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퀴즈
 

5문제입니다. 즐겁게 풀어보아요!!!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 난이도는 1,2 번 하, 3, 4번 중 구성됩니다.

 


1. (하)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 각 분야의 서작 편찬을 장려하다. *****

- 수양대군의 석보상절 / 김순과 신석조의 의방유취

- 이석형의 치평요람 / 윤회, 신색의 팔도지리지

- 정인지, 김종서의 고려사

- 설순의 삼감행실도

- 정초, 변계량의 농사직설

***** 문화, 예술, 경제 분야를 꽃 피우다 ****

- 관습도감을 만들어 박연이 아악을 정리하도록 지시하다.

- 대간의, 소간의, 혼의, 혼상, 일구, 앙부일구, 일성정시의 등 천문 분야에 힘쓰다.

- 농잠 서적을 발행하다.

- 조선통보를 주조하고 환곡법을 철저히 시행하다.

- 전제상정소를 통해 연분, 전분에 의거한 전세제도를 확립하다.


 

1. 위 내용과 관련있는 조선의 국왕은 누구일까요?
① 태종        ② 세종        ③ 세조
④ 성종        ⑤ 정조        

 

 

2. (하)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래 그의 이름은 '새벽'이다. 아버지의 성을 따라 설새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일찍이 출가하여 법명을 얻었는데, 그 법명은 '처음으로 불법이 빛나다' 라는 뜻의 _____였다.

그는 특정 종파에 매이지 않고 모든 교학을 연구했다. 그리하여 법화경종요, 대승기신론소 등 100여종 240여권의 방대한 책일 남겼다.


그는 의상과 당나라에 유학을 가던 중 무덤에서 노숙하다 해골의 물을 마시고, '일체의 현상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된 후 유학을 포기하였다. 또한 요석궁 공주와의 인연을 계기로 승복을 벗고 세속인이 되어 '소성거사'라 칭하며 민중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광대처럼 바가지를 두드리며 민중들 앞에서 화엄경의 정수인 무애가를 불렀다. 음악과 춤으로 불교 교리를 전파했으니, 신라시대의 아이돌 가수라고나 할까?


그는 관념에 치우쳐 이론적 연구만 하는 중국불교의 일부 종파를 '근원만 추구하느라 현실과 백성을 모르는 무리들'이라며 비판했다. 이로서 왕실과 지배층만이 지배하던 불교가 민중 속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가 불교를 전파한 이후 마음으로 부처를 섬기면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나 정토에 갈 수 있다는 정토종이 유행하였다.

 

 

 

 

2. 위 인물과 관련있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① 세상이 어지러울 때 다시 내려와 지상에 광명을 뿌리고, 민중을 구원하겠다고 호원장담했다.
② 백성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하였다. 
③ 대각국사로 불리었으며 천태종을 열었다.
④ 조선의 수도를 정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⑤ 소림사를 만들었다.

 

 

3. (중)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부조리에 관한 시론 : 이방인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갔다. 이튿날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코미디 영화를 보고 실컷 웃는다. 밤에는 여자친구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며칠 후, 동료 레이몽을 다치게 한 아라비아인을 별 이유없이 총으로 사살한다. 재판장에서 그는 바닷가의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사람을 죽였다고 하였고, 속죄의 기도를 거부한다. 그는 항상 행복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처형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밀려올까를 기대한다.


이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 '부조리'이다. 사회적 관계망이 형성되지 않은 인간이 개인의 욕망 속에서 어떻게 지배받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유럽은 세계 2차 대전의 암울한 상황에서 인간의 목숨은 존엄하지 않았다. 뫼르소의 죽음은 부조리한 현실에 죽음으로 반항하는 저항의식을 보여준다.

 

3. 위의 '부조리' 이야기와 관련있는 작가는 누구일까요?
① 사르트르
② 알베르 카뮈
③ 니체
④ 헨리 입센
⑤ 안데르센

 

 

4. (중)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19세기 독일 통일을 이룬 그에게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 모두 찬사를 보냈다. 그의 공무원 조직과 막강한 군 조직은 제국의 위상을 높인 1등 공신이었다. 반면, 그 조직들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시대 변화에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특히, 의회마저 장악해 버린 그로서는 개혁과 소통이 필요할 리 없었다.
 

당시 제국의 40%인 가톨릭 신도들은 황제 빌헬름 1세 뿐 아니라 로마 교황에게도 충성을 하고 있었다. 재상이었던 그는 가톨릭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제국의 적으로 규정하였으나, 그마저도 종교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가톨릭 국민들에게 항복하고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였다.
 

이후 그는 주적을 사회주의자들로 삼았다. 산업사회의 변화로 노동자들을 다루기가 어려워지자 사회주의를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주의 탄압은 노동자 회유로도 이어졌다. 노동자를 위한 구인구직제, 노인보호법, 질병예방, 문화혜택 등을 국가가 장려한 것이다.
 

그러나, 경직된 공무원, 군대 조직으로 인하여 산업혁명이 늦어지자 독일제국은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식민지 확보전에 들어갔다. 식민지 쟁탈전은 이미 식민지를 확보했던 영국, 프랑스를 위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독일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 연합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게 되었다.
 

독일의 딱딱한 조직 구조는 훗날 이 대립으로 인해 세계 1차 대전까지 이어지지만,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도 이 군대 조직의 개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4. 위 지문에 나온 독일 재상과 관련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관세혁파
② 자유무역 추진
③ 철혈정책
④ 카르보나리 개혁
⑤ 크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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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퀴즈 - 세계사 0914

역사퀴즈 - 세계사 인물 일화 퀴즈 0914

오늘은 서양 역사 위인들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든 퀴즈입니다.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만을 이용해 주시고, 채점 및 오답확인 버튼 눌러주세요!!

1.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그는 영국 르네상스와 해외 진출 시대를 지휘한 엘리자베스 여왕 시기에 경제 고문(16세기)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금융'이란 무엇인가를 여왕에게 강의했으며, 런던거래소를 만들어 '증권'과 '주식'에 대해 새 장을 열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을 딴 대학을 설립해서 유명해지기도 했었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경제 이론에 대한 일화이다.

만약에 똑같은 100원짜리 동전이 있지만, 하나는 은이 많이 함유된 신권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한 구권이라면 사람들은 어떤 돈을 쓰겠는가?

또 만약 깨끗한 돈과 낙서가 된 돈이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돈을 더 빨리 쓰려고 하겠는가? 만약 같은 가치의 돈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가치가 다르다면 좋은 돈(양화)는 집안에 꼭꼭 숨겨둘 것이고, 나쁜 돈(악화)는 시중에 계속 돌게 될 것이다. 결국 나쁜 돈이 좋은 돈의 유통을 막고 그것을 저장하게 하므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이것을 바로 그의 이름을 따서 ______ 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 말은 1558년 그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쉬운 설명으로 경제학 충고를 하기 위해 편지를 보낼 때 제목으로 적은 말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고 독재자인 제임스, 찰스 왕가가 이어지자 이 말은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왕이 꼭꼭 숨겨두고 아껴두던 인재들은 독재자들에게 다 제거되었고, 간신들이 정치, 경제쪽에서 활개를 쳤다.

