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편>

14화. 달마 이야기 : 지식은 권력층만의 것이 될 수 없다.

1. 선(禪)이란 본래 수행방법이었다.

선(禪)은 원래 인도 불교의 수행방법으로서 <요가의 명상법>과 비슷한 것이었다. 선은 범어로 드야나(dlhyana)를 번역한 것인데, 원 뜻은 <집중하여 생각한다> 이다.

그런데, 이 수행방법이었던 선이 어떻게 동아시아 불교에서 가장 큰 위상을 차지한 <종파>로 거듭나게 되었을까? 오늘은 선 사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중국에서의 <선종>은 보리달마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데, 달마가 중국에 건너오기 전의 <선>을 교학선이라고 한다. <교학선>이란, 소승불교에서 개인 수양을 위해 적어놓은 <호흡법> 등과, 대승불교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요가수행법 등을 바탕으로 한 <명상법>을 말한다. 경전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교종> 종파들이 책을 읽은 후 수행법으로 익힌 것이다.

따라서 <교학선>은 독자적인 선종 종파로 볼 수 없다. 교종의 진보적인 스님들이 수행법을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이 스님들도 선종과 관계없이 그냥 <선사>라고 부를 뿐이다. 원래 <선사>란, 종파와 관계없이 선법을 익힌 모든 스님들을 칭하는 호칭이었다.

그럼 선종(禪宗) 조사는 누구일까? 말은 많지만, 대부분이 <달마>를 조사로 인정하고 있다. 원래 인도에서의 선은, 신비주의적인 <도술>과 같았다. 숨쉬기를 통해 <공중부양>을 한다는 요가법을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중국인들이 종교로 인정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그래서 처음 달마가 중국에 선을 소개했을 때, 불교인들은 달마를 인정하지 않았던 듯 싶다.

지금이야 무협지에서 장풍을 쏘고, 축지법을 쓰고 난리도 아니지만... 무협지의 기본 배경이 되는 불교 종파가 바로 달마를 시조로 하는 선법 계열이다.

달마에 대해 남겨진 기록이 너무 적기 때문에 그는 소림사에서 장풍이나 날렸던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버렸다. 달마가 지었다는 <이입사행론>이나 그의 철학인 <일심사상>도 후대인들이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달마의 저서가 후대작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 책으로 그의 철학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2. 달마 : 마음으로 경전을 읽을 수는 없는가?

달마는 극심한 혼란으로 어수선한 남북조 시기의 <남조>에 건너왔다. 당시 중국 남부를 지배하고 있던 양나라의 무제는 <불법의 수호자>를 칭하는 인물이었다. 양조는 달마대사가 오자,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기 시작한다. 평생 절을 짓고, 경전을 번역하고, 승려들을 공경한 자신을 자랑하며,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었다.

당시, 남조의 왕은 스스로를 미륵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귀족들은 미륵을 보호하는 보살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공덕을 많이 쌓으면 부처가 될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경전을 읽고 있었다. 백성들은 글을 모른다. 사후세계의 주인은 <지식을 독점>하고 있는 귀족들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달마의 대답은 왕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당신은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마치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대답에서 선종의 선사상이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자연>과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선종은 가진 자들이 <스스로를 위해> 공덕을 베푼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공덕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인간성>을 먼저 아는 것이며, 본래 내가 누군가를 아는 것이다.

달마의 사상은 <이입사행론>에 자세히 나와있다.

이입사행론(理入四行論)의 핵심은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이다.

이(理)는 깨달음(이치)를 말하는 것이고, 행(行)은 실천을 말한다. 즉, 깨달음을 얻고, 실천하라는 것이 이입사행인데, 깨달음의 핵심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성>을 아는 것이고, 실천의 핵심은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을 말한다.

보리달마는, 남조의 왕이 <공덕>에만 욕심을 내고, 깨달음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남조의 지배층은 공덕을 무시하는 달마를 배척하였다. 달마가 쫓겨난 것인지, 수행을 위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는 숭산 소림사로 들어가 9년간 면벽 수련을 한다.

그런데, 면벽(벽관) 수련이란 어떤 수행법일까? 용어 그대로 벽을 보며 외부의 모든 것을 차단하는 수련을 말한다. 이것은 사방이 차단되어 아무런 번뇌도 나에게 들어올 수 없는 상태를 만들고,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었다.

3. 경전을 버려야 하는가, 경전에서 참뜻을 구해야 하는가?

중국 불교 초기에 선사상이 <교학선>이라면, 달마와 그 후계자들로 이어지는 선사상을 <여래선>이라고 한다.

여래선은, 부처라는 인격을 절대적으로 보려는 기존 교종 사상과 차별되는 사상이다. 여래선에서는 기존 경전보다 <능가경>에 나오는 <여래선> 사상을 강조한다.

보리달마가 가장 중요시한 <능가경>에는 4가지 선사상이 나온다.

1단계 : 우부소행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시작하는 단계

2단계 : 관찰의상선

모든 것이 무(無)라는 것을 알고 사물을 바로 알아가는 단계

3단계 : 반연진여선

진여(사물의 실제)를 알기 위해 경전의 진리(반야)에 집착히지 않는 단계

4단계 : 여래청정선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위해 실천하며 살며, 마음이 지배하는 단계

능가경은, 수행과 깨달음을 위한 선을 4단계로 분류한 뒤, 여래선이 최고의 선이라고 규정하였다. 달마 이후 선종 조사들은 스스로의 선을 여래선이라 불렀는데, 그 핵심은 <마음>이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다. 죽고 사는 것도 <마음>이 느끼는 것이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마음>이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마음은 인간이었던 부처와 다를 바가 없다. 마음은 모두 같은 것이기에, 부처의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여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에서 <마음>에 해당하는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우선인 것이다.

