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퀴즈'와 관련있는 히스토리아의 글 목록101건

  1. 2013.08.17 내 상식을 확인하는 플래시 역사퀴즈 117 (2)
  2. 2013.03.22 오늘의 역사퀴즈 - O,X퀴즈 10문항 풀어보기
  3. 2013.03.21 오늘의 역사 퀴즈 - 중국 역사상 대일통을 이룬 황제는? (1)
  4. 2013.03.20 오늘의 역사퀴즈 - 재미있는 일화 3문항
  5. 2013.03.19 오늘의 역사 퀴즈 4문항 : 재미있게 풀어보아요~~~
  6. 2013.03.18 역사퀴즈 3문항 : 심심할 때 풀어보아요! (1)
  7. 2013.03.07 매일퀴즈 3. 7 : 종교와 사랑사이
  8. 2013.03.06 매일매일역사취즈 3.6 : 종교와 이성사이에서 고민한 철학자들
  9. 2013.03.02 매일매일역사퀴즈 3. 2 : 한신과 관련된 고사성어 퀴즈
  10. 2013.03.01 매일매일 역사퀴즈 2013. 3. 1 : 이단과 종교사이에서...
  11. 2011.09.11 역사퀴즈 - 인물퀴즈편 0914
  12. 2011.03.18 역사퀴즈 : 루신과 신문화운동 (2)
  13. 2011.03.14 역사퀴즈 - 일제시대 상권 : 남촌과 북촌이 대립하다! (6)
  14. 2011.03.13 역사퀴즈 - 깍쟁이라는 말의 어원은 고려시대 개성 상인에서 유래되었다. (3)
  15. 2011.03.13 역사퀴즈 - 토마스쿤의 과학의 역사 (4)
  16. 2011.03.12 역사퀴즈 - 민촌 이기영의 작품 세계
  17. 2011.03.11 역사퀴즈 - 사우디아라비아 분노의 날 시위는 계속되다.
  18. 2010.09.14 한국근대사 상식 퀴즈 20문항 : 심심할 때 풀어보세요~~~ (4)
  19. 2010.08.31 중국사 일반 상식 20문항 퀴즈 (2)
  20. 2010.08.24 플래시 역사 테스트 : 서양사 고중세사 기초테스트 (1)
  21. 2010.08.16 한국사 플래시 퀴즈 - 한국사 일반 상식 34문항! (1)
  22. 2010.08.16 플래시 역사 퀴즈 - 역사 일반 문제 5문항
  23. 2010.08.11 플래시 퀴즈 - 동학농민운동 편. (6)
  24. 2010.06.11 하나퀴즈 6. 12 - 이 연인들이 숨은 이유는 무엇때문?
  25. 2010.06.11 하나퀴즈 6. 11 - 낭사, 뭘 했을까?
  26. 2010.06.09 하나퀴즈 6.10 - 이 여신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27. 2010.06.09 하나퀴즈 6. 9 - 황정음이 오빠를 기다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은? (1)
  28. 2010.06.09 6. 8 역사퀴즈 - 고려의 왕들이 이민족의 침입을 이용하다? (1)
  29. 2010.06.08 하나퀴즈 6.7 - 달리는 괴물이 처음 개통된 곳은?
  30. 2010.06.07 하나퀴즈 6.6 - 이 나라는 어디일까요?


가볍게 풀어보면서 나의 역사 상식을 테스트할 수 있는 역사퀴즈입니다.

오늘은 무작위로 문제를 뽑아서 10문항을 올렸습니다.

풀어보시고 점수를 댓글로 달아주세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 위 문항에 오류가 있거나 문제점이 있을 경우에는 댓글을 달아주세요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오늘의 역사퀴즈
 

오늘은 간만에 o,x 퀴즈입니다.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서 점수와 해설을 확인해 보세요.

 

다음 10문항에 대하여 맞으면 O, 틀리면 X를 선택해 주세요.

 

1.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참형을 당했다.
O
X

2. 사물놀이에 쓰이는 4가지 쇠, 장구, 북, 징은 불교의식에 쓰이며,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목어, 운판, 법고, 범좀의 네 가지 사물이 변해서 쓰인 것이다.
O
X

3. 안압지는 신라 문무황 때 만든 윌지라는 연못으로 신라가 망한 뒤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안압' 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O
X

4. 황산벌에서 신라의 대규모 부대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백제의 명장군은 관창이다.
O
X

5. 징기스칸이 죽은 뒤 몽골 본토인 몽골 제국을 물려받은 사람은 막내아들인 툴루이나, 실제 몽골의 2대 황제는 셋째아들인 오고타이이다.  
O
X

6. 프랑스 대혁명 때 처형된 왕과 왕비는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이다.
O
X

7. 조선시대 지방관(수령)의 임기는 6개월이다.
O
X

8. 병자호란은 청나라를 세운 거란족과 관련된 전쟁이다.
O
X

9. 세계문화유산인 직지심체요절은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O
X

10.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여우 사냥' 작전을 전개한 러시아인들이다.
O
X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오늘의 역사퀴즈
 

오늘의 퀴즈는 중국사입니다.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 난이도는 1하, 2중, 3상으로 구성됩니다.

 

 

1. (하) 다음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한 황제의 이야기입니다.

중국 역사에는 대일통(大一統)이란 말이 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세상 모두를 거느린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는 영토, 문화적으로는 유교 이념에 입각한 덕치로 세상을 거느린다는 신념이다.

 

청나라는 중국을 통일하기 전부터 영토확장과 통일 사업을 구체적으로 구성하였다. 홍타이지 시대에 내몽골을 병합하고, 기 이후 서몽골을 70년 항쟁으로 통일하였다. 그리하여 몽골, 신강, 청해, 티베트 등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확보하고 주변민족을 전담하는 이번원을 두어서 지배하였다. 이것이 영토의 대일통(大一統)이다.

 

사상적으로는 방대한 사상을 사고전서라는 책으로 통합함으로서 문화적 대일통(大一統)을 완성하였다. 대일통의 세계에서는 진정한 세상의 중심은 중화(中華)였다. 도시와 농촌이 번영하고, 신대륙의 은이 유럽과 동남아를 거쳐 중국으로 흘러들어왔다. 중국의 은 저장고는 8천만냥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일통은 청나라 몰락의 시작이었다. 그의 치세 후반기가 되자 번영의 후유증이 곳곳에서 등장하였다. 남아도는 은은 관리들의 부정부패의 원흉이 되었다. 무리한 곡물 수출과 무역은 국내 시장의 곡물 부족이 발생하여 백련교도의 난 등 농촌 반란이 빈번하였다.

 

특히, 대일통의 평화시대로 말미암아 3억명에 이르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발생하여, 청나라가 백성들을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이제, 그에게 머리를 숙이며 무역을 요청했던 유럽의 국가들이 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가 마련한 끊이지 않은 은을 노린 유럽의 국가들은 피폐한 농촌 시장에 아편과 면화를 팔기 시작했다. 청의 몰락은 최고의 전성기 때 시작된 것이다.

 

 

 

1. 위 이야기는 청나라를 상징하는 '대일통'이라는 말을 압축한 것입니다. 전반기에는 사고전서를 편찬하는 등 대일통을 이끈 황제이며, 후반기에는 청의 몰락을 감당하지 못했던 유명한 황제는 누구일까요?
① 강희제            ② 건륭제
③ 옹정제            ④ 순치제            ⑤ 홍무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오늘의 역사퀴즈
 

3문제입니다. 즐겁게 풀어보아요!!!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 난이도는 1하, 2중, 3상으로 구성됩니다.

 

 

1. (하) 다음은 어느 동양 사상가의 유명한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꿈에 술을 마시며 즐거워했던 사람이 아침에는 섭섭해서 웁니다. 반면, 꿈에서 울며 슬퍼했던 사람은 아침이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사냥하러 간답니다.
 

우리가 꿈을 꿀 때에는 그것이 꿈인 줄 모릅니다. 심지어 꿈 속에서 해몽도 하니까요. 깨어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드디어 크게 깨어나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한바탕 큰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항상 깨어있는 줄 알고 주제넘게도 이런 것들을 분명히 알고 있는 체 합니다. 임금이 무엇이고, 말과 소를 키우는 사람은 무엇인가요? 아, 정말 꽉 막혀도 한참이네요.

 

공자도, 당신도 다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공자나 당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역시 꿈일 뿐입니다. 이런 말이 괴상하게 들린다구요? 만번의 세상 후에라도 이 뜻을 아는 큰 성인을 만난다면 그 긴 시간도 아침저녁 하루 해에 불과한 것처럼 짧게 느껴질 것입니다.

 

나비가 된 꿈을 꾸었습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내가 나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지 않을까요?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나비인 내가 사람의 꿈을 꾼 것인지 구별해야 하는 이런 것을 '사물의 변화'라고 말합니다.

 

 

1. 위 지문에 나오는 나비의 꿈을 통해 세상과 사물은 서로 연결되어 돌고도는 인연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집착을 버려야 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지문과 관련된 철학자는 누구일까요?
① 맹자            ② 노자
③ 순자            ④ 장자            ⑤ 한비자

 

 

2. (중) 다음 고사와 관련이 있는 조선의 임금은 누구일까요?

생모인 윤씨는 사림파와 훈구파의 다툼 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바른 말을 하는 관리들이 싫었습니다. 홍문관, 사간원과 같은 삼사 관리들을 멀리했고, 성균관을 놀이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균관에서만 놀까요? 백성들의 집을 부순 뒤 사냥터로 만들어서 놀기도 했답니다.

 

아버지인 성종을 닮는 것이 싫었던 것인지 한글 사용도 금지시켰습니다. 그는 궁궐에 '흥청'이라는 여인들을 선발했습니다. 흥청은 춤과 노래를 담당하는 가수들을 말합니다. 나이어린 여자아이들을 가수로 뽑는 시험을 본 뒤 잔치를 벌이고 놀았답니다. 조선시대 k-pop 오디션이라고나 할까요?

 

이것을 본 백성들은 '흥청흥청' 하다가 나라가 망하는 '망청'이 들겠다라고 탄식했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없이 노는 것을 '흥청망청'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흥청망청' 노는 자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켜서 왕을 폐위시키는 조선시대 최초의 사건이 일어났답니다.

