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세계사 9

'수메르인들이 최초의 문명체계를 만들다'

메소소포타미아에서 세계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반만년 전이다. 그들은 왜 모이게 되었으며, 어떻게 험난한 자연 속에서 슬기롭게 살아남았을까?

  1장. 메소포타미아에 문명이 발생하다.

세계 최초의 문명은 지중해라고 불리는 지역의 동쪽인걸 이젠 다 알겠지? 역사에서 동지중해 연안을 <기름진 초승달 지역>이라고 부르는데, 그 중에서도 지금 이라크 지역에 흐르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는 정말 기름진 옥토였다고 해.

우리가 보통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가운데'라는 뜻의 그리스어 메소(meso)강이라는 뜻을 가진 potams의 단어가 결합되서 영어식으로 사용하게 된 단어야. 즉, 강과 강 사이의 비옥한 땅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가르키는 용어를 일반 명사 단어처럼 쓰고 있는 거지. 비슷한 예로 남북 아메리카 사이에 있는 고대 문명들을 메소아메리카 문명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야.

자 그럼 이제부터 교과서에 나온대로 한번 최초의 문명이 왜 탄생했는지를 유추해보자.

교과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 인류 문명이 시작된 대부분의 지역에는 큰 강이 흐르고, 강의 범람이 주변 땅을 비옥하게 만드니까 사람들은 점점 더 기름진 땅에 모이는 거라고...  하나 더 부연하자면 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의 공동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협력과 분업>이라는 인류 최초의 사회 조직망도 이루어질 수 있었을 거야.

특히 티그리스강은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기름진 흙이 하류에 쌓이면서 자연 제방이 되었기 때문에 그 지역은 당시에 가장 살기 좋은 알짜배기 땅이었지. 요즘으로 따지면 유프라테스강이 벤처 기업들이 도전하기 딱 좋은 강남 서초구라면, 티그리스강은 고급 주택들이 바글바글한 송파구 정도???

그래서인지 5500년전에 이곳에 문명이 정착된 이후, 천년 뒤부터 바로 여기저기 이민족들이 이쪽으로 이주하려고 발버둥을 치게 된거야... 전에 말했던 민족 대이동있지? 뭐, 그 정도는 아니래도 틈틈이 이 동네로 사람들이 몰려왔지. 그게 아니면 아예 동쪽으로 가서 인더스 강가로 넘어가거나 했으니까...

땅은 좁은데 분양받으려는 사람이 많으니깐 얼마나 비비적 거리겠어? 따라서 약 3천년전경부터는 바로 이 지역이 서아시아에서 가장 전쟁이 많고 민족 이동이 많은 지역으로 바뀌게 되는거야.

아무튼, 이 지역은 사람들이 살기에 너무 좋았어. 그러나, 어떤 지역이든 완벽한 동네는 없겠지? 이 지역에는 큰 문제가 하나 떡~ 하니 있었어.

그것은 바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라는 두 강이 같은 시기에 홍수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지. 두 강물이 넘치는 시기가 다르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은, 농사를 짓기에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거야. 따라서 이 지역은 농사에 힘쓰면서도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장사하는 분야에도 눈을 돌리곤 하지. 이 지역에서 상업과 농업이 동시에 발달한 가장 큰 이유가 이거야.

또 강이 2개나 되어서 강의 범람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도 더 많은 <홍수 설화>가 만들어진 지역이기도 하지. 수메르 홍수 설화, 바빌로니아 홍수 설화,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설화.... 기타 등등 비슷한 설화들이 무지 많아.

아무튼 이 지역의 사람들은 강물이 넘친 후에 비옥해진 땅을 이용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면서 살아야만 했어. 강물이 크게 넘치면 땅이 늪지대로 변하기 때문에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그 물을 빼는 작업부터 해야 했던거야. 반면 강이 넘치지 않을 때는 땅이 메마르고 건조해지기 때문에 평소에 물을 저장해두어야 하겠지?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물을 저장하고 빼는 시설, 즉 <관개시설>이었지.

이러한 요령을 잘 파악해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슬기롭게 안착한 사람들이 바로 <강가 도시 사람들의 모임>란 뜻을 가진 <수메르> 사람들이었지.

- 수메르인들이 역사를 시작하다.

원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수메르인 이전에도 돌이나 청동기를 사용할 줄 알았던 원주민들이 있었어. 또 수메르인이 정착한지 천년 뒤에 기름진 강가 북쪽에 아카드라고 불린 사람들도 살고 있었어. 그런데도 우리는 서아시아 문명를 이야기 할 때 유독 수메르인에 대한 이야기만 주로 하게 되지.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수메르 이전의 사람들이 이 근처에 머물긴 했지만 보통 어느 정도 있다가 이동했거나,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야. 훨씬 전에 이 비옥한 땅 중 하나인 우르 지방에서 살았다던 아브라함이 성경에서는 큰 의미가 있을진 몰라도 이 지역의 전체 역사에 기여한 점은 아직 찾질 못한거랑 같은 거지. 다른 소수 민족들도 마찬가지야. 아카드인들 역시 후대 역사에 크게 영향을 준게 없어.

반면, 수메르인들은 <문자>를 사용해서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어. 그리고 그 문자 기록이 후대 왕조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지. 예를 들어 수메르 다음으로 이 지역에 건너온 아무르족이 세운 바빌로니아 왕국은 그 언어나 신화, 생활패턴부분까지 수메르인들과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거든.

반면, 기록이 남지 않은 민족들은 유물이나 유적지 등을 조사해서 누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단편적으로 밖에 알 수가 없잖아? 그나마 유물이나 유적지가 너무 적은 경우에는 존재했는지 근거도 헷갈려서 <전설의 시대>로 넘겨 버리기도 하거든. 만약, 구약성경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우리가 알수 없고, 그 존재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야. 아마도 수메르 이전에도 아브라함 부족처럼 수많은 소수 부족들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거쳐갔을거야.

아무튼~~~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인들은 형체가 있는 물건의 모양을 본떠서 글자를 남기기 시작했어. 예를 들어 사람을 표현하려면 사람 모양을 그리고, 새를 표현하려면 새의 모양을 그려서 초보적인 표현을 남긴 거지. 이런 초보적인 문자를 상형문자라고 해. 뭐...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이 글자가 계속 발전해서 후대 페니키아인들이 고쳐쓰기도 했는데, 그게 알파벳의 기원이라나, 뭐래나....

하지만, 이런 상형문자는 큰 결점이 있었지. 형체가 없거나 정신적인 부분, 관념적인 용어는 똑같은 모양을 그려서 표현할 수가 없잖아? 새는 새모양을 그리면 되지만, 사랑은 어떻게 표현할건데?

그래서 수메르인들은 형체가 있는 것은 <상형문자>로 표현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쐐기모양으로 글자를 새기다가 어울릴 만한 형태가 있으면 그냥 그것을 그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어. 이것을 <설형문자>또는 쐐기문자라고 묶어서 부르기 시작한거야. 그니까 정리하자면 상형문자, 설명문자, 쐐기문자는 딱 어떤 구분점이 있는건 아니고, 그냥 비슷한 글자체계구나~ 하고 대충 넘어가도 되지.

형태를 본뜬 단계엔 상형문자, 형태를 유추하는 단계에서 설형문자, 쐐기를 파고 기호를 표시하는 단계에서 쐐기문자.... 그냥 그런거야.

이렇게 처음엔 형태나 모양위주로 글자를 이용하다가....

숫자는 빗금을 긋고, 물품 수량 등은 막대기의 길이 각도로 표현하다가...

결국 관념적인 것들도 다 이렇게 쐐기를 새기면서 만들어지면서 쐐기글자 완성.

그럼 이 문자는 어디에다 기록했을까? 당시에는 종이라는 것이 없었잖아.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남아도는 거 하나 있지? 바로 강의 범람으로 생긴 진흙이야.  수메르 사람들은 강물이 넘치고 진흙이 생기면 점토판 위에다가 글자를 남긴 뒤 불에 구워서 자신들의 기록을 보존했던거야. 원래 쐐기란 것이 나무와 나무사이에 홈을 파서 연결하거나, 점토판에 못을 박거나 쓰윽~ 하고 긁어서 자국을 남기는 걸 말하는 거야. 뭐, 그래서 쐐기문자라고도 부르는 거지만.

그럼 무슨 기록을 보존했을까? 물론 일상적인 물물교환이나 도시 안의 사람들이 해야할 일도 기록했겠지만, 더욱 눈이가는 것은 수메르인 영웅 이야기나 전설, 그리고 천지창조에 대한 신화와 같은 이야기들이이지.

수메르인들의 도시국가는 사실 어마어마한 규모야. 큰 도시는 일단 사람의 숫자가 만명 이상의 단위였고,  그런 도시들이 서로 견제하고 도와가면서 성도 만들고 관개시설도 만들면서 살았던 것이지. 하지만, 그러려면 수많은 노예들이 일을 매우 매우~ 열심히 해야겠지?

그래서 수메르의 귀족들은 우리 도시가 얼마나 크고, 귀족들이 얼마나 위대하며, 도시의 수호신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인지를 마구 마구 홍보하기 시작하지. 즉, 신과 영웅이 도시를 지켜주기 때문에 하층 계급들이 그나마 죽지 않고 산다는 걸 알리고, 도시를 안정시키려고 한거야.

