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퀴즈
 

오늘의 퀴즈는 중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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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이도는 1하, 2중, 3상으로 구성됩니다.

 

 

1. (하) 다음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한 황제의 이야기입니다.

중국 역사에는 대일통(大一統)이란 말이 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세상 모두를 거느린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는 영토, 문화적으로는 유교 이념에 입각한 덕치로 세상을 거느린다는 신념이다.

 

청나라는 중국을 통일하기 전부터 영토확장과 통일 사업을 구체적으로 구성하였다. 홍타이지 시대에 내몽골을 병합하고, 기 이후 서몽골을 70년 항쟁으로 통일하였다. 그리하여 몽골, 신강, 청해, 티베트 등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확보하고 주변민족을 전담하는 이번원을 두어서 지배하였다. 이것이 영토의 대일통(大一統)이다.

 

사상적으로는 방대한 사상을 사고전서라는 책으로 통합함으로서 문화적 대일통(大一統)을 완성하였다. 대일통의 세계에서는 진정한 세상의 중심은 중화(中華)였다. 도시와 농촌이 번영하고, 신대륙의 은이 유럽과 동남아를 거쳐 중국으로 흘러들어왔다. 중국의 은 저장고는 8천만냥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일통은 청나라 몰락의 시작이었다. 그의 치세 후반기가 되자 번영의 후유증이 곳곳에서 등장하였다. 남아도는 은은 관리들의 부정부패의 원흉이 되었다. 무리한 곡물 수출과 무역은 국내 시장의 곡물 부족이 발생하여 백련교도의 난 등 농촌 반란이 빈번하였다.

 

특히, 대일통의 평화시대로 말미암아 3억명에 이르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발생하여, 청나라가 백성들을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이제, 그에게 머리를 숙이며 무역을 요청했던 유럽의 국가들이 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가 마련한 끊이지 않은 은을 노린 유럽의 국가들은 피폐한 농촌 시장에 아편과 면화를 팔기 시작했다. 청의 몰락은 최고의 전성기 때 시작된 것이다.

 

 

 

1. 위 이야기는 청나라를 상징하는 '대일통'이라는 말을 압축한 것입니다. 전반기에는 사고전서를 편찬하는 등 대일통을 이끈 황제이며, 후반기에는 청의 몰락을 감당하지 못했던 유명한 황제는 누구일까요?
① 강희제            ② 건륭제
③ 옹정제            ④ 순치제            ⑤ 홍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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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역사퀴즈 (2010. 1. 14. 목요일)

오늘의 출제 범위는 <세계사 일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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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 폐위 통지서

찬탈에 의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으로 왕이 된 하인리히 4세가 교황이 아닌 가짜 수도사 __________에게 보낸다.

보름스에 모인 주교들은 교황의 부정과 악행을 규탄한다.... 카노샤 영지에 드나든 교황은, 토스카나의 여백작 마틸다와 입에 담을 수 없는 부정을 저질렀다..... 마인츠와 보름스의 제후들은 이에 가짜 수도사를 규탄하고 파문을 선언하는 바이다.

 

1. 위 지문으로 미루어볼 때 빈 칸에 들어갈 인물은 많은 소설과 예술 작품에 인용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① 고트프리드
② 힐데브란트
③ 안셀무스
④ 프란키스쿠스
⑤ 도미니쿠스

 

2. 다음 표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2. 위 표에 대한 분석을 잘못 한 사람을 골라보세요.
① 현중 : 관청에서 관리하면서 상인들이 경영하는 방식의 기업 운영이 이루어졌어.
② 현아 : 중국 전통과 제도를 바탕으로 서구의 기술을 받아들여 근대적 공업을 육성하려고 한 거야.
③ 영생 : 청일 전쟁에서 패하면서 실패했잖아.
④ 규종 : 사회 경제적인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한 중국의 근대적 민중 운동이였어
⑤ 형중 : 육영을 목표로 신식학교 설립에도 관심이 많았지

 

3. 다음 지도를 잘 보고 물음에 답하세요~

 

3. 위 지도와 도표가 설명하려는 국가와 관련된 내용 중 옳은 것은?
① 무하마드 알리가 적극적인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와하브 왕국에 점령당했다.
② 수에즈 운하의 공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주식을 프랑스가 사들이면서 운영권을 프랑스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③ 이 무렵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 상태였다.
④ 서양 열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순수한 이슬람교로 돌아가자는 아랍 민족주의 운동을 주도하였다
⑤ 운하를 건설함으로서 동서간의 교역 항로가 크게 단축되었고, 영국이 인도로 가는 항해로가 30% 이상 단축되었다.

