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퀴즈) 역사로 정리해보는 불교 이야기 제 1부. 불교 탄생 이전의 종교 이야기 : 브라만교 - 부분입니다.
1-3장까지 핵심 내용을 문제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차한잔 하시면서 풀어보세요.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한국 근현대사 노트 (2)

근대 출발기의 세상 변화 - 제국주의 이야기

1. 제국주의 시대의 도래

자, 그럼 한국 근현대사를 이야기 해 봐야겠지?

근데, 헛소리 한번만 더 하고 넘어가자. 지난 시간에 말했지? 우리 근대사의 기준이 바로 <자본주의 국가의 성립>과 <근대민족주의 국가의 성립>이라구... 그런데, 아시아의 국가들이 식민지 상태로 출발한 이상, 이 2가지 근대적 요소는 <서양의 영향력>을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 말야....

그럼, 아시아를 점령한 서양 국가들은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는 소리네? 특히, 자본주의가 최고 수준에 오른 가가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후진국을 점령하는 걸 <제국주의>라고 불러.... 그럼, 근대 자본주의를 알기 위해서 제국주의가 뭔지부터 살펴볼까?

2. 제국주의 경제적 배경 : 산업혁명

제국주의를 알려면 먼저 서양의 <산업혁명>부터 알아야 돼.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들어 봤지?

영국애들이 어느 날, 기계를 만들었어. 기계로 물건을 만들다보니, 물건이 많이 많이~ 생기는 거야.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어. 여기 저기 공장들은 많은데, 기계들이 물건을 팍팍 만들다보니 물건이 남아돌기 시작하는 거야. 영국애들은 고민에 빠지게 되지. 해결 방법은 2가지야. 첫 번째는, 경쟁력이 딸리는 공장이 망하고 돈많은 대기업이 모두 인수하는 방법, 두 번째는 인구가 엄청 많은 다른 나라에 남아도는 물건을 팔아먹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을 사용해서 나타난 현상이 <독점 자본주의>야.

기계로 물건을 만들다보니, 물건이 너무 많아졌어. 전문 용어로 과잉공급이라고 하지. 그럼, 시장에 물건이 너무 많아지니까 서로 싸게라도 팔려고 하겠지? 물건 가격이 팍팍 떨어질거야. 가격이 떨어지다보니, 자본이 부족한 기업들이 순서대로 망하게 되지. 결국 살아남는 건? 대기업이야.

자.. 이제 대기업 혼자 살아남았으니, 시장을 독점하겠지? 원래 18세기 영국의 자본주의는 <자유 방임주의>였거든? 기업들끼리 알아서 경쟁하게 내 버려두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믿었어. 가격이 너무 비싸면 사람들이 안 사니까 가격이 내려갈거고, 가격이 너무 싸면 파는 사람들이 가격을 알아서 올릴 거구... 가격이 곧, <보이지 않는 손>이 되서 알아서 시장가격을 조절하는 거야.

그런데,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면 지 맘대로 가격을 정하고, 상품의 생산량이 지멋대로 정하게 되는거야. 이렇게 되니 국가가 기업의 눈치를 보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거지.

대기업은 이제 이렇게 외치겠지? 내 말 안들으면 다 <빵구똥구야~>... 내 말 들으면 친구, 아니면 적이거든... <내놔.. 내놔... 다 내꺼야...다 내꺼라구...> 하이킥에 나오는 악동 해리처럼 막무가내가 되 버린거지.

야 이 빵구똥구야... 어디서 내 물건에 손대... 다 내꺼야... 다 내꺼야...  해리 vs 신애.... ㅋㅋㅋ

<독점 자본주의>와 함께 나타난 또 하나의 현상은 <금융자본주의>야.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했으니, 물건을 더 많이 만들어 팔 <자금>이 필요하겠지? 당연히 은행, 증권회사 등은 대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이익금(이윤)을 나눠먹으려고 할꺼야. 그렇게 기업과 같이 커간 금융기관들은 기업의 주식을 사기 시작하고, 기업의 핵심 사업에 투자를 시작하지.

기업은 더 많은 물건을 만들고, 더 큰 사업을 벌이다가 해외까지 진출해서 물건을 팔아먹게 되. 은행은 끊임없이 돈을 빌려주고 기업의 주식을 틈나는대로 사게 되고.... 이렇게 사업이 커지다 보면 문제가 생겨... 갈수록 어마어마해지는 돈을 <은행>이 아니면 빌릴 곳이 없게 된 거야.

