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 이야기 19 - 에도막부의 등장과 문물 정비

1. 에도 막부의 철저한 신분제도

에도막부를 창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 자손들은 막부를 창립하고 바로 영주(다이묘)들에 대한 통제정책에 들어갔습니다.

일단, 막부 자체를 에도라는 수도에 세움으로서 중앙에서 막부가 지방을 총괄하는 식으로 통제하고, 반발하는 자들을 찍어눌러 전국시대와 같은 혼란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였죠. 1,2,3대 막부의 쇼군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철저한 통제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일단 에도막부는 일본판 카스트 제도라고 할 만큼 철저하게 신분과 계급을 구분해 놓았습니다. 막부의 계급은 4계급으로 최고 계급은 무사, 다음으로 생산자인 농민, 그 밑으로 수공업자, 상인층이 존재하는 계급구조였죠.

무사는 지배층, 농민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생산자였지만, 수공업자와 상인은 농업생산물을 부수적으로 이용하는 계급이라고 인식하여 천대하였습니다. 실제 막부 재정의 핵심이 농민들이 내는 세금이었거든요.

2. 막번체제 : 명목상 중앙통제와 실제적인 지방 분할의 조화

에도막부를 창립한 도쿠가와 가문은 막부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을 추구했지만, 전국시대 이후 성장한 각 지방의 다이묘들을 모두 찍어누를 수 없었습니다.

실제, 막부 집권 초기에 다이묘들을 모두 막부에 굴복시키려는 의도로 다이묘들을 탄압하였다가 엄청난 반란인 <유이 쇼세츠의 난>이 발생하기도 했거든요. 초창기 쇼군들은 다이묘의 자식들을 인질로 잡는 <산킨고타이 제도>라던가, 다이묘들의 토지세를 엄격하게 시행하였지만 반발만 사고 맙니다.

막부의 4대 쇼군부터 도쿠가와 막부는 지방 다이묘들의 권한을 인정합니다. 다이묘에 대한 산킨고타이 제도를 완화하고, 다이묘(영주)들의 영지를 인정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쇼군이 전국토의 1/4 정도만 지배하고, 나머지 영지는 각 지방의 다이묘들이 각각 지배하는 체제를 막번 체제라고 합니다.

막은 중앙집권을 하는 쇼군의 <막부>, 번은 지방 다이묘들의 <영지>를 말하는데, 합하여 <막번>이라고 부르죠.

그러나, 한없이 지방 세력에게 권한을 주면 막부가 오래가지 못합니다. 도쿠가와 막부는 지방의 다이묘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는 대신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 장치들을 마련합니다.

가장 유명한 제도는 참근교대제도라고 한자로 읽는 <산킨코타이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에도 막부기 실시된 가장 강력한 다이묘 통제책이었죠.

그 내용은, 다이묘의 반란을 막기 위해 다이묘가 자신의 영지(본국 : 번)과 수도(에도 : 막)를 1년씩 교대로 왕복하면서 머물게 하는 제도입니다. 다이묘는 식구들을 중앙에 머물게 하면서 지방과 중앙의 물자 유통을 원할하도록 책임지게 됩니다.

이 제도는 구두 계약이 아니라 에도와 번 사이를 오가며 군역을 한다는 조항을 성문법으로 만든 제도입니다. 신라시대에 본인이 수도에 머문 상수리 제도, 고려시대에 호족의 아들을 중앙에 머물게 한 기인제도와 비교가 되네요.

다음으로 막부의 지방 통제책은 <공역부담제도>입니다. 원어로는 <후신야쿠제도>라고 하죠. 이것은 국가가 원하는 공공 시설을 지방에서 돈을 부담하여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지방에서 이루어지는 댐이나 치수공사, 군사거점의 구축 등을 지방 다이묘가 책임지고, 그 성과를 판단함으로서 중앙의 재정 부담을 덜고 지방은 중앙의 위세를 확인하게 되죠.