 

 

2. 위 고사 흥청망청과 관련있는 조선시대의 임금은 누구일까요?
① 광해            ② 정조
③ 인조            ④ 단종            ⑤ 연산

 

 

3. (상) 다음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조선시대, 성균관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출석 및 학습 확인을 해주는 동그라미를 주었다. 그것을 원점이라고 하는데 원점이 300점을 넘어야 과거시험을 볼 수 있었다.

 

지방 사람들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수도까지 걸어가야 했다. 선비들은 과거만 합격하면 개인과 가문에 영광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거 시험을 보러가는 길을 '영광을 보러간다'라고 말하곤 했다. '영광을 보다'를 한자어로 관광(觀光)이라고 한다.

 

즉, 오늘날 여행을 한다라는 뜻의 관광은 원래, 과거를 보기 위해 멀고 험한 길을 뚫고 올라간다라는 뜻이었다.

 

관광의 길은 매우 멀고 험했다. 먼저 소과는 고향에서 치루는 1차 시험(초시)를 통과한 뒤, 2차시험을 수도인 한양(복시)에서 보았다. 소과에 합격해야 성균관 대학에 진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오늘날 수능과 같은 시험이다.

 

반면, 공무원 취업을 위한 시험이 대과였는데, 대과는 1차시(초시), 2차시(복시)를 치른 뒤, 임금이 최종 순위를 결정(전시) 했다.

 

 

3. 위 과거시험에 대한 이야기 중 틀린 것은 무엇일까요?
① 대과 전시에서 1등을 한 사람을 장원 급제라고 했다.
② 전체 1등은 어사화를 쓴 채 말을 타고 3일동안 풍악을 울리는 축하 행사를 열었다.
③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치르지 않고도 집안 인맥으로 특채 채용할 수 있는 제도도 있었다.
④ 조선 선비들은 윤리를 강조했기 때문에 과거 시험을 볼 때 부정행위가 거의 없었다.
⑤ 사서삼경은 문과 시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학경전이었다.

 

 

아래 제출하기를 눌러서 정답을 확인해보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오늘의 역사퀴즈
 

5문제입니다. 즐겁게 풀어보아요!!!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 난이도는 1,2 번 하, 3, 4번 중 구성됩니다.

 


1. (하)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 각 분야의 서작 편찬을 장려하다. *****

- 수양대군의 석보상절 / 김순과 신석조의 의방유취

- 이석형의 치평요람 / 윤회, 신색의 팔도지리지

- 정인지, 김종서의 고려사

- 설순의 삼감행실도

- 정초, 변계량의 농사직설

***** 문화, 예술, 경제 분야를 꽃 피우다 ****

- 관습도감을 만들어 박연이 아악을 정리하도록 지시하다.

- 대간의, 소간의, 혼의, 혼상, 일구, 앙부일구, 일성정시의 등 천문 분야에 힘쓰다.

- 농잠 서적을 발행하다.

- 조선통보를 주조하고 환곡법을 철저히 시행하다.

- 전제상정소를 통해 연분, 전분에 의거한 전세제도를 확립하다.


 

1. 위 내용과 관련있는 조선의 국왕은 누구일까요?
① 태종        ② 세종        ③ 세조
④ 성종        ⑤ 정조        

 

 

2. (하)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래 그의 이름은 '새벽'이다. 아버지의 성을 따라 설새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일찍이 출가하여 법명을 얻었는데, 그 법명은 '처음으로 불법이 빛나다' 라는 뜻의 _____였다.

그는 특정 종파에 매이지 않고 모든 교학을 연구했다. 그리하여 법화경종요, 대승기신론소 등 100여종 240여권의 방대한 책일 남겼다.


그는 의상과 당나라에 유학을 가던 중 무덤에서 노숙하다 해골의 물을 마시고, '일체의 현상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된 후 유학을 포기하였다. 또한 요석궁 공주와의 인연을 계기로 승복을 벗고 세속인이 되어 '소성거사'라 칭하며 민중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광대처럼 바가지를 두드리며 민중들 앞에서 화엄경의 정수인 무애가를 불렀다. 음악과 춤으로 불교 교리를 전파했으니, 신라시대의 아이돌 가수라고나 할까?


그는 관념에 치우쳐 이론적 연구만 하는 중국불교의 일부 종파를 '근원만 추구하느라 현실과 백성을 모르는 무리들'이라며 비판했다. 이로서 왕실과 지배층만이 지배하던 불교가 민중 속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가 불교를 전파한 이후 마음으로 부처를 섬기면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나 정토에 갈 수 있다는 정토종이 유행하였다.

 

 

 

 

2. 위 인물과 관련있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① 세상이 어지러울 때 다시 내려와 지상에 광명을 뿌리고, 민중을 구원하겠다고 호원장담했다.
② 백성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하였다. 
③ 대각국사로 불리었으며 천태종을 열었다.
④ 조선의 수도를 정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⑤ 소림사를 만들었다.

 

 

3. (중)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부조리에 관한 시론 : 이방인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갔다. 이튿날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코미디 영화를 보고 실컷 웃는다. 밤에는 여자친구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며칠 후, 동료 레이몽을 다치게 한 아라비아인을 별 이유없이 총으로 사살한다. 재판장에서 그는 바닷가의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사람을 죽였다고 하였고, 속죄의 기도를 거부한다. 그는 항상 행복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처형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밀려올까를 기대한다.


이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 '부조리'이다. 사회적 관계망이 형성되지 않은 인간이 개인의 욕망 속에서 어떻게 지배받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유럽은 세계 2차 대전의 암울한 상황에서 인간의 목숨은 존엄하지 않았다. 뫼르소의 죽음은 부조리한 현실에 죽음으로 반항하는 저항의식을 보여준다.

 

3. 위의 '부조리' 이야기와 관련있는 작가는 누구일까요?
① 사르트르
② 알베르 카뮈
③ 니체
④ 헨리 입센
⑤ 안데르센

 

 

4. (중)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19세기 독일 통일을 이룬 그에게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 모두 찬사를 보냈다. 그의 공무원 조직과 막강한 군 조직은 제국의 위상을 높인 1등 공신이었다. 반면, 그 조직들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시대 변화에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특히, 의회마저 장악해 버린 그로서는 개혁과 소통이 필요할 리 없었다.
 

당시 제국의 40%인 가톨릭 신도들은 황제 빌헬름 1세 뿐 아니라 로마 교황에게도 충성을 하고 있었다. 재상이었던 그는 가톨릭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제국의 적으로 규정하였으나, 그마저도 종교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가톨릭 국민들에게 항복하고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였다.
 

이후 그는 주적을 사회주의자들로 삼았다. 산업사회의 변화로 노동자들을 다루기가 어려워지자 사회주의를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주의 탄압은 노동자 회유로도 이어졌다. 노동자를 위한 구인구직제, 노인보호법, 질병예방, 문화혜택 등을 국가가 장려한 것이다.
 

그러나, 경직된 공무원, 군대 조직으로 인하여 산업혁명이 늦어지자 독일제국은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식민지 확보전에 들어갔다. 식민지 쟁탈전은 이미 식민지를 확보했던 영국, 프랑스를 위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독일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 연합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게 되었다.
 

독일의 딱딱한 조직 구조는 훗날 이 대립으로 인해 세계 1차 대전까지 이어지지만,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도 이 군대 조직의 개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4. 위 지문에 나온 독일 재상과 관련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관세혁파
② 자유무역 추진
③ 철혈정책
④ 카르보나리 개혁
⑤ 크림전쟁

 

 

 

문제를 다 풀었으면 위 제출하기 단추를 꼬옥! 눌러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퀴즈 0806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만을 이용해 주시고, 채점 및 오답확인 버튼 눌러주세요!!

1.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그는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전기혁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교류전기를 활성화할 수 있는 유동기를 발명해서 전기를 세계적으로 보급했다는 것에 있다. 그 전기를 이용하여 세계 최초의 형광등과 네온사인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의 뼈를 촬영할 수 있는 X선 튜브, 레이더, 자동차 속도계, 전자현미경, 수력발전소 등 과학의 전분야에서 업적을 나타냈으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라디오 역시 그가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은 주변 과학자들의 시기를 불러와 그의 삶이 행복하지는 못했으며, 시대를 앞서가는 괴이하고 신기한 발명들은 그가 과학자가 아닌 '마술가'라는 인식을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 세르비아 정교회 성직자 가문인 양친 밑에서 태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와 전파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면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신비주의 몽상가라는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위대한 과학자로 기록되었지만, 말년에는 돈 한푼 없이 쓸쓸하게 죽어갔다.

 

1. 위 지문에서 말하고 있는 과학자는 누구일까요?
① 니콜라 테슬라        ② 토마스 에디슨        ③ 아인슈타인
④ 앤드류 카네기        ⑤ 마르코니

 

2.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힘은 산을 뽑고 기는 온 세상을 덮어도

때가 이롭지 못하니 추도 가지 못하네

추가 가지 못하니 어이하리

우여, 우여, 너를 어이 하리.

 

2. 위 시는 초패왕 항우가 우미인을 죽이면서 읊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 시에서 초패왕이 처한 상황과 가장 밀접한 고사성어는 무엇일까요?
① 붕정만리        ② 살신성인        ③ 양두구육
④ 사면초가        ⑤ 세옹지마        

 

3.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약 250쪽의 분량에 이르는 해체신서를 서유럽의 상인들이 보여주었다. 이 책은 타펠 아나토미아(TAFEL ANATOMIN)라는 원제목의 책인데, 의학 해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담겨 있었다. 일본의 저명한 학자들이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제 섬풍토를 기잔 일본의 전염병이 줄어들 것이다. 이 책을 전해준 서양의 국가들도 섬나라였으니까...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언어의 지식으로 이제 유럽인들의 생각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에도의 집정관들은 유럽과의 통상을 금지했지만, 나가사키에서 이루어지는 이들과의 통상만큼은 허락하였다. 이들의 지식을 접하는 것은 선진문물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아나토피아의 보급은 곧 양학의 보급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3. 위 지문에서 말하는 학문을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① 성리학         ② 난학            ③ 영학
④ 국학            ⑤ 에도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매일매일 역사퀴즈 (2013. 3. 7. 목요일)

오늘의 제목는 <사랑과 종교사이> 입니다.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1.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카톨릭 교회에서는 남녀간의 애정보다는 신에 대한 헌신이 중요했다.