이제 기업은 큰 사업을 하나 할 때마다 은행이 돈을 얼마나 빌려줄까나... 하는 눈치를 보게 되고, 결국 은행이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등장하게 되지. 이렇게 금융자본(은행, 자사)이 산업자본(기업)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기의 독점자본주의를 <금융자본주의>라고 부르는거야.

자, 그럼 국내 시장도 독점했겠다, 든든한 은행줄도 있겠다.... 이제 국내 산업혁명을 마친 영국의 독점 기업들이 진출할 곳은? 바로, 인구가 많아서 옷을 사입을 사람도 많았고, 나름대로 아시아의 문명 지역이었던 <인도>였지. 물건을 팔아먹으려고 세운 회사가 바로 <동인도 회사>야.

결국, 제국주의를 경제적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돼.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유럽국가들이 독점 자본주의 체제를 갖추고, 후진 지역에 상품을 팔려는 거지. 근데, 아시아 애들이 유럽 물건을 잘 안사주니깐, 아싸리 식민지로 만들어서 강제 매입을 시키는 거야. 물건을 팔아먹은 뒤에, 다시 원료를 착취해서 또 물건을 만들고, 또 팔아먹고... 그러다 보니 기업이 더 커져서 다른 지역에 또 진출하고, 또 점령하고 또 팔아먹고....

경제적으로 제국주의를 정의하다 보면, 뭐든지 삼켜 버린다는 구약성경의 괴수 <리바이어던>이 생각나게 되지. 선두주자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전세계를 다 삼킬 기세였거든.

여왕 3종세트(엘리자베스 앤 + 빅토리아) : 자자... 이왕 땅따먹기 하는거 알짜베기 땅들을 우리 영국이 먼저 먹어야겠지? 어디가 좋을까?

15세기 드레이크 : 저기, 일단 돈이 좀 필요하니깐 제가 해적질좀 해올까요? 스페인 무적함대 몇대 박살내면 여행 자금좀 벌거 같은데.....

16세기 윌터롤리 : 그럼 저는 그 돈으로 황금 찾으러 신대륙 탐험좀 할께요. 뭐 <엘도라도>, <아틸란티스> 이런 데 좀 찾다보면 뭔가 금은보화가 좀 걸리지 않겠어요?

17세기 크롬웰 : 그럼 난, 요즘 세계무역에서 좀 힘좀 쓰는 네덜란드 배들 좀 몇대 격파하고, 항해조례를 만들어볼께... 이제 우리 영국의 시대가 다가오는 거 아니겠어?

18세기 멘델 : 일단, 쓰레기들좀 청소하구요. 제가 법칙 하나 만들었거든요. 우성이 열성을 지배한다물학적 칙은데유.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한다, 독점 기업이 노동자들을 지배한다.... 어디나 적용되는 만능입니다유...

19세기 스펜서 : 다원의 진화론 아시죠? 그것도 좀 적용해보려구요. 진화론의 약육강식...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사회 속의 진화론이다. 찌질이는 완소남에게 점령당할 수밖에 없다... 그럴 듯 하죠?

20세기 세실로즈 :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아프리카를 영국의 색으로 칠할 것을 인정하는 신일거야. 온 지구가 영국의 깃발로 나부끼는데, 얼마나 영광스러워? 다 영국꺼야~~~

자, 이런 이론까지 무장해서 영국은 여기 저기를 점령하고 다닌다. 그럼 어디를 점령하는 게 제일 효율적일까?

바로,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와 그 주변을 완전 정리하는 거야. 산업혁명 전까지는 세계 4대 문명 지역이 유럽에 뒤지지 않는 세계 거점지들이었지. 유럽은 그 쪽의 발달한 문명과 어마어마한 인구를 쪼옥쪼옥~ 다 빨아먹을 생각이었어.

먼저, 유럽에 문명을 전파해 준 이집트 문명... 여기를 점령해서 아프리카를 아래로 쭈욱~ 점령하려구 했어. 이것이 역사에서 유명한 영국의 종단 정책, 또는 3c 정책이지.

다음, 인더스 문명의 인도...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세웠다가 훗날 영국 직속령으로 만든 땅이지. 인도는 옷감 수요가 많아서 영국의 핵심 식민지였고, 여기를 바탕으로 동쪽으로 쭈욱 가서 미얀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을 모두 점령했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 여기는 굳이 영국 혼자 점령할 이유가 없었어. 아편전쟁으로 중국의 주도권을 영국이 가졌지만, 워낙 인구가 많잖아. 걍, 다른 서양 국가들이랑 중국을 나눠먹으면서, 중국의 왕조는 유지시켰지. 
  
