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7화. 불교의 참뜻을 알리려던 고승들

1. 도안(312-385) : 지금 불교에 필요한 것은? 계율이다.

자 지금까지 격의 불교에 대해 설명했다. 격의 불교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불교 사상을 쉽게 전파하기 위해 전통 중국 철학을 인용하여 불교 용어를 설명>하는 것이다. 부처의 깨달음인 <열반>을 도교 사상인 무위자연과 비슷하다고 여기고, <열반은 곧 무위이다>는 식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불도징의 제자인 도안(312-385)은 심오한 불교 교리를 대충 때려맞추려는 격의 불교 사상이 싫었다. 격의 불교 사상 때문에 당시 불교는 <원시 신앙>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인과 일반 백성 할 것 없이 불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하는 것 조차 못하였다. 하안과 왕필 같은 청담 사상가들은 <유교, 불교, 도교는 다 도를 추구하는 같은 종교이다>고 이해했을 정도이다. 오히려 논쟁이 된 것은 부처와 노자 중에 누가 먼저 태어난 스승이냐 같은 것이었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뒤에 태어난 사람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불교의 스님은 주술사와 다를 바 없었다. 스님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마술을 부린다고 믿었기 때문에 불교와 샤머니즘은 동일한 것이었다. 지옥을 지키는 불문의 수호장들은 동물 숭배 사상(토테미즘)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천둥과 번개를 부릴 줄 아는 보살은 애니미즘과 다를 바 없다. 부처가 되기 위해 은거한 보살과 산신령이 뭐가 다른가? 위진시대 초창기 불교는 신비한 주술을 부리는 도가의 <도사>와 구별되지 못하였다.

격의 불교 시기 스님은 마술로 백성들을 치료하고, 주술로 국가를 지키는 호법신이면서,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한 도사였다. 이렇게 신비한 스님이기에 위진시대 혼란기의 왕들은 스님을 초빙하여 <신비한 설법>을 듣고자 했던 것이다. 불도징 같은 위대한 스님이 겨우 <주술>이나 부리면서 왕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불교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불도징의 제자인 도안은 이런 풍토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진정한 불교를 위해 2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복잡한 교리에 <해설>을 달아 불교 이론을 쉽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철저한 계율을 만들고 지켜야 불교의 참뜻이 지켜진다는 것이었다.

도안은 스승인 불도징이 죽자 불경 주해를 다는 일에 온 힘을 다하였다.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도와서 쉬운 말로 <해설>을 달기 시작했다. 인도어인 <범어>는 논리적인 언어이기에, 다양한 뜻을 내포한 중국어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았다. 범어는 표음문자고, 한자는 표의문자이다. 도안은 최대한 쉬운 말로 범어를 중국어로 번역하였다. 불교 경전의 참뜻을 알리는 일이 도안부터 시작된 것이다.

반면, 도안이 수많은 경서에 해설을 달면서 중국어의 어휘체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심오한 불교 경전을 해석하다보면 중국어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도안은 기존 한자의 활용도를 더욱 높여서 설법, 인도식 속담, 격언, 불교 고유 용어 등을 표현해 내었다. 중국의 불교 교리가 심화되는 것은 곧 중국어의 어휘가 풍부해짐을 뜻한다.

도안은 불교 교리를 전파하는데 노자의 사상과 청담가들의 논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불교의 원래 뜻을 살리려고만 노력했기 때문에, 중국 전통 사상을 가지고 불교 사상을 해석하는 <격의 불교>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불교 경전에 주석을 단 것은 부처의 말씀에 대한 글들을 읽고 확실한 근거를 통해서였다. 드디어 불교는 노자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도안은 철저한 계율을 중시했다. 승려는 사회의 지도층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승려가 되는 기본 조건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예 모든 출가 승려들의 성을 <석>으로 만들어 버렸다. 부처에게 귀의한 사람들이 세속의 성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안의 획기적인 계율 강조로, 이후 불교에서는 <석>을 성으로 삼는 전통이 생겼다.