 

4. 다음은 근왕조서의 원본과 근왕령에 대한 내용입니다. 질문에 답하세요.

 

4. 위 근왕조서가 나온 이후,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받자는 유신회를 만들어 청년들을 일본에 유학시켰으며, 훗날 중국의 신해혁명을 모델로 광복회를 조직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 호찌민
② 판보이쩌우
③ 위안스카이
④ 카르티니
⑤ 무스파타 케말

 

 

5. 다음은 중국 청나라 시대에 있었던 삼번의 난에 대한 지도입니다. 잘 보고 물음에 답하세요.

 

5. 위 지도와 관련된 황제의 통치 시절 있었던 사실과 관련이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오삼계의 반란을 토벌하였다
② 대만의 정씨세력, 몽골의 갈단세력을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③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고 국경을 확정하였다
④ 관료들을 통제하기 위해 주접제도를 적극 활용하였다
⑤ 새로운 세법으로 지정은제를 실시하고, 사고전서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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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 I S T O R I A > 2008 중국 근현대사 이야기

(1) 1834-1860 근대화의 시작 : 백련교도의 난과 영국의 자유무역체제

1800년대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 중국의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18세기 건륭제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시아의 맹주 <청>은 19세기가 되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18세기의 평화로 늘어난 어마어마한 인구를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근대 사회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18세기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한 <청 왕조>의 인구는 세계인구의 1/4를 넘어서는 5억에 이르기 시작합니다. 청은 이 엄청난 인구에서 걷어들인 세금으로 국가 재정을 넉넉히 할 수 있었습니다. 청조 중기 이래의 세금을 걷는 방식은 <지정은제>에 기초하는데, 지정은제는 여러 잡세를 모두 토지로 묶어 토지에서만 세금을 충당하였고, 세금을 내지 않는 열외자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청조 재정의 넉넉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자본을 회전시키는 능력이 청조에게 부족했던 것 같네요. 5억의 인구를 부양하는 대국이라면, 당연히 그에 걸맞는 생산력의 발전이 뒤따라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18세기 이래 꾸준히 진행되고 있던 산업혁명을 <중국>에서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중국사회도 양명학, 고증학 등이 발전하면서 <실용적인 기술 발달>을 생각하기는 했지만, <실용적>이라는 부분은 주로 <농업, 상업, 수공업> 등의 전통적인 기술부분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4억을 넘어서서 5억으로 가는 인구를 먹여살릴 기술은 되지 못했던 것이지요.

19세기 중국은 인구에 비해 토지개발이나 기술력 향상 부분이 너무 뒤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재원과 국가 번영에도 불구하고 빈부차가 심해졌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빈부차와 기술의 부족은 <하층민>들의 불만을 가져오게 되었고, 19세기부터 중국은 잇단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각종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중국 내지인들의 불만이 쌓여갑니다. 또, 청 왕조의 전성기부터 시작된 영토 확장과 변경 지역으로의 이민 문제 역시 중국민과 토착민간의 불화를 조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불안은 결국 <청> 왕조가 중국 전통 왕조가 아닌 <이민족인 여진족 왕조>라는 부분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시작합니다. 잇다른 반란과 비밀결사 단체들은 <중화민족>이라는 기치를 내걸기도 하고, 농민 결사단체들은 중국 전통 사회의 반란 형식인 <불교의 미륵불>을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가장 큰 비밀 결사단체로서 정부에 대항한 것이 바로 <백련교>였습니다. 백련교는 <미륵불이 나타나 천국을 세운다>는 이념을 가진 종교적 비밀 결사였습니다.

백년교도들이 난을 일으키다.

