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5)

왜, 교과서는 무적이 되야 하는 것일까?

1. 교과서의 절대성

오늘은 21세기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포스트모던으로 <교육>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많은 교사들이 포스트모던의 철학으로 <역사 교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한국 사회의 현실 때문이다. 입시를 위한 역사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하며, 입시에 강한 역사 교사가 우대받는 공교육에서 어떻게 <교과서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포스트모던의 역사 철학은 공교육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7차 한국사, 세계사 교과서의 첫 시작은 <역사란 무엇인가?>로 출발한다. 역사를 공부하면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을 쌓게 되며, 과거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다. 이 과거를 바라보는 눈을 흔히 <역사적 사고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한단원을 지난 후에는 교과서에서 <역사적 사고력>은 변질된다. 단순한 사료들을 나열해놓고, 그 사료들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지만, 해답은 교과서가 원하는 정해진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 틀 안에서 이루어진 정답이 곧 수능에서의 답이 된다.

교과서의 어투는 전혀 <사고력>를 키울 수 없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교과서는 <A는 B라는 계층이 주도해서 C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과거의 사건이다>는 식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미 정해진 문장에 답이 있는데, 더 이상 무슨 해답을 찾아내란 말인가?

한국의 공교육에서 교과서는 절대 불변의 진리이다. 그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결과물을 쉬운 표현으로 압축해서 적어놓은 것이며, 학생들은 그것을 비판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교사들은 교과서를 더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으며, 역사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제시하여 학생들을 <이해>시킨다.

결국, 학생들은 역사 수업을 통해 <역사란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교과서를 읽고 나면 이런 결론이 도출된다.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 중에서 역사가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간추려놓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진리>이다. 역사가들은 대중을 위해 헌신적으로 <역사적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교과서는 철저히 중립적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그 내용를 적은 이가 누구인지를 전혀 밝히지 않는다. 교과서는 가장 객관적인 말투로만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비판할 수도 없지만, 비판하고 싶어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알고, 과거의 중요한 사실들을 알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걸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부터 읽히는 공교육 제도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포스트모던으로 역사를 읽는 법이 필요한 것이다. 

2. 지식의 독점

교과서의 절대성에 대한 근거는 너무나 빈약하다. 역사를 기술하는 전문가 집단의 연구 성과를 검증한 것은 그들 스스로의 <학회>일 뿐이며, 그들의 주장 역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따름이다.

7차 국사 교과서를 보자. 신라의 중앙집권은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쓴 내물왕때 시작되어, 점차 왕권이 강화되어 간다고 말한다. 고구려의 중앙집권은 태조왕때 시작되었고, 백제는 근초고왕 때 중앙집권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의 어느 역사책에 그런 말이 나오는가? <중앙집권>이란 말 자체가 편의상 역사를 규정하는 <연구가>들의 분류일 뿐이다. 각국의 역사는 독특힌 발전과정을 겪었다. 신라의 통일 얼마전 까지도 가야가 존재했지만, 누구도 4국시대라는 말을 쓰지 않고 3국의 통일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이루었다고 기술하면서도, 삼국통일이 자주적인 것이었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모순을 남기기도 한다.

조선시대를 이끌어간 노론 지배층은 교과서에서 상당히 아름답게 기술되어 있다.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는 내용이 교과서에 강조되어 있지만, 왕조 실록이나 관찬 사서에 그런 기록은 없다. 송시열이 청나라 정벌을 위해 북벌을 주장했다고 하지만, 송시열은 실제로 내치주의(국내 안정)를 주장했다.

교과서는 실학의 주체로 <서울 근기에 사는 노론 자제>들이라고 서술한다. 그러나, 실학의 주요 인물이라고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들은, 서얼을 포함한 정조의 규장각 출신들, 강화학파의 인물들, 성호학파의 인물들이다.  집권 노론파 자제는 어디에 있는가?

조선말 노론의 지배층이었던 역사가들은 일제 시대를 거쳐 한국 사회의 명성있는 교수님들이 되신 분들도 많다. 그 분들이 주장하는 역사적 연구 성과를 우리가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스트모던 역사 교육은 <과거의 지식에 대한 독점>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식의 독점을 비판하는 학문을 지식사회학이라고 한다.

사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아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를 만들어 가는 자들이 누구인가?>이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고, 과거에 대한 진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많은 과거의 기록들을 확보한 뒤, 그 과거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합리적인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가 만들어놓은 하나의 사건과 현상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개개인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10개의 과거를 10명이 학습한다면, 100개의 과거가 창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를 독점한 자>들은 단 1개의 역사만을 진리인 양 포장한 뒤 나머지 과거들은 <근거없는 논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물이 교과서일 따름이다.

예를 들어보자.

모나리자의 그림이 있다. <다빈치>가 어떤 의도로 모나리자를 그린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모나리자의 미소를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한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미소의 각도와 색감, 원근법 등을 차례로 감상한다. 10명이 감상했다면, 그들은 각기 다른 감상평을 내 놓고, 그림을 평가할 것이다. 어떻게 모나리자에 단 하나의 감상평만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어떤 사건에 대한 다양한 사료들을 교과서에 던져 놓고서도, 그 사건에 대한 평가는 첫째, 둘째, 셋째로 규정되어 있다. 삼국통일의 의의는 공부한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인데도, 왜 3가지 납득할 수 없는 정의만이 <진리>로 규정되야 하는가?

   삼국통일은 당나라의 도움을 받은 후 당나라를 몰아내었기 때문에 <자주적>인 통일이다 라는 것만이 진리인 양 규정해 놓고, 발해의 건국으로 실제로는 남북국시대였다는 기술은 또 무엇인가?

포스트모던은 역사가의 <상상>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를 따지게 된다. 그 결과, 역사를 규정해 놓은 지배집단에 대한 비판이 <역사가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다.

3. 다양성에 대한 <교육>

포스트모던이 추구하는 역사는 <교실 구조>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교사가 교과서의 내용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교실은 교사의 귄위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교사는 아이들보다 높은 지적 귄위로 학생들을 압박한다.

역사가들은 스스로의 이론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수많은 학회 토론을 통해 <논리적인 헛점>을 최대한 줄인 내용들을 교과서에 적어 두었다. 그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언어들을 교사가 설명할 때, 아이들은 교사의 설명 내용이 좀 이상하긴 해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교사가 아이들의 사고력을 끌어낸다면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고 해도, 결국 교사가 원하는 것은 <교과서>와 입시에 합당한 정답을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고력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교사는 역사를 만든 지배집단의 충실한 대변인이 된다. 역사가들의 이론을 가장 쉽고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기능인이 역사 교사일 수 밖에 없다.

역사교사는 교과서의 역사 구조에 종속되어 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라고 규정한 서양의 시대 구분법이 아직도 교과서의 시대 구분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한국의 교사는 다른 대안으로 시대구분을 할 수가 없다. 그리스 신화는 청소년 필독도서이지만, 단군 신화를 다르게 해석한 책들은 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상호 토론이 가능한 웹 2.0 공간에서는 저마다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마음 껏 써내려가지만, 교실에 들어서기만 하면 입시에 필요한 역사적 지식만을 강제로 주입받는다. 웹 공간에서의 주장이 교실에서의 질문으로 전혀 이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사극을 보면서 수백개씩 글을 쓰고, 댓글을 달면서 토론하던 그 학생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렇게 경직된 교실에서 <포스트모던으로 교육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 교육의 목적 안에 <역사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인식시켜주면서 교사 자체가 권위를 버리고,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과거를 연구한 누군가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규정>해놓은 것이며, 새로운 발견이 있거나, 새롭게 사고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15세기 서유럽의 <대항해시대>를 몇몇 원인으로 규정한다.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의 고립감, 왕자들의 모험심, 향료 무역을 통한 차액 증가, 나침반의 유입 등등...

   그러나 우리 교과서와 달리 서양의 학자들은 이런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당시 흑사병 이후 유럽의 경제난이 심각했으며, 서양 사람들에게 꼭 필요했던 대구, 참치, 고래 등 먹거리를 찾아 좀더 먼 바다로 나가다 보니 항해술이 발달한 것 뿐이라고.... 물고기들의 대륙간 이동경로가 항해 경로와 일치한 것이라고...

우리는 나폴레옹이 키가 작았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나폴레옹의 주적이었던 영국의 길이 단위는 프랑스와 달랐고, 영국이 의도적으로 자국의 단위를 활용하여 나폴레옹을 키작은 못난이로 만든 거라고...

역사적 사건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 그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단순히 하나일 수 없다. 수많은 원인 중에 중요한 원인과 덜 중요한 원인이 있을 것이고, 그 중요도를 판단하는 것은 그 텍스트를 보게 된 개개인의 몫이다. 교과서가 하나의 원인으로 규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 방침은 자유교육을 실시하는 외국의 여러 학교들에서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공교육에서는 감히 이러한 교육을 실시할 엄두도 못내고 있는 현실이다.

4. 교과서를 전면 부정할 수 있는가?

포스트모던으로 역사 교육을 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교과서>를 부정한다고 했을 때, 어떤 역사적 사실을 가르칠 것인가이다. 사실 한국의 공교육에서는 <역사적 진리>를 부정한 채 교육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으로 역사교육을 한다고 해서 <교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에게 <진리란 상대적>인 것이며, 과거에 대한 <절대적 사실>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절대적 사실을 진리로 적어놓은 교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과서는 가장 좋은 <역사 교재>가 될 수 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역사에 있어 권력집단의 속성이나,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교과서>를 통해 이야기해 줄 수 있다.

<교과서>에는 이렇게 씌여있지만, 이것과 다른 견해와 해석이 있다는 점을 주지시켜준다면, 교과서의 내용으로 교육을 전개하면서도 <역사적 다양성>을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좌파라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만...)

입시교육에서 자유로운 대안적 교육을 추구하는 학교라면, 외국에서와 같은 포스트모던적 역사 교육이 가능할 수도 있다.

수업의 첫 단추는 <역사는 누구나 만들어 갈 수 있는 다양성을 내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고대사 부분에서 여러 사료 등을 통해 다양한 해석을 추구하면서 <역사를 사고>하는 교육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고대사에서 신화나 설화는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우리는 선덕여왕을 보면서 사극이 아니라 <판타지>라고 생각하면서 보게 된다. 극적 긴장감이나 탄탄한 스토리 전개를 위해 역사적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작가의 의도대로 줄거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의 관점이라면 실제 역사에서도 그런 것들이 가능하다. 고대사에 남겨진 단편적인 기록으로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전개하거나, 있을 법한 (개연성 있는) 재연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다른 역사적 사건을 바라볼 때, 비판적 읽기나 사료를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도 있다. (물론 선덕여왕의 미실궁주처럼 현대어를 쓰고, 21세기 인물의 성격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포스트모던적 교육이 기존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기록에 남겨진 역사적 사실들을 참고하여 그 시대상과 당시 인물들의 모습을 재창조하는 것이지, 모든 기록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단지, 포스트모던적으로 역사를 본다는 것은 그 과거 기록조차도 누군가의 의도 또는 목적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재해석해야할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특히, 일제시대 이래 현대사는 특정 역사관과 사관을 가진 이들이 사학계를 주름잡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과시하기 위해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는 <역사적 진리>을 만들어 왔고, 일제시대부터 특정 이념으로 살아온 이들은 그 이념에 맞게 <역사적 진리>을 구성해왔다.