또 <일국일성령>제도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방 다이묘가 자신의 본성을 제외한 그 어떤 곳에서도 성벽을 지을 수 없다는 제도로, 성벽을 지어 중앙에 위협을 주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 제도입니다. 이 법의 시행으로 지방 다이묘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군사활동을 효율적으로 할 수 없게 되었고, 중앙에 대한 반란이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가신고소의 관례>도 있었습니다. 원래 막부의 위계질서와 사무라의 정신에서는 절대 가신이 주군을 고발하거나, 부하가 장군을 모함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에서도 백성이나 향리가 수령을 고발하지 못하게 하는 <부민고소법>이 있었죠.

그러나, 조선에서의 부민고소법은 성리학 윤리를 어긴 강상죄와 국가반역죄는 누구든 고발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대상이 부모건, 수령이건 고발할 수 있었죠.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도막부에서 관학화된 성리학 윤리에 의해 다이묘를 고발할 수 있는 특수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중앙에 반역을 꾀하는 다이묘는 누구든 고발할 수 있게 조치한 것입니다. 에도 막부에서는 이 조항을 이용하여 많은 정적들을 죽이는 행위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3. 건국 초기 : 행정 조직의 체계화가 이루어지다.

일본에서의 새로운 정권의 등장은 건국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역사처럼 신라 건국, 고려 건국, 조선 건국이라는 용어는 낯선 말이죠. 그 이유는 일본에서는 왕조가 바뀐 적이 없고, 천황가가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뀐 것은 지배층으로 권력을 가진 쇼군의 가문이 계속 바뀐 것이지요. 무사 가문인 막부가 바뀐 것일 뿐, 왕조의 변화라는 우리 식 개념과는 좀 다릅니다.

에도 막부는 아예 천황이 있는 수도인 에도에 살림을 차리고, 이전 막부와는 다르게 강력한 중앙, 지방 통제 정책을 실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일단, 막부의 최고 권력자는 쇼군입니다. 그러나, 가마쿠라 막부는 쇼군 밑의 호죠씨 가문이 다 해먹었고, 무로마치 막부는 지방 다이묘들의 힘이 너무 강해서 쉽게 망했습니다. 즉, 가마쿠라 막부는 중앙체제가 부실했고, 무로미치 막부는 지방 통제가 부실했죠.

따라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에도 막부는 <산킨고티이 제도>등을 통해 지방을 통제하려고 무척 노력하였습니다. 그럼, 중앙은 어떻게 통제했는지 볼까요?

일단, 쇼군은 있으나 쇼군이 모든 정무를 처리하지 않습니다. 쇼군은 행정 전문가인 <로츄>를 등용하여 그가 중요한 정무를 처리하고 쇼군의 허락을 받게 하였죠. 조선으로 보면 재상, 현대 개념으로는 대통령 밑에 총리같은 거죠. 로츄는 쇼군의 두뇌같은 역할을 합니다.

또 쇼군의 일을 돕는 와카도리요시가 있었는데, 이것은 현대개념으로 공무원, 일선 비서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자리입니다. 요즘으로 보면 국가 행정의 일선에서 뛰는 장관직이나 차관, 공무원 같은 다양한 직함들을 말하죠.

또 쇼군에게는 쇼군을 지키면서 행정관들을 감시하는 <하타모토>의 직책이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청와대 비서실과 같은 역할을 했죠. 하타모토는 행정관 뿐 아니라 유력 영주인 <고케닌>들의 동향을 쇼군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지방 영주 무사인 <다이묘>들의 근황을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쇼군에 충성하는 부하들이 한 직책을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집착하게 될 쯤에서 자리를 옮기게 했다는 점입니다. 중앙 고위직들은 모든 직위를 서로 돌아가면서 담당하고, 국가의 중요한 정책은 같이 모여 <합의>로 결정하였습니다.

즉, 이전 막부의 실패를 거울삼아서 쇼군이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중앙 정치를 통제하는 효율적인 제도였죠.

