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이야기 (NO.4)

한국사에서 시대구분이 시작된 시기는?

- 시대구분 이야기 -

자, 이제 서양의 시대구분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자. 이제, 우리 역사에서는 어떻게 <시대 구분>를 하는 지 알아보도록 할꺼야. 자, 칼하나 들고 우리 역사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조각조각 내보면서 <카리스마> 있게 놀아볼까나? (헉... 유치한 개그 ㅋ)

그럼,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할 테니, 한국사에서 근대, 현대라는 개념이 언제 등장했는지 알아봐야겠지? 그 첫 번째, 시간.... First Time.... go!

지난 시간에 서양 <근대인>들이 <중세>와는 다른 자신들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근대>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했잖아. 그런데 말야. 고대-중세-근대라는 서양인들의 구분은 시간에 따라 나눈 구분점이야. 서양 근대인들이 가까운 시간을 자신들의 시간인 <근대>로 파악하면서, 점점 멀어지는 시대를 다른 용어로 표현했었지.

자 그럼 자세히 한번 볼까? <근대>의 사람들은 역사를 이렇게 생각한 거야. 역사는 먼 옛날의 이야기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시간별로 나눈 것이라구.... 하지만, 어떤 시대를 나누었다면, 아무 생각없이 나누진 않았겠지? 당연히 시대마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무언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고 시대를 나누었을 거야. 그렇게 시간이 쭈욱~~ 흐르면서 점점 나은 세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가장 발전한 근대라는 시대까지 왔다고 생각한 거지.

결국, <근대인>들이 시대 구분을 했던 목적은 <세상이 가장 올바르게 발전했다>라는 자부심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서양 근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발전을 똑같이 찾기가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 우리 역사는, <시대에 따라 발전했다>라는 명확한 기준보다 더 확실한 기준점이 있어. 그건 바로 <고조선 - 삼국시대 - 고려 - 조선>과 같이 왕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는 <우리식 기준>이 있다는 거야.

한마디로, 우리 역사에서는 왕조별로 각 시대를 나누는 것이 한 시대를 이해하는데 훨씬 편하거든. 이렇게, 왕조별로 역사가 다 다르고, 발전하는 모습이 다 다른데, 서양식으로 나누는 구분법을 사용하려고 하니깐 너무~ 안 맞는거야.

에구구... 우리 역사는 서양의 기준에 맞추어 표현하기 너무 힘들다. 그런데 옛날 한때.... 이걸 이용해서 우리 역사를 아주~ 비하하는 역사학자들이 짜잔~ 하고 등장했었어. 그 나쁜 사람들이 누구냐구? 바로 우리나라를 점령했던 시기, 즉 일제 식민지 시대의 <일본 역사학자>들이지.

일본 역사학자들은 박은식, 신채호 선생님 같은 민족주의 역사학자 분들이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어. 조선의 역사 연구가 많이 진행될수록 일본이 조선인들을 <무식한 인종~>으로 몰아세우기가 어려웠거든.

그래서~  일본 총독부에서는 1920년대부터 <조선사 편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선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지.

그럼 이 <조선사 편수회>는 당연히 뭘 했을까? 당연히~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것이 너무 잘된 일이다> 라는 글들을 쓰기 시작했겠지, 뭐...  그럼 이 단체의 사람들이 주장한 것들을 한번 쭉~ 들어보고, 그 결론이 뭔지 같이 볼까나?

나쁜넘A : 야... 조선애들은 지들 고대 역사가 없어. 북쪽은 중국애가 내려와서 무슨 기자 고조선을 만들었잖아. 또, 중국 한사군한테도 점령당해서 뚜들겨맞구... 남쪽은 우리 일본에게 점령당해서 임나일본부를 세웠고... (타율성이론)

나쁜넘 B : 뭐, 그 이후에도 거란애들, 여진애들, 몽골애들... 돌아가면서 한반도를 박살냈잖아. 뭐, 만주쪽 이민족들의 역사가 바뀔 때마다 조선 역사가 바뀌니... 이건 뭐, 조센징은 역사가 있긴 있어? (만선사관)

나쁜넘 C : 결국 조선애들의 역사는 한반도를 벗어나보지도 못한 역사야. 뭐? 위대한 대륙 진출? 다 뻥이지 뭐~  중국, 일본, 이민족을 따라하면서 이루어진 역사일 뿐야... 어설픈 따라쟁이의 역사네!! (반도사론, 사대주의론)

나쁜넘 D : 한마디로, 고려니, 조선이니 하는 왕조 교체는 별 의미도 없는거라니까... 얘들은 쭈욱~ 고대 수준이니, 자본주의같은 건 생각도 못한 원시인들이지. 뭐, 우리 일본 아니였으면 영원히 발전도 없는 애들이야.(정체성 이론)

결논내봐 : 결과적으로 원시적인 조선이 식민지가 된 건 천만다행인 거야. 일본덕에 근대화도 된거잖아. 조센징들은 일본의 식민지 교육을 감사해야돼.(식민사관의 결론)

뭐, 이런 논리를 만든거야. 한마디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광고하기 위해 한국사를 연구한거지.