현대사에서 포스트모던의 역사 교육은, 역사를 지배하고 기술한 이들의 목적과 방법, 내용까지를 비판하면서, 역사적 대상이 된 과거인의 입장과 역사를 서술하는 현대인의 입장을 고려해서 역사를 비판해야 한다.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공교육에서도 현대사 부분은 조심스럽게 간략히 원론적인 부분만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첨예하게 대립된 입장을 고려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으로 비판하는 역사 교육은 그런 부분들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교육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만약, 포스트모던적 역사 교육이 다른 외부적인 요인을 받지 않고 이루어진다면, 가장 좋은 교육 방안은 <교과서 창조>일 것이다.

먼저, 포스트모던적 이념을 가진 교사가 <진리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하나의 <교재>를 만들고, 다양한 역사적 내용들을 통해 학생들에게 비판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해준다.

학생들은 간단한 사료, 토론, 현장학습, 비디오 시청, 독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교재의 내용을 이해한 뒤 자신이 생각하는 역사를 직접 작성해고, 서로 토론한 뒤 그 내용으로 <교과서>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교과서>를 만들어보는 과정으로 역사적 지식의 생성과정을 알고, 스스로 역사적 지식과 흐름을 창조하는 것이다.

단, 이러한 포스트모던적 수업은 고대사부터 현대사를 일관적인 논리 구조로 풀어 설명하는 통사 수업에는 미흡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시대별, 주제별로 책정된 수업들을 전체적인 흐름으로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글은 가설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이 가능한 학교가 있다면 한번쯤 해보고 싶은 교육 방침이기도 하다. 물론 이론과 같지도 않을 것이도, 실패하고 고치고 할 부분도 많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시도해 볼 만한 일이 아닐까?

오늘 글은 포스트모던에 관련된 글들 중에서 가장 난잡한 글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문학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포스트모던의 역사 코드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4)

주몽도 리니지의 캐릭처럼 레벨업을 해야 살아남는다.

1. 사극의 천국을 찾아낸 작가들...

오늘 이야기할 포스트모던의 주제는 TV 사극이다. 자, 그럼 한 번 시작해볼까?

21세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던 카운트 다운이 있기 전까지 우리 나라의 정통 사극들은 신세대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옛날 사극들의 지루함을 한번 볼까?

국왕이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라고 묻는다. 그러자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신하들이 돌림 노래를 부른다. 영의정 아뢰오... 저는 이렇게 생각하오... 좌의정 아뢰오... 부당하신 말씀이요.... 이조 참판 아뢰오.. 전적으로 동감하오... (대사 무지 많다... 옛날 배우들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5분 동안 이어지는 신하들의 릴레이 토론으로 우리는 역사 교과서 10장 분량의 공부를 끝마친다. 신하들의 위치와 입은 옷의 색깔, 서 있고 앉아 있는 위치(당상관, 당하관인가) 등은 충실한 고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지금의 사극은 어떤가? 말로 때우는 순간, 채널 돌아간다. 1회부터 빵빵한 효과음과 함께 자객들의 피튀기는 혈전이 시작되고, 시작과 동시에 주인공(또는 윗세대 주인공)이 죽일 고비를 넘긴다. 극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이루어지고, 채널이 돌아갈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재미있고 극적이다.

그럼, 그 대표적인 사극인 주몽을 통해 지금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식 역사물>을 한번 다루어보자.

지난 세기의 역사물들이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에 바탕을 두었다면, 21세기 역사물들은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건들, 또는 자료가 부족하여 알기 힘든 역사적 사건들을 <포스트 모던>으로 다룬다. 그럼,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포스트모던 역사는 어느 분야일까? 당연 고대사이다.

고대사는 알려진 자료가 없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 또, 너도 나도 아는 바가 없으므로 <역사 왜곡>이니 뭐니 시비붙을 건수도 적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트집잡힐 이유도 없고, 작가 맘대로 극을 구성할 자유가 넓어지는 것이다. 고대사야말로 <포스트모던의 천국>이라고 할까?

2. 주몽 : 젊은 세대의 감각과 포스트모던의 만남

주몽은 사극이 <포스트모던>으로 구성되면 어떤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일단 볼까?

주몽이 사극의 주인공이라면 강인하고 멋진 영웅의 캐릭터를 연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등장한 주몽의 모습은? 어리버리한 마마보이었다.

사실, 고대 설화의 주인공들은 현대물에서 요구하는 극적 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다. 영웅은 알에서 태어나거나 하늘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비범한 인물이다. 혹은 하늘의 자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상에 태어난 영웅들의 어린 시절엔 혹독한 시련이 따르기 마련이다. 고대 설화의 일반적인 구조는 <영웅의 비범한 탄생 - 어린 시절의 시련 - 시련의 극복 - 진정한 영웅으로서의 국가 건국>으로 이어진다. 주몽뿐만 아니라, 유리, 온조, 김알지 등 모든 영웅들의 성장과정이 그렇다. 심지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마저도 비범한 모습을 갖고, 위기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면모를 갖춘 것이라며, 용비어천가에서 극찬하였다.

이렇게 위대한 태생이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고 영웅으로서 면모를 보이는 것은, 모든 문학 작품의 인물이 가진 기-승-전-결의 구조와 비슷하다. 그러나, 고대사의 인물을 인용하여 시련을 극복한 영웅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은 <현대적인 감각>이 뒷받침 되었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사실 사극 주몽의 인물 구성은 고대 설화의 구조에 <온라인 게임의 법칙>을 더한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층에게 가장 친숙하고, 설명하기 쉬운 구조는 <게임 구조>이다. 게임은 복잡한 이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시작할 때 레벨 1에서 시작하여, 시키는 것만 충실히 수행하면 레벨이 점점 올라간다. 레벨업은 시간의 문제이지, 아이큐의 문제는 아니다.

주몽 역시 이러한 구조에 충실하다. 역사물을 게임의 법칙에 적용하여 <포스트모던>으로 포장했던 것이다.

사조영웅전 등을 저술한 <김용>의 무협지가 그렇듯, 일단 주인공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아버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영웅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꿈을 접어야 했던 인물로 설정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뜻을 계승하여 게임이 설정한 세계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비리비리한 레벨 1의 주몽은, 대소에게 한방에 맞아 떨어지는 겁쟁이었다. 사극은, 주몽의 첫 전투에서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모두들 혀를 차고, 주인공에게서 어떤 가능성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주몽의 레벨이 올라갈 것이란 것을 미리 알고 있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주몽은 레벨 5짜리 스승에게 검술을 배운다. 조금 수준이 높아지자 염포 정도가 상대해준다. 아버지 해모수를 만난 주몽은 아버지에게 (무슨 장풍같은) 기를 주입받는다. (이 장면은 정말 주몽이 게임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명장면이다.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했겠지만...)

만랩 파이터 해모수의 기를 받고, 그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주몽은 레벨이 급상승한다. 해모수는 할 일을 끝냈기에 작가가 멋지게 죽여(?)준다. 이제 주몽의 라이벌은 레벨이 비슷한 대소왕자가 된다.

대소 왕자는 주몽을 괴롭히기 위해 여러 가지 미션을 준비한다. 활을 찾으라던가, 소금산을 찾으라던가 하는 게임 미션같은 거 말이다. 그리고 게임과 같은 스테이지가 매회 마련된다. 전통 사극에서 처럼 신하들의 돌림노래는 최대한 자제한다. 주인공은 매회 다른 스테이지를 돌며 미션을 완료하고, 점점 더 강한 경험을 쌓는다.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와 장비이다. 오이, 마리와 같은 인물은 역사 기록에 나오는 인물이지만, 작가에 의해 최대한 포스트모던하게 구성된다. 주몽의 미션 수행은 이들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또, 레벨업을 할수록 강력한 장비가 마련된다. 회가 지날수록 강력한 활이 준비되고, 각종 아이템들이 갖추어진다. 게임 내에 장비 상인이 있다면 주몽에는 모팔모가 있다. 주몽이 최고 레벨을 달성했을 때, 모팔모가 만랩 축하기념으로 하사한 것이 바로 <철갑옷과 철검>이었다.

더 이야기하면 길어지니, 주몽에서 보이는 게임의 법칙은 이 쯤에서 정리하자. 중요한 것은 고대 설화의 서사 구조를 <현대식>으로 해석하여 레벨업을 이룬 강력한 <주몽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역사와 문학, 게임이 접목된 주몽의 환타지 구조는 21세기 역사가 <포스트모던>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산, 태왕사신기와 바람의 나라, 바람의 화원으로 이어지는 사극의 새로운 틀은 <포스트모던 역사>을 넘어서서 <이유없는 포스트모던>으로 질주하기 시작한다.

3. 가장 포스트모던에 걸맞는 사극 <다모>

사실, 가장 포스트모던적인 작품은 <다모>이다. 포스트모던이 <과거인들의 일상 문화> 속으로 파고든다는 관점에서 볼 때, 조선시대 여성 형사라는 비주류의 소재는 안성맞춤이다.

여기서 <다모>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만을 지켜가며 전개된다. 조선시대에도 <여성 칼잡이가 존재했다>는 설정 하나 말이다. 그 외의 구조는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다. 산적 두목과 남매인 다모, 수사를 총괄하는 지휘자와 사랑에 빠진 다모, 임금 앞에서 칼질하는 일개 다모, 역모를 막아내는 다모... 이쯤 되면 다모 하나가 슈퍼맨이다. 이 드라마의 세상은 역사적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모>와 주변인들로 인해 멋대로 돌아간다.

당시 농민들의 삶이 빈곤했고, 역모가 있었고, 산적들이 날뛰고... 등등의 설정은 다모만을 위해 존재한다. 아예 그러한 설정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시대, 어느 왕때의 일인지조차 언급하기를 꺼린다. 그 이유는 사극의 존재 이유가 <역사적 교훈>을 주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의 한 시점을 선택한 것이지, <조선시대>라는 상황 자체를 크게 인식하지 않는다. 작가의 상상력을 더 발휘할 수 있다면, 더 옛 시대의 여성을 찾아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도 있는 것이다.

<대장금>이라는 사극을 한 번 보자. <장금이>가 실제 존재했을까? 장금이의 존재는 중종 실록에 한 줄 나온다. <장금이가 해준 음식이 먹고 싶구나.>라는 한 줄을 찾아낸 작가는 <장금이>를 만들어내어 50회 분량의 사극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조선 전기의 각종 음식들이 총동원되고, 당대 의학 기술이 전부 장금이의 손에서 재탄생된다.

중요한 점은, 장금이 역시 <문학의 서사 구조>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장금이의 부모 때의 시련 이야기부터 출발한다. 부모가 하지 못한 일을 장금이가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주몽과 같은 남자 영웅이 겪는 시련을 장금이도 겪는다. 라이벌 때문에 고생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여 궁궐에서 나가기도 한다. 장금이 뿐 아니라 당시 궁궐의 여성들이 모두 서로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유교 예법이 그들을 억압하였기 때문이다.