  미국이 주장한 이론 중에 이런 게 있어... <공평한 점령의 원리>, 즉 <균등 분점의 원리>라는 건데... 이런거야. 너무 큰 빵을 혼자 먹으면 배탈나잖아? 그럴 땐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를 하면서 나눠먹으면, 빵도 처리하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아지겠지? 중국이 그거야... 너무 크고, 인구가 많으니깐 똑같이 나눠먹자는 거지. 중국이 왕조를 유지하면서도 망하지는 않은 이유가 그거야. 중국은 여러 국가들이 나눠먹는 빵이였거든. 빵가게 사장이 있어야 약탈자들이 재미있게 즐기면서 빵을 약탈해먹을 수 있잖아. 그래서 중국은 참 다양한 나라가 여기 저기를 뜯어먹었지.

마지막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여기는 대대로 유럽을 괴롭힌 강력한 <투르크> 족의 본산지야. 영국은 서아시아를 평정한 오스만 투르크의 광대한 제국을 끊임없이 괴롭게 하면서, 오스만의 모든 식민지를 독립시키는 정책을 사용했어. 훗날, 오스만과 이란 지역은 영국과 러시아가 나눠먹게 되거든.

3. 제국주의 정치적 배경 : 민족주의

제국주의가 19세기 전세계에 열병처럼 퍼진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민족주의> 때문이야. 말했었지? 근대화의 2가지 핵심 배경이 <자본주의 + 민족주의>라구 말야. 그럼 유럽인들이 말하는 민족주의가 뭘까?

사실 유럽 역사에서 <민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최근의 일이야. 그들이 말하는 <고대>라는 시대에는 <로마>라는 제국이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국가였잖아. 또 중세 시대에는 프랑크 왕국과 교황으로 대표된 봉건적 사회 질서가 있었구...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바로 <르네상스> 이후, 유럽인 스스로가 <근대인>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부터야.

그럼, 르네상스 시대에 <민족>이란 개념이 있었을까? 아니지... 당대에는 신분질서가 견고했고, 루이 14세니, 엘리자베스니 하는 강력한 절대 왕이 나타났어도, 그건 귀족과 성직자층을 대변하는 신분제 국가였지, 민족국가는 아니였거든. 뭐, 하나님이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이념이 있었지만, 그것도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불만을 희석시키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고 보면 되.

럼 <민족>이란 개념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그건, 바로 <시민혁명>이 발생하고 부터야. 우린 모두가 같은 국가안에서 살아가는 같은 <백성>인데, 왜 귀족, 성직자 니들만 잘먹고 잘사니?

그 대표적은 불만의 폭발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지. 성직자, 귀족, 일반 시민이 공존하는 프랑스에서 1, 2계급인 성직자, 귀족만 우대받는 게 얼마나 짜증났겠어? 시민들이 다 때려부서고, <우리도 같은 인간이다>를 외쳤던 그 사건부터 <우리 모두가 같은 민족일 뿐이다>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거야.

그 개념을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면서 곳곳에 퍼뜨리기 시작했지. 프랑스에게 정복당한 민족들은 이런 생각을 했던거야.

합스부르크인 : 와... 저렇게 단합하니깐 나름 강하네... 저것들. 뭐? 귀족과 평민이 같은 세금을 내고,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돈만 있으면 되는거야? 오오.... 우리도 한번 혁명을 일으켜볼까?

프로이센인 : 아나.. 짱나... 나폴레옹 저게 뭔데 자유로운 우리 프로이센을 점령한 거야? 자, 우리 자유 프로이센 국가안의 모든 사람들이 단합해야겠다. 저 웬수같은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우리의 자유를 되찾자...

베네치아인 : 어? 동방무역으로 좀 사는 것 같은 우린데.... 프랑스 떨거지들한테 완전 밀리네. 왜지? 왜지? 그래... 우리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 국가들이 힘을 모으지 못해서 그래... 우리가 연합만 하면 저것들은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데... 우리 이제 통일해야 되지 않겠어?

바로 이런 분위기가 된 거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직접 전파했다기 보다는, 나폴레옹이 침략하자 유럽의 사람들이 프랑스인들의 <민족의 단합>을 보게 되었고, 나폴레옹과 독재 군주에게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외치기 시작한거다. 그것이 바로 유럽인들이 말하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본질이었지.

나폴레옹은 자신이 황제가 되어 유럽에 엄청난 제국을 세워서 가문의 영광을 누르고 싶어했을 거야...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지 아마? 근데, 나폴레옹은 몰랐을 거다. 불가능이란 말이 없는 사전은, 인쇄가 잘못된 불량 짝퉁 사전일 뿐이라는 것을.... 아니면, 나폴레옹의 어휘실력이 딸렸다거나... ㅋㅋ

근데, 나폴레옹의 유럽 제국은 왜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없을까?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제국주의가 뭔지 위에 설명했잖아? 제국주의란, <독점자본주의>체제를 갖춘 나라가 타국을 식민지로 삼는 거라구.... 나폴레옹의 어느 구석을 봐서 <자본주의>가 있니? 나폴레옹의 제국은 <민족주의>에는 일부 해당될 수 있지만, <자본주의>가 없기 때문에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가 없는 거다.