백련교는 원래 중국 당나라 이래 지속되어온 비밀결사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원래 불교의 정토종 계열에서 출발한 단체입니다. 백련교라는 명칭은 정토종의 시조인 석혜원(동진 사람)이 백련사를 만들어 중생의 안녕을 기원한 것에서 출발하므로, 백련교는 중생들의 평안을 위한다는 <대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백련교는 남송의 모자원이 종교결사운동을 하면서 백련종이란 종파를 만들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백련교는 미륵불은 아미타불을 모시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계율을 지키는 종파입니다. 또 선종의 종파이므로, 딱딱한 경전보다는 <염불>을 외워는 참선을 중요시 합니다. 즉, 살생, 도둑질, 술, 여자 등을 멀리하면서 세속보다는 <이상>을 추구한다는 이념을 가졌기 때문에 탈속적인 비밀단체였습니다.

이 단체가 중국 송, 원, 명, 청이라는 중세 시기에 백성들의 반란에 종종 이용된 것은 바로 이러한 대중적이면서도 탈속적이고, 미륵불의 구원이라는 내세사상이 있으면서도, 교리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원나라 때의 백련교는 몽골에 대한 반항단체로서, 명대의 백련교는 농민핍박에 대한 대항단체로서, 청대의 백련교는 여진족왕조에 대한 비밀결사단체로서 <농민반란의 진원지>가 되곤 하였습니다. 따라서, 백련교는 때에 따라 민족주의단체였고, 어떤 때에는 반정부적 테러단체였고, 또 어떤 때에는 쿠테타의 리더로서의 역할도 하곤 했죠. 백년교는 중국 농민들 사이에 불교, 도교, 백련교라는 3대 종교가 있다는 생각을 머릿 속에 각인시킨 대형 종교였습니다.

청나라에서는 끊임없이 백년교를 탄압하면서 몰아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1789년 백년교도들은 더 이상 참지 않고, <청조 타도> 및 <미륵불 세상의 강림>을 외치며 10여년간의 대 정부 투쟁에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백련교> 중심으로 일어난 반란이 점차 농민들과 반청인사들에게 영향을 주어 <백련교의 난>은 중국 전역에 바이러스처럼 퍼졌습니다. 청나라는 백년교의 10년 난을 진압하기 위해 국가 총 예산 5년분을 쏟아부었고, 엉청난 재력을 가진 청 왕조도 결국 재정난으로 휘청이게 됩니다. 청이 영국 등 대외 국가와 효율적으로 싸우지 못한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백년교로 인한 국가 재정 파탄이었습니다.

백년교의 교리가 반란과 연결되는 부분을 볼까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백년교도들의 이야기... 하면 바로 김용의 영웅문 3부에 나오는 <의천도룡기>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백년교는 비밀결사단체인 만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그 중 원나라의 지배에 항거하여 밝음의 단체를 지향한다는 뜻에서 <명교>라고 불린 적도 있죠.

초기 백련교의 교리는 페르시아 계통의 서역불교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 교의는 조로아스터교 등에서 보이는 <선신과 악신>의 투쟁이라는 개념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세상에는 명(明), 암(暗)이라는 두 개의 세력이 있는데, 명은 곧 <광명>으로 불과 밝음을 의미합니다.(조로아스터교의 선신이 곧 불을 의미하죠.) 이 불의 세력의 대표는 지상을 구원하러 내려오는 불교의 미륵불인데, 미륵불은 암흑의 세력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원합니다. 그리고 무생노모라는 늙은 부처가 속세의 사람들을 진공가향이라는 하늘 세상으로 데려갑니다. 미륵불, 석가불, 연등불 등은 무생노모가 지상이 어려울 때마다 파견한 파견된 부처들입니다.

무생노모에게 기원하기 위해 향을 피우는 것을 소향이라고 합니다. 향을 피우는 것은 미륵불과 명왕을 믿고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식입니다. 무생노모는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기 때문에 신분과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을 <백련교>의 품으로 받아들입니다.