그가 죽은 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간신배들이 설치고 숨어있던 인재들은 제거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1.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이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윌터롤리        ② 드레이크         ③ 그레셤
④ 제로섬           ⑤ 셰익스피어      ⑥ 스펜서    ⑦ 베이컨

 

2.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레스토랑이나 카페같은 곳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돈이 모자란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때 쓰는 격언으로 '_____의 십오분' 이라는 말이있다.

그가 프랑스와 1세 왕의 명으로 로마에 갔다가 여비가 떨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 신분상 돈이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 때 그가 15분만에 생각한 계책은 이것이었다.

일단 자신을 저명한 의학자라고 말한 뒤, 자신이 프랑스 왕과 왕비를 독살하기 위해 독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즉, 프랑스왕을 제거해서 이탈리아의 영웅이 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경찰이 출동해서 그를 체포했고, 중대 범인으로 분류되어 파리까지 정중한 대접을 받고 여행을 하면서 프랑스와 1세 앞까지 갈 수 있었다. 그는 위트로 위기를 넘기고 국가적 망신도 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가 쓴 유명한 저서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서는 천재적인 두뇌에 매우 위트넘치는 인물인 '파뉼주'가 등장한다. 파뉼주는 매우 총명하지만, 그의 두뇌를 쓸데없는 곳에만 사용한다. 파뉼주는 사악하고 거짓말을 잘하며, 자신이 당한만큼 철저하게 복수하는 것을 매우 잘한다.

그 역시 프랑스 왕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철저하게 부서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다행이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그는 충신으로서 일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2. 위 지문에서 말하는 '_____의 십오분'에 들어갈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플루타르크            ② 레쉴리에            ③ 반 자크
④ 프랑수아 라블레    ⑤ 필립 시드니        ⑥ 카르멘

 

3.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정치의 꽃을 피운 인물이다. 그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그리스 동맹국들에게 아테네 여신과 아폴론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1) ____ 섬에 공동 자금을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강압적으로 공물을 받았기 때문에 아테네와 동맹국들의 동맹은 (1) ______ 동맹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동맹이 끝난 후, 강압적인 공물 헌납으로 아테네는 주변 도시국가들의 불만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페리클레스는 (2)______ 섬에서 열리는 올림피아 제전을 누구보다 화려하게 치루기도 했다.

(2)______ 섬은 이오니아 해안의 남쪽에 있는 섬으로 이곳은 학문과 사교의 중심지이자, 제우스 신전이 있는 국제 종교회의장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열리는 경기는 그리스인의 민족적 유대를 강화하고, 모든 그리스인은 신화에 나오는 여인 <헬레네>의 후손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스스로를 <헬레네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기서 열린 올림피아 제전은 경주,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멀리 뛰기, 레슬링의 5가지 종목이었다. 이 다섯 가지가 열린 이유는 바로 다섯 가지 종목이 페르시아 등 이민족과의 전쟁 때 필요한 핵심 군사훈련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3. 위 내용을 바탕으로 빈칸에 들어갈 섬 2개의 이름을 골라주세요.(정답은 2개입니다.)
① 델로스        ② 시라쿠라        ③ 간디아
④ 로도스        ⑤ 크레타           ⑥ 파마구스타    ⑦ 살로니카

 

4.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신들은 피에 목말라 있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잉카 문명의 최후 지도자 몬테수마 1세였다. 그는 신대륙을 점령하고자 하는 에스파냐의 코르테스 장군이 성경을 앞세워 학살을 자행하자 이 말로 침략군을 비꼬았다고 한다.

3백년 뒤,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파가 정권을 잡고 공포정치를 했다. 지도자인 ______ 는 길로틴 박사와 함께 단두대(길로틴)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잘랐다.

일년에 2천명의 목이 잘렸으니, 하루 평균 몇 명이 죽은 것일까? 같은 자코뱅 파의 꺄뮤 템란인간을 위한 혁명으로 '인간이 잔인하게 학살되는' 현장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는 혁명위원회가 사람들을 학살하니, 자신은 '자비위원회'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구해겠다고 선전물을 뿌린 것이다.

혁명은 아름다울 줄 알았으나, 잔인했다는 것을 깨달은 까뮤 템란은 마지막에 자신과 몬테수마 1세를 동일시 하면서 마지막 선동 문구에 이렇게 적고 체포당했다.

'신들은 피에 목마르다'

후대 소설가들은 평범한 삶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는 이들이 좌절할 때 이 문구를 애용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피에 목마른 공포정치를 했던 _____________ 도 결국은 공포정치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붙들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4. 동료에게 까지 피에 목마른 자라는 말을 들어가면서 극빈층을 위한 과격한 정책을 시도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 혁명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나폴레옹         ② 알렉산드르 뒤마        ③ 로베스피에르
④ 숀 마리노        ⑤ 페이스트 트라토스

 

 

5.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군주는 나라의 첫 번째 심부름꾼이다.'

이 말은 18세기 프리드리히 대왕이 했던 말이다. 그는 군주란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서 나라가 발전하는 데 첫 번째 공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국가가 발전하고 국왕과 국민이 하나가 되어 헌신하기 위해서는 특정 세력이 나라의 주도권을 갖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나라에서는 특이하게도 가톨릭에게도, 개신교에게도 어떠한 특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가 말하는 종교정책은 바로 모든 종교가 인정되는 '관용'이었다. 당대 유럽에서는 종교 전쟁이 있었고, 어느 나라이던지 카톨릭이거나, 개신교이거나 하나의 '하나님'을 믿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종교보다는 국왕이 헌신하고, 국민이 왕을 믿는 것이 국가 발전의 선행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바로 '계몽주의' 사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궁전에서 분수가 막혔는데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수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왕이 분수를 바라보는 순간 기적적으로 물이 다시 솟아올랐다. 그러나 어떤 신관도 그것이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왕 자신도 '카톨릭 국가에서는 이런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겠지?'라고 웃어넘겼다.

어느날 가난한 병사가 마리아의 제단에서 은그릇을 훔치다 걸렸는데, 이미 마리아가 용서하셨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왕은, '그런 기적도 있을 수 있는 일이구나' 라면서 병사를 용서했고,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두 번 다시는 마리아한테서 그런 선물 따위는 받지 말거라'

결국 그는 누가 종교를 믿던, 믿지 않던 무관심한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종교는 정치가 관여할 일도 아니며, 종교 역시 정치를 넘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훗날, 이 나라에서 출발하여 거대한 재국을 세운 재상 비스마르크는 국가 운영은 '피와 철' 만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카톨릭 세력이 국가 운영에 딴지를 거는 것을 막기 위해 종교 전쟁에 엄청난 힘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미 프리드리히 대왕이 남긴 유산 때문이었을까?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비스마르크는 카톨릭 하나를 제압하지 못하여 국내에서는 평생 하고픈 정책을 제대로 펴지 못하였다고 한다.

 

5. 위 일화 속에 나온 프리드리히와 비스마르크와 관련있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① 서러시아        ② 노브고르드        ③ 프로이센
④ 아일랜드        ⑤ 스코트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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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나역사 문제를 풀어보는...