자 그럼, 나폴레옹의 유럽 지배를 벗어난, 유럽 애들의 상황을 한번 보자.

프로이센인들과 베네치아인들은 뭉쳐야 살아남는 다는 걸 뼈져리게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일과 이탈리아는 오랜 분열을 끝내고 통일을 완성하게 된다. 뭐,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 이런거 교과서에서 본 적 있지?

결국, 나폴레옹은 유럽에 <민족>들이 뭉쳐야 살아남는 다는 걸 보여주고 만 것이다. 그리고, 통일한 국가들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지. 영국과 프랑스도 여기 저기 식민지를 늘리는데, 우리는 왜 못해?

그리하여, 독일, 이탈리아 등 후발 주자들이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민족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기 시작하는 거지. 나중에 히틀러가 이렇게 외치잖아? 우리 독일인은 게르만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게르만인이다. 우리는 바로 <아리아인>이다... 뭐 이렇게... 그리고 유태인 학살하고, 영국이랑 프랑스 애들 째려보잖아.

바로 그거다. 제국주의가 여러 나라 사이에 퍼져서 열병처럼 번진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민족의 영광과 자부심>을 알리겠다는 거였다. 특히, 이제 막 통일한 국가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민족만의 뭔가 한방>을 꼭 보여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 <한방>이 세다는 걸 보여주려고 두 국가가 같이 완전 오버했다가 나중에 세게 2차대전에서 나란히 박살나게 되지... 아시아의 오버국 일본과 함께... ㅋㅋ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1차대전은 바로 이 <제국주의> 때문이었지. 영국, 프랑스 같이 먼저 땅따먹기를 시작한 국가에게 독일, 이탈리아 등 나중에 땅따먹기에 참여한 국가들은 밀릴 수밖에 없었거든.

모로코 사건 아나? 영국, 프랑스가 아프리카를 먼저 땅따먹고 있었는데, 독일이 나중에 아프리카에 가서 <한입만~ 한입만~>을 외치면서 모로코라도 달라고 때쓰다가 영국, 프랑스 양쪽한테 맞을 뻔 했잖아...

사실, 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계속 영국, 프랑스에게 덤빌 수밖에 없었던 건, <민족주의>가 무너지면, 위대한 아리아인이라는 국가 이념이 쓰러진다는 절박감도 작용했던 거지.

4. 제국주의 사회적 배경 : 사회진화론

자, 이제 근대화의 2대 동력인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유럽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했다. 그럼, 다음장부터는 그 2대 동력이 아시아와 한국 근현대사에 어떻게 유입되었는지를 설명하면 되겠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를 더 알고 넘어가야되. 유럽애들이 자본주의니 민족주의니를 외치면서 아시아 각국을 점령하잖아? 근데,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무작정 쳐들어가서, 내가 니들 점령할거니까 조용히 점령당해 주세요... 우리가 니네 박살내고, 삥뜯으러 왔지만, 우리 나쁜 넘들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그래서 유럽인들, 특히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끝내고, 여기 저기를 점령한 영국은, 자신들의 정복사업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식민 국가에게도 도움이 되는 거라고 광고하기 시작해... 그 방법은 뭘까?

첫 번째는 종교를 이용하는 거야. 침략과 동시에 선교를 하는 거지. 니들같이 떨거지 후진국 못난이 원시인 같은 아시아인들에게 <하나님>이 누군지, <천국>이 뭔지를 가르쳐주는 은혜를 베풀고, 봉건적인 후진국에게 근대화된 서양 문물을 전파해 준다는 거지. 산업혁명 이후 개발된 선진적인 유럽문물을 접하게 되면, 당연히 유럽 사회를 동경하게 될 것이고, 식민지인들도 뭔가 배우는게 많다고 생각할 거 아냐.

두 번째는, 식민지배가  give and take 라는 걸 강조하는 거야. 영국이 아시아에 물건을 팔아먹으면, 영국도 너네한테 원료를 사줄 거고, 그럼 너네도 공장도 생기고, 산업혁명 노하우도 배우고, 서로 발전한다는 거지. 뭐 근데, 그렇게 생각한 아시아인들은 별루 없다고 보면 되지만...