그럼 도안이 불교의 참뜻을 찾아내었을까?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대승불교의 기본 교리는 반야(지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율만 강조하고 지혜만 찾으라고 말하면서, <반야경>을 외워라~~~ 강요한다면 사람들은 복잡한 교리와 율법에 질려 불교를 떠날 것이다.

그래서 도안은 율법의 실천 사항으로 <미륵신앙>을 강조하였다. 어지러운 난세에, 미륵부처가 내려오면 모두가 하늘(도솔천)로 갈 수 있으니, 그 날을 생각하면서 왕생을 기도하라는 것이다. 미륵신앙은 내세를 염원하는 백성들의 뜻과도 일치하고, 절대자가 구원해준다는 신비주의 사상과도 일치했다. 또, 국왕이 곧 미륵의 화신이라는 논리와도 연결되면서 국왕도 불교를 탄압하지 않을거라는 확신을 준 사상이었다.

불교의 참 뜻을 알기 위해서 계율을 강조하고, 경전을 번역하면서도 대중적인 미륵신앙을 강조한 도안...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최상의 스님이었던 것이다. 역사에서는 도안을 <한나라 이후 선법과 방야의 두 가지를 종합한 반야 6대가>라고 표현한다.

도안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중국대륙의 북부를 통일한 부견의 일화에서도 볼 수 있다. 전진왕 부견은 명성이 자자한 도안을 모시기 위해 십만 대군을 일으켜 남부 지방을 초토화 시키려고 하였다. 스님 한명을 위해 수만명이 죽을지도 모를 전쟁을 계획한 것이다. 도안은 전쟁을 말리며 전진의 수도 장안에 와서 수백권의 경서를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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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열정적으로 책을 번역했던지, 훗날 구마라습은 이렇게 말하였다. <도안은 동방의 진정한 성인>이라고...

전진왕 부견이 중국 북부대륙의 영토를 넓히고 자신의 기반을 확고히 다진 것은 도안의 철학을 존경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2. 혜원(334-416) : 백련결사는 왕에게 예를 갖추지 않는다.

혜원은 원래 노장사상을 따르던 <도사>였다. 그러나 불도징과 도안을 만난 후, 불교의 심오한 뜻에 흠뻑 빠져 불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도안을 존경하여 <율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스승인 도안이 전진왕 부견에게 가 버리자, 동림사(여산)라는 절에서 30년을 득도하면서밖에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는지, 자신이 30년간 속세에 나오지 않겠다는 말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다. 또, 속세의 성을 버리고 불가에 들어간 사람은 <정치>와 상관없는 사람이기에 왕을 만나도 절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 사람이다. 혜원이 남긴 유명한 일화를 한번 볼까?

혜원은 친구인 도연명을 만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였다.  승려와 유학자, 불가의 스님과 속세의 정치인은 어울릴 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당대의 최고 철학자라 불리는 이 둘은 너무나 친하였다. 이야기를 하는 중 도연명이 떠나자, 혜원은 도연명을 더 이상 전송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도연명 : <좀더 전송해주게나. 나는 국가의 관리이므로 자유롭지 못하지만, 자네는 속세를 떠났으니 자유롭지 않은가?>

혜원 : <안되네. 내 마음과 욕망은 자네를 더 전송하고 싶지만, 앞에 호계가 있으니 건널수가 없네. 이것이 삼십년 동안 지킨 내 계율이네.>

도연명 : <그런 계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혜원 : <의미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네. 선한일이 비록 작다 하여도 행하지 않아서는 안되고 악한 일이 비록 작아도 행하여서는 안된다는 말이 유가에 있더군. 내가 만일 이렇게 작은 일도 시종일관하지 못한다면 큰 일에는 더욱 시종일관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도연명은 그 말을 듣고, 대화마저 마음놓고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그는 돌아오는 즉시 관직을 버렸다. 그리고 만고에 길이 남을 <귀거래사>를 지었다. <귀거래사>는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도연명이 남긴 대작이었다.

혜원 역시 스승인 도안과 같은 입장이었다. 사람들에게 복잡한 반야(지혜)를 설교하면서, 반야경을 외워라~~ 라고 말한다면, 누가 부처를 좋아하겠는가? 아무리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도 수능 공부만 10년동안 하라고 말한다면 공부가 지긋지긋할 것이다. 그래서 혜원은 생각한다. 반야경은 나혼자 연구해서 남기면 될 것이고, 일반인들이 쉽게 불교에 접근하는 방법은 없을까?