 

다음 글과 사진을 보고 한 인물을 추론해서 빈 칸을 채워보세요.

메이지 유신을 성공적으로 마친 일본은 어떤 의회제도를 실시할 것인가 고민하였다.

자유민권운동을 주도한 진보인사들은 영국식의 의원내각제를 실시해서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려고 했다.

히지만, 당시 실력자였던 이토 히로부미는 강력한 <황제권>이 의회를 압박할 수 있는 대륙식 내각제를 채택하려고 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동시대 프로이센의 재상 ___________를 만나 헌법과 의회제도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를 통해 정부가 의회를 압박할 수 있는 독일식 헌법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이 대일본제국헌법, 즉 메이지헌법이었다.

메이지 헌법의 내용은 천황의 신성성을 극대화한 헌법이었다. 당시 통일 독일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주권자를 <황제>로 규정하고, 의회권과 군권은 황제의 감시하에 존재해야 했다.

 

당시 일본과 독일의 상황을 고려할 때, 위 빈칸에 들어갈 독일의 재상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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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 노트 (2)

근대 출발기의 세상 변화 - 제국주의 이야기

1. 제국주의 시대의 도래

자, 그럼 한국 근현대사를 이야기 해 봐야겠지?

근데, 헛소리 한번만 더 하고 넘어가자. 지난 시간에 말했지? 우리 근대사의 기준이 바로 <자본주의 국가의 성립>과 <근대민족주의 국가의 성립>이라구... 그런데, 아시아의 국가들이 식민지 상태로 출발한 이상, 이 2가지 근대적 요소는 <서양의 영향력>을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 말야....

그럼, 아시아를 점령한 서양 국가들은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는 소리네? 특히, 자본주의가 최고 수준에 오른 가가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후진국을 점령하는 걸 <제국주의>라고 불러.... 그럼, 근대 자본주의를 알기 위해서 제국주의가 뭔지부터 살펴볼까?

2. 제국주의 경제적 배경 : 산업혁명

제국주의를 알려면 먼저 서양의 <산업혁명>부터 알아야 돼.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들어 봤지?

영국애들이 어느 날, 기계를 만들었어. 기계로 물건을 만들다보니, 물건이 많이 많이~ 생기는 거야.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어. 여기 저기 공장들은 많은데, 기계들이 물건을 팍팍 만들다보니 물건이 남아돌기 시작하는 거야. 영국애들은 고민에 빠지게 되지. 해결 방법은 2가지야. 첫 번째는, 경쟁력이 딸리는 공장이 망하고 돈많은 대기업이 모두 인수하는 방법, 두 번째는 인구가 엄청 많은 다른 나라에 남아도는 물건을 팔아먹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을 사용해서 나타난 현상이 <독점 자본주의>야.

기계로 물건을 만들다보니, 물건이 너무 많아졌어. 전문 용어로 과잉공급이라고 하지. 그럼, 시장에 물건이 너무 많아지니까 서로 싸게라도 팔려고 하겠지? 물건 가격이 팍팍 떨어질거야. 가격이 떨어지다보니, 자본이 부족한 기업들이 순서대로 망하게 되지. 결국 살아남는 건? 대기업이야.

자.. 이제 대기업 혼자 살아남았으니, 시장을 독점하겠지? 원래 18세기 영국의 자본주의는 <자유 방임주의>였거든? 기업들끼리 알아서 경쟁하게 내 버려두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믿었어. 가격이 너무 비싸면 사람들이 안 사니까 가격이 내려갈거고, 가격이 너무 싸면 파는 사람들이 가격을 알아서 올릴 거구... 가격이 곧, <보이지 않는 손>이 되서 알아서 시장가격을 조절하는 거야.

그런데,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면 지 맘대로 가격을 정하고, 상품의 생산량이 지멋대로 정하게 되는거야. 이렇게 되니 국가가 기업의 눈치를 보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거지.

대기업은 이제 이렇게 외치겠지? 내 말 안들으면 다 <빵구똥구야~>... 내 말 들으면 친구, 아니면 적이거든... <내놔.. 내놔... 다 내꺼야...다 내꺼라구...> 하이킥에 나오는 악동 해리처럼 막무가내가 되 버린거지.

야 이 빵구똥구야... 어디서 내 물건에 손대... 다 내꺼야... 다 내꺼야...  해리 vs 신애.... ㅋㅋㅋ

<독점 자본주의>와 함께 나타난 또 하나의 현상은 <금융자본주의>야.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했으니, 물건을 더 많이 만들어 팔 <자금>이 필요하겠지? 당연히 은행, 증권회사 등은 대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이익금(이윤)을 나눠먹으려고 할꺼야. 그렇게 기업과 같이 커간 금융기관들은 기업의 주식을 사기 시작하고, 기업의 핵심 사업에 투자를 시작하지.

기업은 더 많은 물건을 만들고, 더 큰 사업을 벌이다가 해외까지 진출해서 물건을 팔아먹게 되. 은행은 끊임없이 돈을 빌려주고 기업의 주식을 틈나는대로 사게 되고.... 이렇게 사업이 커지다 보면 문제가 생겨... 갈수록 어마어마해지는 돈을 <은행>이 아니면 빌릴 곳이 없게 된 거야.

이제 기업은 큰 사업을 하나 할 때마다 은행이 돈을 얼마나 빌려줄까나... 하는 눈치를 보게 되고, 결국 은행이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등장하게 되지. 이렇게 금융자본(은행, 자사)이 산업자본(기업)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기의 독점자본주의를 <금융자본주의>라고 부르는거야.

자, 그럼 국내 시장도 독점했겠다, 든든한 은행줄도 있겠다.... 이제 국내 산업혁명을 마친 영국의 독점 기업들이 진출할 곳은? 바로, 인구가 많아서 옷을 사입을 사람도 많았고, 나름대로 아시아의 문명 지역이었던 <인도>였지. 물건을 팔아먹으려고 세운 회사가 바로 <동인도 회사>야.

결국, 제국주의를 경제적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돼.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유럽국가들이 독점 자본주의 체제를 갖추고, 후진 지역에 상품을 팔려는 거지. 근데, 아시아 애들이 유럽 물건을 잘 안사주니깐, 아싸리 식민지로 만들어서 강제 매입을 시키는 거야. 물건을 팔아먹은 뒤에, 다시 원료를 착취해서 또 물건을 만들고, 또 팔아먹고... 그러다 보니 기업이 더 커져서 다른 지역에 또 진출하고, 또 점령하고 또 팔아먹고....

경제적으로 제국주의를 정의하다 보면, 뭐든지 삼켜 버린다는 구약성경의 괴수 <리바이어던>이 생각나게 되지. 선두주자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전세계를 다 삼킬 기세였거든.

여왕 3종세트(엘리자베스 앤 + 빅토리아) : 자자... 이왕 땅따먹기 하는거 알짜베기 땅들을 우리 영국이 먼저 먹어야겠지? 어디가 좋을까?

15세기 드레이크 : 저기, 일단 돈이 좀 필요하니깐 제가 해적질좀 해올까요? 스페인 무적함대 몇대 박살내면 여행 자금좀 벌거 같은데.....