남녀가 사랑할 수 있는 날은 종교적 계율로 엄격하게 규제되었다. 우선 주일과 수요일, 금요일은 신에게 헌신하는 날이기 때문에 남녀간에 사랑은 금지되었다. 그 날짜는 1년 중 5개월에 이른다. 또 부활절이 되기 전 40일과 크리스마스 전 40일, 성찬예식 전 3일 등 교회 행사가 있기 전에는 마음을 경건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남녀간의 사랑을 금지하였다. 또, 남녀간에 잠지리를 갖게 되면 30일동안 교회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봉사와 헌납을 해야만 했다.

이 시대의 교회는 사람들의 기초적인 생활마저 규제하였다. 따라서 수백년 뒤, 이런 규제가 싫었던 일련의 예술가들은 교회의 신앙과 인간의 본성 및 이성을 조화하여 인간의 권리를 찾은 운동을 시작하였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인간 본연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종교개혁 이후 최고의 바람둥이라는 카사노바는 교회의 주적이 되어 방랑하면서 프랑스 혁명사상을 전파하고 볼테르의 밑에서 혁명요원으로 활약했는데, 그 역시 담당 임무가 교회와 귀족들의 이중생활을 밝혀내고 그들의 약점을 잡아내는 것이었다.

 

 

1. 위 지문과 관련된 시기는 종교가 사회전반을 지배하던 서양의 특정 시대입니다. 위 시대와 관련된 인물로 가장 적합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 아리스토텔레스        ② 아우구스티누스        ③ 하인리히 4세
④ 나폴레옹 3세           ⑤ 히틀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매일매일 역사퀴즈 (2013. 3. 6. 수요일)

 

오늘의 출제 범위는 <근대 신앙과 이성> 입니다.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1.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 출신이었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접한 뒤 과학적 발견에 충격을 받아 수도회를 떠났다. 그는 우주란 수많은 별들로 구성된 무한한 경지라고 생각하였다. 그에게 신이란 우주의 생명이었고, Monad라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부분까지 포괄하는 우주 그 자체였다. 이것이 그의 범신론이었다. 기계처럼 짜여진 우주라는 신 안에 존재하는 인간 역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는 존엄한 존재인 것이다. 즉, 신은 인간의 위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우주를 운영하는 원리 그 자체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진보사상을 끝까지 주장하다가 1600년 2월 17일,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을 당했다. 누군가가 그에게 십자가를 건네주면서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신앙을 비웃으면서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신은 자연이었다. 그의 육체는 불에타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기계적 우주관은 후대 계몽사상가들과 혁명가들에게 교과서 같은 이론이 되었다.

 

1. 종교의 시대, 종교가의 안정된 길을 거부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교회의 이론에 반박하면서 과학적 우주관의 체계를 잡았던 위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갈릴레오 갈릴레이     ② 죠르다노 브루너
③ 마틴 루터                ④ 쿠자누스            ⑤ 스피노자

 

 

 

2.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그는 천재과학자였다. 11살때, '음향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적었고, 12살때 유클리드 기하학을 이해하였다. 세무관인 아버지를 돕는게 귀찮아서 17세기에는 획기적이었던 계산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청년시절 얀세니즘에 빠진 청년들에게 치료를 받은 후, 그는 열정적인 종교가로 변신한다.

특히, 진공 물리학을 연구하면서 데카르트와 학문적 이견이 있은 후 그의 종교적 성향은 더욱 강해졌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는 이성만능론자라면, 그는 이성을 통해 발전하는 과학은 한계가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만한 인간이여, 신의 말씀을 들어라'

즉, 그는 수학적 인식방법의 대가였으나, 나이가 들면서 인간 본성의 욕구는 과학으로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유명한 명상록 '팡세'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간은 우주에 비해 한없이 작고 초라한 존재이이다. 그러나 우주는 자기가 강하다는 걸 모르지만 인간은자기가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2. 수학과 과학의 천재로 출발했지만, 점차 종교적 신앙심을 바탕으로 이성의 한계를 규명하고자 했던 얀세이즘의 종교철학자인 위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베이컨             ② 루소
③ 니체                ④ 헤겔        ⑤ 파스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매일매일 역사퀴즈 (2013. 3. 2. 토요일)

오늘의 출제 범위는 <한신에 관련된 고사> 입니다.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1~2.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한신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설하는데 공훈을 세운 한초삼걸(소하, 장량, 한신) 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도 어렸을 때, 부모가 돌아가서 고생을 하면서 성장했다. 어릴 때 그가 굶어 죽고 있는 것을 본 한 노파가 그에게 밥을 주었는데, 그는 그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고 했다. 훗날 그가 초왕이 되자 그 노파에게 황금 1천냥으로 보답했는데, 이렇듯 조그만 은혜에 후하게 보답하는 것을 (1) ____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어떤 백정이 한신에게 치욕을 주려고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라고 하자, 한신은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 동네사람들은 그를 겁쟁이라고 조롱하였다. 훗날 흥선대원군도 고종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같은 치욕을 겪었다. 그 역시 큰 일을 위해 작은 굴욕쯤은 참아낸다면서 (2) ____ 이라는 이 고사를 응용하였다.

이후, 유방에게 발탁된 한신은 주요 도로를 복구하여 항우군이 그쪽을 대비하도록 한 뒤에,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옛 길로 이동하여 적군을 대파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 후 '겉으로는 길을 만들고 몰래 기습한다(明修棧道, 暗渡陳倉) 라는 병법의 고사가 생겼다.

 

1. (1)에 들어갈 고사는 무엇일까요?
① 일확천금            ② 일반천금            ③ 소침대소
④ 소은구명            ⑤ 군주천명

 

 

2. (2)에 들어갈 고사는 무엇일까요?
① 세옹지마            ② 선견지명            ③ 탁발감수
④ 과하지욕            ⑤ 고집멸도

 

 

3~4.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한나라를 건국한 뒤 한신은 초왕으로 봉해졌다. 그러나 전쟁의 영웅들을 유방이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특히, 항우의 옛 부하인 종리매를 한신이 받아들이자 한신은 회음후로 강등되었다. 어느 날, 유방은 한신과 여러 장군들의 능력을 이야기하면서 한신을 떠 보았다.

"나는 몇만쯤의 장군이 될 수 있겠소?" " 폐하는 기껏 10만쯤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그대는?" " 저는 숫자에 상관없으니 (3) ______ 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방은 허탈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럼 그렇게 대단한 장군이 왜 내 밑에서 일하는 것이오?"

"그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폐하는 병졸의 대장은 되실 분이 못되나, 대장의 대장이 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리는 능력이니 제가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이후 한신은 유방과 부인인 여태후, 재상 소하가 자신을 모두 버렸다는 것을 느낀 후, 장수 진희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여태후에게 들켜서 참수당하고 만다.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는 필요없기 때문에 제가되어야 한다는 (4) _________ 이라는 고사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3. (3)에 들어갈 고사성어는 무엇일까요?
① 소탐대실            ② 다다익선            ③ 과욕대탐
④ 침소봉대            ⑤ 견마지로

 

 

4. (4)에 들어갈 고사는 무엇일까요?
① 토사구팽            ② 호가호위            ③ 호부견자
④ 배수진               ⑤ 살신성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매일매일 역사퀴즈 (2013. 3. 1. 금요일)

오늘의 출제 범위는 <종교사> 입니다.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1~2.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헨델과 찰스 제넨스

 

1600년대 초반, 영국(대영제국)은 청교도가 이주하기 전 버지니아에 22명의 목사를 파견하였다. 버지니아는 탐험가 윌터 롤리가 (1)________ 여왕에게 처녀여왕(vergin-ila)의 하사품이라고 해서 이름지어진 곳이다. 처녀여왕은 영국의 르네상스, 종교개혁, 신항로 탐사를 이끌었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던 여왕이다. 따라서 이곳은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의 목사들이 엄격한 도덕 기준으로 사람들을 다스리고 세금을 걷는 세무사업 중심의 종교교구였다. 그 결과 18세기에는 기독교가 미국 동부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종교와 초기 계몽사상가들의 연합이 시작되었다.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등 초기 미국의 영웅들은 종교를 인간의 이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종교를 헌법과 합리사상의 테두리 안에서 규제하려고 하였다.  예를 들어 토머스 제퍼슨은 개신교의 자유의지설을 좀더 확장하여 인간 스스로가 운명을 변경해나갈 수 있다는 (2) _________을 주장했다. 그러자 찰스 제넨스라는 영국 성공회신도가 '자유의지'는 성서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면서 오리지널 성서에 기초한 가사를 24일만에 만들어서 예수의 탄생, 수난, 부활의 3부작 오라토리오 작품의 가사을 완성했는데, 이 작품이 그 유명한 <헨델의 메시아>이다.

그리자 개신교는 형식적인 교회를 거부하면서 탈 교회를 선언했다. 즉, 교구를 벗어나 민중들 사이로 스며들어간 것이다. 이 때 미국에서는 주력교단인 장로교 외에 침례교와 감리교가 성장했는데, 이 분위기를 타고 성결교, 몰몬교 등 비주력 교단도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침례교는 흑인 인권에 앞장사면서 흑인 선교에 힘쓴 결과 미국 흑인 사회를 침례교가 장악하는 결과를 낳았다. 침례교의 성장을 본 주력 개신교들은 19세기 이후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에 집중하면서 종교가 사회발전에 긍적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게 된 것이다.

