 호랑이의 형상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바로 오늘의 홍안이 내일의 백발로 되어 버림을 우리가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지, 수, 화, 풍 등 네 개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현상으로서의 사건은 비록 변할지라도 볼질로서의 그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사자의 모습이 늙어갈지라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의 본질이란 결국은 그 현상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마치 금사자의 형상이 없다면 그 존재마저도 알 수 없음과 같지요. 마찬가지로 육체라고 하는 껍데기가 없다면 인간의 본질이라 할 정신도 발휘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과 그 원리는 상호 의존하고 보완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무측천은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물론, 법장이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했을 것이다. 이 말 뜻은 이렇다.

금사자를 볼 때, 우리는 당연히 <금사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금사자가 본질일까? 아니다. 녹여서 다른 동물로 만들어 버리면 바뀐다. 금고양이, 금호랑이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든 그 본질은 <금>이다.

결국 사물의 본질은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못 보는 것 뿐이다. 그럼 사물의 본질을 보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형식일 뿐, 그 실체는 <마음>으로 알아야 한다.

그럼 마음은 무엇인가? 진리를 바라보는 <거울>이다. (ㄱ)이라는 거울이 (ㄴ)이라는 거울을 비치면, (ㄱ)이라는 거울에는 수많은 (ㄱ) (ㄴ) 거울들이 점점 작아지면서 무한으로 서로를 보여준다.

거울과 거울은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그 안에 비친 모든 사물들도 서로 의존하고 보완되어 있다. 사물의 본질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거울이라는 본질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이다.

무측천은 생각했다. 여자들을 무시하는 유교는 필요없다. 개국공신들과 밀착된 도교도 필요없다.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된다는 화엄종이야 말로 시대가 원하는 철학이 아닌가?

무측천은 여황제의 귄위 강화를 위하여, 법장은 불교의 힘으로 도교를 누르기 위해여 서로 힘을 모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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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의 건릉 사진 : 입구>

다음 장에서 다룰 내용은 지금까지 불교와는 사뭇 다른 철학과 역사를 가진 종파 불교이다. 중국 정토종, 선종의 이야기를 한 번 다뤄볼까?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 불교사에 대한 이해 : 참고할 만한 책들

초기화엄사상사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오다 겐유 (불교시대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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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손에 넣고 중국을 치마폭에 담다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장석만 (부표,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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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이야기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초등역사교사모임 (늘푸른아이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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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세계 안에서의 나눔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안형관 (이문출판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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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히로 사치야 (황금가지,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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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명료한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스티브 하겐 (우리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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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불교 박사 되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석지현 (민족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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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선의 사기꾼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전윤 (신아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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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뜻깊은 불교 이야기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김달진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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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11화. 삼장법사의 구법여행과 훗날 등장한 손오공 이야기

1. 진정한 종파불교로 거듭난 불교

오늘 이야기는 중국 불교의 전성기인 <당나라> 시기의 이야기이다. 이 시기는 중국 종파 불교가 완성되어 다양한 불교사상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일단 간략하게 중국 역사를 살펴볼까?

춘추전국시대

위진남북조

5대10국

BC770 -

BC221-

BC206 -

265 -

581 -

618-

907 -

960 -

혼란기

통일기

통일기

혼란기

통일기

통일기

혼란기

통일기

제가백가

법가

유가/불교유입

격의 불교

종파형성

종파불교

유교중흥

유학완성

불교의 전파와 관련된 중국 역사는 <한>나라부터이다. 그러나, 유학이 국교로 지정된 한나라 시기에 불교는 도가와 마찬가지로 <교양 철학> 수준이었다. 중국, 한반도, 왜 등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도무 <혼란기>였다. 혼란한 시기에는 새로운 국가 철학이 필요했고 불교가 유교를 대신하여 그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낸 것이다.

그러나, 초기 불교의 문제점은 불교와 국가 권력이 너무 밀착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위진남북조의 불교는 불교의 참 뜻보다는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했다. 구마라집 이후 끊임없이 시도된 <불교의 참뜻 찾기 프로젝트>는 국가 불교에서 벗어나려는 불교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위진남북조의 혼란기 속에서 불교의 독자성을 유지하기란 어려웠다. 불교가 진정한 <종파 불교>로 탄생한 것은 통일 국가인 <수, 당> 나라 시기였다.

<수>나라의 <천태종> 이야기를 지난 시간에 했었다. 그러나, 수나라는 통일후 성급한 <통일 정책>으로 망하였다. 결국 수 왕조는 이종 사촌인 이연이 건국한 <당나라>로 넘어가게 된다. 이 시기가 진정한 중국의 종파불교 시대이다. 오늘부터 이야기 할 주제는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주었던 <당>나라 시기의 종파 불교 이야기이다.

2. 각 종교간에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불교의 역사와 종파관계는 너무나 복잡하고, 그 이론이 심오하다. 그렇다고, 역사를 통해 간략히 보는 종교인데 심오한 철학 하나 하나를 다룰 수도 없다. 그걸 다루기 시작하면 <불교 방송>이야기가 될 것이고, 그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다.

당나라까지 불교의 전파과정을 간략히 정리하면서 복습해보자.



지금까지 전개한 중국 불교사의 이야기는 이렇다.

인도에서 <보살>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대승불교>가 간다라 미술 전파와 함께 동아시아로 넘어왔다. 그런데, 보살이란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승>을 말하며, 그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민해야 할 철학이 반야(지혜)였다. 그 반야 사상의 핵심이 바로 <공> 사상이다.

혼란기의 중국인들은 <공> 사상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도가의 <노장사상>을 활용하여 부처의 사상을 이해했다. 도가 사상으로 불교철학을 이해하는 것을 <격의 불교>라고 한다.

그러나 구마라집이 인도 대승 경전을 번역하면서 도가를 벗어나 독자적인 중국 불교 철학이 시작된다. 그 중에서 반야사상을 강조한 학파는 삼론종으로, 깨달음과 열반을 강조한 학파는 열반종으로, 아미타불 같이 보살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 학파는 정토종으로 발전해갔다.

수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하면서 반야과 깨달음을 동시에 감싸안으려는 학파가 등장했으니, 그들이 바로 천태종과 화엄종이다.

반면, <이러한 지식들이 과연 부처가 처음 말한 진리와 같은 것일까? 너무 한쪽 측면에만 치우친 것은 아닐까?> 는 고민을 안고, 다시 인도에 불법을 찾아 떠난 이가 있으니, 이 사람이 바로 <삼장법사>로 알려진 현장이다. 현장은 <공> 사상에만 치우친 중국 불교에 <공> 사상도 결국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유심> 사상을 상기시켰다.

초기 격의 불교 시대에 번역된 불경을 고역경, 구마라집이 번역한 불경을 구역경이라 한다면, 현장이 번역한 불경을 신역경이라고 한다. 성경에 구약, 신약의 시대가 있듯이, 불법의 시대도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야 할까?

3. 현장(602-664)의 구법 여행이 시작되다!

중국 당나라는 세계 불교사를 통털어 가장 활발한 불법 종파가 활동하던 시기였다. 위진남북조를 거치면서 이론을 쌓아온 불교의 각 학파들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종파>를 만들었다.

그러나, 종파가 많아질수록 더 큰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대체 석가의 참 뜻은 무엇일까? 각 종파들은 자신들이 석가의 참 뜻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석가의 가르침이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을까?

수문제 때 태어난 현장은 20살 때 출가하였다. 하지만, 어느 한 종파의 이론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여기 저기 학파들을 돌아다니던 현장은 점점 실망하였다. 사상적인 체계도 서로 다르고, 같은 불경을 놓고도 종파의 입맛에 따라 해석이 달랐다. 왜 일까? 왜 석가의 마음이 이렇게 나눠진 것일까?

현장이 생각한 종파들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면서 코끼리를 설명하는 것과 같았다.> 코끼리의 코를 만진 사람은 그것이 코끼리라 말하고, 다리를 만진 사람은 그것이 코끼리의 본체라고 말한다. 작은 인간이 커다란 코끼리의 본체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현장은 석가의 참 뜻이 담겨있는 인도 원전들을 직접 보고, 자신이 다시 해석하기로 결심한다. 쉽게 말하자면, 국내에서 영어를 백날 해보았자 발음도 안되고 무슨 뜻으로 생긴 말인지도 모르니, 영어 원조 국가에 가서 직접 배우자는 것이다. <국내파>로는 안되니 <유학파>가 되어야 한다는 비장한 결심이랄까? 그리하여 그 유명한 삼장법사의 서역 이야기가 629년에 시작된 것이다.

<서유기>에서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라는 동물들이 현장법사를 따라 서역으로 떠난 것이라고 나온다. 물론 소설이니까... 그러나, 실제 현장의 구법 여행은 서유기의 이야기처럼 괴수들을 무찌르며 진격한 그런 여행이 아니였다.

일단 인도로 가는 길부터가 너무나 험했다. 산넘고, 물건너 가야 하는 길은 여행자가 아닌 스님이 하기엔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냥 가라고 해도 어려운 길인데, 현장법사의 출국을 막는 중국 수비대가 있었다.

당시 당나라는 국제적인 국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동으로는 한반도와 왜, 서로는 이슬람 국가들, 남으로는 인도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따라서 너무나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당나라에 스며들기 시작했고, 당나라 정부는 모든 입출국자를 국가차원에서 통제하려고 하였다. 특히 당의 토지세법은 조용조 제도였는데, 이 제도의 핵심은 토지세와 인두세였다. 즉, 자신의 토지에서 떠난다는 것은 국가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는 반역과 같은 것이었다. 현장은 국외로 빠져나가면서 국경수비대와 자주 마찰을 일으키고, 도망다녀야 했다.

요즘으로 따지면, 북한을 연구하는 연구소 직원이 정부 몰래 북한에 가서 현장조사를 하고온 것과 같은 것이다. 당나라 처럼 말로만 세계화를 외치는 이명박 정권에서 이런 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바로 징역형이다.

현장법사는 외친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가랴?> 멋진 말씀이시다. 그 유명한 <대당서역기>는 불법을 찾기위해 국가가 만든 보안법을 위반한 한 승려로부터 출발한다.

현장법사는 죽을 고비를 몇차례 넘기고 겨우 중국 국경을 빠져나왔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인가?

인도로 가는 동안 그는 천국과 지옥을 수 없이 경험해야 했다. 불교를 이해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그의 여행을 반길리가 없었다. 불교를 숭상하는 지역에서는 그를 최고의 고승으로 추앙해주었다. 그는 결국 인도로 도착하여 석가가 수련했다는 보리수 밑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앞서간 사람들을 볼수 없듯이 뒤따라 올 사람을 만날 수도 없구나>

석가에 참 뜻을 구하고자 인도에 왔어도 석가는 그곳에 없다. 그의 흔적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훗날 이곳을 다시 찾아올 구법 여행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는 석가에 대한 기록을 찾아 실제 뜻을 연구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난타사에서 1만명의 수도승 중 최고 대우를 받으며 5년간 불법을 연구하고, 강론하였다. 인도에서는 그를 최고 고승으로 생각하며 존경하였고, 불법에 대한 열정은 주변국까지 알려졌다. 당시, 인도의 구마라왕은 그를 자신의 국가에 데려오기 위해 큰 전쟁을 할 정도였다. 그는 16년간의 파란만장한 인도생활을 마치고 중국 장안으로 돌아와 <대당서역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도에서 가져온 수많은 범어 경전을 해석하여 1335권을 번역하였다. 그 숫자상으로도 놀라운 일이지만, 한권 한권 정확한 석가의 뜻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더 놀랍다고 한다. 16년간을 인도의 수많은 학자들과 같이 밥을 먹으며 석가의 참 뜻을 토론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4. 현장(602-664)의 이론체계를 완성한 <법상종>

 
현장이 16년간 공부하고 토론하여 얻은 결론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승불교의 <공> 사상과 쌍벽을 이루는 <식> 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중국의 대승불교는 대부분 구마라집의 해석어거나, 그의 제자들로 시작된 불경 번역이었다. 너무 한편으로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구마라집의 핵심 사상은 대승불교의 <공> 사상이었다.

그 핵심은, 만물은 돌고 돌기 때문에 있는 것이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은 곧 있는 것이라는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현상계의 자연현상을 놓고 <공>을 다루는 것이었다. 돌고 도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자, 자연의 법칙이다. 대승불교의 <용수>가 주장했던 것도 이런 입장의 <공>이었다.

세상은 돌고 돌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 나란 존재는 죽으면 흙이 되고, 물이 되며, 그 흙과 물은 곡식이 되고, 곡식을 먹은 남자와 여자에 의해 다시 생명으로 태어난다. 즉, 나란 내가 아니며, 내가 아닌 흙과 물이 곧 나인  것이다. 결국 눈에 보이는 사물의 본질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은 우주나 자연보다는 인간의 마음에서 <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도 대승불교의 대표 철학인 <유식>을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중국 내부에서도 성실종, 지론종 등의 학파가 <인간의 마음>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류 학파는 아니였다.

그러나 현장의 <유식> 사상은 본질이 없다는 <공> 사상이 아니라 실체가 있다고 말하는 <공> 사상이였다.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은 모두 머릿 속에서 나온 것이다. 밧줄을 보고 뱀이라 생각하여 놀라는 것은 마음이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진정한 실체는 존재한다. 그러나, 머릿속에 편견과 욕망이 많을수록 진정한 실체를 보지 못한다. 밧줄을 밧줄이라고 보았을 때 실체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실체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부처가 될 수 있다.

결국, 현장이 생각한 <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지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주의 모든 현상은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철학을 <만법유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마음>을 강조하는 현장의 철학을 이어받은 제자 기(자은법사)는 스승의 철학을 <법상종>이라는 종파철학으로 발전시킨다.

법상종의 철학도 결국 <마음>에서 시작된다. 법상종의 기존 유식철학은 <마음>에 따라 불교 교리의 발전을 3단계로 나눈다.

1단계는 나란 존재가 눈에 보이는 실재라는 것을 버리는 초기의 <공> 사상이다. (석가철학의 아함경)

2단계는 모든 존재가 눈에 보이는 실재라는 것을 버리는 <반야>의 진리를 깨닫는 단계이다.(반야경)

3단계는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므로, 실제하는 것은 <없는 것> 같지만, 실제하는 본질은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화엄경)

결국 법상종은 기존의 <공> 사상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진다는 본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시대에, 사상을 받아들인 학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열반종, 천태종, 밥상종의 교리를 한데 모아 큰 통합을 이루려는 <화엄종>이었다. 화엄사상은 바다와 같다. 각 종파가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이라면, 화엄은 그 모두가 뛰어놀고 있는 그 바다 자체를 지향하는 통일 종교였으니...

현장의 유식 이론은 법상종으로 이어졌으나, 그 끝은 결국 화엄종으로 귀결되었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다른 종파들이 결국 화엄의 철학으로 녹아내렸듯이 법상종의 철학도 결국 모든 것은 하나라는 화엄의 <원융사상>으로 녹아내리게 된다.

당이라는 역사상 유례없이 번성한 통일왕조에서 필요했던 불교는, 모든 혼란기의 사상과 당대 사상까지 통합한 화엄종이 아니였을까? 다음 장에서는 화엄종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5. 대당서역기가 서유기로....

서유기는 명나라시대 오승은이 쓴 것으로 알려져있다. 오승은은 현장의 구법여행을 토대로 이 소설을 적었다.

총 100부작인 서유기는 총 3부의 내용으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가 손오공의 탄생 이야기, 두 번째가 현장의에게 구법의 의무가 주어지는 이야기, 세 번째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함께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제천대성 손오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손오공의 탄생 설화와 하늘에서의 난동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이야기가 중국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라 현장 시대의 이야기 외에도 많은 민간 설화와 민간 종파의 이야기가 숨어 있으며, 불교의 많은 부분들을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로, 손오공이 보살들에게 대들 때, 보살들의 손에서 큰 <인장>이 나온다. 인장은 도장을 말한다. 원래 <인>은 다양한 손모양을 토대로 보살들의 언어를 표현하는 것이다.

예로, <항마촉지인>을 들어볼까?

위의 손 모양이 항마촉지인이다. 이것은 검지를 뻗어 손을 아래로 내리는 일종의 <수화>이다. 석가모니가 보살일 때, 마왕이 석가모니를 시험에 들게 하였다. 마왕이 말하기를,

<당신이 엄청난 공덕을 쌓은 것을 증명해 보이시오.> 라고 협박을 하였다.

석가모니는 오른손을 땅에 대어 <이 대지가 증명할 것이다>라고 말하였고, 그 순간 땅에서 <땅의 신>이 튀어나와 부처님의 은혜로운 삶을 증명해주었다. 마왕은 항복하였고 이 때부터 <항마촉지인>은 보살이 적을 무찌르는 손 모양이 되었다.

<선정인>은 부처가 깊은 선정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전륜법인>은 부처가 맨 처음 설법하던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지권인은 왼손으로 부처님 세계를 오른손으로 중생 세계를 표현하여 두 세계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수화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설정은 손오공을 <불법>과 대비되는 도사의 이미지로 형상화시킨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불교이야기를 하면서 핵심주제의 하나로 <불법과 도가>의 폐불사건들을 다루었었다.

그런데, 초기 망나니같은 손오공은 <도사>의 신비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머털도사처럼 머리카락을 뽑아 숫자를 늘린다는 기술은 초기 도가인 <오두미교>에서나 볼 수 있는 신비술이다. 구름인 <근두운>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설정은 손오공이 학과 구름을 벗삼아 사는 신선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그 <도사> 세력을 쳐 부수고, 불법의 <인장>이 승리한다. 즉, 보살이 도사를 이긴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손오공은 도사이므로 죽지 않는다. 그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도와 불법을 찾는 다는 내용은, 초기 도가 사상을 받아들인 불교가 도가를 발 아래 두고 불법의 진리를 찾는다는 역사적 상황과 맥락이 같다. 손오공의 이름 자체가 <공손하라>는 의미인 것은 이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손오공의 머리에는 금제가 있다. 불법을 벗어날 때 마다 고통이 찾아온다. 자비로운 삼장은 진정한 불법을 찾으면 금제를 풀어준다고 말한다. 도가에서 벗어나 진정한 불법을 찾고자 한 현장은 <독자적인 불법>을 찾은 뒤, 손오공을 풀어준다. 그러나, 손오공은 이미 불법에 빠져 버렸다.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는 현장법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당시 중국에 진정한 불법이 없었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진정한 부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삼장법사>는 서역에 가서 불법을 전해받아야 한다. 그런데, 악의 무리들이 그 과정을 방해한다. 그 악의 무리들은 여러 갈래이다.