16세기 윌터롤리 : 그럼 저는 그 돈으로 황금 찾으러 신대륙 탐험좀 할께요. 뭐 <엘도라도>, <아틸란티스> 이런 데 좀 찾다보면 뭔가 금은보화가 좀 걸리지 않겠어요?

17세기 크롬웰 : 그럼 난, 요즘 세계무역에서 좀 힘좀 쓰는 네덜란드 배들 좀 몇대 격파하고, 항해조례를 만들어볼께... 이제 우리 영국의 시대가 다가오는 거 아니겠어?

18세기 멘델 : 일단, 쓰레기들좀 청소하구요. 제가 법칙 하나 만들었거든요. 우성이 열성을 지배한다물학적 칙은데유.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한다, 독점 기업이 노동자들을 지배한다.... 어디나 적용되는 만능입니다유...

19세기 스펜서 : 다원의 진화론 아시죠? 그것도 좀 적용해보려구요. 진화론의 약육강식...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사회 속의 진화론이다. 찌질이는 완소남에게 점령당할 수밖에 없다... 그럴 듯 하죠?

20세기 세실로즈 :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아프리카를 영국의 색으로 칠할 것을 인정하는 신일거야. 온 지구가 영국의 깃발로 나부끼는데, 얼마나 영광스러워? 다 영국꺼야~~~

자, 이런 이론까지 무장해서 영국은 여기 저기를 점령하고 다닌다. 그럼 어디를 점령하는 게 제일 효율적일까?

바로,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와 그 주변을 완전 정리하는 거야. 산업혁명 전까지는 세계 4대 문명 지역이 유럽에 뒤지지 않는 세계 거점지들이었지. 유럽은 그 쪽의 발달한 문명과 어마어마한 인구를 쪼옥쪼옥~ 다 빨아먹을 생각이었어.

먼저, 유럽에 문명을 전파해 준 이집트 문명... 여기를 점령해서 아프리카를 아래로 쭈욱~ 점령하려구 했어. 이것이 역사에서 유명한 영국의 종단 정책, 또는 3c 정책이지.

다음, 인더스 문명의 인도...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세웠다가 훗날 영국 직속령으로 만든 땅이지. 인도는 옷감 수요가 많아서 영국의 핵심 식민지였고, 여기를 바탕으로 동쪽으로 쭈욱 가서 미얀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을 모두 점령했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 여기는 굳이 영국 혼자 점령할 이유가 없었어. 아편전쟁으로 중국의 주도권을 영국이 가졌지만, 워낙 인구가 많잖아. 걍, 다른 서양 국가들이랑 중국을 나눠먹으면서, 중국의 왕조는 유지시켰지. 
  
  미국이 주장한 이론 중에 이런 게 있어... <공평한 점령의 원리>, 즉 <균등 분점의 원리>라는 건데... 이런거야. 너무 큰 빵을 혼자 먹으면 배탈나잖아? 그럴 땐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를 하면서 나눠먹으면, 빵도 처리하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아지겠지? 중국이 그거야... 너무 크고, 인구가 많으니깐 똑같이 나눠먹자는 거지. 중국이 왕조를 유지하면서도 망하지는 않은 이유가 그거야. 중국은 여러 국가들이 나눠먹는 빵이였거든. 빵가게 사장이 있어야 약탈자들이 재미있게 즐기면서 빵을 약탈해먹을 수 있잖아. 그래서 중국은 참 다양한 나라가 여기 저기를 뜯어먹었지.

마지막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여기는 대대로 유럽을 괴롭힌 강력한 <투르크> 족의 본산지야. 영국은 서아시아를 평정한 오스만 투르크의 광대한 제국을 끊임없이 괴롭게 하면서, 오스만의 모든 식민지를 독립시키는 정책을 사용했어. 훗날, 오스만과 이란 지역은 영국과 러시아가 나눠먹게 되거든.

3. 제국주의 정치적 배경 : 민족주의

제국주의가 19세기 전세계에 열병처럼 퍼진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민족주의> 때문이야. 말했었지? 근대화의 2가지 핵심 배경이 <자본주의 + 민족주의>라구 말야. 그럼 유럽인들이 말하는 민족주의가 뭘까?

사실 유럽 역사에서 <민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최근의 일이야. 그들이 말하는 <고대>라는 시대에는 <로마>라는 제국이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국가였잖아. 또 중세 시대에는 프랑크 왕국과 교황으로 대표된 봉건적 사회 질서가 있었구...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바로 <르네상스> 이후, 유럽인 스스로가 <근대인>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부터야.

그럼, 르네상스 시대에 <민족>이란 개념이 있었을까? 아니지... 당대에는 신분질서가 견고했고, 루이 14세니, 엘리자베스니 하는 강력한 절대 왕이 나타났어도, 그건 귀족과 성직자층을 대변하는 신분제 국가였지, 민족국가는 아니였거든. 뭐, 하나님이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이념이 있었지만, 그것도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불만을 희석시키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고 보면 되.

럼 <민족>이란 개념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그건, 바로 <시민혁명>이 발생하고 부터야. 우린 모두가 같은 국가안에서 살아가는 같은 <백성>인데, 왜 귀족, 성직자 니들만 잘먹고 잘사니?

그 대표적은 불만의 폭발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지. 성직자, 귀족, 일반 시민이 공존하는 프랑스에서 1, 2계급인 성직자, 귀족만 우대받는 게 얼마나 짜증났겠어? 시민들이 다 때려부서고, <우리도 같은 인간이다>를 외쳤던 그 사건부터 <우리 모두가 같은 민족일 뿐이다>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거야.

그 개념을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면서 곳곳에 퍼뜨리기 시작했지. 프랑스에게 정복당한 민족들은 이런 생각을 했던거야.

합스부르크인 : 와... 저렇게 단합하니깐 나름 강하네... 저것들. 뭐? 귀족과 평민이 같은 세금을 내고,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돈만 있으면 되는거야? 오오.... 우리도 한번 혁명을 일으켜볼까?

프로이센인 : 아나.. 짱나... 나폴레옹 저게 뭔데 자유로운 우리 프로이센을 점령한 거야? 자, 우리 자유 프로이센 국가안의 모든 사람들이 단합해야겠다. 저 웬수같은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우리의 자유를 되찾자...

베네치아인 : 어? 동방무역으로 좀 사는 것 같은 우린데.... 프랑스 떨거지들한테 완전 밀리네. 왜지? 왜지? 그래... 우리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 국가들이 힘을 모으지 못해서 그래... 우리가 연합만 하면 저것들은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데... 우리 이제 통일해야 되지 않겠어?

바로 이런 분위기가 된 거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직접 전파했다기 보다는, 나폴레옹이 침략하자 유럽의 사람들이 프랑스인들의 <민족의 단합>을 보게 되었고, 나폴레옹과 독재 군주에게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외치기 시작한거다. 그것이 바로 유럽인들이 말하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본질이었지.