 

 

1. 1600년대, 대영제국을 이끌면서 청교도 뿐 아니라 다양한 교단을 인정하여 신대륙으로 진출하려했던 여왕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엘리자베스 1세        ② 버지니아 1세        ③ 엔블린
④ 마리 1세                ⑤ 빅토리아 1세

2. 인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미국사회의 정의와 헌법으로 규정했던 사상으로 성서의 권위 논쟁을 불러일으킨 (2)에 들어갈 이론은 무엇일까요?
① 다다이즘                ② 데이즘                ③ 샤메이즘
④ 시오니즘                ⑤ 토테미즘

 

 

3~5.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신에게 미래 계시를 받았다는 엘렌 g 화이트와 찰스 테즈 러셀

 

 

1843년, 개신교의 성장 속에서 여러 이단 및 비주력 종교들이 예언을 통해 성장했다. 월리어 밀러라는 사람은 1843년 4월 3일에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며, 신도들을 모아 가진 것들을 모두 태워 버렸으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를 이어 1901년 (1)_______ 라는 종교이름을 확정짓고, 여교주인 엘렌 G 화이트가 등장했다. 그녀는 9살 때 친구가 던진 돌을 맞고 혼수상태였는데 기적적으로 회복되었고, 이후 학교 생활대신 영적 체험을 하면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2000회가 넘는 미래 계시를 말하고, 5천건 이상의 논설, 40권 이상의 책을 발간하여 세계적인 종교신앙가가 되었다. 특히, 19세기에 담배 유해설을 발표하여 금연활동을 장려하였는데, 157cm의 키임에도 그녀의 카리스마 때문에 종교적인 마력이 있었다고 한다. 또 전쟁의 위험을 경고하여 세계 1, 2차 대전의 참상을 예언했다고도 하는데, 담배와 전쟁은 당대 정보를 통해 예측한 것일까, 정말 계시를 받은 것일까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한다.

30년 뒤, 찰스 테즈 러셀은 예수가 재림한다고 말하면서 1914년 아마겟돈 전쟁으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천년왕국의 신정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신도들은 산 증인이 되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멸망 예언은 거듭 빗나갔다. 그 후 (2) __________을 창설한 뒤 기적을 보여주겠다던 러셀은 기적의 밀을 만들었다. 다른 밀보다 빨리 성장하고 5배의 수확을 낸다는 밀이었다. 그는 밀 장사로 많은 신도들을 모았지만, 이 밀의 품질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사기죄로 고소 당하였다.

이들의 예언은 모두 성경의 말미에 있는 (3) __________을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성서에 쓰여진 멸망의 계시는 아직도 진행중이고,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을 예언했던 모든 교주들은 다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3. 위 지문에 나오는 (1)의 이야기는 어떤 종교를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요?
① 통일교            ② 여호와의 증인
③ 몰몬교            ④ 시온의 자식들
⑤ 안식교

 

 

4. (2)의 종교는 어떤 종교를 말하는 것일까요?
① 통일교            ② 여호와의 증인
③ 몰몬교            ④ 크리스천 사이언스
⑤ 안식교

 

 

5. (3)번에 나오는 성서의 계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① 창세기            ② 예레미야애가
③ 말라기            ④ 욥기            ⑤ 요한계시록

 

 

6~7.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1823년, 17세였던 조셉 스미스가 기도하던중 천사 모로나이에게 계시를 받았다. 그 계시대로 모라이산에서 황금관의 경전을 찾아내었는데, 1827년 그것이 번역되었다. 이 경전에는 기원전부터 학대받던 유태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고, 기원후 34년 예수가 잠시 재림하여 세례를 해주었다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종교를 전파하던 스미스는 구속되었다가 경찰과의 총격전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 후계자인 브리감 영은 남은 신도들과 유타주 솔트레이크시에 정착하여 (1) ______를 창시하였다. 특히 미국은 (2) _______전쟁 이후 남성들이 사망으로 급감했기 때문에 유타주에서는 남성 부족 현상이 심하였다. 브리감은 처녀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교리를 만들어서 일부다처제를 허락했다. 본인 역시 27명의 여자와 결혼하여 55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 인맥과 재력으로 ZCMI 백화점을 만들었으며, 브리감 영 대학을 창시하였다.

현재 미국인 중 1/100 이 이 종교의 교도이며, 유타주 솔트레이크시는 80%가 이 종교를 갖고 있다. 솔트레이크는 미국 250만명의 교도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이다.

 

 

6, (1)에 들어갈 종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안식교                ② 여호와의 증인
③ 통일교                ④ 몰몬교
⑤ 공동체의 형제단        

 

 

7. 이 종교가 미국에서 인정받은 하나의 계기가 된 전쟁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대프랑스 전쟁            ② 미국 독립전쟁
③ 남북전쟁                  ④ 멕시코 황금전쟁
⑤ 세계 1차대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퀴즈 - 세계사 0914

역사퀴즈 - 세계사 인물 일화 퀴즈 0914

오늘은 서양 역사 위인들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든 퀴즈입니다.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만을 이용해 주시고, 채점 및 오답확인 버튼 눌러주세요!!

1.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그는 영국 르네상스와 해외 진출 시대를 지휘한 엘리자베스 여왕 시기에 경제 고문(16세기)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금융'이란 무엇인가를 여왕에게 강의했으며, 런던거래소를 만들어 '증권'과 '주식'에 대해 새 장을 열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을 딴 대학을 설립해서 유명해지기도 했었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경제 이론에 대한 일화이다.

만약에 똑같은 100원짜리 동전이 있지만, 하나는 은이 많이 함유된 신권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한 구권이라면 사람들은 어떤 돈을 쓰겠는가?

또 만약 깨끗한 돈과 낙서가 된 돈이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돈을 더 빨리 쓰려고 하겠는가? 만약 같은 가치의 돈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가치가 다르다면 좋은 돈(양화)는 집안에 꼭꼭 숨겨둘 것이고, 나쁜 돈(악화)는 시중에 계속 돌게 될 것이다. 결국 나쁜 돈이 좋은 돈의 유통을 막고 그것을 저장하게 하므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이것을 바로 그의 이름을 따서 ______ 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 말은 1558년 그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쉬운 설명으로 경제학 충고를 하기 위해 편지를 보낼 때 제목으로 적은 말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고 독재자인 제임스, 찰스 왕가가 이어지자 이 말은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왕이 꼭꼭 숨겨두고 아껴두던 인재들은 독재자들에게 다 제거되었고, 간신들이 정치, 경제쪽에서 활개를 쳤다.

그가 죽은 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간신배들이 설치고 숨어있던 인재들은 제거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1.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이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윌터롤리        ② 드레이크         ③ 그레셤
④ 제로섬           ⑤ 셰익스피어      ⑥ 스펜서    ⑦ 베이컨

 

2.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레스토랑이나 카페같은 곳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돈이 모자란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때 쓰는 격언으로 '_____의 십오분' 이라는 말이있다.

그가 프랑스와 1세 왕의 명으로 로마에 갔다가 여비가 떨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 신분상 돈이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 때 그가 15분만에 생각한 계책은 이것이었다.

일단 자신을 저명한 의학자라고 말한 뒤, 자신이 프랑스 왕과 왕비를 독살하기 위해 독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즉, 프랑스왕을 제거해서 이탈리아의 영웅이 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경찰이 출동해서 그를 체포했고, 중대 범인으로 분류되어 파리까지 정중한 대접을 받고 여행을 하면서 프랑스와 1세 앞까지 갈 수 있었다. 그는 위트로 위기를 넘기고 국가적 망신도 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가 쓴 유명한 저서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서는 천재적인 두뇌에 매우 위트넘치는 인물인 '파뉼주'가 등장한다. 파뉼주는 매우 총명하지만, 그의 두뇌를 쓸데없는 곳에만 사용한다. 파뉼주는 사악하고 거짓말을 잘하며, 자신이 당한만큼 철저하게 복수하는 것을 매우 잘한다.

그 역시 프랑스 왕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철저하게 부서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다행이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그는 충신으로서 일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2. 위 지문에서 말하는 '_____의 십오분'에 들어갈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플루타르크            ② 레쉴리에            ③ 반 자크
④ 프랑수아 라블레    ⑤ 필립 시드니        ⑥ 카르멘

 

3.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정치의 꽃을 피운 인물이다. 그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그리스 동맹국들에게 아테네 여신과 아폴론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1) ____ 섬에 공동 자금을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강압적으로 공물을 받았기 때문에 아테네와 동맹국들의 동맹은 (1) ______ 동맹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동맹이 끝난 후, 강압적인 공물 헌납으로 아테네는 주변 도시국가들의 불만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페리클레스는 (2)______ 섬에서 열리는 올림피아 제전을 누구보다 화려하게 치루기도 했다.

(2)______ 섬은 이오니아 해안의 남쪽에 있는 섬으로 이곳은 학문과 사교의 중심지이자, 제우스 신전이 있는 국제 종교회의장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열리는 경기는 그리스인의 민족적 유대를 강화하고, 모든 그리스인은 신화에 나오는 여인 <헬레네>의 후손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스스로를 <헬레네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기서 열린 올림피아 제전은 경주,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멀리 뛰기, 레슬링의 5가지 종목이었다. 이 다섯 가지가 열린 이유는 바로 다섯 가지 종목이 페르시아 등 이민족과의 전쟁 때 필요한 핵심 군사훈련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3. 위 내용을 바탕으로 빈칸에 들어갈 섬 2개의 이름을 골라주세요.(정답은 2개입니다.)
① 델로스        ② 시라쿠라        ③ 간디아
④ 로도스        ⑤ 크레타           ⑥ 파마구스타    ⑦ 살로니카

 

4.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신들은 피에 목말라 있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잉카 문명의 최후 지도자 몬테수마 1세였다. 그는 신대륙을 점령하고자 하는 에스파냐의 코르테스 장군이 성경을 앞세워 학살을 자행하자 이 말로 침략군을 비꼬았다고 한다.

3백년 뒤,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파가 정권을 잡고 공포정치를 했다. 지도자인 ______ 는 길로틴 박사와 함께 단두대(길로틴)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잘랐다.

일년에 2천명의 목이 잘렸으니, 하루 평균 몇 명이 죽은 것일까? 같은 자코뱅 파의 꺄뮤 템란인간을 위한 혁명으로 '인간이 잔인하게 학살되는' 현장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는 혁명위원회가 사람들을 학살하니, 자신은 '자비위원회'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구해겠다고 선전물을 뿌린 것이다.

혁명은 아름다울 줄 알았으나, 잔인했다는 것을 깨달은 까뮤 템란은 마지막에 자신과 몬테수마 1세를 동일시 하면서 마지막 선동 문구에 이렇게 적고 체포당했다.

'신들은 피에 목마르다'

후대 소설가들은 평범한 삶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는 이들이 좌절할 때 이 문구를 애용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피에 목마른 공포정치를 했던 _____________ 도 결국은 공포정치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붙들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4. 동료에게 까지 피에 목마른 자라는 말을 들어가면서 극빈층을 위한 과격한 정책을 시도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 혁명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나폴레옹         ② 알렉산드르 뒤마        ③ 로베스피에르
④ 숀 마리노        ⑤ 페이스트 트라토스

 

 

5.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군주는 나라의 첫 번째 심부름꾼이다.'

