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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03 불교이야기 1-1장.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되다 (2)

동아시아 불교 전파사 - 1장.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되다

이번 페이지는 특별 기획으로 몇 편의 시리즈로 다루어 적어보겠습니다. 시리즈라고 해보았자,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오늘 출근 전에 다 마무리 하겠지만, 그래도 양은 많으니깐 시리즈가 되겠네요. 일단, 대학 때 모아논 자료들과 틈틈이 메모해논 자료들을 모두 꺼내놓고, 불교사에 대한 <전파과정 및 생성과정>을 포스팅 하려 합니다. 순서는 인도의 불교 - 중국의 불교 - 한국의 불교 - 일본의 불교 전파 과정으로 다루어 보고, 동남아시아나 소승불교 이야기는 차후 문제로 넘기도록 하죠.

이 포스트는 불교에 대한 종교사가 아니라, 불교가 아시아에 전파되면서 어떠한 역사적 상황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관점의 포스트입니다. 예전 기독교사나 카톨릭사를 포스팅할 때 처럼 종교적 관점에서 댓글 다시면, 답변 드릴 수 없습니다. 전 항상 강조하지만 <다믿교>입니다. 다~~~ 믿습니다.

1. 기원전 10세기 : 인도에 종교다운 종교가 등장하다 - 브라만교

석가가 태어날 당시의 인도는 기원전 6세기 무렵입니다. 인도는 기원전 10세기부터 5세기 무렵까지 아리아족의 시대였습니다. 아리아족은 기원전 1500년경 인더스강 상류에서 청동기를 사용하면서 펀자브 지방에 진출하였는데, 기원전 1000년경 철기 사용이 확장되면서 갠지스 강 유역까지 진출한 민족입니다.

이들은 철기를 이용하여 기존의 <인더스 문명>을 철저히 파괴하였고, 기존의 인더스 문명인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브라만교>를 성립시켰습니다. 브라만교는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로서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라는 기본적인 계급 차별 구조를 갖추고, 이 4계의 계급을 또 다시 수십개로 세분화하여 신분차별을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계급구조를 보통 <바르나 제도>라고 하는데, 서양인들에 의해 카스트 제도라고 불리게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카스트 제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르나 = 색, 인종>이라는 뜻이 원어로 정확하다고 합니다.

이 바르나 제도의 특징은 아리아인들이 스스로 지배집단이 되기 위하여 선주민들을 차별하기 위해 등장하였습니다. 문제는 아리아인의 가장 높은 특권계급이 <브라만 : 사제계급>이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고대 사회의 특징인 <제사, 군사>개념이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만큼, 제사를 담당하는 브라만이 1계급, 정치, 군사를 담당하는 크샤트리아가 2계급을 이루었던 것이죠. 3계급인 바이샤도 상공업에 종사하면서 나름대로의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4계급으로 분류된 수드라는 아리아인이 아닌 비아리아족으로서 수공업에 종사하거나 노예계급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브라만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브라만교 포스트를 보시고, 일단 여기서는 개념만 알고 넘어갑니다.

2. 기원전 5세기 : 반브라만 운동이 시작되면서 등장한 철학은 <윤회논쟁>을 가져오다.

기원전 5세기 무렵 인도에서는 이제 <브라만의 신성성>에 대한 반발운동이 전개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신적 존재>, <신의 은총>이라는 신성성을 매개로 지배집단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선민사상>이 많았습니다. 유대교가 그러하였고, 고대 동아시아의 천손강림 사상도 그러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 발전과정에서 점차 <신성성>보다는 <현실정치의 이해관계>로서 선민사상이 극복되고, 국왕권이 강화되듯이 인도에서도 제사계급인 브라만을 극복하고 <정치세력의 결집>을 추구하는 운동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곧 제 2, 3 계급은 크샤트리아(도시국가 지배집단)과 비이샤(상공업 집단)의 세력 확대를 가져왔고, 크샤트리아 중심의 반브라만 운동은 인도에서 큰 이슈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 반브라만 운동이 본격적으로 성렵된 것은 철기를 사용한 정복사업이 확장되고, 정복사업 속에서 상공업 계층의 활약 무대가 넓어진 것에서 기인합니다.