같은 불교이면서도 불법의 참 뜻을 모르는 무리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삼장의 참 뜻을 모른다. 반대로 우마왕같은 존재는 인도 바리문의 <소 숭배>를 생각나게 하면서도 반대로 농경사회인 중국의 전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처음에 우마왕과 싸우던 손오공이 우마왕과 형제가 되는 설정은 특이하지 않는가?  또, 신선술을 부리며 각종 동물이나 괴물로 변하는 도가의 술법을 쓰는 자들도 있다.

저팔계’는 저속한 마음의 욕심을 이겨내려면 여덞 가지 계율, 즉 ‘팔정도를 이루라는 뜻이고, 사오정은 맑은 마음을 가져야 깨우칠 수 있다는 불교 교리를 상징하고 있다.

사실 서유기는 불교식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측면이 많다.

  이 작품이 명나라 때 쓰여진 관계로, 당나라 당대 불교의 교파들 보다는 훗날 밀교화된 불교 상황을 많이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미타불>과 같은 정토종 성향이 상당한 강하다. 백성들이 읽는 고전 작품이기 때문에 심오한 교리보다는 <아미타> 신앙과 같은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손오공이 알게 된 불교는 심오한 교리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 알게된 <깨달음>이지 않는가?

또, 이 작품은 명나라 당시 부패한 사회상과 나쁜 관료들을 우회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그 풍자의 방식으로 불교적인 사상이 덧붙여진 것이다. 암울한 현실을 직접 비판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신비하고 가벼운 모험 스토리로 풍자하는 것이 일반인들 읽기에 편하지 않겠는가?

서유기는 보살이 나오는 이야기 같으면서도, 유교, 불교, 도교의 모든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 하지만, 현장법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괴물들을 물리치는 과정과 방법은 도교식이지만, 그 원리는 불교식이다. 현장은 모든 괴물들도 사실 불성을 가지고 있기에 용서가 가능하다는 <열반종>의 불성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악>은 악일 뿐이기에 퇴치해야 한다는 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현장은 모든 것이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 말하며, 법상종과 화엄종의 핵심 교리인 <일체유심조>를 주장한다.

실제 대당서역기와 서유기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불교의 진리가 무엇인지 찾으려하는 현장의 마음 만큼은 서유기에서도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닐까?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 불교사에 대한 이해 : 참고할 만한 책들

대당서역기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현장 (서해문집,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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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의 치: 위대한 정치의 시대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멍셴스 (에버리치홀딩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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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 3: 치세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나채훈 (씽크뱅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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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만나는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계환 (정우서적,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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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논술프로그램세계명작 5)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오승은 (예림당,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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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서천으로 갔다(서유기 다시 읽기)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홍상훈 (솔,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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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히로 사치야 (황금가지,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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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명료한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스티브 하겐 (우리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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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뜻깊은 불교 이야기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김달진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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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만나는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계환 (정우서적,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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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불교와 유식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일지 (세계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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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10화. 천태종과 화엄종의 라이벌 1라운드

1. <교> 사상에 치우친 삼론종 이야기

위진남북조의 길고 긴 혼란기가 끝났다.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는 모든 국가 체제를 <통일>하려고 하였다. 이민족과 한족을 하나로 통일하였고, 도량형과 문자도 통일하려고 했다. 대운하를 건설하여 강남의 경제권을 북방으로 끌어오려고 하였다. 사상 역시 통일되고 있었고, 불교의 수많은 학파들도 하나의 진리로 통일되고 있었다. 수나라의 통일된 불교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천태종>이었다.

천태종은 불교 각각의 종파 특징을 하나로 아울려 통일하려고 하였다.  <교>와 <관>을 통일한다는 것이다. <교>란 가르침, 즉 지식을 말한다. <관>이란 깨달음과 실천을 말한다. <지식>을 강조하는 종파와 <깨달음>을 강조하는 종파는 같은 불교라 해도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천태종은 <교관일치>를 주장하여 각 종파를 하나로 끌어안으려 했다.

먼저, <교>를 강조하는 종파를 한번 볼까?

혼란기 중국의 불교 학파는 어느 학파를 막론하고 구마라집의 영향을 받았다.(8-9화 참조) 최고의 고승이라 불리는 구마라집이 다양한 불경을 해석하여 다양한 학파가 탄생한 것이다.

구마라집의 제자들 중 <공> 사상을 <존재론>으로 접근하려고 했던 파가 <성실학파>이었다. 그러나, 구마라집의 정통 제자인 승조는 <공> 사상은 심오한 사상이기 때문에 <존재를 분석>해서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성실학파>는 구마라집이 아끼던 제자 승조에게 비판받게 된다.

승조는 <공> 사상 자체의 심오한 뜻을 인도철학인 <반야> 자체로 파악하려고 하였다. <삼론학파>는 <삼론종>으로 발전하였고, 주변국에 전파된다. 고구려의 <승랑>은 삼론종에 정통하였고, 안식국의 <길장>은 삼론종의 시조가 되었다.

원래 <삼론>이란 <중론, 백론, 십이문론>이라는 3가지를 지킨다는 뜻이다. 삼론종의 핵심 사상은 <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라는 인도의 <공 사상 체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다는 <공>이 무엇이지 파악하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 언어에 집착하는가? 말이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언어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언어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사물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집착이 사라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편안한 상태가 <공>인 것이다. <공>은 언어를 통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언어와 논리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허무한 것이다.

사물의 본질은 하나이되, 하나가 아니다. 실체가 있다고 믿는 것과 실체가 없는 것은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것이다. 있는 것은 어느 순간 없는 것이 되며, 생성된 것은 어느 순간 죽는다. 결국 만물은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닌 것이다. 이렇게 어느 하나를 집착하지 않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 조차 버리는 것이 바로 <중도>이다. 하나만을 강조하는 것은 <극단 : 탁자의 모서리>인 것이다.

결국 삼론종은 인도 대승불교의 <공> 사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공>을 <인간의 지식>으로 판단하려고 한 <성실종>을 논리적으로 때려부순 것이다.

그러나, 삼론종은 큰 약점이 있었다. 첫째, 인도 불교 사상을 이해했으나, 중국적인 사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철저한 인도 불교의 <공> 사상을 이해한 것은 좋았으나, 그것이 중국인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그 고민이 부족하였다.

둘째, 너무 학문적이다. 지식체계는 훌륭하다. 그래서??? 그 다음이 없다. 지식은 곧 실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자기들까리 지식을 공유했다고 해서 훌륭한 불교 종파가 될 수 있겠는가?

셋째, 국가에 도움이 안된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다는 교리가 통일한 수나라의 전제왕권에 무슨 도움이 될까?

성실종과의 지식 논쟁에서 훌륭하게 이긴 삼론종이 허무하게도 천태종에게 흡수당한 것은 당시 통일된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실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훗날, 삼론종은 부활하게 된다. 그러나 수나라 시기엔 삼론종의 이론이 먹히지 않았다.

2. <선> 사상에 치우친 열반종 이야기

열반종은 지난 장에서 이야기(8화)한 도생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구마라집의 수제자였던 도생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성론>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중국 불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럼 도둑놈도 죽기 전에 깨달음만 얻으면 부처가 되는 것인가? 도생의 이론은 범죄자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기존 <불가론자>들에게 탄압받았다.

그러나, 법현 스님(7화)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14년간 서역을 유랑하며 구해온 <대열반경>에는 어떤 사람이나 부처가 될 <인간성>이 있다고 적혀있었다. 도생은 자신의 불성론으로 <열반학파>를 창시하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열반종의 <불성 이론>은 천태종의 기본 이론으로 정착된다. 천태종은 누구나 마음을 갈고 닦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열반종은 개달음과 지식의 두 가지를 동시에 공유한 천태종에게 흡수당하게 된다.

3. <지의>의 교, 선 일치

천태교의 시조는 지의이다. <지의>는 법명이고, 천태산에서 수양을 하여 <천태대사>라고 부른다. 수양제가 시호로 <지자대사>를 내렸기 때문에 다양하게 불린다.

지의는 남북조시기 양나라에서 태어나서 7살때 불가에 입문하였다. 남북조의 전쟁시기에 그가 했던 일은 <구걸>이었다. 구걸하고 걸식하면서 도를 닦는 스님을 <탁발승>이라고 한다.

그는 23살 때 <법화경>을 공부하다가 석가의 세계에 들어가 버렸다. 꿈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졌으나 꿈은 아니며, 천년 전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는 석가모니가 법회를 여는 장면을 체험하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리를 체험하는 것을 <삼매경>에 빠졌다고 말한다. 법화경에 빠져 과거에 들어갔기 때문에 <법화삼매>를 체험한 것이다.

법화삼매는 꿈이 아니다. 꿈과 비슷하지만, 실체 과거 속에 들어간 것이다. 이것은 심령현상을 이용하여 신통력을 발휘하는 최고의 경지인 것이다.

그 이후 유명해진 그는 천태산에서 제자들과 집을 지어 <수선사>라고 부르며 수행에 정진하였는데, 이 천태산에서 그가 완성한 사상적 체계를 <천태종>이라고 부른다.

천태종은 지의가 공부한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법화경의 핵심 사상은 <일승론>이다. 초기 대승불교는 글을 읽는다는 <성문승>, 깨달음을 얻는다는 <연각승>,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한다는 <보살승>으로 나눠 이것을 <3승>이라고 했다.

법화경에는 이 3승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결국 글을 읽던(지), 깨닫던(관) 간에 결론은 부처가 되려는 것 아닌가? 결국 3승은 모두 <수행승>인 것이다. 수행을 하는 자들이 <보살>이므로, 모든 스님은 <수행승> 또는 <보살승>으로 통일하여 1승이 된다는 것이다. 즉, 지식과 깨달음은 하나이기에, 어느 하나만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종파>인 것이다.

지의 불교의 특징은 지와 관 양지를 모두 강조하는 양자적 합일점을 찾은 교파라는 데 있다. 지라는 것은 순수한 학문적 불교만을 고집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고, 관이라는 것은 수련을 통하여 불교의 참 뜻을 찾는 것을 말한다. 지의는 학문만으로 불교를 찾는 것은 불교의 참 뜻인 중생구원을 등한시 하는 것이라며 싫어했으며, 수련으로만 불교를 찾는 것은 이론적 바탕이 없는 무지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 2가지가 다 중요하다는 것이 지의의 이론인데, 이것이 천태종의 핵심이다. 천태종은 경전을 중요시하는 교종의 입장도 반영하면서, 수련을 중요시하는 선종의 입장 역시 무시하지 않는 종파인 것이다.

이 지의의 불교는 지, 관을 모두 중요시 함으로서 당시 수없이 나눠진 종파들을 통합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모든 불교의 진리들은 그것이 지(지식)이던, 관(깨달음)이던간에 원리 석가의 가슴속에서 나온 것이므로, 모두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진리는 모두가 원래 석가의 뜻 하나였으므로 석가의 본 뜻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석가의 본뜻이 모두 지, 관을 통합하였다는 것을 <삼제원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석가의 본 뜻을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는 석가의 말씀을 5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 석가의 말씀 5단계가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각종 경전들인데, 그중 가장 중요한 석가 말씀이 바로 <법화경>이라고 주장한다.

4. 화엄인가, 천태인가?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불교에서는 어떤 대승불교 경전이 가장 부처의 말씀과 일치하는 가를 놓고 순위싸움을 하였다. 이것을 <교상판석>이라고 한다. 이건 각 불경을 중요시하는 종파간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당시 위세를 자랑하던 종교는 천태종, 화엄종, 열반종, 성실종, 삼론종이었다. 그러나, 아까 말했던 성실종, 삼론종은 천태종에 흡수당했으니 제외하자.

일단, 인도에서 전래된 <공>사상의 핵심인 <반야경>은 무조건 1등이다. 부처의 진리 자체가 들어있는 경전인데 어디 순위를 매기는가?

그럼 2등이 무엇인가가 싸움의 핵심이다. 천태종의 <법화경>, 화엄종의 <화엄경>, 열반종의 <열반경>이 순위 다툼에 들어갔다. 그런데, 열반종도 천태종에 통합될 정도로 세력이 약하니 4등으로 내려주자.

남은 것은 천태종과 화엄종의 싸움이다. 그런데 이 싸움은 쉽지가 않다. 이 두 종교는 모두 통일 종교로서 강력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통일된 수나라에서 종교 통합을 이룬 천태종과, 수나라 이후 당나라까지 전성기를 맞이한 화엄종은 모두 <지식과 깨달음>을 동시에 강조한 학파이다.

두 종교는 모두 지관일치, 즉 지식과 깨달음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식과 깨달음을 얻는 <대상>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첫째는 <불성논쟁>이었다. 화엄종과 천태종은 둘다 <모든 인간>에게 불성이 있다는 <도생>의 열반 철학을 인정하였다. 화엄종은 딱 <인간>까지 불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태종은 거기서 더 나간다. 만물은 돌고 돈다. 모든 사물은 훗날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른다. 따라서 풀과 나무, 동물들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 <개미>에게도 불성이 있으므로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고, <돌맹이> 조차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엄종에서는 <인간>만이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불성>은 부처가 되겠다는 마음의 문제이므로, 마음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면 불성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돈오점오>의 문제였다. 화엄종의 <화엄경>은 <돈>를 강조한다. <돈>이란 깨달음을 뜻한다. 문득 깨닫음을 얻은 뒤 진리를 알았다는 기쁨을 강조하는 것이 화엄경이었다. 반대로, 법화경은 <점>을 강조한다. <점>이란 <점진적>이란 뜻이다. 즉, 깨달음을 얻는 과정 속에서 부처를 만나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럼, 깨달음의 과정과 깨달음을 안 기쁨 중 어떤 것이 우선인가? 이 문제가 해결되야 두 종교의 우위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셋째 두 종교의 차이는 <부처>의 품성 문제였다.

흔히 두 종교는 모두 <바다>에 비유된다. 다른 종파들이 물고기, 게, 미역 등 바다에 살아가는 종파라면, 화엄이나 천태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바다> 자체이다. 다른 종파가 지식, 깨달음, 수행법, 율법 등 하나를 강조한다면 화엄과 천태는 모든 것을 강조하는 통일 국가의 통일 사상인 것이다.

그런데, 그 바다를 구성하는 물이 문제이다. 화엄은 모든 것은 형태가 변하지만 결국 그 <본질>은 같다고 말한다. 바다의 물이 있다. 물은 물방울도 되고, 파도도 된다. 그러나 그 <본질>은 물이다. 따라서 어떻게 변해도 결국 물인 것이다.

반대로 천태에서는 물의 <본질>은 여러 형태로 구현된다고 말한다. 물이 화가 나면 파도가 되고, 물이 갈라지면 물방울이 된다. 본질과 별도로 물의 성격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의 품성 논쟁으로 전개된다. 화엄에서는 <물>의 본질은 결국 깨끗한 물이므로 <부처>는 선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천태에서는 <물>도 성난 파도가 될 수 있으므로, <부처>도 태어날 때 가진 악한 품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악을 누르고 선을 실현했기 때문에 더 위대한 부처가 되는 것이다.

화엄종의 논리는 부처은 이미 성불했기 때문에 더 이상 악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천태는 성불한 부처도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악한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두 종교는 이론논쟁을 계속하였다. 수나라 시기에는 <천태종>이 우세한 듯 보였다. 그러나, 당나라 시기로 넘어가면서 천태종의 힘은 약해진다. 강력한 국왕이 다스리는 현실 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돌맹이에 불성이 있다>가 아니라 <부처의 본성은 선하다>라는 것이었다.

중국에서의 천태종은 짧은 전성기를 끝내고 역사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천태종은 맹렬한 기세로 불교계를 이끌어갔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천태종과 화엄종은 라이벌로서 2라운드를 전개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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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철학사 2(한.당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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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9화. 서로 우위를 점하려던 불교와 도교의 한판 승부...

1. 이민족 왕조에 뿌리내린 도교

자, 이제 불교의 수준은 <도교>를 벗어나고 있었다. 구마라집이 불경을 번역한 이후, 불교는 진정한 불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도교의 이론을 빌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불교 이론의 다양한 연구는 다양한 학파가 형성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각, 학파들은 도교 이론을 부정하고, 대승 불교 고유의 <공> 사상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도교는 뭘하고 있었을까? 도교 역시 혼란기를 이용하여 확실한 <도가 이론>을 확립하여, 위진남북조의 혼란기를 이끌어갈 사상으로 성장했다.

<도교의 시존 - 노자>

<도교의 선구자 - 갈홍>

원래 도교는 춘추전국시대 <노장사상>에서 기원한다. 당시에는 여러 제가 백가 중에 하나로서 <무위자연>을 주장하는 <학파>였기 때문에 <도학>, <도가> 등으로 말할 수 있겠다. <도학>은 노자의 <도덕경> 사상을 바탕으로 장자의 현실 철학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럼 도가가 도교로 변한 것은 언제일까? 불교의 <학파>가 성립되는 위진남북조 시대와 일치한다.

동진시대 갈홍이 <도교>의 선구자이다. 갈홍은 <포박자>를 저술하여 도교 발전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 원래 학문적 성격이 강한 <도가>에 신선술과 민간 종교를 모두 종합하여 <도교>를 성립시킨 것이다.