이 말은 18세기 프리드리히 대왕이 했던 말이다. 그는 군주란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서 나라가 발전하는 데 첫 번째 공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국가가 발전하고 국왕과 국민이 하나가 되어 헌신하기 위해서는 특정 세력이 나라의 주도권을 갖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나라에서는 특이하게도 가톨릭에게도, 개신교에게도 어떠한 특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가 말하는 종교정책은 바로 모든 종교가 인정되는 '관용'이었다. 당대 유럽에서는 종교 전쟁이 있었고, 어느 나라이던지 카톨릭이거나, 개신교이거나 하나의 '하나님'을 믿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종교보다는 국왕이 헌신하고, 국민이 왕을 믿는 것이 국가 발전의 선행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바로 '계몽주의' 사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궁전에서 분수가 막혔는데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수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왕이 분수를 바라보는 순간 기적적으로 물이 다시 솟아올랐다. 그러나 어떤 신관도 그것이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왕 자신도 '카톨릭 국가에서는 이런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겠지?'라고 웃어넘겼다.

어느날 가난한 병사가 마리아의 제단에서 은그릇을 훔치다 걸렸는데, 이미 마리아가 용서하셨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왕은, '그런 기적도 있을 수 있는 일이구나' 라면서 병사를 용서했고,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두 번 다시는 마리아한테서 그런 선물 따위는 받지 말거라'

결국 그는 누가 종교를 믿던, 믿지 않던 무관심한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종교는 정치가 관여할 일도 아니며, 종교 역시 정치를 넘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훗날, 이 나라에서 출발하여 거대한 재국을 세운 재상 비스마르크는 국가 운영은 '피와 철' 만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카톨릭 세력이 국가 운영에 딴지를 거는 것을 막기 위해 종교 전쟁에 엄청난 힘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미 프리드리히 대왕이 남긴 유산 때문이었을까?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비스마르크는 카톨릭 하나를 제압하지 못하여 국내에서는 평생 하고픈 정책을 제대로 펴지 못하였다고 한다.

 

5. 위 일화 속에 나온 프리드리히와 비스마르크와 관련있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① 서러시아        ② 노브고르드        ③ 프로이센
④ 아일랜드        ⑤ 스코트랜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퀴즈 (2011. 3. 16. 수요일)

오늘의 주제 : 루신과 신해혁명, 신문화운동

*****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

루신(본명 주수인)

루신의 본명은 주수인이다. 루신은 필명으로 러시아의 작가 루딘을 모방한 것이다. 그의 집안은 글을 잘 쓰는 수재 집안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위한 과거 시험에 연루되어 집안이 풍비박살나고, 아버지는 병으로 죽게 된다.

루신은 아버지의 죽음이 구제도의 모순과 우매한 한의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서양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시급한 것은 정신적 질병이라고 생각한 뒤 문학으로 전향한다.

그가 정신적 처방으로 생각했던 것들은 서양 약소 민족의 저항 문학이었다. 슬라브 민족의 저항 의식이라던가 니체의 실존철학은 그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의 고향인 소흥에서는 큰 혁명이 2번이나 일어났다. 하나는 홍수전이 상제회를 설립하여 일으킨 (1) 태평천국운동이었으며, 또 하나는 (2) 쑨원이 당수로 있었던 중국동맹회를 중심으로 일으킨 신해혁명이었다.

이 두 혁명은 모두 실패하였다. 특히 신해혁명은 공화정을 실시하는 대가로 (3)       에게 대총통을 양보하였기 때문에 근대적 혁명의 결과로 봉건적 군벌이 다시 등장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신해혁명이 성공한 뒤 쑨원은 북경에 가서 채원배에게 초청되어 북경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지식인들은 러시아 혁명으로 제정러시아는 몰락했는데, 중화민국은 계속 군벌통치를 하고 있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북경대학을 중심으로 신청년들은 유교에 속박되어있던 전통을 파괴하고 서양을 모델로 한 새로운 세상을 논의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4)       운동이라고 한다.

루신도 문어체로 이루어진 전통구조를 타파하고, 유교문화를 비판하면서 구어체로 쓴 백화소설을 발표하면서 문학혁명운동을 주도하였다. 특히, 중국작가동맹의 좌익으로 활동하면서 우익의 예술지상주의자들과 문학 논쟁도 서슴치않았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작가로 평가되는 것은 혁명 문학일지라도 <문학은 이데올로기의 도구는 아니다>라는 일관된 정신 때문이다. 그는 문학은 정치의 노예도 아니며, 정치가 바뀌었다고 읽히지 않는 글은 문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1920-30년대 카프 문학이 절대 독립을 위한 이데올로기의 도구였던 것과 대비된다.

그 결정판이 <정신승리법>이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수작 (5)      이다. 그는 신해혁명의 실패로 좌절을 맛본 중국인들이 모욕을 당해도 저항하지 못하며, 오히려 자신은 승리자라고 최면을 거는 공허한 영웅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즉, 정신승리법이란 상황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들이 민족적 위기 속에서도 <중화주의>와 <대국정신>으로 우월감과 패배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상황을 직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1. (1) 태평천국운동은 대동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태평과 기독교 사상의 천국을 이상향으로 일으킨 농민 운동이다. 흔히 동학농민운동과 비교되는 이 운동의 내용과 관련없는 것은 무엇일까?
① 오랑캐의 머리스타일을 버리고 여진족의 복장을 하지 않는다.
② 남녀는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기 때문에 차별되어서는 안된다.
③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고 새로운 달력과 화폐를 발행한다.
④ 아편, 노름, 음주를 지양하고 여성의 발을 묶어두는 행위를 금지한다.
⑤ 전통에 입각하여 유교의 공자묘 숭배, 불교의 삼천배와 같은 규율을 장려한다.

 

2.(2)쑨원이 당수로 있었던 중국동맹회에서 새로운 국가의 이상으로 제시한 삼민주의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① 만주인의 청 왕조를 타도하고 항인의 주권을 회복한다는 민족주의
② 모든 국민의 정치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공화정을 표방한다는 민권주의
③ 제국주의에 저항하여 국권을 수호한다는 민국주의
④ 토지의 균등 분배 등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한 개혁을 실시한다는 민생주의

 

3. (3)에 들어갈 인물은 일본이 중국에 21개조 요구를 강요했을 때 그 요구를 수용했으며, 열강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와서 자신의 독재체제 군자금으로 이용했던 인물입니다. 우리나라 동학농민운동 때에도 군벌로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이홍장     ② 캉유웨이     ③ 위안스카이     ④ 장제스     ⑤ 마오쩌둥

 

4. (4)에 들어갈 중국 근대화 운동을 지칭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① 5.4 운동    ② 신문화운동    ③ 안휘파의 개화운동    ④ 대중정당운동    ⑤ 대약진운동

 

5.(5)에 들어갈 루신의 대표작은 무엇일까요?
                              - 그는 자기가 자기 경멸을 제일 잘하는 제일인자라고 생각했다. 자기 경멸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제일인자이다. 장원(과거 1등)도 제일인자가 아닌가? (본문 중에서) -
① 약      ② 고향      ③ 광인일기      ④ 아Q정전      ⑤ 민족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퀴즈 (2011. 3. 15. 화요일)

오늘의 주제 : 일제시대 남촌이 북촌을 앞서가다!

*****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

조선인 최초의 백화점

1883년, 일본이 통상장정을 맺을 무렵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상권은 육의전이 있었던 종로를 중심으로 번영하고 있었다.

일본은 조선의 상권을 빼앗기 위해 종로의 남쪽에 일본 상인들을 불법으로 진출시켰다. 오늘 날 명동 일대인 <진고개>를 일본 상업의 중심지로 만든 것이다. 진고개란, 비만 오면 땅이 질퍽해진다는 뜻으로 빈민이나 샌님들이 모여 살던 험한 땅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일본은 한반도 주도권을 놓고 (1) ___ 과 전쟁을 벌였고, 1902년 러시아마저 물리침으로서 (2) ___ 조약을 맺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차지하였다.

이 두 전쟁을 계기로 3-4만명의 일본 상인들이 조선으로 몰려왔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시작된 뒤 이 곳에 도시 계획이 시행되면서 일본인 거주지가 북쪽의 종로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종로일대의 전통상권을 북촌, 명동 일대의 일본 상권을 남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남촌에서는 오복점으로 불리는 포목점에서 면제품과 공산품을 주로 팔았는데, 1920년대부터는 백화점이라는 것이 등장해서 북촌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조선 사람이 세워서 경영한 최초의 백화점은 신태화가 운영한 (3) ____ 백화점이다.

일본은 (4) _____을 경계로 본정(충무로), 명치(명동) 등 남촌과 종로를 중심으로 한 북촌을 나눠두었다. 그리고 정책적으로 종로를 차별하였다. 일본은 (4) ____을 준설한 흙으로 종로 거리를 덮어두었기 때문에 한여름에 악취가 심했다.

당시 외국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북촌은 버섯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 한옥과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있었지만 밤거리가 음산하다. 남촌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는데 서양의 신도시와 같다.

 

1. (1)에 들어갈 나라와의 전쟁 결과 일본과 이 나라는 조선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동시에 출병하고 동시에 물러간다는 약조를 하였습니다. 어느 나라와 전쟁을 한 것일까요?
① 명나라    ② 청나라    ③ 베트남    ④ 미국    ⑤ 영국

 

2. (2) 에 들어갈 조약의 핵심 내용은, <러시아는 더 이상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지 않는다> 입니다. 일본이 러시아를 제치고 조선의 정치, 경제권을 장악하게 된 이 조약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포츠머스 조약      ② 시모노세키 조약      ③ 베이징 조약
④ 비사조약            ⑤ 경성 조약

 

3. (3)에 들어갈 백화점은 드라마 자이언트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화려한 백화점입니다. 일제시대 건립되어 1980년대까지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최고의 백화점으로서, 대기업에 의해 운영되었던 이 백화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롯데 백화점           ② 미도파 백화점         ③ 조지아 백화점
④ 신세계 백화점        ⑤ 화신 백화점

 

4. (4)에 들어갈 하천은 서울 북촌과 남촌을 나누는 경계입니다. 1411년 조선에서는 개천도감을 설치하여 자연하천인 이곳을 정비하여 홍수를 막고 이 이름을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후, 세종대왕이 측우기를 설치하여 수위를 측정한 곳입니다. 그러나 1930년대 복개사업과 1970년대 고가도로설치로 오히려 환경악화를 초래했고, 이명박 정권에서 복개와 고가도로를 철거했으나 인공호수라고 비난받기도 하는 이 하천의 이름을 정확한 3음절로 적어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퀴즈 (2011. 3. 14. 월요일)

오늘의 주제 : 깍쟁이라는 말의 어원은 고려시대 개성 상인에서 유래되었다.

