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관련있는 히스토리아의 글 목록20건

  1. 2011.01.27 (NO 4) 본문 3. 한국사에서 시대구분을 하게 된 시점은 언제인가요? (1)
  2. 2009.12.12 현대사 사료 - 1979. 9. 10 신민당 김영삼의 박정희 정권 타도 선언문 (1)
  3. 2009.12.12 현대사 사료 - 1979. 8. 10 YH 근로자들의 호소문 (YH 무역 여성근로자 사건) (1)
  4. 2009.12.12 현대사 사료 - 1978. 6. 27 우리의 교육지표 (1)
  5. 2009.12.12 현대사 사료 - 1977. 3. 22 민주구국헌장 (1)
  6. 2009.12.12 현대사 사료 - 1976. 3. 1 민주구국선언문(3. 1 명동사건) (1)
  7. 2009.12.12 현대사 사료 - 1974. 12. 25 민주국민헌장 (1)
  8. 2009.12.12 현대사 사료 - 1974. 동아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 (1)
  9. 2009.12.12 1975년 긴급조치 1호 ~ 9호 문건 (3)
  10. 2009.12.12 현대사 사료 - 1973. 12.31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건의서 (1)
  11. 2009.12.12 현대사 사료 - 1973. 12.24 개헌청원운동 취지문 (1)
  12. 2009.12.12 현대사 사료 - 1972. 19.17 박정희 대통령 특별 선언문 (1)
  13. 2009.12.12 현대사 사료 - 1972. 7.4 남북 공동 성명 (1)
  14. 2009.01.27 수능 근현대사 정리 17 : 민주주의의 발전 2 / 장면 내각과 5.16 군사정변 (4)
  15. 2007.08.08 5만원, 10만원권 고액 화폐권 2차후보 역사인물 10명 (1)
  16. 2007.05.18 10.17 박정희 대통령 특별 선언문(1972년)
  17. 2007.03.17 6.23 박정희 특별선언 -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 (1)
  18. 2007.03.17 5. 16 혁명 자료 - 혁명에 대한 공약 (1)
  19. 2007.03.17 국민교육헌장 (1)
  20. 2007.03.17 1971년 박정희 정권의 비상사태 선포문 (1)

근현대사 이야기 (NO.4)

한국사에서 시대구분이 시작된 시기는?

- 시대구분 이야기 -

자, 이제 서양의 시대구분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자. 이제, 우리 역사에서는 어떻게 <시대 구분>를 하는 지 알아보도록 할꺼야. 자, 칼하나 들고 우리 역사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조각조각 내보면서 <카리스마> 있게 놀아볼까나? (헉... 유치한 개그 ㅋ)

그럼,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할 테니, 한국사에서 근대, 현대라는 개념이 언제 등장했는지 알아봐야겠지? 그 첫 번째, 시간.... First Time.... go!

지난 시간에 서양 <근대인>들이 <중세>와는 다른 자신들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근대>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했잖아. 그런데 말야. 고대-중세-근대라는 서양인들의 구분은 시간에 따라 나눈 구분점이야. 서양 근대인들이 가까운 시간을 자신들의 시간인 <근대>로 파악하면서, 점점 멀어지는 시대를 다른 용어로 표현했었지.

자 그럼 자세히 한번 볼까? <근대>의 사람들은 역사를 이렇게 생각한 거야. 역사는 먼 옛날의 이야기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시간별로 나눈 것이라구.... 하지만, 어떤 시대를 나누었다면, 아무 생각없이 나누진 않았겠지? 당연히 시대마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무언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고 시대를 나누었을 거야. 그렇게 시간이 쭈욱~~ 흐르면서 점점 나은 세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가장 발전한 근대라는 시대까지 왔다고 생각한 거지.

결국, <근대인>들이 시대 구분을 했던 목적은 <세상이 가장 올바르게 발전했다>라는 자부심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서양 근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발전을 똑같이 찾기가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 우리 역사는, <시대에 따라 발전했다>라는 명확한 기준보다 더 확실한 기준점이 있어. 그건 바로 <고조선 - 삼국시대 - 고려 - 조선>과 같이 왕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는 <우리식 기준>이 있다는 거야.

한마디로, 우리 역사에서는 왕조별로 각 시대를 나누는 것이 한 시대를 이해하는데 훨씬 편하거든. 이렇게, 왕조별로 역사가 다 다르고, 발전하는 모습이 다 다른데, 서양식으로 나누는 구분법을 사용하려고 하니깐 너무~ 안 맞는거야.

에구구... 우리 역사는 서양의 기준에 맞추어 표현하기 너무 힘들다. 그런데 옛날 한때.... 이걸 이용해서 우리 역사를 아주~ 비하하는 역사학자들이 짜잔~ 하고 등장했었어. 그 나쁜 사람들이 누구냐구? 바로 우리나라를 점령했던 시기, 즉 일제 식민지 시대의 <일본 역사학자>들이지.

일본 역사학자들은 박은식, 신채호 선생님 같은 민족주의 역사학자 분들이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어. 조선의 역사 연구가 많이 진행될수록 일본이 조선인들을 <무식한 인종~>으로 몰아세우기가 어려웠거든.

그래서~  일본 총독부에서는 1920년대부터 <조선사 편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선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지.

그럼 이 <조선사 편수회>는 당연히 뭘 했을까? 당연히~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것이 너무 잘된 일이다> 라는 글들을 쓰기 시작했겠지, 뭐...  그럼 이 단체의 사람들이 주장한 것들을 한번 쭉~ 들어보고, 그 결론이 뭔지 같이 볼까나?

나쁜넘A : 야... 조선애들은 지들 고대 역사가 없어. 북쪽은 중국애가 내려와서 무슨 기자 고조선을 만들었잖아. 또, 중국 한사군한테도 점령당해서 뚜들겨맞구... 남쪽은 우리 일본에게 점령당해서 임나일본부를 세웠고... (타율성이론)

나쁜넘 B : 뭐, 그 이후에도 거란애들, 여진애들, 몽골애들... 돌아가면서 한반도를 박살냈잖아. 뭐, 만주쪽 이민족들의 역사가 바뀔 때마다 조선 역사가 바뀌니... 이건 뭐, 조센징은 역사가 있긴 있어? (만선사관)

나쁜넘 C : 결국 조선애들의 역사는 한반도를 벗어나보지도 못한 역사야. 뭐? 위대한 대륙 진출? 다 뻥이지 뭐~  중국, 일본, 이민족을 따라하면서 이루어진 역사일 뿐야... 어설픈 따라쟁이의 역사네!! (반도사론, 사대주의론)

나쁜넘 D : 한마디로, 고려니, 조선이니 하는 왕조 교체는 별 의미도 없는거라니까... 얘들은 쭈욱~ 고대 수준이니, 자본주의같은 건 생각도 못한 원시인들이지. 뭐, 우리 일본 아니였으면 영원히 발전도 없는 애들이야.(정체성 이론)

결논내봐 : 결과적으로 원시적인 조선이 식민지가 된 건 천만다행인 거야. 일본덕에 근대화도 된거잖아. 조센징들은 일본의 식민지 교육을 감사해야돼.(식민사관의 결론)

뭐, 이런 논리를 만든거야. 한마디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광고하기 위해 한국사를 연구한거지.

그럼 우리 역사학자들도 본격적으로 <시대 구분>이라는 것을 하면서, 일본의 이상한 주장을 반박해야겠지?

그 때, 짜잔~ 하고 나타나 시대 구분을 시작한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 인물이 바로 <마르크스의 시대구분>을 가지고 일본과 싸웠던 사회주의 역사학자 <백남운>이란 사람이야.

일본학자 : 야... 조선 너네는 왕만 자꾸 바뀌지, 발전도 없고 수준은 계속 고대 수준이고.... 너무 미개하잖아.

백남운 : 아니거든? 우리도 고대-중세-근대 사회가 있었어. 내가 쓴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뭐 이런책 읽어볼래?

일본학자 : 귀찮어. 그 책에서 뭐라고 쭝얼거렸는데? 어쨌든 조선애들은 원시적이라 중세가 없었다니깐?

백남운 : 자, 우리 마르크스 선생님이 말씀하신 시대 구분을 조선에 적용해 볼까? 이걸로 계산해보니깐, 와... 서양 고대처럼 우리 역사에도 노예제도 있었지, 토지생산 있었지.... 서양 고대처럼 중세 봉건제도도 있었고, 넓은 토지를 경작하는 장원제도도 있었네. 거기에도, 지주와 농노라는 계급투쟁도 있고... 와... 아 있다, 다 있어!!! 자료 들춰보니깐 하나하나 증거 다 있다!!!

자, 이렇게 백남운 선생을 시작으로 우리도 시대 구분이라는 걸 시작한 거야. 근데, 이 시대구분은 일본애들의 황당한 헛소리에 대항하기 위해 <마르크스> 이론을 우리 역사에 마구마구 가져다 붙인 거라서, 약간 억지도 좀 있었다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자, 이렇게 시작한 시대구분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에게도 퍼지기 시작했지. 그런데,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우리 민족이 찌질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위대한 고대 북방의 역사, 특히 고구려의 역사 연구에 많이 집중하게 되었지. 심지어 어떤 학자는 <고구려>를 <로마제국>과 맞먹는 위대한 고대 제국으로 표현하기도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가 광복을 맞이한 그 기쁜 날...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문제가 생겼어. 사회주의자인 백남운 선생도 북한으로 넘어갔고, 대부분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스스로 북한에 갔거나, 납치되서 북한에 넘어가 버린 거지.

그 결과!!! 1950년대 이후, 남한에 남은 역사학자들은 시대구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이 대부분 이였어.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가지고 역사를 연구한다는 입장이였지. 따라서 이들은 민족주의니,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단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해.   

그나마,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시대구분>이라는 말이 빤짝~! 등장하기도 했지. 역사는 <혁명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을 갖는 시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시대를 구분할까?> 라고 생각한 용감한 역사학자들이 등장하기도 했어.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었구.... 박정희 군사 정권이 시작되자, 또 다시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시대 구분을 하겠다는 용기를 가진 역사학자들은 점점 사라졌지. 교과서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시대구분을 한 학자들은 <재야학자> 소리를 듣기도 했구.

그럼 본격적으로 <시대구분>이란 걸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그건 바로,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성공한 이후야.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성공한 건,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였으니, 시대구분도 199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교과서(3차 교과서)에 등장하게 된 거지.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1990년대 이후 짜잔~ 하고 연구가 시작된 우리 역사의 시대 구분 기준을 한번 살펴보면서 이야기 해볼까나...