세 번째는, 식민지배 자체가 당연하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사회진화론>이야. 이게 제일 중요하지. 뭐 설명보다는 그냥 영국인들이 했던 이 말들이 팍 와 닿을껄?

맬서스 : 산업혁명으로 먹을 게 좀 늘었지만, 그래도 너무 너무 식량이 모자랄 거 같은데... 식량은 산술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더 많이 많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잖아? 그럼 방법은 한가지야. 띨띨한 넘들이 좀 죽어줘야 돼. 빈민촌에 방역작업하는 건 정말 돈 낭비거든? 널리고 널린게 빈민 노동자인데, 저것들이 좀 죽어줘야 영국 사회가 발전할 거 아냐? 모자란 띨띨이들은 식민지에 널리고 널렸거든?

멘델 : 맞아. 우성의 법칙에 의하면, 열성인자는 도태되고, 우성인자가 살아남아야 되지. 원래 노동자가 가난한 건 노동자 수준의 유전자 밖에 안되기 때문이지. 어디서 감히 도시 중산층과 똑같이 선거권을 달라고 그래? 저것들... 완전 미친거 아냐?

스펜서 : 다윈의 진화론 읽어봤어? 거기 보면 이런 말도 있잖아. 약육강식, 적자생존. 그걸 세계사회에 적용하면 딱 답이 나온다구. 평생 노동자는 자본가의 밥일 수밖에 없어. 그게 세상의 진리야~ 또,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게 점령당할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영국이 나쁜 나라일까? 아니지... 사자가 배고프다고 사슴을 잡아먹는게 나쁜 걸까? 그건 그냥 세상의 이치을 뿐이야... 약한 나라는 이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이야... 영원히~

그래 ,바로 이거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 진화론을 강한 국가에게 적용시킨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국가들을 점령하고,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를 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문제는, 한국 근대사의 여러 사건에서 <사회진화론>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이 곳곳에서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갑신정변, 친일개화운동, 애국개몽운동 등등등 많은 운동들은 사실 <사회진화론>을 모델로 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려면, 사자같은 일본을 이길 원피스의 당당한 사슴 <쵸파>같이 되려면, 일본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것... 그것을 암묵적으로 깔고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일본이 나쁜 넘이라서 우리가 점령당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강했기 때문에 우리가 졌으니 일본보다 강해지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는 논리... 우리의 초기 독립 운동은 바로 이 <사회진화론>의 약육강식의 논리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 것이다.

자 그럼, 재미없는 서양 이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마치고, 우리 근대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겨보자. 그럼 한국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쓩~~~~

http://historia.tistory.com/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5화. 불교의 외침 - 이젠 인도를 떠나고 싶어요 ~

1. 인도에 불교가 없다?

불교의 종주국은 인도이다. 그러나, 기원후 5세기가 지나고 인도에서는 더 이상의 불교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티벳이나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불교의 교리 논쟁이 활발하게 펼쳐진다. 특히, 4세기 이후, 불교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지역은 중국과 한반도 등 동아시아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석가의 가르침이 재정리되어 대승 불교로 정립된 인도의 불교는 아시아 각지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정작 인도 본토에서는 불교의 힘이 사라졌다. 그 이유는 새로운 정권의 성립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 마가다 왕국이 불교를 보호한 이래, 기원전 4세기 마우리아 왕조에서는 <왕이 곧 부처의 화신이다>라는 사상으로 불교를 옹호하였다. 대표적인 왕이 스스로 전륜성왕이라고 말하였던 아쇼카 왕이다.

기원후 3세기 까지도 인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왕조들은 불교를 인정하였다. 기원 전후 인도 남부에 브라만교를 신봉하는 안드라 왕조가 있었으나, 인도 중북부의 대부분 지역은 불교 문화와 간다라 미술을 인정하는 쿠샨 왕조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쿠샨 왕조는 쿠샨인(이란인) 계통의 왕조로 다양한 종교를 모두 인정하였다.

<쿠샨 왕조의 불상>

<쿠샨 왕조의 전성기>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2c)은 중국-이란-인도를 연결하는 헬레니즘 상권을 장악하면서 상권과 통행세를 받았고, 국경을 넘나드는 불자들을 보호하였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서아시아로 이르는 비단길과 인도를 거치는 바닷길은 불교 전파 경로와도 일치했다. 헬레니즘의 다체로운 문화는 대승 불교의 확대를 촉진하였고, 그 결과 중국, 한반도, 인도에 이르기까지 불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그러나, 4세기 말, 인도의 상황은 급변한다.

브라만 교를 신봉했던 아리아 인들의 강력한 국가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갠지스 강 유역에서 찬드라 굽타가 건국한 굽타왕조는 쿠샨 왕조를 멸망시키고 북인도 전체를 통일하였다. 그리고, 아리아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며 이민족들을 추방하기 시작한다.