일단, 노자의 사상을 이해하고 자연 속에서 영생을 누리는 <신선>이라는 존재를 종교 안에 포함시켰다. 신선은 노장 사상을 이해하여 속세를 해탈한 귀인으로 표현된다. 또, 신선은 죽지 않고 천수(1000살)를 누린다는 <불로장생> 사상을 포함시켰다. 이렇게 대충 이론이 정립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조직>이 필요하다. 도교는 부적이나 신비술이 가능하다는 <신선술>을 강조함으로서 혼란기 현실에서 고뇌하는 백성들을 포섭하였다. 후한부터 시작된 중국의 혼란기에 많은 민란이 있었다. 대표적인 민란인 한나라 오두미교는 <도교> 조직의 모델이었다.

가난한 백성들도 곡식 5두를 내면 가입이 가능한 <오두미교>는 후한 시기 장각의 태평도로 발전하였다. 이 오두미교를 <천사도>라고 불렀는데, 북위 시대 구겸지가 이것을 <신천사도>로 개편하여 혼란기 중국 북부지방의 조직단체로 개편한 것이다.

남북조 시대 북조를 통일했던 북위는 도교를 국교로 숭배하였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등장한 여러 이민족 왕조들이 중국 고유의 사상인 <유교>를 배척하기 위해 도교를 활용하는 정책을 사용하면서 도교의 교단이 강화된 것이다.

도교를 국가 종교로 만든 사람은 북위의 구겸지였다. 불교가 혼란한 시대를 이용하여 <내세에서의 행복한 윤회>, <해탈>, <인과응보> 등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을 모은 것처럼 도교 역시 혼란한 시대를 이용하였다.

혼란한 시대를 피해 숨어 버린 한족들도 도교에서 주장하는 <무위자연>을 받아들였다. 특히, 죽림칠현 등 당대 사상가들은 유교의 형식주의가 무질서한 혼란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혼란한 난세에 인간의 인격은 존중되지 않는다. 이민족들의 세상에 현실은 너무 암담하다. 역사 속을 살아가는 나는 누구인가?

현실을 탈피하고 싶은 이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신선을 동경하게 된다. 신비로운 자연에서 살아가는 고고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백성들 역시 현실을 탈피한 이상적 존재를 그리워하게 된다. 부처이든 노자이든, 이 암울한 세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상관 없지 않는가?

<신선의 뜻을 품은 도가인들 - 풍속화>

이민족의 왕들도 도교를 장려하였다. 북위의 구겸지는 유학과 다른 원리로 <도교>원리를 제시하였다. 중국의 황제가 <천명>을 받들어 즉위하는 것은 유교 방식이다. 고럼, 이민족인 북위의 왕은 <천명>이 없는가?

천명은 <도교>에서 찾으면 된다. 황제가 즉위할 때 하늘에 계신 지고지순한 신선인 <노자>가 축복해준다. 천상노군(노자)는 중국인의 아버지로서 중국의 천하를 이민족이 다스려도 된다는 것을 인정해준다. 이민족들을 <오랑캐>로 여기는 전통 유교 원리와 다르게, 도교는 중국을 다스리는 원리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남북조 시대 북조에서는 유교가 도교에 밀려 버렸다. 그럼 남은 것은 불교 뿐이다. 한참 교세를 확장하고 있던 두 종교는 이제 종교 천하통일을 놓고 한판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도교 사원의 천존상>

2. 패자의 자리를 내준 유가

한나라 시기 국학으로 인정되던 유가는 혼란기에 힘을 잃었다. 전쟁이 지속된 어느 순간부터 모든 학문분야에서 유학은 제왕의 위치를 잃어간다.

삼국시대 초기 위나라의 조조는 유학을 벗어난 문학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진수의 <삼국지> 같은 작품이 등장하면서 역사학이 유학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은 불상들이 조각되고, 미술과 회화 분야도 유학의 입지가 사라졌다. 천문분야는 도교로 넘어갔으며, 자연과학분야은 수학과 의학 등에게 밀리게 되었다.

모든 학문분야를 총괄하던 유학은 노장사상, 문학, 역사학과 대등한 위치로 전락하였다. 이 4가지를 위진남북조 4학이라고 하며, 불교학을 포함하면 5학이라고도 한다.

정치 원리에서 밀린 유학은 도교 세력에게 참패를 당했다. 특히, 북조에서 도교를 국교화하면서 유교적 통치원리까지 무너진 것이다. 유학은 도교를 미신이라고 몰아세웠지만 이미 힘이 없었다.

유학은 불교도 끊임없이 비판한다. 특히 승려가 출가하는 것은 충, 효를 강조하는 유학과 상극이다. 어찌 국왕과 부모를 버리고 속세를 떠난다는 것인가? 유학자가 보기에 불교는 인륜을 무너뜨린 오랑캐의 종교였다. 그러나, 그 비판도 힘이 없었다. 불교 자체가 국왕을 보호한다는 <호국>의 이념을 가진 시기이기에 유학자들의 비판은 공허한 것이었다.

또, 죽으면 내세로 향한다는 원리도 유교의 현실주의와 상극이었다. 현실 정치와 현실에서의 충효를 중요하게 여기며, 내세를 논의조차 하지 않는 유교 입장에서는 불교가 눈에 가시였다. 내세를 위해, 해탈같은 비현실적인 작업을 위해 어마어마한 불교 사원을 짓는 것은 얼마나 돈과 시간의 낭비인가? 유교주의자들 눈으로 볼 때, 불교 사원을 짓고 부처가 나라를 지켜준다는 믿음은 <덕치주의, 민본주의>와 상관없는 미친 왕의 행동인 것이다. 고대 하, 은 나라가 망할 때 얼마나 큰 사치가 있었고, 백성들의 고통이 있었는가?

내세문제는 불교와 유학의 <정신불멸론> 논쟁으로 격화되었다. 유교에서는 정신과 육체는 하나이고, 육체가 죽으면 정신도 죽기 때문에 내세란 없다고 말한다. 육체가 칼이라면 정신은 칼이 날카로운지, 무딘지를 표현하는 매개체이다. 칼이 부러지면, 칼이 날카로운지는 의미가 없어지며, 칼은 사라지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육체와 정신은 죽은 뒤 분리된다고 말한다. 정신은 육체와 다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육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신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정신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윤회를 통한 내세, 해탈은 현생을 사는 궁극적 이유가 된다.

그러나, 남북조 시대의 유학은 비판 이상의 현실적 조치가 없었다. 이미 불교세력에게 큰 소리를 칠 힘조차 없었던 것이다. 유학이 불교를 누르기 위해서는 수백년이란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남북조 시대의 라이벌은 도교와 불교 뿐이었던 것이다. <정신불멸론> 논쟁에서 유학이 승리하기 위한 기다림은 남북조와 수, 당 나라를 넘어 송나라에 이르는 긴 시간이었다. 국가는 철학으로서 유학의 힘을 아직 인정했지만, 지배층들은 이미 불교나 도교를 신봉하고 있었다.

3. 1라운드 - 도교와 유교의 연합작전(1차 폐불사건, 466)

이제 본격적으로 도교와 불교의 쌈박질 라운드에 돌입해보자. 이 두 종교가 마찰을 빚기 시작한 것은, 격의 불교를 뛰어넘어 불교가 도교에서 분리되던 4세기 부터이다. 그 핵심은 부처와 노자 중 누가 우위에 있으냐는 지극히 원시적인 논쟁이었다.

먼저 도교의 도사들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초기 청담사상가들은 유교, 도교, 불교의 성인들은 모두 <도>를 체득한 사람이므로 근본적으로 같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시작한 논쟁은 <노자가 곧 부처다>라는 이론으로 발전하였다. 노자는 <도덕경>을 쓰고 <신선>이 되었다. 그런데, 노자는 신선이 되기 전에 인도가 가서 큰 깨달음을 얻었고, 부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중국인>이 인도인을 교화한 것이며, <불교>의 근원은 <노자>라는 것이다. 노자와 부처 중 누가 먼저이냐를 <선후논쟁>이라고 말해두자.

불교와 도교라는 2가지 종교를 동시에 인정하여, <유학>을 대신하여 활용하려고 했던 이민족의 <북위> 왕조는 남북조 시기 내내 이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문제는 북위의 왕들이 불교와 도교라는 종교적 입장을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어느 종교가 왕권 강화에 도움이 되는가, 또 정권을 잡은 귀족들이 어느 종교를 신봉하는가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남북조 시대 - 북위와 남조의 송>

그 첫 번째 대결은 북위 <태무제> 때였다.

당시 남북조 시대는 이민족 왕조인 <북위>가 중국 대륙의 북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중국 왕조들이 정권을 바꿔가면서 대륙 남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북위 태무제 때의 재상 최호는 <중국인>이었다. 북위는 <선비족>들이 세운 왕조였지만, 전통 한족들을 어느 정도 우대하면서 마찰없이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족 관리들은 <유학>을 신봉하였다. 그가 원한 것은 선비족들도 전통 사상인 <유학>을 받아들여 <유교적 덕치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호는 도교의 창시자 구겸지와 결탁하여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유교와 도교가 연합하여 불교세력을 제거하려고 한 것이다. 전혀 성격이 다른 유교와 도교는 불교라는 적 때문에 동맹을 맺은 것이다. 결국 북위 태무제 때 국가에서 불교를 막아 버리는 폐불사건(불교금지령)이 발생한 것이다.

1차 폐불사건으로 불교는 위축되었지만,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유학자인 최호가 <국사필화사건>으로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최호 등 한족들이 편찬한 <국사>는 북위의 창업과정부터 모든 내용들을 적어두었는데, 그것은 모든 사실을 객관적으로 적어두는 <훈고학적 유교사관>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국사에는 북위 지배층들의 잘못과 치부까지 그대로 적혀있었다. 이것은 북위라는 선비족 국가에서 한족과 선비족 중 누가 우월한가라는 논쟁을 불러왔다. 이 대립은 최호 등 한족 관리들이 주살되어 끝나게 된다. 즉, 한족 귀족들보다 선비족과 선비족의 왕이 더 우월함을 보여준 것이다.

구겸지의 도교 창시로 도교가 <국교화>되고 불교는 위기를 맞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불교는 다시 살아난 것이다.

4. 2라운드 - 도교와 불교의 선후논쟁(520)

1차 폐불 이후, 불교는 다시 도교의 라이벌이 되었다. 북위에서 한화정책으로 유명한 <효문제> 당시를 보면 더 뚜렷해진다. 효문제 스스로가 중국인들의 왕이라 칭하면서 중국식으로 모든 제도를 고치고, 선비족의 개혁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국왕은 유학의 이론을 공부하면서도 도교와 불교 문화를 더 장려하였다.

도교의 제단이 곳곳에 생겼다. 국왕이 불교문화를 장려하여 용문의 석굴사원이 건설되었다. 두 종교는 치열하게 교세 확장과 함께 이론적 논쟁을 다시 시작했다.

520년 두 종교는 또 다시 <선후문제>로 국왕 앞에서 직접 논쟁을 벌였다. 종교간의 논쟁이 아닌 국왕 앞에서의 논쟁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국왕이 손 들어 주는 쪽이 우월한 종교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도교 도사인 강빈은 노자가 부처를 제자로 삼아 교화했다고 주장했다. 승려인 담무외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두 명이 모두 자신의 주장을 위해 자료를 위조했다는 점이다. 강빈과 담무외는 각각 노자와 부처의 기록을 위조해 효명제 앞에 자신들이 정당함을 주장했다. 효명제는 강빈의 자료가 위조되었다는 것에 분노홰 강빈을 유배보내 버렸다.

이 논쟁으로 불교가 도교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국왕의 판단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도사들은 기회만 닿으면 불교에 흠집을 내려고 했다.

5. 3라운드 - 도교의 반발(2차 폐불사건, 574)

568년, 북주 무제기에 다시 <선후논쟁>이 불붙는다. 그러나, 이 때의 국왕은 단순히 불교 편을 들지 않았다. 유교와 도교가 침체되자 승려의 숫자가 증가했고, 이것은 국가적으로 낭비였다. 승려는 일하지 않는 자, 세금을 내지 않는 자였다. 또, 사원이 많아지는 것도 국가 운영비에 타격을 주었다. 종종 승려들이 세력화하여 횡포를 부린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도사들은 다시 <부처는 노자의 제자>라고 주장한다. 도사인 위원숭과 장빈은 종교의 순위를 정하였다. 한족의 지침인 유학이 1위, 도교는 2위, 노자의 제자인 부처가 3위가 된 것이다.

당시 종교계에서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불교는 반발하였고, 황제에게 부당함을 건의하였다. 사회적으로 세력화한 불교를 규제하려고 한 무제는 도사들의 말을 받아들여 불교를 폐불시켰다. 그러나, 도사들도 제 발을 밟았다고 해야 할까? 도교 역시 사회적으로 무시 못할 종교 세력으로 왕권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무제는 불교를 폐지시킨 후, 도교마저 폐지시킨다.

불교와 도교를 막론하고, 종교인들을 일하지 않고 논쟁을 하는 자들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오로지 철학으로서 유학만을 남긴 것이다. 그러나, 당시 뿌리를 깊게 내린 종교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무제가 죽은 뒤 불교는 더욱 발전하게 된다.

6. 위진남북조 시대의 불교가 걸어간 길...

위진남북조 시대의 불교를 정의하자면, <전파된 불교에서 독자적 불교로 나아간 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처음에는 불법의 뜻도 몰라서 노장사상의 이론에서 불법의 뜻을 해석하곤 했다. 그러나, 구마라집 등이 인도 불경을 해석하고, 도안과 혜원 등이 불교의 참뜻을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법현이 인도에 구법여행을 떠나는 등 승려들의 노력으로 불교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학파들이 생겨나 불교 이론이 논쟁으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불교는 <호국불교>였다. 위진남북조라는 유례없는 혼란기에 <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왕권>과의 결탁이 필요했다. 국왕의 보호로 불교는 성장하였다. 그러나, <호국불교>는 양면의 칼이었다. 국왕이 불교를 버릴 때, 불교는 대책없이 탄압당했다. 또한, 왕권에서 자유롭지 못한 불교는 불교의 참뜻을 전파하기에 부족하였다.

여러차례의 폐불을 겪은 불교가 택한 선택은 무엇일까? 점차, 정치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북위> 정권과 밀착했던 북조 불교는 그런 점을 뼈져리게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 국가 정권의 영향력을 적게 받았던 한족 정권의 <남조 불교>는 큰 탄압이 없었다. 불교가 귀족의 보호를 받았지만, 국가 이념에 정면으로 대항한 적도 없었다. 될 수 있으면 독립적인 종파를 만들어 <이론>을 발전시키려고 한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남조 불교>는 북쪽과 달리 <도교> 영향력이 적었다는 것이다. 구겸지가 창안한 <도교>는 북위 왕조에서 시작되었다. 도교와 피터지는 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불교는 점점 <거대한 사회세력>으로 성장한다. 정토종, 삼론종, 천태종, 율종, 선종은 5대 종파로 성장하였고, 담란의 정토종은 민중 사회로 스며들었다.

민중 사회에서는 읍사가 생겼다. 원래 읍은 북조, 사는 남조의 용어로 <불교를 믿는 마을 단체>를 말한다. 후대에는 합쳐서 읍사로 표현한다. 마을 단위로 불교 단체가 생기고 불상을 만들었으며, 스님들이 거주하였다.

그러나, 불교는 크리스트교와 같은 교구제로 운영하지 않았다. 행정구역과 종교구역을 일원화하지 못했던 것이다. 국가의 행정구역과 실제 마을민들이 느끼는 공동체 단위가 일치하지 않았고, 오랜 전쟁으로 임의로 구성된 공동체가 많았던 점도 있다. 또, 불교단체가 거대한 장원을 운영한다고 해도 그것과 행정구역은 별도였다. 불교 사원 자체가 수양과 깨달음을 위해 마을과 약간 떨어진 곳에 세워진 것도 교구제가 성립할 수 없었던 원인이었다.

길었던 분열의 시대는 끝이 났다. 수나라에 의해 중국 대륙이 통일된 것이다. 이제 통일된 시기의 불교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수, 당 시대에도 불교와 도교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며, 불교는 독자적인 발전을 계속할 것이다. 이 이야기를 몇몇 인물들로 파악해 보도록 하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 불교사에 대한 이해 : 참고할 만한 책들

처음 만나는 불경 이야기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김장호 (심포지움,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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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우더신 (산책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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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불교사 2:수용기의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카마타 시게오 (장승,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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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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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히로 사치야 (황금가지,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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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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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용하 (불천,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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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교양으로 읽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화령 (민족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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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양입문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박영옥 (경덕출판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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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좋다(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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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가와이 하야오 (동아시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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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8화. 인도식 불교가 중국식 불교로 바뀌다.

1. 구마라집(구마라습 : KUMARAJIVA, 344-413) : 중국 중관사상의 아버지

도안과 혜원이 격의 불교 수준의 중국 불교에 새 바람을 넣으려 했다면, 구마라집은 대승불교의 <공>사상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정리한 사람이다. 구마라집에 의해 중국 불교는 인도에서 전래받는 수준을 뛰어넘어 중국 고유의 토착 불교로 자리잡게 된다.

<구라마집 상>

구마라집은 중앙아시아 쿠챠국의 왕족이었다. 공주였던 어머니는 어린 라집을 불교에 입문시켰고, 최고의 불문 법사들 라집을 지도하였다. 라집은 박학다식한 불교 이론을 접하였다. 불교 뿐만 아니라 베다의 천문술, 수학, 음양오행, 힌두이즘 등 다양한 학문을 익혔다.

당시 5호 16국 시대에 북방을 주름잡던 전진왕 부견은 라집을 모셔오라고 했다. <도안>과 함께 <라집>까지 있다면, 불교의 참뜻을 알 수 있을 뿐 이나라, 불법의 신이 전진의 호국신이 될 거라는 믿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도안 역시 라집을 만나 진정한 불교의 참 뜻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은 이들의 만남을 거부하였다. 라집은 전진의 수도 장안으로 오는 과정에서 양주에 갖히게 된다. 불교를 싫어하는 이들이 그를 가둔 것이다. 1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도안과 부견은 모두 사망하였다. 결국 라집은 전진을 계승한 후진의 왕 요흥이 전쟁까지 불사하는 의지를 보이고서야, 장안에 겨우 오게 되었다.