-  다음 정보들을 참조하면 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어요!  -


중국사시대구분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민두기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199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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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시대구분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차하순
출판 : 소화 199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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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경제사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백남운 / 박광순역
출판 : 범우사 199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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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의 진로 재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백남운
출판 : 종합출판범우(BW범우) 2007.08.15
상세보기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시어도어 래브 / 걍유원,정지인역
출판 : 르네상스 200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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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시대구분 자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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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료

1979. 9. 10 신민당 김영삼의 박정희 정권 타도 선언문

1. 야당말살 정치음모를 고발한다

나는 오늘 민사법원의 신민당에 대한 결정은 야당을 말살하여 정권의 영구화를 기하려는 박정권의 부도덕한 정치 음모에 사법부가 하수인 노릇을 하여 이루어진 비극적인 소산으로 규정하여 역사와 국민 앞에 고발, 규탄하는 바이다.

나는 이 나라 사법부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과를 역사 위에 저질렀으며 이로써 이 나라 법원은 마침내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된 추악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어 이 나라의 양심적인 법관까지도 국민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자기학대를 하였다. 이는 오늘의 유신체계가 있는 한 자식을 길러 법관을 시킬 의욕을 상실케 하는 충격적인 사법부재의 사태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것으로 국민과 더불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이 결정은 정치권력의 지시에 의하여 재판이라는 요식만 갖춘 정치조작극일 뿐만 아니라 원칙적으로 정당의 지도기능을 지방법원의 일개 판사가 마음대로 정지시킬 수 있는 재판이란 있을 수 없으며 헌법의 이익을 이루는 정당의 지도기능이 민사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인정할 수 없다. 만일, 입장을 바꾸어 일개 판사가 공화당 총재 박정희씨에 대하여 전당대회를 오랫동안 열지 않아 당헌을 위배하였다 하여 공화당총재가 아니라는 결정을 해서 통고하였을 때 박정희 총재는 그것을 인정하고 승복하겠느냐고 묻고 싶다.

2. 관제야당 만들려는 폭거다.

나는 내가 총재로 당선된 뒤 우리 당이 맹렬하게 민주회복 투쟁을 전개하여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국제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키자 공화당 정권은 정권안보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선명야당을 말살하고 관제야당을 만들려는 쿠데타적인 폭거를 자행한 것으로 단정한다. 이는 또한 나 개인에 대한 정치보복인 동시에 민주회복을 열망하는 모든 국민에 대한 도전적인 정치탄압으로서 이와 같은 정권말기적 정치조작은 멀지 않아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3. 정권담당 능력 없음을 고백하였다.

긴급조치를 4년이 넘도록 계속하면서 야당탄압, 언론탄압, 학원탄압, 종교탄압, 근로자의 노동운동 탄압, 무자비한 인권탄압을 자행하여 정권을 지탱해온 박정권이 이제 긴급조치 가지고도 부족하여 삼척동자까지도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정치재판으로 차기 집권 대체정당으로 공인된 야당을 수중폭파시키겠다는 것은 박정권 스스로 힘의 한계를 드러내어 정권을 이 이상 담당할 능력이 없음을 국민 앞에 고백한 것이다.

박정권은 18년이나 장기집권을 하고도 정치의 안정은 물론, 민생의 안정마저도 이룩하지 못하고 철저한 독재와 만성적인 부정부패만 가중시켜왔는데 이제 와서는 일당독재를 구축하여 일인체제의 영구화를 노리는 망동을 저지른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4. 범국민적 항쟁, 박정권 타도선언

나는 지난 선거에서 1.1%를 이겨 신임을 얻은 야당의 총재로서 또 그동안의 투쟁으로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국민적 공당의 총재로서 민주회복을 바라는 모든 계층의 국민의 힘을 집결하여 범국민적 항쟁을 할 것이며, 이 항쟁을 통하여 박정권의 타도운동을 전개할 것을 선언한다.

나는 여기서 박정희 대통령의 하야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나는 국립경찰을 폭도로 전락시켜 심야에 신민당사를 습격하여 잠자던 여공들을 강제로 끌어내다가 김경숙양을 죽이고 현역 국회의원과 취재기자들에 폭행을 가하여 중상을 입혔는데도 국민 앞에 사과 한 마디 없고 폭력 경찰을 한사람도 잡아내지 않는 불법, 무법정권이 박정권임을 다시 한번 지적한다.

문부식 민주전선 주간을 구속시킨 데 이어 비서실장인 김덕룡까지 구속시키는 등 일련의 폭력정치를 다시 한번 규탄하면서 이와 같은 폭력정치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구한다는 신념으로써 가능한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박정권 타도운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한다. 민주회복을 바라는 국내외 국민 각계층의 용기있는 참여와 성원을 호소해 마지않는다. 우리 국민은 일인체제하에서 18년을 살기에도 지쳤는데 일당독재하에서 살기를 강요당하는 오늘의 중대한 국면에 처해서도 궐기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가 함께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유신헌법의 정당성 인정 못한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정권의 자리에 앉은 박정권은 3선개헌을 불법으로 강행하였으며 소위 10월 유신도 불법으로 강행하였다. 헌법상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엄령을 선포, 탱크를 들이대고 국회를 해산한 가운데 행정부 일방적으로 소위 '유신헌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소위 유신헌법은 원천적으로 합법적인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 그 유신헌법에 의해서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된 소위 '대통령선거'라는 이름의 집권연장의식은 선거라고 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은 강요된 99%의 찬성보다는 자유의사에 의한 51%의 지지가 훨씬 값진 민주주의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국민이 4년마다 원하는 정권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믿을 수 없는 정권은 자유롭게 몰아낼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고 사법부가 행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성을 지키면서 양심대로 재판할 수 있는 민주체제를 회복할 수 있는 헌법개정만이 모든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6. 불행한 역사에 대한 책임은 박정권에

나는 이 땅에 다시는 4, 19와 같은 비극적인 사태가 없어야 되며 정치보복이 없는 사회가 뿌리내려야 된다는 차원에서 박정희 대통령 스스로가 평화적으로 정권이양 준비를 갖추라고 여러 차례 권고하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권은 나의 애국적인 충고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쿠데타적인 폭력정치의 수법을 계속 동원해서 이미 국민의 신임을 잃은 정권을 구차하게 지탱하려는 것은 스스로 불행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이 나라에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더라도 그것은 박정권이 자초한 것이므로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박정권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7. 말기적 발악 앞에 단결로 대응하자

나는 여기서 당원동지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면서 만의 하나라도 박정권의 정치 조작극에 승복하겠다는 사람이 당내에 있다면 이는 우리의 동지가 아니라 민주회복을 저해하는 민중의 공적이 된다는 것을 경고해둔다. 우리는 공화당정권의 정권 말기적인 발악 앞에 단결로써 대응해야할 것이다.

8. 군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나는 이 기회에 국군장병 여러분에게 당부해둔다. 군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특정정권을 위해 군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또 국군은 국민의 아들 또는 딸로서 자유와 평화를 지켜 국민이 불안 없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지고의 가치임을 명심하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주기 바란다.

이제 박정권을 지지하는 국민은 박정권 밑에서 치부하고 잘사는 극소수 특권층밖에 없으며 모든 근로자, 농민, 종교인, 지식인 등 국민 절대다수가 박정권의 퇴진과 민주회복을 열망하고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때문에 우리의 박정권 타도운동은 반드시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

나는 박정권이 앞으로 우리에게 가해올 박해의 수법을 다 알고 있다.

첫째, 우리 당의 내부분쟁을 조장해서 국민 앞에 집안싸움하는 신민당이라는 비판을 받도록 작용할 것이다.

둘째, 폭력배를 동원해 당사에 난입시켜 당내 혼란을 부각시킬 것이다.

셋째, 전당대회를 열도록 작용할 것이다.

넷째, 이 김영삼의 목숨까지 노리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범국민적 호응 속에 진행되고 있는 민주회복 투쟁의 예봉을 꺾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박정권의 작태는 이미 국민이 다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실효가 없을 것이며 나는 어떤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신명을 내놓고 싸울 것이며, 이로 인한 어떠한 희생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다. 정의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민주회복이라는 역사적 과업은 반드시 성취될 것으로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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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료

1979. 8. 10 YH 근로자들의 호소문 (YH 무역 여성근로자 사건)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께 저희들의 애타는 마음을 눈물로 호소합니다.

거리에 내쫓긴 저희들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배고픔과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다는 말입니까. 전에도 몇 부의 호소문이 나간 바와 같이 경영진의 경영부실로 인하여 많은 근로자들이 생존권마저 박탈당하게 되고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1969년에 왕십리에서 10여 명의 종업원들로 시작하여 1970년에는 4천여 명의 종업원들로 늘어 국가발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일하여왔고 수출실적이 많아 석탑산업훈장까지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해온 대가가 지금에 와서는 먹을 것은 물론 잠자리마저 빼앗긴 채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진다면 그 누가 마음놓고 열심히 일할 수 있겠습니까?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들은 모두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자식들로서 일찍이 고향과 부모 곁을 떠나 냉대한 사회에 뛰어들어 산업의 역군들로서 열심히 일해왔습니다.

배우지 못했다고 사회의 천대를 받고 멸시를 당하면서도 못 배운 저희들만 원망하며 저희 동생들이 나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조금의 월급이나마 용돈을 줄여가며 저축하면서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주고 또 부모님의 생계와 약값을 보태준다는 뿌듯한 기쁨으로 신념과 긍지를 가지고 일해왔습니다.

수출실적이 높으면 나라도 더욱 발전할 수 있고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된다는 국민학교 시절의 배운 것을 더듬으며 우리는 더욱 더 잘사는 나라를 기대하며 열심히 일해왔습니다만 뜻하지 않은 지난 3월 30일 폐업공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니만큼 끈질긴 투쟁에 폐업철회는 되었지마는 정상화는 되지 않아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 속에서도 회사를 살리고 저희들도 조금 더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지금 정상화는 말도 비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죽음보다 더한 두 번째의 폐업공고가 붙은 것입니다. 오갈 데 없는 저희들은 무엇을 먹고 어디서 살란 말입니까? 동생들의 학비와 부모님들 약값은 어떻게 해야 된단 말입니까. 우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저희들은 '죽음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상화 아니면 죽음이다"라는 동지들의 피맺힌 구호를 생각합니다. 저는 일자리만 주시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더 바랄 것도, 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들을 살려주세요. 지금은 다른 기업들도 불황으로 인하여 문 닫는 회사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제는 그 이유와는 다른 전혀 불황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드리고 싶습니다. 회장인 장용호씨가 미국으로 건너가 15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외화 도피시킴으로써 일어난 문제를 어찌 불황이라고 하겠습니까?