다모와 장금은 사극이라는 시대 상황을 이용하여 여성이라는 억압된 존재에 대해 극대화된 차별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련을 뛰어넘어 자신의 능력으로 결국 일어서게 된다. 실제 조선의 역사에서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가 추구한 것은 <과거를 통해 역사적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의 요구사항을 과거에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4. 태왕사신기와 바람의 화원 

지금도 수많은 역사물들이 TV를 통해 양산되고 있다. <포스트모던>이란 이름으로 과거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내뿜는 작품들은 <역사는 결코 알려진 지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에 대한 작품들의 인식은 <또 다른 포스트모던>에 의해 규제를 당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문제는 <태왕사신기>에서 발견된다. 일단, 태왕사신기라는 작품 자체는 훌륭하다. 사신도라는 소재에서 출발한 참신한 아이디어, 단군신화와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연결시킨 시도는 상상력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러나, 태왕사신기는 그 이면에 큰 결점이 있었다. 태왕사신기의 큰 <줄거리와 소재>는 모두 만화 <바람의 나라>에서 따온 것이다. 바람의 나라 원작자는 태왕사신기를 법적으로 고발했고, 이것은 재판으로 넘어갔다. 문제점은, 누가 이기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재판에 대한 <재판관>들의 역사 인식이였다.

재판은 태왕사신기 편을 들어주었는데, 그 이유가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신도>는 그림으로 남아있는 것이고, 누구나 사신도를 소재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수 있단다. 따라서 드라마가 만화 원작과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표절이 아니라 같은 <소재>을 뿐이라고 말이다.

생각해본다. <5.18>에 대한 영화는 많다. 누구나 <5.18>을 소재로 작품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설정과 줄거리 까지 같다면 그것은 문제이지 않을까? 태왕사신기가 <사신도>를 소재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신을 현무, 백호, 청룡, 주작 등 영물로 표현한 뒤 사신간의 관계를 통해 줄거리를 전개해나가는 것은 <작가의 지적 재산>으로 봐야 한다. <실미도>를 드라마로 만든다고, 영화 실미도의 등장 인물과 성격까지 똑같이 만든다면 독창적인 것일까, 표절일까?

포스트모던으로 역사를 표현하는 것은, 기존의 역사에서 찾지 못한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낸 것이다. 역사는 과거이고, 과거의 진리는 모두 똑같기 때문에 역사에 <표절>은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은 정당한 것일까?

반면, 바람의 화원은 색다른 논쟁 거리를 던져준다. 신윤복이 여자라는 설정과 더불어 그를 둘러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추리 형식으로 풀어간 원작이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기초적인 역사 상식조차도 파격적으로 무시해 버린다. 신윤복이 여자라는 설정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개 화공이 왕의 초상화를 그려놓고는 그것을 찢어 버린다. 능지처참감이지만, 작가가 아니라고 하니 그렇다고 치자. 화공신분인 김홍도가 왕 앞에 당당히 걸어가 위엄있게 따진다. 경찰신분인 다모의 하지원도 왕 앞에 예고없이 나서려다가 죽기 직전까지 칼부림 난 적이 있다. 근데, 화원 사극 속에 존재하는 근위병들은 임금이랑 안 친한 건지 그냥 두고 본다.

시청자들은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작가는 설정대로 밀어붙인다. <포스트모던>은 말하려는 역사적 상황을 현실감있게 구성해야 한다. 바람의 화원이 보여주려는 역사의 새로움은 <여장한 신윤복>의 일대기와 미스테리, 그리고 작품세계였을 것이다.

보여주려는 부분과 상관없는 모든 부분을 작가 마음대로 설정한다면, 어느 순간 사극은 산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던이 역사의 객관성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해도, 모든 과거 사실을 다 부정하라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의문시 되는 부분을 찾아내고, 그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모든 과거 자체를 버린다면 그것은 <허무주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보자. <이명박 대통령님, 미친소가 싫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미친소>가 수입되서는 안된다는 근거를 1가지 이상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반대되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가 연단에 서서 <미친소 죽어라~>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공감가는 행동일까? 난, 촛불시위에서 꼬마들이 연단에 서는 것만큼은 약간 의아해 했다.

마찬가지다. 포스트모던이라는 것도, 역사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어야 한다. 기초 지식이 없으면 뭐가 틀린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비판도 할 수 없다. 사극에서 <새롭고 신선한 관점>이 반가운 것은 기존의 이론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바람의 화원은 그런 부분들을 세세히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점은, 사극에 불필요한 러브 라인의 설정이다. 포스트 모던으로 표현하는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여주기 위한 많은 장치가 필요하다. 시청률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극을 표방한 역사물의 핵심 줄거리는 <러스스토리>는 아니다. 사랑은 극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장치을 뿐이다.

주몽에서의 소서노는 주몽의 성공과정과 부족연합정치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했다. 다모의 황보관은 다모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존재였다. 태왕사신기의 여인들도 (조금 과도하긴 했지만) 사신의 역할을 위해 필요한 캐릭터들이었다. 장금이를 도운 승지는 장금이를 부각시키는 역할 정도였고, 장금이는 국왕의 총애마저도 일정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바람의 화원은 러브 라인이 모든 줄거리를 감싸안은 느낌이다. 만약, 러브 스토리가 기획의도였다면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획의도가 남장 여자와 남자의 사랑은 아니지 않는가? 스토리의 정확한 느낌이 뭔지 애매하기 때문에 사랑이야기가 강조된다면 사극으로서는 실패한 것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들은 특이히다. 온에어는 방송국 사랑이야기, 호텔리어는 호텔에서 사랑이야기... 더구나 대부분의 드라마는 대놓고 사랑이야기가 큰 줄거리다. 사극마저 한복입고 하는 사랑이야기로 만들면 곤란하지 않을까? 사랑이야기는 충분히 많고 많다.

5. 포스트모던 사극의 한계 : 시청자층의 문제

포스트모던으로 써나가는 사극의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다.

단군신화와 고구려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주몽이나 태왕사신기를 보면서 사극의 줄거리와 자신이 알고 있는 줄거리를 잘 연결시켜 이해할 것이다. 실제 역사를 영상 매체로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에 감탄할 수도 있고, 흥미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나 일부 사람들은 포스트모던으로 보는 역사를 진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주몽을 레벨업을 통해 키우는 게임 캐릭터로 육성할 수는 없지 않는가?

또 하나, 문제가 될 수 있는 점은 현대사에 대한 포스트모던 사극 부분이다. 고대사는 자료가 부족하고, 상상력을 펼칠 공간이 넓어서 작가의 재량이 마음껏 발휘된다. 그러나, 현대극은 그렇지 못하다. 현대사는 가장 자료가 많으며, 관련 인물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는 역사이다.

만약, 제 5 공화국을 사극으로 만든다고 하자. 뉴라이트에서 이승만과 박정회를 찬양하고, 4.19는 데모라는 관점으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이것을 과연 포스트모던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현대사는 포스트모던으로 구성하기에 너무 큰 숙제들이 많다. 역사를 벗어난 정치적 의도와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문제점은, 제작자와 작가의 이해관계에 관련된 것들이다. 최근 드라마는 방송국이 방영하되, 외주 제작사에서 기획한다. 제작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지, 역사 연구를 하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최대한 재미를 추구하고, 시청률을 위해 역사적 사건들을 이용하게 된다. 즉, 사극이면서도 작품의 의도는 사극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왕과 나>였다. 조선시대 전무후무한 내시 김처선의 일대기를 다룬 신선한 작품임에도, 후반기의 <왕과 나>는 줄거리가 산으로 가 버렸다. 작가는 쪽대본을 날릴 정도로 정신없었고, 배우의 남편은 불만이 폭발해 스텝을 폭행할 정도였다. 작품의 흐름은 끊겼고, 시간에 맞춰 땜빵한 줄거리라는 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중간에 시청을 끊어 버릴 정도로, 너무나 아쉬운 작품이었다.

오늘은 사극을 소재로 해서 포스트모던 역사가 문화로 재탄생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보았다. 아쉬운 점은, 드라마 이야기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드라마가 지닌 포스트모던 역사의 장단점과 활용도를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3)

역사학과 사회학이 싸우던 낡은 시대를 뛰어넘어...

1. 18c :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마추어다.

익숙한 문화 코드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데, 계속 이론 이야기만 해서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화 이야기는 이 편만 끝나면 시작될 것이니, 좀 참고 견뎌보자. 자, 오늘은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과연 역사학에 가까운지, 사회학에 가까운지 간단히 짚어보자.

역사학과 사회학의 처절한 결투는 18세기 이래 계속되었다. 서양 연대기로 따지자면 프랑스 혁명 전후부터랄까?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는 수많은 학문이 분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사>와 <사회>라는 항목이었다.

혁명의 기록은 역사이나,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통계는 <사회학>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후 등장한 철학자들은 모두 역사학자같은 사회학자들 이였으니....

사실 서유럽에서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는 역사라는 독립된 학문이 존재한다는 것을 크게 인식하지 못한 듯 싶다. 고대라 불리던 사회에서는 과거와 관련된 모든 학문이 다 역사였고, 철학이었다. 중세에는 <신의 역사>가 곧 신학이으로서 역사와 동의어였다.

서구에서는 근대에 접어들면서 그나마 역사다운 역사물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서유럽의 <절대왕정>이 등장하면서 정치적인 사건들을 기록한 기록을 현재의 우리가 <역사>로 인식하는 것 뿐이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은 시민계급의 성장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말하고 있지만, 결국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학, 사회학>을 논의할 뿐이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로크의 시민정부론도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올바른 <정치체제>가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뿐이었다. 밀러의 <신분론>은 사회계급현상을,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은 경제체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역사를 인용할 뿐이었다.

아담스미스가 <중상주의 체제의 발전과정>을 이야기한다 해도, 그것은 중상주의보다 자율적 가격합의에 의한 시장경제질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 뿐이다.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원시사회부터 상업사회까지의 발전과정을 이야기한 것은 결국 <인구 증가와 자원의 한계>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역사학과 사회학을 구분하지 못한 혁명기 철학자들은 역사는 당연히 <사회>를 연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자체만을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이런 말이 어울렸을 것이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2. 19c : 랑케가 뜰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런 현실 속에서 <아마추어 같은 역사>를 독립적인 학문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랑케였다. 랑케는 1편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니, 그의 이론은 생략하고 이야기하자.

그럼 왜 뜬금없이 <역사 독립선언>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의 각국이 새로운 철학을 지지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기의 사회 철학은 <계몽 사상>이었다.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이 철학은 <민중이 혁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긍정하였다. 루소, 로크 등의 시민철학은 왕정을 박살내고 민중의 정부가 가능하다는 가능성까지 제시하였다.

이런 혁명의 시대를 겪은 유럽의 각국은 혁명이 끝나자 새로운 철학을 찾기 시작한다. 이젠 유럽의 각국 스스로가 <국민들에게 일체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등장한 철학이 바로 <낭만주의> 사상이었다.

낭만주의는 <합리적 이성>보다는 <민족적 자긍심, 끓어오르는 열정과 애국심, 폭발적인 사랑의 힘> 등 내면적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사상이었다. 국가는 애국심, 민족의 위대함, 공동체의 단합 같은 것을 강조해야만 수많은 유럽 국가들 안에서 독립국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와 독일 같이 분열된 국가에서는 특히 이 <낭만주의>가 유행하였다. 랑케와 달타이 등은 독일 역사가였고, 크로체는 이탈리아 역사가였다. 이들 분열된 국가에서 <역사학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상가들이 많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훗날 이 두 나라에서 낭만주의적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파시즘 사상이 유행했던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나폴레옹 이래 <국민 교육>과 <시민 교육>을 실시하였고, 역사는 민족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필수교과로 채택되었다. 랑케가 국가 공문서를 바탕으로 한 정치사 교육이 <본질적 역사>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받아들인 것 이다. 사실, 정부와 역사학자가 가장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상호협조했던 지역이 바로 랑케가 살았던 <분열된 독일>이었다.