나폴레옹은 자신이 황제가 되어 유럽에 엄청난 제국을 세워서 가문의 영광을 누르고 싶어했을 거야...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지 아마? 근데, 나폴레옹은 몰랐을 거다. 불가능이란 말이 없는 사전은, 인쇄가 잘못된 불량 짝퉁 사전일 뿐이라는 것을.... 아니면, 나폴레옹의 어휘실력이 딸렸다거나... ㅋㅋ

근데, 나폴레옹의 유럽 제국은 왜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없을까?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제국주의가 뭔지 위에 설명했잖아? 제국주의란, <독점자본주의>체제를 갖춘 나라가 타국을 식민지로 삼는 거라구.... 나폴레옹의 어느 구석을 봐서 <자본주의>가 있니? 나폴레옹의 제국은 <민족주의>에는 일부 해당될 수 있지만, <자본주의>가 없기 때문에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가 없는 거다.

자 그럼, 나폴레옹의 유럽 지배를 벗어난, 유럽 애들의 상황을 한번 보자.

프로이센인들과 베네치아인들은 뭉쳐야 살아남는 다는 걸 뼈져리게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일과 이탈리아는 오랜 분열을 끝내고 통일을 완성하게 된다. 뭐,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 이런거 교과서에서 본 적 있지?

결국, 나폴레옹은 유럽에 <민족>들이 뭉쳐야 살아남는 다는 걸 보여주고 만 것이다. 그리고, 통일한 국가들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지. 영국과 프랑스도 여기 저기 식민지를 늘리는데, 우리는 왜 못해?

그리하여, 독일, 이탈리아 등 후발 주자들이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민족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기 시작하는 거지. 나중에 히틀러가 이렇게 외치잖아? 우리 독일인은 게르만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게르만인이다. 우리는 바로 <아리아인>이다... 뭐 이렇게... 그리고 유태인 학살하고, 영국이랑 프랑스 애들 째려보잖아.

바로 그거다. 제국주의가 여러 나라 사이에 퍼져서 열병처럼 번진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민족의 영광과 자부심>을 알리겠다는 거였다. 특히, 이제 막 통일한 국가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민족만의 뭔가 한방>을 꼭 보여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 <한방>이 세다는 걸 보여주려고 두 국가가 같이 완전 오버했다가 나중에 세게 2차대전에서 나란히 박살나게 되지... 아시아의 오버국 일본과 함께... ㅋㅋ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1차대전은 바로 이 <제국주의> 때문이었지. 영국, 프랑스 같이 먼저 땅따먹기를 시작한 국가에게 독일, 이탈리아 등 나중에 땅따먹기에 참여한 국가들은 밀릴 수밖에 없었거든.

모로코 사건 아나? 영국, 프랑스가 아프리카를 먼저 땅따먹고 있었는데, 독일이 나중에 아프리카에 가서 <한입만~ 한입만~>을 외치면서 모로코라도 달라고 때쓰다가 영국, 프랑스 양쪽한테 맞을 뻔 했잖아...

사실, 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계속 영국, 프랑스에게 덤빌 수밖에 없었던 건, <민족주의>가 무너지면, 위대한 아리아인이라는 국가 이념이 쓰러진다는 절박감도 작용했던 거지.

4. 제국주의 사회적 배경 : 사회진화론

자, 이제 근대화의 2대 동력인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유럽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했다. 그럼, 다음장부터는 그 2대 동력이 아시아와 한국 근현대사에 어떻게 유입되었는지를 설명하면 되겠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를 더 알고 넘어가야되. 유럽애들이 자본주의니 민족주의니를 외치면서 아시아 각국을 점령하잖아? 근데,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무작정 쳐들어가서, 내가 니들 점령할거니까 조용히 점령당해 주세요... 우리가 니네 박살내고, 삥뜯으러 왔지만, 우리 나쁜 넘들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그래서 유럽인들, 특히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끝내고, 여기 저기를 점령한 영국은, 자신들의 정복사업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식민 국가에게도 도움이 되는 거라고 광고하기 시작해... 그 방법은 뭘까?

첫 번째는 종교를 이용하는 거야. 침략과 동시에 선교를 하는 거지. 니들같이 떨거지 후진국 못난이 원시인 같은 아시아인들에게 <하나님>이 누군지, <천국>이 뭔지를 가르쳐주는 은혜를 베풀고, 봉건적인 후진국에게 근대화된 서양 문물을 전파해 준다는 거지. 산업혁명 이후 개발된 선진적인 유럽문물을 접하게 되면, 당연히 유럽 사회를 동경하게 될 것이고, 식민지인들도 뭔가 배우는게 많다고 생각할 거 아냐.

두 번째는, 식민지배가  give and take 라는 걸 강조하는 거야. 영국이 아시아에 물건을 팔아먹으면, 영국도 너네한테 원료를 사줄 거고, 그럼 너네도 공장도 생기고, 산업혁명 노하우도 배우고, 서로 발전한다는 거지. 뭐 근데, 그렇게 생각한 아시아인들은 별루 없다고 보면 되지만...

세 번째는, 식민지배 자체가 당연하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사회진화론>이야. 이게 제일 중요하지. 뭐 설명보다는 그냥 영국인들이 했던 이 말들이 팍 와 닿을껄?

맬서스 : 산업혁명으로 먹을 게 좀 늘었지만, 그래도 너무 너무 식량이 모자랄 거 같은데... 식량은 산술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더 많이 많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잖아? 그럼 방법은 한가지야. 띨띨한 넘들이 좀 죽어줘야 돼. 빈민촌에 방역작업하는 건 정말 돈 낭비거든? 널리고 널린게 빈민 노동자인데, 저것들이 좀 죽어줘야 영국 사회가 발전할 거 아냐? 모자란 띨띨이들은 식민지에 널리고 널렸거든?

멘델 : 맞아. 우성의 법칙에 의하면, 열성인자는 도태되고, 우성인자가 살아남아야 되지. 원래 노동자가 가난한 건 노동자 수준의 유전자 밖에 안되기 때문이지. 어디서 감히 도시 중산층과 똑같이 선거권을 달라고 그래? 저것들... 완전 미친거 아냐?

스펜서 : 다윈의 진화론 읽어봤어? 거기 보면 이런 말도 있잖아. 약육강식, 적자생존. 그걸 세계사회에 적용하면 딱 답이 나온다구. 평생 노동자는 자본가의 밥일 수밖에 없어. 그게 세상의 진리야~ 또,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게 점령당할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영국이 나쁜 나라일까? 아니지... 사자가 배고프다고 사슴을 잡아먹는게 나쁜 걸까? 그건 그냥 세상의 이치을 뿐이야... 약한 나라는 이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이야... 영원히~

그래 ,바로 이거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 진화론을 강한 국가에게 적용시킨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국가들을 점령하고,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를 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문제는, 한국 근대사의 여러 사건에서 <사회진화론>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이 곳곳에서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갑신정변, 친일개화운동, 애국개몽운동 등등등 많은 운동들은 사실 <사회진화론>을 모델로 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려면, 사자같은 일본을 이길 원피스의 당당한 사슴 <쵸파>같이 되려면, 일본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것... 그것을 암묵적으로 깔고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일본이 나쁜 넘이라서 우리가 점령당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강했기 때문에 우리가 졌으니 일본보다 강해지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는 논리... 우리의 초기 독립 운동은 바로 이 <사회진화론>의 약육강식의 논리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 것이다.