그 결과 브라만교 내부에서는 <윤회나 해탈>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우파니샤드 철학이 등장합니다. 원래 브라만교에서는 <윤회>를 강조합니다. 이 윤회란, 전생에 신의 은총을 받은 자는 지배집단이나 높은 계급으로, 전생에 신에게 불경함을 지은 자는 노예로 태어나므로, 과거의 업이 모여 끊임없이 전생과 내세에 영향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파니샤드 철학은 우주인 브라만과 생명인 아트만을 알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배집단의 논리였던 브라만교를 철학적으로 만들어주는 데 큰 역활을 합니다.

하지만, 이 철학에서 주장한 <윤회>에 대한 개념에 대하여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의 입장은 사뭇 달랐습니다. 특히 크샤트리아 계급은 브라만의 <윤회>개념이 너무 브라만 계급 위주라는 것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3. 자이나교의 등장 - 윤회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고행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이러한 우파니샤드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윤회개념>을 종교적인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나타족의 왕자인 <바르다마나>입니다. 그는 브라만의 형식적인 제사라던가 신분차별에 반대하면서, 형식보다는 실제적 수행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그가 주장한 이러한 내용은 곧 <자이나교>의 성립으로 완성되는데, 자이나교는 3가지 내용을 통하여 브라만교를 비판합니다.

1. 인간의 구원은 형식적인 제사와 신의 은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고행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 인간과 자연은 근본적으로 평등한 우주 속의 생명(아트만)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살생은 금해야 한다.
   3. 모든 인간은 자연 속에서 신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계급에 따른 불평등은 있을 수 없다

이 자이나교의 교리는 브라만의 형식적인 측면을 실제적 <수행>으로 바꾸고, 차별적인 계급구조를 <평등한 부족개념>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윤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 쯤 죄를 짓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영혼에 때가 끼게 됩니다. 단지, 그 때가 적게 끼는가 많이 끼는가의 차이로 내세에 <좋은 윤회>인가, <나쁜 윤회>인가가 결정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윤회 자체를 부인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영혼에 낀 때를 제거하여 윤회를 벗어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바로 <혹독한 수련>, 즉 고행입니다. 고행을 해야 천상세계로 올라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현실의 고통을 참아야 합니다. 이 고통을 참는 다는 것에 <현세의 계급구조>는 더 이상 차별적일 수 없습니다. 단지, 낮은 계급은 더 많은 때가 끼었으므로 더 많은 고행을 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두가 <해탈>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반대로 브라만교에서는 <수드라>는 절대 현세에서 해탈할 수 없으며, 수드라가 지배집단에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 세상에서 <수드라>가 아닌 다른 계급으로 윤회하여, <다다음 내세에 해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더 많은 고행>을 낮은 계급에 강조하는 것 역시 완전한 평등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4. 불교 - 윤회는 고행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교는 자이나교의 이론에서 더 한걸음 진보적으로 나아갑니다. 불교는 윤회라는 개념을 다시 해석합니다. 즉, 윤회는 영혼에 때가 끼어 가혹한 수행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의 등장이 인도 사회의 큰 충격이었던 것은 <윤회>를 깨달음을 통한 <해탈>로 규정함으로서 <현세의 신분 계급>을 부정했다는 점입니다. 원래의 윤회설은 지배집단이 수드라 집단을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지배집단은, 수드라 집단에게 <너희는 전생에 악한 일을 많이 해서 수드라로 태어났어. 지금 너희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어>라고 규정하였고, 수드라가 지배집단에 충성함으로서 다음 세상에서 <아주 조금>의 악업을 씻을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브라만교에서는 무서운 내세를 당하지 않으려고 체계적이고 신성적인 <제사의식>이 강조되었고, 수드라는 절대적인 복종만이 강요되었습니다.

불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크샤트리아의 반발입니다. 크샤트리아와 바이샤는 <브라만>이 아니라고 해도 모두가 똑같이 <해탈>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종교교리나 이론면에서 전문가인 브라만과 싸워 이길 길이 없는 2, 3계급은 아주 단순한 논리로 <브라만>에 저항합니다. 이론보다는 <깨달음>만 있으면 된다고....

이 깨달음의 방법이 바로 불교의 팔정도와 수행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본체는 자비와 평등입니다. 이 자비와 평등을 깨달은 자는 계급적 차별이 무의미함을 알게 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인도의 불교 전개과정과 중국으로의 전파과정을 한번 볼까요?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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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