구마라집이 중국 불교사에 중요한 인물이 된 이유는 긔의 <불경 번역> 때문이다. 라집은 방대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중국인들에게 대승 불교의 핵심인 <공> 사상과 <반야>가 무엇인지를 이해시켰다.

중국에서는 구마라집을 기준으로 불경 번역의 단계를 나눈다. 성경이 예수를 기준으로 구약과 신약을 나누듯, 라집의 불경 번역이 중국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것이다.

중국사에서 구마라집 이전에 번역된 불경들을 <고역경>이라고 한다. 그리고, 구마라집이 번역한 불경은 <구역경>이라고 한다. 구마라집 이후에 당나라 현장법사가 번역한 불경을 <신역경>이라고 한다.

구마라집은 격의 불교 수준의 중국 불교를 탈피하여, 중국 불교 수준을 인도 대승불교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인물이다. 대표적인 그의 번역서는 <대승론>, <반야경> 등으로 이것은 인도 전통 대승불교를 확립한 <용수> 등의 중관 사상을 중국에 그대로 이식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는 6바라밀의 핵심사상은 <반야>가 어떤 지혜를 갖는지, <공>이라는 것이 <연기설, 업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였다.(2-3화의 인도 불교 이론 참조)

이렇게 해서 중국에서도 대승불교의 중관학파가 탄생하게 된다. 이후, <공>사상을 바탕으로 진정한 불교이론을 갖춘 <삼론종>이 등장한 것이다.

구마라집의 불경 번역은 중국 불교 사상에 수많은 철학이 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구마라집이 대승 불교의 원전을 번역했기 때문에 대승 불교 교단이 난립하게 된 것이다. 중국의 혼란기인 남북조 시대가 되면, 삼론학파을 필두로 열반학파, 성실학파, 섭론학파, 지론학파 등이 등장하게 되고, 수,당시기에는 삼론종, 사론종, 성실종, 천태종 등 종파까지 등장하게 된다.

2. 승조로부터 시작된 <삼론종>

구마라집에게는 구름과 같이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그 제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승조와 도생이다.

승조와 도생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승조는 책을 베껴적는 필사 일을 하면서 근근히 생계를 이었는데, 책을 필사할수록 그는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승조는 <노자와 묵자>의 사상을 가장 좋아하였다. 특히 민중적이라는 점은 노자와 묵자의 공통점이었다. 그런데, 더욱 민중적인 종교가 있었으니 <불교>였다. 그는 구역경 중의 하나인 <유마힐경>을 읽은 뒤 감동을 받아 불교에 입문하였다. 

라집의 제자로서 격의 불교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공>사상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밝히던 그는 라집의 사상체계를 중국인들에게 전파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서구로 따지면, 예수의 철학을 알리려는 사도 바울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는 구마라집의 제자로서 수많은 불경해석을 하였다. 구마라집은 <공>에 대한 이해가 가장 확실한 제자라고 그를 극찬하였다. 불교철학사에서 그가 지은 <반야무지론, 부진공론, 물불천론> 등은 이후 중국 대승 불교사에 큰 영향을 준 책이었는데, 그 중 <부진공론>은 삼론종의 이론적 근원이었다.

승조는 인도의 중관학파의 <공> 사상에 구마라집의 <해설>까지 더하여 중국 특유의 대승불교 학파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삼론학파>라는 연구 단체였다. 훗날, 삼론학파의 철학이 수, 당 나라 시기 정착되어 <삼론종>으로 발전하게 된다. 삼론학파는 대승불교의 핵심인 <공> 사상과 <반야> 사상을 구마라집의 해설에 기초하여 연구하는 학파였다.

3. 도생로부터 시작된 불성논쟁과 <열반종>

반면, 구마라집의 제자로서 특출하게 <자신만의 철학>을 완성시킨 이가 있으니, 그가 곧 도생이다.

도생은 난징에서 축법태에게 학문을 배운뒤, 7년간 혜원과 함께 지내면서 불법을 공부하였다. 그는 진리를 알고 싶어했다. 혜원을 떠나 구마라집에게 온 뒤, 그의 박학다식은 모두에게 인정받았고, 구마라집의 수제자가 되기도 하였다.

명성을 얻은 그는 북쪽을 떠나 남조로 내려왔다. 그는 당시 불교 이론에서 상상하지 못하였던 혁신적인 발언을 한다.

도대체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부처도 처음엔 깨달음이 없었다. 부처의 제자들 중에는 가난하고 글을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바보로 태어난 자는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인간은 누구나 같은데,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가?

이런 내용을 강연하던 그는 깨달음은 지위고하와 지식의 유무를 떠나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제 막 불교 교리가 정리되던 마당에 그의 발언은 큰 파장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세속적 쾌락만을 추구하고 불교를 비방하는 자가 있다. 하지만 그런 자도 인간으로 태어났다. 불교를 비판하는 자는 깨달음을 전혀 얻을 수 없는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인 <불성>이 있다.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갑작스럽게 깨닫는다면 <성불>할 수 있다. 살면서 수없이 이루어지는 행동들과 노력을 일일이 기록하여 깨달음에 영향을 준다고 하면, 누가 성불하겠는가?

기독교로 따지면, <죄 없는 자는 돌을 던져라>와 같은 맥락이다. 삶은 수없이 이루어지는 인과관계의 연속이므로, 결과가 그 과정을 설명해준다. 결과는 곧 그 과정들이 선택한 지금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천국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살아온 날들의 과정이 마지막 순간에 집약된 것과 같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불성>을 깨닫게 된다면, 악인이라도 마지막 순간에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생의 과정 자체가 업보를 남기는 것이 아니다. 불교의 이치를 몰라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처의 보편적 정신>을 가지고 있다. 내 몸 안에 부처가 살고 있기에 누구든지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도생은 자신의 이론을 <돈오성불>이라고 말한다. <돈오>란 자신이 부처임을 갑자기 깨닫는 것이다. <성불>이란 깨달았기 때문에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부처임을 한번에 깨닫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훗날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사상에 영향을 준다.

도생의 이론은 <불성논쟁>이라는 새로운 논쟁을 가져왔다. 도생 이전의 불교 기본 이론은 <점수>였다. <점수>란, 한단계 한단계 수양을 하여 성불한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한 <깨달음>의 철학은 <점수론>을 옹호하는 기존의 승려들로부터 배척을 받게 된다. 보수적인 승려들은 그를 추방해 버렸다. 어떻게 부처의 세계와 <공>사상, <반야>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자가 <부처의 본성>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도둑놈도 깨달으면 성불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도생은 <노장사상>의 허무주의로 세상을 현혹한다고 하여 교문에서도 추방된다.

하지만, 도생의 이론이 인도 본토의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공> 사상이나 <반야> 사상과 반대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도생이 추방된 후 3년 뒤 인도에서 <대열반경>이 전래되었다. 대승불교의 심오한 뜻을 담은 이 경전에는 천제(세속적 쾌락을 추구하는 자, 불교를 비방하는 자, 무식한 자를 묶어서 다루는 말)도 사람이기에 성불할 수 있다라고 씌여진 것이다.

도생이 주장한 것은, 인도 본토에서 석가의 뜻을 해석한 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결국 도생은 최고의 고승 반열에 올라 대승 불교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것은 중국인들의 기존 가치관을 바꾸는 혁명이었다. <공자>와 같은 성인은 특출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으니 일반인과 성인의 차이점이 좁혀진 것 아닌가? 누구가 부처가 될 수 있기에 인간의 능력은 무한한 것으로 확장된 것이다.

도생은 자신의 이론으로 <열반학파>를 창시하였다. <열반학파>는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열반학파의 사상은 수나라 시대의 <천태종>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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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불교의 성장으로 발생한 폐불 사건

구마라집에 의해 시작된 중국의 불교 이론 정리는 수많은 불교 연구 학파를 탄생시켰다. 승조의 <삼론학파>, 도생의 <열반학파> 외에도 구마라집의 제자들은 다양한 연구 학파를 만들어냈다.

구마라집의 제자들 중 <공> 사상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가진 일파가 있었다. 인도의 4세기 하리바르만이 지은 <성실론>이라는 책에 의거하여, 변화하는 것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다라고 말한 것이다. 즉, <공>이라는 것을 존재나 깨달음의 차원이 아닌 <존재에 대한 분석>으로 접근하려고 한 것이다. 이 학파를 <성실학파>라고 한다. 그러나, 승조의 <삼론학파>는 이 학파의 이론이 불교를 <존재와 논리>로만 접근한다고 생각했다. 성실학파는 대승불교가 아닌 소승불교로 분류되었고, 삼론학파에 흡수되어 삼론종의 일파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훗날 고구려, 백제, 일본 등에 <성실종>이란 종파로 이론이 전파된다.

구마라집의 제자 중에서는 인도의 유식학파 세친의 <화염경>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지론학파라고 한다. 이 지론학파는 훗날 <화엄종> 성립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또 남조의 진제가 번역한 <섭대승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섭론학파>를 만들고, 유식학파 세친의 <화엄경>을 연구하기도 힜다. 이들은 훗날 중국 유식학파의 대표종파인 <법상종>의 선구자들이 된다.

이렇게 불교는 <학파>와 <종파>를 만들어가면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한다. 불교가 성장함에 따라 유교와 도교 세력은 긴장하게 된다. 혼란의 절정기인 남북조 시기가 되면, 불교와 도교는 피터지는 혈투를 벌이게 된다.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이 피터지는 역사에 대해 한번 다뤄 보도록 하겠다. 불교와 도교의 싸움...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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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 불교사에 대한 이해 : 참고할 만한 책들

처음 만나는 불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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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장호 (심포지움,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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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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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구마라집 (불광출판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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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우더신 (산책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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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의(상)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이기영 (한국불교연구원,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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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불교사 2:수용기의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카마타 시게오 (장승,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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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사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펑유란 (형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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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교 철학사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심재룡 (한국학술정보,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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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이야기(재미있는)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임원용 (여래,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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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불교와 유식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일지 (세계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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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혜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장대년 외 (청계,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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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7화. 불교의 참뜻을 알리려던 고승들

1. 도안(312-385) : 지금 불교에 필요한 것은? 계율이다.

자 지금까지 격의 불교에 대해 설명했다. 격의 불교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불교 사상을 쉽게 전파하기 위해 전통 중국 철학을 인용하여 불교 용어를 설명>하는 것이다. 부처의 깨달음인 <열반>을 도교 사상인 무위자연과 비슷하다고 여기고, <열반은 곧 무위이다>는 식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불도징의 제자인 도안(312-385)은 심오한 불교 교리를 대충 때려맞추려는 격의 불교 사상이 싫었다. 격의 불교 사상 때문에 당시 불교는 <원시 신앙>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인과 일반 백성 할 것 없이 불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하는 것 조차 못하였다. 하안과 왕필 같은 청담 사상가들은 <유교, 불교, 도교는 다 도를 추구하는 같은 종교이다>고 이해했을 정도이다. 오히려 논쟁이 된 것은 부처와 노자 중에 누가 먼저 태어난 스승이냐 같은 것이었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뒤에 태어난 사람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불교의 스님은 주술사와 다를 바 없었다. 스님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마술을 부린다고 믿었기 때문에 불교와 샤머니즘은 동일한 것이었다. 지옥을 지키는 불문의 수호장들은 동물 숭배 사상(토테미즘)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천둥과 번개를 부릴 줄 아는 보살은 애니미즘과 다를 바 없다. 부처가 되기 위해 은거한 보살과 산신령이 뭐가 다른가? 위진시대 초창기 불교는 신비한 주술을 부리는 도가의 <도사>와 구별되지 못하였다.

격의 불교 시기 스님은 마술로 백성들을 치료하고, 주술로 국가를 지키는 호법신이면서,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한 도사였다. 이렇게 신비한 스님이기에 위진시대 혼란기의 왕들은 스님을 초빙하여 <신비한 설법>을 듣고자 했던 것이다. 불도징 같은 위대한 스님이 겨우 <주술>이나 부리면서 왕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불교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불도징의 제자인 도안은 이런 풍토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진정한 불교를 위해 2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복잡한 교리에 <해설>을 달아 불교 이론을 쉽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철저한 계율을 만들고 지켜야 불교의 참뜻이 지켜진다는 것이었다.

도안은 스승인 불도징이 죽자 불경 주해를 다는 일에 온 힘을 다하였다.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도와서 쉬운 말로 <해설>을 달기 시작했다. 인도어인 <범어>는 논리적인 언어이기에, 다양한 뜻을 내포한 중국어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았다. 범어는 표음문자고, 한자는 표의문자이다. 도안은 최대한 쉬운 말로 범어를 중국어로 번역하였다. 불교 경전의 참뜻을 알리는 일이 도안부터 시작된 것이다.

반면, 도안이 수많은 경서에 해설을 달면서 중국어의 어휘체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심오한 불교 경전을 해석하다보면 중국어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도안은 기존 한자의 활용도를 더욱 높여서 설법, 인도식 속담, 격언, 불교 고유 용어 등을 표현해 내었다. 중국의 불교 교리가 심화되는 것은 곧 중국어의 어휘가 풍부해짐을 뜻한다.

도안은 불교 교리를 전파하는데 노자의 사상과 청담가들의 논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불교의 원래 뜻을 살리려고만 노력했기 때문에, 중국 전통 사상을 가지고 불교 사상을 해석하는 <격의 불교>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불교 경전에 주석을 단 것은 부처의 말씀에 대한 글들을 읽고 확실한 근거를 통해서였다. 드디어 불교는 노자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도안은 철저한 계율을 중시했다. 승려는 사회의 지도층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승려가 되는 기본 조건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예 모든 출가 승려들의 성을 <석>으로 만들어 버렸다. 부처에게 귀의한 사람들이 세속의 성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안의 획기적인 계율 강조로, 이후 불교에서는 <석>을 성으로 삼는 전통이 생겼다.

그럼 도안이 불교의 참뜻을 찾아내었을까?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대승불교의 기본 교리는 반야(지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율만 강조하고 지혜만 찾으라고 말하면서, <반야경>을 외워라~~~ 강요한다면 사람들은 복잡한 교리와 율법에 질려 불교를 떠날 것이다.

그래서 도안은 율법의 실천 사항으로 <미륵신앙>을 강조하였다. 어지러운 난세에, 미륵부처가 내려오면 모두가 하늘(도솔천)로 갈 수 있으니, 그 날을 생각하면서 왕생을 기도하라는 것이다. 미륵신앙은 내세를 염원하는 백성들의 뜻과도 일치하고, 절대자가 구원해준다는 신비주의 사상과도 일치했다. 또, 국왕이 곧 미륵의 화신이라는 논리와도 연결되면서 국왕도 불교를 탄압하지 않을거라는 확신을 준 사상이었다.

불교의 참 뜻을 알기 위해서 계율을 강조하고, 경전을 번역하면서도 대중적인 미륵신앙을 강조한 도안...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최상의 스님이었던 것이다. 역사에서는 도안을 <한나라 이후 선법과 방야의 두 가지를 종합한 반야 6대가>라고 표현한다.

도안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중국대륙의 북부를 통일한 부견의 일화에서도 볼 수 있다. 전진왕 부견은 명성이 자자한 도안을 모시기 위해 십만 대군을 일으켜 남부 지방을 초토화 시키려고 하였다. 스님 한명을 위해 수만명이 죽을지도 모를 전쟁을 계획한 것이다. 도안은 전쟁을 말리며 전진의 수도 장안에 와서 수백권의 경서를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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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열정적으로 책을 번역했던지, 훗날 구마라습은 이렇게 말하였다. <도안은 동방의 진정한 성인>이라고...

전진왕 부견이 중국 북부대륙의 영토를 넓히고 자신의 기반을 확고히 다진 것은 도안의 철학을 존경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2. 혜원(334-416) : 백련결사는 왕에게 예를 갖추지 않는다.

혜원은 원래 노장사상을 따르던 <도사>였다. 그러나 불도징과 도안을 만난 후, 불교의 심오한 뜻에 흠뻑 빠져 불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도안을 존경하여 <율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스승인 도안이 전진왕 부견에게 가 버리자, 동림사(여산)라는 절에서 30년을 득도하면서밖에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는지, 자신이 30년간 속세에 나오지 않겠다는 말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다. 또, 속세의 성을 버리고 불가에 들어간 사람은 <정치>와 상관없는 사람이기에 왕을 만나도 절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 사람이다. 혜원이 남긴 유명한 일화를 한번 볼까?

혜원은 친구인 도연명을 만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였다.  승려와 유학자, 불가의 스님과 속세의 정치인은 어울릴 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당대의 최고 철학자라 불리는 이 둘은 너무나 친하였다. 이야기를 하는 중 도연명이 떠나자, 혜원은 도연명을 더 이상 전송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도연명 : <좀더 전송해주게나. 나는 국가의 관리이므로 자유롭지 못하지만, 자네는 속세를 떠났으니 자유롭지 않은가?>

혜원 : <안되네. 내 마음과 욕망은 자네를 더 전송하고 싶지만, 앞에 호계가 있으니 건널수가 없네. 이것이 삼십년 동안 지킨 내 계율이네.>

도연명 : <그런 계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혜원 : <의미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네. 선한일이 비록 작다 하여도 행하지 않아서는 안되고 악한 일이 비록 작아도 행하여서는 안된다는 말이 유가에 있더군. 내가 만일 이렇게 작은 일도 시종일관하지 못한다면 큰 일에는 더욱 시종일관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도연명은 그 말을 듣고, 대화마저 마음놓고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그는 돌아오는 즉시 관직을 버렸다. 그리고 만고에 길이 남을 <귀거래사>를 지었다. <귀거래사>는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도연명이 남긴 대작이었다.