이제 역사는 연대기를 보면서 과거의 일을 하나 하나 생각해보는 수준의 역사를 벗어나, 국가의 공문서를 바탕으로 기술되었다. <학교>라는 지식주입소는 새시대 인력들의 머릿속에 과거의 정치적 지식을 콸콸 쏟아부었다. 역사는 독립했지만, 그 지식의 선택권은 국가에게 있었다. 역사는 국가에 의해 재미있는 이야기로 재구성되었지만, 그것이 절대적 진리인지에 대한 판단은 학생들에게 없었다.

역사는 사회현상을 연구하기 위한 도구에서 벗어나 재미있는 이야기(내러티브)가 되었다. 랑케는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역사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랑케의 역사는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였다. 서민들의 이야기는 없었으며, 정작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는 이야기는 없었다.

3. 진화론을 믿었던 사회학자들의 역사 만들기...

19세기 랑케가 역사학의 독립을 부르짖을 때, 한편으로는 사회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콩트가 <사회현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연설하고 있었다.

콩트는 과거를 아주 간단히 정의하였다. 과거란 <종교의 시대, 형이상학의 시대, 과학의 시대>로 발전하였다고 말이다. 콩트 이래, 과거를 간단히 정의하는 사회학자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관이 뚜렷한 과학적 근거를 가진 <사관>이라고 생각한 듯 싶다.

이들 사회학자들의 사관은 <진화론>에 의거하고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말한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으며, 우성은 살아남고 열성을 도태되는 적자생존의 원칙이 자연에 적용된다>는 이론을 사회학과 역사학에 인용한 것이다.

진화론을 사회학에 인용한 대표적인 학자는 스펜서이다. 그는 <노동자는 열성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에 가난은 자신의 탓이다>라고 말하여 산업 사회의 약자가 무능하다는 것을 진화론으로 증명한다. 또, <강대국이 약소국을 점령한 것은 사자가 배고픔에 양을 잡아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법칙이다.>라고 말하여 제국주의를 옹호한다. 그는 제국시대를 살아간 자랑스런 영국인이었으니까... 그가 생각한 역사는 야만적 무력 사회에서 제국의 산업자본사회로 발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사관>을 가진 역사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런데 그 <사관>은 역사가 진화하고 발전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관이었다.

헨리 메인은 역사를 <노예사회에서 신분사회로, 신분사회에서 계약사회로> 이동한다고 말하였다. 새로운 사회로의 진화는 인류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던 힘이라고 본 것이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역사란 원시적 본능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본능을 누르고 문명사회로의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화는 원시적 유전자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명인들 역시 내면 속에는 <성적 본능과 원시적 욕망>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가장 역사적으로 유용한 <사관>을 뽑으라고 한다면 <마르크스 사관>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발전 과정을 <원시공동체 - 고대노예제 - 중세봉건제 - 근대산업자본주의 - 공산주의 사회>의 단계로 설정하고, 각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의 필연성을 증명하였다. 다음 단계가 전단계가 진화한 결정체라는 것이다.

여기에 딴지를 건 학자들도 있다. 튀니스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의 발전 단계는 퇴보할 수도 있다면서 공동체 사회보다 후진적인 <익명성을 가진 사회>를 말하기도 하였다. 

베버는 아예 죽은 마르크스를 평생 비판하면서 살아간다.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이란 단순한 대립구조에 불과할 뿐, 실제 사회 안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세분화 된 <계층>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저술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은 기독교 계층의 힘이 근대 사회를 이끌어간 동력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역사적 사관을 바탕으로 아예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체계를 수립한 사람도 있으니, 그가 바로 사회학의 아버지 <뒤르껨>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사회 발전 과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사회의 구성 요소를 <기능론> 입장에서 제시한다.

사회는 우리 몸과 같은 유기체이며, 몸의 각 기관은 맡겨진 기능을 담당한다. 머리, 가슴, 손, 발 등이 모여 하나의 몸을 구성하므로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된다. 단, 머리가 손, 발 보다 중요한 기능이므로 그 기관이 우대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머리에 해당하는 엘리트, 손과 발에 해당하는 노동자, 심장에 해당하는 정치인 등등....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다르므로 엘리트와 노동자의 급여가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사회는 그들이 전부 존재해야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역사도 이러한 역할 분담을 통해 과거의 질서를 유지한 것이다....

그의 이론은 훗날, 수많은 세부분야의 역사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편에서 이야기 했던 아날 사학의 아버지 <브로델>도 역사 자체를 심층적이고 점진적인 발전 속에 이루어지는 유기체적 결합으로 보았다. 역사란, 사회학에서 말하는 커다란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법칙과 같은 것이다.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사람들의 우연스러운 행동 역시 그 법칙에 제시한 과정 속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이 있고, 자신의 존재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 우리는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진화론을 믿었던 사회학자들의 생각은 다시 18세기로 돌아가게 된다.

역사 자체를 알아서 어디다 쓰려고?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본다. 역사가 마르크스나 브로델이 말한 것처럼 어떤 결말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역사는 어떤 법칙을 가지고 파악해야 하는 과학이 되는 것일까? 역사의 발전 과정 속에 모든 인간들의 삶을 집어넣어 버린다면 수없이 많은 <다양성>을 가진 인간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진화론은 <역사가 가진 위대한 힘>과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 보여주었고, 인간의 미래는 결국 가장 합리적인 결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러나,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주변 이야기가 되어 사라져갔다.

역사는 과거를 살았던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학문이다. 사람이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진화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4. 랑케를 넘어 역사를 <인문학>으로 만들어 버린 역사학자들...

진화론이니, 사회학이니 하는 일련의 사회학자들 때문에 <역사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역사가들은 아예 역사를 사회학과 분리시키려는 이론을 만들어 제시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칼을 뽑아든 사람은 <크로체>였다.

도대체 <발전 사관>이라는 것을 만들어 <역사의 동력이니, 역사의 목표니, 역사의 발전과정이니...> 하는 거대한 틀을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는 사회학자들의 역사관은 역사도, 과학도 아닌 어중간한 발전 법칙이라고 비난하였다. 사이비 역사를 넘어, 사이비 과학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역사학을 사회과학과 다른 <인문학>으로 정립시킨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딜타이>이다.

그는 사회학을 사이비로 몰아세우며 역사학과 분리시켰다. 사회과학은 사회가 발전하고 유지되는 과정을 법칙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자연과학과는 다른 사이비 과학이다. 과학은 외적인 법칙을 <설명>하는 것이지만, 역사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사회학과는 학문 체계가 다른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라 역사학을 <인문학> 관점에서 서술한 학자가 <콜링우드>였다. 그는 과거의 일들은 법칙이 아닌 <과거인의 사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저가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하며, 로마로 진군한 것은 법칙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사고방식에 따라 가장 합리적인 행동을 한 것 뿐이고, 그 결과는 그의 사상에 비추어 가장 있을 법한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과거에 살았던 시저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역사일 뿐, 그의 행동에서 법칙을 찾아내고 인간 행동 패턴의 일반화를 찾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콜링우드가 생각한 역사는 과거인의 <생각>을 과거의 상황에 비추어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거대한 법칙이나 틀을 찾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사회학에서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로서 역사학과 사회학을 구분할 수 있는 이론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사회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또 다시 역사학의 본질을 놓고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5. 20c : 랑케의 정치사를 깨고 다양성을 찾는 역사학자들...

20세기 사회학자들은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역사의 독립성에 대해 큰 의문을 품게 된다.

사회가 세분화 되면서 역사, 정치, 지리, 인류학, 민속학 등 많은 분야가 제각각 독립을 주장한다. 새롭게 등장한 수많은 학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독립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모든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들 학문들은 서로 인접할 수밖에 없다. 20세기 사회학과 역사학, 그리고 수많은 학문들은 서로 교류하면서도 독자성을 내세우는 모순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역사학은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맞게 새로운 철학으로 거듭나게 된다.

20세기 역사학의 특징은 랑케가 말한 <국민 공통의 정치사>를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역사는 과거를 다루는 학문인데, 왜 정치사만 다루어야 하는가? 왜 영웅의 일대기만 역사가 되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나라는 랑케의 고향 독일이었다. 세계 1,2차 대전을 패하고, 국가집단의 무서운 광기를 맛본 독일은 의도적으로 정치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왜 국가는 인간을 억압하는가, 왜 히틀러라는 지도자의 광기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는가 등의 근본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독일에서 역사는 랑케가 만든 역사의 독립성을 다시 벗어나기 시작한다. 사회 구조와 변화과정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사건이 발생한 인과관계를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 경향을 묶어 사회구조사 연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쟁은 어떤 원인으로 시작되며, 전쟁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유태인들의 이주와 독일에서의 정착생활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러한 원인을 먼 과거부터 추적하여 <탐문 수사>하듯이 파헤치는 것이다. 이 역사인식론은 랑케를 반발하는 과거 학자들로부터 이어져 세계 대전 이후 급속히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발맞추어 등장한 또 하나의 역사 철학은 프랑스의 <아날 사학>이었다. 1편에서 이야기 말했듯이 역사를 오랜시간 동안 서서히 변하는 <지중해>에서의 삶과 같이 표현하면서 일상적인 생활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도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학은 랑케 사학의 <정치사> 뿐 아니라 사회 구조와 <인간들의 아주 작은 이야기>들도 역사의 분야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는 랑케의 역사 보다 훨씬 재미도 없고, 쉽지도 않은 것이었다. 고대부터 이어진 전쟁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 지식을 넘어 군사학과 통계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손을 대야 하기 때문에 전문 역사가나 사회학자, 군사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역사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각종 사회학 이론과 통계학 등을 기초로 만들어낸 역사는, 일반인들이 비판하기 어려웠다. 또, 쉽게 쓴 동화책이나 영상물 등 이야기(내러티브)로 만들어 설명하지 않는 이상 이해조차 쉽지 않았다.

또, <인간들의 작은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미시사>를 쓴다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필연적인 선택을 법칙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불과했다.

<지중해>라는 표본지역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스스로 선택을 해서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오랜시간 살펴보면, 자신의 자연환경에 맞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른 인간들이 그곳에 살아간다고 해도 아마 비슷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 자체의 고유성을 바라보는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사회 구조>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20세기 서구유럽에서 보여준 새로운 역사적 흐름은 역사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인문학자>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사회과학의 법칙>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독자적으로 <인간 자체>를 연구해야 하는가?

6. 이들의 논쟁을 정리한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자과 사회학자들이 바라보는 역사에 대한 시각은 <구조냐, 인간이냐>의 차이에서 출발하였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 차이점을 모두 융합하면서 역사의 <세밀한 부분>을 강조하였다.

역사를 <진화론>으로 바라보는 거대한 법칙과 사관은 필요가 없다. 역사가 어떤 형식으로 발전한다고 믿는 것 자체가 누군가의 <주관성>이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건, 베버건, 뒤르껨이던 간에 그들은 역사와 사회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포스트모던>일 뿐이다.

랑케가 주장한 <정치사>도 허구이다. 영웅이란 것은, 국민교육을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낸 허상일 수도 있다. 더구나 영웅에 대한 과거의 자료들은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의 작품일 수도 있다.