1~4.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고려시대 개경의 인구는 약 50만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에서 잘 나가는 도시들의 인구가 3만~ 10만 정도인 것을 생각할 때 매우 큰 도시였던 것 같다.

50만이 넘는 이 대도시는 극동 아시아 무역의 중심지였다. 당시 중국의 송니라, (1) ____ 의 요나라, 여진의 금나라 뿐 아니라 이슬람교를 믿는 아라비아 상인들도 집단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숙박 시설이 많았다.

특히, 고려에서는 서경에서 10월 15일, 개경에서 11월 15일에 종합적 종교문화 행사이자 축제인 (2) ____를 시행했는데, 이 때 국제 상인들이 공식적으로 초청받아서 상업을 하고, 고려의 이름을 널리 홍보하기도 하였다. 외국인 상인들은 예성강 하구에 있었던 (3) ______라는 항구를 통해서 공식 무역을 전개하였다. 이 곳은 무역과 상업을 위해 큰 시장이 열린 곳이기도 했고, 나라의 각종 세금과 특산물을 개경으로 옮기는 통로이기도 했다.

특히 장사를 잘하는 유명한 개성 상인들을 (4) _____ 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말로는 <가게쟁이>라고도 한다. <가게쟁이>라는 말이 변해서 <깍쟁이>라는 말로 변형되었는데, 깍쟁이라는 말은 장사를 매우 잘하는 얄미운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깍쟁이들과 장사를 마친 아라비아 상인들은 고려라는 이름을 서쪽에 알리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우리 나라를 고려라는 발음으로 <코리아>라고 부르게 되었다. 프랑스 어로는 코레, 독일어로는 코레아, 러시아어로는 까레야, 아랍어로는 코리라고 한다.

흔히 일본의 조작으로 Corea가 Korea로 바뀐거라고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ㅋ) 발음은 라틴어로는 C 로 표기하지만, 독일어 계통에서는 K로 표기한다. 이것이 혼동이 되자 영어권인 영국 왕립지리학회와 미국 국무성이 보다 간단한 발음이 K 라는 이유로 KOREA로 표기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본의 로비가 들어갔다는 근거가 있다면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까지 증거는 없다.

 

1. (1)에 들어갈 민족는 발해를 멸망시킨 민족으로 고려와는 3차례에 걸쳐 대규모 전쟁을 치른 민족이다. 이 민족의 이름은 무엇인가?
① 숙신     ② 말갈     ③ 거란     ④ 몽골     ⑤ 탕구트

 

2. (2)에 들어갈 축제행사는 고려시대 국가의 보호를 받았던 대규모 종교행사이다. 이 행사의 이름은 무엇인가?
① 연등회     ② 팔관회     ③ 인왕회     ④ 화엄교회     ⑤ 법상회

 

3. (3)에 들어갈 고려시대 대표적인 항구의 이름은 무엇인가?
① 벽란도     ② 당항성     ③ 울산     ④ 인천
⑤ 남포

 

4. (4)에 들어갈 고려시대 수도의 사상들을 부르는 말은 무엇인가?
① 만상     ② 송상     ③ 거상     ④ 경강상인     ⑤ 선상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퀴즈 (2011. 3. 13. 일요일)

오늘의 주제 :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1~4.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과학혁명의 구조>로 잘 알려진 토마스쿤은 미국의 과학사 연구자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회주의에 빠져서 활발한 학생운동을 하였고, 2차 세계대전 중에 하버드에 입학하였다.

그는 기존의 과학이 이미 <정해진 룰과 법칙, 논리>에 휘둘리는 것을 반대하였다. 특히 햄펠의 논리주의 과학철학과 포퍼의 법칙이론이 과학의 역사 전개와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경계하였다.

특히 저명한 사회학자이기도 했던 포퍼는 마르크스 주의를 비판하고 서구사회의 위대함을 강조하면서 유명한 (1) _____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반증>이 가능한가 인가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토마스쿤은 기존의 확고한 법칙이 역사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2) ____ 이 강조했던 변증법의 논리, 즉 정-반-합의 과정으로 과학이 발전한다고 믿었다.

그 결과 토마스쿤은 기존의 과학적 업적으로 인해 우리의 이해가 왜곡되었다고 말한다. 역사는 진보, 발달, 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론과 시대 정신으로 교체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3) _____ 이론이다. (3) _____ 이란 사물을 보고, 문제를 삼고, 문제를 푸는 모든 총제적 과정을 말한다. 이것은 과학 뿐 아니라 모든 사회 현상에 적용되는 인식론으로, 어떤 사회에서도 위기가 찾아오면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3) _____ 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연속적으로 발전해 온다고 믿었던 역사의 과정을 바꾸는 것으로, 인류는 진보한다는 포퍼의 <계몽사상>을 반박하고,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전개되는 포스트 모던과 같다는 인식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과학혁명의 구조> 이전에 그가 출판한 (4) ___의 혁명 이라는 책 제목과 같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4) ___의 혁명 은 <지구가 돈다>라는 발상으로 비롯된 말로, 콜럼부스가 미국을 발견할 때, 지구 반대편을 돌아간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을 말한다.

결국, 인류의 진보는 경험의 누적이 아니다. 발전은 종교의 개종과 같은 것이다. 종교의 다양성과 믿음의 다양성을 인정하듯이, 수많은 인류의 업적과 과학이론은 서로 영역을 달리할 뿐 우열을 가릴 수도 없는 것이다. 주도적 과학이론이란, 이렇게 그 당대를 이끌어 갈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 (1) ___ 에 들어갈 저서는 합리주의와 건전한 보수의 도덕을 강조하는 포퍼의 대표적인 저서입니다. <추측과 논박>이 포퍼의 과학 및 역사이론을 담고 있다면, 더 나아가 마르크스 주의의 비판과 자본주의의 우월함까지 주장한 이 책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① 욕망의 전복      ② 한가한 무리들      ③ 열린사회의 그 적들
④ 신세계의 전략      ⑤ 88만원 세대

 

2. (2) ___ 에 들어갈 철학자는 칸트 철학을 완성한 인물로, 정신현상학과 법철학강요를 저술하였습니다. 종교적 절대진리를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과정으로 설명하였으며, 인간정신의 발전과정을 변증법적 과정으로 합리화시킨 이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피히테    ② 헤겔    ③ 흄    ④ 엥겔스    ⑤ 샤르트르

 

3. (3) ___ 에 들어갈 말은 토마스 쿤의 핵심 이론입니다. 과학의 발전을 누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론에 기초하여 과거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개념에서 성립한 말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어로 <패턴, 전형, 모델>을 의미하는 말로, 다양한 관념을 서로 질서지우는 체계나 구조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말은 무엇일까요?
① 패러독스      ② 패러다임      ③ 다이어그램
④ 뉴로우         ⑤ 식스센스

 

4. (4)___ 에 들어갈 과학자는 혁명적 이론과 보수적 사고방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이 인물이 제시한 <지구는 돈다>라는 혁신적인 개념이 곧 새로운 인식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을 ____적 전환이라고 말합니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갈릴레이        ② 에라스무스      ③ 아우렐리우스
④ 이레니우스     ⑤ 코페르니쿠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퀴즈 (2011. 3. 12. 토요일)

오늘의 출제 범위는 <한국 현대사> 입니다.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1~3.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한국 문학사에 큰 장을 연 민촌 이기영 선생은 아직도 한국 문학사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일제 시대 이후 월북 문인이었다는 이유와 (1) ___ 계열의 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1) ___ 란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이란 뜻으로 사회주의 이념과 계급의식에 따라 1925년 조직된 프로 문학 단체이다. 그러나 1934년 일제에 의해 2차 검거사건 이후로 조직이 와해되었다. 이 조직은 박영희, 김기진의 내영과 형식 논쟁 / 염상섭, 양주등의 국민문학파와 김화산의 아나키즘 논쟁 / 제 1, 2차 방향전환 논쟁 등을 거쳐 결국 러시아 혁명의 공산주의 정당인 (2) _____ 의 이념으로 귀착되었다.

민촌 이기영 선생은 (1) _______ 에 참여하여 옥고를 겪으면서도 일제시대 최고의 작품으로 알려진 (3) ________을 발표하였다. 고향은 1920년대 농촌의 비참함과 계급 갈등을 서사시적 화폭으로 그려낸 일제하 농민 소설의 기념비적인 성과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 작품은 식민지시대 고통을 참아가며 운명을 개척하는 농민들의 투쟁, 농민과 연대한 혁명적 인텔리, 역사의 진전을 암시하는 초기 노동자들의 모습, 이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지주 계급의 추악한 모습을 민족적, 향토적인 색채와 소박한 언어로 담아낸 일제하 소설 문학의 최고 수작 중 하나이다.

이후, 민족의 대서사시인 두만강을 발표하여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20세기 한반도 최대, 최고의 작가라고 불렸지만, 남한에서는 6월 민주화 운동 이전까지 그의 작품을 금기시했었다.

 

 

1. (1)___ 에 들어갈 말은 1927년 이 단체가 1차 방향전환을 마친 뒤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된 용어입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을 에스페란토어의 머릿글자를 사용하여 불렀던 이 용어는 무엇일까요? (한글 2음절, 또는 영문 4음절로 적어주세요.)