각계각층에 계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점점 심각하게 되어가고 문 닫는 회사들과 많은 실직자가 생기는 지금에 저희 3백 20명마저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내동댕이쳐진다면 약하고 먹을 것 없는 저희들은 죽으란 말입니까. 어디 가서 살길을 찾으란 말입니까.

각계각층에 계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 근로자들이 신민당에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회사, 노동청, 은행이 모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기에 오갈 데 없었기 때문입니다. 악덕한 기업주는 기숙사를 철폐하고 밥은 물론 전기, 수돗물마저 먹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6일 새벽 4시경 여자들만 잠자고 있는 기숙사 문을 부수고 우리 근로자를 끌어내려 했습니다.

이렇게 약자만이 당해야 하는 건가요. 저희들의 회사가 정상화되어 일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저희들이 바라는 이 나라의 산업역군으로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주세요. 저희들의 근본문제 해결은 조흥은행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YH무역(주)의 모든 주식 및 공장을 압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결이 아니면 우리는 여기서 죽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들의 이 호소가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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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료

1978. 6. 27 우리의 교육지표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 한 마디로 인간다운 사회는 아직도 우리 현실에서 한갓 꿈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바로 알고 그것을 개선할 힘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을 교육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역시 이 사회에서는 우리 교육자들의 꿈에 머물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마구 누르고, 자손 대대로 물려준 강산을 돈을 위해 함부로 오염시키는 풍조가 만연한 가운데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존중하는 교육은 나날이 찾아보기 어려워가고 있다.

무상의 의무교육은 빈말에 그치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도 과밀교실과 이기적 경쟁으로 몸과 마음을 동시에 해치고 있으며 재수생 문제와 청소년 범죄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온갖 시련과 경쟁 끝에 들어간 대학에서는 진실이 외면되기 일쑤고 소중한 인재가 번번이 희생되고 교육적 양심이 위축되는 등 안타까운 수난을 거듭하고 있다.

대학인으로서 우리의 양심과 양식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 교육의 실패는 교육계 안팎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자발적 일치를 이룩할 수 있게 하는 민주주의에 그러한 실패를 집약한 본보기인바, 행정부의 독단적 추진에 의한 그 재정경위 및 선포절차 자체가 민주교육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며 일제하의 교육칙어를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 강조되고 있는 형태의 애국애족 교육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날의 세계역사 속에서 한때 흥하는 듯하다가 망해버린 국가주의 문화에서 조상의 빛난 얼을 찾는 것은 잘못이며, 민주주의에 굳건히 바탕을 두지 않은 민족중흥의 구호는 전체주의와 복고주의의 도구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 또 능률과 실질을 숭상한다는 것이 공리주의와 권력에의 순응을 조장하고 정의로운 인간과 사회를 위한 용기를 소홀히 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 교육이 선행되지 않은 애국애족교육은 진정한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실천이 결핍된 채 민주주의보다 반공만을 앞세운 나라는 다 공산주의 앞에 패배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이 땅에 인간다운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는 격동하는 국내외의 역사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슬기롭게 생각하고 용기 있게 행동할 사명을 띠고 있다. 이에 우리 교육자들은 각자가 현재 처한 위치나 기타 인생관, 교육관, 사회관의 차이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은 우리의 교육지표에 합의하고 그 실천을 다짐한다.

1. 물질보다 사람을 존중하는 교육, 진실을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하여 교육의 참헌장인 우리의 일상생활과 학원이 아울러 인간화되고 민주화되어야 한다.

2. 학원의 인간화와 민주화의 첫걸음으로 교육자 자신이 인간적 양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현실적 정열로 학생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배워야 한다.

3. 진실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며, 그러한 간섭에 따른 대학인의 희생에 항의한다.

4. 3,1 정신과 4,19 정신을 충실히 계승전파하여 겨레의 숙원인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민족역량을 함양하는 교육을 한다.

1978년 6월 27일

전남대 교수 일동

김두진, 김정수, 김형곤, 명노근, 배영남, 송기숙,

안진오, 이방기, 이석연, 이홍길, 홍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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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료

1977. 3. 22 민주구국헌장

우리들의 발언과 행동은 극도로 제약되어 있다. 지난 76년 11월이래 특히 금년 2월과 3월에 걸쳐 전국을 삼엄한 사찰, 경계망이 펼쳐지고, 다수의 성직자들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민주시민들이 정보원과 경찰에 의해 납치, 연금 되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계획된 집회와 발언은 완전히 봉쇄되고 있다. 이것은 지금 우리 민중 사이에 새로이 높아가고 있는 민주주의에의 열정을 입증해주는 동시에 우리 민주화 투쟁에 가해지고 있는 탄압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숨통이 막힐 것 같은 이러한 조건 아래서 우선 연락이 닿을 수 있었던 시민들만이 이 문서에 서명하였다.

우리는 이 문서가 시민들 사이에 널리 전파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그것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1. 3, 1민주구국선언과 1, 23 원주선언은 모든 민중의 선언이다. 우리는 민중의 선언을 탄압하는 법정에서 선언에 참여한 인사들과 함께 서 있음을 자처한다. 3, 1 민주구국선언 피고인의 상고이유서는 바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모든 민중의 역사와 진리의 법정에의 항고이유서이다.

2.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나타나고 있는 모든 사태와 징후-미군 철수 논의와 인권문제와 뇌물스캔들 등 국제 선린관계의 파탄-는 오로지 현정부의 독재와 인권유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현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 우리는 모든 민중의 진정한 단결을 확보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회복과 실현이 미군철수에 선행되어야 할 사명임을 직시한다.

3. 이 시점에서 현정부가 민족사적 도전을 극복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ㄱ) 유신헌법과 긴급조차의 철폐와 무효선언,

(ㄴ) 모든 정치사범의 완전한 인권회복과 비민주적 제도와 법의 폐지

(ㄷ) 고문, 사찰 등 폭압과 정보정치의 종식,

(ㄹ) 언론, 학원, 종교의 자유 및 사법권 독립의 보장,

(ㅁ) 노동자, 농민 등 모든 민중의 생존권의 보장,

(ㅂ) 국내외적으로 부정, 부패의 척결과 정당하고도 공개적인 선린외교의 자세확립을 지체없이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4. 인류의 평화와 공동선을 지향하는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와 그것을 위한 노력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길일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증진을 위한 한국민의 고난에 찬 노력에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모든 민중들이 함께 연대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이며 의무이다.

5. 민주주의와 민족의 자주성과 민족통일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오늘날 각계각층의 모든 민중에게 있어서 최대의 책무이다. 노동자, 농민, 봉급생활자, 공무원, 정보원, 학생, 종교인, 지식인, 중소상공업자 등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자유와 생존의 권리를 짓밟히고 있는 모든 민중들이 최선의 민주국민으로서의 태도를 분명히 하기를 호소한다.

우리는 이 문서를 우리 자신이 범국민적인 민주국민연합을 이룩하기 위하여 노력하겠다는 약속으로 삼는다.

민주주의 만세!

1977년 3월 22일

윤보선, 정구영, 윤형중, 천관우, 정일형, 양일동, 함석헌, 지학순, 박형규, 조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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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3. 1 민주구국선언문(3. 1 명동사건)

오늘로 3,1절 쉰일곱 돌을 맞으면서 우리는 1919년 3월 1일 전세계에 울려 퍼지던 이 민족의 함성, 자주독립을 부르짖던 아우성이 쟁쟁히 울려와서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은 구국선열들의 피를 이 땅에 묻어버리는 죄가 되는 것 같아 우리의 뜻을 모아 '민주구국선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자 한다.

8, 15 해방의 부푼 희망을 부수어 버린 국토분단의 비극은 이 민족에게 거듭되는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이 민족은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6, 25동란의 폐허를 딛고 일어섰고, 4, 19 학생의거로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슴가슴에 회생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 민족은 또다시 독재정권의 쇠사슬에 매이게 되었다. 삼권분립은 허울만 남고 말았다. 국가안보라는 구실아래 신앙과 양심의 자유는 날로 위축되어가고 언론의 자유, 학원의 자주성은 압살 당하고 말았다.

현정권 아래서 체결된 한일협정은 이 나라의 경제를 일본에 완전히 예속시켜 모든 산업과 노동력을 일본 경제침략의 희생물로 만들어버렸다.

눈을 국외로 돌려보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보기도 초라한 고아가 되고 말았다. 한반도에서 UN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말도 이제는 지난날의 신화가 되고 말았다. 동,서 양진영 사이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고 세계사에 새 힘으로 대두한 제3세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서방세계만 의존하다가 서방세계에마저 버림을 받고 말았다.

현정권은 이 나라를 여기까지 끌고 온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국내의 비판적인 세력을 탄압하다가 민주국가들의 신임을 잃게 된 것을 통탄히 여겨야 하며, 제3세계의 대두와 함께 UN이 변질되었다는 것을 탓하기 전에 긴 안목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쳐다보지 못한 것을 스스로 탓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비원인 민족통일을 향해서 국내외로 키우고 규합하여 한걸음 한걸음 착실히 전진해야 할 이 마당에 이 나라는 1인 독재 아래 인권은 유린되고 자유는 박탈당하고 있다. 이리하여 이 민족은 목적의식과 방향감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총파국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우리는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여, 야의 정치적 전략이나 이해를 넘어 이 나라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민주구국선언'을 선포하는 바이다.

1.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국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공산주의 정권과 치열한 경쟁에 뛰어든 이 마당에 우리가 길러야 할 힘은 민주역량이다. 국방력도, 경제력도 길러야 하지만 민주역량의 뒷받침이 없을 때 그것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다.

그러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남의 나라에서 실천되고 있는 어떤 특정한 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를 형성한 성원들의 뜻에 따라 최선의 제도를 장만하고 부단히 개선해가면서 성원 전체의 권익과 행복을 도모하는 자세요, 신념을 말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해서'보다는 '국민에게서'가 앞서야 한다. 무엇이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 좋으냐는 판단이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 판단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국민을 위한다는 생각만으로 민주주의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으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령과 복종을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 일이다. 국민은 복종을 원하지 않고 주체적인 참여를 주장한다. 국민은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할 기본권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긴급조치를 철폐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다가 투옥된 민주인사들과 학생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한다. 국민의 의사가 자유로이 표명될 수 있도록 집회, 출판의 자유를 국민에게 돌리라고 요구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유신헌법으로 허울만 남은 의회정치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로이 표현되는 민의를 국회는 법제정에 반영시켜야 하고, 정부는 이를 행정에 반영시켜야 한다. 이것을 꺼리고 막는 정권은 국민을 위한다면서 실은 국민을 위하려는 뜻이 없는 정권이다.

