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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

신라의 중앙 제도 2 - 중앙정치가 발전하다. 신라의 중앙 제도 2 - 중앙정치가 발전하다. 1. 신라 초기의 중앙 제도 변화 신라 초기의 관제의 특징은 어떤 뚜렷한 기준에 의해 관제가 정비된 것이 아니라 씨족적 유습들이 그대로 남아서 중앙 관제로 정착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초기에는 대보가 있어서 씨족장 출신인 이벌찬, 아찬 등이 정치와 군사를 담당하는 정도의 초보적 기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법흥왕 기에는 상대등과 병부가 설치됩니다. 상대등의 설치는 국왕권이 강화되면서 그동안 공동으로 정치를 주도하던 귀족들을 왕권과 분리시키려는 시도였고, 병부의 설치는 국가 병권을 국왕이 장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후, 진흥왕대에 품주를 설치하면서 조세를 국가가 관장하였고, 관리의 규칠을 맡은 사정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진평왕 때는 위화부, 조부, 예부, 선부 등을.. 더보기
통일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개관 통일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개관 통일신라에 대한 구체적인 포스팅을 하기 전에 통일신라시대에 대한 개관을 해보겠습니다. 1. 전제왕권이 성립하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국가 운영 체제와 영토의 팽창입니다. 삼국통일은 곧 영역의 확대 뿐 아니라 인구,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또 통일로 인하여 유민 세력에 대한 처우 개선, 군사력의 확보, 정치적 안정의 추구, 반신라세력에 대한 탄압 등 국가적 과제가 많았습니다. 즉, 국가적으로 팽창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과제들을 해결할 정치적 역량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신라의 왕권은 이러한 새 시대의 과업을 를 통해 효율적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충신의 왕으로서 새 시대를 위한 체제 개선을 .. 더보기
중국사 이야기 35 - 한 무제 사후 내외조의 대립과 전한의 멸망 중국사 이야기 35 - 한 무제 사후 내외조의 대립과 전한의 멸망 이번 장에서는 한무제가 죽은 직후 황제권의 약화와 전한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보죠. 1. 한무제가 만든 외조, 내조의 문제점 한무제는 자신의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기존 국가 지배 기구인 진시황제 이래의 외조를 통제하였습니다. 즉, 황제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강력한 외조 기관인 3공을 통제한 것이지요. 따라서 승상(재상), 어사대부(감찰), 태위(군사)라는 삼권은 이전보다는 상당히 약화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반면, 황제는 자신의 최측근에서 일할 수 있는 비서기관인 상서, 중서라는 기관의 의 권한을 느렸습니다. 무제는 자신들의 측근인 조신(상서, 중서, 중시)들과 국사를 의논하여 처리하였고, 이러한 황제 측근 기관을 흔히 라고 합니다.. 더보기
신라시대 상대등과 시중은 그 위치가 바뀌곤 했었다? 신라시대 상대등과 시중은 그 위치가 바뀌곤 했었다? 1. 원래 상대등의 개념 상대등은 신라 법흥왕기에 출현하여 신라 말기까지 있었던 관직입니다. 상대등이란 신라의 진골귀족 관료(대등)들을 총괄할 수 있는 상위의 대등이란 뜻입니다. 즉, 원래 상대등이 등장한 배경은 귀족들의 대표로서 국왕권을 견재하고 국사를 총괄할 수 있는 높은 권한을 가진 직책입니다. 법흥왕대 상대등을 처음 만들 때에 상대등은 국왕과 귀족이 같이 정치를 한다는 연합적 성격의 관직이었습니다. 당시 국왕은 명령을 내릴 때도, 유력 부족과 공동하교로 명을 내렸고 국왕이 화백회의의 의결사항을 준수해야 했습니다. 국왕은 이념적으로는 초월적인 군주이나 현실적으로서 귀족의 대표 성격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법흥왕은 상대등을 설치함으로서 국왕권을 견재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