그럼 우리 역사학자들도 본격적으로 <시대 구분>이라는 것을 하면서, 일본의 이상한 주장을 반박해야겠지?

그 때, 짜잔~ 하고 나타나 시대 구분을 시작한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 인물이 바로 <마르크스의 시대구분>을 가지고 일본과 싸웠던 사회주의 역사학자 <백남운>이란 사람이야.

일본학자 : 야... 조선 너네는 왕만 자꾸 바뀌지, 발전도 없고 수준은 계속 고대 수준이고.... 너무 미개하잖아.

백남운 : 아니거든? 우리도 고대-중세-근대 사회가 있었어. 내가 쓴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뭐 이런책 읽어볼래?

일본학자 : 귀찮어. 그 책에서 뭐라고 쭝얼거렸는데? 어쨌든 조선애들은 원시적이라 중세가 없었다니깐?

백남운 : 자, 우리 마르크스 선생님이 말씀하신 시대 구분을 조선에 적용해 볼까? 이걸로 계산해보니깐, 와... 서양 고대처럼 우리 역사에도 노예제도 있었지, 토지생산 있었지.... 서양 고대처럼 중세 봉건제도도 있었고, 넓은 토지를 경작하는 장원제도도 있었네. 거기에도, 지주와 농노라는 계급투쟁도 있고... 와... 아 있다, 다 있어!!! 자료 들춰보니깐 하나하나 증거 다 있다!!!

자, 이렇게 백남운 선생을 시작으로 우리도 시대 구분이라는 걸 시작한 거야. 근데, 이 시대구분은 일본애들의 황당한 헛소리에 대항하기 위해 <마르크스> 이론을 우리 역사에 마구마구 가져다 붙인 거라서, 약간 억지도 좀 있었다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자, 이렇게 시작한 시대구분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에게도 퍼지기 시작했지. 그런데,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우리 민족이 찌질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위대한 고대 북방의 역사, 특히 고구려의 역사 연구에 많이 집중하게 되었지. 심지어 어떤 학자는 <고구려>를 <로마제국>과 맞먹는 위대한 고대 제국으로 표현하기도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가 광복을 맞이한 그 기쁜 날...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문제가 생겼어. 사회주의자인 백남운 선생도 북한으로 넘어갔고, 대부분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스스로 북한에 갔거나, 납치되서 북한에 넘어가 버린 거지.

그 결과!!! 1950년대 이후, 남한에 남은 역사학자들은 시대구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이 대부분 이였어.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가지고 역사를 연구한다는 입장이였지. 따라서 이들은 민족주의니,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단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해.   

그나마,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시대구분>이라는 말이 빤짝~! 등장하기도 했지. 역사는 <혁명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을 갖는 시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시대를 구분할까?> 라고 생각한 용감한 역사학자들이 등장하기도 했어.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었구.... 박정희 군사 정권이 시작되자, 또 다시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시대 구분을 하겠다는 용기를 가진 역사학자들은 점점 사라졌지. 교과서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시대구분을 한 학자들은 <재야학자> 소리를 듣기도 했구.

그럼 본격적으로 <시대구분>이란 걸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그건 바로,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성공한 이후야.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성공한 건,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였으니, 시대구분도 199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교과서(3차 교과서)에 등장하게 된 거지.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1990년대 이후 짜잔~ 하고 연구가 시작된 우리 역사의 시대 구분 기준을 한번 살펴보면서 이야기 해볼까나...


-  다음 정보들을 참조하면 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어요!  -


중국사시대구분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민두기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1997.08.31
상세보기

한국사 시대구분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차하순
출판 : 소화 199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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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경제사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백남운 / 박광순역
출판 : 범우사 199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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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의 진로 재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백남운
출판 : 종합출판범우(BW범우) 2007.08.15
상세보기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시어도어 래브 / 걍유원,정지인역
출판 : 르네상스 200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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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시대구분 자료들 ....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한국 근현대사 노트 (3)

한국 근대사로의 이행 - 외부적 요인

1. 외재적 요인과 내재적 발전론

자, 그럼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를 전개해볼까나?

그런데, 한국 근현대사의 시작점은 2가지 이야기를 같이 다뤄야 해. 먼저, 일본에 의해 개항한 만큼 우리의 근대사는 일본이나 제국주의 국가의 영향이 무지~ 크다는 <외부적 요인>을 이야기 해야 하지.