투르크인, 샤카부족(석가부족), 이란인(쿠샨인)은 아리아인들의 세상에서 설 곳이 없었다. 이제 세상은 고대 브라만의 후손들이 아리아인의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아리아인들의 고대 사상의 복구를 꿈꾸며 강력한 인도 민족주의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이민족과 혼혈족, 반브라만 종교는 인도에서 추방되었다.

<4세기 굽타왕조의 영역>

그리고, 고대 브라만의 베다 문학을 재정리 하여 산스크리트 문학이 등장한다. 브라만교에서 유래한 힌두교가 인도 전통 민족 종교가 되었고, 인도인의 율법은 <마누법전>으로 정리되었다. 고대 브라만 민족의 위대함은 <대서사시>로 편집되었다. 그것이 유명한 힌두교 경전인 <마하바라타>, <라마야나>이다.

대서사시는 고대 신인 브라만을 찬양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비슈누, 시바 등 고대적 요소를 갖춘 전통신을 아리아 부족의 현실에 맞게 재편한 것이다. 그리고, 힌두의 신은 인도인을 괴롭혔던 모든 이민족을 물리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대세는 <불교>가 아닌 <힌두교>였다.

그럼, 그동안 불교는 뭘하고 있었을까?

불교의 교리는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지만, 강력한 굽타왕조에 맞설 힘은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특히 인도 북부의 불교 교단들은 이미 큰 싸움으로 지쳐있던 상태였다.

마우리아 왕조에서 쿠샨 왕조까지 이어지는 동안 불교는 북부 지역의 강대국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반면, 불교 사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북방 이민족들과 끊임없는 투쟁을 하였다. 특히, 쿠샨 왕조 시기 불교 교단이 주적으로 삼았던 이민족은 <훈족>이었다.

중국의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중국에서 밀려난 훈족들은 끊임없이 인도 북부 지역을 약탈하였다. 이 훈족들은 동으로는 중국 북부로, 서로는 게르만 사회로, 남으로는 인도로 진출하여 기원후 세계사의 여러 지역에 영향을 준다. 인도의 고대 여러 왕조들이 이 훈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였고, 서유럽에서는 서로마의 멸망을 이끌었던 게르만족의 이동까지 훈족의 영향력이 미쳤다.

그나마, 이란인이 세운 쿠샨 왕조가 기원후 4세기 무렵까지 버틴 것은 왕조를 지지했던 불교 교단의 협조 때문이었다. 그러나, 쿠샨 왕조는 망했고, 불교 교단은 훈족과의 투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불교는 없었다.

힌두교의 복고주의는 불교 사상을 원시 브라만 주의로 돌려놓았다. 수드라 계급에게 평등은 더 이상 없었다. 바르나 제도의 계급 차별은 확고했고, 모든 직업과 주거, 결혼까지도 계급별로 차등을 두었다. 마누법전은 힌두교를 믿는 아리안 민족만을 위한 법이었다. 하층민에게 <해탈>의 기회는 없었다.

아잔타 석굴 : 인도양식과 이전 양식들이 결합한 인도적인 양식. 동아시아에도 많은 영항을 주었다.

2. 불교는 <밀교>가 되어간다...

아리아 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운 굽타 왕조는 7세기가 되기 전에 멸망한다. 7세기 무렵, 불교를 옹호하는 바르다나 왕조가 출현하면서 중국 불교와 우호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대부분 인도의 작은 독립국들은 힌두교를 옹호하였다. 힌두교가 지배층의 종교로서 백성들을 통제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7세기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교는 힌두교의 교리에 포섭되어 그 의미를 잃어갔다.

인도에서 대승 불교는 점차 <밀교>가 되었다.

힌두교를 믿는 아리아인의 탄압으로 종교 집회는 비밀스럽게 열렸다. 불교도들은 교리를 찾는게 아니라 종교 자체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점점 종교의 교리는 희박해지고, 절대자나 유일신을 찾는 신비주의 종교로 변질되었다.

초기 논리적인 불교에서 볼 수 없었던 주술 신앙도 등장한다. 미륵이 바람과 불, 홍수를 몰고와 세상을 정화시킨다는 믿음이 등장한다. 또 민간 신앙과 불교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민간에서 믿었던 수많은 신들이 불교 안에 들어오게 된다.