혜원 역시 스승인 도안과 같은 입장이었다. 사람들에게 복잡한 반야(지혜)를 설교하면서, 반야경을 외워라~~ 라고 말한다면, 누가 부처를 좋아하겠는가? 아무리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도 수능 공부만 10년동안 하라고 말한다면 공부가 지긋지긋할 것이다. 그래서 혜원은 생각한다. 반야경은 나혼자 연구해서 남기면 될 것이고, 일반인들이 쉽게 불교에 접근하는 방법은 없을까?

혜원이 생각한 불교의 수양 방법은 <나무아미타불>이었다. 보통 <아미타 신앙>이라고 한다. 혼란기의 백성들은 복잡한 계율과 교리를 이해할 틈이 없다. 매일 같이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속세의 사람들이 무슨 교리를 외우겠는가? 그냥 <아미타불>만 외치고, 마음으로만 부처를 모시면 된다.

혜원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문구를 외운 후 계율을 지키면서 착하게 살면 복잡한 교리를 몰라도 해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 이것은 먼 훗날 <정토종>이라는 불교 종파와 연결된다. 혜원은 아예 <나무아미타불>을 맘놓고 외칠 수 있는 염불 단체를 만들어 버린다. 이 결사 단체를 <백련사>라고 하는데, 후대 불교인들은 어려운 시기를 만날 때마다 이 <백련사>를 만들었다.

백련사의 수련법은 간단하다. 아미타 불상을 보면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한다. 언젠가 아미타불을 만날 것을 꿈꾸며, 죽은 후에는 극락세계에서 영원한 편안함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도안과 혜원은 진정한 불교의 참뜻을 구하면서도, 백성들과 거리를 두지 않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했던 것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미신에 빠져있던 불교의 참 뜻을 중국인에게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3. 법현(339-420) : 나는 참 뜻이 뭔지 직접 찾아봐야겠다.

도안과 혜원이 중국 안에서 불교의 참뜻을 고민했다면, 법현은 아예 인도에 가서 불법을 배우려고 한 인물이다.

불법을 배우러 서역으로 떠난 최초의 인물은 <주사행>이다. 주사행은 한나라 영제 때 <도행경>을 번역했는데, 자신이 번역한 것을 스스로 읽어도 짜증이 났다. 도무지 불교의 참 뜻을 번역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조조의 위나라 시기에 서역의 우전국까지 가서 경전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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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의 중국 국가>

법현 역시 서역으로 <구법> 여행을 시작했다. <구법>이란, 서역의 고승에게 불법을 배우고, 불교 유적지를 직접 보고 느끼는 작업이었다. 이 당시 구법은 불교 경전의 뜻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본가 스님을 만난다는 뜻이 강했다. 또, 해석되지 않는 부분과 관련된 책을 가져오는 목적도 있었다.

법현이 서역에 다녀온 후 적은 <불국기, 혹은 법현전>를 보면 법현의 여행이 얼마나 고달픈 것인지 알 수 있다. 다녀온 사람이 없기에 길을 찾는 것 조차 어려운 여행 속에서 동료들은 모두 죽고 법현 혼자만 살아돌아온 것이다. 이미 부족할 것 없이 존경받고 있던 60살의 스님이 14년간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는 길도 모르는 중앙아시아의 사막을 끝도 없이 가로질러 오아시스 국가에 도착한다. 파미르 고원의 눈보라와 싸워가면서 절벽을 넘고, 인더스 강을 건넜다. 겨우 서인도에 도착하여 불법을 배운 그는 실론(스리랑카)까지 넘어가 불법을 구하려고 했다. 스리랑카에서 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풍과 해일까지 만났지만, 그는 결국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들을 지켜내었고, 그것을 번역하였다.

그가 가져온 책 중에서 유명한 것은 <대반열반경>이었다. 그가 번역한 이 책의 내용은 중국 <열반종> 사상의 핵심이 되었다. 중국 대륙에 부처의 참 뜻을 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시작한 그의 <불국기>는 현장(삼장법사)의 대당서역기와 함께 위대한 불교 여행서로 평가된다.

자, 오늘은 격의 불교를 넘어서 불교의 참 뜻을 전하고 싶어했던 몇몇 고승들의 이야기를 해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불교의 참뜻을 전한 구마라집과 남북조 시대의 고승들 이야기를 하고, 위진남북조 당시 역사의 전개가 불교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이야기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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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할 만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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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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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6화. 격의 불교 이야기...

1. 중국 불교는 청담에서 비롯되었다.

자, 이제 본격적인 중국 불교 이야기를 해보자. 중국에 불교가 처음 전파된 것은 후한 시대이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듯이 쿠샨 왕조의 적극적인 확장 정책과 외교정책으로 대승 불교가 각지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중국 한나라에서의 불교는 <교양> 철학 수준이었다. 중국 <한>나라는 가장 전통적인 중국 왕조이다. 중국 민족은 자신들이 <한족>이라고 믿고 있으며, 중국 전통 문화의 원류는 <한나라>에서 기반이 잡혔다고 생각했다. 가장 전통적인 <유학>도 한나라 시기에 완성되었다. 한무제가 <유교>를 국교화하고, <한자>의 정형틀을 완성시킨 것이다.

불교가 한나라에 전파되었지만, 그것은 외국 철학의 일종일 뿐이었다. 지배층이 교양을 쌓기 위해 읽어보는 수준이었을 뿐, 중국 지식인들은 관리 임용을 위해 <유학>을 익혔다.

그럼, 불교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부터일까?

후한이 멸망할 무렵부터이다. 중국 후한시대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원소, 조조 등 호족세력들이 판치는 무법천하였다. 백성들은 길고 긴 전쟁의 시대로 막 들어선 것이다.

위, 촉, 오의 삼국시대부터 남북조 시대의 분열까지 길고 긴 분열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시기가 되기에 윤리적인 측면이 강한 <유학>은 왕따당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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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의 중국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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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의 국가 먹이사슬>

혼란한 시기에 사람들이 찾는 종교는 <내세>라던가 <자연>을 강조하는 종교였다. 사람들은 유학이 아닌, 도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한나라가 망한 뒤, 실권을 잡은 것은 삼국 중 조조의 <위>나라였다. 위 나라는 강력한 법치주의에 의해 국가 통일을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정치가가 아닌 일반 학자, 사상가들은 <도교>에서 혼란의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당시 도교는 혼란의 원인을 <인간의 욕심>으로 보았다. 서로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탐욕자들이 싸우고 죽이는 탓에 백성들만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 않는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위나라의 학자들은 도가사상의 원리인 <자연으로 돌아가자>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렇게 노자, 장자 등의 철학에서 현실의 문제점을 발견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현학>이라고 한다.

<현학>은 노자와 장자의 철학에서 우주의 근본 원리를 규명하려는 학문이다. 우주의 근본 원리인 <도>를 <현>이라고도 부르기 때문에 현학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현학은 하안(190-249), 왕필(226-249) 등에 의해 전개되었다.

하안과 왕필 등의 사상가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문제점이 무언가를 따지려고 했는데, 이런 대화를 <청담>이라고 한다. <청담>이란 말 그대로 <깨끗한 세계의 담론>이란 뜻이다. 위나라에서 시작된 이들의 <대화>를 역사에서는 <정음시대의 현학>이라고 부른다. 하안은 노장사상으로 논어를 해석하였고, 왕필은 노장사상으로 주역을 해석하였다고 한다.

그럼 이들의 대화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간단하다. 도학에 나오는 사상들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는 것이었다. 도학의 문구들은 너무나 심오하다. 노자의 <도덕경>은 서양 학자들도 인정하는 동양 최고의 학술서이다. 노자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무위자연>, 국가는 작을수록 좋다라는 <소국과민>, 가장 행복한 삶은 자연에서의 삶이라는 <자연합치> 등을 주장하였다.

노자의 사상에 맞춰서 모든 사상을 재해석하는 것이 <현학>이다. 유교사상은 현실사회의 직접적인 문제와 인간 윤리를 주로 다룬다. 그러나 후한이 망한 뒤의 세상은 무법 천지이다. 인간 윤리는 이제 <전쟁없는 사회>라는 틀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청담 사상가들은 현실의 윤리보다는 <전쟁>의 참혹함, 사후세계는 어떤 것일까라는 내세에 대한 상상, 삶과 죽음과 인간관계에 대한 탐구에 더 집중한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답은 한가지였다. 대화를 나누던 청담 사상가들은 <전쟁>에 골몰하는 국가를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점점 현실과 떨어져 중국 전통 윤리를 비관하기 시작한다. 자, 그럼 청담 사상가들은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노자의 세계로 가기 위한 방편으로 어떤 철학을 찾았을까?

불교에 그 답이 있었다. 불교는 만민에 대한 구원, 내세에 대한 윤회와 열반 사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공> 사상을 강조하여 <허무주의>를 보여주면서도,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혼란한 시기에 딱 맞다. 얼마나 맞춤형 철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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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위진남북조 시기의 중국인들은 지긋지긋한 전쟁에 질려있었다. 삼국시대, 위의 조조, 서진시대, 5호 16국의 이민족 시대, 남북조의 분열시대.... 길고 긴 전쟁의 역사는 훗날 <수>나라가 통일국가를 세울 무렵에야 끝나는 것이다.

이 불안한 시기에 불교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인간은 죽은 뒤 자신의 업보에 의해 <윤회>를 하게 된다. 지금 현상에서의 고난은 전생에서의 죄를 씻는 과정이다. 그 업이 끝나고 현생에 덕을 쌓으면 내세에는 행복한 날이 기다리고 있다. (업설) 지금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많은 죄를 지은 것이고 생이 끝나면 죄를 받을 것이다.(인과응보론)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얼마나 딱 맞춤인 철학인가?

그렇다고 지배층과 국가가 불교를 탄압한 것도 아니다. 한나라가 망하고, 조조 일가의 시대가 끝난 뒤 중국은 5호 16국이라는 이민족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이민족의 왕들은 <유학>에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중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불교>가 이민족 취향에는 딱 맞았다.

이민족 왕들은 불교를 주술적 방편으로 이용하였다. 흉년이 들면 승려가 주술을 펼쳐주었다. 질병과 재난은 불제자들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큰 전쟁을 앞두고 학식이 높은 승려들에게 전쟁의 승패를 묻기도 하였다. 또, 인도의 아쇼카 왕이 했던 것처럼 왕 자체가 불법을 수호하는 <불교의 수호신>임을 자청하였다. 왕이 곧 불교의 신이라는 이념은 불교를 믿는 백성들을 한 마음으로 묶어줄 수 있었다.

왜 불교가 민간신앙이나 주술신앙, 국가 호국 불교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혼란한 이 당시에는 불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왕권 강화를 위한 <사상>으로 충분했다. 혼란기의 각국 지배자는 큰 사찰과 어마어마한 불상, 귀따가운 큰 법회를 열어가면서 왕권이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였다.

어렵고 험난한 시기에 불교의 원래 뜻이 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종교는 현실에 도움만 주면 되지 않는가?

3. 대충 때려맞춰서 이해한 격의 불교

초기 청담 사상가인 왕필은 유교, 도교, 불교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왕필은 도교의 기준에 맞춰 다른 종교의 특징을 규정하였다. 노자와 장자가 도가 사상을 창시하면서 우주의 근본 원리와 인간의 행동 가짐을 <도>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공자 역시 큰 <도>를 깨우친 사람이고, 석가모니도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성인들이 결국 <도>를 깨달았으니, 모든 믿음은 하나가 아니겠는가?

왕필이 주장한 <유,불,도교의 3교 일치설>은 지둔(314-366)에 의해 구체화 되었다.

지둔은 불교 스님이다. 왕필이 도교 기준으로 종교를 통합했다면, 지둔은 불교 사상을 중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보자. 중국 전통 사상은 <리기론>이다. <리>란, 우주의 근본 질서나 계절을 의미하는 불변의 진리를 말한다. 지둔은 이렇게 말한다.

<리>가 절대불변의 원리인 것처럼 불가에서 말하는 반야(지혜>는 영원 불변의 <깨달음>이다. 즉, <리>는 불가의 <절대적 깨달음>을 말한다.

다른 것도 대입해볼까?

불가의 <공>사상은 <만물은 돌고 돌아 그 형체를 알수 없다>는 뜻이다. 보이는 것은 곧 사라지고, 사라진 것은 다시 생겨난다.(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심오한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도교의 <무>로 설명한다. 사라진 것이니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부처가 <열반>한다는 것은 도교의 <무위>로 해석한다.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보살들을 도교의 <도>로 해석한다. 불가의 <진리>는 도교의 <근본>으로 해석해 버린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간편한 해석법인가?

이러한 불교 이해 방식을 격의 불교 방식이라고 한다. 격의란, 불교의 난해한 개념들을 중국 전통 사상에 이미 존재하는 비슷한 개념들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쉽게 이해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불교의 원래 뜻을 왜곡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방법을 중국 곳곳에 알리고 다닌 이는 축법아였다. 그러나, 4세기 이후 불교의 승려들은 축법아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격의 불교는 불교의 참 뜻을 알 수 없기에, 지배층들이 마음대로 해석하여 불교를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든다. 또, 일반 백성들은 토착신앙과 신비주의를 불교와 구분하지도 못하고 멋대로 불교를 이해한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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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 남북조 시대의 대립상황>

4. 불도징을 초빙하다.

불도징은 위진남북조의 혼란이 시작된 초기 인물이었다. 그는 서북인도와 관련된 구자국이라는 곳의 은거하는 불학자였다. 그가 70여살이 되었을 때, 중국의 백성들이 <위진시대>의 혼란기에서 희망없이 산다는 말을 듣고, 제자들과 중국으로 건너왔다. 드디어 불교가 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정통 <인도산 스님>이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런데, 불도징은 <불교의 참뜻>을 전파하지 못하였다. 당시는 혼란중에 혼란기인 5호 16국 시대였다. 5개의 이민족이 16개 국가를 세워 중국 대륙은 어딜 가나 전쟁 뿐이었다. 불도징은 후조 왕국의 석륵, 석호 부자에게 불법을 설파하였는데, 석륵은 불교를 아주 우습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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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기 : 5호 16국 시대의 후조 왕국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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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국가들의 민족 분포와 국가 창업자>

불도징은 불교 교리에 대한 철학 강의를 했지만, 석륵은 시큰둥했다. 결국 불도징은 교리로서 불법을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겼다. 불도징은 주문을 외워서 항아리에서 연꽃이 나오게 하는 등 신비로운 주술로 석륵을 감동시켰다. 결국 이 당시 불교 수준은, 뭔가 위대한 부처의 힘을 보여줘야 비로소 믿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불도징은 큰 뜻을 품고 중국 대륙에 왔지만, 단 한권의 책도 쓰지 못하였다. 이민족의 왕들이 원하는 건 신비로운 주술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 뿐이었다. 스님과 주술가, 점쟁이를 구분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석륵의 아들, 석호는 이 신비로운 스님을 존경하였다. 불도징은 석호에게 <국왕>이 해야 할 일을 설교하면서 중국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였다.

1. 살행을 금지하고 죄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말 것
   2. 포학한 행동을 피하고 자비심을 가지고 보시할 것
   3. 부처를 섬기는 데 있어 깨끗한 마음과 자긍심을 가지고 해야 할 것

불도징은, 인도에서 건너온 선구자라는 것 외에 크게 남긴 것이 없다. 중국 대륙에 자리잡은 이민족들은 불법이 뭔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중국 불교사를 바꿀 만한 거목들을 제자로 키웠다. 그들의 이름은 도안, 혜원 이였다.

중국 대륙에서는 부처의 참뜻이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다음장에서는 도안부터 시작되는 <불교 알리기>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중국 스님들이 제대로 된 불교를 알리고자 했던 노력은 수백년 동안 계속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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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5화. 불교의 외침 - 이젠 인도를 떠나고 싶어요 ~

1. 인도에 불교가 없다?

불교의 종주국은 인도이다. 그러나, 기원후 5세기가 지나고 인도에서는 더 이상의 불교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티벳이나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불교의 교리 논쟁이 활발하게 펼쳐진다. 특히, 4세기 이후, 불교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지역은 중국과 한반도 등 동아시아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석가의 가르침이 재정리되어 대승 불교로 정립된 인도의 불교는 아시아 각지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정작 인도 본토에서는 불교의 힘이 사라졌다. 그 이유는 새로운 정권의 성립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 마가다 왕국이 불교를 보호한 이래, 기원전 4세기 마우리아 왕조에서는 <왕이 곧 부처의 화신이다>라는 사상으로 불교를 옹호하였다. 대표적인 왕이 스스로 전륜성왕이라고 말하였던 아쇼카 왕이다.

기원후 3세기 까지도 인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왕조들은 불교를 인정하였다. 기원 전후 인도 남부에 브라만교를 신봉하는 안드라 왕조가 있었으나, 인도 중북부의 대부분 지역은 불교 문화와 간다라 미술을 인정하는 쿠샨 왕조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쿠샨 왕조는 쿠샨인(이란인) 계통의 왕조로 다양한 종교를 모두 인정하였다.

<쿠샨 왕조의 불상>

<쿠샨 왕조의 전성기>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2c)은 중국-이란-인도를 연결하는 헬레니즘 상권을 장악하면서 상권과 통행세를 받았고, 국경을 넘나드는 불자들을 보호하였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서아시아로 이르는 비단길과 인도를 거치는 바닷길은 불교 전파 경로와도 일치했다. 헬레니즘의 다체로운 문화는 대승 불교의 확대를 촉진하였고, 그 결과 중국, 한반도, 인도에 이르기까지 불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그러나, 4세기 말, 인도의 상황은 급변한다.

브라만 교를 신봉했던 아리아 인들의 강력한 국가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갠지스 강 유역에서 찬드라 굽타가 건국한 굽타왕조는 쿠샨 왕조를 멸망시키고 북인도 전체를 통일하였다. 그리고, 아리아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며 이민족들을 추방하기 시작한다.

투르크인, 샤카부족(석가부족), 이란인(쿠샨인)은 아리아인들의 세상에서 설 곳이 없었다. 이제 세상은 고대 브라만의 후손들이 아리아인의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아리아인들의 고대 사상의 복구를 꿈꾸며 강력한 인도 민족주의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이민족과 혼혈족, 반브라만 종교는 인도에서 추방되었다.