포스트모던은 20세기 역사가들이 보여준 <아주 작은 인간들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갖는다. 왜냐면, 역사란 과거를 살아간 하나 하나 인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역사에서 보여준 인간에 대한 관심은 포스트모던과 달랐다.

20세기 역사가들은 인간들이 집단 구조 속에서 살면서 그 구조를 유지하는 <손과 발>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뒤르껨의 유기체론과 기능론에 입각해서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설정하고, 사회 속에서 의의를 갖는 인간을 연구했던 것이다.

포스트모던은 이것을 반박한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사회의 문화에 영향을 받지만, 일률적으로 똑같이 종속되지 않는다. 똑같은 노비가 존재하더라도 신분에 적응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 시대의 이념에 저항하고 새 시대를 지향하는 인물도 있는 것이다.

또, 사회 구조 속에서만 찾는 인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찾아야만 살아있는 역사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아날 사학>은 연역법과 같다. 미리 사회 구조의 특징을 정해놓고, 그 정해진 패턴에 따라 인간들의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 이런 사회였으니,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포스트모던>은 귀납법과 같다. 인간들이 그 사회와 문화의 틀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들을 하나 하나 상상력을 동원해 구성해 나간다. 이미 정해진 사회 구조는 누군가 만들어놓은 것 뿐이다. 내가 생각해보고, 내 관점에서 구축된 작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그 시대에는 이런 삶이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던 역사는 과거인들의 일상 생활에 자신을 집어넣어 보기도 한다. 내가 과거인이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를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단, 사회 구조 속에 가두어진 과거인이 아닌, 그 시대의 문화와 사상을 공유하는 깨어있는 과거인으로 말이다.

역사에 있어 법칙이란, 누군가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만들어 놓은 <가설>에 불과하다. 과거의 <자료>란 완전한 것도 아니고,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역사 토대로 삼는 일종의 <참고서적>일 뿐이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내 의지와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내가 정치사가 아닌 여성들의 이야기, 소수 인종들의 이야기, 이색적인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그 과거에 파고 들어 그들의 삶과 문화를 공유하면 그 뿐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가능한 포스트모던이 현실에서도 가능한 것일까? 지금부터 그 가능성을 한국 사회 각 분야의 문화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지겹도록 재미없는 이론이야기를 이쯤에서 끝내고 실제 <문화>를 가지고 포스트모던을 이야기해보자.

다음 이야기는 문학에서의 영웅 서사 구조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졌길래 <게임 바람의 나라>와 <드라마 주몽>이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포스트모던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새로운 역사와 문화 코드 (2)

만약에... 라는 단어 하나로 세계사를 바꿀 수 있는 포스트 모던 역사학

1. 기존의 <진리>는 모두 버려라~

자, 그럼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기본 입장을 정리해보자.

포스트 모더니즘의 <핵심>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일체의 <사실성>을 부정한다. 무슨 말이냐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누군가가 남긴 <기록>에 의존한다. 삼국시대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 김부식 등이 공동편찬한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믿을 수 있는가?

당대 김부식은 서경천도운동을 주도했던 묘청 등과 대립하였다. 묘청이 고구려 중심 사관이라면, 김부식은 신라중심 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신채호는 이것을 이유로, 묘청이 김부식에 패한 것이 <민족 1천년래 최고의 사건>이라고 한탄하였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편찬하면서 고조선이 신조선, 불조선, 말조선의 3조선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발해와 고려로 이어지는 민족적 정통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신채호가 살던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민족주의가 유독 강조되는 시기였다. 그럼 <조선상고사>는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 신채호의 감정이 들어가지 않았는가?

포스트모던 역사가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이런 <모순성>들이다. 어떤 역사속의 문서나 자료들도 <객관적> 일 수 없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조한 이유가 말 안듣는 신하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라면? 이순신이 임진왜란 전 여진족 토벌에서 무참히 패배한 것 등을 들어 이순신의 기용이 낙하산이라고 주장한다면?

<교과서에 없는 걸 말하지 말란 말야... 죽을래?> 라고 협박하고 끝낼 것인가?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자료는 누군가가 생각을 갖고 적어놓은 것이다.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주관적인 입장>에서 적었다는 뜻이다. 기록 자체에 의도성이 있는데, 무슨 객관성을 따진다는 것인가?

사실 우리가 <역사>라고 공부하는 것이 <과거>의 진실은 아니다. 전통적인 역사학에서는 <역사>란 실제 그 일이 있었다는 것을 가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은 그 일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자료는 <그렇다고 우기는 과거의 자료> 뿐이라고 말한다.

흑사병으로 서유럽 인구의 1/3이 죽었다고 한다. 그 정도면 서유럽 사회는 망가졌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역사 자료는 상식을 뛰어넘는다. 그 정도 인구가 죽었기 때문에 노동력 부족으로 농민들의 권위 신장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과연 그 정통적인 주장들로 흑사병을 정리하면 끝날까? 어떤 이들은 반대로 주장한다. 그 정도 죽었으니깐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수입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고.... 의혹은 더욱 증폭된다.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을 기록한 통계 자체가 흑사병의 가혹함을 알리기 위해 조작된 것은 아닐까?

이 쯤 되면 포스트모던 역사가들이 <탐정>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것이 정의인지를 놓고 끝없이 추격전을 벌이는 <홈즈와 뤼팡>의 견해차라고나 할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란 없다. 그 시대를 살아보았는가? 시대의 아픔을 눈으로 느껴보았는가?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사건>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역사가란, 역사를 보는 눈을 제공해주는 도우미에 불과하다. 100이 존재하면, 100가지 역사 이해가 존재한다.

누구나 그 시대를 상상할 수 있고, 누구나 그 시대를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역사적 사건의 <원인>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세종대왕이 왜 한글을 만들었을까?

훈민정음에 적어두길,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백성이 고생하기 때문에...> 라고 했다. 그건 당연히 적야야할 말을 적었을 뿐이다. MKMF에서 대상을 탄 동방신기도 <아버지, 어머니, 이수만 사장님 감사해요>라는 말은 먼저 달고, 그 다음에 할 말을 하지 않는가?

그 다음 말이 어떤 말일지는 100명이 있으면, 100명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상상을 해볼 것이다. 동방신기 스스로 뭐가 잘나서 상을 탔다고 생각할까? 춤을 잘춰서, 노래가 좋아서? 기획사 빽으로? 맴버 잘만나서?..... 그 원인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역사에서 원인은 하나일 수 없다. 한글을 만든 이유는 반드시 <어리석은 백성> 탓만은 아닐 것이다. 조선 건국후 독자적 기반을 닦기 위해서? 우연히 부려먹을 똑똑한 신하들이 많아서? 유교주의가 성숙해서? 어느 날 문득 한문 공부가 짜증나서?....

포스트 모던은 주장한다. 역사를 딱 하나의 원인과 결과로 설명하는 것은 그 외에 존재하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프랑스 혁명이 <국왕의 폭정으로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 발생했다>로 설명하면 끝나는가? 아니다. 수백년간 고통받았던 농민 하나하나가 가진 이유는 누가 설명해 줄 것인가?

그래서 포스트 모던은 주장한다. 역사에 진리는 없다. <교과서> 같은 책은 누군가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한 <자료집>일 뿐이다. 김구가 영웅인 교과서가 있을 수 있고, 이승만이 영웅인 교과서도 있을 수 있다. 요즘 뉴라이트가 이상한 짓을 하듯이 <지 꼴리는 대로 해석하면> 역사의 한 쪽 입장을 설명할 수 있다.

2. 모든 것은 역사가 될 수 있다.

포스트 모던 역사학(이하 포스트 역사학)의 핵심은 <탐정놀이>이다. 누군가의 역사적 발견을 끊임없이 추적해서 재비판하고, 또 다시 재비판받는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댓글놀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더욱 친근한 것인지도 모른다.)

포스트 역사학이 비판하는 것은, 거대한 주류 사회이다.

원래 포스트 모더니즘 이라는 철학 자체가 서구 사회의 거대한 주류 문명을 비판하면서 등장하였다. 왜 미국과 서유럽의 문학, 사회, 과학 등이 절대적 진리가 되었는가? 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한다는 인식이 당연시 되었는가? 과학의 발전이 왜 환경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는가? 백인은 왜 흑인보다 우월한가?

이 모든 것을 비판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주류보다 소외된 것들>에서 의미를 찾았다. 그것이 역사학에 반영된 것이다.

왜 역사를 큰 구조 속에서 바라봐야 하는가? 역사 속에는 왕조와 위인들만 존재하는가? 우리가 소외시킨 작은 진리들을 우리 스스로 생각할 수는 없는가?

그 결과 역사는 <일상사>가 되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친구 사귀기, 흑사병에 걸린 소녀의 마지막 하루, 내시 김처선의 유년 시절의 사랑이야기 등이 역사가 된 것이고, 그것을 우리 상상으로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재비판 받는다. 누군가가 주몽의 하루를 이야기하면, 또 누군가는 그것이 주관적이라고 비판하며 다른 이야기를 한다. 또 누군가는 비판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과도 유사하다. 사극을 한 편 보면, 수백개의 비판글과 옹호글이 올라온다. 역사 갤러리에 의견 하나가 올라오면 반박 의견으로 수십개의 댓글이 올라와 혈투를 벌인다.

그들이 벌이고 있는 싸움은, 거대한 정치담론이 아니다. 신윤복이 과연 여자인가, 남자인가와 같은 <인물>을 던져놓고 벌이는 <재미 문화>인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 역사학은 정통 역사연구법으로 환영받지 못한다. 너무나 허무하다는 편견 때문이다. 특히, 포스트 모던으로 접근했을 때 <역사적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이유로 포스트 역사학을 불매(?)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로, <독도와 만주가 우리땅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역사적 객관성이 무엇인가를 따지는 거대담론이 있다. 포스트 모던적으로 접근해서 <안용복이 진짜 일본에 갔어?>라는 의심으로 문제의 실마리를 잡기 시작하면, 일본과의 싸움에서 승산조차 없다.

<김구가 혹시 빨갱이 아닐까?>라는 가설을 놓고 역사를 접근했을 때,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우익 역사만들기 프로젝트>에 휩쓸려 버린다. 뉴라이트 교과서를 보라. 말같잖은 소리를 교과서에 떡~ 제시해 놓아도 <이런 관점도 있잖아~>라는 입장에서 비판하기 쉽지 않다.

그럼, 포스트 역사학은, 문학과 별반 차이없는 허무한 이론에 불과한 것일까? 상상력으로 구성된 창작물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포스트 모던이 시도하려는 <다양성>은 <독재적인 역사학>의 틀을 비판하고, 역사에는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역사 교과서는 다른 교과서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또 다른 일방적 관점>을 주입하려는 꼴통짓에 불과하다.

포스트 역사학은 문학이나 창작 소설이 아니라 지난 역사가 가진 <절대성>을 부정하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 철학은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눈>을 뜻한다.

그럼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장길산>이나 <태백산맥> 같은 역사 소설, <이방인> 같은 실존주의 소설도 역사적 배경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으니 <역사물>인가?

포스트 모던 역사에서는 과감히 말할 수 있다. 그 작품들은 역사적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 연구를 위한 소재는 아니다. 그러나, 보는 사람들이 그것을 역사물로 여긴다면 그것은 역사물이 될 수 있다.