자 그럼, 재미없는 서양 이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마치고, 우리 근대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겨보자. 그럼 한국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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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 I S T O R I A > 
역사적으로 본...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길고 긴 대립과정

이 이야기에 나온 역사적인 이야기들과 법, 제도, 인물 등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라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해당되는 입장의 내용들만으로 씌여진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프랑스 혁명 : 자유부터인가, 평등부터인가...

서구 역사가들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을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찾곤 한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하면 <자유와 평등>을 떠올린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에서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실제, 근대 유럽의 자유와 평등은 전혀 같은 말이 아니였다.

프랑스 혁명을 처음 일으킨 것은 <귀족>세력에 반발한 <부르조아> 계급이었다. 그들은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인권선언을 발표하여 자본가들의 <재산권>을 인정받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철저한 <자유주의>를 표방한 첫 번째 혁명은 실패하고 말았다. 국민의회의 자본가들은 1791년 샤플리에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파업을 억누르려 했고, 재산이 있는 자만이 투표할 수 있다는 헌법을 만들었다. 자본가들을 믿고 <자유주의 물결>에 동참한 대중들은 분노하기 시작한다.

1년 뒤, 민중들은 8월 봉기를 일으킨다. 민중들은 <자본가>들의 세상을 다시 부수고, 프랑스 제 1공화정(국민공회) 시대를 열었다. 자본가들을 위주로 하는 지롱드파를 몰아내고, 민중적이고 급진적인 자코뱅파가 정권을 잡았으며, 국왕인 루이 16세마저 사형에 처한다. 93년 헌법에서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재산권 위주의 헌법을 폐기하고 <생존권과 노동권>을 기준으로 하는 혁명적인 헌법을 다시 만든다. 또, 모든 사람이 직접 선거할 수 있는 <보통선거>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는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평등파>와 대결하려 하였다. 로베스피에르는 <방토즈>법을 만들어 <재산가>들의 재산을 <혁명군과 애국시민>에게 분배하는 조치를 취한다. 서구의 근대사 최초로 <자유>가 <평등>에 의해 억압당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이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난 것이다.  <자유파 의원>들은 반혁명을 일으켜 다시 <자유>의 가치를 높이려 하였다. 공포정치로 자유를 탄압한 평등주의자 로베스피에르는 죽었고, 부르조아지들은 다시 <재산권>을 최고의 기치로 삼게 되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이 대립했지만, 최후의 승자는 <자유주의>였다.

평등주의자들은 이 자유주의에 대한 반항을 계속하긴 하였다. 예로 1796년 혁명을 통하여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적> 사회를 추구한 이도 있었다. 그가 바로 유명한 사회주의의 아버지 <바베프>이다. 그는 재산권 자체를 부정하고, <자유>는 <평등>의 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총재정부를 타도하려는 그의 시도는 실패하였고, 자유주의자들은 그를 곧 바로 <사형> 시킨다. 그 이후 자유주의는 <절대적> 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자유주의는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나폴레옹은 <몰락한 프랑스 경제의 부활>과 <혁명적 자유>를 인정한다는 발표로 <황제>에 오를 수 있었다. 나폴레옹이 현재 프랑스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준 가장 큰 이유는 이 것  때문이다. 그는 <위대한 영웅>이었지만, 오로지 혁명의 성과를 <자유>로만 규정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자유주의 이념을 평등주의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독재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말이다.

나폴레옹은 혁명의 성과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부르조아지와 대토지 소유자>들의 권한을 인정하고, 그들을 프랑스의 위대한 국민이라고 광고하였다. 그리고 유럽 정복을 통하여 <재산권과 자유권>을 유럽 대부분에 전파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평등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평등을 주장하는 언론은 바로 군부에 의한 <탄압>에 들어갔다. <나폴레옹 법전>은 위대한 법전으로서 법적인 평등과 신앙, 재산, 직업의 자유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법전의 모든 조항은 개인을 위한 자유보다는 <국가 시민으로서의 자유, 재산권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나폴레옹 시대의 이념은 <자유이념>이 모든 이념을 포괄하여 유럽에 전파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초기 <자유주의 이념>이었고, 이 자유주의 이념은 유럽의 진보와 발전을 위한 최초의 이념이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근원이 된 혁명에서부터 <자유>가 <평등>을 누르고 세상의 빛을 보았으며, 이 후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겪으면서 서구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절대적 이념으로 부각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부터 <자유주의> 이념에 반기를 들고 노동자 계급의 <평등>이념을 부각하려는 시도는 수없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그 연약한 시도들은 대부분 <자유라는 인간의 절대 기본권>에 반한다는 이유로 모두 좌절되었다. 또한, <자유주의>이념은 <자유주의적 고전 경제학>과 맞물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절대적 지원사격을 받았다. 그 이후, 극단적인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에 이르는 <반자유투쟁>이 계속되었으나, 역사는 이러한 투쟁을 모두 실패로 기록하고 만다.

봉건귀족 세력의 역사적 역할 : 자유주의 이념에 반하는 <악마세력>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뒤, 유럽사회에서 <자유주의>는 금기어가 되었다. 유럽의 봉건 왕조들은 빈회의를 통해 혁명 이념인 <자유와 평등>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전 유럽을 <보수화>하려고 하였다. 유럽의 왕실이 특히 주목한 것은 평등보다는 <자유>이념이었다. 왕실과 귀족세력은 산업혁명 등을 통해 성장하고 있던 <자본가> 계급을 가장 큰 적으로 보았으며, <자유주의>는 이들 자본가 계급의 무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로서 유럽의 <정통 왕실>과 성장하는 <자본가>들은 서로 적으로서 대립하는 구도를 만들게 되었다.

그럼 이 때 <지식인과 민중>은 누구 편을 들어야 했을까? 당시의 지식인들은 <평등주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독일, 프랑스, 영국의 대학생들은 <보수적 과거 세력>들인 왕실과 귀족에 대한 대대적인 규탄시위에 들어간다. 독일 대학생들은 부르센샤프트 운동을 벌였고, 나폴리에서는 카르보나리라는 비밀결사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중세적 왕실 질서는 또 다시 프랑스에서 대대적으로 규탄에 들어간다. 나폴레옹 사후의 프랑스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시민계급과 자본가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으나, 정부는 의회를 해산해 버리는 등 자유주의를 탄압하였다. 티에르 등 <자유주의자>들은 <민중>과 연합하여 1830년 7월. 다시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성공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다시 <평등주의자>들을 버린다. 민중이 원한 평등선거는 없었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부도 없었다. 단지, 자본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 선거권을 조금 더 주었을 뿐이었다. 특히 노동자들은 <샤플리에법>에 의해 정치적 발언을 할 수조차 없었다.

결국, 자유주의자와 평등주의자들이 모두 적으로 여긴 봉건귀족은 이 둘의 연합으로 몰락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평등주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자유>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프랑스 공화정 : 계속된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대립

이 이야기는 유럽의 대표적인 혁명을 이끈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혁명은 프랑스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당시 유럽 각지에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내걸고 일어난 혁명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자유주의 혁명을 이끈 선구적인 혁명이 프랑스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예로 든 것이다.