 

2. (2) ___ 에 들어갈 정당은 러시아 11월 혁명 이후 주도권을 잡았던 정당입니다. 이 정당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멘셰비키        ② 볼셰비키       ③ 아나키즘       ④ 레몬스키       ⑤ 다다이즘

 

3. (3) ___ 에 들어갈 작품은 1933년 11월 15일부터 1934년 9월 2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농촌 소설입니다. 이기영의 모든 작품이 그렇듯, 식민지화 농촌의 현실과 모순의 극복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이 작품은 무엇일까요?
① 개벽     ② 고향     ③ 백조     ④ 동향     ⑤ 조국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퀴즈 (2011. 3. 11. 금요일)

오늘의 주제 : 사우디 분노의 시위는 계속되다.

1~4.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2011년. 3월 10일. 사우디의 시민들은 전국적으로 <분노의 날>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였고, 경찰은 총탄을 발포하며 진압에 나섰다.

시위를 주도한 것은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카티프 지역의  시아파 주민들이었다.

시아파는 현재 이슬람교의 10% 정도를 차지하는데, (1) ___과 예멘지역에서 국교로 지정한 종교이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선출 칼리프를 부정하고, 무하마드의 사위인 알리가 살해된 뒤 이슬람 최고 지도자인 (2) ____을 절대 신성화하고 있다.

반면, 이슬람교의 90%정도를 차지하는 수니파는 아랍 사회의 관행과 이슬람 공동체의 합의를 중시하고 있다. 시아파가 고대 페르시아의 절대 왕권을 강조하면서 (2) ____ 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과 대비된다.

특히, (1) ____ 은 서구적 근대화를 주장한 팔레비 왕조를 타도하고 시아파 대중을 모아 이슬람 공화국을 건설한 (3) _______ 의 입헌혁명으로 시아파의 종주국이 되었다.

그러나, <분노의 날>을 주도한 사우디의 시위대는 과거와 다른 양상의 시위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자유청년연맹 등 (4) ______을 사용하는 그룹들이 긴밀한 연락을 주도하여 인터넷으로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아프리카와 이슬람 지역에서는 독재정권에 맞서 인터넷을 활용한 주도면밀한 계획이 민주화를 앞당기고 있다고 한다. (4) ___ 은 마크 저커버스가 골드먼삭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현재 이 분야 억만장자 10명 중 6명을 보유하고 있을만큼 세계적으로 성공하였다.

 

1. (1)___ 에 들어갈 나라는 팔레비 왕조를 타도하고 입헌혁명을 성공시킨 국가로, 18세기 카자르 왕조기에 강력한 대제국을 건설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 나라의 이름은 무엇인가?
① 이란    ② 이라크    ③ 오만    ④ 예멘    ⑤ 카자흐스탄

 

2. (2) ____ 에 들어갈 용어는 시아파의 최고 지도자를 뜻한다. 아랍 사회의 관행인 순나를 존종하면서도, 관행을 초월한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는 이 지도자를 뜻하는 용어는 무엇인가?
① 와하브    ② 이맘    ③ 슐탄    ④ 투크키즘    ⑤ 투르크

 

3. (3)___ 에 들어갈 인물은 팔레비 체제를 타도하고 코란과 이슬람법에 따르는 이슬람 공화국을 건설한 공화주의자이다. 이 인물의 이름은 무엇인가?
① 알 사이    ② 후세인    ③ 호메이니    ④ 마오쩌둥    ⑤ 알 아프가니

 

4. (4)에 들어갈 말은 최근 제 3세계의 민주화에 기폭제가 되고있는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의 일종이다. 이슬람권의 시위를 주도하는 징검다리로 활용되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① 페이스북    ② 유투브    ③ 미니홈피    ④ 그루폰    ⑤ 네이트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플래시 퀴즈 6회 : 한국 근대사 상식 퀴즈

오늘은  20문항이고,  범위는 <한국근대사> 랍니다.

난이도는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약간 쉬운 문제수준입니다.

오늘은 총 문항중 75% 이상을 맞추셔야 합격으로 처리됩니다.

모든 문제는 나레이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on.off 버튼을 활용하세요.

그럼 신나게 출발해 볼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도톨이와 새싹이의 플래시 퀴즈 5회

오늘은  20문항이고,  범위는 <중국사 일반 상식 퀴즈> 랍니다.

난이도는 중, 고등학교 세계사 수준의 중국사 퀴즈입니다.

어려운 것 2개, 매우 쉬운 것 2개도 넣었답니다.

그럼 신나게 출발해 볼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TAG 중국사

도톨이와 새싹이의 플래시 퀴즈 4회

오늘은  10문항이고,  범위는 <중학교 세계사 중 고대~ 중세> 랍니다.

난이도를 중학교 수준으로 조절했지만,

어려운 것 1개, 매우 쉬운 것 1개도 넣었답니다.

그럼 신나게 출발해 볼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한국사 2지 선다 퀴즈입니다.
한국사 상식에 관한 문제들이에요.... 몇점이나 나오는지 테스트 해보시기 바랍니다.

배점을 100점으로 해야 하는데 깜빡 300점으로 해버렸네요.. 쩝...
문제마다 음성을 넣는것도 까먹구...
다음부터는 꼼꼼히 확인하고 올리겠습니다. ㅋ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퀴즈 프로그램으로 간단히 만들어본 역사퀴즈입니다. 고등학교 근현대사 동학농민운동 편이네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하루하나역사 문제를 풀어보는...

 

다음 사진과 글을 읽고 답을 골라주세요.

계엄군의 탱크를 피해 다리 밑으로 숨은 한 연인이 있습니다. 이 연인들은 왜 숨어야 했을까요?

1958년, 중국의 공산주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국가 경제를 살려보겠다면서 <대약진 운동>을 했답니다.

사람들을 공장에 보내고, 생산시설을 가동하면서 공산주의와식 경제 개발을 하려고 했던 거죠. 하지만, 이 운동은 사회주의라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실패했답니다.

그후, 마오쩌둥은 경제 개발을 위해 덩샤오핑과 같은 개혁 관료들에게 실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적인 개혁을 하려고 했답니다.

마오쩌둥과 보수적인 공산주의자들은 덩샤오핑의 자본주의 개발 정책에 크게 반발하였습니다. 결국 <문화대혁명>이라는 10여년간의 운동으로, 자본주의자, 종교주의자를 비롯한 반공산주의 사상가들이 숙청당했답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죽으면서 실권은 덩샤오핑에게 넘어갔습니다. 덩샤오핑은 경제특구나 개방 도시 등을 기획하면서 중국식 자본주의 정책을 추진하였답니다.

그렇게 자본주의를 경험한 중국의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정치 체제인 <민주주의>도 접하게 되었답니다. 1989년, 중국의 시민들은 정치적 민주화를 외치면서 __________ 에 모여 자유를 외쳤습니다.

경제적 성장을 용인하던 덩샤오핑도, 정치적 민주화는 허용할 수 없었답니다. 민주주의 사상의 유입은 곧 중국 국가체제의 몰락이자, 지배층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것이었거든요.

결국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민들은, 정부의 탄압으로 하나둘 흩어지고, 중국의 민주화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20년전 공산주의와 민주화의 갈림길에서 숨어있던 저 커플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 저 연인은 민주화 상징이였던 곳에서 뛰쳐나왔답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였던 그 곳은 어디일까요?
① 자금성        ② 만리장성        ③ 천안문        ④ 독립문        ⑤ 북경대학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하루하나역사 문제를 풀어보는...

 

다음은 고려시대의 중앙 정치 관제를 표현한 글입니다.

낭사는 임금에게 바른 말을 해야 하니, 말하고(諫)하고, 따지는(爭)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임금에게 우회적으로 바른 말을 하는 것을 풍간(風諫),

임금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말하는 것을 순간(順諫),

시비를 가려서 임금에게 따지는 것을 쟁간(爭諫),

목숨을 걸고 따지는 것을 함간(陷諫)이라고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풍간이나, 임금이 우매하여 인지를 가누지 못할 경우에는 함간도 불사해야 하니, 이를 간쟁(諫爭)이라 한다.

임금이 올바르지 못한 조서를 내리면 낭사는 이에 예의를 갖추어 봉합(封)하여 되돌려주고, 시시비비를 반박(駁)하니, 이를 봉박(封駁)이라고 한다.

또한, 임금이 신임관원의 임명에 관한 고신(인사명령)이 부당할 경우, 관청에서는 서명(署)을 거치는 작업(經)을 하지 않으니, 이를 합하여 서경(署經) 이라고 한다. 국왕이 부당한 법을 제정하거나, 품위에 맞지 않은 시호를 제정할 때도 낭사는 서경권을 행사하여 서명을 하지 않는다.

간관이라 불리는 낭사의 권한은 법으로 보호되니, 직책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체포되지 않을 <불체포 특권>이 있었고, 회의시 국왕과 직접 대면하여 상서를 올릴 수 있는 권한, 지방으로 좌천되지 않을 권한을 가진다.

낭사는 청요직으로서 가문과 인품에 흠이 없는 자로서만 임명된다. 이는 비판과 관용을 중시하는 고려 귀족 체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 위 지문에서 설명한 <낭사>는 대부분 이 부서 소속으로 어사대와 함께 대간이라 불리기도 했답니다. 가장 연관이 깊은 부서는 어디일까요?
① 중서문하성        ② 도병마사        ③ 식목도감        ④ 중추원        ⑤ 삼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하루하나역사 문제를 풀어보는...

 

다음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위)과 자유의 여신상(아래)입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자유의 여신상

위의 그림은 프랑스 7월 혁명의 모습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작품입니다. 당장 누군가를 때려부술 것 같은 역동적인 분위기가 풍겨나오죠?

아래의 그림은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입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자유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프랑스의 에펠탑을 지은 에펠이 기획한 작품입니다. 즉, 프랑스와 관련이 있죠.

이 두 작품은 모두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공화국의 자유를 상징하는 여신인 __________을 모델로 한 것이랍니다.

지금도 프랑스의 대부분 관공서에 이 여신의 동상이 서 있죠.

그럼, 이 여신은 왜 등장한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여신은 초창기 프랑스 혁명을 표현하는 <상징물>이었답니다.

프랑스 혁명 초기 돈이 좀 있는 <부르조아 계급>이 혁명에 성공하고 <국민의회>를 만들자, 혁명가들은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을 위한 헌법을 만들었답니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 초창기에는 유산계급의 투표권, 돈 좀 있는 사람들의 재산권 보호 같은 부분이 헌법에 들어가 있어요. 그리고,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의 종교는 칼뱅파 기독교이거나, 가톨릭이었답니다.