포스트 모던의 주체는 필자가 아니라 <독자>이다. 쓰는 사람은 관점을 가지고 글을 쓰지만, 읽는 사람은 쓰는 사람의 관점과 상관없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원래 언어나 영상은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읽고, 보는 사람이 나름대로 해석할 때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역사가 될 수 있다. 사극도, 대하소설도, 심지어 연애편지도 역사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며 만든 사람의 작품만이 역사가 아니라, 보면서 역사적 느낌을 받은 사람의 모든 것들이 역사가 되는 것이다.

3. 역사학이 과거를 창조해도 되는 것일까?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인데, 책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이 책 제목 아시는 분은 댓글을 주시면 감사^^)

책 내용은 간단하다. <만약에> 흑사병으로 유럽인들이 모두 죽어 버렸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백인은 지구상에 없다. 당대 최강의 세력인 중국 명나라는 정화의 원정으로 유럽의 빈자리에 중국의 깃발을 박아둔다. 아메리카 식민지는 아시아인이 발견하였다. 인디언들은 황인종의 지배를 받는다. 동아시아에서는 산업혁명 비슷한 문화혁명이 일어닌다. 중국의 제국주의에 반발하여 아메리카 식민시의 황인종들은 독립선언을 한다. 중국의 중화주의는 전세계에 강력한 <패권주의>라는 인식을 심어놓는다. 이에 반발한 다른 국가들이 도전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만약에 라는 테마 하나로 역사는 이렇게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일어난 역사가 아니라 가상의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왜 일까?

가상의 현실을 통해 실제 현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제국주의 잔혹함을 중국 제국주의의 잔혹함으로 패러디했지만, 그것은 제국주의 국가였다면 가능했을 법한 일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았다면 유럽과는 상이한 과정을 밟았을 수도 있다. 누군가 다른 길을 가는 중국 이야기를 다시 그려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트 역사학이 남기려는 것은, 역사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다. 역사를 통해서 다양한 진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역사는 반드시 하나의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이 존재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역사>의 틀이 너무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왜 역사는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된 자료들만을 간추려 이야기되고, 그것이 진리로 인정해야 하는가?

조선시기 타짜나 바람둥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것일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사의 기준이 다르다면,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소재도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나의 해석이 곧 역사적 해석이 되는 것이다.

자, 지금까지 포스트 역사학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봤다. 여기서 한가지 오해할 부분을 짚고 넘어가겠다. 앞으로 쓸 이야기들이 포스트 역사학을 옹호하면서 전개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각종 매체나 문학 속에서의 역사를 바라보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이 도움이 될 수 있기에 그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포스트 역사학은 <딱딱한 자료실>을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반면, 모든 역사에 진리가 없다는 입장을 가짐으로서 <허무주의>를 초래할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

앞으로 전개할 이야기들에서 이 다양성과 허무주의는 상극을 이루며 이야기를 전개할 것이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포스트 역사학을 적극 활용할 것이며, 어떤 이야기에서는 허무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화적 코드이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역사물로 간주할 수 있다는 <포스트모던의 정신>이다. 그럼 시작해 볼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새시대 역사와 문화 코드 (1)

포스트 모던으로 역사를 쓰는 것이 바람직할까?

1. 역사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봐야 하는 것일까?

21세기는 알 수 없는 시대이다. 역사는 드라마로 재탄생되었고, 문학은 역사를 조롱하듯이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역사를 재구성한다. 사람들은 역사를 즐기면 되는 것이지, 딱딱하게 외울 거리는 못된다고 말한다. 어느 날, 리니지의 주인공처럼 레벌업을 하는 주몽이 등장하였다. 신윤복은 여자였단다. 뉴라이트 아저씨들이 날뛰면서 근현대사를 말같지 않은 상상력으로 다시 구성해 버린다.

역사는 어느 덧 시대의 큰 흐름인 <포스트모던>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역사를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최근엔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다루는 것은 과거를 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료만을 보면서 역사를 공부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스스로 생각하면서 역사를 재구성하고, 재구성된 역사는 수많은 문학이야기나 영상이야기로 우리에게 다시 다가온다. 흥미롭게 구성된 문학, 영화 등의 이야기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역사란 것이 딱딱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선에서 끝나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역사적 자료들을 활용하여 재구성된 역사도 진짜 역사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 논쟁은 문화 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한류 열풍이 몰아치는 <지금의 한국>에서 누구나 생각하면서도, 논의하기를 꺼리는 이중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을 <포스트모던>이란 관점에서 한번 접근해 보고자 한다. 영상매체에서, 역사소설에서, 만화와 게임에서 셀 수 없이 등장하는 문화 코드를 역사가 어떻게 따라잡아야 할까?

먼저, 이번 장에서는 포스트 모던이란 것이 무엇인지부터 다루고 본격적인 역사 표현 매체들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포스트 모던 역사학이 탄생하기 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본다.

2. 랑케 사학의 금기 : 너의 생각은 말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포스트모던(post-morden)은,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보조 장치로 등장한 사회 철학이다. 20세기, 선진국들은 현대화라는 큰 전환기를 맞이하여 엄청난 물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고, 인류의 발전은 무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사회 내부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급속한 발전은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소외된 계층과 인종이 있었고, 빈부격차와 성차별이 존재했다. 과학의 발전은 환경을 파괴하기도 했으며, 역사는 개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인류의 업적은 <교과서>로 편찬되어 모든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똑같은 지식을 주입받게 되었다. 교과서는 인류 발전의 <홍보물>이었다. 그러나 교과서에 씌여진 말들이 모두 진리인 것일까? 교과서를 비판하면 빨갱이가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점차 사회 주류 계층이 만들어놓은 엄청난 발전과 현대적 장치들이 만능이라는 인식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역사에서 포스트모던이 등장한 것도 포스트모던 철학이 등장한 것과 유사한 이유 때문이었다. 자, 그럼 포스트 모던 역사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역사학의 역사에서 간략히 짚어볼까?

서구에서 역사라는 말이 단독으로 쓰이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였다. 그 이전 시기, 역사란 철학의 일부였다. 역사는 문학과 철학, 신학 속에서 논의되었다. 서구 중세 사회에서는 교회의 말씀이 곧 역사로 편찬되었다. 프랑스 혁명을 겪는 오랜 시기 동안, 역사는 철학자들의 소재거리에 불과하였다.

역사라는 학문이 대중화 된 것은 19세기 <랑케> 학파가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랑케는 역사를 철학과 분리시키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공적 자료>를 이용해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만 역사로 규정하였다. 과거의 중요한 사실을 중요한 자료를 통해 분류한 뒤 사실 그 자체를 파악하는 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중요한 이야기를 <인과관계>를 적절히 활용해서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구성하면 역사가의 임무는 끝난다. 철학자들처럼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역사에서 금기시 되었다. 이것은 역사를 철학, 문학과 분리시키기 위한 노력이었고, 시대적 요청이었다.

그리하여 <역사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그대로 주입받아서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그것도 객관적인 자료를 활용하다보니, 국왕이나 지배층이 겪었던 자료들을 위주로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과거, 우리 교과서가 조상들의 이야기를 지배층 이야기와 동일하게 설정하여 쓰고 있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그나마 랑케 사학은 역사가 흥미롭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놓은 방책이 있었다. 역사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있는 사실 그대로를 연결하여 이야기로 꾸며진 역사는 과거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수많은 수람들의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초창기 역사학의 한계점은 명백하였다. 역사는 철학도 문학도 아니기 때문에 <너의 생각을 역사에 집어넣으면 안된다>는 금기가 있었다.

3. 20세기의 아날 사학 : 사회과학의 힘으로 역사를 증명한다!

20세기 역사학은 랑케사학의 금기를 깨어 버렸다. 역사학에 여러 다른 학문을 첨가시켜서 <이야기>로서의 역사를 깨 버린 것이다.

20세기 역사학의 큰 흐름은, <모더니즘>이었다. 현대화를 이룬 과학과 사회학의 힘으로 역사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역사는 어느 순간, 근대화를 이룬 근본 구조를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의 이야기>를 논의하는 것은 20세기의 시대적 요청과 거리가 멀었다. 이제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을 다룬 <사회 구조>가 역사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과학적 방법이 역사에 동원되었다.

고고학과 지질학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연결해주었다. 경제학은 경제사를 지원해주었고, 사회학은 인류발전의 보편적 특성과 사회 발전의 법칙을 제시해 주었다. 문화인류학은 정치사 뿐 아니라 문화사도 역사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모든 학문의 모든 자료가 역사학의 자료가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역사학은 <다른 학문의 과거사>와 자료를 공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발생하였다. 전체적인 인류 발전 자체를 역사로 생각하다보니, 정착 역사를 살아가는 <인간 하나 하나>의 이야기를 잃어 버렸다. 시대구분이니, 과학적 접근방법이니 하는 방법론들은 역사가 정말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학의 정체성이 뭐냐>라는 의문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역사학의 경계인가? 정치보다 사회를, 개인보다는 집단을, 이야기보다는 구조를 중요시하는 역사학이라면 차라리 사회과학이 아닌가?

20세기 역사학을 대표하는 아날 학파를 한번 보자. F.브로델의 <지중해>는 1950년대를 대표하는 역사학의 저서이다.

지중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속에서 혼자 살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집단 속에서 살아야 하며, 당대의 유산이 후대에 계승 되어야 인류 발전이 지속된다. 그 속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간들은 전체적인 사회 구조 속에 소속되어 맞춤형으로 살아가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하면, 그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조금씩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조그만 발견으로 생활의 어떤 부분이 바뀌게 된다. 집단에 속한 누군가의 특이한 행동으로 또 조그만 변화가 일어난다. 그 변화들이 긴 시간 반복되면 사회 구조는 알게 모르게 변해 버린다.

즉,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일상적인 변화가 전체를 바꾸고, 집단을 바꾸는 것이다. 20세기의 <물질문명>은 <지중해의 삶>과 같다. 그 변화를 알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연구 성과를 축적해야 하는 과학적 방법이 필요하다.

결국 아날 학파가 생각한 역사란 무엇일까?

역사란 사회 변화의 원동력을 찾고, 사회구성원간의 관계를 집단 속에서 찾는 것이다. 사회 구조 속에는 변화의 맥락과 법칙이 숨어있기 때문에, 역사가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것을 찾아내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가 얼마나 재미없는 것일지 상상해보라. 이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론이지, 대중들이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론은 아닌 것이다. 대중들이 역사적 사건 하나를 파악하기 위해서 모든 사회과학적 이론들에 접근해야 하는가?

물론, 역사가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대중에게 전달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역사적 연구성과를 직접 비판할 수가 없다. 너무 권위있어 보이기 때문에, <와~ 이런 숨은 이야기가 있었구나~>라고 감탄하고 끝내야 한다. 역사학자들이 거짓말을 한다 해도 우리가 어찌할 방법이 없다. 역사학자들은 과거에 대해서 만큼은 하나님이요, 교주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눈높이가 있는 대중들은 누군가가 써 놓은 역사 법칙들을 보면서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왜 그 역사가 그 법칙으로 설명되는데?

역사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대학교에서도 역사학은 <인문학>으로 분류된다. 과연 역사가 하나의 <법칙>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회과학>인 것일까?

역사를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근대화 과정에서의 믿음, 그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면서 등장한 것이 <포스트모던>인 것이다.