백련교는 무생노모가 부처들을 파견하지 않은 현재 세상은 항상 암흑으로 봅니다. 그러나, 지금의 암혹세력들은 미륵불이 내려오면 모두 파괴될 것이고, 구제도의 파괴를 통해 세상은 <사랑>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는 예언자와 신도들의 단체가 바로 <백련교>입니다. 따라서 백련교의 예언자들은 무생노모의 힘을 받아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강할수록 치유의 힘이 강한데, 부적, 무술, 기공, 주술 등의 힘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 힘을 발휘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스승과 제자 관계로 교단을 정비해 갑니다. 백련교는 내외에 문파가 무척 많고 세력이 방대하여 수많은 문파가 각각의 이름으로 존재하면서 백련교의 하부 지부로 활동합니다. 지도자의 이름도 각각 다르고, 선교 방법도 다르므로 일반인들은 자신들이 백련교인지 모르고 가입하기도 합니다. 대양교, 청향교, 대승교, 십자교, 분향교, 혼원교, 노군문교, 청차문교, 팔침교 등등의 명칭들은 모두 백련교의 명칭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왕조에 대항하는 비밀결사로 적합하였습니다. 또, 경문을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던가 저자거리에서 주술적 힘을 보여준다는 등의 방식으로 알게 모르게 민중에게 침투해 들어갑니다.

백련교에서는 <사해의 모든 사람의 형제고 가족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련교의 교주는 구제도가 파괴되고 새로운 세상이 올 때까지 모든 사람들읠 형제 가족처럼 아끼고 보호하며, 신도간 신분을 없애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교주의 역할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종교는 농민층에게 호응을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백년교와의 10년 투쟁으로 영국과의 투쟁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18세기 청조는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그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서도 사회 체제를 개혁하기는커녕 백년교와의 혈전으로 재정난에 허덕이게 된 청조는 때마침 밀려오는 서양세력의 도전을 막을 힘이 없었습니다.

18세기 영국은 조지 매카트니가 청조 건륭제에게 무역을 건의 했다가 소위 말하는 <쪽팔림>만 경험하고 떠나게 됩니다. 영국은 그 이후 계속적으로 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것을 주장하지만 청은 영국과의 조공 관계만을 주장해왔습니다.

중국에는 물자가 풍부하여 없는 것이 없다. 우리는 애초에 외국 오랑캐의 물건에 기대어 없는 것을 얻어 편리를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 도자기, 비단은 너희 서양 각국에게 필수품이 된다고 하니, 내 그것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은혜를 베풀고자한다. 아모이에 서양 상점을 열어 일상 생활에 도움이 되고 은덕을 입도록 했던 것이다.

지금 너희 나라의 사절은 이와 같이 정해 놓은 것 이외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아닌가? 이것은 우리가 먼 나라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사방의 오랑캐를 어루만져 기른다는 정신에 거스르는 일이다.

- 영국 사절 매카트니에게 내린 건륭제의 칙서, 1793 -

즉, 전성기의 청은 영국 등 서양이 무역을 요구할 때마다 <조공무역>을 고집합니다. 서양은 국가간 대등한 자유무역을 원하지만, 당시 세계 국가인 청은 서양의 무역체계를 이해할 필요가 없었고, 서양에서 가져다 쓸 필요한 물건도 없었습니다. 산업혁명기의 영국 양모보다 청의 수공업 양모옷이 인기있었고, 차와 도자기 등의 중국 물건은 서양인들이 원했던 것일 뿐 중국인들이 사다 쓸 물건이 많이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나, 19세기 중국 사회의 불안으로 이러한 무역 체계가 점차 바뀌게 됩니다. 특히, 19세기 이후 영국이 삼각무역을 통해 <아편>을 중국에 팔기 시작하면서 전세가 뒤집어지죠... 자, 그럼 본격적으로 중국 근대화 과정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다음 장에서 다룰 내용은 중국 최초의 근대 조약인 <남경조약>과 아편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음 장부터는 지도와 도표를 많이 첨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참조하세요...