그런데, 이 <외부적 요인>은 의도적(?)으로 잘 다루고 있지 않아. 왜냐면, 우리 근대사가 일본의 침략적 행동 때문에 시작되었는데, 그게 근대화와 문명화의 원인이라는 것을 들춰내기엔 일본의 얄미운 발언(?)들이 좀 거슬리거든? 일본이 강제 점령한 긴긴~ 세월 동안 일본이 우리 역사를 바라보았던 관점을 한번 소설처럼 쭈욱~ 나열해 볼까?

조선애들이 무슨 단군이니 뭐니 시조를 말하는데, 호랑이랑 곰이 달래먹고 놀다가 인간이랑 결혼하는 게 말이 되냐? 일단 그건 뻥이니깐 패스~ 그러다 보면 결국 조선에서 말하는 조상신이니, 뭔 신이니 하는 건 다 일본 황국의 신을 베낀거 아냐? 결국 한반도 고대사에는 금속 시대도 없고, 석기시대, 신화시대만 있었던 거잖아? 뭐, 청동기도 없었고, 철기는 중국애들이 전파해 준거고... 한반도 남부는 우리 히미코(신공황후) 여제가 임나일본부 세워서 문명 전파좀 해주다가 발전한거구..

<단군이 뻥이면 이 인간은 어찌 되는 건가? 일본 극장 24부작 상영남인데... >

결국 한반도는 중국, 위만, 한사군, 일본 같은 외세 세력이 다 먹여 살린 거잖아? 결국 조선애들은 여진족한테 휘둘려, 거란한테 휘둘려, 몽골한테 굽신거려... 결국 얘들은 한반도에 갖혀서 역사의 주체로 나선 적이 한번도 없어. 결국 종주국인 중국을 모방만 하다가 발전도 못하고 당파싸움만 하던 애들이잖아.

그러니깐 우리 일본이 얼마나 고마워? 중세 수준의 한반도를 근대화시켜줬지. 철도 깔아주고, 문명 전파해줬지. 일본의 지배가 한반도의 복이야.. 복받은 거지 암....

   바로 이런 거다. 에도황국기원설, 일선동조론, 임나일본부설, 단군허구설, 만선사관, 반도사관, 사대주의국가론, 당파싸움론, 한반도 타율성론, 정체성론 등등 외우기도 지치게 이것절것 나열하는 일본 때문에 우리가 근대화의 <외부적 요인>을 말하기 껄끄러워 하는 거지.

일본이 워낙 헛소리를 나열해 두다 보니, 우리 교과서는 우리 근대사의 <내재적 요인>만 열심히 부르짖는거야.

일본 니들이 없었어도 우린 근대화 잘했고, 잘먹고 잘 살았을 건데, 니들이 와서 재 뿌린 거거든? 우리도 나름대로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이 있었고, 외국이랑 교류도 했었고... 암튼, 일본 니들이 빼았아간걸 생각해볼래?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근대화가 가능했다는 <내재적 요인>을 교과서에 폭발적으로 나열해놓고, 밑줄 쫙쫙 친 뒤 열심히 외워서 지금까지도 수능 기출 1순위~ 용꼬리 용용~ 돼지꼬리 땡땡~ 투스타 레이스~~ 하면서 별표를 2개, 3개 마구마구 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재적 발전론>은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잘 다루지 않고, 껄끄러운 근대화의 <외재적 요인>을 짚고 넘어가보도록 하자. 외재적 요인을 이야기하려면 중국, 일본과 관련된 19세기 침략이야기까지 두루 나열해야 할 것 같아. <내재적 발전론>은 다음 장부터 시리즈로 쭈욱~ 고고~~

2. 첫 번째 <제국주의>가 배달되었어요 :  로드 암허스트호

지난 시간에 <제국주의>가 뭔지 자세히 이야기했었지? 자, 오늘 이야기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동아시아에 와서 무슨 짓거리를 했고, 한반도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보는 거야. 그럼 시작해 볼까?

니들은 신을 믿니? 내가 믿는 신은 말이야... 아프리카라는 땅을 온통 영국의 색으로 칠해도 된다고 인정한 신이야. 우리 영국이 믿는 하나님은, 영국인들을 위해 아프리카에 물건도 팔고, 돈도 벌 수 있게 인정해 주셨거든? 문제는 같은 신을 믿는 자들이 서로 땅을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거야. 결국 모두가 자신들의 지도를 색칠하기 위해 제국주의자가 되는 거지...

뭐, <세실로즈>라는 영국산 케이프타운 총독이 위와 같은 말을 나불거렸단다. 건방진 말 같지만, 이것이 바로 19세기 현실이었지. 제국주의 국가들은, 더 많은 영토와 자원을 차지하고, 더 많은 제품을 팔아서 온 지구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고 싶어 했으니깐...