그래서일까? 세계 4대문명에는 모두 노예 계급이 있고, 가장 맨 위에는 신관 계급이 존재하지. 물론 수메르의 도시를 다스리는 사람도 당연히 <신관>계급이야. 정말 그런지 한번 확인해볼까?

중앙아시아에 살던 고대 아리아인들이 인도를 점령하면서 <브라만>이라는 신관계급이 되었어. 또 그 아리아인들이 북유럽으로 건너가면서 켈트족의 신관계급인 <드루이드>라는 신관계급도 생기게 되었지. 중국 은나라에서는 갑골문자라는 거 있지? 거북이 등껍데기에다가 점치는 거 말야. 그 때 제사를 주관하는 신관의 지위가 매우 높았어. 신관이 죽어도 전쟁 안된다고 하면 뭐 못하는 거였으니까.... 이집트야 파라오 자체가 신의 아들이라는데 할말 없구... 우리 나라 사극만 봐도 고대 사극에는 다 신관들 나오잖아. 주몽이랑 태왕사신기에 나오는 신관들은 왕의 아들들도 죽일 정도로 권력이 있어보이긴 하더만...

아무튼 최초의 문명 시대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종교 관념>이 강했고, 종교 의식을 치르는 신관계급이나 정복자들은 사회의 지배계급으로서 살아갔지. 그리고 신관이 존재하는 사회에는 항상 <신화>가 존재했어.

그 신화는 내용은 안봐도 뻔해.

태초에 신이 있어서 인간을 만들었고, 그 신을 모시기 위해 신관이 존재하고, 신관의 말을 잘들으면 도시사람들이 신의 가호를 받고 살아갈 수 있다... 뭐 이런거지. 특히, 수메르인들은 <설형문자>를 통해 점토판에 신과 영웅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겨두었기 때문에 신화 내용이 그나마 많이 남아있거든.

자, 그럼 이제 인류 최초의 신화라고 불리는 수메르 신화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 신화가 갖는 역사적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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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계사 8

'철기 시대가 도래하다.'

시간이 흘러 천년, 또 천년이 흘렀다. 그리고 청동기 문명 사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문명 속에서 철기라는 새 시대의 흐름이 등장한다.

- 암흑기가 시작되다 -

이렇게 다양한 국가들이 등장하고 정복 전쟁을 하면서 시간은 흘러 기원전 12세기 무렵으로 넘어갔어.

그런데 이 때 역사가들이 제대로 알 수 없는 신기한 일이 발생하게 돼. 갑작스럽게 당대 최강대국들이 무너지게 되거든. 파라오의 아들로서 이집트를 계속 지탱해왔던 이집트 신왕조가 멸망하게 되고, 세계 최초로 철기를 사용했다는 최강민족 히타이트의 제국시대가 끝나게 되지. 

그리고 수많은 민족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졌어. 역사는 이 당시 시대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이유로 이 시대를 '암흑기'라고 이름붙여 놓았지.

서양 학자들은 이 암흑시대를 '호메로스 시대' 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암흑기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문학작품인 일리아드나 오딧세이가 남아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 저자인 호메로스의 기록으로 이 시대를 유추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대나, 뭐래나....

호메로스 : 우리가 암흑기라고 명했던 시대의 이야기는 기원전 12세기의 이야기인데,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를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방랑시인이야. 그가 지은 일리아드, 오딧세이 등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문학작품'이고, 지난 시대의 영웅들과 신들의 이야기를 말로 전해 받아서 받아서 남겨둔 것들이지. 하지만, 그의 문학작품을 통해서 트로이 전쟁과 그 이후 소아시아 사회의 상황들을 추론할 수밖에 없어. 암흑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기록들이 사라져 버렸거든.

최초의 문명 시대를 이끌었던 청동기 국가들이 한번에 모두 몰락하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당대 최강 제국인 히타이트를 통해 유추해보도록 하자.

히타이트는 우리가 소위 '터키 지방'이라고 부르는 소아시아 반도 지역에 자리잡았던 인도-유럽어족의 민족이야. 그 동네를 좀 자세히 설명하자면 서쪽에는 에게해(동지중해)라는 그리스반도의 바다가 있었고, 남쪽에는 아라비아 반도, 동북쪽에는 흑해라고 하는 바다가 있는 곳의 중간 지점이지.

아래 지도를 잘 보자... 지난 장에서 본 기름진 초승달 지도 기억날까? 히타이트 문명이 성장한 곳이 바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기름진 초승달 지역인거야. 하지만 불행히도 히타이트는 다른 세계 4대문명보다 천년 늦었다는 이유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문명 지역이 되었지.

지금으로부터 4천년전... 소아시아의 최초의 문명을 일으킨 이들이 바로 히타이트인의 문명이었어. 세계 4대문명에 다 강이 있었지? 히타이트 문명도 할리스 강이라는 강가에서 시작된 문명이었지. 그 초창기 문명을 고왕국 시대 문명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점차 청동기 문명을 넘어 철기 문명으로 넘어가면서 엄청난 영토를 차지했고 이른바 '제국 시대'가 시작된거야.

이들이 영토를 확장한 방법은 바로 철기제조술과 전차였어. 그리고 철기와 전차를 소유할 수 있을 정도로 재력을 가진 자들이 바로 '귀족'이었지. 즉, 무기를 가진 귀족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귀족들 중 가장 힘있고 재력있는 자를 회의에서 선출해서 왕을 뽑았던 거야. 그 왕이 정복전쟁에서 계속 승리하면서 지금의 황제와 같은 권력을 갖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히타이트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제국 시대'가 되었다는 말씀.

히타이트의 중무장 전차

히타이트 귀족들은 기원전 16세기 바빌로니아, 기원전 14세기 미탄니 제국, 기원전 12세기 이집트 신왕조 등을 격파했어. 전술이 뛰어났냐구? 그것도 맞지만 말야.... 무기가 앞섰기 때문이지. 청동기 시대의 나라들이 철제무기를 사용하는 나라를 어떻게 이겨?

그리고 당대 전쟁의 핵심은 전차전이었어. 아니... 말타고 더 빠르게 싸우면 되는데 왜 굳이 전차를 타고 싸워야 하냐구? 그 이유는 간단해. 청동기 시대에는 말에 '안장'을 싣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생각해봐. 미친 듯이 뛰는 말 위에 손수건 한장 얹어서 며칠을 달린다면 엉덩이가 어떻게 될지. 기병전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안장 기술과 승마 기술이 발전한 철기 시대 이후야. 역사로 보면 기원전 8세기에 등장한 초창기 로마 부족들이 바로 기병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였지.

이건 꼭 그렇진 않지만 많은 문명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한 현상인데.... 겐지스강가의 지배계급인 브라만,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전의 귀족, 이집트의 파라오 전차부대 등 초창기 문명에서 지배계층인 귀족들이 전쟁을 이끌었을 경우 대부분의 전투는 전차전이었다는 것.... 알아두면 편해.

암튼, 당시 전쟁은 귀족들의 전차와 노예들의 보병이 주를 이루었어. 그리고 최초인지는 모르지만 초기 전차를 발명한 민족은 수메르 도시국가의 사람들이었지. 수메르와 이집트인이 사용한 전차는 마부와 궁수가 타는 전차였는데, 전차가 빠른 속도로 원거리 활을 쏘면서 상대방이 혼란에 빠지면 보병들이 도망치는 적군을 쓱쓱~ 찔러죽이는 전법이었지. 이름하여 기동성을 갖춘 경전차 작전~~

근데, 이게 히타이트에게는 안 먹히는 거야. 히타이트는 철제무기를 통해 무거운 중전차를 발명했는데, 이 전차는 마부, 궁수 외에 근거리 방패병까지 타서 원거리 뿐 아니라 근거리 전술까지 소화가 되었거든. 즉, 전차 자체가 원거리와 보병역할도 가능했기 때문에 접근전에서 오히려 더 큰 이득을 보았지.

이집트 등 청동기 국가들의 경전차

(하지만, 나중의 글에서는 내가 쓴 이 내용을 다시 반박하게 될 거야... 이집트가 호락호락 밀리는 나라가 아니였고 최근에는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무승부였다는 증거가 많이 나왔거든.)

하지만, 기원전 1200년경... 이 강력했던 히타이트가 새롭게 메소포타미아로 넘어온 인도-아리안 어족에게 밀려서 패퇴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되었지.

왜냐구? 이 시대가 철기시대라고는 말은 했지만, 그 철기라는 걸 사용한 국가는 히타이트였거든. 철기란, 히타이트가 망한 다음에야 그 제조기술이 각국에 넘어가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수많은 국가들이 난립하게 되면서 보급되기 때문에 의미가 생긴거야.

그리고 이제 이민족들도 강력한 제국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지. 원래, 기원전 2000년경부터 이미 수많은 민족들이 살기 좋고 토지가 비옥한 지중해 연안과 소아시아 지역으로 몰려오고 있었지만, 그들은 작은 도시 국가를 세우는 정도로 만족했었어. 하지만, 철기의 보급으로 수많은 민족들이 '우리도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고대 문명 지역에 눈독을 들이게 된 거야. 그리고 역사상 최초의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었지.