혜원이 생각한 불교의 수양 방법은 <나무아미타불>이었다. 보통 <아미타 신앙>이라고 한다. 혼란기의 백성들은 복잡한 계율과 교리를 이해할 틈이 없다. 매일 같이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속세의 사람들이 무슨 교리를 외우겠는가? 그냥 <아미타불>만 외치고, 마음으로만 부처를 모시면 된다.

혜원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문구를 외운 후 계율을 지키면서 착하게 살면 복잡한 교리를 몰라도 해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 이것은 먼 훗날 <정토종>이라는 불교 종파와 연결된다. 혜원은 아예 <나무아미타불>을 맘놓고 외칠 수 있는 염불 단체를 만들어 버린다. 이 결사 단체를 <백련사>라고 하는데, 후대 불교인들은 어려운 시기를 만날 때마다 이 <백련사>를 만들었다.

백련사의 수련법은 간단하다. 아미타 불상을 보면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한다. 언젠가 아미타불을 만날 것을 꿈꾸며, 죽은 후에는 극락세계에서 영원한 편안함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도안과 혜원은 진정한 불교의 참뜻을 구하면서도, 백성들과 거리를 두지 않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했던 것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미신에 빠져있던 불교의 참 뜻을 중국인에게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3. 법현(339-420) : 나는 참 뜻이 뭔지 직접 찾아봐야겠다.

도안과 혜원이 중국 안에서 불교의 참뜻을 고민했다면, 법현은 아예 인도에 가서 불법을 배우려고 한 인물이다.

불법을 배우러 서역으로 떠난 최초의 인물은 <주사행>이다. 주사행은 한나라 영제 때 <도행경>을 번역했는데, 자신이 번역한 것을 스스로 읽어도 짜증이 났다. 도무지 불교의 참 뜻을 번역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조조의 위나라 시기에 서역의 우전국까지 가서 경전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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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의 중국 국가>

법현 역시 서역으로 <구법> 여행을 시작했다. <구법>이란, 서역의 고승에게 불법을 배우고, 불교 유적지를 직접 보고 느끼는 작업이었다. 이 당시 구법은 불교 경전의 뜻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본가 스님을 만난다는 뜻이 강했다. 또, 해석되지 않는 부분과 관련된 책을 가져오는 목적도 있었다.

법현이 서역에 다녀온 후 적은 <불국기, 혹은 법현전>를 보면 법현의 여행이 얼마나 고달픈 것인지 알 수 있다. 다녀온 사람이 없기에 길을 찾는 것 조차 어려운 여행 속에서 동료들은 모두 죽고 법현 혼자만 살아돌아온 것이다. 이미 부족할 것 없이 존경받고 있던 60살의 스님이 14년간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는 길도 모르는 중앙아시아의 사막을 끝도 없이 가로질러 오아시스 국가에 도착한다. 파미르 고원의 눈보라와 싸워가면서 절벽을 넘고, 인더스 강을 건넜다. 겨우 서인도에 도착하여 불법을 배운 그는 실론(스리랑카)까지 넘어가 불법을 구하려고 했다. 스리랑카에서 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풍과 해일까지 만났지만, 그는 결국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들을 지켜내었고, 그것을 번역하였다.

그가 가져온 책 중에서 유명한 것은 <대반열반경>이었다. 그가 번역한 이 책의 내용은 중국 <열반종> 사상의 핵심이 되었다. 중국 대륙에 부처의 참 뜻을 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시작한 그의 <불국기>는 현장(삼장법사)의 대당서역기와 함께 위대한 불교 여행서로 평가된다.

자, 오늘은 격의 불교를 넘어서 불교의 참 뜻을 전하고 싶어했던 몇몇 고승들의 이야기를 해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불교의 참뜻을 전한 구마라집과 남북조 시대의 고승들 이야기를 하고, 위진남북조 당시 역사의 전개가 불교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이야기해보겠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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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1-9장. 중국에서도 불교의 전성시대가 끝나다!