손을 하나로 모으는 <합장>은 악수와 다르게, 내 스스로의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수화이다. 사실 우리의 모든 것은 마음이 시키는 것이다.

<밥 먹을 땐 밥을 먹고, 이야기힐 때는 말하고, 차를 마실 때는 차를 마신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 마음이 시키는 하나의 행동이란 것을 중생들이 모를 뿐이다. - 보조국사 지눌 - >

여래선에서 말하는 마음은 크게 2가지이다. 진리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마음을 <진여문>이라고 하고, 죽음이 덧없음을 아는 마음을 <생멸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진리가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모두 <마음>에 달렸으니, 부처가 되어 <성불>하는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다. 따라서 능가경에서 주장하는 것은 부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마음>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종에서는 <경전의 말씀>만 강조한다. 그러나, 경전으로 깨닫는 것은 <지식의 독점>일 뿐이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없고, 심오한 철학을 접할 시간도 없는 일반민에게 성불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이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부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달마의 사상은 획기적이면서도, 지배층에게 배척당할 수 밖에 없는 사상이었다. 그리고, 달마의 후계자들 중에 <마음>을 강하게 강조하는 이들일수록 탄압받게 되었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자는 <달마의 직계 계승자>들이었다. 그 이야기를 계속 해보려고 한다.

4. 이심전심(以心傳心) : 선종의 시조 마하가섭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보자. 선종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는 마하가섭의 이야기이다.

석가가 인도에서 전도할 때,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꽃 한송이를 여러 사람에게 보였다. 모두가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 할 때, 마하가섭이라는 제자가 씩~ 웃으며, 나는 석가모니의 뜻을 알 것 같은데요... 하는 표정으로 석가를 쳐다보았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정법과 원리가 이미 가섭에게 전달되었구나"

이렇게 마음으로 마음을 깨닫는 경지를 이심전심이라고 한다. 그 후로, 눈빛만으로 그 뜻을 깨닫는 이 일화를 <염화시중의 미소>라고 말한다. 이렇게 이심전심의 깨달음으로 창시된 종교가 선종이고, 마하가섭을 인도 선법의 시조라고 부르게 되었다.

선종의 역사를 정리한 <능가사자기>는 마하가섭을 시조로 달마를 중국선조(2대조)로 기록하고 있다.

달마는, 이렇게 마음으로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이심전심>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그 실천사상이 담겨있는 <능가경>을 핵심경전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시조 달마 이후 2조 선사부터 5대 선사까지의 시대를 능가경에 의지한다고 해서, <능가종>이라고 부른다.

1대 달마는, 기존 교종처럼 지식의 유무를 테스트하여 2조를 선택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 사람에게 의발을 전하여 후계자를 뽑은 것이다. 의발이란, 중들이 입는 옷(가사)와 지팡이를 말하는데, 이 두가지를 전수받은 제자가 종파 조사가 되는 것이다.

달마에게는 <혜가>라는 제자가 있었다. 혜가는 면벽수련을 하는 달마에게 법을 구했으나, 제자가 되지 못하였다. 정성을 다하여 달마를 모시고, 성실하게 생활하였으나 제자가 될 수 없었다.

혜가는 입실 허락을 기다리다가 다시 달마에게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달마는 혜가를 바라보았는데,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불안한 너의 마음이 무엇인지 가져오너라.>

혜가는 스승의 눈빛을 이해한 뒤, 칼을 뽑아 왼팔을 끊어 달마 앞에 보여주면서,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켜 달라고 하였다. 달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네 그 마음을 이리 가져오너라. 내가 널 편안하게 해 주어야겠구나.>

그리하여, 마음에서 마음으로 조사를 넘겨주는 선종의 전통이 생긴 것이다. 시조 달마에서 5대조 흥인까지는 이렇게 이심전심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능가경>을 경전으로 선사상을 실천해 나갔다. 그러나, 6대조 혜능에 이르러 <능가경>조차 버리게 되는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그럼 선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혜능>의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5. 혜능과 신수 : 남종선과 북종선으로....

선문의 5대조는 흥인이다. 흥인은 양자강 쌍봉산에서 <선>을 실천하고 있었다. 아직 선종이라는 종파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모임을 <동산법문>이라는 문파로 부르고 있었다. 이 종파는, 달마의 면벽수련과 정토종식 염불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흥인 역시, 부처와 인간의 심성은 동일하며 누구나 부처가 되어 성불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인간의 본성에 접근하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중국의 오랜 분열시기가 끝나고, 수나라에 의해 중국이 통일된 시기였다. 그 때문인지, 흥인은 안정적으로 불법을 설교할 수 있었고,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흥인의 제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신수, 혜능, 법지였다. 신수는 가장 뛰어난 제자로 흥인의 후계자로 지목받았던 인물이다.

반면, 혜능은 남조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흥인을 만나고자 일부러 찾아온 인물이었고, 절에서 방앗간 허드렛일이나 하는 자로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어느 날, 신수는 평소 자신의 사상을 5언률의 게어로 지어 스승이 지나가는 길목에 자랑스레 붙여놓았다. 모든 이들이 신수의 학식에 감탄했으며, 스승 또한 선사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며 칭찬하였다.

몸은 곧 보리수이고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다. 때때로 힘쓰고 털어내어서 번뇌가 다가오도록 해서는 안되겠구나.

그러나, 혜능은 신수의 게어가 이해되지 않았다. <선>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무를 깨닫고, 결국에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깨닫는 것이다. 보리수와 거울의 비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혜능은 글을 모르기에, 다른 사랑에게 부탁하여 글을 적었고, 자신의 게어를 신수의 게어 옆에 붙여두었다.

