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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06 (근현대사 19) 독립협회 이야기 서론 - 아관파천과 이권침탈 (1)

(근현대사 19) 독립협회 이야기 서론 - 아관파천과 이권침탈

1. 아관파천이 이루어지다.

지금까지 1895년의 개혁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을미개혁은 일본의 간섭으로 진행되었고, 우리 정부는 이 간섭을 벗어나기 위해 <일본의 대항마>로서 러시아를 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으로 친러파로 규정된 민비 왕후가 죽게되고, 고종은 일본의 행태을 점점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1896년 고종은 왕궁을 버리고 엄상궁의 호위아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일본이 무서웠기 때문이죠. 이 사건을 러시아의 한자 <아>와 공사관의 <관>을 따서 아관파천이라고 합니다.

아관파천으로 조선은 걷잡을 수 없는 주권침해를 당하게 됩니다. 한 나라의 국왕이 일본을 무서워해 러시아에 의탁함으로서 조선은 주변 강한 나라들(열강)에게 나라의 중요한 권리들을 빼앗기게 되었죠. 흔히 말하는 <열강의 이권침탈>이 시작된 것입니다.

열강의 이권침탈은 <러시아>로부터 비롯됩니다. 러시아는 조선의 철도, 광산, 해안 등을 빼앗기 위해 청, 일본, 서양 등과 다양한 조약을 맺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한 고종이 열심히 러시아를 위해 도장을 찍어야 했죠.

일단 러시아는 일본과 조약을 맺습니다. 그 조약의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본군이 조선과 요동 남부에 머물수 있다. 이에 일본은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우위를 인정한다.
  2. 조선의 전신선에 대한 권리는 러시아가 갖는다.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권리가 있다.

또, 러시아는 청과도 개별적 조약을 맺고 조선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습니다.

1. 청과 러시아는 일본의 도발을 막기 위해 군사적 협력을 아끼지 않는다.
   2. 청은 러시아에 동청철도부설권을 주는 대신, 만주와 요동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는다.

이러한 각국과의 조약으로 러시아는 조선에서 우월한 위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고종에게 <안전을 보장>한다며 여러 가지 조약을 체결하도록 합니다. 요점만 간단히 볼까요?

1. 러시아는 조선 국왕의 안전을 보장한다. 조선의 안녕을 위해 러시아는 군사고문과 재정고문을 파견하여 조선의 근대화를 돕는다.(재정고문으로 알렉시에프가 오게 되어 감놔라 배놔라를 시작합니다._
   2.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전신선을 연결하며, 그 권리는 러시아에게 있다.

2. 기회균등의 원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다.

조선 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가고, 러시아를 비롯하여 청, 일본 등이 조선의 이권을 빼앗아가면서 조선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맙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전통적인 제국주의 국가들도 조선의 이권을 빼앗아가기 시작하죠.

일본은 석탄 창고를 만들어 그곳을 군사기지로 활용하였습니다. 러시아는 목포를 비롯한 항구들을 차지하고 해안가 토지를 매매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광산에서 은을 채굴하기 시작합니다. 조선은 간, 심장, 폐를 다 떼어주고 만신창이가 되기 시작하였죠.

특히 우리 이권을 빼앗는데 앞장선 나라는 고종을 납치(?)한 러시아와 갑오-을미개혁을 주도했던 일본이었습니다. 러시아가 고종을 이용하여 정치적 이권을 빼앗아갔다면, 일본은 철도와 광산권을 빼앗아가는데 주력합니다.

일본이 철도 부설권을 원했던 이유는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상품을 탈취하고, 대륙으로 군을 수송하여 앞으로 있을 동아시아 군사력 다툼에서 우위를 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청일전쟁으로 승리를 맛보았기 때문에 군사력에서는 자신이 있었죠. 따라서 일본이 조선에 철도를 부설할 수 있는 권리를 원한 것은 자국의 제국주의체제를 완성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기본체제가 <식민지에서 원료를 수입하고, 다시 식민지에 제품을 비싸게 파는> 방식이었고, 그 방식은 철도 등 운송체계와 군 수송체계가 원할해야 가능했으니까요.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경인철도 부설권을 돈을 주고 샀으며, 훗날 러일전쟁으로 경의철도 부설권도 러시아로부터 빼앗아옵니다.

한편, 러시아나 일본보다 대 조선 정책의 후발주자인 미국은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기회균등의 원리>를 주장합니다. <기회균등의 원리>란, 서구열강들이 중국(청)의 이권을 빼앗아갈 때 논의하여 협의한 정책이었습니다. 쉽게말하면, 중국이라는 큰 빵이 있는데 누구 한명이 그 큰 빵을 독식하면 싸움이 나기 때문에 빵을 똑같이 잘라 나눠먹어야 한다는 논리죠. 이 논리는 아시아에 비교적 영향력이 적은 미국이 주도하여 힘으로 결정한 사항입니다. 상대적으로 러시아, 일본 등 아시아계 제국주의 국가에게 열세인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 주장을 함으로서 조선은 러시아, 일본 + 서양, 구미 세력에게 골고루 이권을 침탈당했던 것입니다.

이 이권 침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 농업, 수산업, 광업 등의 기초 산업이 망가지고, 외국 자본에 넘어가면서 민족 자본이 형성되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민족자본이 없다면, 국내 산업은 외국의 차관에 의해 넘어가게 되고 결국 경제적 식민지 상태가 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죠.

따라서 이러한 열강의 이권침탈에 분개하여 민족 자본과 민족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형성한 단체가 독립협회였습니다. 따라서 독립협회의 가장 큰 주장은 아관파천에 의해 자행된 만행에 대한 반발입니다. 독립협회 초기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돌아와 자주적 국권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2. 러시아 등의 열강은 이권침탈을 멈추어야 한다.
   3. 서양에 뒤지지 않는 의회와 관제를 마련하여 그들이 넘볼 수 없다록 해야 한다.

자, 그럼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독립협회가 어떤 단체인지 본격적으로 들어가봅시다. 다음 장으로 고고~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