포스트모던은 말한다.

무엇을 근거로 법칙을 말하는가? 무엇을 근거로 그 과거가 진리라고 말하는가? 당신이 살아본 과거도 아닌데, 그 과거의 어떤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 누가 아는가? <교과서>와 같은 지침서도 과거를 살아본 적이 없는 누군가가 자신의 견해로서 써 놓은 것이 아닌가?

그 결과 모든 역사적 사실은 부정된다. 과거는 과거일 뿐, 진실일 수 없다. 누구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이 아닌 과거를 진실인 양 써놓은 모든 <교재>들은 비판의 대상일 뿐, 진리의 대상일 순 없다.

자, 그럼 한번 시작해보자. 포스트모던은 왜 이런 주장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 문화산업은 왜 포스트모던이 제시한 <역사의 허무주의>를 옹호하는 것일까?

다음 장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속의 사회진화론 2장> 노동자는 진화가 덜되었기 때문에 가난하다.

1. 강한 나라는 강하기 때문에 정당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회진화론에 대한 2번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장에서는 <사회진화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했었습니다. 사회진화론은 <다원의 생물학적인 진화론>에서 강조된 개념 중의 하나인 <적자생존의 법칙>을 사회현상에 도입한 것이었죠.

자, 그럼 어떻게 <진화론>의 개념을 <사회적으로 도입>할 수 있을까요?

생물학적인 진화론의 개념을 사회적인 현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 대표적인 학자는 영국의 사회경제학자인 <스펜서>였습니다. 그리고 스펜서가 <진화론>을 사회현상으로 도입하려고 한 이유는 19세기 유럽의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스펜서가 영국 학자라는 점은 사회진화론을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도 있겠네요.

19세기 유럽의 정치, 경제적 사상은 큰 2가지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식민지를 늘리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제국주의> 사상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있었죠.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의 결과 개인의 재산소유와 사회경제의 발전을 <고전 경제학>으로 정리해가는 시기였습니다.

특히 영국은 가장 식민지가 많았던 국가 중 하나였고, 산업혁명이 시작된 국가였습니다. 이 두 가지 사상에 가장 관심이 많은 국가였죠. 그럼, 어떻게 영국의 제국주의 사상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신질서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그것을 스펜서는 <진화론>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진화론을 제시한 다윈의 <종의 기원>이라는 책은 <인류의 진화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책입니다. 생물은 각 세포와 기관으로 이루어진 <유기체>로서 유기체가 살아가기에 가장 적합한 구조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갑니다. 그 발전을 효과적으로 이룬 유기체는 <우성>이 되어 진화하지만, 그렇제 못한 유기체는 퇴보하게 됩니다. 이것을 다윈은 <자연의 선택> 또는 <개체의 변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스펜서는 이 진화론의 개념에서 <적자생존>이라는 부분만을 크게 강조하였습니다. 자연 속의 생물들이 살아가고, 진화하고, 변이하는 모든 과정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적자생존>이라는 부분만을 강조한 것이죠. 즉, <잘난 개체는 살아남는다>는 부분을 강조함으로서, 영국과 같은 강한 나라가 약소국가에게 행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정당한 행위로서 강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보다는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이론을 제시한 것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다윈>의 이론이 <애덤스미스>의 이론으로 전환되다.

스펜서의 이론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키워도는 사회진화론이 <자유방임주의>를지지하는 핵심 사상이었다는 점입니다.

18세기 애덤스미스가 국가 경제현상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이것을 <고전 경제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이란? <가격>을 말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떤 물건의 가격이 비싸면?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 않죠. 어떤 물건의 가격이 너무 싸면? 돈을 벌 수 없으니, 물건을 만들지 않죠. 즉, 가격이 비싸면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 않기 때문에 가격은 자동으로 내려갑니다. 물건값이 너무 싸면 사는 사람만 많고 만드는 사람이 부족하여 물건이 부족해지므로 물건 값은 올라갑니다. 이렇게 <가격>은 가만 내 버려 둬도, 너무 싸지도 비싸지도 않게 책정됩니다. 따라서 <가격>은 자동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부른다는 개념입니다.

또, 가격이 알아서 결정되는 만큼 국가는 시장가격에 개입해서는 안됩니다. 국가는 최소한의 <작은 정부>여야 하고, 모든 경제 현상은 <개인들이 알아서>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고전 경제학>이죠. 고전 경제학은 세계경제공황기에 캐인즈의 <수정자본주의>가 등장하여 국가가 경제활동에 일부 관여할 때까지 제국주의 전 시대를 통털어 경제학의 <성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전 경제학의 핵심은 국가의 간섭없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자유방임주의였죠.

스펜서는 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식민지를 확보하는 <제국주의>이론에도 알맞은 사상을 <진화론>에서 찾은 것입니다.

자연상태의 생명체는 스스로 진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자는 강하고, 사슴은 빠르며, 도마뱀은 꼬리를 자를 수 있고, 고슴도치도 자신만의 무기가 있죠. 각 개체는 가장 알맞은 생존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이러한 생명체들이 <먹이사슬>로 연결되면서 자연이 유지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가 이 적합한 자연상태를 인위적으로 흔들어 버린다면? 만약, 사납다고 해서 모든 사자를 죽인다면? 자연의 균형이 유지될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속의 모든 개체들은 자신들만의 생존방식과 사회적 성장 욕구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있고, 소방관이 있고, 경찰이 있으며, 선생님도 있습니다. 하나 하나의 개체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적으로 상태로 구성되어 있죠. 상인은 적절한 가격에 물건을 팔아야 인정받고, 소비자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물건을 구입합니다. 즉, 자연상태와 마친가지로 사회 속에서 모든 개인들도 <자유>를 인정받아야 하며, 어느 누가 이 질서를 인위적으로 건드려서는 안됩니다.

스펜서가 생각한 사회진화론의 핵심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진화상태도 <자유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애덤스미스의 <고전 경제학>을 지지하는 이론으로 작용합니다.

단, 스펜서의 이러한 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스펜서가 살았던 시공과 다를수록 변질되어 간다는 점은 유의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모든 개체를 <자유>롭게 내 버려 둔다는 것은, 모든 개체의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서 <방임>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사회진화론을 개인이 아닌 <민족>으로 이해한다면, 어떤 민족은 좀더 진화한 민족, 우월한 민족이라는 민족 우월주의로 가게 됩니다. 만약 사회진화론을 개인이 아닌 <국가>에 적용한다면, 우월한 국가와 진화가 완벽한 국가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약소국을 침탈할 수도 있겠네요.

결국, 다윈이 주장한 <생물학적 진화론>이 스펜서의 <사회적학 진화론>으로 변하면서, 제국주의와 애덤스미스 사상을 지원사격하는 사상으로 변한 것입니다.

3. 약자에 대한 배려는 <진화 법칙>에 어긋난다. 약자는 죽어도 좋다.

1장에서 우리는 멜서스 이야기를 잠깐 했었습니다. <인구론>을 쓴 멜서스는 지구 인구가 늘어난다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못난 민족, 가난한 자들은 국가에서 아무런 혜택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난한 빈민촌에 약을 주는 것은 인류 멸망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멜서스죠.

멜서스의 이론은 스펜서의 이론으로 그대로 적용됩니다. 스펜서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개인들이 진화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경찰, 군대의 유지 및 사유재산 보호>에서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생각한 자유는 <인권, 기본권>같은 것과는 상관없는 <국가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자유>였죠.

오히려, 스펜서는 노동자에게 투표권을 주지 말자고 주장했습니다. 왜? 왜? 왜?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동자들이 가난한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고전경제학을 지지하는 멜서스, 스펜서, 섬너 등의 학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노동자가 노동자인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에 진화가 되지 못한 것 때문입니다. 노동자이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함과 나태한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에 노동자라는 것이죠.

사회는 진화하고, 강한 자는 성공하며, 게으른 자는 도태합니다. 노동자들은 게으르고, 열성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좋고, 삶에 의욕이 있는 걸출한 유전자라면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자본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게 사회진화론의 입장이니까요.

스펜서는 아예, 진화의 기준을 넘어 <선과 악>의 기준마저 진화의 법칙으로 설명합니다. 사회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적응한 자들, 발전한 자들이기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하층 계급일수록 <악한 존재>가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러한 선과 악의 구분은 18세기 <계몽사상>의 이념을 끌어다가 정당화시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18세기 로크, 루소, 몽테스키외와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은 무한히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주의 법칙도, 자연의 법칙도 알 수 있고, 신의 존재가 무엇인지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신념으로 여긴 것이지요. 이들은 신의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주의 법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주가 구성되어 운영되는 법칙이 곧 <신의 존재>이므로 신, 즉 우주의 법칙을 알면 인간이 무한히 진보하여 우주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지요.

그런데 스펜서는? 계몽사상과들처럼 인간은 무한히 진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그 낙관적이고 이상적인 인류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유능한 인간들은 <우성, 적자, 가진 자, 강한 국가>이기 때문에 <열성, 도태자, 노동자, 약한 국가>는 <쓰레기>일 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단적인 예를 볼까요? 스펜서는 영국 사회가 식민지도 많으며, 앞으로는 세계를 이끌어갈 지도 국가가 될 것이라 예언합니다. 그 증거는? 유전학적으로 영국인들의 머리가 <우수하다>는 멘델의 법칙을 인용한 것이지요. 영국인이 우성 유전자를 가졌으니 인류의 발전은 영국에 달린 것이죠. ㅎ

스펜서와 계몽사상가들이 다른 점은, 계몽사상의 신은 <우주의 운영 법칙>이었지만, 스펜서의 신은 <진화의 법칙>이라는 점이겠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가진 국가, 가진 계급을 위한 이론이 됩니다. 그리고, 자유방임주의 이론을지지함으로서 가진 국가, 가진 계급의 권리를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또, 기존의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자들은 노력하지 않고, 사회의 기득권을 노리는 <열등한 유전자의 반항>으로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만능이며, 자본주의 사회 안의 모든 개인 행위는 자연상태의 <적자생존>으로 인식합니다.

지금 이 이론을 접하게 되면 이 이론의 목적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이론은 결국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괴롭히는 이론적 근거로 활용됨과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층민들이 기득권 세력에 반항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이론이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그리고 20세기에는 이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인 국가와 나라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 이론은 독일과 일본에서의 국가주의 이론으로, 제국주의 국가들의 사회유기체 이론으로,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 국가들과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제국주의에 반항할 수 없는 이론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사회진화론을 사회학이 아닌 역사학의 개념으로 다뤄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 이제 사회진화론이 세계 각국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봐야겠죠? 1,2차 대전의 독일,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과 미국,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개항한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 국가들.... 다음 장부터 나라별로 간략 간략하게 다루고, 우리 근현대사 속의 사회진화론을 자제히 다뤄보죠.

다음 장으로 고고씽~~~~


관련글 모음 :
2007/10/28 - [서적색인/역사철학론] - <역사 속의 사회진화론. 1장> 다윈, 멜서스의 이론에서 사회진화론으로...
2007/09/07 - [한국사정리/한국 근현대사 이야기] - (근현대사 20) 독립협회 이야기 - 본문(카툰수정)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콜링우드의 <사상과 역사>를 읽고...


1. 역사란 무엇인가?

콜링우드의 사상과 역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너무 유명한 역사철학자의 책이라 한번 손을 대보긴 했는데 어렵네요.