자 그럼 일단 이 정도로 큰 줄거리를 잡아놓고 다시 서아시아의 첫장으로 넘어가자. 지금으로부터 5500년경... 서아시아에서 시작된 신화의 세계부터 수많은 민족들의 이야기까지... 본격적으로 서아시아-이집트 지역의 문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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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계사 7

'문명이 형성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고 한다.  그 최초의 문명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그 문명은 독자적인 것이었을까?

1장. 4대 문명이 등장하다.

자, 이제 신석기 이야기는 그만 두고 실제 '문명'이 발생했다는 문명시대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아참, 전에 이야기했던거 기억날까? 문명은 대부분 청동기 시대에 이루어졌다는거 말야.

우리가 교과서에서 열심히 외웠던 세계 4대문명도 다 청동기 시대에 형성되었지. 물론 중국인들은 황하문명이 선석기 때 부터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고대 아메리카 문명들도 신석기 때 문명을 이루었으니깐 절대적 법칙은 아니야.

선사 역사를 이야기할 때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황하, 인더스 문명처럼 지역을 기준으로 문명을 나눠놓으면 공부하기가 편해. 각 지역별 문명을 이해하면 유럽, 서아시아, 인도, 동아시아로 전개되는 역사 과정을 쉽게 공부할 수 있거든.

하지만 문명과 문화권은 같은 말이 아니야. 문화권은 인문학이나 사회학에서 주로 쓰는 용어인데, 의식주나 생활환경 등 사람들의 공통된 생활방식으로 공동체를 구분하는 방식이야.

예를 들어 역사에서는 농경문화권, 유목문화권, 수렵문화권 등으로 나눈 방식이 대표적이지. 하지만 이 문화권의 개념은 인종이나 국가와 같은 것들을 고려하지 않아. 예를 들어 동아시아인들은 농경, 젓가락 사용, 유교와 불교 등 공통된 요소가 있기 때문에 중국인, 한국인을 구별하지 않고 동아시아 문화권이라고 부르지.

그럼 문화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고대 사회에서는 국가나 인종같은 것보다도 '환경'이 더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어. 보통 비슷한 기후나 자연환경에서 비슷한 생활패턴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큰 산맥을 기준으로 삶의 방식이 나누어지는 경우가 많거든. 하지만, 가까운 역사로 올수록 인류의 지혜가 쌓이고 역사적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정치, 종교, 관습 같은 것들이 문화에 큰 영향을 주게 되지.

또 하나!!! 문화권은 문명보다 먼저 성립되었다는 점이 중요해. 인류 최초의 문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이미 집단으로 모여살고 있었잖아? 그리고 그 사람들은 농사를 지었던, 가축을 키웠던 그 집단의 생활패턴이 있었기 때문에 문명 이전에 '문화'는 존재했다는 것이지.

자, 그럼 지금부터 4대 문명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통해서 서아시아 지역의 역사를 먼저 한번 살펴보자.

2장. 서아시아에 도시국가들이 탄생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5500년전.... 그니깐 성경으로 따지면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했다고 말한 그 시기가 500년 지난 어느 시점.... 드디어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는 것이 생겼어.

그곳은 어디냐? 바로 '동부 지중해 바닷가' 근처였었지. 그 바닷가 서남쪽에는 아프리카 나일강 하구가 있었고, 그 동쪽 내륙에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라는 강이 있었어. 그리고 그 사이의 지중해 연안에는 강과 바다의 영향으로 매우 기름진 땅이 존재했는데, 훗날 연구자들은 그 땅을 '기름진 초승달' 지역이라고 불렀지.

그 기름진 땅 근처 곳곳에 작은 도시들이 생겨서 작은 농경 문화권 또는 유목 문화권이 생겼는데, 그 도시들이 정착생활을 하면서 최초의 문명이라는 것이 생긴거야. 그 중 나일강 근처의 도시들이 이집트 문명이 되었고, 지중해 동부 소도시들이 유프라테스강 근처에 자리잡으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발전한 것이지.

이 도시 국가들이 점점 커지고, 널리 퍼지면서 약 2천년의 세월동안 발전하고 멸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거야. 그런 과정 속에서 기원전 1천년경....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럽의 동쪽, 즉 서아시아(오리엔트) 전역에 다양한 문명이 존재하게 된 것이지.

서아시아 공부를 하다보면 이오니아해, 동지중해, 흑해, 야파, 알렉산드리아, 시라쿠사.... 이런 말 많이 나와.
게임 지도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신 간략하게 만들었으니 대강의 위치 파악은 할 수 있을거야.

좀더 자세히 살펴볼까?

기원전 3000년경, 나일강이나 유프라테스 강, 또는 지중해 동부 연안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작은 도시 국가들이 생겼는데, 이 도시 국가들은 각각 지역단위로만 발전했었어. 예를 들면 서아시아 유프라테스강 근처에는 '수메르'라는 동족 의식을 가진 도시 국가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살고 있었지. 나일강 근처에서는 '상왕국'과 '하왕국'이라는 큰 규모의 도시 국가들이 있었는데, 일찍이 상왕국이 강 근처의 왕국들을 통일해 버렸어. 역사에서는 가장 오래된 통일왕국이라고 해서 '고왕국'이라고 부르지.

중요한 건, 이들이 강과 해안을 중심으로 뭉쳐있었다는 거야. 이집트는 나일강 근처만, 메소포타미아는 유프라테스강 근처만 교류하면서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문명을 각각 이루고 있었다는 점이지. 그래서 역사에서는 이 지역의 역사 출발점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으로 따로 구분하고 있지.

그러기를 천년....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각 도시 국가들은 세력이 커지고 주변국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어. 특히, 지중해 동부 연안에는 바빌로니아 왕국, 히타이트 민족, 미탄니 문명, 크레타 문명 등 다양한 도시 문명들이 등장했거든. 이들이 서로 문서도 교환하고 무역도 하면서 점차 국제 사회라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되지. 물론 그 와중에 서로를 점령하기 위한 정복 전쟁도 끊임없었겠지?

자... 그리고 시간을 더욱 흘러 또 천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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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계사 6

'신석기인들은 뭘 먹고 살았을까 2'

구석기가 유인원들의 시대라면, 신석기인들은 현생인류와 많은 연관성을 가진다. 그들이 지금의 인류와 직접 연결된다고 판단할 근거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1장. 그럼 대체 뭘 먹고 산거야?

자 그럼, 신석기인들의 식생활을 한번 팍팍~ 파헤쳐보자. 근데 솔직히 서아시아나 유럽의 신석기인들이 뭘 먹었는지까지는 알기도 힘들고 관심도 없지? 일단 우리 동아시아의 신석기인들이 농사를 지으며 먹었던 주식이 뭔지 한번 알아볼까?

동아시아에서 나는 잡곡류의 종류와 유적들을 보면 신석기인들이 좋아했던 기호식품은 도토리와 밤이었을거야. 특히 도토리는 영양분이 골고루 내포된 완전식품에 가까웠기 때문에 요즘으로 따지면 빕스나 베니건스에 가야 먹을 수 있는 특산품인거지.

뭐, 하지만 당시 농사 기술이 워낙 낮은 수준이었잖아? 그래서 계절에 따라 다른 음식을 먹으면서 버텨야만 했어. 예로 봄에는 나물류를 채집해서 먹고 상하지 않는 건 잠시 보관도 했겠지. 여름에는 강이나 바닷가 근처에 나가서 어류를 많이 먹었을 거야. 여름은 사냥의 계절이지. 가을에는 별미인 도토리와 밤 등의 수확물을 먹을 수 있는 최고의 계절이었지. 겨울은 좀 먹고 살기 힘든데, 버섯류칡, 마, 겨울 생선 등을 먹으면서 봄이 올때까지 버텨야 했어.

즉, 결론을 말하자면 이런 거야. 신석기 때 토지 이용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가을 정도에 수확되는 일부 견과류 정도였어. 사실, 주생활은 사냥과 채집이었지. 농경이란 시작했다는 거에 의미를 둘 수 있는 수준이었거든.

2장. 우리 그냥 농사짓고 살게 해주세요~~

이렇게 농경 수준이 초보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식량을 구할 때 가족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어. 몇몇 가족들이 함께 모여 경력이 있는 사냥꾼을 지도자로 모시고 몇몇은 농사에도 신경쓰면서 주로 몰이 사냥을 했던거야. 이런 사회을 <씨족 공동체 사회>라고 하지. 씨족들의 지도자는 왕이나 군장이 아니라 가족들 모임의 대표였을 거고, 사냥이 잘 되도록 부족을 대표해서 기도를 하기도 했겠지.

여기서 특이한 건 중국 학자들인데, 당시에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유능한 사냥꾼을 양성할 수 있도록 힘을 쓰는게 여성이기 때문에, 신석기 시대는  여성이 사회 주도권을 갖는 모계제 사회라고 주장하고 있어. 여인이 주도권을 잡으면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살았기 때문에 일부다처제 사회라는 주장도 있구... . 증거는? 당연히 긍정증거도 부정증거도 없는 심증들 뿐이지만....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의 학자들은 아니라고 말하지. 남자가 사냥이나 농사에서 힘든 일을 맡아 하니깐 경제권도 남자쪽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누가 경제권을 가지고 있었던지는 열심히 싸우라고 냅두고 토지이야기를 해보자.