보리라는 나무도 본래 없는 것이고, 맑은 거울이란 것도 그 본질이 없는 것이다. 본래 아무 것도 없는 사물일 뿐인데, 어느 곳에 먼지가 쌓인단 말인가?

혜능의 게어를 본 흥인은, 진정한 선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깨달은 혜능에게 옷과 지팡이를 전해주고, 선문 6대조로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신수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혜능을 남쪽으로 피신시켰다.

30살을 갓 넘긴, 혜능은 남쪽으로 내려가 16년 동안 평민들과 어울려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종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는 것을 보고 난 후, 그의 토론하여 그를 <마음>으로 제압하였다. 그리고 정식으로 출가하여 <남종선>을 개창하였다.

혜능의 선사상은 달마의 수행법인 좌선수행을 벗어난 것이었다. 혜능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선문답>이었다. 혜능의 6대조부터 선종은 <여래선>을 벗어나 <조사선>이라 불리게 되었고, 동아시아 선종은 바로 이 <조사선> 계통이 된 것이다.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혜능이 6대조가 되어 <남종선>을 연 동안, 정통 제자로 여겨졌던 신수는 무엇을 했을까? 신수와 그를 지지하는 제자들은 <북종선>을 개창하였다. 훗날, 북종선이라 불린 신수의 선종 문파는 경전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승불교의 여러 교단을 선종의 이론으로 통합하려고 노력하였다.

원래 유교와 도교의 이론에도 정통하였던 신수는, 당나라 무측천(측천무후)의 신임을 얻어 대통선이라는 지위에 올랐다. 국가가 인정하는 최고의 선종 고승이 된 그는, 대승불교를 <마음>의 관점에서 통합하려 했지만, 그가 죽은 뒤 교단 자체가 힘을 잃게 된다. 당나라의 지배층 입장에서는 <마음> 따위를 강조하면서 <불교>를 평민들과 <공유>하려고 한 그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또한, 혜능의 진보적인 교단이 남부지방을 석권하면서 신수 일파의 북종선이 일방적으로 비판당했기 때문이다.

신수, 혜능과 같이 흥인의 제자였던 법지는 아예 독립적인 교단을 차려 나갔는데, 그가 주장했던 것은 염불을 통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종파를 <우두종>이라고 하지만, 염불을 강조한다는 교단 성격이 정토종과 비슷하기 때문에 곧 잊혀지게 되었다.

6. <직지인심>을 계승한 선종

일자무식이라 여겨진 혜능이 선종을 <종파>로 만들어 버린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혜능부터 <조서선>이라 불린 선종은 이론적으로 현재의 선종과 유사해졌다.

불립문자

문자에 의지하지 않음

교외별전

경전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음

이심전심

마음을 통해 마음으로 전함

직지인심

사람의 마음(본성)을 한번에 깨달음

견성성불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될 마음을 타고 났으므로, 부처가 될 수 있음

선종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음>인데, <마음>은 결코 경전으로 알 수 없다. 일상속에서 깨달을 수도 있으며, 수행을 통해 깨달을 수도 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으므로, 문자에 의지할 필요도 없으며 서로의 마음을 공유한다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혜능은 이러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주장하였다. 그는, 오랜 시간의 면벽(좌선, 참선)보다도 선문답을 통한다면 더 빠른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말하였고, 어느 순간 단번에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돈오견성)

또, 혜능은 수행을 통한 번뇌 해소보다 깨달음을 통해 바른 성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원래 번뇌와 지혜는 하나이다. 참과 거짓도 수행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에서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 것을 <돈오>라고 하자. 깨닫기 위해 문제를 파악하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을 <화두>라고 한다. 그리고, 큰 <화두>를 풀기 위해 고민하는 것을 <공부>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요즘 이슈가 되는 <화두>는 이거야... 대학갈려면 <공부> 안할래?... 이렇게 단어들은 모두 선종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불가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이다.

혜능이 말한 <조사선>은 자신이 알아야 할 <화두>를 열심히 <공부>해서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는 <돈오>에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깨달음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은 기존 <지식>에 얽매여있기 때문이다. 기존 교종의 입장은 <경전>을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성 자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화두>가 그것인데, 왜 <공부>만 시키려 드는가?

내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달은 안보고 왜 손가락만 보는가?

선종에서 말하는 비유는 위 문장과 같다. 석가가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교종은 석가의 손가락만 보면서 찬양하고 있다. 석가의 <마음>은 이미 달로 향했는데, 교종은 마음이 아닌 석가의 <손가락>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첫 번째 할 일은 석가의 손가락을 떠나 석가의 눈을 보면서 그가 향하고 있는 <마음>을 같이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심전심이다.

7. 선종 문파의 창궐...

혜능 이후, <남종선>은 중국을 대표하는 <선종>이 되었으며, 동아시아 각지에 전파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선종은 그 영향력 만큼이나 종파가 너무 다양해서 이름만 듣고서는 너무 생소할 정도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일본에 유입된 선종 종파들의 이름이기 때문에 간략히 언급만 하고 넘어가보자.

혜능의 문하에서 배출된 큰 종파는 마조도일의 <홍주종>과 석두희천의 <석두종>이다. 특히 혜능의 사상이 선종문파로 활성화 된 것은 <홍주종>의 영향이 크다. 홍주종에서는 마음으로 깨닫기 위해서는 <평상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조도일의 제자인 백장회혜는 선종의 계율을 만들었는데, 함께 수행하고 선문답하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규율이 불가에서 중요시하는 <백장청규>이며, 이 때 부터 선종이라는 종파가 독립적으로 사원을 짓고, 규율에 맞춰 생활하게 되었다.