- 불교이야기에 대하여...

8장까지 동아시아 불교전파사로 연재하던 이야기의 제목을 <불교이야기>로 바꾸었습니다. 인도, 중국 불교 이야기가 끝나고 한국, 일본 불교 이야기를 전개하려니 제목의 뉘앙스가 별로인 듯 해서 바꾸었습니다. 앞으로의 불교이야기는 1부의 인도, 중국 이야기를 이번 포스트에서 끝내고, 한국과 일본의 불교에 대하여 글을 써볼까 합니다. 이 포스트를 사상 속 역사여행에 넣은 이유는 불교이야기 이후, 유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힌두교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종교 외 사상까지 한번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1. 마지막으로 중국 불교의 끝을 보며... 복습이나 할까요?

중국 불교의 전성기는 혼란기였던 위진남북조였음을 지금까지 설명하였습니다. 위진남북조의 불교는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불교가 왕권을 위해 기여한다는 <왕즉불 사상>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진정 석가의 참 뜻이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많은 고승들은 자신만의 이론을 내놓기도 하고, 인도에 구법여행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위진남북조가 끝나가면서 중국 불교는 <왕을 위한 불교>가 아니라 진정 불법을 위한 민중의 종교로 거듭나려는 몸짓을 계속 보여왔습니다. 그 때 마다 왕권을 <불법이 왕법에 도전할 수 없다>는 논리로 불교를 탄압합니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폐불사건>이라고 하죠.

중국의 불교도 인도와 마찬가지로, 그 종교의 참뜻을 밝히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 이념을 갖는 순간 국가에 의해 추방당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불교를 몰아낸 새로운 사상들은 불교 사상에서 특정한 부분을 채용한 신사상들이었습니다.

예로 인도에서 진정한 인도인의 종교를 자청한 힌두교는 브라만교의 한계점을 불교 사상으로 극복하여 만들어진 종교입니다. 물론 불교 역시 브라만교의 윤회설이나 업설을 통해 탄생한 종교라는 것도 예전에 설명했었지요. 중국의 성리학이라는 신유학 역시 중국 종래의 훈고학의 문제점을 신불교인 <선종>의 수양사상을 빌려 극복했던 종교였습니다. 자 그럼 서론을 이만하고, 중국에서 불교가 밀려는 상황을 한번 볼까요?

2. 썩은 종교에는 핏물만이 고일 뿐이다.

당나라는 전통적으로 도교를 신봉한 국가이지만, 불교 역시 존중하였습니다. 이유는 아직까지도 불교의 교리가 <왕권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불교 교단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지난 장에서 설명한 법장이 측천무후에게 불교 교리를 설명한 것도, 불교 자체를 국가에서 인정해 달라는 하나의 메시지이자 국가와 불교 교단의 타협점을 찾는 과정이었죠.

하지만, 불교가 불교의 참뜻을 추구하는 순간, 인도, 중국, 한국을 막론하고 큰 문제점이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내세에 의지하면서 현실을 도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문제점이었습니다. 또한 국가불교가 아닌 종파불교가 성립되면서 사원경제가 발달하고, 불교교단이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한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당나라 중기 이후 불교 교단의 세가 전 중국을 덮을 정도로 위세가 강해지고, 수많은 종파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습니다. 이 때부터 생각있는 유교주의자들은 유교의 위기를 생각하면서, 불교의 폐단을 비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여말선초에 신진사대부들이 불교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말이죠.

이런 생각을 처음 했던 사람은 수나라 시대의 <왕통>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수나라 시대는 아직 불교교단이 정립되지 않았을 시기였습니다.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격하기 시작한 사람은 당나라의 유교 선구자 <한유>입니다. 한유의 <진학해>에 나타난 생각을 한번 볼까요?

입으로는 끊임없이 육예의 문장을 읆고, 손으로는 그침없이 백가의 서적들을 뒤적였다. 낮은 물론이고 밤에도 등잔불 아래에서 쉼없이 공부하였다.