다음장에서는 에도막부의 쇄국 정책과 농업정책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이야기로 에도 막부기 상공업 정책을 다뤄보기로 하죠. 일본사는 깊이 있게 들어가지 않고, 핵심적인 것들만 간단간단하게 기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가볍게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도 막부는 조선역사와 깊이 있게 관련된 부분들이 있어서 그 부분들은 다루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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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막부 시대의 정치사

1. 가마쿠라 막부의 창립 -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가마쿠라 막부의 창립에는 이견이 많습니다. 이 막부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천황으로부터 <정이대장군>이라는 최고 직위에 임명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통 전해집니다만, 과연 장군에 임명된 것으로 막부 창립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있었죠. 최근에는 요리토모가 천황으로부터 슈고, 지토의 임면권을 얻어 봉건제도가 시작된 시기를 가마쿠라 막부의 시작으로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일본에서 막부(바쿠후)란 말은 원래 전쟁중인 대장의 근거지를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마쿠라 막부라는 일반명사로 사용할 때 막부는 군사정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가마쿠라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자신의 신하인 <고케닌>들에게 차례로 은혜를 배풀어 지방 관리로 선임합니다. 이 지방관리를 슈고, 지토라 칭하는데, 슈고는 보통 지방 소국의 군사, 경찰권을 위임받은 관리를 칭하며, 지토는 장원에서 토리관리, 치안유지, 세금징수 등을 하는 관리를 말합니다. 이렇게 땅을 받은 <고케닌>들은 요리토모에게 군사, 경제적 원조를 하는 <give and take> 관계를 갖게 됩니다. 이것이 일본의 봉건제도이죠.

2. 싯켄 정치의 시작

그러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낙마(?, 암살설도 있음) 사고로 사망하게 되면서, 가마쿠라 막부의 실권은 순식간에 최고 고케닌 가문인 <호죠씨>에게 넘어갑니다. 요리토모의 아들은 즉위 3개월만에 그 정치실권을 잃었고, 실권은 유력 고케닌 가문의 13인 합의제 정치가 되었습니다. 이 유력 신하가문(고케닌)의 유력자가 호죠씨 가문이였죠. 호죠씨 가문은 약 130년간 가마쿠라 막부의 실권자로 존재합니다. 호조씨는 장관직과 시소직(총리직)을 겸하면서 정치를 하였는데, 이러한 겸직된 지위를 <싯켄>이라고 부릅니다. 이들 싯켄은 보좌역까지 두면서 유력 신하가문(고케닌)을 모아 합의 정치를 하였고, 이것을 역사에서는 <싯켄정치>라고 부릅니다. 즉, 천황은 이미 무사들에 의해 실력을 잃었고, 무사집단으로 막부를 세운 가마쿠라 막부의 미나모토씨는 쇼군으로서 실권이 없습니다.

13세기를 넘어가면서 막부의 중요관직과 지방관리 대부분을 호죠씨가 독점하였습니다. 이것은 호죠씨 독재체제에 대한 다른 유력 가문(고케닌)의 반발을 불러와 막부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천황가는 막부 타도 운동을 시작합니다. 1219년 미나모토씨 쇼군이 암살되어 3대에서 쇼군이 단절되자, 천황가는 쇼군과 호죠씨를 말살하기 위해 군을 모집하고 죠큐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막부군에게 토벌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 오히려 천황가와 귀족가문이 몰락하고 더욱 무가정권과 호쇼씨가 득세하는 결과를 낳게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가정권의 독재는 더욱 더 다른 유력 가문(고케닌)의 반발을 사게 되어 몰락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3. 호죠씨의 독재와 천황의 반격

가마쿠라 막부가 약해진 결정적인 원인은 몽골(일본말로는 원구)의 침입입니다. 호죠씨는 몽골의 모든 요구를 거부하며 몽골과의 항쟁에 들어갔는데, 하늘이 일본을 돕기 시작합니다. 몽골의 1차 침입 대 몽골 함선은 야간 해상 공격을 감행하려다가 폭풍우가 몰아서 전멸하고 맙니다. 몽골의 2차 침입 때에는 몽골 쿠빌라이의 14만 대군이 또 다시 해상의 태풍에 의해 모두 전멸하게 되어 몽골군이 물러갑니다. 일본은 일본특유의 날씨로 인하여 몽골군을 물리쳤고, 이 사건으로 일본은 자신들의 나라가 신의 나라(神國)이라 여기게 됩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신풍(神風, 가미가제)이 불어 일본을 구원해준다고 믿어 <가미가제 불패신앙>이라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이 신앙은 일본이 훗날 미국이랑 세계대전을 벌일 때, 승리할 것이라는 이론적 근거로도 작용한다네요.