선종은 <경전>과 <문자>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마음>을 중요하기 생각하기 때문에, <규율>이 강한 편이다. 또, 경전을 대신해서 선조 조사들의 <어록>을 경전과 같이 소중히 다룬다. 신약 성경이 예수의 말을 모아둔 제자들의 이야기라면, 선종의 <어록>은 선종 조사들의 이야기를 모아둔 <성경>이다.

선종에서는 석가모니의 제자였던 마하가습부터 달마, 혜능 등으로 이어지는 법통을 부처의 <직계 사상 계승>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석가모니부터 현재까지의 조사들의 말씀은 곧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후, 마조도일의 홍주종에서 위앙종, 임제종이 나왔다. 석두희천의 석두종에서는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이 나왔는데, 이들 5개의 종파를 선종5가라고 말한다. 또, 송나라 때 임제종에서 황룡파, 양기파가 나와 이 때는 선종7종이라고 부른다.



위앙종

  무위무사 : 마조도일의 평정심 강조, 마음을 평안히 하면 번뇌가 사라짐

임제종

  임제의현의 개창, 황룡파와 양기파 배출, 즉시 깨달음을 강조, 간화선 강조



조동종

  설법과 언행이 중요함을 강조함, 묵조선 강조

운문종

  운문어록에 적힌 적은 글자 수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간결한 깨달음 강조

법안종

  화엄의 일심사상을 바탕으로 선을 받아들여 선종과 교종의 통합을 강조

선종은 고려 이후 한반도에서도 주류 불교종파로 명맥을 이어나갔다. 이 중 법안종은 고려시대 초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불교 통합을 시도하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졌고, 임제종은 불교가 침체되고 성리학이 유행했던 조선시대에도 명맥을 이어나갔다.

특히, 선종 5가 중에서 임제종과 조동종은 중국 송나라 시기 라이벌 관계였다. 그것은 간화선 사상과 묵조선 사상의 차이 때문이었다.

<간화선看話善>이란, 선종 조사들이 남긴 <어록>들을 공식 문서로 만들어 참고 자료로 활용한 다는 뜻이다. 만들어서 보고(看), 선조들과 대화하여(話) 자신의 본질을 알고, 바로 깨닫는 것이다. 간화의 <화>란 앞서 말한 <화두>의 약자이다.

<묵조선黙照禪>이란, 묵묵히(黙) 자신을 찾는(照) 수양법이다. 즉, 고요한 곳에서 수행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서로간의 토론을 통해 자신을 찾는 방법이다. 묵조의 <조>란 자신을 안다는 지(知) 자의 다른 표현이다.

   간화선이든, 묵조선이든 후대 선종 종파들은 한가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으며, 그 고민을 풀기 위해 각각 자신의 종파 이론이 달마의 뜻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안고 있던 고민은 조사 달마에 관한 것이였다.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도대체, 달마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인가? 그가 중국에 남기려고 한 선법은 석가모니의 인도 선법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그러나, 달마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그 정답은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달마에 대해 남긴 기록들은 후대의 제자들이 남긴 이야기일 뿐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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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선종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중국 불교에 대해서도 거의 정리된 듯 싶다. 중국 불교는 이제 끝이 났다. 왜냐면, 중국 송대 이후에는 성리학이라는 신유교가 사회 전반을 자리잡게 되면서 불교 이야기가 역사 속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중국 불교가 유학에 밀리는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고, 한국 불교로 넘어가려고 한다. 한국 불교 이야기는 딱딱한 불교 교리 설명이 거의 없을 듯 싶다. 중국 불교에서 다 짚고 넘어간 듯 싶으니까...

한국에서 불교가 유입된 배경과 불교와 관련된 정치, 경제, 문화적인 논리들, 몇몇 새롭게 등장한 독자적인 종파들을 설명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불교 이야기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처음 시작할 때 이야기 햇듯이 티벳과 인도 불교는 우리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필요할 때만 가끔 언급하도록 하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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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동아시아 불교 전파사 - 8장. 당나라 종파불교의 발전

지금까지 전개한 위진남북조와 수대의 불교사는 인도의 불교를 중국이 가져와서 그 참 뜻이 무엇인가를 밝히기도 전에 왕법에 의해 불법이 위축되었던 시기의 불교를 포스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나라 시기의 불교는 다릅니다. 당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제적이고 귀족적인 문화를 가진 개방성을 큰 특징으로 하는 만큼, 불교에 대한 입장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불교는 이제 왕법에 의해 탄압받기만 하는 호국불교를 뛰어넘어 불법의 참 뜻 자체를 연구하고, 불법에 따라 석가의 모든 사상을 이해하고 중국식으로 완성해가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 포문을 연 사람이 바로 현장법사(삼장법사)입니다.

또 당나라 이전 불법에 대한 대탄압인 <폐불사건>을 여러번 거치면서 불교계는 이전 단계보다 많이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불교계는 호국적인 성격으로 왕권에 봉사하는 자신들을 반성하면서, 불법의 독립성과 불교계 혁신운동이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불법의 본 뜻인 석가의 참 뜻이 무엇인가를 놓고 체계적인 불법을 만들어가는데, 이러한 불법 완성 속에서 여러 교단 종파가 탄생하게 됩니다.

1.수많은 종파가 과연 진정한 석가의 참 뜻을 아는가?