해가 가고 달이 바뀌어도 단 하루도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이처럼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을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유학을 선양하고 불교와 노장사상을 배척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의 행동은 모두 도리에 합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찬동이나 상사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내가 한번 입을 열면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게 되어 귀양살이를 가기 일쑤였다.

운명은 나를 종롱하여 마치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원수 같구나. 여러 차례 일에 실패하여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나 겨율에는 아이들이 춥다고 울어대고 풍년이 드는 해에도 처자들은 배가 고프다고 울어댄다. 나 자신은 또 늙음에 쫒기어 머리칼과 이가 빠졌으나 어니 한가지 일도 이루지 못했구나.

한유는 국가의 녹을 먹으면서도, 불교를 신봉하는 황제와 신료들을 끊임없이 질타하였습니다. 헌종 때 석가문불의 뼈 한마디가 궁내에 들어오자 사람들은 모두 그것에 제사지내기에 바빴습니다. 한유는 죽음을 각오하고 글을 적기를 <동한의 군주들이 불교를 신봉한 이후부터 모두 단명하였구나>라고 적었고, 그것을 황제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까지 불교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는가. 황제와 정치를 위해서는 불교의 폐단을 없애야만 한다. 구름이 큰 봉우리를 가리고 있어 집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눈은 온 땅을 덮고 있어 말이 앞으로 가려하지도 않는구나. 내 조양으로 귀향을 가게 되더라도 뜻은 꺽을 수 없겠구나. 후세에 나의 말을 전하려면 책으로 남기는 수밖에 없겠구나.

한유는 불교의 잘못된 점을 말하기 위하여 많은 글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적은 글은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화려하기만 한 심오한 말이 아니라, 한나라 훈고학 이래 잘 쓰이지 않는 옛 글(고문)으로 글을 쓰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고문부흥운동>의 선구자라고도 합니다.

이 후 그의 뜻을 이어받은 송의 인물들은 적극적인 불교 배척운동을 시작하면서, 진정한 유교를 부흥할 것에 매진하였습니다. 한유는 맹자의 성선설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본성은 상, 중, 하의 삼품으로 구성되었다는 <성삼품설>을 주장합니다.

불교에서처럼 윤회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여러개이므로,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하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며, 어떤 사람은 어떤 길로도 스스로 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후 유학자들은 불교 배척운동을 하면서도 한나라 훈고학과는 다른 사상적 체계를 만들어 갑니다. 송대 만들어진 성리학은 한나라 시기 훈고학의 <자구해설>을 넘어서서 인간의 <심성>이 무엇인가까지 연구하는데, 사실 이것은 불교의 <선종>에서 강조하는 <이심전심>의 본체와 연관되는 것이었습니다. 성리학의 인간과 우주 심성이란, 선종에서 말하는 <인간의 마음은 깨달음으로 통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니까요.

오늘은 지난 여덟 장의 인도, 중국 불교사를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별 할말도 없는 당 중기 이후의 불교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이제 2부에서는 한국 불교사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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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불교 전파사 - 8장. 당나라 종파불교의 발전

지금까지 전개한 위진남북조와 수대의 불교사는 인도의 불교를 중국이 가져와서 그 참 뜻이 무엇인가를 밝히기도 전에 왕법에 의해 불법이 위축되었던 시기의 불교를 포스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나라 시기의 불교는 다릅니다. 당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제적이고 귀족적인 문화를 가진 개방성을 큰 특징으로 하는 만큼, 불교에 대한 입장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불교는 이제 왕법에 의해 탄압받기만 하는 호국불교를 뛰어넘어 불법의 참 뜻 자체를 연구하고, 불법에 따라 석가의 모든 사상을 이해하고 중국식으로 완성해가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 포문을 연 사람이 바로 현장법사(삼장법사)입니다.

또 당나라 이전 불법에 대한 대탄압인 <폐불사건>을 여러번 거치면서 불교계는 이전 단계보다 많이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불교계는 호국적인 성격으로 왕권에 봉사하는 자신들을 반성하면서, 불법의 독립성과 불교계 혁신운동이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불법의 본 뜻인 석가의 참 뜻이 무엇인가를 놓고 체계적인 불법을 만들어가는데, 이러한 불법 완성 속에서 여러 교단 종파가 탄생하게 됩니다.