셋째로 우리는 사법부의 독립을 촉구한다. 사법권의 독립 없이 국민은 강자의 횡포에서 보호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법부를 시녀로 거느리는 정권은 처음부터 국민을 위하려는 뜻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2. 경제입국의 구상과 자세가 근본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경제발전이 국력배양에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다고 경제력이 곧 국력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정권은 경제력이 곧 국력이라는 좁은 생각을 가지고 모든 희생시켜가면서 경제발전에 전력을 쏟아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한가? 국민경제의 수탈을 바탕으로 한 수출산업은 '74년, '75년 두 해에 40억 불이라는 엄청난 무역적자를 내었고, 그 적자폭은 앞으로 줄어들 가망이 없다. 1975년 말 현재 우리 나라의 외채 총액은 57억 8천만 불에 이르렀다. 차관기업들이 부실기업으로 도산하고 난 다음 이 엄청난 빚은 누구의 어깨 위에 메워질 것인가?

노동자들에게 노조 조직권과 파업권을 박탈하고 노동자, 농민을 차관기업과 외국자본에의 착취에 내어 맡기고 구상된 경제입국의 경륜은 처음부터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었다. 국민의 경제력을 키우면서 그 기반 위에 수출산업을 육성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었다. 농촌경제의 잿더미 위에 거대한 현대산업을 세우려고 한 것이 망상이었다.

차관에만 의존한 경제체제는 처음부터 부패의 요인을 안고 있었다.이대로 나간다면 이 나라의 경제파국은 시간문제다. 현정권은 이 나라를 경제파탄에서 건질 능력을 잃은 지 오래다. 경제 부조리와 부패는 권력구조의 심장부에서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에 이르고 보면 박정권은 책임을 지고 물러날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경제파국을 미연에 방지하여 국제사회에서 아주 신임을 잃지 않도록. 차관상환의 유예를 차관국가들과 은행들에 요청하기 위해서라도 정권교체는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만약 그럴 겸허와 용기가 없다면 심장이라도 도려내는 심정으로 경제입국의 구상을 전적으로 재검토하라고 우리는 촉구한다. 실정을 정당화하지 말고 솔직히 승인하라. 국민의 국세 부담력을 무시하고 짜여진 팽창예산을 지양하라. 부의 재분배를 철저하고 과감하게 실천하여 국민의 구매력을 키우라. 그래야 공산주의의 온상이 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부조리 현상이 시정되고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것이며, 북녘 공산정권에 대해선 민족통일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3. 민족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진 최대의 과업이다.

국토분단의 비극은 해방 후 30년 동안 남과 북에 독재의 구실을 마련해 주었고, 국가의 번영과 민족의 행복과 창조적 발전을 위해서 동원되어야 할 정신적, 물질적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다. 외국의 군사원조 없이 백만을 넘는 남북한의 상비군을 현대무기로 무장하고 이를 유지한다는 일은 한반도의 생산력과 경제력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일은 우리의 문화창조에 동원되어야 할 이 겨레의 슬기와 창의가 파괴적으로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민족통일은 지금 이 겨레가 짊어진 지상과업이다. 5천만 겨레의 슬기와 힘으로 무너뜨려야 할 절벽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민족통일을 저희의 전략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용한다거나 저지한다면 이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민족통일의 기회는 남과 북의 정치가들의 자세 여하로 다가질 수도 있고 멀어질 수도 있다. 진정 나라와 겨레를 위한다면 변해가는 국제정세를 유지해가면서 때가 왔을 때 이를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잡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때에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이 있다. 그것은 통일된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한 최선의 제도와 정책이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대헌장이다. 다가오고 있는 그날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민주역량을 키우고 있는가, 위축하고 있는가?

승공의 길, 민족 통일의 첩경은 민주역량을 기르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5천만 온겨레가 새 역사 창조에 발벗고 나서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틈바구니에서 당한 고생을 살려 민주주의의 진면목을 세계 만방에 드날리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통일된 민족으로, 정의가 실현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평화스런 나라 국민으로 국제사회에서 어깨를 펴고 떳떳이 살게 하는 일이다.

민주주의 만세!

1976년 3월 1일

함석헌, 윤보선, 정일형, 김대중, 윤반웅, 안병무, 이문영, 서남동, 이우정
문동환,  함세웅,  안병무, 정태영, 김승훈, 장덕필, 김택암, 안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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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료

1974. 12. 25 민주국민헌장

우리는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고 압제와 불의를 거부하는 민주국민이다. 우리는 독재를 반대하며 정보정치를 배격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를 거부하며 그 타파를 위하여 투쟁한다.

국민이 언론과 신앙의 자유의 누리고 공포와 불신, 결핍으로부터 해방된 민주사회의 건설이 우리의 나아갈 길이다. 침묵과 방관은 방자한 권력의 존속과 팽창을 조장하는 것이므로 이 같은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민주국민의 권리이며 의무이다.

부정과 부패는 민주국민의 공적이요, 민주사회의 독소이다. 자주자립의 국민경제확립과 그 균형발전은 민주주의의 실현의 토대이다. 모든 국민은 각자의 정당한 권익옹호를 위해 단체를 구성하고 가입할 수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에 상응하는 생활을 보장받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확립과 신당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실현만이 국민의 연대와 발전을 이룩하는 길이요,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위신을 높이고 인류의 진보에 이바지하는 길이며, 갈라진 민족이 다시 평화로운 통일에 이를 수 있는 길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천부의 양심에 따라 의를 행함에 떨쳐 일어나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가름할 이 땅의 민주건설을 위하여 언제 어디서나 거국적인 민족, 민주의 국민운동에 헌신한다.

강령 삼장

1. 우리의 민주화 투쟁은 시대적 양심의 소명이며 민주국민으로서의 의무요, 정당한 권리의 행사이다. 우리의 투쟁은 두려움 없이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개한다.

1. 주권자인 우리들 민주국민은 부당한 권력의 자기 존속을 위한 어떠한 음모와 횡포에 대하여도 비타협 불복종의 정신으로 대처한다.

1. 평화의 양심을 사랑하는 우리는 국내의 모든 민주역량과 상호연계를 강화하고 단결하여 통일되고 조직된 힘으로 그릇된 권력에 대항한다.

1975년 3월 1일

민주회복국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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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료

1974. 동아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

한국기자협회는 최근 각사 기자들이 벌인 언론자유수호선언의 내용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앞으로 각 언론기관의 일선기자들이 이번 선언에서 천명한 사항을 실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을 밝힌다.

또 최근 동아일보와 한국일보의 발행인, 편집국장, 실무 책임부장 등이 제작과 관련하여 정보부에 연행을 당하였고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일선기자들이 집단으로 투쟁해야 했던 사건은 실로 오늘의 우리 언론에 얼마나 부조리가 만연해 있는가를 드러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사태를 가져온 것은 각 회원사의 기자들이 선언문에서 명백히 밝힌 대로 언론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간섭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언론 내부에서도 경영진과 편집진의 사고와 호흡이 일치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71년도, 73년도와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각사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운동이 이러한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한 기자들의 일관된 투쟁의 일환이라 보며 다음 사항을 결의한다.

1, 우리는 71년 5월 15일에 채택한 언론자유수호 행동강령을 재확인한다.

1. 전국 언론기관 경영진은 기자들이 이러한 언론자유 수호운동을 적극 뒷받침할 것을 촉구한다.

1. 우리는 각사 기자들의 결의를 뒷받침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한국기자협회 내에 언론자유 침해에 대한 특별대책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다.

1. 각 언론기관은 보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사건과 이에 관련된 언론기관 및 단체의 대응책을 빠짐없이 보도할 것을 요구한다.

- 한국기자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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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긴급조치 1호 ~ 9호 문건


【긴급조치 1호(1974. 1. 8) : 8. 23. 오전 10시】

1.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2.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3.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4. 위의 1.2.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의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5. 이 조치에 위반하는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하는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 할 수 있다.
6.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하는 자는 비상군법 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7. 이 조치는 1974년 1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  

【긴급조치 2호(1974.1.8 오후 5시)】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자를 심판하기 위한 고등 군법회의와 비상 보통 군법회의의 설치 및 구성에 관한 내용.

【긴급조치 3호(1974. 1. 14)】

1. 저소득층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하여
   가. 근로 소득세, 사업 소득세 및 주민세를 1974년 1월부터 12월까지 면세 또는 대폭 경감한다.
   나. 국민 복지 연금 및 교원 연금제도의 실시를 1년간 연기한다.
2. 버스 등의 대중 교통수단의 요금 인상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기 위하여 통행세를 감면한다.
3. 농가 소득의 증대와 적정 미가의 유지를 위하여 1973년산 미곡 수매 가격을 가마당 500원씩 인상하여 그 수매량을 대폭 늘리고 이미 정부가 수매 완료한 분에 대해서도 동액을 추가 지급한다.
4. 영세민의 취업 기회를 보장하기 위하여 긴급 취로 대책비 1백억원을 확보한다.
5. 중소 상공업에 대하여 특별저리 금융자금 3백억원을 지원하고 이에 필요한 예산 조치를 한다.
6. 임금의 우선변제제를 신설시행하고 임금채불, 부당해고, 및 근로조건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악덕 기업가에 대하여는 가중처벌 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7. 재산세의 면세점을 인상하고 각종사치성입장세, 보석, 테레비전, 냉장고, 고급주류, 고급주택, 자가용승용차에 대한 조세를 중과한다.
8. 유류를 절약하기 위하여 휘발유에 대한 세율을 인상한다.
9. 공무원의 급여 인상과 급여 체계의 조정을 앞당겨 1974년 2월부터 실시한다.
10. 이사의 조치와 아울러 정부의 관계 각 부처는 다음 사항을 지체 없이 추진할 것을 지시한다.
이하 각 세부항은 생략함.