중국에서 성립된 종파불교는 사실 모두 석가의 참뜻이 무엇인가를 놓고 우물안에서 싸우던 개구리들아였습니다. 우물에서 바라본 하늘이 어떤 하늘이고, 어떤 크기인지 알 수 없듯이 중국 내부에서 바라보는 석가의 삶과 불법의 참뜻을 아는 자는 없었습니다. 7장에서 자세히 다룬 지의의 천태종은 수많은 불교종파를 통합하여 하나로 융합하려 노력하였고, 그 결과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남방 불교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천태종 역시 대립하는 불법을 융합하려는 시도의 종파였지, 불법의 참 의미를 찾던 종파는 아니였습니다.

실제, 당 초기까지 어떤 종파도 석가모니의 참 뜻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석가의 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에서 가져온 석가의 경전을 번역하여 읽는 것만으로는 그 심요한 원리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석가의 참 뜻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서역이나 인도로 가서 불법을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선진국에 유학가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죠. 서울에서 아무리 혼자 영문법책을 읽어도 영어발음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석가의 참 뜻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채 경전만을 읽고 석가를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많았던 것이죠.

따라서 당대에는 서역의 불경을 번역하는 작업보다는, 직접 서역에 가서 불법을 공부하고, 불법의 원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 사명을 다한 것이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현장법사)입니다.

2. 현장의 구법 여행이 시작되다!

중국 당나라에서 불교의 전성기가 시작되면서 천태종, 화엄종, 정토종, 선종 등 수많은 종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종파들은 각각 자신들이 말하는 경전을 석가의 참 뜻이라고 주장할 뿐, 석가의 참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밝혀내지 못합니다.

수문제 때 태어난 현장은 어느 한 종파에 만족하지 못하고, 수많은 문파를 오가며 불법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중국의 불경이 너무나 부족하고, 사상적인 체계도 완벽하지 못하며 불경의 해석도 제 각각인 것에 실망하였습니다. 현장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면서 코끼리를 설명하는> 중국 불교를 믿을 수가 없어서, 인도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인도에 가는 것은 너무도 험하고 어려운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국외로 출관하는 중국인을 처벌하였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은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가랴?>라고 말하며, 인도로 향합니다. 그 유명한 <대당서역기>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그에 대한 소설인 <서유기>의 시작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인도로 가는 동안 수많은 나라를 거치며 죽을 위기를 겪기도 하고, 고승으로서 환대를 받기도 합니다. 그는 결국 인도로 도착하여 석가가 수련했다는 보리수 밑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앞서간 사람들을 볼수 없듯이 뒤따라 올 사람을 만날 수도 없구나>라고 말하며 불법을 생각하다가, 인도 난타사에 머물었다고 합니다.

그는 난타사에서 1만의 수도승 중 최고 대우를 받으며 5년간 불법을 연구하고, 강론하였습니다. 인도에서는 그를 최고 고승으로 생각하여 구마라왕이 그를 데려오기 위해 전쟁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16년간의 인도생활을 마치고 중국 장안으로 돌아와 <대당서역기>를 저술하였습니다.

또한 인도에서 가져온 수많은 범어 경전을 해석하여 1335권을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구라마습과 현장의 불경 번역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여, 구라마습 이전의 경전을 고역경, 구라마습이 번역한 경전을 구역경, 현장이 번역한 경전을 신역경이라고 말합니다.

현장이 완성한 불법의 요체는 <나의 본체와 불법의 본체는 모두 머릿속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며 그 실체가 진실한 존재가 아니다. 실체는 실제 존재하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우리는 머릿속에 그린 아집과 법집을 깨뜨리고, 진정한 실체를 발견해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러한 견해를 불교에서는 <유식론>이라고 합니다.

유식론의 특징은 실체는 아무것도 없다는 <공사상>과 대립하는 <유식사상>으로, 부처의 진정한 말씀은 <아무것도 없다는 공사상이 아니라, 실체가 존재한다는 유사상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현장의 교리는 <법상종>이라는 종파로 체계화되고, 현장은 법상종의 시조가 됩니다. 이 법상종은 오랜 기간동안 종래 <공사상>에 기반을 둔 다른 종파들과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을 훗날 <공유논쟁>이라고 합니다.

현장은 일대 유학생이라고 보기에는 인도, 중국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큽니다. 인도에서도 수백년에 나올까말까한 고승으로 추앙받았고, 중국에서는 진정한 불법을 전파한 종파 불교의 아버지격이었으니까요. 명나라 오승은인 이러한 현장의 유학 생활을 소설로 발전시켜 <서유기>를 저술하였습니다.

3. 선종이 등장하다.

(이미 전에 선종을 설명했지만, 당대 혜능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한번 포스팅 합니다.)

선종은 원래 석가의 <염화시중의 미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석가가 인도에서 전도할 때,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꽃 한송이를 여러 사람에게 보였습니다. 모두가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 할 때, 마하가섭이라는 제자가 석가에게 웃음으로 그 뜻을 이해했음을 알렸습니다. 이것을 보고 석가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정법과 원리가 이미 가섭에게 전달되었구나"

이렇게 이심전심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눈빛만으로 그 뜻을 깨닫는 설법이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심전심의 깨달음으로 창시된 종교가 선종이고, 마하가섭이 바로 인도 선종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즉, 선종이란 내적 관찰과 자기 성찰로 등장한 불교 종파입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내세우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합니다. 선종에서는 언어나 문자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부처의 마음이 중생의 마음으로 와 닿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불심종(佛心宗)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선종에서는 인간이 본래 지닌 성품이 부처의 성품이라는 것만 알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중적인 희망을 던지는 종교였습니다.

