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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제국

(블로그이전_보호글처리) 여제 테오도라 왕비 : 천민에서 황후가 된 여인 이야기 여제 테오도라 왕비 : 천민에서 황후가 된 여인 이야기 NO. 006 천민출신 황후와 그녀를 지지해준 황제의 이야기 *** 배경 : 6세기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 : 유스티니아누스 치세기) *** 이 이야기는 6세기 동로마 제국의 위대한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아내 이야기랍니다. 고대 찬란했던 영광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이 서유럽 지역을 장악하면서,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리고 게르만과 투쟁하던 서로마는 5세기말 멸망하였답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이라고도 불린 비잔티움 제국은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천년동안 로마 제국의 영광을 이어갔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서유럽과는 달리 카톨릭이 아닌 라는 종교를 만들었고, 유명한 성소피아 성당을 지었으며,.. 더보기
수능 세계사 정리 15 : 유럽사 6 / 중세의 문화와 비잔틴 제국 ① 중세의 문화 중세 문화는 로마, 게르만, 크리스트교의 문화가 합쳐져 복합적인 색채를 띤다. 특히 서유럽의 대부분이 크리스트교 신자였기 때문에, 크리스트교 중심의 통일적 문화가 형성되었다. 중세 철학은 신학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신학적 철학인 교부 철학(Tip. 敎父 哲學 : 신학에 근간을 이룬 신학자들의 철학, 2~7 혹은 8C 기독교 철학)에서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할 정도였다. 교부철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을 편찬하였다. 반면 중세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한 9~ 12세기 유행한 스콜라 철학의 대표적인 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저서 『신학대전』에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13세기 이후에 스코터스와 오컴은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주장.. 더보기
11세기 - 13세기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유럽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항쟁의 역사 11세기 이베리아 반도의 재정복 운동 이번 장에서는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었던 이베리아 반도를 서유럽 국가가 재탈환하는 시기의 역사를 다뤄볼까 합니다. 이 지역의 역사는 교과서든, 어디든 다 서유럽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슬람 세력을 유럽이 몰아내고, 크리스트교 세계를 복구하였다라는 것이 이 파트의 내용인데, 상당히 불만입니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닐텐데요. 하지만, 제 주관을 배제하고 중세 유럽사의 내용에서 이 파트를 다룬 뒤 이슬람사에서는 이슬람의 입장에서 이 파트를 다른 관점으로 다루겠습니다. 1. 이베리아 반도의 상황 11세기 이전까지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국가가 지배하였습니다. 7세기 이후 마호메트의 이슬람 세력이 그 위세를 떨칠 무렵 이슬람은 전 유럽을 이슬람의 영역으로 만들고.. 더보기
이슬람의 역사 1 - 이슬람교의 기원과 마호메트의 출현 이슬람교의 기원과 마호메트의 출현 1. 이슬람 - 종교 교리의 기원 이슬람교는 세계 인구의 20%가 믿고있는 종교입니다. 이슬람력 12월 7일에는 세계 각지에서 메카로 신도가 모여들며 장관을 이루곤 하죠. 사실 이슬람교도 그 기원은 유대교에서 시작됩니다.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는 둘 다 을 모체로 탄생한 종교이지만, 두 종교는 구약성경에서 제시하는 여호와의 예언자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에서부터 갈등이 시작됩니다. 크리스트교는 예수를 예언자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규정하였고, 니케아 공의회 등 수많은 종교논쟁을 거쳐 예수를 신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의 목적이였죠.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예언자로만 인정할 뿐, 신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최후의 예언자가 아니며, 최후의 예언자는 .. 더보기
비잔틴 제국 - 사회와 문화 구조 비잔틴 제국의 사회 문화 구조 1. 비잔틴 제국의 황제 비잔틴 제국의 정치하면 왕중의 왕이라는 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황제가 모든 것을 총괄하며 교회와 주변국의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 비잔틴 제국의 특징이지요. 비잔틴 제국은 로마의 관료제를 계승했지만, 그 지배사상은 동방의 신성정치를 연상케하는 절대군주체제였습니다. 즉, 동방적 제정일치, 신정일치적인 성격이라고 볼 수 있죠. 황제는 관료제와 상비군을 지배하면서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때가 전성기였지요. 관리들도 환관을 등용하여 황제의 측근으로 활용하는 동방적 궁정정치의 성격이 강하였습니다. 황제 자리는 원칙적으로는 선출제였지만, 실제로는 거의 세습되었습니다. 황제는 귀족출신의 장교들을 중무장 기병으로 활용하여 국가수비를 맡기였.. 더보기
비잔틴 제국 - 비잔틴 제국의 흥망 비잔틴 제국의 정치사 1. 비잔틴 제국의 발전 비잔틴 제국은 동로마 제국을 말합니다. 비잔틴 제국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보면, 먼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이전하여 동, 서 로마의 중심지를 분리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이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4국통치기부터 동로마에 황제가 존재하면서 동쪽 로마가 서로마 못지않게 중심지 역할을 했었지요. 테오도스우스 황제 이후 동로마는 완전히 서로마에서 분리된 독립국가 형세를 갖추게 됩니다. 단, 분리 후에도 하나의 로마민족이라는 유대감이 있었으므로, 동서로마는 항상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공동체 의식을 견고하게 해 준 것은 크리스트교였습니다. 그러나, 성상숭배금지령 이후 로마 교회와 비잔틴 황제가 각각 카톨릭, 그리스 정.. 더보기
중세 이야기 3 - 카롤링거 왕조의 성립과 로마 교황령의 시작 카롤링거 왕조의 성립과 교황령의 시작 1. 7c의 혼란 프랑크 왕국의 건국자 클로비스의 메로빙거 왕조가 성립된 후 150여년이 지났습니다. 100년 이상이 지나는 동안 프랑크 왕국은 앞 장에서 설명했듯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망하지 않고 근근히 국가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7c가 되면서 프랑크 왕국은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 이유는 프랑크족의 관습때문이였습니다. 프랑크족들은 재산을 상속할 때, 장자 상속제가 아니라 균등 상속제입니다. 즉, 왕자들이 많다면 그 왕자 사이에 일정한 비율로 영지를 분할하는 것이 그들의 제도였습니다. 이것은 왕위 상속을 놓고, 왕자들간의 내분이 일어날 소지가 많은 제도였습니다. 결국 내분과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왕국의 실권을 잡은 것은 궁재(재상) 마르텔이였습니다. 그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