<4세기 굽타왕조의 영역>

그리고, 고대 브라만의 베다 문학을 재정리 하여 산스크리트 문학이 등장한다. 브라만교에서 유래한 힌두교가 인도 전통 민족 종교가 되었고, 인도인의 율법은 <마누법전>으로 정리되었다. 고대 브라만 민족의 위대함은 <대서사시>로 편집되었다. 그것이 유명한 힌두교 경전인 <마하바라타>, <라마야나>이다.

대서사시는 고대 신인 브라만을 찬양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비슈누, 시바 등 고대적 요소를 갖춘 전통신을 아리아 부족의 현실에 맞게 재편한 것이다. 그리고, 힌두의 신은 인도인을 괴롭혔던 모든 이민족을 물리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대세는 <불교>가 아닌 <힌두교>였다.

그럼, 그동안 불교는 뭘하고 있었을까?

불교의 교리는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지만, 강력한 굽타왕조에 맞설 힘은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특히 인도 북부의 불교 교단들은 이미 큰 싸움으로 지쳐있던 상태였다.

마우리아 왕조에서 쿠샨 왕조까지 이어지는 동안 불교는 북부 지역의 강대국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반면, 불교 사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북방 이민족들과 끊임없는 투쟁을 하였다. 특히, 쿠샨 왕조 시기 불교 교단이 주적으로 삼았던 이민족은 <훈족>이었다.

중국의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중국에서 밀려난 훈족들은 끊임없이 인도 북부 지역을 약탈하였다. 이 훈족들은 동으로는 중국 북부로, 서로는 게르만 사회로, 남으로는 인도로 진출하여 기원후 세계사의 여러 지역에 영향을 준다. 인도의 고대 여러 왕조들이 이 훈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였고, 서유럽에서는 서로마의 멸망을 이끌었던 게르만족의 이동까지 훈족의 영향력이 미쳤다.

그나마, 이란인이 세운 쿠샨 왕조가 기원후 4세기 무렵까지 버틴 것은 왕조를 지지했던 불교 교단의 협조 때문이었다. 그러나, 쿠샨 왕조는 망했고, 불교 교단은 훈족과의 투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불교는 없었다.

힌두교의 복고주의는 불교 사상을 원시 브라만 주의로 돌려놓았다. 수드라 계급에게 평등은 더 이상 없었다. 바르나 제도의 계급 차별은 확고했고, 모든 직업과 주거, 결혼까지도 계급별로 차등을 두었다. 마누법전은 힌두교를 믿는 아리안 민족만을 위한 법이었다. 하층민에게 <해탈>의 기회는 없었다.

아잔타 석굴 : 인도양식과 이전 양식들이 결합한 인도적인 양식. 동아시아에도 많은 영항을 주었다.

2. 불교는 <밀교>가 되어간다...

아리아 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운 굽타 왕조는 7세기가 되기 전에 멸망한다. 7세기 무렵, 불교를 옹호하는 바르다나 왕조가 출현하면서 중국 불교와 우호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대부분 인도의 작은 독립국들은 힌두교를 옹호하였다. 힌두교가 지배층의 종교로서 백성들을 통제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7세기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교는 힌두교의 교리에 포섭되어 그 의미를 잃어갔다.

인도에서 대승 불교는 점차 <밀교>가 되었다.

힌두교를 믿는 아리아인의 탄압으로 종교 집회는 비밀스럽게 열렸다. 불교도들은 교리를 찾는게 아니라 종교 자체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점점 종교의 교리는 희박해지고, 절대자나 유일신을 찾는 신비주의 종교로 변질되었다.

초기 논리적인 불교에서 볼 수 없었던 주술 신앙도 등장한다. 미륵이 바람과 불, 홍수를 몰고와 세상을 정화시킨다는 믿음이 등장한다. 또 민간 신앙과 불교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민간에서 믿었던 수많은 신들이 불교 안에 들어오게 된다.

그나마, 이런 변질된 <불교>조차 7세기 이후 사라져간다. 7세기 이후 인도에 마호메트의 이슬람교가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의 기본 사상은 <평등>이다. 계급간 <차별>을 강조하는 힌두교와는 상극이었다. 하층민들은 <차별>을 강조하는 힌두교가 싫어서 불교를 선택했지만, 이슬람교가 들어오자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한다. 어짜피 똑같은 <평등>을 주장하는 종교라면, 힘있는 <이슬람 정복자>들이 숨어지내는 불교도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는가?

10세기 이후 본격적인 이슬람 세계가 된 인도는 또 한번 문화적 격동을 경험한다. 힌두교 사원과 불교 사원은 동시에 파괴되었다. 이래 저래 불상은 정권의 놀림감이 되었다. 16세기 무굴제국이 성립했지만, 무굴 제국은 전통 아리아 종교인 힌두교와, 하층민 종교인 이슬람을 융합시키기에 급급했다. 불교가 설 자리는 없었다.

21세기 현재, 인도에서 불교도의 인구는 전체 인구 비율로 보았을 때 너무나 미미하다. 불교의 종주국은 대승 불교가 정립된 5세기 이후, 한번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힌두교와 이슬람교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던 것이다.

3. 불교의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중국 불교

5세기 이후, 불교의 종주국 자리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은 유가, 법가 등 다양한 사상체계가 이미 정비되어 있었고, 굳이 불교가 아니더라도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데 지장이 없는 선진국이었다.

중국과 인도는 전혀 이질적인 문화권이었다. 중국어는 한자(표의문자)이고, 인도어는 범어(표음문자)이다. 중국인들은 유가, 법가 사상등 국가와 인간의 사회적 현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성향을 가졌다. 반면, 인도의 불교는 인간의 인지구조를 <분석>하려는 특징을 가진 사상이었다. 인도는 수많은 소왕국이 분립하면서 생성과 멸망을 반복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제외한다면, 비교적 통일 국가체제를 유지해왔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불교가 중국 사상계를 장악해 버린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일까? 그리고, 중국은 자신과 다른 이 문화와 사상을 어떻게 중국식으로 바꿔 버린 것일까?

인도와 중국이 불교라는 문화를 공유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헬레니즘 문화 때문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활한 문화권을 만들고 떠난 뒤, 인도는 쿠샨 왕조 카니슈카 왕이 서역 지배권까지 확보하게 되었다. 쿠샨 왕조 자체가 이란계 왕조였던 만큼, 쿠샨 왕조는 동서 교역에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쿠샨 왕조는 동아시아의 중국, 한반도부터 서아시아의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무역을 전개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승 불교가 아시아 곳곳에 전파된 것이다. 특히, 쿠샨 왕조와 상업을 하던 실크로드 중간 중간의 국가들은 불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중국의 한 왕조까지 불교가 전파된 것이다. 또, 당시 인도와 중국간 직접 교역로는 바닷길이었기 때문에 <남방 바닷길>을 통해서도 불교 경전이 한 왕조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불교를 처음 접한 중국의 한족들은 불교를 사상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중국의 한나라는 한무제라는 강력한 왕이 <유학>을 국가 사상으로 공포했던 나라였다. 한 왕조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유학을 열심히 공부한 뒤, <구품관인법>이라는 관리 임용에 채용되어야 했다.

한 나라에서 불교는 중국 전통 사상인 도교에도 밀렸다. 한 나라의 지배층은 고품격 품위 유지 사상으로 도교의 <황로사상>을 숭배하였다. 황로사상은 노장사상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의 철학을 지배층의 교양철학으로 받아들인 것을 말한다.

처음 불교를 접한 한나라의 지배층은, 불교를 도교와 같은 교양 철학으로 생각했다. 도교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 백성들의 생활을 살펴라>라고 말한 것은 한나라 지배층의 우아한 집권 철학이었다.(물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말로만 생색내기 위한 교양 철학이었지만....)

불교 역시 같은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대승 불교의 <공> 사상을 접한 한나라의 지배층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허무함이겠구나. 아무 것도 없는 상태는 노자가 말한 자연으로 복귀한 상태이다. 공이란 곧, <없다>는 것이 아닌가? 공이란 것이 태초의 허무함이라면, 곧 자연 상태가 아니겠는가? 석가의 가르침은 노자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구나....

결국 한나라 지배층이 생각한 불교는 도교와 같은 것이었다. 현실 상태에서 필요한 것은 유학이었고, 교양이나 취미로 알아야 할 것이 도교나 불교 따위였던 것이다. 교양이나 취미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따라서 도교와 불교는 하나의 패키지 세트로 묶여서 교양철학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심심할 때 생각해보는 교양 철학이 어떻게 유가 사상과 맞먹는 거대한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자, 그럼 그 철학자들 이야기를 한번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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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4화. 인도 불교의 대중화 - 대승 불교 이야기

1. 일반민에게 친숙한 석가 - 석가의 불상이 만들어지다.

자, 이제 한반도에 직접 관련이 있는 대승 불교쪽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소승불교나 티벳 불교는 우리와 큰 상관이 없으니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일단, 대승불교란 무엇인가?

대승불교의 핵심을 짧게 정리하자면 <만민구제>, <속가불교>, <보살신앙> 등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럼 하나 하나 정리해볼까나? 대승이란 말 자체가 <큰 수레>라는 뜻이다. 그럼, 소승은 <작은 수레>겠지?

석가시대의 불교는 출가자들이 문답을 통해 진리를 얻고, 수양과 고행을 적절히 섞어 깨달음을 알아내는 불교였다. 불교를 믿는 출가자들의 목표는 <자신의 구제>였다. 즉, 깨달음을 위해 정진을 계속하고, 그 결과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석가의 이념을 인정한 마가다 왕국이나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 역시이러한 불교의 기본 교리를 지키는 <호법왕> 역할을 하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초기 불교 자체가 <소승 불교>의 성격이었던 것이다.

<아쇼카 왕의 석주 : 정법실현>

<석주 머릿기둥>

그러나, 기원전 2세기 무렵, 소승 불교는 성격이 바뀌게 된다. 당시에는 새로운 사회사상으로 힌두이즘의 바크티 사상이 유행하였다. 바크티란, <믿음으로 얻어지는 은총>이란 뜻으로 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신의 은총이 내린다는 초기 힌두 사상이었다.

불교도들은 이 사상이 자극을 받았다. 석가는 출가자와 일반 신도를 차별하지 않았는데, 왜 <열반>에 이르는 길은 출가자들 위주로 이루어지는가? 깨달음을 얻기 힘든 일반인들은 <도솔천>에 오르기 힘든 것인가?

거기에 계속 유입되는 철학들도 불교의 폐쇄성과 대립하였다. 유일신을 믿는 이교도들도 자신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을 약속한다는데, 불자들은 왜 출가자들만의 <열반>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사회적 욕구를 해결한 것이 바로 <대승 불교>였다. 붓다는 더 이상 선택받은 출가자들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중생들에게 불교가 열려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혼자만의 구원이 아니라 함께하는 구원이었다. 기원 전후로 인도에는 안드라 왕조가 성립하여 이민족을 몰아내고 인도 남부를 확실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 왕조는 브라만교를 신봉하면서 바르나 질서를 재확립하려고 했다.

불교도들은, 이제 망설일 이유가 없어졌다. 혼자만의 <열반>을 추구할 때가 아니라 만민을 구원한다는 명분이 필요할 때였다. 자신의 깨달음의 결과를 많은 이들에게 돌려 수많은 <불도>들이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수많은 중생들을 <불제자>로 만들 수 있을까?

그 첫 번째 방법은, 석존의 가르침에 앞서 석존의 인격과 신성을 강조하는 일이었다. 원래 초기 불교에서는 석탑이라는 것이 없었다. 부처조차 죽음(입적) 후에는 화장을 하여, 몸에서 나온 다비를 세는 정도에서 죽음을 정리하곤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석가의 유물들로 각지에 불탑을 세워 보호하기 시작하였고, 일반인들은 그곳을 찾아와 경배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출가자 중심의 불교가 아닌 일반인 중심의 불교가 시작됨을 뜻한다. 일반인들은 복잡한 불교의 가르침보다는 석가에 대한 믿음을 신앙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리고 어느날 부터, 석가의 불상 조각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석가의 불상 조각을 처음 만든 것은,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 이후 인도를 접하게 된 그리스 인들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석가라는 인물을 합리적으로 알기 위해 어떤 형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의 신들을 모방한 형태로 석가의 불상을 조각했고, 이것은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영향이 가장 크게 미치던 인도 북부 간다라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간다라 미술)

<간다라 미술의 불상들>

2. 부처의 비서실장 - 보살들의 등장

다음, 불제자 양성 프로젝트는 <보살>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초기 소승 불교의 <개인 구제> 방법은 듣고, 고행하고, 깨닫는 방법이었다. 석가의 가르침을 암송한 뒤, 석가의 고통을 스스로 느껴보고, 석가의 깨달음을 명상해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먹고 살기 바쁜 일반인들이 언제 암송하고, 고통받아보고, 한가로이 명상하고 있겠는가? 그렇다고, <열반>에 들어간 석가가 다시 나와서 <전 중생>과 일일이 악수하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보살>이었다. 보살은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고 다니는 예비 부처들이었다. 보살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선행을 쌓아야 하는데, 선행을 쌓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일반민들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몸으로 보여야만 했다. 이 수행자들은 부처의 사상을 알리는 홍보실장과도 같았다.

<보살>들의 수행방법은 <육바라밀>의 실천이었다. 이것은 6개의 진리를 실천한다는 뜻이다. 이 육바라밀은 대승 불교의 최초 경전인 <반야경>의 핵심이었다. <반야>란, 6개의 진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혜>를 말한다.

육바라밀 : 보시(베풀어 주는 것), 지계(바르게 사는 것), 인욕(참고 사는 것), 정진(노력하는 것), 선정(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 반야(지혜로서 살아가는 것)

이 6가지를 실천하면서 바다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 곧 보살들인 것이다. 보살들은 자신들의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자비로움으로 백성들을 감화시키는 인물들이었다.

대표적인 보살은 <미륵>이다. 미륵은 석가시대부터 존재했던 보살이다. 많은 역사서에서 실존 인물이라고 믿었던 보살이다. 미륵은 당대 실존 인물이기도 했지만, 가장 부처에 가까운 보살로서 인간세계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보살로 알려졌다. 미륵은 언젠가 중생들의 고통이 극심해졌을 때 다시 내려와 중생들을 구원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보살들이 등장했다. 자비로움의 화신으로 알려진 <관세음보살>은 훗날 동아시아에서 <아미타불>과 연관된 대중적 보살이 되었다. 지혜로움의 상징으로 <반야경>과 관련있는 <문수보살>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보살이 되었다. 죽은 자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지장보살>, 티벳에서 불법의 수호자로 자정하는 <집금강보살> 등도 시기는 달리하지만,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다.

원래 보살은 수행자를 뜻한다. 신분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원에서 수행을 하면 보살이 될 자격이 있다. <보살>은 불교 대중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점차 일반인들 자체가 보살이 되는 경우는 줄어들었다.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사원을 세울 정도의 돈이 있어야 하고, 시간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보살은 수행자가 아니라, 숭배자가 되었다. 백성들은 미륵보살, 관세음보살과 같은 이들을 인간이 아닌 신적 존재로 보고 숭배하기 시작하였다. 백성들이 힘들 때마다 <보살>들이 바쁜 부처를 대신하여 인간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예언과 종말>사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결국, 대중 스스로가 부처가 된다는 인식은 이상적인 것에 그치고 만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힘든 세상에서 구원을 받고 싶다는 열망이었으니까...

<관세음보살 : 불상화>

<문수보살>

<미륵보살 입상>

3. 대승불교의 아버지 - <용수>

대승불교의 철학인 육바라밀 사상을 체계화 시킨 사람은 3세기 용수(150-250)였다. 용수를 범어로 <나가르주나>라고 하는데, <나가>는 용을 말하며, 아르주나는 그의 모친이 태어난 나무 이름이다.

용수의 핵심 철학은 보살의 육바라밀 중 <반야>에서 출발한다. 다른 것은 다 실천하면 된다고 치자. 그러나, 지혜(반야)는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가? 지혜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머리 속 구조와 관련있는 인식체계이다. 용수의 이 질문으로 대승불교는 수백년에 걸쳐 인간의 인지구조(지혜)에 대한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용수가 생각한 지혜란 <공>이다. <공>이란, 아무것도 없다, 허망하다, 속이 비었다 등등의 뜻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여기서 부처의 철학을 다시 복습해보자.

부처는 인간의 번뇌를 없애는 방법으로 <제행무상, 제법무아>를 말하였다. 모든 것은 인과관계에 의해 돌고 돌기 때문에 본질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무상), 나란 존재도 결국 순간적인 변화물의 일부로 그 본질을 알 수 없는 것(무상)이라고 말한다.

고대 브라만교의 우파니샤드 철학에서는 생명(아트만)은 우주의 본질(브라만)과 같은 것으로 영원 불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처는 본질이란 없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돌고 도는 데, 확고한 본질이라는 것이 어디있는가? 모든 것은 순환 과정 속에서 변한다는 것이다. (연기설)

부처의 이 교리를 용수는 <공>으로 해석하였다. 부처가 말한 돌고 도는 인연(연기)는 결국 아무 본질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공>을 말하는 것이다. 세속 세계는 부처 세계와 인연으로 닿아있어서 두 세계는 돌고 돈다. 세속이 없으면 부처 세계도 없고, 부처의 은혜가 없으면, 세속 세계의 아름다움도 없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개체는 <공>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인간이 있다. 그러나 그 인간은 두뇌와 눈, 코, 입, 장기, 손, 발 등이 모여서 하나의 인간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 인간의 절대적 본질은 없다. 냄새를 맡는 것은 코이며,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눈이다. 하나라도 없다면, 각각의 기관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나란 본질은 무의미해진다.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일 뿐이다. 언어로서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 뿐이지 그 본질은 각각의 연결점을 떼어놓고 설명될 수가 없다. 그리고, 인간은 언젠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전생의 업에 의해 다른 무엇인가로 윤회한다. 어찌 인간의 절대적 본질이 있을 수가 있는가?