문제는 이러한 몽골과의 전쟁은 수비전이였기 때문에 일본 영토가 황폐해졌다는 점입니다. 또, 전쟁에 참여한 고케닌 들에게 호죠씨는 충분한 보상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수비전에서는 전리품이 없으니까요. 이것은 막부에 대한 고케닌의 불만을 초래하여 이들이 막부 타도운동을 벌이는 천황가쪽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고다이고 천황이 막부 타도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입니다. 그는 이 운동이 여러번 실패하여 유배, 또 유배를 당하면서도 계속적으로 막부타도운동을 합니다.(천황은 신의 아들이기에 죽이지는 않습니다.)

이 때 마침 악당(막부를 반대하는 신흥무사를 악당이라고 부릅니다.)인 구스노기 마사시게가 막부를 괴롭히는 운동을 벌였고, 그 틈에 천황은 유배지를 탈출하여 막부를 붕괴시킵니다. 이 때 천황을 도와 막부 타도 운동을 벌였던 자들은 막부의 핵심 무사였던 다카우지와 요시다다입니다. 이들은 호죠씨를 타도하고 천황을 도와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지만, 그들의 본심은 새로운 막부를 세워 천하를 다시 얻는 것이였습니다.

가마쿠라 막부는 이렇게 몽골과의 항쟁을 기점으로 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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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의 정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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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의 나라시대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중앙집권을 위해 불교를 받아들인 것을 지금까지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천황이 강력한 세력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불교세력과 손 잡고 후지와라쿄에서 헤이조쿄로 수도를 옮긴 시대를 나라시대라고 합니다. 헤이죠쿄는 지금의 일본 나라현 부근을 말합니다.

710년 일본 천황은 나라로 수도를 옮겼는데, 이 시기인 80년간 지배자가 빈번하게 교체되고, 왕권보다 불교세력이 더 융성하게 됩니다. 천도를 추진한 것은 당시 천황가인 후지와라노 가문이었는데, 이 가문은 강력한 율령국가를 추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가문의 4명의 형제와 조정의 대신들이 모두 천연두에 걸려 전멸했다고 하네요.(신기한 것은 일본 역사의 전환점에 있었던 인물들이 어이없게 죽은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의 중요한 민란의 지도자들은 정부군에 체포되어 죽은 명예로운 것보다, 지나가던 화살에 맞아죽거나, 밥먹다 체하여 죽거나, 물먹다 죽거나... 한 일이 많은데, 그 이유도 참 가지가지네요.)

이렇게 정부가 공백상태에 빠지자 권력자가 번번이 교체되었지만, 다시 후지와라씨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세는 어지러워서 후지와라씨는 또 다시 죽고, 집권자가 계속 바뀌는 시대가 옵니다. 이 시대는 천황보다 부처의 가호가 오히려 중요하다고 할 정도로 어지러웠고, 결국 나라시대는 80년만에 끝나고 다시 교토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이 때부터를 헤이안 시대 초기라고 하죠. 나라시대는 그 중요도에 비해 별로 할 말이 없어서 내용이 너무 짧네요.

이 당시 시대에 또 하나 중요한 일본의 지역은 간토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일본정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끝없는 독립투쟁을 합니다. 특히 당시 형상되기 시작한 개발영주의 무사집단들은 국가에 저항해가며 독립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 당시 기타 일본의 섬들은 독립국이나, 소국이거나, 문명의 혜택이 없던 지역이었습니다. 거론할 거리가 없죠. 특히 류큐는 일본에서 1000년 이상 독립왕국을 유지한 지역입니다.