1.수많은 종파가 과연 진정한 석가의 참 뜻을 아는가?

중국에서 성립된 종파불교는 사실 모두 석가의 참뜻이 무엇인가를 놓고 우물안에서 싸우던 개구리들아였습니다. 우물에서 바라본 하늘이 어떤 하늘이고, 어떤 크기인지 알 수 없듯이 중국 내부에서 바라보는 석가의 삶과 불법의 참뜻을 아는 자는 없었습니다. 7장에서 자세히 다룬 지의의 천태종은 수많은 불교종파를 통합하여 하나로 융합하려 노력하였고, 그 결과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남방 불교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천태종 역시 대립하는 불법을 융합하려는 시도의 종파였지, 불법의 참 의미를 찾던 종파는 아니였습니다.

실제, 당 초기까지 어떤 종파도 석가모니의 참 뜻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석가의 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에서 가져온 석가의 경전을 번역하여 읽는 것만으로는 그 심요한 원리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석가의 참 뜻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서역이나 인도로 가서 불법을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선진국에 유학가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죠. 서울에서 아무리 혼자 영문법책을 읽어도 영어발음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석가의 참 뜻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채 경전만을 읽고 석가를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많았던 것이죠.

따라서 당대에는 서역의 불경을 번역하는 작업보다는, 직접 서역에 가서 불법을 공부하고, 불법의 원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 사명을 다한 것이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현장법사)입니다.

2. 현장의 구법 여행이 시작되다!

중국 당나라에서 불교의 전성기가 시작되면서 천태종, 화엄종, 정토종, 선종 등 수많은 종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종파들은 각각 자신들이 말하는 경전을 석가의 참 뜻이라고 주장할 뿐, 석가의 참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밝혀내지 못합니다.

수문제 때 태어난 현장은 어느 한 종파에 만족하지 못하고, 수많은 문파를 오가며 불법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중국의 불경이 너무나 부족하고, 사상적인 체계도 완벽하지 못하며 불경의 해석도 제 각각인 것에 실망하였습니다. 현장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면서 코끼리를 설명하는> 중국 불교를 믿을 수가 없어서, 인도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인도에 가는 것은 너무도 험하고 어려운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국외로 출관하는 중국인을 처벌하였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은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가랴?>라고 말하며, 인도로 향합니다. 그 유명한 <대당서역기>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그에 대한 소설인 <서유기>의 시작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인도로 가는 동안 수많은 나라를 거치며 죽을 위기를 겪기도 하고, 고승으로서 환대를 받기도 합니다. 그는 결국 인도로 도착하여 석가가 수련했다는 보리수 밑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앞서간 사람들을 볼수 없듯이 뒤따라 올 사람을 만날 수도 없구나>라고 말하며 불법을 생각하다가, 인도 난타사에 머물었다고 합니다.

그는 난타사에서 1만의 수도승 중 최고 대우를 받으며 5년간 불법을 연구하고, 강론하였습니다. 인도에서는 그를 최고 고승으로 생각하여 구마라왕이 그를 데려오기 위해 전쟁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16년간의 인도생활을 마치고 중국 장안으로 돌아와 <대당서역기>를 저술하였습니다.

또한 인도에서 가져온 수많은 범어 경전을 해석하여 1335권을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구라마습과 현장의 불경 번역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여, 구라마습 이전의 경전을 고역경, 구라마습이 번역한 경전을 구역경, 현장이 번역한 경전을 신역경이라고 말합니다.

현장이 완성한 불법의 요체는 <나의 본체와 불법의 본체는 모두 머릿속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며 그 실체가 진실한 존재가 아니다. 실체는 실제 존재하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우리는 머릿속에 그린 아집과 법집을 깨뜨리고, 진정한 실체를 발견해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러한 견해를 불교에서는 <유식론>이라고 합니다.