신석기 시대에 정착생활을 했다면 토지 주인이 있었다는 건데, 그럼 땅 주인은 누구일까?

물론 당시엔 토지 소유권을 놓고 일어난 분쟁 자체가 거의 없었을 거야. 설령 있었다고 해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가 없구.... 아마도 마을 공동체 전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같이 농사짓고, 같이 사냥해야 했으니깐 <토지 공동 점유>가 아니였을까?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토지를 <점유>하다는 개념이 토지를 <소유>한다는 개념으로 바뀌면서 개개인이 토지를 갖게 된 것은 정복전쟁이 활발해지는 <철기 시대>라고 말하고 있어.

3장. 점점 먹을 게 늘어나는데 행복한 일일까요?

약 5천년전, 즉 세계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탄생하고, 중국에서 국가가 등장하며, 단군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웠다는 기원전 2000년전.... 드디어 세계 곳곳에서 금속 문명이 등장했어.

이 때 중국에서는 공동체를 장악해서 세력을 갖게된 종교 제사장이 등장했고, 4백년 뒤 최초의 왕국인 상(은나라)를 만들었다고 해. 상나라의 특징은 바로 종교 제사장이 나라를 다스렸다는 점인데, 이건 각지 최초의 문명들이 가진 공통점이야. 서아시아 수메르에서는 도시의 수호신들이, 이집트에서는 태양신의 아들 파라오가, 인도에서는 제 1계급인 브라만이 등장하는 시기거든.

또 하나.... 이 시기에는 세계 4대문명이 만나는 접경지인 중앙아시아와 북방에서 스키타이인들이 정복사업을 했는데, 이 때 각지에 청동기가 전파되었지.

상트페테르부르크시 에레미타지 박물관  <스키타이인의 모습>

우리나라는 백년정도, 일본은 5백년정도 늦게 청동기가 전파되었어. 청동기가 전파된 각 지역에는 벼농사가 급증했고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어. 하지만, 청동기와 벼농사는 직접 관련이 있진 않지. 왜냐구?

청동기는 요즘으로 따지면 <보석>과 같이 귀한 거야. 구리와 주석, 아연 등을 합금해야 제조가 가능하거든. 너무 귀해서 보통 지배층의 무기나 제사용품으로 주로 사용하였지. 그럼 농기구는? 여전히 농기구는 돌을 쓴거야.

굳이 연결시켜보자면, 청동기를 만드는 기술이 전파되면서 농사를 짓는 기술도 같이 전해져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거야. 벼농사의 전파경로는 청동기 전파 경로와 매우 유사하거든.  만주 계통에서 한반도로, 그리고 일본으로 전래된 청동기의 경로와 벼농사 전파 경로가 일치하기 때문이야.

그럼 창동기와 함께 보급된 농사 기술은 어떤 것이었을까?

동아시아 사람들이 처음 시도한 농사는 견과류 등을 수확하는 것이었어. 을 많이 수확하였고, 깨, 도토리, 박 등도 영양분을 보충하는 별미였지.

하지만, 조금 시기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비옥한 땅과 비료를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어. 그것이 바로 <화경농법>이란 거야. 화경은 말 그대로 그 자리를 불태워서 비옥한 땅과 비료를 만든 후에 농사짓는 초보적인 방식이거든. 화전 농법으로 보리, 수수, 조, 팥 등을 효율적으로 재배할 수 있었어.

신석기 후기가 되면서 농사 기술은 더욱 발전했지. 그 때 등장한 방법이 바로 <수경농법>이란 거야.  말 그대로 물을 이용한 진화된 농사법이지. 물을 이용했기 때문에 물이 많이 필요한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벼가 동아시아인들의 주식으로 자리잡게 된거야.

처음 수경농법을 써본 사람들은 북부 중국인들이야. 중국인들은 강가와 저습지 근처에서 벼농사를 지어본거지. 하지만 이게 한반도, 일본 등으로 넘어가면서 획기적으로 바뀌게 되지. 즉, 저습지를 찾아다닐 필요없이 직접 <관개시설>을 만들어 버린 거야. 동아시아 각지에 관개 시설이 등장하고, 이 때부터 인류는 먹고사는 고통에서 조금씩 해방되게 되는 거지.

철기시대에 등장한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관개시설 - 김제 벽골제 기념지

하지만 먹고사는 걱정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또 하나의 비극으로 다가오게 돼. 즉, 생산물과 관개시설을 놓고 다툼이 시작된거야. 청동기와 철기 시대는 서로 많은 생산력과 생산물을 차지하려고 부족간 전쟁을 벌이게 되거든. 이 전쟁으로 왕과 귀족이 생기고 노예가 생겼어. 인류 최초의 계급이란 게 생긴거지.

따라서 청동기 시대 이후엔 직접적인 생산력보다도, 생산력을 획득하려는 싸움으로 사회가 발전하게 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정 지역을 확보한 지배자, 즉 군장이나 족장의 출현은 생산 영역을 놓고 벌이는 전쟁에서 시작된거야.

자, 이 정도로 신석기와 청동기, 철기 시대를 정리하고 이제 역사 시대로 넘어가보자. 먼저 세계 최초의 문명이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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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계사 5

'신석기인들은 뭘 먹고 살았을까 1'

구석기가 유인원들의 시대라면, 신석기인들은 현생인류와 많은 연관성을 가진다. 그들이 지금의 인류와 직접 연결된다고 판단할 근거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1장. 어휴... 먹고살기 힘들어요~~

지구의 50억년 역사에서 구석기 70만년은 어느 정도의 기간일까? 뭐, 대충 계산해도 0.0001%를 차지하는 아주 짧은 기간이겠네. 그만큼 지구 역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짧다는 걸 알수 있을거야.

하나 더! 인류 역사에서만 보면 구석기 70만년은 어느 정도 기간일까? 신석기가 1만년 전이라고 해도 신석기는 구석기의 1/70 정도밖에 안되고, 산업혁명 이후 인류를 생각한다면 수백배가 넘는 기간이 될거야. 그만큼 인간은 매우 찰나와 같은 시간에 지구상에 등장해서 만물의 영장으로 훌쩍 자라 버린거지.

일단, 유인원이라는 구석기인들은 현재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인종이야. 오히려 침펜지와 가깝다고 할까? 70만년이면 지구에 빙하기와 간빙기만 해도 수십차례가 왔을거고, 그 때마다 거의 멸종되거나 새로 환경에 적응하면서 등장한 유인원들도 꽤 많았을 거야.

그럼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는 유인원들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등장했겠지?

그게 바로 1만년전인데,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마지막 빙하기인 1만년 전이야. 이 때부터를 바로 <신석기 시대>라고 부르는 거지.

그런데 말야. 교과서만 믿고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신석기 때 인류 최초의 농경생활과 정착생활이 이루어졌고, 그것을 보통 신석기 혁명, 또는 농경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지.

하지만 사실 그 부분은 상징적으로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농경이라는 것이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나 미미했어. 신석기인들의 하소연을 한번 들어보자.

아... 도무지 21세기 현대인들은 1만년전의 상황을 전혀 모른다니까요. 농사는 무슨..... 생각해보세요. 1만년 전보다도 획기적으로 농경기술이 발전한 조선시대에도 보릿고개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또 고려시대에도 1년에 두 번 씨뿌리는 연작상경이라는 것도 몰랐는데.... 신라시대만해도 가뭄으로 사람들이 떼죽음당하고 굶었다는 기록 봤어요? 몇백년전 농사 수준이 이정도인데,  1만년전이면 말도 꺼내지 마세요... 어휴....

신석기 시대의 농사라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벼농사는 절대 아니야. 사실 벼농사는 청동기 때 시작되서, 철제 농기구가 사용된 철제시대 때 보급되거든. 신석기인들은 도토리 열매가 잘 자라는 땅을 보고 그 열매를 보호할 줄 알았고, 수수나 콩이 잘 자라는 땅을 알게 되서 그곳을 잘 보존하고 씨를 뿌려두는 일을 했던거야.

그러다보니 미미한 수확량이나마 저장해서 아껴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 저장고가 필요했지. 그게 바로 토기와 같은 도구들이야. 반면,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강가와 같은 곳의 주변에서 잡곡이 잘 나는 지역을 찾아내곤 했을거야.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열매가 잘 나는 곳을 지키고 보호해도 비바람이나 홍수, 가뭄같은 하늘의 재해는 막을 수가 없었어.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건 하늘을 보면서 하소연하는 거지. 그래서 신석기 때 종교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어. 자연에 하소연하는 애니미즘, 무격신앙인 샤머니즘, 동식물을 매게로 하는 토테미즘, 조상신 숭배와 영혼불멸사상 등이 등장하게 된 것이지.

태양이시여.... 이 계절이 가기 전까지 많은 도토리들을 구하게 해주시고, 콩밭이 망가지지 않게 도와주소서. 소를 잡아 제단에 바치겠사옵니다.바람이시어 강물이시어 도와주소서....

자, 그럼 이왕 신석기를 이야기하는 김에 우리 동아시아 지역의 신석기인들을 한번 생각해보자.