【긴급조치 4호(1974. 4. 3) 8.23. 오전 10시 해제】

1. 전국 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과 이에 관련되는 제단체(이하 '단체'라 한다)를 조직 하거나 또는 이에 가입하거나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고무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그 구성원과 회동 또는 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하거나, 그 구성원의 잠복, 회합 그밖의 활동을 위하여 장소, 물건, 금품 기타의 편의를 제공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2.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에 관한문서, 도서, 음반 기타 표현물을 출판, 제작, 소지, 배포, 전시 또는 판매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3. 제 1항 2항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또는 선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4. 이 조치의 선포 전에 제 1항 내지 제 3항에서 금한 행위를 한 자는 1974년 4월 8일까지 그 행위 내용의 전부를 수사, 정보기관에 출석하여 숨김없이 고지하여야 한다. 위 기간 내에 출석, 고지한 행위에 대하여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5. 학생의 정당한 이유 없는 출석, 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 학교관계자 지도 감독하의 정상적 수업, 연구활동을 제외한 학교내외의 집회, 시위, 성토, 농성 기타 일체의 개별적 집단적 행위를 금한다. 비 정치적 행위는 예외로 한다.
6. 이 조치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7. 문교부 장관은 대통령 긴급조치에 위반한 학생에 대한 퇴학 또는 정학의 처분이나 학생의 조직 결사 기타 학생단체의 해산 또는 이 조치 위반자가 소속된 학교의 폐교 처분을 할 수 있다.
8. 제 1항 내지 제 6항에 위반한자, 제 7항에 의한 문교부장관의 처분에 위반한자 밎 이 조치를 비방한자는 사형, 무기 또는 %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
9. 이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비상 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10. 비상군법회의 검찰관은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자에 대하여 소추를 받지 아니한 때에도 압수한 서류 또는 물품의 국고귀속을 명할 수 있다.
11. 군 지역 사령관은 서울 특별시장, 부산시장또는 도지사로부터 치안 질서 유지를 위한 병력 출동의 요청을 받은 때에는 이에 응하여 지원하여야 한다.
12. 이 조치는 1974년 4월 3일 22시부터 시행한다.

【긴급조치 5, 6호는 1, 4호 해제 및 유보 조치】

【긴급조치 7호(1975. 4. 8)】

  고려대학교에 대한 휴교와 교내에서의 일체의 집회 시위 금지
1. 75년 4월 8일 하오 5시를 기해 고려대학교에 휴교를 명한다.
2. 동교내에서 일체의 집회. 시위를 금한다.
3. 제 1.2호를 위반한 자는 3년 이상 1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 할 수 있다.
4. 국방부 장관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병력을 사용하여 동교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5. 이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 수색 할 수 있다.
6. 이 조치에 반한 자는 일반법원에서 관할 심판한다.
7. 이 조치는 75년 4월 8일 하오 5시부터 시행한다.

【긴급조치 8호(7호 해제조치)】

【긴급조치 9호(1975. 5. 13)】

1. 다음 각호의 행위를 금한다.
  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나. 집회, 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등공공전파 수단이나, 문서, 도서, 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청원, 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다. 학교당국의 지도, 감독하에 행하는 수업, 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의례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 시위 또는 정치관여행위
  라.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
2. 제 1에 위반한 내용을 방송, 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 배포, 판매, 소지 또는 전시하는 행위를 금한다.
3. 재산을 도피시킬 목적으로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의 재산을 국외로 이동하거나 국내에 반입될 재산을 국외에 은익 또는 처분하는 행위를 금한다.
4. 관계문서의 허위기재 타 부정한 방법으로 해외 이주의 허가를 받거나 국외에 도피하는 행위를 금한다.
5. 주무부 장관은 이 조치 위반자, 범법 당시의 그 소속학교, 단체나 사업체 또는 그 대표자나 장에 대하여 다음 각호의 명령이나 조치를 할 수 있다.
  가. 대표자나 장에 대한 소속 임직원, 교직원 또는 학생의 해임이나 제적의 명령
  나. 대표자나 장, 소속 임직원, 교직원이나 학생의 해임이나 제적의 조치
  다. 방송, 보도, 제작, 판매 또는 배포의 금지 조치
  라. 휴업, 휴교, 정간, 폐간, 해산 또는 폐쇄의 조치
  마. 승인, 등록, 인가, 허가 또는 면허의 취소 조치
6.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은 이 조치에 저촉 되더라도 처벌하지 아니 한다. 다만, 그 발언을 방송, 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한 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7.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 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를 병과한다.
   미수에 그치거나 예비 또는 음모한 자도 또한 같다.
8.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구금, 압수 또는 수색 할 수 있다.
9. 이 조치 시행 후 특정 범죄 가중 처벌등에 관한 법률 제 2조(뇌물 죄의 가중 처벌)의 죄를 범한 공무원이나 정부기관기업체의 간부직원 또는 동법 제 %조(국고 손실)의 죄를 범한 회계 직원등에 대하여 동법 각조에 정한 형의 수뇌액 또는 국고 손실액의 !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병과한다.
10. 이 조치 위반의 죄는 일반 법원에서 심판한다.
11. 이 조치 시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주무부 장관이 정한다.
12. 국방부 장관은 서울 특별시장,부산시장 또는 도지사로 부터 치안 질서 유지를 위한 병력 출동 요청을 받을 때에는 이에 응하여 지원 할 수 있다.
13. 이 조치에 의한 주무부 장관의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 한다.
14. 이 조치는 1975년 5월 13일 15시부터 시행한다.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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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료

1973. 12.31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건의서

항상 국정에 분망하신 각하께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위 기명자들은 1973년 12월 13일 회합하여 현하시국에 관한 의견을 교환한 결과 다음과 같은 합의를 보았기에 이를 정책수립에 참고하여주시도록 각하께 간청허가로 하였습니다.

1. 현시국은 민주주의 체제를 근본부터 또한 제도적으로 회복하여 억눌린 국민의 자유를 소생시키지 아니하고는 중대한 민족적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보는바 이에 대한 각하의 적절한 조처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2. 정상적인 민주주의 체제로의 회복후에는 적어도

     - 가.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하게 보장할 것.

     - 나. 삼권분립의 체제를 재확립할 것.

     - 다. 공명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길을 열 것.

위의 각 조항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위 3개항의 배경을 약간 부연하여 망하고자 합니다.

1, 평시, 전시를 막론하고 국가의 유지발전에 가장 필수적으로 되는 것이 국민의 단결이며 그 단결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함으로써 비로소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국민 저변에 확산되어 있는 불안감, 불신감이 심각해 이와 같은 단결을 기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는 점에 깊은 배려가 있기를 바랍니다.

2, 북한과의 대화 확대는 북한의 기본입장이 공산주의에 있을 것인 이상 우리 대한민국의 기본입장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를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의 우위확보는 오직 다양하고 탄력성 있는 국민의견의 결집만이 이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 믿습니다.

3, 우리 대한민국은 과거 우호관계가 없었던 국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가운데서라도 기본적으로는 자유민주진영의 대열을 이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국내적인 민주체제를 갖추지 못하는 경우에는 국제적 고립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4, 정상적인 민주체제의 회복 후에 대한 다수 국민의 희망은 행정상의 방침변경과 같은 일시적인 시책으로 무마되기는 어렵고 국가의 기본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시정이 제도적으로 구현되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판단합니다. 이점에 대하여 특히 깊은 통찰이 있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5, 이와 같은 우리 의견을 각하께 직접 건의하는 것은 현행헌법의 규정으로나 우리 나라의 현실상황으로나 각하의 결단에 의해서만 그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내외의 정세가 다단한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회복만이 우리 대한민국의 활로라고 믿는 위 기명자들의 충정을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1973년 12월 31일

김수환, 김재준, 김홍일, 김관석, 백낙준, 유진오, 이병린, 이인,
이정규, 이희승, 천관우, 한경직, 함석헌, 계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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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료

1973. 12.24 개헌청원운동 취지문

개헌청원운동 취지문

- 민주주의 회복, 현행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을 전개하며 -   헌법개정 청원 운동 본부

오늘의 모든 사태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경제의 파탄, 민심의 혼란, 남북긴장의 재현이란 상황 속에서 학원과 교회, 언론계와 가두에서 울부짖는 자유화의 요구 등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오늘의 헌법하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오늘의 헌법은 그 개정의 발의권이 사실상 대통령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 국민은 이와 같은 헌법개정 발의권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고 우리들의 천부의 권리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대통령에게 현행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백만 인 청원운동을 전개하는 바이다.

이 운동은 우선 우리들 모두의 내 집안에서부터 시작하여 학원과 교회 그리고 각 직장과 가두에서 확대될 것이다.

청원내용

현행헌법을 개정하여 현행헌법이 이전의 민주헌법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1973년 12월 24일

서명자(서명 순)

장준하, 함석헌, 법정, 김동길, 김재준, 유진오, 이희승, 김수환, 배낙준, 김관석,
안병무, 천
관우, 지학순, 김지하, 문동환, 김찬국, 문상희, 백기완, 이병린,
계훈제, 김홍일, 이인, 이상은,
이호철, 이정규, 김윤수, 김승경, 홍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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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료

1972. 10.17 박정희 대통령 특별선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희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을 영예롭게 개척해나가기 위한 나의 중대한 결심을 국민 여러분 앞에 밝히는 바입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심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나는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긴장완화의 흐름에 긍정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긴장완화의 본질은 아직까지도 열강들의 또하나의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에 지나지 않으며, 이 지역에서는 불행하게도 긴장완화가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긴장완화라는 이름 밑에 이른바 열강들이 제3국이나 중소국가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는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기존 세력균형 관계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나는 이 변화가 우리 안전보장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위험스러운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같은 변화는 곧 아시아의 기존질서를 뒤바꾸는 것이며 지금까지 이곳의 평화를 유지해온 안보체제마저도 변질시키려는 커다란 위협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이 지역에서 다시는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우리의 솔직한 현황인 것입니다.

국제정세가 이러할진대 작금의 변화는 확실히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하게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고 개척해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엄숙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속에서 전화의 재발을 미연에 방지하고 평화로운 조국통일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는 27년간의 기나긴 불신과 단절의 장벽을 헤치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남북간의 대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 대화는 결코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기본 정책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오래도록 추구해 온 평화통일과 번영의 터전을 굳게 다져나가려는 민족적 결의의 재천명인 것입니다.

지금부터 2년 전인 1970년 8월 15일 나는 광복절 제25주년 경축사를 통해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조성과 관련하여 북한 당국자들에게 무력과 폭력의 포기를 요구하고 그 대신 남과 북이 각기 평화와 번영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라는 시일이 지난 오늘 남북 사이에는 많은 사태의 진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금년 5월 2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나의 뜻에 따라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최고 당국자들과 만나 조국의 평화통일 방안을 포함하는 남북간의 현안문제들에 관하여 서로 의견을 교환한 뒤 지난 7월 4일에는 역사적인 남북공동성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되었습니다.