7월 혁명으로 프랑스 민중은 또 다시 <평등>의 기치를 잃어 버렸다. 이 때부터 프랑스 민중들은 <민중이 참여할 수 있는 보통선거>를 요구하게 된다. <자유>가 어느 정도 정착되자 <평등>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를 주장했던 학생들은 이제 농민의 편이 되어서 평등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1948년 2월. 프랑스에서는 또 한 차례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혁명은 국왕 루이 필립을 폐위시키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을 다시 수립하게 만들었다. 로베스피에르의 프랑스 혁명 공화정에 이은 <제 2 공화정>이었다.

그러나, <제 2 공화정>은 <자유주의>와 극심한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급진 평등파>들은 <자유주의>의 기본 이념인 <재산권>을 제한하려 하였고, 이것은 기득권을 가진 기존 <온건한 공화파>들 조차 놀라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립은 다시 극단의 혁명을 몰고왔다.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은 6월 봉기를 일으키고, <평등주의>의 완전한 실현을 주장하였다. 제 2 공화정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폭동은 불법이라면서 강하게 진압하였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타협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공화정은 <단원제 의회와 대통령제도>를 실시하여 국민투표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자유주의>에 대한 보완책으로 <민족주의>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자유주의자들은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을 체제안으로 포섭해야 했다. 특히 <평등>을 주장하면서 <계급>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국내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우애>의 개념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민중과 민족>이라는 개념을 국민에게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족>은 계급을 떠나 하나이다. 모든 계급의 통일체가 민족이고, 민족의 정부가 국민의 정부이다.

이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 3세>이다. 그는 이 <민족>개념으로 국민들의 <냄비같은 마음>을 한번에 사로잡았다. 물론 노동자들은 계속적으로 평등을 요구했고, 게드의 프랑스 노동당이 창립되기도 하지만 나폴레옹의 강력한 리더쉽 앞에 <평등주의>는 <민족주의>라는 이념에 묻혀 버렸다.

영국 : 자유주의가 제국주의 이념으로 전환되다

프랑스와 함께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이끌어갔던 영국의 <자유주의>는 무시할 수가 없다. 영국과 프랑스가 19세기 세계사적으로 미친 영향은 우리나라에까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화기부터 진행된 우리의 <자유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이념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론, 이들 나라의 문물을 먼저 수입한 청과 일본에 의한 것지만 말이다. 이건 다음 회에서 다루면 좋을 것 같다.

영국은 프랑스와 달리 철저한 <자유주의>를 표방하였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수많은 혁명을 목격한 <조용한 섬나라>는 이미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젠트리들에게 수많은 권리를 주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던 명예혁명 이후, 영국은 혁명이 아니라 조용한 타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난 국가이다. 그만큼 자본가들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한 나라였다. 무론 의회 내에서 귀족과 자본가의 대립이 있었지만, 자본가 위주의 휘그당은 <자유당>으로 명칭까지 개편하면서 <자유주의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귀족들은 <보수당>에 집결하여 정당정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19세기 영국은 곡물법을 폐기한다던가, 항해조례를 폐기하면서 자본가들이 해외무역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물론 영국의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19세기 차티스트 운동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주장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자유>의 이념은 <평등>이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영국 노동자들이 산업자본가와 같은 권리를 차츰 인정받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또 하나, 유럽 어느 나라이든 19세기 <여성의 평등>을 거론한 나라는 없다. 여성에게 똑같은 보통선거를 준 것은 선진적인 영국도 <20세기> 들어와서이다.

이러한 영국의 자유주의적 발전은 <자유주의 만능 이념>을 발전시키게 된다. 특히 자본가들의 <자유>를 철저하게 인정했던 분야가 바로 애덤스미스로 대표되는 <경제학> 분야이다. 애덤스미스는 국가가 국민의 자유에 절대 간섭하면 안된다는 이론을 주장하면서, 모든 것은 <가격>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멜더스는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이론을 내 놓는다. 그런데, 그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유>는 주되, <평등>은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빈곤은 노동자 책임이므로 모두가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는 없다. 빈민촌에는 소독도 해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이론이었다.

이것을 이데올로기로 정립한 사람은 <스펜서>이다. 스펜서는 이 모든 이론을 <사회진화론>으로 정립시켰고, 유럽인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사회진화론>이란,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는 것은 먹이사슬에 의한 정당한 행위이다. 사자는 강하고, 양은 약하다. 사자는 육식동물이고 양은 초식동물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이것을 사회 법칙에 대응하면?

노동자는 가난한데 그것은 유전자가 불량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빈곤할 수밖에 없다. 멘델의 유전의 법칙에 의하면 열성은 도태되어야 한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경제학자 리카도는 한가지 증명까지 시도하였다. 그것이 유명한 <임금의 철칙>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성경이다. 경제는 지대, 이윤, 임금의 3가지로 유지되는데 지대가 커지면 임금이 줄어든다. 노동력이 늘어나면 임금은 그만큼 준다. 노동력이 없다는 것은 수요가 없다는 것이므로 노동자의 임금이 늘어날 수 없다. 결국 노동자는 항상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가난은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 진화론을 국가간에 대입하면 이렇게 된다.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 점령당할 수밖에 없다. 강한 나라는 먹이감을 구하고, 자국의 문제를 해결한 탈출구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거나 식민지를 만둘 수밖에 없다. 강한 나라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과 같은 <사회적 법칙>일 뿐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사상은 윤리나 도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니라 <사회적 당위성>으로 설명해야할 사상이다. 약한 나라는 강한나라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힘을 키워서 사자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약자의 변명은 사회 속에서 통하지 않는다.

이로서 참신한 혁명 이념이었던 <자유주의>는 타락과 협상을 거쳐 다양한 사상과 연결된 결과, <제국주의>의 호수까지 흘러들어가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제국주의를 부정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개화기에는 <근대 사상과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으로 <자유주의>를 수용하였고, 그 결과 개화기 지식인들은 <제국주의>도 수용하였다.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이유는 <자유주의>를 받아들여 우리 역시 강력한 <제국주의>국가로 거듭나서 <제국주의로 제국주의를 물리친다>는 이이제이의 원칙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민족주의자인 신채호 선생도 초기에는 제국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였고, 실제로도 일제시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초기에는 <제국주의적인 군사실력 양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자유에 대한 <평등주의>의 반격...

사회진화론까지 나아간 <극단적 자유주의>에 대하여 <평등주의>자들은 수많은 반격을 하고, 저항을 하였다.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 이념을 계승한 이들은 중산계급의 하층민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면 어느 정도 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평등주의적 급진주의>를 주장하였다. 생시몽과 같은 이들은 폭력혁명이 아닌 대화와 설득으로 자본가와 협력하여 타협을 이끌어내자는 <공상적 사회주의>를 주장하였다.