2장. 천-지-인과 오행으로 생각한 농경

동아시아 신석기에 대한 기록은 우리 역사에는 전혀 없어. 다만 중국 한나라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적은 <사기>에서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지. 사기 내용을 한번 볼까?

단군 신화에 천, 지, 인 나오지? 사기에도 천황, 지왕, 태왕이라는 3황이 나오는데, 후대 중국인들은 그 3황을 복희, 신농, 여와, 수인 등등등 다양하게 이름을 갖다 붙였어. 뭐 이름이 뭐든 그건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건 3황중 <토지의 신>이 이 땅에 농경을 전해 주었다고 해.

그 3황 중 토지신이 인류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 이후로 지상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5명의 현명한 지도자들이 등장하게 된다나 뭐래나... 그 5명의 인물이 바로 황제, 전욱, 제곡, 요, 순 이라는 전설상의 왕들이야. 모두 신석기 시대를 이끌어간 현명한 지도자들이지. 

재미있는 건 3황이 하늘, 땅, 사람이라는 물질을 상징한다면, 5제는 화, 수, 목, 금, 토 라는 우주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어. 사실 사기라는 책을 쓴 사마천이 살았던 시기에는, 동중서라는 유명한 재상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우주의 5가지 원리가 음양오행으로 만나 돌고돈다는 <음양오행설>을 국가 윤리로 채택했거든. 그 음-양, 오행 이라는 개념이 나중에 중국의 전통 유교 윤리가 되는데, 이건 뭐 중국사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고, 패스~

3장. 한반도의 신석기 농경도 알 수 있을까?

한반도와 요동지방의 신석기 시대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등장하기도 전의 시대야. 당연히 기록도 없고, 땅에서 어떤 농사를 지었는지 알 길도 없지. 단지, 몇몇 유물과 유적지만으로 대충 신석기인들의 생활을 추론하고 있어.

일단 빗살무늬 토기타고남은 좁쌀 등의 유적으로 신석기인들의 생활을 알 수 있지. 아마 초보적인 농경이 부락단위로 이루어졌을 거야. 특히, 만주지방의 토기(채도)는 한반도와 유사하거든.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만주의 신석기 문화(중국 요령 지방의 홍산 문화)가  중국보다는 한반도 계통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지. 

당연히 중국은? 그 기록을 열심히 지우고 있구.... ㅋㅋㅋ 장수왕, 광개토대왕이 우리 역사라는 기록을 지우듯이 한반도 계통의 신석기 역사도 중국 내부에서는 열심히 삭제하는 중이니 중국 역사가들은 무지 무지 바쁠꺼야.

하지만 아무리 기록을 지워도 우리 영토에 있는 유물들을 없앨 수는 없겠지? 우리 고고학자들은 신석기 시대에 사용되었던 토기들, 즉 밥그릇이나 저장도구들을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추론하곤 하지. 토기를 비교해보면 말야. 신석기 초기에는 시베리아 토기랑 많이 비슷한데, 신석기 후기로 가면 중국 북부 토기랑 우리 토기가 상당히 유사해. 최소한 두 지역이 같은 문화권이거나 많은 교류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지.

반면, 일본 역사가들은 한반도와 일본의 신석기 시대가 연관이 많다고 쿨하게 인정했어. 사실, 쿨하다기 보다는 연구하면 할수록 관련성이 깊어지니 인정하는 게 속편했겠지.

일본 유전학 연구소에 따르면, 1만년전부터 한반도에서 농경생활을 한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와 토지 이용을 시작했다고 해. 통계치로 보면 약 65%정도라고 하지.

   

신석기 때의 토기 :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좌), 일본의 조몬토기(우)

자, 그럼 이제 신석기인들은 뭘 먹고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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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계사 4

'대체 왜 시대를 구분하는 거야?'

역사를 공부할 때, 고대니, 중세니 하는 시대 구분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이 시대구분이란 언제 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된 것일까?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자,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시대 구분에 대한 이야기야.

도대체 고대니 근대니 현대니 하는 것은 누가 어떻게 정한걸까? 뭐, 고대가 뭔지 모르고 고대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우선 그것부터 끄적거려 봐야겠군.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이렇게 시대를 나눠두는 것을 <시대 구분>이라고 한다나 뭐래나.. 이 시대 구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분이 바로, <마르크스>의 시대 구분이야. 하지만, 이 사람이 처음으로 시대구분을 한 것은 아니고, 그냥 가장 유명한 시대구분일 뿐이지.  

사실, 시대구분이라는 것은 스스로 <근대인>이라고 생각했던 서양인들이 만들어 낸 <발명품>이야.  혹시, <르네상스>라는 말은 들어봤어? 미켈란젤로니, 라파엘로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선생이니 하는 분들 나오는 서양 15-16세기 시대를 말하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지. 문화, 예술, 학문이 모두 옛 시대보다 뛰어났고, 신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도 막무가내로 믿사옵니다~~~를 외치던 중세보다 진보했다고 믿었거든.

그래서인지 이전 시대와 자신들의 <자부심>있는 시대를 꼭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시대구분이란 것을 만들어놓은 거야.  뭐, 한자로 봐도 딱 답이 나오네. 고대는 옛 시대, 중세는 중간세상, 근대는 지금과 가장 가까운 시대....

하지만 시대구분이라는 게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야. 역사를 살아가는 건 우리 인간들이니깐, <인간>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지금과 다른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 임의로 나누어 놓은 게 바로 <시대>라는 단어거든.

예를 들어, 내가 일기를 쓸 때에도 나의 유아기, 유치원기, 소년기, 청년기... 뭐 이렇게 나누지만, 사실 그건 내 맘대로 기준을 잡고 대충~ 정한 거잖아. 14살까지가 소년기라는 증거 있어???

또 하나 예를 들자면,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창세시대, 아브라함시대, 유대시대, 예수시대... 등등으로 시대를 나누었어. 하지만, 이것도 크리스찬이 아니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꺼 아냐? 반대로, 르네상스인들의 시대구분은 <크리스찬>들이 보기엔 신앙에 맞지 않잖아? 뭐, 이렇게 사람에 따라 임의적이라는 거지.

어쨌든 간에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서양의 근대인들은, 근대가 시작된 15세기를 무지 자랑스러워 했어. 솔직히 그 이전 시대인, 중세 시대에는 기사도가 어쩌구, 십자군 원정이 어쩌구, 교황이 어쩌구 말은 많이 했어도 <우물 안 개구리> 시대였거든.

한번 <근대인>들의 눈으로 중세를 바라보자. 

아직... 미국이라는 신대륙도 아직 몰랐고, 아시아 애들이랑은 무역도 제대로 못했고, 종교개혁도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  한마디로, 아시아인들은 각각 무역권을 만들고, 문명간 교류도 활발히 하고 하던 시기에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들끼리 죽자 살자 치고 받고 싸운 시대.... 휴... 우리가 100년전의 시대를 지금보다 덜 발달한 시대라고 생각하듯이 근대인들도 중세 시대가 쫌~ 한심했겠지?

그런데, <근대>라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어. 이제, 짜잔~ 하고 <세계화> 시대가 시작된거야.  콜럼버스가 신대륙도 발견하고, 아시아 무역권에 가서 후추도 얻어 왔어. 와~ 세상이 이렇게 넓고, 신기한 세상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겠지? 이런 새로운 세상을 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어?

야...  르네상스, 종교개혁, 신항로 개척.... 우리 쫌 잘나가기 시작하는구나...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믿었던 가치관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의 세상이 너무 현실과 달라보이기 시작한 거지. 자, 그럼 이 시대에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몇몇 인물들의 가상 대화를 통해 살펴볼까?

교황 : 야... 니들 라틴어 읽을 줄 모르잖아. 내가 성경책 읽어 줄테니 잘 들어. 하나님께서는 <면죄부>라는 티켓을 사는 사람에게 천국을 예약하셨거든. 무식한 일반인들아, 이해되었니? 자, 줄서... 티켓사세요.. 티켓... 교황한테 돈 바치면 천국가요... 교황믿음 만세천국 교황불신 바루지옥.....

로렌쪼 발라 : 놀구있네. 내가 조사해 봤더니, 교황이랑 황제랑 밀약맺고 둘이 이중장부 만들어서 이 땅, 저 땅 다 나눠먹었던데...  이게 뭐야~ 대체, 교황이 판교지구 투기업자랑 뭐가달라? 교황이랑 프랑크 왕국 황제랑 서로 땅따먹고, 정치자금 대주고 이런 뒷거래 했다메? 내가 자료 다 찾았다. 뭐 지금부터는 성경책 내가 직접 읽을란다. 니가 읽어주는 거 안 믿어.

루터 : 라틴어? 되었구... 지금부터는 모국어로 성경책 번역해줄테니 그거 읽으면 되겠다. 성경 직접 읽고 스스로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 힘으로 종교를 바꿔 보자구요. 일단, 교황 자금줄 좀 끊어놔야겠네. 그래야 존경하는 우리 귀족분들이 힘좀 쓸거 아니겠어? 교황불신 귀족만세~~ 종교개혁 만세~~~

  갈릴레이 : 근데, 교황이 한 말을 반박해도 될까? 내가 망원경 만들어서 보니깐 지구가 돌던데.... 근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내가 안했는데... 어떤 넘이 책 팔아 먹으려고 그런 말을 써 놓았어?