관념론의 정점에 서 있는 역사철학자가 바라보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려고 읽었는데, 읽고 나니 머리가 텅 비어버립니다. 도대체 무슨 글을 어떻게 읽은 것인지....

콜링우드가 생각한 역사는 역사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가가 생각하는 역사>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콜링우드는 일단, 모든 과거가 역사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모든 과거를 역사로 삼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역사란 인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단편적인 지식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배우지 않았고, 기억하지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역사란, 내 머릿 속에 남아있는 인상깊은 과거에 대한 풍경이나, 내가 관심을 가진 과거인에 대한 사고방식일 뿐이라는 것이죠.

여기서 콜링우드가 생각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작성됩니다. 모든 과거가 역사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과거>가 역사라는 것이지요. 역사는 모든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생각하는 과거인 것입니다.

2. 현재가 과거를 재단할 수 없다.

콜링우드는 현재의 내가 바라보는 과거 속에서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예로, 내가 시저(카이사르)에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역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럼, 나는 시이저라는 인물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답은 <감정이입>이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 시이저는 내가 미리 재단한 시저가 될 수 없습니다. 역사 속의 상황과 그 인물의 행동 동기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현대인의 사고 방식으로 시저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내가 시저를 알고 싶다면 나는 철저히 시저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시저라면... 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시저의 입장에서 행동하는 것이지요. 시저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는 그의 입장에서 판단한 이후의 일입니다.

따라서 역사가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판단하는 것은 어떤 법칙적이거나 논리적인 인과관계의 귀결이 아니라 그 인물이 되어 그 인물의 <행동과 상황>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콜링우드의 표현으로 말하자만 역사를 파악하는 핵심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그의 <사상>을 파악하는 것이지요.

3. 어떻게 알고싶은 역사를 다 알수 있는가?

그런데, 콜링우드 식으로 역사를 파악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어떤 인물의 사상이나 행위를 알기 위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콜링우드는 이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추론의 방식>을 제시합니다. 추론의 방식이란, 알 수 없는 과거의 어떤 행위와 상황에 대해 풀어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예로, 어떤 자료가 부족하여 시저의 행위를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1번째 날은 갈리아에 있던 시저가 한달 뒤 로마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중간에 빠진 자료는? 답은, 갈리아에서 로마로 진격하고 있었다가 답이겠죠. 이렇게 자료에는 없지만 역사가가 그 공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콜링우드는 주장합니다.

만약 어떤 인물의 행위를 알 수가 없다면? 부르투스가 아버지인 시저를 죽인 이유를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역사가는 그것을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부르투스는 공화주의자였고, 그의 사상은 시저의 사상과 달랐으며 시저에게는 정적이 많았습니다. 역사가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과거가 제시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미 과거에 그 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과거를 안다는 것이 어떤 용도가 있는가?

콜링우드는 인간의 사상을 앎으로서 과거에 대해 안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결론으로서 설명합니다. 과거 인간의 사상을 안다는 것은, 과거인 역시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생각이 있고 판단에 의해 움직이는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과거인들의 생각과 지혜, 그리고 그들의 판단과 실수를 안다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과거에서 지혜를 빌릴 수 있는 결정적 잣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에서 배워야 할 핵심은 <사상>이며, 사상이 곧 역사를 이끌어 간 힘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콜링우드는 대표적인 관념론자로서 역사를 이끌어간 힘이나 원동력, 법칙을 연구하기 보다는 과거에 살아 숨시는 인간 자체에 대한 감정이입, 합리적 판단 등을 중요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역사를 이끌어간 사람들의 사상을 판단하는 근거는 역사 속의 자료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였고, 그 자료가 부족할 경우에도 <과거인의 상황>에 의한 판단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콜링우드가 생각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것은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나게 하더군요. 콜링우드는 과거 인간의 사상과 상황을 직접 머릿 속에 집어 넣고, 이 것을 현재와 연결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카의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코드 역시 근본적인 역사 접근 방식에서는 콜링우드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단, 콜링우드는 철저하게 과거 속의 상황에 접근하여 과거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해석을 강조했다면, 카는 한단계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 둘 모두를 강조하였다는 차이가 있는 듯 하네요.

그냥 책을 읽은 겸... 생각나는 몇가지를 끄적끄적 해보았습니다.


관련글 모음 :
2007/01/13 - [한국사정리/한국사일반론] - 실증론적 역사해석과 역사철학적 역사해석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 속의 사회진화론. 1장> 다윈, 멜서스의 이론에서 사회진화론으로...

1. 사회 진화론이란?

오늘은 한국 근현대사를 다룰 때 중요한 사상으로 종종 이야기했던 <사회진화론>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글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사회진화론에 대해서 자세히 적을 수 있는 수준도 못되고... 그냥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공부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적어볼께요.

사회진화론이란,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나온 <진화론>을 기반으로 합니다.

진화론 아시죠?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19세기 최대의 이슈작이죠.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생물학, 고고학, 역사학, 종교학 등등.... 사회가 발칵 뒤집혔죠. 특히 크리스트교의 <창조론>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서구사회에 이 진화론은 정말 큰 파장이었습니다.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하느냐는 논의부터, 종의 기원을 악마의 저서라고 매도하는 입장까지...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고고학적 연구와 생물학적 연구가 계속 진행되면서 <진화론>은 점점 사람들의 머릿속에 현실가능한 이야기로 수용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진화론이 인정받으면서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의 진화과정을 밝히는 진화론을 인간 사회 속에서 분석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죠.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등에서도 진화론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진화론이 인간의 역사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라는 시도였죠.

당시 19세기 서구인들은 서구의 역사를 세계의 역사로 인식하였고, 서구인들이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 대륙에 광대한 식민지를 만들어가던 제국주의의 시대였습니다. 이 19세기의 서구인들은 생물학적 진화론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습니다. 그것은, 생물학에서도 사자와 같이 강한 자가 살아남아 초원을 지배하듯이, 인간사회에서도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를 지배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죠. <강한 자를 자연이 선택한다>는 점과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논리.... 즉 우성의 법칙과 적자생존을 사회 현상에 도입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사회진화론>이라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강한 자가 살아남고, 살아남은 자는 정당하다.

서구식 사회진화론은 첫 번째 법칙은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입니다. 만약 어떤 국가가 식민지가 되었다면, 그것은 그 국가가 약한 사슴이기 때문에 사자에게 잡혀먹은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따라서 식민지가 된 국가는 강한 나라를 욕할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강한 나라의 기술과 선진적 제도를 받아들여서 스스로 강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회진화론에서는 <식민지>에게 독립운동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강해져서 할 말을 해라. 약자는 할말이 없다>는 것을 강요합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주장한 민족자결주의 아시나요? 일본에게 지배당한 우리 나라가 독립을 주장할 때, 자신의 민족일은 자신이 해결하라... 는 파리강화회의 14개 조항이었죠. 1차 대전 후 미국대통령 윌슨이 주장한 내용도 결국은 <사회진화론>의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당시 독립한 나라는 우리 나라가 아니라 패전국 독일의 식민지였습니다. 이빨빠진 호랑이의 식민지는 독립할 수 있어도 1차 대전의 승전국으로 당당한 사자가 된 일본의 식민지는 독립할 수 없었죠.

그럼 종의 기원을 쓴 다윈도 실제 그런 주장을 했을까요?

다윈은, 생물학자였을 뿐입니다. 사회진화론과는 관계가 없죠. 그는 자연에서의 적자생존을 이야기했습니다. 한번 간단히 볼까요?

다윈에 의하면, 이 세상은 한정된 자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원이 한정되었다는 것을 경제학 용어로 <자원의 희소성>이라고 합니다. 자연 속의 생물들이 원하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물들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을 합니다.

여기에서 투쟁에 성공하여 자원을 확보한 생물은 <우성>이 되고, 자원을 잃은 생물은 <열성>이 되거나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중요한 점은 자신들이 투쟁했던 경험이 후대에 유산으로 계승된다는 점입니다. 이 유산을 <유전자>라고 보면 됩니다. 어떤 생물이든 더 발전하기 위해 최상의 상태로 자신의 몸을 바꿔가는데, 이것을 <변이>라고 합니다. 변이를 이뤄 발전한 생물은 자연이 선택한 자, 즉 <적자>가 되어 <생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생물은 <도태>하게 됩니다.

이 다원의 이론은 사회학적으로 보면 간단합니다. 잘난 놈과 잘난 국가는 그만큼 노력해서 잘나게 되었다는 것, 못난 넘은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원래 불필요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못난 넘이나 식민지는 자신의 입장을 둘 중 하나로 해야 합니다.

1. 우리는 애초에 쓰레기였다, 가망성 없는 국가다.

2.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정세를 몰랐다. 노력을 못했다. 하면 우리도 잘난 놈이 된다.

식민지들은 어느 쪽을 선택할 까요? 물론 1번을 선택하는 식민지는 없습니다. 모두 2번을 선택하겠죠.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등의 국가들은 모두 2번의 입장에서 서구이론을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식민지의 독립운동가들은 국가가 독립하기 위한 조건으로 <우리 몸을 변이시켜 적자가 된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사회진화론 이전의 사회진화론자 - 멜서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사실 다윈만의 작품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미 <진화론>은 19세기 학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지식이었는데, 그것을 다윈이 종교계와 사투를 벌일 각오를 하고 완벽하게 정리해서 발표했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다윈 이전에도 이미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본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명한 저서인 <인구론>의 저자 멜서스 이지요.

멜서스의 이론은 너무 유명합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죠. 그는 인류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더라도 식량 생산은 일정량만이 늘어날 것이므로, 수준 낮은 인종이나 가난한 자들은 아이를 낳지 말아야 <지구의 평화?>가 찾아온다고 주장했습니다.

멜서스는 백인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자의 입장에서 가난한 자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가난은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이기 때문에, 가난한 것은 노력하지 않은 못난 놈들의 책임이라는 입장이었죠.

따라서, 멜서스의 주장에는 놀라운 말도 있습니다. 가난한 지역의 주민들이 사는 곳에는 소독약을 뿌리지 말아야 하며,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정부 정책은 중지하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쉬운 말로 진화가 불가능한 <열성>들에게 투자하지 말아야 <애만 낳아서 지구 인구를 혼란에 빠뜨릴 위험인자>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지금으로서는 놀랍고, 당시로서는 당연한 주장을 말하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잘난 <우성>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주장이 다윈의 <적자생존>의 원칙과 만났습니다. 어떤 결과가 올까요? 그 결과물이 바로 미국이 낳은 학자 섬너와 영국이 낳은 학자 스펜서입니다. 유명하고도 저명한 학자들이라 이 학자들을 욕하는 글이 없습니다만, 여기서는 논문을 쓰는게 아니라 사회진화론을 가볍게 이야기 하자는 블로그이므로 존대나 존칭은 없습니다. ㅋㅋ 이들의 주장을 한번 봐야겠죠?

그럼 다음 장에서는 사회진화론에 대한 섬너와 스펜서의 주장을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한 4-5편 정도로 나눠 적는 게 적당할 것 같네요. 그럼 다음 번에 다음 이야기로....


관련글 모음 :
2007/04/20 - [한국사사료모음/13.일제시대사료] - 3.1 운동 - 조선 독립의 서(한용운)
2007/09/07 - [한국사정리/한국 근현대사 이야기] - (근현대사 20) 독립협회 이야기 - 본문(카툰수정)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