그나마, 이런 변질된 <불교>조차 7세기 이후 사라져간다. 7세기 이후 인도에 마호메트의 이슬람교가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의 기본 사상은 <평등>이다. 계급간 <차별>을 강조하는 힌두교와는 상극이었다. 하층민들은 <차별>을 강조하는 힌두교가 싫어서 불교를 선택했지만, 이슬람교가 들어오자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한다. 어짜피 똑같은 <평등>을 주장하는 종교라면, 힘있는 <이슬람 정복자>들이 숨어지내는 불교도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는가?

10세기 이후 본격적인 이슬람 세계가 된 인도는 또 한번 문화적 격동을 경험한다. 힌두교 사원과 불교 사원은 동시에 파괴되었다. 이래 저래 불상은 정권의 놀림감이 되었다. 16세기 무굴제국이 성립했지만, 무굴 제국은 전통 아리아 종교인 힌두교와, 하층민 종교인 이슬람을 융합시키기에 급급했다. 불교가 설 자리는 없었다.

21세기 현재, 인도에서 불교도의 인구는 전체 인구 비율로 보았을 때 너무나 미미하다. 불교의 종주국은 대승 불교가 정립된 5세기 이후, 한번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힌두교와 이슬람교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던 것이다.

3. 불교의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중국 불교

5세기 이후, 불교의 종주국 자리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은 유가, 법가 등 다양한 사상체계가 이미 정비되어 있었고, 굳이 불교가 아니더라도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데 지장이 없는 선진국이었다.

중국과 인도는 전혀 이질적인 문화권이었다. 중국어는 한자(표의문자)이고, 인도어는 범어(표음문자)이다. 중국인들은 유가, 법가 사상등 국가와 인간의 사회적 현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성향을 가졌다. 반면, 인도의 불교는 인간의 인지구조를 <분석>하려는 특징을 가진 사상이었다. 인도는 수많은 소왕국이 분립하면서 생성과 멸망을 반복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제외한다면, 비교적 통일 국가체제를 유지해왔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불교가 중국 사상계를 장악해 버린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일까? 그리고, 중국은 자신과 다른 이 문화와 사상을 어떻게 중국식으로 바꿔 버린 것일까?

인도와 중국이 불교라는 문화를 공유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헬레니즘 문화 때문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활한 문화권을 만들고 떠난 뒤, 인도는 쿠샨 왕조 카니슈카 왕이 서역 지배권까지 확보하게 되었다. 쿠샨 왕조 자체가 이란계 왕조였던 만큼, 쿠샨 왕조는 동서 교역에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쿠샨 왕조는 동아시아의 중국, 한반도부터 서아시아의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무역을 전개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승 불교가 아시아 곳곳에 전파된 것이다. 특히, 쿠샨 왕조와 상업을 하던 실크로드 중간 중간의 국가들은 불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중국의 한 왕조까지 불교가 전파된 것이다. 또, 당시 인도와 중국간 직접 교역로는 바닷길이었기 때문에 <남방 바닷길>을 통해서도 불교 경전이 한 왕조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불교를 처음 접한 중국의 한족들은 불교를 사상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중국의 한나라는 한무제라는 강력한 왕이 <유학>을 국가 사상으로 공포했던 나라였다. 한 왕조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유학을 열심히 공부한 뒤, <구품관인법>이라는 관리 임용에 채용되어야 했다.

한 나라에서 불교는 중국 전통 사상인 도교에도 밀렸다. 한 나라의 지배층은 고품격 품위 유지 사상으로 도교의 <황로사상>을 숭배하였다. 황로사상은 노장사상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의 철학을 지배층의 교양철학으로 받아들인 것을 말한다.

처음 불교를 접한 한나라의 지배층은, 불교를 도교와 같은 교양 철학으로 생각했다. 도교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 백성들의 생활을 살펴라>라고 말한 것은 한나라 지배층의 우아한 집권 철학이었다.(물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말로만 생색내기 위한 교양 철학이었지만....)

불교 역시 같은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대승 불교의 <공> 사상을 접한 한나라의 지배층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허무함이겠구나. 아무 것도 없는 상태는 노자가 말한 자연으로 복귀한 상태이다. 공이란 곧, <없다>는 것이 아닌가? 공이란 것이 태초의 허무함이라면, 곧 자연 상태가 아니겠는가? 석가의 가르침은 노자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구나....