콜롬버스 : 그래? 그럼 난 지구가 돈다는 말도 믿을께. 지구가 둥글다는 말도 믿어볼께. 이제,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서 인도 가봐도 될까? 진짜 간다.. 진짜루.... 지구 반대로 갔다가 낭떠러지 만나서 죽는 거 아니지? 확실... 하지? 후덜덜...

뭐, 점차 이런 분위기가 되가는 거다.

세상이 바뀌고 세계가 넓다는 것을 알았으니, 유럽인들도 이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뭔가가 필요했던거야. 이제, 아시아 애들 노는데도 좀 놀아달라고 애원해보고, 무역도 같이 해보고 싶었겠지.

한마디로!! 유럽애들도 점차 <스팩!>이 마련된 거야. 그래서 서양인들은 지금까지의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점을 만들고, 과거와 다른 <스팩!>을 갖춘 <신유럽인>을 표현할 용어가 필요했던 거지. 

그리하여....

과거 찬란했던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시대인 먼 옛날의 시대를 <고대>라고 규정했어. 그리고, 로마 제국의 유산이 사라진 시대를 <중세>로 표현한 거지. 그리고 르네상스를 겪은 자신들의 위대한~ 시대를 <근대>로 부르게 된 거야.

그런데 말야. 문제가 생겼어. 15-16세기에 살았던 르네상스인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가장 가까운 시대인 <근대>라고 표현했는데, 시간이 계속 지나니깐 19세기, 20세기가 온 거야. 헐.... 그럼 이 새로운 시대는 또 뭐라고 불러야하지???

서양의 학자들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지. 아... 산업혁명이 시작되더니, 뭔가 세상이 더 빠르게 바뀌고, <근대>와는 다른 또 다른 <신세계>가 시작되었는데, 이걸 무슨 용어로 표현해야 하냐구....

그래서, 세계 1, 2차 대전이 끝날 때쯤 새로운 용어를 찾게 된 거야. 히틀러가 자살하고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고 난 이후... 새롭게 변화한 세상. 미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정착된 세상. 즉, 1945년 이후의 세계를 표현할 새로운 용어를 창작한거야.

그것이 바로 근대보다 더 지금을 표현할 수 있는 시기, 즉 <현대>라는 용어인거지. 그리하여.... <고대-중세-근대-현대>라는 4단계 시대구분법이 드디어 완성된 거야.

아까 위에서 마르크스의 시대 구분 보았지?

마르크스는, 이런 4단계 시대 구분법에다가 자신의 철학을 합쳐서 <마르크스식 시대구분>을 만든 사람이야. 그 사람은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 등을 거치면서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은 사람이지. 그래서 그 사람을 사회주의자이자, 공산주의 사상의 아버지라고도 표현하곤 해.

마르크스는 고대, 중세, 근대 등등의 시대구분에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등을 짝~ 리믹스해서 자신만의 시대구분을 만들었지. 물론, 이 사람 말고도 고대, 중세, 근대 등등의 시대에 자신의 철학을 붙여 시대구분을 한 사람은 많겠지?

그런데, 이 시대구분법은 문제가 있었어. 뭐~ 19세기 이후에 서양 애들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이 시대구분법을 널리 애용했거든.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이게 너무나 안 맞는 다는게 큰 문제였지.

생각해봐봐. 한국이나 중국, 일본 역사에다가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이런 단어들를 끼워 맞추려고 하니깐 안 맞는게 한두가지겠어? 한국인이 15세기 르네상스를 살았던 사람들이 아닌데, 서양애들이 살았던 시대를 무리해서 적용하기엔 너무 안맞아서 삑사리가 나지 시작한거지.

서양 애들도 골치가 무척~아팠을 거야. 서양식 시대구분이 만능인줄 알았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적용이 안되니깐 환장하겠지.

해결책은 뭘까?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주 심플한 해결책을 내놓았어. 심플하다기 보다는 귀찮아서 대충 방법을 마련한거지. 시대구분이 애매한 아시아에다가는 몽땅 다 <중세 수준이네>를 가져다 붙여 버리면... 참~ 쉽죠.. 잉~ 

영국의 스펜서 : 뭐야... 중국, 일본, 한국, 인도, 오스만 제국... 이것들은 나름대로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라면서 19세기까지 쭈욱~ 중세 봉건시대 수준이네. 그니깐 니들이 우리 서양한테 정복이나 당하지 ㅋㅋ 찌질이들~

하지만, 그나마 아시아에서는 <메이지 유신>이니 뭐니 하면서, 쫌~ 산다 싶었던 <일본> 이라는 나라가 있었어. 아시아의 다크호스~ 일본이 그 말에 바로 발끈~ 했지.

일본 : 되거든!!! 웃기지도 않네.. 아시아는 아시아 나름대로 발전과정이 있거든! 니네 유럽애들 발전이랑 다른 면도 무지 많거든? 니들이 <천황제도>를 알고, <막부시대>를 알아? 글고... 우리도 <메이지 유신>으로 나름 수준급으로 발전했는데, 몰랐어? 니네 시대 구분이 좀 우리랑 많이 다르네. 아시아에는 근대도 아니고, 현대도 아니지만, 독특하게 발전했다는 걸 왜 몰라주는 거야? 오 좋아.. 우리 아시아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그 시대... 그걸 <근세>라고 부르면 되겠네.

그리하여 일본 학자들의 연구로, 4단계 시대 구분법이 <근세>를 포함한 5단계 시대 구분법으로 정착된거야. 그래서~ 아시아 역사에서는 바로 이 <근세>라는 말도 종종 사용하기 시작했지.  물론 우리 한국사에서도 지금 사용하고 있구.

뭐, 암튼 중요한 것은 서양식 시대 구분이라는 것이 우리랑 너무나 안 맞는다는 거야. 우리식으로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때려 맞추려고는 하는데, 당연히 서양애들이랑은 안 맞는게 너무 많겠지? 도대체, 서양의 고대 국가인 로마 제국이랑 데칼코마니처럼 완전 일치하는 우리 고대 국가가 어디 있겠냐구...

그리고 우리 나라 국사 교과서도 한번 봐봐. 뭐, 고대 사회로의 발전, 근세로의 전환... 이런 거창한 제목들은 많이 나오는데, 왜 고대고, 왜 근세고... 이런 설명들은 살짝 생략되어 있잖아~~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 학자 님들께서 고민해서 만들어놓은 시대구분이 있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도 (교과서에는 없지만) 설명해 놓은 것들이 있으니 지금부터는 그거라도 참조하면서 글을 써야 할 것 같네.

그런데, 이 점은 분명히 해둬야 할 것 같아. 여기서 시대구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는거... 기존의 모든 역사가들이 자기 나름대로 <시대 구분>을 해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어쩔 수 없이 시대 구분이라는 걸 다루는 것 뿐이야. 사실, 시대 구분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필요하면 원하는 대로 시대구분을 해 버려도 상관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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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계사 3

'원시시대가 석기시대인가요?'

역사를 처음 시작할 때 등장하는 것들이 바로 시대구분이라는 용어다. 그러나 사실 원시시대와 석기시대는 같은 뜻으로 사용하면서도 약간 의미가 다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짚고 넘어가보자. 그건 석기시대와 같이 혼돈해서 쓰는 잘못된 용어들이지.

석기시대란.... 말 그대로 石器... 을 도구로 쓴 시대란 뜻이야. 보통 우리가 stone-age 라고 알고 있는 시기이지만, 실제로는 stone implement 라는 말이 정확한 거지.

구석기 시대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

후진 돌... 새 돌.... 반짝거리는 청동.... 무지 강한 철.... 즉...생활 도구를 돌(石器)을 사용했느냐 금속을 사용했느냐로 나누는 기준인 것이야. 원숭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역사시대가 아니라는 말 했었지? 이건 순전히 고고학이라는 학문에서 인류 발전 단계를 나타낼때 쓰는 용어야.

석기시대를 이야기할 때, 선사시대라는 말도 같이 쓰지만 석기와 선사는 달라. <선사시대>란 역사시대의 반대말이지. 先史란 말이 역사보다 먼저란 뜻이잖아. 먼저 선!!! 따라서 선사시대는 문자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 이전의 모든 시기가 선사시대야.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단군 신화고... 단군의 고조선은 보통 청동기 때 세워졌다고 하니깐, 청동기 이전은 모두 역사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겠네....

한국사에서.... 구석기 + 신석기 + 이른 청동기 = 선사시대

또... 원시인들이 살았던 옛 시대를 원시시대라고 대충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석기시대랑은 다른 개념이지. 원시시대란,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을 말하는 개념이야.

원시시대는 사회주의자였던 마르크스가 제시한 개념인데, 마르크스는 제대로 된 정치력을 가진 국가가 생기기 전의 시대를 원시 시대로 불렀어. 마르크스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상 국가를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했지.

공산주의란, 말 그대로 공산(共産).... 공동으로 생산해서 재산을 공동으로 나누는 이상적 사회를 말해. 인류는 원래 <원시사회>라는 시기에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였는데, 국가가 생기고, 사유 재산이 생기면서 평등이 깨졌다고 생각한거지. 즉, 원시시대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평등사회를 지칭하는 말이야.