유식론의 특징은 실체는 아무것도 없다는 <공사상>과 대립하는 <유식사상>으로, 부처의 진정한 말씀은 <아무것도 없다는 공사상이 아니라, 실체가 존재한다는 유사상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현장의 교리는 <법상종>이라는 종파로 체계화되고, 현장은 법상종의 시조가 됩니다. 이 법상종은 오랜 기간동안 종래 <공사상>에 기반을 둔 다른 종파들과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을 훗날 <공유논쟁>이라고 합니다.

현장은 일대 유학생이라고 보기에는 인도, 중국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큽니다. 인도에서도 수백년에 나올까말까한 고승으로 추앙받았고, 중국에서는 진정한 불법을 전파한 종파 불교의 아버지격이었으니까요. 명나라 오승은인 이러한 현장의 유학 생활을 소설로 발전시켜 <서유기>를 저술하였습니다.

3. 선종이 등장하다.

(이미 전에 선종을 설명했지만, 당대 혜능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한번 포스팅 합니다.)

선종은 원래 석가의 <염화시중의 미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석가가 인도에서 전도할 때,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꽃 한송이를 여러 사람에게 보였습니다. 모두가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 할 때, 마하가섭이라는 제자가 석가에게 웃음으로 그 뜻을 이해했음을 알렸습니다. 이것을 보고 석가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정법과 원리가 이미 가섭에게 전달되었구나"

이렇게 이심전심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눈빛만으로 그 뜻을 깨닫는 설법이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심전심의 깨달음으로 창시된 종교가 선종이고, 마하가섭이 바로 인도 선종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즉, 선종이란 내적 관찰과 자기 성찰로 등장한 불교 종파입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내세우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합니다. 선종에서는 언어나 문자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부처의 마음이 중생의 마음으로 와 닿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불심종(佛心宗)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선종에서는 인간이 본래 지닌 성품이 부처의 성품이라는 것만 알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중적인 희망을 던지는 종교였습니다.

선종에서는 복잡한 문자도 필요없으며, 단지 깨달음만으로 모든 선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선종은 묵가식의 노동을 중시하고, 유교식의 수양을 강조하며, 도교식의 민중화를 추구하는 다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섭 이후의 선종은 그 후계자 전법에 있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몇 마디 말로 불법을 전하였는데, 이 몇 마디 말을 <게어>라고 합니다. 게어란, 어떤 경전으로 정해진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뜻을 전하기 위해 짧막하게 적은 <작은 심어>를 말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은 무이고, 공이다>와 같이 짧은 언어 속에 많은 뜻을 함축하므로, 사람마다 알아듣는 이해도가 각각 다릅니다.

선종에서는 게어를 이해한 사람에게 의발을 전함으로서 후계자를 뽑습니다. 의발이란, 중들이 입는 가사와 바릿대로 달마가 제자에게 이 두가지 물건을 전했다는 것에서 유래된 말로서 선종의 후계자의 징표를 상징합니다.

선종은 28대 조사인 보리달마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습니다. 보리달마는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수련을 하고, 혜가라는 제자에게 의발을 준 뒤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도 인도에서처럼 말로 전법을 전하였기 때문에 초기 선종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달마에 대한 이야기는 무협지에 많이 나오는 듯 싶죠. 몇십년을 수련한 강호의 고수들이 동경하는 대상이 바로 달마대사로 나오니까요.

4. 혜능에 와서 북종선, 남종선이 완성되다

선종의 5대조인 흥인선사기에 제자를 뽑기 위해 제자들에게 <게어>를 적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가장 총명한 제자인 신수가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구나. 때때로 부지런히 마음을 갈고 닦아 티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꾸나>라는 게어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방앗간에서 일하는 소공인 혜능이란 자가 이것을 보고는

<보리는 원래 나무가 아니다. 명경 또한 집이 아니다. 본래부터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어디서 티클이 생간단 말인가?>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혜능은 글을 모르는 무식한 소공인 관계로 글을 아는 자가 이 말을 옮겨적어 게어로 만들었습니다.