아틀라스 중국사(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03) 상세보기
박한제 지음 | 사계절 펴냄
지도와 함께 읽는 중국사 개설서 입체적인 역사 체험을 제공하는『아틀라스 역사』시리즈. 시간 중심적인 역사 서술을 탈피하고, 시간과 공간을 대등하게 아우르며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역사책이다. 상세한 텍스트와 생생한 지도가 함께 어우어져 있어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지형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음영기복도를 사용하였으며, 풍부한 도판 자료와 시각화된 통계 자료를 곳곳에 배
이야기 중국사(한권으로 정리한) 상세보기
조관희 엮 지음 | 청아출판사 펴냄
신화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사건과 인물을 통한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쓴 책. 서두에 신화시대를 넣음으로써 중국인 특유의 사고 원형을 살펴볼 수 있게 했으며 아편전쟁이 이후 홍콩의 반환까지를 다루었다.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서해역사책방 6) 상세보기
신성곤 외 지음 | 서해문집 펴냄
일반 독자를 위한 중국역사책.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1부는 중국문명의 형성과 발전, 2부 근대 이후 중국역사의 전개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했다.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소홀히 취급되어 온 중국의 문화, 생활사에 대한 연구를 보완했으며, 사진, 지도 등 다양한 시각적 자료를 활용했다. 또한 그동안 우리나라 역사책에서 다루지 않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를 포함시켰다.
이야기 중국사 3(이야기 역사 시리즈) 상세보기
김희영 지음 | 청아출판사 펴냄
재미있는 중국 역사 이야기 이야기 역사 시리즈 <이야기 중국사>.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국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동양의 고전 가운데「사기」「자치통감」「십팔사략」등을 기본으로 기타 역대의 역사 서적을 참고하여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내용을 채록하고 재구성하였다. 이 책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중국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 특성과 의의 등을 살
중국역사상의 민간종교운동: 백련교의 실체와 그 박해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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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교의 실체와 그 박해를 연구한 책. 전통시대 중국에서의 민간 비밀종교인 백련교를 종래의 입장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저자는 기존의 백련교에 대한 해석과 현장연구ㆍ보권연구에서 얻어진 실제의 상이 불일치하는 이유를 지배층의 민간 비밀종교 집단들에 대한 인식에서 초래된 것이라고 보며,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양장본]
영화로 이해하는 중국 근현대 상세보기
박완호 지음 | 르네상스(최미화) 펴냄
영화를 통해 중국 근현대사를 탐색하는 <영화로 이해하는 중국 근현대>. 대학 강단에서 수년간 중국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노력해온 몇몇 교수들의 강의 노트를 한 권으로 엮어낸 것이다. 영화를 통해 다양한 시각적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상과 삶의 모습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150년 굴절의 중국 근현대를 시기별로 담은 다수의 영화들을 바탕으로, 중국 근현대사의
동양사개론(개정판) 상세보기
신채식 지음 | 삼영사 펴냄
동아시아의 역사발전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 동양사 개론서. 한국동양사학계의 연구업적과 관련시켜가면서 참고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제1부에서는 동아시아 문명의 시작과 고대국가의 형성과정을, 제2부에서는 고대제국의 발전과 동아시아문화권의 형성을, 제3부에서는 중국 사대부서민사회의 형성과 북아시아 정복왕조의 발전과정을, 제4부에서는 동아시아의 변혁과 혁명을 살펴본다. 이번 개정판에는 1993년부터 최근까
종횡무진 동양사 상세보기
남경태 지음 | 그린비 펴냄
동양의 역사를 태어남과 자람, 뒤섞임의 세 단계로 나누어 교과서보다는 가볍게 무협지보다는 무겁게 풀어냈다. 동양사의 세 가지 축을 중국-인도-일본으로 보고 있는 저자는 세나라의 개별적인 역사와 주변국과의 교류 과정을 찬찬히 읽어나간다. 전체 3부로 이뤄진 이 책 1부에서는 중국, 인도, 일본의 역사가 시작된 과정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세나라가 나름대로 독자적인 성장과 발전을 해온 과정, 그리고 제3부에서는 그들
중국은 있다(백범흠의 동양사 오딧세이) 상세보기
백범흠 지음 | 혜민원 펴냄
백범흠의 동양사 오딧세이 <중국은 있다>. 주제네바 1등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현직 외교관이 세계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힘의 원천을 역사, 외교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고찰한 책이다. 농경민족인 한족과 북방유목민족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중국 역사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학자적 시각과 함께,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직업외교관의 현실 외교적 시각을 제시한다. 이 책은 중국문명이 외부를 향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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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이야기 32 - 중국 역대 왕조의 황제지배체제의 개요

이번 장에서는 진나라가 최초로 황제지배체제를 실시한 이후 중국 역대 황제지배체제를 간략히 다뤄보고 그와 연결 된 옥세제도에 대해 말해볼겠습니다.