푸리에는 한발 나아가 현존 제도를 모두 버리고, 심지어 결혼조차 부정하면서 성적인 자유까지 주장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간 사람들은 <무정부주의>라는 새로운 이상향을 생각하게 된다. 무정부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가 권력은 모두 <평등>을 억압한다고 본다. 경찰, 군대, 학교, 법원 등은 <자유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들 도구는 <평등>을 옹호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의 결론은 <국가의 완전 소멸>이 평등을 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은 국가를 없애고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생산수단을 가진 뒤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하는 일이 없는 평등한 노동의 세상을 말하였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직접 코뮌(자치집단)을 만드는 것이 <평등>사회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더 나가 러시아의 바쿠닌은 아예 폭력 혁명으로 모든 것을 부수자고 말하기도 한다. 크로포티긴은 바쿠닌의 사상을 계승하여 모든 것의 파괴는 새로운 창조를 가져온다고 말하고, 그 새로운 세상은 <평등>에 입각한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크로포트긴의 사상을 계승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부수고 민족의 평등을 이루자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신채호> 선생이다.

독일의 비스마르크 자유주의와 마르크스 주의의 대립

독일의 자유주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비스마르크이다. 비스마르크는 철저한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가 통일과 자본가 계층의 자본주의를 옹호하였지만, <평등주의>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대입장이었다. 비스마르크는 <반사회주의법>을 발표하여 평등주의자들의 모든 활동을 전면 금지시켰다. 그 이유는 독일의 현실 때문이다. 독일은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 된 이후 동독일의 토지귀족(융커)들과 서독일의 산업자본가에 의해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더 철저한 단결을 주장하게 된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평등 개념>은 이렇다.

세상은 불평등하다. 누군가 평등함을 추구하면, 누군가는 그것을 또 깨드린다.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현 사회의 모습과 일치한다. 단, 이 변증법은 철학적 개념이 아닌 실제 노동자들의 삶과 관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부조리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이 필요하다.

그런데 계급투쟁을 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경제적 생산력>을 기준으로 한다.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하부구조는 경제력인데, 상부구조인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독식한다. 역사는 그러한 모순(정)에 대한 투쟁(반)이었으며, 그 투쟁은 항상 새로운 결과(합)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역사는 발전하였지만, 아직도 평등하지 않다. 진정한 평등은 자유주의(자본주의 : 정)에 대한 평등주의(반)의 투쟁으로 새로운 세상(공산주의 : 합)을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혁명의 주체인 빈민층(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위해 제 1, 2 인터네셔널을 만들었고 이 국제 평등기구에는 독일계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각국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보다 <의회>에 진출하여 <자본주의>가 붕괴될 대를 기다리자는 이념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세계적 기구로 단결하여 훗날 세계 공산주의자들에게 지침을 내리는 기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1차 대전 후 러시아에 공산주의 국가가 성립됨으로서 이들은 해산하였다.

프랑스.... 왕정과 공화정의 반복 :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대립

프랑스는 제 2공화정이 몰락하면서 나폴레옹 3세가 다시 <자유주의적 가치>를 들고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내세운 것은 진정한 <자유주의>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평등>요구로 기득권과 자본가들이 <재산권>을 빼앗긴다는 우려를 했기 때문에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았고, 나폴레옹은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신헌법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독재권을 용인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학교에서 정치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의 큰 줄기였다. 나폴레옹 3세는 기득권을 위한 <쇼>를 많이한다. <자유주의>의 옹호자라는 말을 듣기 위해 은행설립, 철도 건설, 중공업 산업 육성 계획을 세워 자본주의 국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특히 파리시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불만은 많았다. 나폴레옹이 실시한 노동자를 위한 <평등> 정책은 실업자 구제책이었다. 실업자가 늘면 사회 불만 세력이 되고, 그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지 모른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평등이란 말 대신 <민족의 영광>이란 말로 모든 국민이 단결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은 점차 불만이 많아졌다. <민족>을 주장하면서도 결국 <부르조아>를 위한 정책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나폴레옹의 정책은 간단하였다. 나폴레옹을 소개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자유주의적 발전 정책에 불만을 품은 <민중>을 달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그것은 전쟁이었다. 지금이야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영화, 연예인 등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지만, 이 당시의 확실한 방법은 바로 전쟁이다.

나폴레옹 3세가 국민들에게 전쟁의 이유를 설명한 것을 보면 명확해진다. 바로 <국민적 영광>을 위해 전쟁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크림전쟁, 이탈리아 통일 전쟁(샤르데냐 전쟁), 멕시코 원정, 오스트리아 전쟁 등 도대체 왜 하고 있는지도 불명확한 전쟁을 수많은 이유를 들어 시도하였다. 그러나, 독일 통일 전쟁(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비스마르크의 농간으로 패함으로서 <국민적 영광>은 상처로 돌아왔고, 국민들은 그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역사적인 <파리 자치정부>가 추진된다. 급진적인 자코뱅주의자, 프루동의 무정부주의자, 블랑키 주의자들은 <평등주의>의 이념을 내세우면서 연합하였고, 파리에 <노동자 정부>를 수립하였다고 선언한다.  그들이 진정 원한 건 혁명 자체가 아니였다. 그들은 자유주의에서 <평등주의>로 국가정책을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정부를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그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피의 일요일 전투>라고 역사는 부른다. 자치정부군은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항쟁하였다. 국가는 그들을 잡아 바로 바로 총살시켰고, 시위는 계속되었다. 정부는 죽이지 못한 이들을 파리 시내에 가뒤 굶겨 죽였다. 쥐를 잡아먹으며 항쟁했던 <자치정부>의 모든 이들은 엄청난 박해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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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2부에서 다룰 이야기 : 사회주의의 성장 드레퓌스 사건, 카톨릭 세력과 자유주의의 관계, 미국노예해방은 자유주의인가 평등주의인가, 러시아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자유주의를 버린 제국주의, 세계대전 중 평등사상, 히틀러와 자유주의, 냉전시대와 평등주의, 신자유주의 사상의 등장배경과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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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는 진화하고 있는가'란 물음에 깊이 있게 고찰해 본『자유주의는 진화하는가』. 자유민주 이념에 바탕을 둔 교육을 받아 왔고 철학공부를 한 저자는 롤즈의『정의론』을 접하게 되면서 잠재의식적 자유정신을 의식화하고 자유주의를 향한 사회경제적 인프라를 각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자신이 나름대로 구상해 온 자유주의적 입장에 대해 총 5부로 나누어 마음껏 이야기한다. 1부에서는 자유주의와 그 적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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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민주시대의 새로운 장을 연 프랑스 대혁명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혁명의 추진자 겸 관찰자 역 할을 했던 베르트랑 바래르의 활동과 증언을 통해 살 핀 책. 혁명 이전 새로운 사상의 흐름과 베르트랑, 자코뱅 시대, 테르미도르 사건 등 6개 장으로 설명했다.

자유주의적 평등(한길그레이트북스 73) 상세보기
로널드 드워킨 지음 | 한길사 펴냄
로널드 드워킨의『Sovereign Virtue』를 번역한 책. 미국의 롤스 이후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드워킨은 이 책을 통해, 자유주의 평등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평등권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주장한다. 구좌파가 지나친 평등을 추구했다는 기존의 비판과는 달리, 오히려 구좌파가 추구하였던 평등은 진정한 평등이 아니라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현대 정치철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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