남북적십자회담은 우리 대한적십자사의 제의에 따라 예비회담이 작년 9월 20일부터 판문점에서 개막된 뒤 금년 8월 11일 그 대단원을 이루어 본회담을 각기 평양과 서울에서 개최한 바 있으며, 제3차 본회담이 금년 10월 24일 평양에서, 그리고 제4차 본회담이 금년 11월에 서울에서 계속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남북간에는 남북조절위원회와 남북 적십자회담이라는 서로 차원을 달리한 두 개의 대화의 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화도 위헌이다 위법이다 하는 법률적 또는 정치적 시비마저 없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남북간의 이 대화는 흩어진 가족을 찾아야겠다는 1천만 동포의 대화이며, 전쟁의 참화를 방지하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하겠다는 5천만 민족의 대화입니다.

우리는 조국의 강토 위에서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총성이 들리지 않게 하겠으며 흩어진 1천만의 이산가족은 한시바삐 재결합되어야 하겠으며 분단된 조국은 기어코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민족의 긍지와 명예를 위하여 마땅히 성취되어야 할 우리 민족의 대과업인 것입니다. 이 민족의 과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비록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대화를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입니다.

나는 한반도의 평화, 이산가족의 재결합, 그리고 조국의 평화통일, 이 모든 것이 민족의 소명에 따라 남북의 성실한 대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진정으로 민족중흥의 위대한 기초작업이며 민족웅비의 대설계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의 주변에서는 아직도 무질서와 비능률이 활개를 치고 있으며 정계는 파쟁과 정략의 갈등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같은 민족적 대과업마저도 하나의 정략적인 시비거리로 삼으려는 경향마저 없지 않습니다. 이처럼 민족적 사명감을 저버린 무책임한 정당과 그 정략의 희생물이 되어온 대의기구에 대해 과연 그 누가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의 성취를 기대할 수 있겠으며 남북대화를 진정으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믿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국제정세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면서 또한 남북대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추진해나가야 할 중대한 시점에 처해 있습니다. 이같은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줄기찬 예지와 불퇴전의 용기, 그리고 철통같은 단결이며 이를 활력소로 삼아 어렵고도 귀중한 남북대화를 굳게 뒷받침할 수 있는 모든 체제의 시급한 정비라고 믿습니다.

우리 헌법과 각종 법령 그리고 현체제는 동서 양극 체제하의 냉전시대에 만들어졌고, 하물며 남북의 대화 같은 것은 전연 예상치 못했던 시기에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국면에 처해서는 마땅히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로의 일대 유신적 개혁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일대 개혁의 불가피성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정치현실을 직시할 때 나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 같은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방법으로 개혁을 시도한다면 혼란만 더욱 심해질뿐더러 남북대화를 뒷받침하고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대응해나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국민적 정당성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나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부득이 정상적 방법이 아닌 비상조치로서 남북대화의 적극적인 전개와 주변정세의 급변하는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실정에 가장 알맞은 체제개혁을 단행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오늘 이 같은 결심을 국민여러분에게 솔직히 알리면서 나의 충정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번 비상조치는 결코 한낱 정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국권을 수호하고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성실한 대화를 통해 전쟁재발의 위험을 미연에 막고 나아가서는 5천만 민족의 영광스러운 통일과 중흥을 이룩하려는 실로 우리 민족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확신합니다.

이에 나는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의 대염원을 구현하기 위하여 우리 민족진영의 대동단결을 촉구하면서 오늘의 이 역사적 과업을 강력히 뒷받침해주는 일대 민족 주체세력의 형성을 촉진하는 대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약 2개월간의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중지시키는 비상조치를 앞에 선포하는 바입니다.

1, 1972년 10월 17일 19시를 기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등 현행헌법의 일부조항 효력을 정지시킨다.

2, 일부 효력이 정지된 헌법조항의 기능은 비상국무회의에 의하여 수행되며 비상국무회의의 기능은 현행 헌법의 국무회의가 수행한다.

3, 비상국무회의는 1972년 10월 27일까지 조국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헌법개정안을 공고하며 이를 공고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확정한다.

4, 헌법개정안이 확정되면 개정된 헌법절차에 따라 늦어도 금년 연말 이전에 헌정질서를 정상화시킨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나는 지금 이상과 같은 비상조치를 국민여러분에게 선포하면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건전하고 알차게, 그리고 능률적인 것으로 육성, 발전시켜야겠다는 나의 확고한 신념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우리는 자유민주 체제보다 더 훌륭한 제도를 아직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 하더라도 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에는 이 민주체제처럼 취약한 체제도 또한 없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우리 민주체제에 그 스스로를 지켜나가며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남북대화를 굳게 뒷받침해 줌으로써 남북대화를 평화통일과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이 개혁을 단행하는 것입니다.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바라는 그 마음으로 우리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이 비상조치를 지지할 것으로 믿기 때문에 나는 앞에서 밝힌 제반개혁이 공약한 시일 내에 모두 순조로이 완결될 것으로 믿어 마지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국민여러분이 헌법 개정안에 찬성치 않는다면 나는 이것을 남북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국민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이고 조국통일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것임을 아울러 밝혀 두는 바입니다.

이번 비상 조치는 근본적으로 그 목적이 제도의 개혁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일상 생업과 활동에는 아무런 지장이나 변동도 없을 것을 확실히 밝혀둡니다.

모든 공무원들은 국민에 대한 공복으로서의 사명감을 새로이 하고 맡은 바 직책에 가일층 충실할 것을 촉구합니다. 정부는 국민의 명랑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질서 확립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것이며, 경제활동의 자유 또한 확고히 보장할 것입니다. 새마을운동을 국가시책의 최우선 과업으로 정하며 이 운동을 통해 모든 부조리를 자율적으로 시정하는 사회기풍을 함양하여 과감한 복지균점 정책을 구현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비상조치에 따라 개혁이 진행중이라 하더라도 한반도의 평화화와 민족의 지상과제인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대화는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임을 아울러 밝혀두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나는 이번 비상조치의 불가피성을 다시금 강조하면서 오늘의 성급한 시비나 비방보다는 오히려 민족의 유구한 장래를 염두에 두고 내일의 냉엄한 비판을 바라는 바입니다.

나 개인은 조국통일과 민족중흥의 제단 위에 이미 모든 것을 바친 지 오래입니다.

나 개인은 이 특별선언을 발표하면서 오직 민주제도의 건전한 발전과 조국통일의 영광된 그날만을 기원하고 있으며 나의 이 기원이 곧 우리 국 모두의 기원일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일치단결하여 이 기원이 성취되는 그날까지 힘차게 전진을 계속합시다.

그리하여 통일조국의 영광 속에서 민주와 번영의 꽃을 영원토록 가꾸어 나아갑시다.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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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료

1972. 7.4 남북 공동 성명

최근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며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담이 있었다. 서울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5월 2일부터 5월 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평양의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으며 김영주 부장을 대신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1972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을 방문하여 이후락 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다.

이 회담들은 쌍방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공통된 염원을 가지고 안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는데서 큰 성과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쌍방은 오래동안 만나지 결과로 생긴 남북 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긴장의 고조를 순화시키며 나아가서 조국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완전한 합의를 보았다.

1. 쌍방은 다음과 같은 조국통일원칙들에 합의를 보았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2. 쌍방은 남북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서로 상대방을 중상비방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 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적 충돌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3. 쌍방은 끊어졌던 민족적 연계를 회복하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남북 사이의 다방면적인 제반 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4. 쌍방은 지금 온 민족의 거대한 기대 속에 진행되고 있는 남북적십자회담이 하루빨리 성사되도록 적극협조하는데 합의하였다.

5. 쌍방은 돌발적 군사사고를 방지하고 남북 사이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직접 신속 처리하기 위하여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를 놓기로 합의하였다.

6. 쌍방은 이러한 합의 사항을 추진시킴과 함께 남북 사이의 제반문제를 개선 해결하며 또 합의된 조국통일원칙에 기초하여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이후락 부장과 김영주 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

7. 쌍방은 이상의 합의사항이 조국통일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에 부합된다고 확신하면서 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온 민족 앞에 엄숙히 약속한다.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1972년 7월 4일   이후락,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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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2) 장면 내각과 5.16 군사정변
  4. 19 혁명 이후 허정의 과도 정부는 독재 정권의 등장을 막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의회의 역할을 증대하는 내용이 담긴 개헌을 행하였다(1960. 6. 내각 책임제, 양원제兩院制 의회 개헌). 개헌 이후에는 과거 자유당을 견제하였던 야당인 민주당이 내각의 주역이 되었으며, 총리는 장면, 대통령에는 윤보선이 당선되었다. 장면 내각은 이승만 시절부터 꾸준히 지적되어오던 민생고 문제를 없애기 위해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과거 독재정권이었던 이승만 시절과 달리, 장면 시절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많은 내용들이 논의되었는데, 학원 민주화, 노동운동, 통일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특히 통일 문제에 대해 혁신계에선 중립화 통일론, 남북 협상론 등 활발한 통일 운동이 진행되었다.
  국민들의 활발한 운동과 논의와는 달리 장면 정부는 부정선거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더불어, 각종 민주화 요구와 통일에 대한 개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민주당 자체도 신파新派, 구파舊派로 분열되어 적극적으로 개혁에 나설 겨를이 없었다. 

  5. 16 군사정변은 4. 19 이후 ‘혼란하고 어수선하며 기강이 없고 헤이해진’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박정희 등의 일부 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것을 일컫는다. 권력을 장악한 군부는 계엄을 선포하고 군사 혁명 위원회(박정희 부의장)를 만들어 각종 혁명 공약을 발표하였다. 이후 박정희가 의장을 맡아 국가 재건 최고 회의를 구성하여 군정軍政을 실시하였다. 국가 재건 최고 회의는 미국의 신임을 얻기 위해 반공 체제를 강화하고, 그동안 의회중심이었던 헌법을 다시 고쳐 4년 중임의 대통령 중심제와 단원제單院制 의회 등의 개헌이 이루어졌으며, 구 정치인의 활동금지, 농어촌 고리채高利債 정리 등의 개혁을 단행하고, 1962년에는 그동안 계획 중에 있었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였다. 군부 세력은 각종 개혁이 이루어진 이후에 ‘양심이 선량한 정치인’에게 정권을 양도하기로 하였는데, 1963년 5대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 쯤 군정에서 정권을 잡았던 중요 인물들이 제대하여 민주공화당을 창당하여 ‘양심이 선량한 정치인’으로 변모하였다. ‘양심이 선량한 정치인’인 박정희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결국 당선되었다. 