용수의 대승철학의 핵심은 <공>이다. 용수의 철학을 바탕으로 성립된 불교 종파를 <중관학파>라고 부른다. 그러나, 본질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 논리는 철학적 논쟁을 낳게 된다. 그럼, 우리가 보고 있는 물질들은 무엇인가? 이름뿐인가? 본질이 없는 것인가?

서유럽의 크리스트교에서 기원후 10세기가 넘어 유명론과 실제론의 논쟁이 가속화되었다면, 불교에서는 5세기 무렵, 실체와 본질에 대한 논쟁이 이미 시작되었다. 이 논쟁은 훗날 <공유논쟁>으로 불붙어 대승불교가 전파된 인도와 중국, 한반도 등 전 지역에서 논쟁거리가 된다.

<나가르주나 : 용수의 불상화>

4. 용수의 이론에 대한 제자들의 논리 논쟁

3세기 용수로부터 시작된 대승불교의 기본 <공>사상은, 5세기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으로 어떻게 중생들을 <부처>의 세계로 인도하겠다는 것인가? 철학과 현실이 따로 노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문제 때문에 <중관학파>의 내부에서는 <공>사상을 논리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물의 본질이 <있다, 없다> 자체가 인간의 머릿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그럼, 논리적으로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순간부터, 대승 불교는 <논리>가 핵심 주제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논리를 따지면서 등장한 학파를 <논증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공> 사상을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이치에 대입하여 논리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활 속에서 느낀 깨달음들을 하나 하나 논리적으로 규명하여 <공> 사상이 일관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서구식으로 말하자면, 귀납법이라고 할까?

반면, 논리적 철학 체계보다는 오류의 수정이 중요하다고 말한 이들은 <수정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굳이 앞장서서 논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어떤 완벽한 철학도 오류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철학이 완벽해졌다고 믿지만, 그 속에서도 잘못된 오류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오류가 있을 때마다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고, 보완해준다면 자연 <공>사상은 점점 완벽한 길로 접어들 것이다.

이들은 각각 다른 파로 분리되었지만, 용수의 기본 철학인 <공>사상을 계승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길을 가고 있던 분파였던 것이다.

5. <공>사상의 라이벌인 <식>의 등장

기원후 5세기, 대승불교의 <공>사상과 맞선 또 다른 대승불교의 철학이 등장하였다. 그것은 <식> 사상이었다.

유식론자라 불리는, 이들은 대승불교의 중관파 학자들이 공 사상을 잘못 알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공>이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를 말하는 것인가? <공>이 단순히 있고, 없고의 문제인가?

아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있고, 없고의 문제도 아니고, 그 형체가 자연의 법칙에 따라 바뀌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은 우리의 머리가 <인식>하는 것이다. 같은 사물을 보아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과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이것이 <유식론>의 입장이다.

어둡고 무서운 곳에서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을 보면, 사람들은 귀신으로 여기고 소리를 친다. 그것이 귀신인가? 마음이 귀신을 느낀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 밧줄을 보면, 뱀인 것처럼 느끼고 두려워 한다. 그러나 밧줄이 뱀일 수 있는가?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다. 이것을 <일체유심조>라고 한다.

원효 대사의 이야기를 알 것이다. 해골 바가지의 물을 맛있게 먹었지만, 날이 밝아서 보니 그것은 핏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할 때에는 정말 깨끗한 물이었지 않는가?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마음 뿐이지, 물질의 본질과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 <유식론>의 기원은 최고의 보살로 추앙받는 미륵에서 시작된다. 미륵은 <유가사지론>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유식론의 기본틀을 만들었다. (실존인지 전설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훗날 미륵이 도솔천에 올라가 보살이 되었을 때, 제자인 무착이 대중들에게 <유식론>의 <마음 : 식>을 전수했다고 한다.

그럼 유식론의 핵심 사상인 <식>을 자세히 알아보자.

불교의 핵심인 업설과 윤회설을 유식론은 어떻게 이해할까? 윤회란, 전생의 업을 바탕으로 한다. 전생에 착한 일을 하면 인간으로,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축생으로 태어난다. 그럼, 나쁜 짓의 정도를 어떻게 알까? 그것은 인간의 양심에 달린 것이다. 나쁘다의 개념 자체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므로, 업은 착하고 나쁘게 살았던 자신의 행동이 가슴에 <한>으로 남아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생각이란 <순간>적인 것이다.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의 감정이 다르고, 마음 가짐도 다르다. 따라서 <한>이란, 주머니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탐욕과 번뇌는 가슴 깊숙히 쌓인다.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주머니에 모인 <죄업>들은 인간의 잠재적 의식 속에 숨어있다. 당장 기억나지는 않지만, 머릿 속에 기억이 존재하고 있으며 누군가 그 때 그 사건을 이야기 해주면 기억 날 수 도 있는 것들이 <아뢰야식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나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내 결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한이 깊을수록 <한>에 의해 지배당할 확률도 높다. 내가 공포에 지배당했다면 가로등도 귀신으로 느낄 수 있다. 숨어있던 마음이 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의 모든 현상은 외부로부터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 속에서부터 인식하고 있는 무언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은 외부적인 관점이 아닌 <인식>의 작용인 것이다.

그럼 번뇌는 왜 생기는가? 보이는 사물을 실제 사물로 믿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생긴다는 <일체유심조>를 안다면, 완전한 세계인 <진여>의 세계로 다가갈 것이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5. 무상유식론과 유상유식론

유식학파의 근본원리는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식>의 원리이다. 그러나, 이 <식>의 원리를 보는 관점에 따라 2개의 종파가 생겨난다.

철저하게 모든 것은 마음이며,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은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하는 이론이 무상유식론이다. 이 이론에 의해 만들어진 종파는 <섭론종>이다. 섭론종은 <밧줄을 보고 놀래서 귀신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진정한 현상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우리가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며, 그것을 안다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실제 현상을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론>의 학문 체계로 정리하려는 유식학파의 정통 학자들이 있다. 진나에 의해 창시된 이 유샹유식론은 인간의 머리 구조를 논리적으로 분석한다.

인간은 감각의 단계 - 지각의 단계 - 자각의 단계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사물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그 다음에는 사물의 실체를 느끼려고 하고, 마지막으로 그 사물의 본질을 알려고 한다. 그러나, <지각의 단계>에서 사람들은 그 사물의 실체를 알려고 하기 때문에 그 사물이 결국 <마음> 속으로 느낀 것이란 사실을 잊게 된다. 결국 사물의 실체에 집착한 중생들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부처가 되지 못한다.

이 인식론은 훗날 현장(삼장법사)의 노력으로 중국(당)으로 넘어가 중국 <법상종>으로 자리잡게 된다.

자, 이제 딱딱했던 인도 불교 이야기를 접고, 인물 중심의 불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다음 편 부터는 인도의 불교를 중국에 가져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하나 하나의 불교 교단이 성립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그럼 시작해볼까?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 참고할 만한 책들

진언 다라니 수행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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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명료한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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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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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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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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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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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108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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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경의 십팔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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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3화. 전통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의 대결 속에서 탄생한 석가

1. 철기 시대의 사화 변화와 <정치, 사회> 계급의 성장

최고의 계급인 브라만은 우파니샤드 철학의 이념으로 <브라만>의 정당성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의 인도는 이미 <고대 신의 신비주의> 관념만으로 지배 계급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철기가 보급되고, 생산력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전사계급이 원하는 것은 <넓은 영토>였다. 물론, 신관들이 신의 계시를 내리고 전쟁을 도왔다고는 하지만, 전쟁에서 실제 필요한 것은 무력과 경제력이었다. 무력을 가진 자들이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이었으며, 재력을 가진 자들은 바이샤 계급이었다.

전쟁은 많은 민족간에 혼혈을 가져온다. 더 이상 순수한 <아리아인>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왔다. 크고 작은 부족 국가들이 통합되면서 거대한 영토를 가진 군주국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국가가 발달하면서 엄청난 토지를 가진 귀족과 재력을 가진 상인들 역시 입김이 쎄진다. 특히, 비옥한 겐지스강 유역을 장악한 부족들은 인도 북부를 통일하겠다는 꿈까지 가진 시기였다.

<브라만>이라는 최고 계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비옥한 겐지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점차 <브라만교 반대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 3계급은 브라만에게 반발하였다. 더 이상 특권을 유지하려는 브라만교를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특히, <제사를 지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만이 신과 접촉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었다. 제사 지내는 방법이야 누구나 배우면 되지 않는가?

브라만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직접 제사를 지내며 스스로 교단을 만들어 버린다. 특정 종교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종교의 사상을 벗어나 독자적인 종파가 된 경우를 <사문 : samana>이라고 한다.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원래 인도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문들은 브라만교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만들어갔다.

2. 사문들과 브라만과의 싸움

브라만교의 전통 철학은 우파니샤드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기본 원리는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과 생명의 원리인 아트만은 동일한 것>에서 출발한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중요한 점은,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이 창조주이자, 역사의 진행자이자, 생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브라만은 우주의 법칙 속에서 생명도 만들고, 죽음도 만들며, 윤회도 만든다. 우주는 브라만의 법칙에 의해 돌고 돈다. 해탈은 그 법칙을 알고 있는 <브라만>만이 가능하다.

사문들은 브라만을 반대한다. 고행을 통하여 힘든 과정을 겪으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해탈이 가능할텐데 왜 <브라만>만 해탈한다고 하는가? 또, 착한 일을 하면 다음 생애에 <브라만>으로 태어난다고 하는데,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 지금의 선악과 내세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과격한 사문에서는 아예 <육체>가 죽으면 선악이 죽는다는 <유물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문은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들을 거론하면서 <영혼>도 결국 물질 현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혼>이 어떻게 현실과 격리될 수 있는가? 살이있는 인간들도, 자 <영혼>을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적인 사문인 <자이나교>의 <바르다마나>는 브라만교의 <선행> 개념 자체를 부인한다.

인도 나타족 왕자(2계급)인 바르다마나는, 착한 일을 한다면서 하늘에 제사나 지내는 형식적인 브라만들이 해탈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해탈>는 깨닫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정화>해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1계급들이 잘나서 1계급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아무도 증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해탈은 신분과 상관없이 <고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하고, 살생을 금지하며,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해탈의 기본 조건 아니겠는가?

자이나교의 교리는 단순하다. 사람은 살면서 실수를 한다. 고의든, 우발적이든 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영혼은 더럽다. 따라서 엄격한 계율 속에서 고통스러운 <고행>을 한다면 영혼이 정화되면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이나교는 대부분의 브라만 의식은 인정한다. 그러나, 브라만들만의 특권을 반대하면서, 모든 계층이 고행을 통해 <구원>받는 다는 교리를 설파한 것이다. 수많은 사문 중에서 지금까지 인도인들에게 살아남은 사문은 <자이나교>밖에 없다. 그 핵심은 <고행>이었다.

<자이나교-아디나타사원>

<자이살메르사원>

티르탄카라상

3. 도시 공화국에서 태어난 석가

기원전 5세기, 강력한 철기를 가지고, 인도 북부(겐지스강가)에 살아남은 국가는 모두 16개국이었다. 그러나, 강대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는 모두 <군주국>이었다.

군주국에서는 국왕과 브라만들이 독단적으로 정치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수드라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윤회설>을 강조하였다. 수드라인 너희가 천민으로 태어난 이유는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너희는 이번 생애 내내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이 무렵, 석가는 기원전 566년, 도시국가인 네팔(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 석가가 살았던 지역은 크샤트리아와 바이샤가 많았던 도시 지역이었다. 당시 도시 국가에서는 2, 3계급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공화 부족들은 군주 부족과 달리 모든 일을 부족내 유력자들이 모여 회의하고 결정하였다. 신라의 화백회의와 같은 <만장일치제>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반면, 군주 부족들은 군주와 신관이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공화국의 부족국가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국가들에 의해 하나하나 멸망해가고 있었다. 곧, 강력한 군주가 인도 북부 전체를 통일할지도 몰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석가는 브라만 신관들의 독선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리고, 약소국가의 2계급으로 태어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을까?

4. 석가 <사문>의 형성

석가는 브라만의 가르침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브라만에서 말하는 <생명과 윤회>를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는 생로병사를 느끼고자 여러 브라만 수행자들을 만났다. 그러던 중 29의 나이로 출가했다. 그 때, 갓 태어난 석가의 아들이 <라후라>였는데, <라후라>란 <장애물>이란 뜻이다. 석가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난 것이다.

석가가 맨 처음 스승으로 모신 사람은 선정주의자들이었다. 선정주의자들은 <착한 일>을 많이하면 <해탈>한다고 말했다. 석가는 모든 이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착한 일을 아무리 해도 해탈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길을 떠난다.

석가가 두 번째로 택한 길은 <고행>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고행을 해도 <해탈>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석가가 마지막으로 택한 길은 <명상>이었다. 보리수 밑에서 명상을 하던 석가는 35의 나이에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다. 보리수란, 깨달음의 나무란 뜻이다. 또, 깨달은 사람을 <붓다>라고 하고, 성자를 <모니>라고도 하는데, 보통 <석가모니> 또는 <석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가 명상으로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중도>였다. 선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극심한 고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가야한다는 것이다.

석가의 <중도>사상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는 구름과도 같은 제자들을 얻어 <교단 : 승가>를 만들었다. 승가란, 모든 자들이 평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 집단을 말한다.

석가가 만든 승단은, 공화국 체제와 비슷하다. 바르나 제도와는 달리, 모두가 평등하며, 서열은 먼저 들어온 순서로 정한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뭉쳐진 그룹집단인 것이다.

불교도는 네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남성 출가자(비구), 여성 출가자(비구니), 남성신도(우바새), 여성신도(우바이) 이다. 이들간의 차별은 없다. 물론 가장 똘똘한 인물들을 10대 제자로 두긴 했지만, 그것은 어느 한 분야의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을 능력별로 인정해 준 것이다.

석가 사후, 석존의 가르침은 대부분 구전이었기 때문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을 정리한 사람은 100년 후 아소카왕 시대의 제자들이었다. 부처의 가르침을 경, 율법서를 율, 주석을 논 이라고 분류하여, 경,율,론 3장의 불교 지침이 성립된 것이다.

석가시대의 가르침을 보통 <원시불교 : 초기불교>라고 말한다. 원시불교란, <암송한 것>을 기억하여 가르침을 남긴 것이다. 석가와 같이 배우고 암송한 것을 함께 기억하고 되새겨 모아 적는다. 초기 석가의 가르침은 <아함경전>에 실려있다. 훗날, <아함경>으로 불리는 경전은 중국과 한반도에도 전파되었다. 경이 가르침이라면, 율은 율법서이다. 율은 출가자들이 지켜야할 조문들을 모두 모아놓은 조문집이다. 물론 주석인 <론>은 후대에 달아놓은 것들이다.

5. 석가의 가르침

석가의 핵심 가르침은 <번뇌>였다.

번뇌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통과 고민>을 말한다. 보통 <고집멸도>라고 불리는 이 번뇌는, 고(고통), 집(고통의 원인), 멸(고통의 소멸), 도(소멸의 법도)를 총칭한다. 이 4가지 고통을 해결하는 과정을 <4제>라고 한다.

석가는 이 고통을 없애는 방법으로 8정도를 제시하였다. 8정도란, 고통을 없애기 위해 8가지를 바르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지침이다.

올바른 견해(정견), 올바른 생각(정사유), 올바른 언어(정어), 올바른 행동(정업), 올바른 생활(정명), 올바른 노력(정정진), 올바른 기억(정념), 정신통일(정정) - 이 8가지를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8정도를 이끌어가는 방법이었다. 브라만에서는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에서 충실하기 위해서 <계급에 맞는 착힌 일>을 하라고 말한다. 반면 자이나교 같은 사문에서는 철저하게 <고통스런 고행>으로 악업을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래야 <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는 말한다. 선정이건, 고행 이건 단지 하나만으로 <해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중도>를 걸어야 한다고.... 그럼 왜 중도만이 고통을 없애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정>은 영적인 측면을 주로 강조한다. <고행>은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정신과 물질이 연결되어 일어난다.

석가가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은 상호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깨닫는 다는 사실 조차,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어떤 일을 겪지 않으면 깨달음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으로 얽혀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을 <연기>라고 한다.

우주가 단지 브라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물 자체가 인과관계에 의해 얽혀서 움직이고 있기에 절대적인 근본이라는 것은 없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데, 어떻게 아트만(생명)이라는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연기설>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존재하는 것이 같이 존재한다.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그 현상의 원인이 있다. 원인이 없다면, 현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만물은 서로 의존하여, 서로의 원인도 되고 결과도 되는 것이다. <연기>의 본질을 알게 되었을 때,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 <중도>를 모르고 한가지 길만을 추구하는 것을 <극단 : 탁자의 모서리>라고 말한다. <극단>은 <해탈>이 아니라 자신을 망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연기>의 세계를 깨닫는가?

석가는 깨달음을 아는 방법으로 삼법인(3개의 진리의 도장)을 말한다. <연기>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원인이 되어 돌고 돌기 때문에 결국 그 본질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이라는 3개의 진리로 표현된다.

제행무상이란? 제행은 <움직여 변한다>는 뜻이다. 무상은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여 변하므로 결국 인연에 의해 연결된 세계는 사간에 따라 변하게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다.

제법무아란? 제법은 <율법, 진리>를 말하고, 무아는 <나란 없다>는 뜻이다. 즉, 나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나란 육체와 정신, 생각, 역사 등등이 어떤 원인과 결과로서 만들어낸 순간적 존재이다. 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나이며, 내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아트만)이란 없다. 즉, 보편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열반적정이란? 열반은 <해탈>의 불교식 표현이고, 적정은 <소멸>을 말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연기>로서 돌고 도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고통과 번뇌>가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8정도를 행동으로 옮기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고통>이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지면 해탈한다는 것이다.

