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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왕

고구려에서는 승려를 이용한 007 정보전이 있었다... 고대 불교를 이용한 정보전 1. 불교의 수용과정에서의 대립 요즘 뿌리깊은 한국사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고대사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그런데, 좀 읽다보면 신빙성 있는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정확한 원문 사료를 비교해서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니깐 좋은 것 같아요. 그 책에서 부분에 관한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불교 수용은 삼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은 토템적, 애니미즘적인 자연주의 신관이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신관으로 바뀐 것을 말합니다. 훨씬 체계적이고 국가 이념으로 활용하기 좋은 종교였죠. 그러나 실제 불교가 공인된 것보다 더 이른 시기에 불교가 전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공인이 늦었던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2. 토착종교와의.. 더보기
고대 불교를 통한 정보전 - 소지왕과 승려 간첩 소지왕과 승려간첩 제 21대 비처왕(소지왕) 즉위 10년(488)에 왕이 천천장에 행차하였다. 이 때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서 글을 올렸는데, 겉봉에 이렇게 써 있었다. 일관이 아뢰기를, 라고 말하였다. 왕이 그리여겨 떼어보니, 라고 씌여 있었다. 왕은 곧 궁궐에 돌아가 거문고 통을 쏘니 거기에는 궁궐에서 분향 수도하던 중이 궁주와 몰래 간통하고 있어, 두 사람을 사형에 처하였다. - 삼국유사 권 3, 원종흥법염촉멸신 - 참고글 : 이 이야기는 신라 소지왕 대의 이야기입니다. 소지왕은 백제와 손잡고 강력하게 고구려에 대항하려 하였던 왕인데, 고구려는 소지왕을 제거하려고 하였던 것 같습니다. 즉, 궁주와 함께 왕을 암살하려고 했던 승려 간첩을 서출지에서 나온 노인이 알려줘서 막았다는 설화입니다. 더보기
소지 마립간 시대 소지 마립간 시대 조지 마립간 7년(485 ; 소지왕) 2월에 구벌성을 쌓았다. 8년 정월에 일선 경계의 장정 3천명을 징발하여 삼년, 굴산 2성을 고쳐서 쌓았다. 조지 마립간 15년(483) 3월에 백제왕 모대(동성왕)가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매 왕은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냈다. 16년 7월에 실죽 등이 살수의 들에서 고구려와 싸워 이기지 못하고 물러와 견아성을 지키매 고구려병이 이를 포위하였는데, 백제왕 모대가 군사 3천을 보내 신라군을 도와 고구려병이 포위를 풀게 하였다. 17년 8월에 고구려가 백제 치양성을 포위하여 백제가 구원을 청하자 왕이 장군 덕지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원하게 하니, 고구려 군대가 무너져 달아났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3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