선종에서는 복잡한 문자도 필요없으며, 단지 깨달음만으로 모든 선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선종은 묵가식의 노동을 중시하고, 유교식의 수양을 강조하며, 도교식의 민중화를 추구하는 다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섭 이후의 선종은 그 후계자 전법에 있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몇 마디 말로 불법을 전하였는데, 이 몇 마디 말을 <게어>라고 합니다. 게어란, 어떤 경전으로 정해진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뜻을 전하기 위해 짧막하게 적은 <작은 심어>를 말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은 무이고, 공이다>와 같이 짧은 언어 속에 많은 뜻을 함축하므로, 사람마다 알아듣는 이해도가 각각 다릅니다.

선종에서는 게어를 이해한 사람에게 의발을 전함으로서 후계자를 뽑습니다. 의발이란, 중들이 입는 가사와 바릿대로 달마가 제자에게 이 두가지 물건을 전했다는 것에서 유래된 말로서 선종의 후계자의 징표를 상징합니다.

선종은 28대 조사인 보리달마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습니다. 보리달마는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수련을 하고, 혜가라는 제자에게 의발을 준 뒤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도 인도에서처럼 말로 전법을 전하였기 때문에 초기 선종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달마에 대한 이야기는 무협지에 많이 나오는 듯 싶죠. 몇십년을 수련한 강호의 고수들이 동경하는 대상이 바로 달마대사로 나오니까요.

4. 혜능에 와서 북종선, 남종선이 완성되다

선종의 5대조인 흥인선사기에 제자를 뽑기 위해 제자들에게 <게어>를 적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가장 총명한 제자인 신수가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구나. 때때로 부지런히 마음을 갈고 닦아 티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꾸나>라는 게어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방앗간에서 일하는 소공인 혜능이란 자가 이것을 보고는

<보리는 원래 나무가 아니다. 명경 또한 집이 아니다. 본래부터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어디서 티클이 생간단 말인가?>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혜능은 글을 모르는 무식한 소공인 관계로 글을 아는 자가 이 말을 옮겨적어 게어로 만들었습니다.

홍인선사는 혜능의 말에 감동받아 그에게 선종 6대조의 의발을 물려주었습니다. 선종이 비록 이심전심과 불립문자를 통해 이루어진 <마음 수양만을 강조하는 종파>라고는 하지만, 글을 모르는 소공이 선종 조사가 된 일은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후 선종은 가장 총명한 후계자였던 신수의 북종선과, 글을 모르는 소공출신인 혜능의 남종선으로 갈리게 됩니다. 북종선은 선종교파 중에 비교적 지식을 강조하는 종파였고, 남종선은 오로지 <마음 외에는 없다>라는 심성수양을 강조하는 파였습니다. 북종선은 이후 당나라 측천무후 정권에 협력하면서 성장하였고, 남종선은 글을 모르는 대중속으로 파고들어 대중적인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종 중 대중적인 남종선은 우리 나라 선종에 큰 영향을 줍니다. 나말 여초의 호족세력과 6두품, 그리고 반신라 지식인들의 종교가 선종이었고, 고려 불교의 큰 흐름도 왕권의 교종과 민중적인 성향의 선종이 대립하며 주도해 나갑니다. 이 혜능의 남종선은 훗날 <심성수양>을 강조하는 성리학에도 영향을 주며, 시문 등 감정이 필요한 문학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남종선은 마음으로 믿는 다는 실천도덕이 지배층에도 환영받았으며 행사규칙인 백장청규를 마련하여 대중적 토대를 확실하게 합니다.

5. 법장의 화엄종 : 모든 것은 하나의 진리 세계로 통한다.

법장은 당나라 최고의 여걸 여황제 측천무후기에 활동하면서 <화엄종>이라는 교단을 완성한 고승입니다. 화엄종은 법장이 주장한 <진심>이라는 단어를 모든 것의 근원으로 보는 종파입니다. 이러한 진심을 정리한 경전이 바로 <화엄경>입니다.

법장은 현장의 <유식론>에 대하여 심한 불만을 가졌습니다. 도대체, <석가의 참 뜻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실체는 다르고, 실체는 있으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실체가 아닐 수 있다>라는 말이 무엇인가?

법장은 모든 것을 규정하는 하나의 <진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비우컨대 이 금사자의 본체는 금이라고 하는 질료이고 사자의 모습은 현상에 불과합니다. 금사자의 형상은 허무하여 실제가 없고 변동합니다.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한 무더기의 금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은 한 무더기의 금으로 고양이나 개, 호랑이의 형상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바로 오늘의 홍안이 내일의 백발로 되어 버림을 우리가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지, 수, 화, 풍 등 네 개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현상으로서의 사건은 비록 변할지라도 볼질로서의 그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사자의 모습이 늙어갈지라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의 본질이란 결국은 그 현상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마치 금사자의 형상이 없다면 그 존재마저도 알 수 없음과 같지요. 마찬가지로 육체라고 하는 껍데기가 없다면 인간의 본질이라 할 정신도 발휘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과 그 원리는 상호 의존하고 보완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위 말은 법장이 화엄의 원리를 측천무후에게 설명한 글입니다. 즉, 금사자의 눈도, 코도, 입도 금사자라고 부를 수 있고 금사자 전체를 금사자라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 금덩어리라는 본질로 이루어진 실체이며, 녹으면 본질인 금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금이라는 <진심>은 영원합니다. 인간의 육체는 살덩어리이지만, 그 본질인 영혼은 바뀌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의 원리 속에 흘러갑니다.