6. 석가의 가르침을 남긴 마가다국

석가의 이러한 불교 철학과 종단(승가)은, 갠지스 강 유역에 위치한 마가다국에 의해 보호되었다. 석가는 살아 생전에 갠지스 강 유역의 마가다 지방에서 깨달음을 찾으며 고행을 했었다. 또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포교 거점으로 삼았던 지역이 마가다 왕국이었다.

마가다 왕국은 북인도 16대 강국 중의 하나라 불교, 자이나교의 발상지로 불리는 국가이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석가를 신하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토를 주겠다는 말까지 했던 왕이다.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은 그 이후 불교와 자이나교의 성지가 되었다.

갠지스 유역을 통일했던 기원전 5세기의 마가다국과 달리 기원전 4세기의 마우리아 왕조는 북인도 전체를 통일하면서 불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마가다 왕국의 후손으로서 아리안 전통 직계인 마우리아 3대왕 아쇼카는 불교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석가의 연기설은 당시 통일국가 이념으로도 제격이었다. 연기설이란, 모든 사물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연결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것은 각 부족별로 흩어져있던 당시 사상 체계를 통합하는데 딱 좋은 사상이었다.

개체는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의 인과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즉, 개별적인 것들은 전체적인 것의 일부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부족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들은 좋던 싫던 다른 부족과의 관계에서 살아가게 되고, 궁극적으로 통일된 전체에 의해 규제받게 된다. 전체라는 것은 개별 부족을 넘어선 중앙집권국가의 지배자를 뜻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은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국가도 인연을 맺고 있다. 강력한 국왕이 출현한 것도 그 인과 관계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국왕은 모든 백성을 때려잡는 국왕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는 슬기로운 지배자이다. 브라만 신앙에서 내려오는 정법(정의)의 지배자를 <전륜성왕>이라고 한다. 즉, 마우리아 왕조의 절대자 아쇼카 왕이 곧, 전륜성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쇼카 왕은 이 전륜성왕의 브라만 신화와 불교를 연결시켜 버렸다. 전륜성왕의 통치를 돕기 위해 <미륵불>이 지상으로 내려와 백성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로서 <미륵불> 신앙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신앙이 등장하였다.

아쇼카 왕은 전륜성왕과 미륵불 사상을 몸으로 실천하였다. 자신이 정법을 구현하는 왕이 되어 북인도를 통치함은 물론, 자신의 분신들을 주변국에 보내 불교의 참 뜻이 무엇인지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남부의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도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한다. 멀리는 이집트,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불교라는 종교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소카 왕 때의 불교는 <소승불교>라는 초기 불교였다. 아직 불교는 출가자들 위주의 불교였고, 국왕은 불법을 지키는 호법왕이라고 여겨졌다. 부처가 되는 것은 개인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함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전륜성왕

그러나 아쇼카 왕 사후, 기원전 2세기 무렵 불교는 또 다른 격동을 겪게된다. 아쇼카 왕이 죽은 뒤 약해진 마우리아 왕조는 서쪽에서 밀려온 이민족들에 의해 분열된다. 그리고, 만민 구원을 외치는 서방 종교와 서아시아 밀교 등이 들어오면서 <대중 전체의 구원>을 생각하는 불교가 등장한다. 이 때의 불교를 <대승 불교>라고 하며, 대승 불교는 비단길 등 교역로를 따라 중국과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대승 불교 이야기와 동아시아 불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여기서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나라까지 들어오게 된 <한국식 불교> 이야기이다. 동남 아시아로 내려간 소승 불교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겠다. 중국과 한반도로 넘어온 종파를 위주로 <대승 불교> 이야기를 좀 하고, 중국, 한반도, 왜로 넘어간 불교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 참고할 만한 책들

인도 정통철학과 대승불교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김선근 (동국대학교출판부,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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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영혼과 윤회관(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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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만나는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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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좋다(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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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불교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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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사사키 시즈카 (동국대학교출판부,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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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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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오강남 (현암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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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철학과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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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권오민 (민족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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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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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칼루파하나 (천지,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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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김진섭 (지경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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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시간 구조대. 4: 붓다의 발자국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류가미 (삼성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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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 석가모니:그 생애와 가르침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와타나베 쇼코 (동쪽나라,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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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탐구시리즈:세계의 위인 13)
카테고리 유아
지은이 김미심 (국민서관,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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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역사적 진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박병역 (국학자료원,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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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비구. 1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담마빨라 (열린경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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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2화. 아리아인의 시대와 인도 초기의 종교들

1. 종교는 인간의 염원이 만든 것이 아닌가?

자, 이제 불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 종교 역시 크리스트교와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종교의 시작은 인간의 <열망>에서 시작된다.

역사가 인간들의 이야기이듯, 신과 종교의 탄생 역시 인간들의 당시 사회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각 종교에서는 그것을 신이 내린 <고난>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앞뒤가 바뀐 말일 수도 있다. 신과 종교를 만든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의 교리가 확립되는 것 역시 당대의 <사회 현상>을 해결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이 <여호수아>의 강림을 바랬던 열망은, 철기 시대에 접어오면서 심해진 핍박 때문이었다. 지금 인도에서 시작하려는 새로운 종교 역시 당대인들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정복민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사상적 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홍수나 번개 등 자연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수많은 열망들이 고대 인도에서 다양한 신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자 그럼 불교가 탄생한 고대 인도라는 나라의 종교부터 한번 살펴볼까?

2. 초기 인도 원주민들의 신앙

인도 지방의 초기 문명을 흔히 <인더스 문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더스 문명이라고 부르는 초기 문명에 대해 우리는 약간 오해를 가지고 있다. 인더스 문명이 곧 인도 문명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틀렸다. 세계 4대 문명은 모두 철기 시대 이전에 등장하였다. 인더스 문명 역시 청동기 시대의 문명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통일된 국가 체계가 없었던 초기 문명 시대였다. 문명이 등장하자마자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생길리는 없지 않는가?

기원전 2500년경 등장한 최초의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 강가>의 작고 초라한 문명을 말한다. 천년간 계속된 이 문명은 작은 도시국가 단위의 문명이었다. 우리가 고대 문명 유적지로 말하는 모헨조다로나 하라파 문명은 국가 문명이 아니라 작은 도시 문명을 뜻한다.

<초기 인더스 문명의 도시 국가들>

이 문명을 이끌어간 사람들은 토착민인 <인더스인>들이었다. 인더스 인이란, 최초로 인도에 거주한 <드라비다인, 문다인> 등을 말한다. 이들이 만들어낸 청동기 문명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성곽과 도로가 정비되어 있었고, 홍수를 대비한 관개시설이 있었다. 이 시설들이 우선 만들어진 것은 인더스 강의 범람 때문이었다. 강은 농사를 짓기 위한 물을 제공하면서도, 큰 홍수 한방으로 주변 문명을 날려 버리기도 한다. 최초의 원주민들은 강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항상 홍수라는 큰 변수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초기 원주민들은 큰 목욕탕을 지어두었다.

목욕탕은 물(강)의 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장소였다. 그들의 종교는 단순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존재들에게 기도하는 것이었다. 큰 곡식창고를 만들어놓고, 커다란 범선을 이용하여 주변 메소포타미아와 교역을 했던 이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홍수였을 것이다.

또한 이들의 숭배대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성생식기였다. 노동력이 중요한 사회였기 때문에 남성의 <정자>를 신성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또, 소를 숭배하는 풍습도 이미 존재했었다.

<모헨조다로
족장집에서 나온 동상>

<모헨조다로의 춤추는 소녀상>

<하라파에서 나온 인장과 유물>

<하라파의 공동 시설물>

<하라파의 주거지>

<하라파의 사원>

<모헨조다로 유적지의 흔적>

<모헨조다로의 목욕탕>

<모헨조다로의 목욕탕과 배수시설>

3. 청동기 민족을 정복한 철기인들

크리스트교 이야기를 할 때, 유대인들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기원전 12세기라고 했었다. 기원전 12세기는 세계사적으로 큰 의의를 갖는다. 그 이유는, 청동기 시대가 철기시대로 변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기원줜 13세기무렵 히타이트 인으로부터 시작된 철기 문물은 유라시아 대륙을 모두 흔들어놓았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인도에 내려온 철기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중앙아시아 북부에 광범위하게 분포했던 <아리아> 인들이었다. 아리아 족은 역사적으로 많은 민족의 기원을 이룬다. 이들이 서부 유럽으로 이동하여 오늘날 많은 유럽인들의 선조가 되었다. 히틀러는 순수한 <게르만>인은 <아리아인>의 핏줄이라면서 엄청난 수의 유대인을 학살히기도 했었다.

반면,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인들은 인도 원주민인 <드라비다 인>들과 충돌하였다. 청동기 문명의 백성들이 철기 부족을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원전 15세기를 전후하여 인더스 강 유역(펀자브 지방)까지 진출한 아리아인들은 인더스 문명을 정복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들은 좋은 땅을 찾아 끝없이 진출하였다.

기원전 10세기, 아리아인들은 인더스 강을 넘어 갠지스 강까지 지배 영역을 넓혔다. 청동기 시절의 수많은 부족들이 이들에게 굴복하였다. 인도에 진출한 아리아인들을 유럽의 아리아인들과 구별하여 <인도-아리아인>이라고 부른다.

유목민족인 아리아인은 원주민을 정복하여, 화려한 도시 국가를 건설한다. 아리아인의 부족 족장은 <라진 : rajan)이라고 불렀는데, rajan은 <종교 : region>라는 의미의 어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아리아 인의 국가는 농경을 주로 하는 철기 국가였는데, 수많은 아리아 부족들이 각각 영토를 확보했기 때문에, 부족의 <신> 역시 각각이었다.

그러나, 아리아 인들은 정복민만 노예로 삼았을 뿐, 각 부족간의 전쟁에는 신중한 편이었다. 최소한 기원전 5세기 까지는 이런 부족단위 국가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부족간 평등주의를 바탕으로 전쟁을 참았기 때문에, 아리아의 각 부족들이 믿는 신은 모두 평등했다.

초기 아리아인의 브라만교를 보면 하늘, 지상, 공간의 3 구역에 모두 33명의 신(데바)이 있었다. 이 33명의 신은 모두 평등하다. 결국 33명의 자연신이 훗날 브라만교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브라만교의 경전인 <베다>는 이 33명의 자연신을 찬양하는 찬양가와 기도문 등을 모아놓은 것이다. 원래 <베다>는 <지식을 안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지식을 안다>는 것은 자연현상을 안다는 것과 같았다. 자연현상을 다스리는 것은 33명의 신이었고, 이 신에 대해 알고 있는 <신관>은 당연히 최고 지배층이었다.

<베다>는 500년간 계속 이어진 찬가들을 모으고 모아 4개의 찬가집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기원전 900년경에는 거의 정리가 끝나간 듯 싶다. 이 찬가집인 베다는 각각 독립적으로 4개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먼저, 찬가 자체는 <본집>으로 정리된다. 제사를 위한 찬송가 쯤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제사 규칙을 적어둔 <브라흐마나>가 있다. <브라흐마나>를 알고 있는 자는 <신>과 접촉하는 자로서 지배층이 된다. 다음으로 숲속의 비밀을 적은 <아란야카>가 있다. 마지막으로 브라만의 철학을 말하고 있는 <우파니샤드>가 있다.

물론, 베다 자체에 이 4가지가 다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베다>는 이 4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을 때 진정한 베다로 인정된다.

4. 바르나 제도의 엄격함

브라만교의 근본 철학은 <우파니샤드>이다. 그런데, 우파니샤드 철학이 완성된 것은 베다가 완성되고 한참 후인 기원전 5세기 경이다. 즉, 베다 문학보다도 400년 정도 이후인 것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초기 아리아인들은 굳이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신관>은 최고 계급이고, <노예>는 마지막 계급이다라고 말해 버리면 끝이다. 뭐하러 복잡한 철학체계를 인위적으로 만들겠는가?

<브라만의 모습 : 알타이 벽화>

 <우파니샤드에서 브라만 신>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브라만교의 철학을 위협하는 계급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브라만교를 만든 아리아인들은 사회 계급을 4계급으로 나누고, 그것을 <신>이 나눈 것 처럼 행동하였다. 즉, <제사> 규칙을 아는 자들이 최고 계급인 <브라만>이 된다. 브라만은 곧 신이거나, 신의 대리자이다.

왕족과 귀족은 브라만보다 낮은 제 2계급이다. 2계급은 정치와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이들을 크샤트리아라고 부른다. 일반 백성들은 3계급이며 바이샤라고 불렀다.  청동기시대부터 존재한 원주민들은 <노예>계급으로 수드라라고 부른다.

이렇게 4계급으로 사회를 나누고, <바르나> 제도라고 불렀다. <바르나>란, 색깔을 뜻하는 단어이다. 원래 아리아인이 유럽인과 같은 계통인 백인이기 때문에, 원주민인 드라비다 족과 구분하기 위해 바르나라고 불렀다.

우리는 인도의 신분 제도를 <카스트 제도>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15세기 경 유럽에서 건너온 포르투갈 상인들이 쓴 말이다. 카스트란, 바르나 제도의 4계급에서 계급마다 <출생> 족보를 따져서 수많은 계층으로 다시 분화한 것을 뜻한다. 즉, 직업, 결혼관계 등을 따져 여러 종족(종성)으로 분화되는데, 이것을 카스트(종성)이라고 다시 부른 것이다. 카스트는 바르나와 쟈티(JATI : 출생)이란 단어의 합성어이다. 즉, 카스트는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용어로 지금 인도의 신분계층을 분류하는 용어라고 할까?

   지금 말하고 있는 제도는 21세기 카스트 제도가 아니라, 고대 4계급이 존재했던 바르나 제도를 말하려는 것이다.

고대 <바르나>제도의 특성은 철저한 신분 차별에 있었다. 지배층은 피지배층의 신분 상승 자체를 막아 버렸다. 제사계급과 아리아인 계급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실제 정치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2계급(크샤트리아)이 제 1 계급인 브라만의 권위를 넘보기 시작한 것이다.

크샤트리아 계급은 철기시대의 보편적 현상인 정복 전쟁을 시작하였다. 작은 부족들은 큰 부족에게 통합되었고, 중앙집권국가의 시대가 열릴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또, 부족간의 전쟁과 부족간 통합은 물자 부족을 가져왔고, 3계급인 바이샤들이 상공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3계급은 통일된 국가가 필요했다. 커다란 국가에서 통일된 상업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국가의 통일은 다양한 관세나 규제 등의 장벽을 허무는 길이기도 했다. 동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것보다 국제적 무역이 더 효율적이지 않는가?

정복사업과 상공업의 발전은 2,3 계급이 브라만 계급에 도전할 명분을 주었다. 그리고, 기원전 5세기 드디어 브라만교에 대항하는 종교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자이나교와 불교였다. 새로운 종교들은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등장하였다. 그러나, 브라만교는 왜 브라만이 위대한지 설명이 부족했다.

브라만 족들은 급해졌다. 왜 브라만이 지배계급인지를 정당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브라만은 형식적으로 존재했던 우파니샤드 철학을 실제 사회에 맞는 철학체계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비로소, 브라만교의 걸맞는 사상 체계가 등장한 것이다.

5. 우파니샤드 철학의 <업그레이드>

브라만교의 철학인 우파니샤드는 <신관>들이 자신의 제자들엑게 입으로 전하곤 했다. 즉, 그들만의 구전 철학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 이 철학은 논리적으로 정리되고 편집되어 <철학>으로 정리되었다. 이 철학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이 철학의 기본 사상들의 영향을 받거나 반발하면서 석가모니의 <불교 철학>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알다시피 인도의 왕자 출신으로 제 2계급인 왕족이었다. 1계급의 독주를 막기 위한 역사적 사명이 2계급인 석가에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자, 그럼 브라만교의 우파니샤드 철학을 한 번 살펴보자.

이 철학의 핵심은 <우주와 인성의 일치>이다. 우주의 근원을 브라만이라고 하는데, 그 브라만은 개인의 인성(아트만)과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원래의 아트만은 myself라는 재귀대명사였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인간은 우주의 법칙으로 태어나고 죽는다. 그런데, 우주에 음양오행이 돌듯이, 인간 역시 끊임없이 돈다. 만약 착한일을 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는 우주의 법칙에 의해 다음 세상에서는 <브라만>으로 태어난다. 즉, 브라만이 제 1계급인 이유는 단순히 부모를 잘 만난 것이 아니라 전생에 덕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음 생까지 돌고 도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

대표적인 윤회설로는 <오행설>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죽은 자는 흙과 물이 된다. 물은 비가 되어 내리고 흙을 적셔주면서 다시 하나로 만난다. 흙과 물이 만나 곡식을 이루고, 남과 여는 그 곡식을 먹는다. 남자가 먹은 곡식은 정자가 되고, 여자가 먹은 곡식은 아기집이 된다. 정자와 아기집이 다시 만나면 죽었던 사람이 다시 하나로 태어난다.

즉, 개인의 생명(아트만)은 죽은 뒤 우주의 법칙(브라만)이 되었지만, 다시 윤회하여 생명(아트만)으로 재탄생 되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하면 브라만으로, 나쁜 일을 하면 수드라로 윤회된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데, 윤회의 예외로 <신도>가 있다. 신도란, 신의 길로 가 버린다는 뜻이다. 윤회의 법칙을 알고 있는 브라만이 숲속의 비전을 찾아 산 속으로 숨어 버리면 윤회하지 않고 <신의 영역>으로 가 버린 다는 것이다. 이미 윤회를 알기에, 더 이상 윤회하지 않고 떠난다는 것을 <업>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불교의 <업>설과 연결된다.

우파니샤드의 철학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브라만이 잘난 것은 전생에 착하게 살아서이고, <신>의 세상에 가는 것도 브라만 뿐이라는 것이다. 전생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수드라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수드라야 그렇다 치더라도, 크샤트리아와 바이샤는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우파니샤드 철학은 브라만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철학이었지만, 다른 계급의 반발을 불러오는 철학이기도 했다. 자, 그럼 2, 3계급이 어떻게 우파니샤드에 대해 반항했는지 한번 들여다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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