2. 헤이안시대의 셋쇼 정치와 원정 정치

헤이안 시대에는 이름이 어려운 2개의 정치체제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셋칸정치와 원정정치라고 하는 정치인데, 일단 일본사를 재미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런 용어에 질려버립니다. 뭔 말이 이렇게 어렵지? 왜 일본애들은 이름이 이렇게 길고 복잡해? 누가 누구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요.

용어 정리를 하면서 헤이안 시대를 정리해 봅시다.

셋칸정치란 천왕이 어리거나 여성일 때 천황의 외조부나 외가 친척, 또는 간파쿠(유력 신하)가 정치를 대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왕이 어릴 때 안동김씨나, 풍양조씨 가문의 가문에서 왕비를 배출한 후에 이들이 왕 대신 정치하곤 했죠? 바로 그겁니다.

나라시대부터 유명했던 가문인 후지와라 가문은 계속 가문의 여자를 천황과 결혼시키며, 정권을 잡은 유명한 셋쇼(셋칸정치) 가문입니다.그 셋칸 정치는 후지와라노 가문에서 4명의 여자를 동시에 천황가에 시집보내는 등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셋칸 정치의 단점은 왕자가 태어나지 못하면 그 다음대에 권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셋칸 정치는 헤이안 초기 후지와라 가문에서 성행했지만, 결국 황태자가 태어나지 못하면서, 천황의 부친이 직접 정치하는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을 <원정>이라고 합니다. 원정을 쉽게 말하면, 조선 후기에 안동김씨 외척 가문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한 흥선대원군 기억나죠? 그 분을 생각하면 됩니다.

원정정치는 어린 천황을 대신해 강력한 상황제(천황의 아버지)가 중앙집권적 통치제도를 확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헤이안 시대에는 중기 이후에는 <원정>정치가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 이유는 상황제에게 <원청>이라는 강적한 사적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이죠. 원청은 소위 우리가 만화에서 보는 <닌자 + 사무라지> 정도의 무사라고 보면 됩니다. 그들은 무서운 것이 없는 강력한 무사 집단이었고, 사람 목숨을 쉽게 여기는 부랑자 집단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불교가 유행하여 감히 <승병>들에게 덤비는 자가 없었는데, 이 <원청>은 상황제의 한마디면 승병들조차 가리지 않고 다 죽여 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무시무시한 <원청>과 같은 무사 집단은, 귀족 불교 사회인 헤이안 시대를 몰락시키는 집단이기도 합니다. 천황가는 왕실의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무사 집단들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고, 무사 집단들은 점차 하늘의 자손이라 우기는 천황집단보다 실제 무력을 가진 <무사집단>인 자신들이 더 강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헤이안 시대가 몰락하고, 무사집단의 시대인 <막부>가 탄생한 것은 어떻게 보면 강력한 중앙집권을 추구하려던 황실가가 내분에 빠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12c 후반에 접어들면서 강력한 무사집단이 일본 열도를 호령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 첫 번째가, 당시 가장 강력한 무장 집단인 <타이라씨>였습니다. 타이라씨는 높은 고관 자리에서 500개 이상의 장원(일본 전체의 절반이상)를 소유하였고, 중국 송나라와 무역을 하면서 막대한 부를 얻은 무사집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타이라씨는 조정에서의 성공을 더 중시한 나머지 무사적 성격이 약해지고 귀족화하면서 다른 무사계급에게 밀리고 맙니다. 당시 신흥 무장 세력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다른 무장세력과 타이라씨를 격파하고 전국을 평정하였습니다.

이 시대부터가 일본의 중세시대로 무사들이 주도하고 서민층이 대두하는 시기입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일본 중세를 연 첫 번째 인물로 가마쿠라 막부를 창건하였습니다. 그럼 다음 장부터는 일본의 중세시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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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슈지도(위)
  
   훗가이도 지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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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지도(위)
오키나와 지도(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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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통해 총체적으로 보는 일본 고대사

1. 일본 고대 불교를 정리해보자.

일본 고대사는 불교로 정리하면 편합니다. 따라서 일본 고대사에서 중요한 불교부터 일단 한번 다루어 보겠습니다.