원시원시공산사회(부족공동체 사회) - 고대 국가 - 중세 국가 -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

위에 적은 사회 발전 단계를 보니깐 대충 알겠지? 돌을 사용한 석기시대와,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원시사회도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지. 원시사회지만, 돌을 안 쓴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석기 사회에서 고대 국가가 생긴 사회도 있을 수 있지.

아메리카의 고대 잉카 문명 같은 경우에는 석기 시대때 이미 찬란한 문명 사회를 이루었고, 아마존 부족들은 원시사회였지만 금속을 사용할 줄 알았다잖아.

자, 그럼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확실히 알았으니깐, 석기시대로 출발해볼까? 끄적끄적...

2. 구석기의 인류란?

보통 역사책에서 말하는 최초의 인류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그냥 상징적인 개념일 뿐야. 오스트랄로가 오스트레일리아 할 때, 그 남쪽이란 뜻이고, 피테쿠스는 <원숭이>란 뜻이지. 한마디로, 걍 남쪽에서 발견된 원숭이란 뜻이야.

근데, 305만년전이라는 까마득한 시절의 원숭이가 역사책에서 인류의 시조로 등장한 이유는 뭘까?

그건 그냥 두 발로 걸어다닐 줄 알았고, 손에 돌을 들고 뭔가를 부실 줄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손에 돌을 들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살았으니 이 때 부터가 이미 <석기> 시대겠지?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조상을 정하면, 여의봉을 들고 킥킥거리며 하늘은 나는 털보원숭이 손오공도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겠다. 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 아프리카누스(약 215만년전 유인원 : 미세스 플레스)의 두개골로 재현한 고인류. 당시 인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지만,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을 근거로 인류의 시조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사진은 직립 보행의 근거인 골반 구조이다. 침팬지와 인간을 놓고 보았을 때, 가운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쪽에 훨씬 가깝다. 손과 발의 구조도 인간쪽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문자를 가지지 못하였고, 빙하기를 거치는 수십만년 동안 큰 진화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사실 이 기준으로 하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원숭이들도 다 인류의 시조가 될 수 있어. 400-500만전의 원숭이들 중에서도 <라마피테쿠스>처럼 걸어다닐 수 있는 원숭이들이 있었거든... 그 이후로 호모 에렉투스니, 호모 사피엔스니... 기타 등등 원숭이들이 많이 발견되었다나봐. 뭐, 우리랑 상관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구...

근데 원숭이들 학명은 대부분 <호모 Homo>가 들어가지? 호모란 원래 고고학 학명으로 <인간 human>이라는 뜻이지. 남성과 여성 할 것 없이 인간 자체를 뜻하는 학명인데, 요즘 사람들은 동성애자나 성정체성이 불명확한 사람들을 호모라고 부르고 있어. 그럼 안된단다... 땍~~~

다음 장에서 할 이야기도 역사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살포시 짚어봐야할 이야기지. 바로 시대구분~~ 이라는 거야. 위에서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원시사회니 고대사회니, 공산주의 사회니 하는 구분을 떡 하니 말했었지? 그런 건 대체 왜 하는건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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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계사 2

'원숭이들 시대가 역사시대라구요?'

교과서든, 이야기책이든 역사책을 피면 그 시작은 항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다. 도대체 인간도 아닌 원숭이가 왜 역사책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단 말인가?

자.. 그럼 역사교과서와 똑같은 순서로 역사를 한번 적어보려구 한다. 근데 말이지... 역사책을 딱 피자마자 우리는 알송달송한 시대에 직면하게 된다.

T : 자... 그럼 인류의 조상이 살았던 구석기 시대부터 공부해볼까?

S : 저기요... 전 창조론 믿는 크리스찬인데요. 꼭 이거 공부해야 되요?

T : 시꺼... 현실과 이론은 다른거야. 지금은 진화론 믿어!!! 나중에 교회가서 아담의 상복부 2차 갈비뼈가 하나 비었다는 그 얘기 공부해... 지금 성경책 읽냐?

S :  저기 근데,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라면서 원숭이의 삶을 배우는 게 역사랑 무슨 상관인데요?

T : 이것들이 머릿속 바탕화면에 빨갱이 로고가 떠다니나... 역사에도 뭔가 시작이 있을거잖어?

S : 그니까요... 구석기는 선사시대라면서요? 역사시대가 아닌데 왜 배우냐구요?

그렇다. 솔직히 구석기신석기니 하는 것들을 역사에서 배워야 하는 근거는 전혀 없다. 역사 기록이 없는 먼먼 옛 지구의 이야기를 우리는 선사 시대로 통칭해 부른다. 역사 시대란, 역사적 기록이 존재하는 시기를 말한다. 단군 신화처럼 삼국 유사같은 책에 옛 일이 기록된 시기가 역사시대란 말이다. 안드로메다로 가는 광년수보다 더 먼 체감지수가 느껴지는 70만년전의 시대를 왜 역사책에 적어놓는 것일까?

그 옛날 이야기를 역사에서 다루고 시작하자니, 종교 논쟁부터 해결해야할 판이다. 진화론을 믿자니 원숭이들의 역사를 배우는 것일 뿐이고.... 창조론을 믿자니 뭐 구석기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기 전 낮잠자던 시기에 활동한 초사이언인들의 이야기로나 취급해야 할 것 같고...

사실 문자가 기록되기 이전의 옛날의 원숭이들을 연구하는 학문은 <고고학>이지 역사학이 아니다.

그런데, <고고학>은 인간의 삶과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학문이 아니다.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은 <역사학>이고, 인간의 삶을 알 수 없었던 시기의 인간 또는 유인원의 생물학적 모습과 생존을 위한 생활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 <고고학>이다.

즉, 고고학은 인간의 삶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생 인류의 조상이 누구이며, 그들이 현생인류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역사학>은 <인문학>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역사교과서는 꿋꿋하게도 이 고고학의 영역을 역사교과서에 떡 하니 적어둔다. 그것은 관행이 되어 모든 역사의 시작을 설명하는 기준이 되었다.

흔히 한국사라고 하면,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사는 민족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우리 민족 국가라고 생각되어지는 고조선 등의 국가가 최소한 청동기 시대 또는 그 이전에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고고학을 역사학에 끌어온 이유는 뜬금없이 시작된 역사시대의 쌩뚱맞은 시작을 보충하기 위해서이다. 고고학이 다루는 수많은 과거 사실들 중에서 역사가 애타게 원하는 것은 <역사시대를 살아간 인류에게도 조상이 있을터인데, 그 놈이 누구인가?> 정도이다.

우리는 서구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기준을 생각해서,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등을 기준으로 인류의 조상을 말한다. 그리고, 서구식 기준에 맞추어 구석기, 신석기 등으로 합리적인 시대 구분을 한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의 첫 시작인 고조선을 설명하기 위해서 아주 긴고 긴 석기 시대를 따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진)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두개골 형상 : 좌-아프리카누스, 우-에티오피쿠스

결국, 우리는 민족의 기원을 설명할 때 2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하나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를 거치면서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진화를 했는가를 따지는 과학적 방식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환인과 환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신화적 요소들을 간추려보고, 당시 사회상을 살펴보는 방식이다. 교과서에서는 이 두가지 방식을 따로따로... 두루두루 섞어서 사용한다.

일단... 고고학 이야기를 따로 떼어서 이야기하려구 한다. 역사학과 별도로 고고학을 떼어서 다룬 뒤 버리고... 역사에 관련된 <민족>이야기를 역사 시대로 설정해서 다뤄보려구 한다.

결국, 처음의 질문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된다.

S : 그니까요... 구석기는 선사시대라면서요? 역사시대가 아닌데 왜 배우냐구요?

T : 맞다.. 맞다... 그거 역사 시대도 아니고, 역사 이야기도 아니지. 그냥 단군부터 시작하는 역사이야기만 해도 돼. 사실 고고학 이야기는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이야기지. 있으면 걍 참고사항이고, 없어도 뭐 사는데 지장은 없는 이야기인데, 걍 허전해서리....

자...  지금부터 만약 고고학 이야기들을 다룬다면 그건 없으면 허전해서 한마디 하고 넘어가는 참고자료들일 뿐이다. 읽기 귀찮으면 패스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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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계사 1

'사극이 역사를 대신하잖아!'

사람들은 역사를 진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란 있었던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 과거를 아는 사람은 없다. 역사를 변신로봇처럼 조립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1장. 12년동안 만두만 먹으면서 자란 아이들.

지금부터 일기를 쓰듯이 풀어서 역사를 조잘조잘 써보려고 한다. 그런데 말이지, 책이나 뭔가 보면 그럴듯한 서문들을 앞에 적어 놓잖아. 나도 뭐 그럴 듯한 뭔가를 적어보려고 하는데 말이야. 뭐 폼나는 거 없을까?

생각해보니깐 인터넷으로 역사에 관한 글을 적는다는 건 너무나 자유로운 일이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누구나 기분나쁘면 반박할 수 있는 공간인데, 난 그동안 너무 딱딱하게 샌님처럼 글을 적은 것 같군.