1. 중국의 황제지배체제 : 이론적 근거 1 - 법가사상

황제지배체제가 성립된 것은 춘추전국시대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강력한 법가적 변법을 실시하면서 <제민지배체제>가 이루어진 시기와 일치합니다.

황제지배체제의 근간은 법가인데, 초기 진시황의 황제지배체제는 오로지 법가사상만으로 제민을 완성하려 했으므로, 쉽게 무너진 경향이 있습니다. 이후 한나라의 무제는 유교의 가부장적인 군주관과 민간의 신비주의(동중서의 천인상응론 등)까지 이용하여 황제지배체제의 이념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럼 황제지배체제의 근간을 이룬 법가사상의 근거를 볼까요?

우선 전국시대 이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중앙집권적 관료제, 군현제, 제민지배체제의 양상을 진시황제가 전국적으로 일원화하여 실시합니다. 이 제도가 신해혁명기까지 중국 제도의 근간을 이룹니다.

법가사상은 이 황제 지배체제를 위한 사상적 근거인, 법치, 술치, 세치를 제공합니다.

법치 : 황제의 조칙, 백관과 인민을 규제하며 상, 벌이라는 개념으로 법치주의 완성
   술치 : 황제가 신하를 다루는 기술이자 명령의 수단, 법을 집행하기 위한 관료제도
   세치 : 황제의 위세,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절대적 권위

일단, <세치>란 하늘의 다스림(천치)와도 통하는 말로, 신도가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군주의 통치는 하늘에서 부여받은 위세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즉, 군주는 신성하고 위대한 자로서, 감히 신하가 넘볼 수 없는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론입니다. 따라서 신하가 군주에게 복종하는 것은 유가에서 말하는 <덕>이나, 묵가가 말하는 <선양>의 개념이 아니라 그 <위세와 세력>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 세치의 개념은 곧 <군주권의 신성화>라는 맥락에 닿아있습니다.

<술치>는 군주가 위세를 가지고 세치를 완성할 때 필요한 방법으로 신하를 다스리는 <기술>을 말합니다. 국왕은 강력한 권한을 과시하기 위해서 신하들을 벌벌 떨게 만들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관료들을 장악해야 하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권모술수>를 적용해서라도 신하들을 휘어잡아야 합니다. 또 <관료제>를 정비하여, 국왕 밑에 관료들을 귀속시키고,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는 능력을 갖춤으로서 신하들이 국왕을 두렵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즉 술치는 국왕이 신성하다는 <세치>를 이루기 위한 <기술>입니다. 술치를 강조한 사람은 신불해입니다.

<법치>는 군주가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근본으로, 법에 의한 통치를 말합니다. 누구든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법을 기본으로 상과 벌을 내리면, 국가는 자연스럽게 기틀이 잡히고 부국강병을 이룬다는 논리입니다. 변법을 추구하는 변법주의자들이 법치를 강조했으며, 대표적으로 상앙, 이사, 이회, 추기, 한비자 등이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법치, 술치, 세치를 종합하여 법가주의를 완성한 사람이 <한비자> 입니다. 그는 <순자>의 제자이자, 이사와 동문으로 <성악설>에 기반하여 법치주의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악함을 말하며, 엄형주의와 신상필벌을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술치, 세치는 사실 <법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법치>를 완성할 때, 군주의 술치, 세치는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강한 법치를 추구함으로서 백성, 관리, 국정을 모두 총괄할 수 있는데, 이중 관리를 통제하는 것에는 <술치>가 뒷받침되고, 국정을 운영하는 데에는 국왕의 위세(세치)가 이용된다고 말합니다. 실제 춘추전국을 통일한 진에서는 남방 초나라 출신인 한비자를 초빙하여 <법치>를 배우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비자는 동문인 <이사>의 질투로 인해 진에서 쓸쓸히 죽게 되죠.

2. 중국의 황제지배체제 : 이론적 근거 2 - 유교와 민간신앙

법가주의적 통치는 황제지배체제의 근간이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엄격한 형벌만을 강요하면 백성들은 반발할 것이니까요. 그래서 멸망한 나라가 바로 진시황제의 진입니다.