2. 5-6C 야마토 정권 초기 불교

초기에는 일본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6C 백제 성왕 때 노리사치계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 때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그 유명한 일본의 쇼토쿠 태자이죠. 쇼토쿠 태자는 실제, 아직기와 왕인 등 백제인들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6C 무렵 초기의 일본 불교는 한반도의 삼국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아스카 문화>라고 하는 일본 최초의 불교 문화를 수립하였습니다. 담징 들어보셨죠? 일본 호류사의 금당벽화나 석가삼존상 등이 이 때 일본 초기의 불교문화를 대표합니다. 그리고 일본은 삼국문화를 넘어 중국문화를 직접 수입하기 위해 견수사(수나라에 파견), 견당사(당나라에 파견)와 같은 사신들을 중국에 보내기 시작합니다. 물론, 당시 항해술이 별로라 가다 죽는 경우가 절반이상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일본인들은 목숨걸고 갔답니다.

3. 7C 다이카 개신과 율령

7C가 되면서 이제 일본은 한반도에서 문화를 받아들일 통로가 막히게 됩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백제가 사라졌기 때문이죠.

이제 일본인은 통일신라와 교류하면서 신라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사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하쿠호 문화>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문화를 당나라 초기 문화라고 주장하지만, 자세히 보면 통일신라의 문화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건 한일양국의 주장이 달라서 이 정도에서 넘어가겠습니다.

일본인들은 이제 백제가 사라지자 적극적으로 중국 당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데, 이 때는 불교를 넘어서서 당나라의 율령체제 자체를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일본에서는 <다이카 개신>이라고 합니다. 다이카 개신의 특징은 국왕 중심의 유교적 중앙집권체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중앙집권화를 일본은 이제서야 하는 것이지요. 이 일본식 중앙집권화의 특징은 천황중심의 중앙집권체제라는 점입니다. 천황이 고대 신화와 선민사상을 가진 특수한 존재로 나서면서, 유교를 통해 중앙집권을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율령의 수용과 불교 사상의 심화로 일본은 이 때부터 동아시아 문화를 제대로 수용하는 국가가 되었지요. 다이카 개신은 곧, <동아시아 문화권>으로의 편입을 뜻합니다.

4. 8C 나라시대

나라시대는 약 50년정도 되는 짧은 시기입니다. 자세한 것은 뒤에 다루겠지만, 이 시대의 특징은 신라, 발해, 당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헤이죠코로 천도한 시기입니다. 이 때 일본은 중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불교와 승려세력이 너무 강해졌고, 불교와 승려세력이 나라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강한 시대라고 파악하시면 됩니다. 또, 불교세력을 등에 업은 천황은 <일본>이라는 국호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고사기, 일본서기 등 역사책을 제작하는 등 변혁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5. 9C- 12C 초기 헤이안 시대

헤이안 시대의 특징은 이제 점차 한반도,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 일본이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시기입니다. 이 때 일본은 가나 문자가 제정되었고, 귀족 계급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나로 표현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도 만들어 갑니다. 이 귀족들의 시가를 <와카>라고 합니다. 또 중국에 보내던 견당사의 파견을 완전히 중단합니다. 그리고, 일본 자연과 풍속을 아름답게 그리는 풍속화도 많아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 시대의 분위기는 중국에서 받아들인 율령체제를 동요시키면서, 천황의 신성함을 크게 훼손시키는 시기입니다. 지방 호족들이 성장하면서 장원(호족들의 대토지)이 확대되고, 이들이 귀족사회를 이끌면서 왕권을 약화시킵니다. 또, 외척들이 천황권에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황제권이 많이 약화되지요. 즉, 불교에서의 부처라고 주장하던 왕권을 더 이상 귀족들과 무사들은 인정하지 않게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천황권이 몰락하게 되고, 일본은 무사들이 막부를 열어 다스리는 무가정권시대로 넘어갑니다. 이게 일본의 중세시대지요.

불교를 위주로 보니, 일본 고대사의 흐름이 환히 보이지요? 자 그럼 다른 파트에서 일본 고대사를 한번 바라봅시다.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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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