고등학교 때가 생각나는군. 누구나 한번쯤 겪은 일이라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인데, 아마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T(샘) : 자... 공부했으니 확인해야지? 삼국통일의 의의가 뭐지?

S(우리) : 저기 선생님... 얼마전에 가야도 배웠으니까 사국통일 아닐까요?

T : 그니까... 내가 물어보는 건 말야.. 신라가 통일한 시기를 말하는 거잖아. 삼국통일의 의의가 뭐지?

S : 저기 당나라 도움을 받았다면서요. 그런데 왜 삼국통일이 자주성이 있다고 적혀있어요?

T : 그래서 대학 안갈래? 꼭 너같은 애들 땜에 진도도 안나가고 수업이 안드로메다... 아니 당나라로 날아가잖아. 당나라를 물리쳤으니깐 자주적인 통일이고, 대동강 이남만 통일했으니깐 한계가 있는 통일이죠?

S : 저기요... 진흥왕 때 세운 마운령비, 황초령비가 훨씬 위쪽인데.... 통일하면서 영토가 더 아래로 내려와요?

T : 그래서??? 고구려, 백제가 안 망했니?

S : 저기 발해가 건국되서 남북국이라면서요... 근데 왜 통일이에요? 발해는 남의 나라인가요?

T : 너.... <교과서> 공부는 안하고 뭔 생각만 계속 하는거냐???

그래... 생각해보면 결국 교과서에 적혀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진리가 되는 역사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넓혀주려고 열심히 질문을 던지는데, 그 질문이 원하는 건 교과서에 적힌 한줄의 딱딱한 문구 뿐이다.

그래놓고도 교과서는 뻔뻔하다. 고등학교 교과서 첫장을 보면, 역사적으로 생각하는 <역사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한국사를 배운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교과서에 있는 것만 수능에 나온다는데, 교과서를 벗어난 사고력이 대한민국 어디에 존재하는지....

아... 문득 갑자기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난다. 감옥에 갇혀 15년간 만두만 먹은 그 수염긴 파이터.... 우린 그넘과 다를 바가 없는 듯 싶다. 초, 중, 고, 대학.... 15년간 똑같은 내용의 역사책만 배운 우리... 갑자기 따스한 햇살이 그립다.

난 대한민국의 역사선생님들이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분들 역시 참교육을 위해 무진장 애를 쓰고 계신다. 그러나,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입시제도 아래 존재하시는 모든 분들은 <교과서>를 벗어난 역사를 말할 수도 없고, 수능에 안나오는 변두리 역사를 말할수록 유능함에서 멀어지며, 교과서보다 더 깊고 심도있는 역사를 이야기하면 왕따를 당하는 현실이 무섭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2장. 역사엔 자기주도학습이 없다?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교과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교과서를 만든 그 분들과, 역사가 무엇인가를 써 내려가는 그 분들이다. 교과서를 공부하다보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T : 일제시대 우리 조상들의 현명함을 볼까요? 의병항쟁은 총, 칼을 들고 무력으로 일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던 반면, 애국계몽운동은 교육계몽운동을 통해 일본에게 벗어나려고 했던 운동이죠. 안창호, 이승훈 선생님등이 이끈 신민회를 배워볼까요?

S : 저기 의병항쟁은 나쁜거고, 애국계몽운동은 좋은 거에요?

T : 왜???? 왜 그런 생각을 하지?

S : 저기... 의병항쟁은 애국의병항쟁이 아니라 그냥 의병항쟁이구... 계몽운동만 애국계몽운동이잖아요.... 그럼 의병들이 칼들고 일본이랑 싸운건 무식한 짓이고, 교육으로 일본에 저항한 것만 애국인가요?

T : ... 그런건 시험에 안나온다.

교과서의 곳곳에는 이런 함정들이 숨어있다. 의병항쟁은 단순히 일본에 저항했던 사건들과 전투들을 나열한 뒤 그 의의만을 적어두지만, 계몽운동은 그 단체들부터 사업에 이르기까지 아주 꼼꼼하게 적어두었으며, 그 명칭을 달리한다. 학생들은 교사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지식을 주입받게 된다.

그래.. 역사를 적는 이들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우리에게 뭔가를 강요하고 있으며, 역사는 이런 것이라는 규정을 미리 만들어 과거를 <칼질>하고 있는 것이다.

에휴... 생각해본다. 역사를 공부할 때 <역사란 무엇인가?>부터 생각하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란 무엇인가?>를 미리 생각해놓고 책을 적어놓은 사람들은 기존의 역사가들이다. 그 책을 읽으면 누굴 따라가게 되는 것일까?

사실 역사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역사를 누가 먼저 만들어 놓았는가?>이다.

역사는 과거에 일이고 과거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역사 전문가라는 분들이 역사를 연구해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일이 중요한 일인지를 폼나게 글로 남겨 주신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 연구가들이 할 일이시다. 우리는 그냥.... 필요한 관심있는 역사를 골라 있고 그 분들이 만들어놓은 것을 비판하기도 하고, 옹호하기도 하고, 똥을 싸질러놓기도 하고, 반짝반짝 닦아서 아우라를 펼쳐내기도 하고.... 그냥 걍 읽는 사람 맘이다. 그리고 그것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 공간이다.

역사는 백명이 책을 읽을 때 백개의 역사가 머릿속에서 탄생하고, 한명이 글을 적을 때마다 한 개의 역사가 새롭게 탄생한다. 역사를, 역사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다양성이란 것을 인정하면 좋겠다는 뜻이다.

역사 연구가들보다 지식이 부족한 이들이 맘대로 역사를 적을 때, 누군가 뭐라 한다면 이렇게 당당헤게 외치면서 글을 적어야겠다.

너희들 중, 죄없는 자 돌을 던져라.... 가 아니라 <저기요.. 과거 사실을 다 아시는 분만, 다 안다고 생각하시는 분만 분필을 던져주세요...> 라구... 공손하게..... ㅋㅋ

3장. 사극이 뒤바꿔놓은 역사에 대한 관심

예전 사극을 보면, 교과서 한단원보다 더 깊은 공부를 하게 되어있다.

왕 : 아니... 사태가 이런데 경들은 진정 생각이 없는 것이요?

신하 1 : 폐하.... 그래도 아니될 일이옵니다. 한나라의... 어쩌구 저쩌구...

신하 2 : 신 영의정 따발총 아뢰옵니다. 이 사태의 핵심은 ...... 이고.... 이니.... 해서.....

신하 3 : 신 좌의정 반대파 아뢰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는 ..... 하니..... 하옵고.... 그게....

예전 사극의 제작비는 작가가 다 가져갔을 듯 싶다. 걍 왕이 한마디 지껄이면, 신하들이 돌림노래를 부르며 상황 설명을 다 해준다. 시대 배경부터, 사건의 핵심 개요와 대처 방법, 이후에 해야할 일을 대본 3천자로 요약해서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작가님들 파이팅~~~~

그런데 말이지.... 대장금 주몽이라는 사극이 나오면서 국민들은, 교과서처럼 요약해서 목소리 톤 높은 남자 성우가 나레이션으로 때우는 사극을 더 이상 보지 않는다. 성우.... 재까짓게 아무리 목소리 짱이라고 해도, 얼짱인 송일국이나, 여신 이영애를 어찌해보겠어?

국민들은 대사 길이가 3분 분량만 넘어가도 채널을 돌리는 시대가 왔다. 일단 칼부림 몇 번 해서 채널 안돌아가게 만든 뒤, 주인공이 직접 몸으로 다 때워서 작가의 대본량을 팍팍 줄여준다. 주인공은 레벨 1짜리 겁쟁이 주몽으로 출발해서 해모수의 기를 좀 받고, 모팔모에게 철제 아이템을 좀 받은 뒤, 소금산이나 주변국 등 스테이지 1,2,3를 모두 클리어 해야 한다. 고대 설화에서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성장하듯, 온라인 게임의 레벨업을 마친 주몽은 만랩 파이터 대소와 자웅을 겨룬다. 이것이 현대 역사물이다.

어느 날부터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밝히는 작업보다도,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비교하면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역사를 비판하는 작업을 더 즐거워한다. 자료가 없는 고대사는 누군가가 갑자기 <노사분규와 청년실업, 사교육조차 없는 고대 쁘레땅 뿌르국>이 진짜 있었다....라고 해도 쉽게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교과서에 없는 역사라던가.... 교과서보다 자 자세한 역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그 작업을 격식없고, 자연스럽게... 때로는 너무 거칠게도 표현해 낼 수 있으며, 인터넷에 올라온 주관적인 모든 글들을 비판하면서 댓글놀이를 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

지금부터 적는 글들은 때로는 너무나 유치해서, 때로는 너무나 황당해서, 때로는 너무나 전문적이여서 비판하기도 힘든 그런 내용들이 적힐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니라고 비판하고, 누군가는 너무 쉽다고 비판하고, 누군가는 이건 너무 어렵고 쓸모 없는 내용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관적인 글이기에 판단은 읽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몫이다.

내가 무슨 역사 전 영역을 통달한 전문가도 아니구... 그냥 있는 사실들을 주관적으로 풀어서 적을 뿐이다. 그럼 시작해볼까나....

http://histori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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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