한나라에서는 민간신앙을 도용하여 법가를 지원하고 군주권을 더 확립하려고 하였는데, 그 때 이용한 사상이 동중서의 천인상응론입니다. 하늘과 인간은 서로 상응하여 국왕의 정당성을 보장한다는 이 이론은 추연의 음양가 사상을 이용하여 5행의 우주 순행과 하늘의 이치, 국왕의 통치는 결국 같은 맥락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또 한대 유교를 관학화 했던 동중서는 <가부장적인 유교 가족윤리>를 국가적으로 확대하여 활용합니다. 즉, 집안에서 가장을 모시듯, 국가에서는 황제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 우주의 진리이며, 황제권과 가부장권은 충, 효를 바탕으로 서로 보완하는 단계임을 주장한 것이지요. 이것은 유교윤리가 국가윤리화 됨과 동시에,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른 윤리를 주장함으로서 유교를 미신화하기도 한 논리였습니다.

3. 황제지배체제의 변천 과정

황제지배체제가 성립한 것은 진시황 때입니다. 이 때의 황제지배는 철저한 법가주의적 사상에 기반을 둔 것으로, 타사상을 탄압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분서갱유와 같은 유명한 사건이 그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법가적 지배체제는 단명하고 맙니다.

대부분 중국문화가 한나라 때 완성되듯, 한무제 기에 <황제지배체제>는 완성되었습니다. 한무제는 법가적 지배체제라는 기본 틀에다가 동중서 등이 제안한 <유교적 통치이념>을 접목시켰습니다. 즉, 체제는 법가지만, 그 바탕 이념은 덕치주의라는 <이념>을 뒤집어씌운 것이지요. 이것은 실제 통치체제에 있어서는 군현제, 제민지배라는 법가를 활용하면서도, 통치이념은 덕치주의, 예약주의, 중용사상 등을 강조함으로서 효율적인 통치를 완성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하게 완성된 황제지배체제는 한의 멸망이후 긴 혼란기를 겪다가 당나라기에 와서는 신권에 의해 제약을 받습니다.

당나라는 율령을 기반으로 하는 제도를 완비하면서 3성 6부체제를 정비합니다. 이 제도가 완성되면서 과거 왕권을 뒷받침하던 3공, 9경 등의 모든 제도가 신권과 절충된 제도로 바뀝니다. 특히 당에서는 귀족적 사회가 발달했던 만큼, 신권이 황제권을 제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었습니다. 바로 봉박권(거부권)을 말하죠.

당의 3성 중 문하성은 황제권의 견제가 가능했습니다. 중서성이 기획을 하면, 문하성의 귀족들은 봉박(거부)권을 가지고 있었고, 상서성은 결정된 내용을 실행합니다. 따라서 3성 6부의 출현은 황제지배체제가 전제적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의 장치인 것이죠.

송나라 때에는 오랜 절도사의 변란을 겪은 송의 태조 조광윤이 황제 1원적 독재체제를 구상합니다. 재상권은 약화시키고, 각종 황제권 강화 제도를 도입하여 귀족들이 꼼짝도 못하도록 만들었고, 모든 군권을 황제가 통솔해 버리면서 철저한 문치주의 정책을 실시합니다. 이것으로 국내 황제권은 강화되었지만, 국가 전체 세력, 특히 국방력은 약해져서 외세에 의해 황제권이 간섭당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합니다.

명대에는 송대보다 더 강력한 황제독재권을 시도합니다. 아예 재상제도를 폐지해 버리고, 중서성을 업애버여 3성의 권한을 국왕이 빼앗아버립니다. 6부는 국왕직속으로 만든 뒤, 6부를 각각 별도의 부서가 관할하도록 쪼개버립니다. 군사권은 5군 도독부가 가짐으로서 국왕에 대한 쿠테다를 사전에 막고, 도찰원, 금의위 등 감찰기관은 대폭 늘입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권은 차츰 강화되었고, 그 완성이 바로 <청나라>입니다.

청나라의 전성기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시대에는 내각제도가 거의 유명무실해지면서 황제가 모든 전권을 잡았으며, 중국 역대 왕조를 통털어 최 전성기를 누립니다. 당시 설치한 지방 통제를 위한 주접제도, 그리고 군기처는 황제권의 절정을 보여주는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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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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