Tip. 장면 내각
1960. 6. 내각 책임제, 양원제 개헌
민주당 내각 - 총리 장면, 대통령 윤보선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실행하지 못했음
민중의 민주화 요구(학원 민주화, 노동운동), 통일에 대한 논의
장면 내각은 개혁에 소극적 “선 건설 후 통일”
1961. 5. 16 군사정변으로 정권 붕괴 

Tip. 5. 16 군사 정변
정변 과정 : 군부의 정권 장악 - 계엄 선포 - 군사 혁명 위원회 - 국가 재건 최고 회의
개혁 : 구 정치인의 활동금지, 농어촌 고리채 정리 단행 / 1962. 경제 개발 5개년 개획 추진
대통령 선거 : 민주공화당 창당, 박정희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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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5만원, 10만원권 고액 화폐권 2차후보 역사인물 10명

1. 어떤 사람이 후보가 되었을까?

한국은행에서는 2009년부터 발행될 5만원권, 10만원권 지폐의 인물 후보를 10명으로 압축해서 2차로 발표했습니다. 그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구, 김정희, 신사임당, 안창호, 유관순, 장보고, 장영실, 정약용, 주시경, 한용운

2차로 발표된 인물에 대한 각기 평가가 너무 상이하기도 합니다. 예로,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 1위를 차지한 광개토대왕은 아예 평가후보에서 빠졌습니다. 국민들은 광개토대왕을 원한다고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 등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아예 처음부터 삭제한 것이지요.

여성사이트에서는 신사임당, 유관순, 허난설헌, 김만덕 등의 역사 속 여성들이 많은 표를 차지했지만 신사임당과 유관순을 제외하고는 모두 10인 후보에는 빠졌습니다.

단재 신채호 등 민족주의자들이나 독립 운동가들이 대거 빠진것도 눈의 띕니다. 신채호의 사상은 무정부주의적인 사상이 많다는 점, 안재홍은 월북한 민족주의자라는 점, 윤동주, 김소월, 방정환 등도 10인 후보에서는 탈락하였습니다. 소위 좌파 사상가라는 것도 미래성에 맞지 않은 듯 합니다.

건국이후 인물들은 모두 제외된 점도 특이합니다. 박정희, 김대중, 이승만 등의 인물은 역사적 평가와 업적이 규명되지 않은 점이 많고, 국민적 논란 및 정치적 파장이 크다는 입장인 듯 합니다. 이들은 아예 후보군에도 없었습니다.

2. 인물 선정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10만원권은 이후 오랜 기간동안 한국 지폐의 최고권으로 나라를 대표할 돈입니다. 지금까지 나라를 대표하는 돈인 만원권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업적이 너무 눈부신 만큼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0만원권 지폐에서 세종대왕만큼의 업적을 가진 인물을 선정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될 듯 합니다. 그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10만원권의 지폐에 들어갈 역사적 인물은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요?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그 나라의 역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첫 번째,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나라의 역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화폐 인물의 기준을 역사성에 두고 있습니다. 영국의 모든 지폐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들어갑니다. 인도의 모든 지폐에는 간디가 들어갑니다. 중국의 지폐에는 어김없이 마오쩌둥이 나옵니다. 모든 지폐의 앞면에 이 인물들을 넣고, 뒷 면에서는 다른 분야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의 인물들을 새겨넣습니다. 같은 인물이 계속 나오는 돈이 식상할지 모르지만, 이 인물들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때 르네상스, 절대왕정, 신항로 개척, 식민지 시대를 열었습니다. 여왕은 영국인들의 자부심을 표현합니다. 영국 왕실은 아직도 여왕을 사랑하며, 국민들은 왕실을 존중합니다. 지금 1952년 즉위한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화폐에 들어감으로서 <웃고 있는 여왕의 모습>이 영국의 모습을 상징하도록 도안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 역사 속의 엘리자베스 1세나, 빅토리아 여왕이 아니라 현재 여왕을 화폐에 넣음으로서 국민적 단합을 유도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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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폐 50 파운드 - 엘리자베스 2세의 웃는 모습

중국의 화폐의 마오쩌둥은 중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며, 인도의 간디 역시 인도의 평화사상을 상징하도록 도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인물들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국민 화폐의 역할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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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화폐 1천루피 - 간디의 자상한 모습

2. 외국인들이 보기에 그 나라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화폐를 선정할 때 중요한 점의 하나는 <화폐가 통용되는 곳이 국내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외국화폐를 볼 때 화폐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것처럼 외국인들도 우리 화폐에서 우리 나라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한은의 후보군에서 단군,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등은 후보에 없거나, 중요성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외국인들이 보기에 큰 가치가 없거나, 주변국과의 논란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큰 오산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 화폐의 조지 워싱턴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이끈 장군입니다. 하지만 영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화폐에서 빼지는 않습니다. 광개토대왕을 중국의 동북공정을 고려해서 후보군에서 제외되거나, 단군이 실존인물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후보군에서 제외한다면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우리 스스로 잘라 버리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단군이 우리 국조가 아니고, 광개토대왕이 영토를 넓힌 것이 사실이 아닌지는 생각할 가치도 없을 뿐더러, 외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우리 정체성을 폄하하는 입장으로는 제대로 된 화폐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주변국의 입장을 살펴 우리의 외교자세를 선택한다는 실리주의는 실리주의가 아니라 사대주의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중립국인 스위스는 인물 화폐가 아니라 뭔지도 모를 추상화 같은 화폐를 도안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말도 안되는 그 화폐를 통용한 것은 미래로 나가는 스위스인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추상화같은 화폐는 둘째로 하고라도, 역사 속 인물들을 특정한 이유로 배제하는 행동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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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봐도 모르겠습니다. 스위스 화폐
  

화폐를 보는 외국인들이 그 인물을 보는 순간, 이나라의 역사성과 민족적 기상이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화폐, 또는 그 나라의 역사성을 한 눈에 생각할 수 있는 화폐가 되어야 합니다.

3. 사상적 체계가 살아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화폐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순신, 이황, 이이, 세종대왕.... 모두 이씨 입니다. 다른 종친회에서 반발할만도 하네요. 이번 화폐에서는 이씨를 빼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 화폐의 특징은 이씨라는 것보다 이들이 모두 조선시대 성리학과 연관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세종대왕이야 성리학적인 애민정치를 하였고, 이황과 이이는 성리학을 완성시키고 조선성리학으로 발전시킨 분들입니다. 이순신 역시 성리학이 자리잡혀가고 붕당정치의 흐름 속에서 살았던 인물이지만, 이순신의 업적은 성리학보다는 장군으로서 위대함이였죠. 기존 화폐의 기준에 사상적인 측면이 들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실제 화폐에 들어갈 인물이라면 사상적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업적이 어떤 사상에서 나온 것이고, 그 사상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었느냐가 중요합니다. 화폐의 인물은 그 인물의 단순한 업적이 아니라, 그 시대 속의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이 행한 합리적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지나치게 조선시대 성리학 인물만으로 화폐가 도안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조선시대만 있었고, 우리 역사의 황금기가 조선시대였다라는 인식을 할 수밖에 없는 화폐 도안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는 고조선, 철기시대 국가들,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그리고 대한제국까지 많은 영토국가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이외의 국가에서도 사상적인 체계가 있는 인물들은 참 많습니다. 유교 인물은 많았지만, 정작 조선 이전 역사에 큰 흐름을 좌지우지 했던 불교사상이나, 민족 종교인 천도교, 대종교 등은 포함된 적이 없습니다.

또, 일제시대 민족운동을 한 사람들의 사상은 지금까지 폄하되어 있었습니다. 당대 일제에 대한 저항은 무정부주의, 폭력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계몽주의 등 다양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사상이 공산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그 사상이 일본에 저항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었으니까요. 사회주의를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채호는 무정부주의자라서 제외한다면, 일본 고관들에게 폭탄을 던진 한인애국단의 리더 김구 선생님도 폭력주의자가 됩니다.

사상적 체계는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계산되어야 합니다. 단지 성리학을 완성시킨 인물들만 지폐가 채워진다면 미래에 대한 지향성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4.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화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역사성이지만, 그 역사성은 과거의 업적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역사성이여야 타당합니다. 예로, 장영실은 우리나라가 지향할 IT산업과 이공계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10인안에 선정되었고, 장보고는 후기신라시대 해상왕으로서 그 상업적 마인드와 탁월한 외교능력 등이 인정되어 10인안에 선정되었습니다.

단, 미래성만 있는 인물은 국민화폐로서 무게감이 떨어집니다. 역사성과 확실한 사상체계, 우리 조상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인물 중에서 미래성을 볼 수 있는 인물로 선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3. 정말 고심해서 좋은 인물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선정된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하여 벌써 말이 많습니다. 이 사람은 안된다. 이 사람이 왜 빠졌는가.... 말이 많죠. 선정된 인물들 모두 역사 속에서는 훌륭한 위인들입니다. 그러나 화폐에 들어갈 인물은 위인의 경중을 따져서 선별해서는 안됩니다. 역사성과 사상성, 인간적 노력, 미래성 까지 갖춘 인물을 가려야 합니다.

이번에 10인의 후보를 보면 역사성, 사상성 보다는 한국사회의 미래지향적인 면을 많이 고려한 듯 보입니다. 역사적인 위대한 인물들은 더 많을 지 모르지만, 그 인물들 가운데 미래 한국사회의 이상향으로 적합한 인물을 후보로 고른 듯 싶네요.

민족정체성만으로 선별한다면, 시조인 단군과 광개토대왕을 뽑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후보군에 없습니다. 감강찬, 을지문덕, 서희 등 역사속 무관들은 없습니다.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바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래의 한국사회가 여성을 중시하는 사회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신사임당과 유관순 같은 여성인물들이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사회를 주도하는 미래의 한국을 본다면 장영실을 뽑을 수 있겠죠.

실학자로서 기존의 사상체계와는 다른 변화된 사상을 제시하여 조선사회의 변화를 꿈꾼 정약용도 후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선후기 실학자로서는 정약용과 김정희 두 분이 들어가 있습니다. 국가 속에 포함되지 않은 인물이지만, 해상왕 장보고의 상업적 마인드와 미래 지향적 태도도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일제시대 이후의 인물로서 독립에 앞장선 김구, 안창호, 한용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일본의 침략에 의해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기틀을 잡게 된 중요한 시점의 인물들이 화폐 도안에 없다는 점에서 김구 선생님도 유력한 후보중의 한 분이십니다.

이제 10인 가운데 2분이 5만원권, 10만원군의 지폐에 들어갈 인물이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사회단체들의 입장 속에서 추려낸 후보군이라, 역사성을 가진 인물보다는 미래성을 가진 인물들을 많이 택하였다는 점이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이 인물들 중에서 어떤 인물이 한국을 대표할 지폐에 들어가게 될지 기대가 많이 됩니다.