<세실 존 로스>

이 아저씨는 유명한 사람이야. 원래 남아공에서 다이아몬드 캐던 사람인데, 사업 수완이 뛰어났지. 영국을 위해 사업서를 내고 광산을 독점해서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어. 그 후 케이트타운 식민지 정치를 좌지우지 하면서, 수상에 올랐고, 아프리카의 실세가 되었지. 영국이 전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고 믿은 아저씨였어. 하지만, 보어전쟁이 일어나자 수습하려고 뛰어다니다가 건강이 악화되서 전쟁 중에 죽고 말았어.

자, 그럼 동아시아에는 영국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어떤 꼼수로 접근하기 시작했을까?

기분 나쁜 이야기 같지만, 서구, 북미 열강들이 동아시아에서 차지하고 싶은 나라 1순위는 <중국>이었어. 자원 많지, 인구 많지, 땅떵어리는 크지.... 뭐, 중국이랑 비교해보면, 조선이나 일본은 어따 써먹어? ㅋ

그리고, 유럽 애들도 19세기 중반까지, 아시아 끝에 있는 국가들을 일일이 신경쓸 처지도 못되었지. 뭐 굳이 이유를 나열하자면 이런 거야.

프랑스 : 저기, 루이 나폴레옹 때문에 재정 파탄 났구요. 겨우 7월 혁명으로 시민의 왕이라고 뽑아놓은 자식이 우리 상인들 선거권 안준다고 하네요. 우리 배 운전 안해유... 파업이랑께요.

독일 : 우리는 빈체제인가 뭣인가 그거 끝까지 사수하다가 혁명나고 뭐하고... 오스트리아랑 세트로 정신없거든? 19세기 중반부터 아시아 진출하려고 하긴 하는데, 될랑가 모르겠네. 또 뭔넘의 노동자들은 파업이 이렇게 많아? 사회주의자들 언제 청소한다냐...

미국 : 우린 카우보이들이 총들고 서쪽으로 뛰어다니기 바빠요. 요새 노예들도 말을 안들어서 조만간 남북전쟁이 터질거라고 하던데... 우리도 좀 여기저기 수습되면 그 때 진출할께요.

러시아 : 말도 마세요. 땅떵어리가 얼마나 큰지, 여기 저기 남하 정책을 다 해야 되는데... 유럽에 가면 영국애들이 시비걸지, 중국이랑도 청나라 때 국경 조약 맺어놓은게 있어서 당분간은 직접 부수러 가진 못하고, 때를 봐야죠.

이탈리아 : 저기... 통일한지 얼마 안되서 멀리는 못가요... 당분간 아프리카에서 놀아야 될 것 같거든요?

19세기 중반에, 유럽애들도 나름 사정이 있어서 <영국>을 제외하고는 좀 몸을 사리는 편이었거든. 그래서인지, 19세기 초반에 동아시아까지 와서 시비를 걸었던 나라는 영국 정도밖에 없었어. 그럼, 영국이 뭔 짓을 하고 다녔는지 살펴볼까나?

영국은 인도쪽을 점령한 뒤에 동아시아의 <중국 시장>을 노리고 있었지. 그리고, <1+1 행사>를 하듯이 덤으로 조선에도 와서 <장사하자!>라고 한번 외치기 시작하는 거야. 그게 바로 1832년 <암허스트호의 통상요구>였지.

<로드 암허스트호>는 조선과 1:1 조약을 맺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였지. 말했잖아? <1+1 행사>에 걸리면 좋을 거 같아서 왔다고... 원래 동인도 회사의 상선이었는데, 동쪽에는 뭐가 있을까 하고 탐사를 한번 해본거지. 그래서 목적지를 중국에서 시작해 대만, 일본, 조선으로 잡아본거야.

<다른 지역이 너무 쉽다보니... 그 때는 조선도 너무 만만했니... 나중에 큰 코 다치지만...>

근데, 이넘의 배가 뭘 알고나 온건지... 하필이면 충청도에 있는 고대도 뒷바다에 정박했지 뭐야. 간신히, 조선 국왕에게 편지를 전달해서 <통상 조약>을 맺자고는 했는데, 당시 세도정치를 하던 정부에서는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한마디를 했지.

미안한데, 중국 황제 허락 없이는 외국과 장사할 수 없거든요... 저기 편지랑 선물 다시 가져가세요~~~

뭐, 그랬답니다. 즉, 서양 국가들은 우리와 1:1의 동등한 관계에서 무역을 하지고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아직 중국과의 조공관계를 국제질서의 핵심으로 이해했던거야. 19세기 중반까지, 우리는 영국의 통상체계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은 우리를 중국의 부속품 국가쯤으로 여겨 무역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었지.

그리고 나서, 30년 넘게 당분간 서양의 통상 압력은 없었어... 어떤 나라가 커다란 중국 놔두고 조선에 신경쓰겠어?

자, 그럼 유럽애들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다음 이야기에서 구체적으로 진행해볼까나?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