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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저

배교자 율리아누스 : 전통신 지키기 프로젝트 끄적대는 낙서 세계사 (6) 배교자 율리아누스 : 전통신 지키기 프로젝트 1. 크리스찬을 꼬시기 이전의 정책들 - 시민권과 빵, 그리고 서커스 오늘 전개할 이야기는 크리스트교가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로마 제정 말기에 대한 이야기야. 우리는 흔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희생을 해서 크리스트교가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그런데 말야...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크리스트교를 인정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정치적 입김도 작용한 것이었어. 로마의 전성기인 제정 초기에는 황제권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에, 굳이 크리스트교가 필요없었지. 오히려 하나님 숭배니 뭐니 하는 종교적 믿음은 황제권을 위협하는 것이었기에 탄압의 대상이었어. 하지만, 황제권이 약해질대로 약해지던 로마 제정 .. 더보기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3) - 역사학과 사회학이 싸우던 낡은 시대를 뛰어넘어...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3) 역사학과 사회학이 싸우던 낡은 시대를 뛰어넘어... 1. 18c :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마추어다. 익숙한 문화 코드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데, 계속 이론 이야기만 해서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화 이야기는 이 편만 끝나면 시작될 것이니, 좀 참고 견뎌보자. 자, 오늘은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과연 역사학에 가까운지, 사회학에 가까운지 간단히 짚어보자. 역사학과 사회학의 처절한 결투는 18세기 이래 계속되었다. 서양 연대기로 따지자면 프랑스 혁명 전후부터랄까?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는 수많은 학문이 분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와 라는 항목이었다. 혁명의 기록은 역사이나,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통계는 에 가까운 것이었다... 더보기
환타스티아 (6장) : 서구의 신화에 대한 깊은 환상 - 드루이드 환타스티아 (6장) 서구의 신화에 대한 깊은 환상 - 드루이드 드루이드에 대한 세가지 관심 는 유럽의 신화에서도 특별한 존재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로 자리잡고 있는 존엄한 사제라는 이유 때문이죠. 환타지물과 같은 유럽 중세의 이야기 속에서 드루이드는 유럽 주류와는 다른 이야기로 다루어집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록이 거의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신화를 이야기할 때,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경외감이나 공포심을 갖고 이야기를 바라봅니다. 알려지지 않은 그 이야기에는 어떤 숨은 뜻이 숨어있을까 하고... 그러나 고대 신화의 큰 맥락은 인류가 살았던 비슷한 시기의 다른 곳 이야기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드네요. 드루이드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 더보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고 잠깐의 명상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에서.. 로마를 이끌어간 현자이자 마지막 팍스 로마나의 주인공... 아우렐리우스는 역사를 이끌어간 이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알렉산더, 시저, 폼페이우스가 있다. 그들은 디오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와 무엇이 다른 사람들인가? 후자의 사람들은 사물의 본질, 즉 사물의 원인과 사물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알고 있었으며, 그들을 지배하는 그들의 이성은 그들 자신의 것이었다. 그러나, 전자의 사람들은 수많은 사물을 소유하기를 좋아했으며, 따라서 그만큼 사물에 대해 노예 상태에 있었다. ---------------------------------------------- 우리는 철학자라는 사람들을 이상주의자라고 말한다. 철학자들은 사람이 어울려 사는 사회구조의 본질을.. 더보기
한토막 역사 2화. 3개의 짧은 이야기(흥선대원군도 증기선을 만들었다 등) 한토막 역사 2화. 3개의 짧은 이야기... 1. 황제나 지배자를 뜻하는 의 어원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러시아의 지배자를 뜻하는 뜻인 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요? 러시아의 지배자인 차르, 독일에서 황제라는 말은 카이저는 모두 로마 공화정 말기의 지배자였던 카이사르(시저)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카이사르는 로마 공화정 말기 민중파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로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의 인생과 양아들 부르투스에게 암살당하는 장면은 훗날 연극 등에서 주요 소재 거리가 되었는데, 유럽의 각국은 그의 이름과 황제라는 말을 연결시켜 칭호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로마의 황제란, 카이사르가 죽은 뒤 그의 양아들인 아우구스투스 때부터 시작.. 더보기
유럽중세사 1 - 게르만족의 이동 게르만족의 이동과 유럽 중세의 시작 1. 게르만 족이란? 게르만족은 발트해 북유럽 연안에 살던 소수의 야만인(?)입니다. 야만인이라는 것은 당시 로마 제국의 관점이였죠. 로마는 갈리아 정복 이후 춥고, 도움이 안되는 북극쪽의 땅은 정복하지 않습니다. 실제 로마가 현재 프랑스-서부독일-에스파냐를 잇는 갈리아를 정복한 것도 갈리아 지방에 풍부한 유산이 있거나, 갈리아인들이 문명인이라서가 아닙니다. 갈리아 정복은 단지 이베리아 반도를 거치기 위해 필요한 도로를 확장하기 위함이였으니까요. 아무튼, 북유럽의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는 이방인이였습니다. 그러나 게르만족에게 평화가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경작지가 부족해졌습니다. 이것은 게르만인들이 남부로 내려오는 하나의 원인이 됩니다. 게르만족.. 더보기
로마사 이야기 5 - 그라쿠스 형제, 마리우스, 카이사르, 그리고 옥타비아누스의 시대 그라쿠스 형제, 마리우스, 시저, 그리고 옥타비아누스 1.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지금까지 포에니 전쟁 이후 평민 계층이 급속하게 몰락하면서 로마 공화정에 위기가 찾아온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러한 로마 공화정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평민대표인 호민관들은 다시 자영농민을 육성하고, 평민에게 땅을 돌려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이것은 로마 공화정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호민관으로서 로마 공화정을 개혁하려고 했던 사람은 그라쿠스 형제였습니다. 이들의 개혁목표는 자영농민의 생활을 안정시켜 사회불안을 막고, 로마 군사력을 다시 강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평민층에게 혜택을 줌으로서 기득권층인 귀족들과 충돌하여 결국 실패합니다. 먼저, 형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