인터넷에서 블로거들이 합성한 10만원권 인물......(재미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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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장금이까지 지폐 후보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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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10.17 박정희 대통령 특별 선언문(1972년)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희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을 영예롭게 개척해나가기 위한 나의 중대한 결심을 국민 여러분 앞에 밝히는 바입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심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나는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긴장완화의 흐름에 긍정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긴장완화의  본질은 아직까지도 열강들의 또하나의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에  지나지 않으며, 이 지역에서는  불행하게도 긴장완화가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긴장완화라는 이름 밑에 이른바 열강들이 제3국이나 중소국가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는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기존 세력균형 관계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나는 이 변화가 우리 안전보장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위험스러운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같은 변화는 곧  아시아의 기존질서를 뒤바꾸는 것이며 지금까지 이곳의 평화를 유지해온 안보체제마저도 변질시키려는 커다란 위협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이  지역에서 다시는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우리의 솔직한 현황인 것입니다.

  국제정세가 이러할진대 작금의 변화는 확실히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하게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고 개척해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엄숙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속에서 전화의  재발을 미연에 방지하고 평화로운  조국통일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는 27년간의 기나긴 불신과 단절의 장벽을 헤치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남북간의 대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  대화는 결코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기본 정책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오래도록 추구해 온 평화통일과 번영의 터전을 굳게 다져나가려는 민족적 결의의 재천명인 것입니다.

  지금부터 2년 전인 1970년 8월 15일 나는 광복절 제25주년 경축사를 통해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조성과 관련하여 북한 당국자들에게 무력과 폭력의 포기를 요구하고 그 대신 남과 북이 각기 평화와 번영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라는 시일이 지난 오늘  남북 사이에는 많은 사태의 진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금년 5월 2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나의 뜻에 따라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최고 당국자들과 만나 조국의 평화통일 방안을 포함하는 남북간의 현안문제들에 관하여 서로 의견을 교환한 뒤 지난 7월 4일에는 역사적인 남북공동성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되었습니다.

  남북적십자회담은 우리 대한적십자사의 제의에 따라 예비회담이 작년 9월 20일부터  판문점에서 개막된 뒤 금년 8월 11일 그 대단원을 이루어 본회담을 각기 평양과 서울에서 개최한 바 있으며, 제3차 본회담이 금년 10월 24일 평양에서, 그리고 제4차 본회담이 금년 11월에 서울에서 계속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남북간에는 남북조절위원회와 남북 적십자회담이라는 서로 차원을 달리한 두 개의 대화의 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화도 위헌이다 위법이다 하는 법률적 또는 정치적 시비마저 없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남북간의 이 대화는 흩어진 가족을 찾아야겠다는 1천만  동포의 대화이며, 전쟁의 참화를 방지하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하겠다는 5천만 민족의 대화입니다.

  우리는 조국의 강토 위에서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총성이 들리지 않게 하겠으며 흩어진 1천만의 이산가족은 한시바삐 재결합되어야 하겠으며 분단된 조국은 기어코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민족의 긍지와 명예를 위하여 마땅히 성취되어야 할 우리 민족의 대과업인  것입니다. 이 민족의 과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비록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대화를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입니다. 나는 한반도의 평화, 이산가족의  재결합, 그리고 조국의 평화통일, 이  모든 것이 민족의 소명에 따라 남북의 성실한 대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진정으로 민족중흥의 위대한 기초작업이며 민족웅비의 대설계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의 주변에서는 아직도 무질서와 비능률이 활개를 치고 있으며 정계는 파쟁과 정략의 갈등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같은 민족적 대과업마저도 하나의 정략적인 시비거리로 삼으려는 경향마저 없지 않습니다. 이처럼 민족적 사명감을 저버린 무책임한 정당과 그 정략의 희생물이 되어온 대의기구에 대해 과연 그 누가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의 성취를 기대할 수 있겠으며 남북대화를 진정으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믿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국제정세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면서 또한 남북대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추진해나가야 할 중대한 시점에 처해 있습니다. 이같은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줄기찬 예지와 불퇴전의 용기, 그리고 철통같은 단결이며 이를 활력소로 삼아 어렵고도 귀중한 남북대화를 굳게 뒷받침할 수 있는 모든 체제의 시급한 정비라고 믿습니다.  우리 헌법과 각종 법령 그리고 현체제는 동서 양극  체제하의 냉전시대에 만들어졌고, 하물며 남북의 대화 같은 것은 전연 예상치 못했던 시기에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국면에 처해서는 마땅히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로의 일대 유신적 개혁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일대 개혁의 불가피성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정치현실을 직시할 때 나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 같은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방법으로 개혁을 시도한다면 혼란만 더욱 심해질뿐더러 남북대화를 뒷받침하고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대응해나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국민적 정당성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나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부득이 정상적 방법이 아닌 비상조치로서 남북대화의 적극적인 전개와 주변정세의  급변하는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실정에 가장 알맞은 체제개혁을 단행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오늘 이 같은 결심을 국민여러분에게 솔직히 알리면서 나의 충정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번 비상조치는 결코 한낱 정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국권을 수호하고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성실한 대화를 통해 전쟁재발의 위험을 미연에 막고 나아가서는 5천만 민족의 영광스러운 통일과 중흥을 이룩하려는 실로 우리 민족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확신합니다.

  이에 나는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의 대염원을 구현하기 위하여 우리 민족진영의 대동단결을 촉구하면서 오늘의 이 역사적 과업을 강력히 뒷받침해주는 일대 민족 주체세력의 형성을 촉진하는 대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약 2개월간의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중지시키는 비상조치를 앞에 선포하는 바입니다.

  1, 1972년 10월 17일 19시를 기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등 현행헌법의 일부조항 효력을 정지시킨다.

  2, 일부 효력이 정지된 헌법조항의 기능은 비상국무회의에 의하여 수행되며 비상국무회의의 기능은 현행 헌법의 국무회의가 수행한다.

  3, 비상국무회의는 1972년 10월 27일까지 조국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헌법개정안을 공고하며 이를 공고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확정한다.

  4, 헌법개정안이 확정되면 개정된 헌법절차에 따라 늦어도  금년 연말 이전에 헌정질서를 정상화시킨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나는 지금 이상과 같은 비상조치를 국민여러분에게 선포하면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건전하고 알차게, 그리고 능률적인 것으로 육성, 발전시켜야겠다는 나의 확고한 신념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우리는 자유민주 체제보다 더 훌륭한 제도를 아직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 하더라도 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에는 이 민주체제처럼 취약한 체제도 또한 없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우리 민주체제에 그 스스로를 지켜나가며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남북대화를 굳게 뒷받침해 줌으로써  남북대화를 평화통일과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이 개혁을 단행하는 것입니다.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바라는 그 마음으로 우리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이 비상조치를 지지할 것으로 믿기 때문에 나는 앞에서 밝힌 제반개혁이 공약한 시일 내에 모두 순조로이 완결될 것으로 믿어 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국민여러분이 헌법 개정안에 찬성치 않는다면 나는 이것을 남북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국민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이고 조국통일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것임을  아울러 밝혀 두는 바입니다.

  이번 비상 조치는 근본적으로 그 목적이 제도의 개혁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일상 생업과 활동에는 아무런 지장이나 변동도 없을 것을 확실히 밝혀둡니다.  모든 공무원들은 국민에 대한 공복으로서의 사명감을 새로이 하고 맡은 바 직책에 가일층 충실할 것을 촉구합니다. 정부는 국민의 명랑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질서 확립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것이며, 경제활동의  자유 또한 확고히 보장할 것입니다.  새마을운동을 국가시책의 최우선 과업으로 정하며 이 운동을 통해 모든 부조리를 자율적으로 시정하는 사회기풍을 함양하여 과감한 복지균점 정책을 구현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비상조치에 따라 개혁이 진행중이라 하더라도 한반도의 평화화와 민족의  지상과제인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대화는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임을 아울러  밝혀두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나는 이번 비상조치의 불가피성을 다시금  강조하면서 오늘의 성급한 시비나  비방보다는 오히려 민족의 유구한 장래를 염두에 두고 내일의 냉엄한 비판을 바라는 바입니다.  나 개인은 조국통일과 민족중흥의 제단 위에 이미 모든 것을 바친 지 오래입니다. 나 개인은 이 특별선언을 발표하면서 오직 민주제도의 건전한 발전과 조국통일의  영광된 그날만을 기원하고 있으며 나의 이 기원이 곧  우리 국 모두의 기원일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일치단결하여 이 기원이 성취되는 그날까지 힘차게 전진을 계속합시다.  그리하여 통일조국의 영광 속에서 민주와 번영의 꽃을 영원토록 가꾸어 나아갑시다.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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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박정희 특별선언 -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

 1973년 6월 23일 박정희는 다음과 같은 '평화 통일 외교정책 선언'(6.23선언)을 발표하였다.

1. 조국의 평화적 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 과업이다.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계속 경주한다.
2. 한반도의 평화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며, 남북한은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침략을 하지 않아야 한다.
3. 우리는 남북 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한 남북 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하여 성실과 인내로써 계속 노력한다.
4. 우리는 긴장 완화와 국제 협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이 우리와 같이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5. 국제연합의 다수 회원국의 뜻이라면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우리는 북한과 함께 유엔에서의 한국 문제 토의에 북한 측이 같이 초청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6. 대한민국은 호혜 평등의 원칙 하에 모든 국가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이며, 우리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도 우리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을 촉구한다.
7. 대한민국의 대외정책은 평화 선린에 그 기본을 두고 있으며 우방들과의 기존 유대 관계는 이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것임을 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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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6 혁명 자료 - 혁명에 대한 공약

친애하는 애국동포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입법·사법의 삼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정권과 기성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혁명위원회는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1 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둘째,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 도의와 민족 정기를 바로 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 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다섯째, 민족의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애국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본군사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각인의 직정(直情)과 정업(定業)을을 평상과 다름 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국사혁명위원회 의장
육군중장 정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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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교육헌장

국민교육헌장

  우리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 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여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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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박정희 정권의 비상사태 선포문

비상사태 선포문 -- 1971. 12. 6

1. 정부의 시책은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하고 조속히 만전의 안보태세를 확립한다.
2. 안보상 취약점이 될 일체의 사회불안은 용납하지 않으며 또 불안요소를 배제한다.
3. 언론은 무책임한 안보논의를 삼가야 한다.
4. 모든 국민은 안보상 책무수행에 자진 성실해야 한다.
5. 모든 국민은 안보 위주의 새 가치관을 확립하여야 한다.
6. 최악의 경우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자유의 일부도 유보할 결의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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