예로 산이 있으면, 그 산에 나무가 있고, 토끼가 있고, 돌맹이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봅니다. 나무를 본 사람은 나무가 진실이고, 토끼를 본 사람은 토끼가 진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본 것을 토대로 불법을 설명하면서 종파를 만듭니다. 그러나, 산 전체를 보고 산이 어떻게 시간에 따라 흘러가고, 산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며, 그 변화에 따라 나무와 토끼는 어떻게 될 지를 포괄적으로 보는 종파가 바로 화엄종입니다. 화엄이란, 모든 것을 하나의 둥근 원 속에서 파악한다는 <원융 사상>의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당대 이러한 종파 불교의 성립이 중국사 전체에 가지는 역사적 의의와 이후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파되는 과정, 그리고 이러한 불교가 중국에서 단절되듯 침체되고, 한반도에서 융성하게 되는 과정을 포스팅하겠습니다. 이제 한국 불교사로 넘어갈 때가 된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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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동아시아 불교 전파사 - 6장. 남북조 불교와 정토종, 선종의 역사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본격적으로 중국에 전해진 불교가 이민족 왕조인 북조, 중국왕조인 남조로 갈라진 뒤 수나라에 의해 통합되는 과정을 간략히 포스팅해보겠습니다.

1. 북조의 불교 : 불법이 왕법에 대해 도전할 수 없다!

북조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민족 왕조가 받아들인 이민족 종교>를 <호국>을 위해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초기 5호 16국 시대에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유 자치게 불교를 <왕권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던 점이 강하였습니다. 불교의 참뜻이나 교리는 굳이 국왕이 알 필요도 없었고, 단지 불교의 모든 핵심 교리에서 왕권에 유리한 측면만 부각시키려는 불교가 이 때의 불교였으니까요.

바로 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던 수많은 고승들이 바로 북조에서 활약했던 대표적인 고승들입니다. 불도징은 중국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수많은 역경을 겪고 인도로 건너왔으며, 도안, 혜원, 구라마습으로 이어지는 불교의 명맥은 불교가 중국에 토착화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혼란기에 북조 각 국의 지도자들은 유명한 고승들을 초빙하여 국가 방략을 얻으려 하였고, 고승들은 이러한 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중국에 불교사상을 전파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승들이 불교의 참뜻을 전파하려 노력하였다고 하더라도 북조의 지배자들은 불교의 <미신적, 주술적>인 측면과 <왕권 강화의 이데올로기>만을 선별하여 받아들였고, 초기 북조의 불교는 상당히 미신적, 격의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북조를 통일한 북위는 선비족의 왕조였습니다. 이들은 중국 전통의 사상인 유교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민족 왕조가 이민족 종교를 활용하여 중국 전통 사상에 쉽게 동화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북조의 많은 고승들은 <불교가 왕권에 의해 이데올로기로 이용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불교교리의 참 뜻은 <자비와 평등>을 바탕으로한 만민애의 정신이었고, 이것은 결코 정치적인 타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차츰 중국인들 스스로 불교에 대한 진리를 터득하고, 인도에 구법여행을 다녀오면서 불교가 결코 <왕권>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님을 알게됩니다.

왕법은 이러한 <불법>의 움직임에 대하여 <좌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만약 누군가 불교의 참 교리를 선동하면서 왕권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게 됩니다. 불법이 왕권을 벗어나려 할 때 마다 왕권은 불법을 탄압하곤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상 유명한 <폐불사건>들입니다.

2. 폐불 사건이 발생하다.

북조 최초의 폐불사건은 북위 태무제의 폐불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북위는 북조를 통일하고, 철저한 한화정책을 추진하려고 준비하는 시기였습니다. 북위는 한화정책을 위하여 한인 출신 관료들을 중용하였고, 중국 관료제를 선별하여 수용하였습니다.

이 때 북조 정권에 의해 등용된 최호 등의 한인들은 <이민족 왕조인 북위정권의 중국화>를 추구하려고 하였습니다. 최호는 철저한 유교주의 사상을 통하여 국왕을 교화하려 하였고, 불교를 이민족 종교로서 가치없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또한 이 북위 시대에는 중국 전래의 도가 사상이 구겸지에 의해 발전하여 <도교>사상으로 정립되는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유교주의 관료들과 도가사상가들은 외래종교인 불교를 탄압하여 불교를 추방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폐불사건>입니다.

그러나 중국관료인 최호일당과 선비족 귀족출신 관료들의 대립인 국사필화사건으로 최호 일당이 추방되면서, 불교는 선비족 관료들에 의해 보호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등장한 웅장한 석굴사원인 <윈강의 석굴사원>입니다.

특히 효문제가 낙양으로 천도하면서 용문의 석굴사원을 건설하였는데, 이 때를 기점으로 북조의 <불교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국가는 호국을 위해 불교를 보호하였고, 불교는 국가질서를 수호하는 종교로서 왕권에 충실한 종교로서 자리잡습니다.

그러나 <전성기>를 맞이한 불교가 왕법을 벗어나 독립적인 교리체계와 불법체계를 확립하려고 한다면, 국왕권에 의해 어김없이 탄압당하곤 하였습니다. 북위와 수나라의 중간 단계 국가인 북주에서는 승려가 너무 증가하고, 사원이 발전하면서 불법이 왕법을 능가하는 폐단이 발생하였고, 불교권력이 사회악으로 규정되기 까지 합니다. 이 때 또 다시 국왕에 의해 불교를 철저하게 탄압하는 <폐불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북위 태무제, 북주 무제, 당나라 무종 때의 폐불사건을 3무의 난이라고 하면서 대표적인 폐불사건이라고 부릅니다.)

3. 북위 불교는 외래적 색체가 강한 호국불교였다.