기독교적인 상징물 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죠? 바로 그 분의 이미지를 형상한 여신이 혁명의 상징물로 등장한답니다.

사실, 프랑스 혁명은 <상징물>을 통한 혁명이었다고도 말합니다.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공포에 쉽싸여 이것저것을 때려부수는 농민들과 부르조아가 한편이라는 표식이 없다면,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 없이 난리가 났겠죠?

그래서 혁명가들은 자유의 모자를 똑같이 쓰고, 붉은 정렬의 깃발을 흔드는듯한 상징물들을 많이 많이 만들었어요. 이 때는 달력도 혁명의 날짜를 기록하는 상징물이었고, 도시 서민(상퀼로트)이 즐겨입던 바지도 단합된 계층을 상징하는 유니폼이었죠.

그런데, 어느날.... 돈있는 사람들이 재산권의 <자유>만 외치는 것이 불만이었던 쟈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는 <국민공회>를 만들어 왕을 죽이고, <혁명 안의 혁명>으로 공화정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헌법을 만들고, <돈없는 농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실시하면서 유럽 전체와 전쟁을 시작했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유럽의 모든 국가와 싸우면서도, 내부의 자본주의자들, 왕당파, 귀족, 성직자.... 등등 모두를 단두 대(길로틴)로 보내 죽이기 시작했답니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물도 온건한 여신에서 싸우는 여신, 투쟁하는 여신으로 바뀌게 되죠. 쟈코뱅당은 앙예 끊임없는 고난을 힘으로 이겨낸 <헤라클레스 동상>을 혁명의 상징물로 만들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가 죽고, 다시 부르조아 혁명 정권이 들어서자, 온건한 <여신>이 프랑스 혁명의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이 여신은 부르조아 계급이 존재하는 한, 이후 계속 <자유의 여신>으로 군림하게 된답니다.

 

***** 프랑스 혁명의 과격한 평등주의를 상징하는 상징물은 <헤라클레스> 였네요.자 그렇다면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여신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이르테미스        ② 마리안        ③ 아테네        ④ 헬레네        ⑤ 헤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하루하나역사 문제를 풀어보는...

 

오늘은 SBS 대하드라마 자이언트에 나오는 어느 백화점에 대한 문제입니다.

드라마 자이언트에 보면 어릴 때 오빠들과 헤어진 황정음양이 31일만 되면 이 백화점 앞에서 오라버니들을 기다린답니다.

이 백화점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한 뒤, <경성>이라는 이름을 새로 만들었죠? 요즘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르네상스를 하는 것처럼, 일본은 백화점과 같은 현대식 건물로 <경성 르네상스>를 했었답니다.

와. 조선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 졌겠네요. 지하의 식품 매장, 1층에 귀금속 코너, 2층은 여성의류, 4층은 현대식 물건들...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대단한 물건들이었습니다.

최초의 백화점은 1890년대 신태화라는 사람이 귀금속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상회로부터 시작했습니다.

1931년에 박흥식이라는 사람이 본격적으로 백화점 사업을 시작했는데, 1937년 화재로 건물이 다 타 버려서 다시 리모델링한 뒤 1970년대까지 한국 최고의 백화점으로 명성을 유지했습니다.

백화점이 화려한 내부 진열 매장이랑 광고로 인기를 끌자, 기존의 조선 상인들은 <쇼윈도>라는 진열대를 만들어서 백화점에 대항하기도 했죠. 하지만 사람들은 더 신기한 백화점으로 놀러갔겠죠?  

최초의 백화점인 이 백화점은 20평짜리 기와집을 주는 등 파격적인 경품행사를 하기도 했다네요.

그런데, 당대 백화점에서 최고의 상품은?

조선 시대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여성 직원의 등장>이 최고 히트 상품이었답니다. 일제 시대, 자유연애와 여성평등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여성들이 백화점 직원으로 등장했고, 항상 <스마일~>하고 있었죠.

연애하고 싶은 남성들, 결혼하고 싶은 남성들, 그냥 이쁜 여성이 보고 싶은 남성들.... 모두 모두 백화점으로 향했겠죠? 하지만, 장난스런 남자들을 12시간 이상 서서 친절하게 맞이하는 여성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반면, 백화점을 찾는 여성 고객들은 차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답니다. 감히 여자가 귀금속에 미쳐서 쇼핑하는 것을 시대가 용납하지 못했던 거죠.

해방 후, 이 백화점은 1980년대 초반까지 서울의 상징으로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영난으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지면서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죠.

 

자, 위 내용과 관련된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화신백화점         ② 미도파 백화점           ③ 동화(신세계) 백화점
④ 롯데 백화점        ⑤ 미쓰코시 백화점        ⑥ 중앙(조지아) 백화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하루하나역사 문제를 풀어보는...

 

오늘은 문제가 좀 길어요....

다음 글과 사진을 보고 <민족>을 추론해서 빈 칸을 채워보세요.

936년. 태조 왕건이 고려를 통일했을 때만 해도, 고려 사회에서는 지방 호족들의 위세가 대단했답니다.

오죽했으면 왕건이 해마다 몇 번씩 결혼하고, 틈틈이 아들, 딸 낳고 또 낳고 했어도 친척관계를 맺지 않은 호족들이 더 많았다는 소리를 들었을까요?

그런데 건국한 지 100년이 지날 무렵, 고려사회에서 호족들의 숫자가 확 줄어들었습니다.

다른 이유도 많았지만, (1) _____ 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지방에 행정구역을 설치하고, 군대의 숫자를 늘려야 했기 때문이죠.

국왕에게는 북방에서 세력을 확장한 이민족을 막는다는 이유로 중앙권력과 지방을 연결해주는 <외관>, 즉 행정구역을 많이 만들 수 있었겠죠. 특히, (1) ________ 족의 침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성종 때부터 12목을 만들고, 이후 4도호부, 8목, 56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의 행정제도를 만들었지만, 호족들의 반발은 이전보다 약했답니다.

또, 전쟁 과정 속에서 많은 지방 향리들이 희생되면서 중앙집권은 더욱 탄력을 받았지요. 전쟁은 국가가 이용하기에 따라 내부 결속을 다지는 가장 큰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답니다.

이제 건국한지 200년이 지났어요. 고려 초기의 호족들은 문벌 귀족이 되어 중앙에서 활동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 귀족들이 다른 귀족이나 왕실과 중첩된 혼인을 해서 왕권을 능가하는 가문이 나타나기도 했답니다.

고려의 왕이었던 숙종은 <인주 이씨>로 대표되는 가문을 누르고자 신법을 시도했습니다. 먼저, 문벌귀족의 근거지인 개성을 버리고 서울(남경)으로 수도를 옮겨 버렸답니다. 그리고, 화폐 주조 사업 등으로 국가가 직접 경제를 장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귀족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죠.

숙종은 왕권 확립을 위해 무신 성향이 강한 문신들을 등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성장하고 있던 (2) ________족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별무반이라는 군대를 창설했습니다. 별무반은 전국의 군대를 국왕이 직접 장악하는데 크게 기여했지요.

하지만, 수도 천도나 별무반 창설 등으로 백성들의 일거리가 너무 많아져서 신법은 실패했고, 문벌귀족들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인종 때에는 아예 문벌귀족인 이자겸 자체를 제거하려고 까지 했지만, 왕권은 계속 흔들렸고, 묘청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다시 수도를 옮기는 운동도 추진되었지요.

 

1에 들어갈 민족을 2글자로 적어주세요...

2에 들어갈 민족을 2글자로 적어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하루하나역사 문제를 풀어보는...

 

다음 글과 사진을 보고 한 도시을 추론해서 빈 칸을 채워보세요.

1899년. 이런 홍보 글들이 거리에 등장합니다.

귀신들을 거느리며 몇만리씩 날아다니는 한나라 비장방이 조선에 출도했어요.

자자... 신으면 눈 깝짝할 새에 천리를 난다는 귀신 미투리입니다.

수신사 김기수는 1876년 일본에서 기차를 처음 타보고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보세요...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처럼 날뜁니다.

유길준은 서유견문에 증기차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아.. 이 차에 한번 타기만 하면 바람을 타고 가거나 구름 위로 솟아오르는 황홀한 느낌을 받는다.

1899년. 최초의 기차가 서울에서 개통되었습니다. 이 땅의 첫 기차는 노량진에서 ___________ 사이를 달리는 열차였죠. 조선의 철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자를 빠르게 나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만들어진 철도의 종착역은 대부분 항구이거나 국경도시였답니다. 일본은 철도를 이용해서 물자와 노동력을 착취하기 시작했거든요.

어느 덧 철도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바뀌어 갑니다.

  - 서양 귀신은 화륜선을 타고 오고 일본 귀신은 철차를 타고 온다네 -

 

******   빈 칸에 들어갈 도시로 알맞은 곳을 골라보세요.
① 서귀포        ② 만리포        ③ 제물포        ④ 마포        ⑤ 목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하루하나역사 문제를 풀어보는...

 

다음 글과 사진을 보고 한 인물을 추론해서 빈 칸을 채워보세요.

사진은 현재 이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이 나라는 16세기 이전까지 각 부족들로 나뉘어 통일되지 못했답니다. 1521년 포르투갈의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하던 중, 이 지역에서 식수를 구하려고 하다 분쟁이 일었는데, 라푸라푸의 부족이 마젤란을 죽였죠. 이 나라에는 아직도 라푸라푸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후, 이 나라의 남부는 강력한 이슬람 세력이 침투해서 슐탄 국가가 되었지만, 북부지역은 에스파냐인들이 내려와 가톨릭을 전파하고 식민지로 만들었죠.

1998년 미국과 에스파냐의 전쟁에서 미국이 이겼는데, 파리 강화 회의의 조약 내용에 따라 에스파냐가 미국에 이 지역 전체를 2천만 달러에 넘기게 됩니다.

세계 2차 대전 중 일본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미국을 벗어나 독립의 기쁨을 맛보았죠. 그러나 일본이 패망한 이후, 사회불안으로 큰 성장을 거두지 못한 채, 아료요 대통령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나라의 정치체제는 민주 공화정이고, 국민 대다수는 가톨릭을 믿고 있습니다. 다른 주변국과는 다르게 이슬람교를 믿는 인구가 7% 미만이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  이 나라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