홍인선사는 혜능의 말에 감동받아 그에게 선종 6대조의 의발을 물려주었습니다. 선종이 비록 이심전심과 불립문자를 통해 이루어진 <마음 수양만을 강조하는 종파>라고는 하지만, 글을 모르는 소공이 선종 조사가 된 일은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후 선종은 가장 총명한 후계자였던 신수의 북종선과, 글을 모르는 소공출신인 혜능의 남종선으로 갈리게 됩니다. 북종선은 선종교파 중에 비교적 지식을 강조하는 종파였고, 남종선은 오로지 <마음 외에는 없다>라는 심성수양을 강조하는 파였습니다. 북종선은 이후 당나라 측천무후 정권에 협력하면서 성장하였고, 남종선은 글을 모르는 대중속으로 파고들어 대중적인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종 중 대중적인 남종선은 우리 나라 선종에 큰 영향을 줍니다. 나말 여초의 호족세력과 6두품, 그리고 반신라 지식인들의 종교가 선종이었고, 고려 불교의 큰 흐름도 왕권의 교종과 민중적인 성향의 선종이 대립하며 주도해 나갑니다. 이 혜능의 남종선은 훗날 <심성수양>을 강조하는 성리학에도 영향을 주며, 시문 등 감정이 필요한 문학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남종선은 마음으로 믿는 다는 실천도덕이 지배층에도 환영받았으며 행사규칙인 백장청규를 마련하여 대중적 토대를 확실하게 합니다.

5. 법장의 화엄종 : 모든 것은 하나의 진리 세계로 통한다.

법장은 당나라 최고의 여걸 여황제 측천무후기에 활동하면서 <화엄종>이라는 교단을 완성한 고승입니다. 화엄종은 법장이 주장한 <진심>이라는 단어를 모든 것의 근원으로 보는 종파입니다. 이러한 진심을 정리한 경전이 바로 <화엄경>입니다.

법장은 현장의 <유식론>에 대하여 심한 불만을 가졌습니다. 도대체, <석가의 참 뜻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실체는 다르고, 실체는 있으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실체가 아닐 수 있다>라는 말이 무엇인가?

법장은 모든 것을 규정하는 하나의 <진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비우컨대 이 금사자의 본체는 금이라고 하는 질료이고 사자의 모습은 현상에 불과합니다. 금사자의 형상은 허무하여 실제가 없고 변동합니다.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한 무더기의 금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은 한 무더기의 금으로 고양이나 개, 호랑이의 형상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바로 오늘의 홍안이 내일의 백발로 되어 버림을 우리가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지, 수, 화, 풍 등 네 개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현상으로서의 사건은 비록 변할지라도 볼질로서의 그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사자의 모습이 늙어갈지라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의 본질이란 결국은 그 현상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마치 금사자의 형상이 없다면 그 존재마저도 알 수 없음과 같지요. 마찬가지로 육체라고 하는 껍데기가 없다면 인간의 본질이라 할 정신도 발휘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과 그 원리는 상호 의존하고 보완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위 말은 법장이 화엄의 원리를 측천무후에게 설명한 글입니다. 즉, 금사자의 눈도, 코도, 입도 금사자라고 부를 수 있고 금사자 전체를 금사자라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 금덩어리라는 본질로 이루어진 실체이며, 녹으면 본질인 금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금이라는 <진심>은 영원합니다. 인간의 육체는 살덩어리이지만, 그 본질인 영혼은 바뀌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의 원리 속에 흘러갑니다.

예로 산이 있으면, 그 산에 나무가 있고, 토끼가 있고, 돌맹이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봅니다. 나무를 본 사람은 나무가 진실이고, 토끼를 본 사람은 토끼가 진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본 것을 토대로 불법을 설명하면서 종파를 만듭니다. 그러나, 산 전체를 보고 산이 어떻게 시간에 따라 흘러가고, 산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며, 그 변화에 따라 나무와 토끼는 어떻게 될 지를 포괄적으로 보는 종파가 바로 화엄종입니다. 화엄이란, 모든 것을 하나의 둥근 원 속에서 파악한다는 <원융 사상>의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당대 이러한 종파 불교의 성립이 중국사 전체에 가지는 역사적 의의와 이후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파되는 과정, 그리고 이러한 불교가 중국에서 단절되듯 침체되고, 한반도에서 융성하게 되는 과정을 포스팅하겠습니다. 이제 한국 불교사로 넘어갈 때가 된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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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