북위의 유명한 유적지인 윈강의 석굴사원은 <북조 정권에 의해 국가가 불교를 보호하는 호국불교>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때 석굴사원의 특징은, 인도에서 유입된 불교가 아직 중국식 불교로 정착되지 못하여 외래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즉, 인도의 아잔타 석굴의 양식과 인도 대승불교의 간다라 미술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효문제의 낙양 천도 후 건축한 용문의 불상을 보면 이러한 요소들이 대부분 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윈강에 비해서는 인도와 서방예술(간다라 양식)이 없어지고, 중국 고유의 불상예술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상의 성격이 단순한 미술이기보다는 <왕권을 수호하는 불법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북조의 북주 이래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함으로서 중국은 이제 수, 당 시대 불교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6세기 담란의 정토종, 달마의 선종 등 초기 종파불교가 성립되면서 수, 당대 불교는 수준낮은 격의 불교를 넘어서서 진정한 불교의 참뜻을 탐문하는 종파불교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4. 정토종이 등장하다!

6세기 등장한 초기 종파불교의 시작을 알린이는 500년경에 활약했던 담란입니다. 담란은 어렸을 때 반야경(반야4경)과 불성론, 공유론을 공부하고 난 후 모든 것은 <공>에 있다는 주장을 확립합니다. 그는 부처의 주장의 핵심은 <눈에 보이는 유식>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색즉시공>임을 말하면서 <생사해탈의 길은 선도에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선도>를 깨닫기 위해 동위 효정제 및에서 정토종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개창하였습니다. 그는 선도를 얻는 방법은 <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미타불이란, 복잡한 교리나 경전을 외우지 않고도 간단한 믿음, 즉 아미타불을 계속 말하는 것만으로 극락에 갈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을 핵심 교리로 하여 그가 개창한 것이 바로 중국 최초의 교단 성격의 불교인 <정토종>입니다. 그의 교리는 일본 정토진종의 개조 신란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한반도에 넘어와서는 원효의 <정토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정토종을 다룰 때 다시 한번 등장해야 할 인물이네요.

5. 선종이 등장하다!

선종은 원래 석가의 <염화시중의 미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석가가 인도에서 전도할 때,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꽃 한송이를 여러 사람에게 보였습니다. 모두가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 할 때, 마하가섭이라는 제자가 석가에게 웃음으로 그 뜻을 이해했음을 알렸습니다. 이것을 보고 석가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정법과 원리가 이미 가섭에게 전달되었구나"

이렇게 이심전심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눈빛만으로 그 뜻을 깨닫는 설법이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심전심의 깨달음으로 창시된 종교가 선종이고, 마하가섭이 바로 인도 선종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즉, 선종이란 내적 관찰과 자기 성찰로 등장한 불교 종파입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내세우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합니다. 선종에서는 언어나 문자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부처의 마음이 중생의 마음으로 와 닿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불심종(佛心宗)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선종에서는 인간이 본래 지닌 성품이 부처의 성품이라는 것만 알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중적인 희망을 던지는 종교였습니다.

선종에서는 복잡한 문자도 필요없으며, 단지 깨달음만으로 모든 선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선종은 묵가식의 노동을 중시하고, 유교식의 수양을 강조하며, 도교식의 민중화를 추구하는 다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섭 이후의 선종은 그 후계자 전법에 있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몇 마디 말로 불법을 전하였는데, 이 몇 마디 말을 <게어>라고 합니다. 게어란, 어떤 경전으로 정해진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뜻을 전하기 위해 짧막하게 적은 <작은 심어>를 말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은 무이고, 공이다>와 같이 짧은 언어 속에 많은 뜻을 함축하므로, 사람마다 알아듣는 이해도가 각각 다릅니다.

선종에서는 게어를 이해한 사람에게 의발을 전함으로서 후계자를 뽑습니다. 의발이란, 중들이 입는 가사와 바릿대로 달마가 제자에게 이 두가지 물건을 전했다는 것에서 유래된 말로서 선종의 후계자의 징표를 상징합니다.

선종은 28대 조사인 보리달마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습니다. 보리달마는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수련을 하고, 혜가라는 제자에게 의발을 준 뒤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도 인도에서처럼 말로 전법을 전하였기 때문에 초기 선종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달마에 대한 이야기는 무협지에 많이 나오는 듯 싶죠. 몇십년을 수련한 강호의 고수들이 동경하는 대상이 바로 달마대사로 나오니까요. 선종 이야기는 중국 당나라로 넘어가서 6대조 혜능의 이야기 때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6. 남조 시대의 불교는 일찍 종파불교가 시작되었다.

북위에서 불교가 철저하게 왕권에 의해 이용당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불교의 참 뜻에 대한 연구가 적었다면, 남조는 상대적으로 불법의 독자성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남조 국가들 자체가 왕권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남조는 한문 무장세력들이 창업하여, 북조를 견제하는 수준의 국가들이 근근히 명백을 이어간 왕조입니다. 실제 남조에서는 무장세력인 황제보다 귀족세력의 힘이 더 강했습니다. 따라서 불교는 불심이 강한 귀족들의 보호 속에서 불교 본래의 참 뜻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초기 남조에서 활약한 자가 바로 이전에 포스팅 했던 <혜원>입니다.

남조는 불교가 독자적으로 발전할 여건이 갖추어져서 다양한 종파불교가 발전하였고, 이 종파불교들은 당시 인도불교의 영향으로 대승불교적 성향이 강하였습니다. 또 당시 중국의 혼란기의 상황이 개인의 수양을 강조하는 소승불교보다는 대승불교를 선호하기도 하였죠. 따라서 정토종과 선종, 율종, 삼론종, 천태종 등이 중국에서 종파불교로 자리잡는데 이 종교를 중국 5종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정토종과 선종은 민중사회에 깊이 뿌리내리는 민중불교화되어 갑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의 불교를 포스팅하고, 인도 불교의 참 뜻을 중국 불교가 완전히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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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