결국 한나라 지배층이 생각한 불교는 도교와 같은 것이었다. 현실 상태에서 필요한 것은 유학이었고, 교양이나 취미로 알아야 할 것이 도교나 불교 따위였던 것이다. 교양이나 취미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따라서 도교와 불교는 하나의 패키지 세트로 묶여서 교양철학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심심할 때 생각해보는 교양 철학이 어떻게 유가 사상과 맞먹는 거대한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자, 그럼 그 철학자들 이야기를 한번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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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백현 (차이나하우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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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3화. 전통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의 대결 속에서 탄생한 석가

1. 철기 시대의 사화 변화와 <정치, 사회> 계급의 성장

최고의 계급인 브라만은 우파니샤드 철학의 이념으로 <브라만>의 정당성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의 인도는 이미 <고대 신의 신비주의> 관념만으로 지배 계급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철기가 보급되고, 생산력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전사계급이 원하는 것은 <넓은 영토>였다. 물론, 신관들이 신의 계시를 내리고 전쟁을 도왔다고는 하지만, 전쟁에서 실제 필요한 것은 무력과 경제력이었다. 무력을 가진 자들이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이었으며, 재력을 가진 자들은 바이샤 계급이었다.

전쟁은 많은 민족간에 혼혈을 가져온다. 더 이상 순수한 <아리아인>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왔다. 크고 작은 부족 국가들이 통합되면서 거대한 영토를 가진 군주국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국가가 발달하면서 엄청난 토지를 가진 귀족과 재력을 가진 상인들 역시 입김이 쎄진다. 특히, 비옥한 겐지스강 유역을 장악한 부족들은 인도 북부를 통일하겠다는 꿈까지 가진 시기였다.

<브라만>이라는 최고 계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비옥한 겐지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점차 <브라만교 반대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 3계급은 브라만에게 반발하였다. 더 이상 특권을 유지하려는 브라만교를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특히, <제사를 지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만이 신과 접촉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었다. 제사 지내는 방법이야 누구나 배우면 되지 않는가?

브라만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직접 제사를 지내며 스스로 교단을 만들어 버린다. 특정 종교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종교의 사상을 벗어나 독자적인 종파가 된 경우를 <사문 : samana>이라고 한다.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원래 인도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문들은 브라만교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만들어갔다.

2. 사문들과 브라만과의 싸움

브라만교의 전통 철학은 우파니샤드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기본 원리는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과 생명의 원리인 아트만은 동일한 것>에서 출발한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중요한 점은,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이 창조주이자, 역사의 진행자이자, 생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브라만은 우주의 법칙 속에서 생명도 만들고, 죽음도 만들며, 윤회도 만든다. 우주는 브라만의 법칙에 의해 돌고 돈다. 해탈은 그 법칙을 알고 있는 <브라만>만이 가능하다.

사문들은 브라만을 반대한다. 고행을 통하여 힘든 과정을 겪으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해탈이 가능할텐데 왜 <브라만>만 해탈한다고 하는가? 또, 착한 일을 하면 다음 생애에 <브라만>으로 태어난다고 하는데,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 지금의 선악과 내세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과격한 사문에서는 아예 <육체>가 죽으면 선악이 죽는다는 <유물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문은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들을 거론하면서 <영혼>도 결국 물질 현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혼>이 어떻게 현실과 격리될 수 있는가? 살이있는 인간들도, 자 <영혼>을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적인 사문인 <자이나교>의 <바르다마나>는 브라만교의 <선행> 개념 자체를 부인한다.

인도 나타족 왕자(2계급)인 바르다마나는, 착한 일을 한다면서 하늘에 제사나 지내는 형식적인 브라만들이 해탈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해탈>는 깨닫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정화>해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1계급들이 잘나서 1계급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아무도 증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해탈은 신분과 상관없이 <고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하고, 살생을 금지하며,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해탈의 기본 조건 아니겠는가?

자이나교의 교리는 단순하다. 사람은 살면서 실수를 한다. 고의든, 우발적이든 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영혼은 더럽다. 따라서 엄격한 계율 속에서 고통스러운 <고행>을 한다면 영혼이 정화되면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이나교는 대부분의 브라만 의식은 인정한다. 그러나, 브라만들만의 특권을 반대하면서, 모든 계층이 고행을 통해 <구원>받는 다는 교리를 설파한 것이다. 수많은 사문 중에서 지금까지 인도인들에게 살아남은 사문은 <자이나교>밖에 없다. 그 핵심은 <고행>이었다.

<자이나교-아디나타사원>

<자이살메르사원>

티르탄카라상

3. 도시 공화국에서 태어난 석가

기원전 5세기, 강력한 철기를 가지고, 인도 북부(겐지스강가)에 살아남은 국가는 모두 16개국이었다. 그러나, 강대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는 모두 <군주국>이었다.

군주국에서는 국왕과 브라만들이 독단적으로 정치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수드라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윤회설>을 강조하였다. 수드라인 너희가 천민으로 태어난 이유는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너희는 이번 생애 내내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이 무렵, 석가는 기원전 566년, 도시국가인 네팔(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 석가가 살았던 지역은 크샤트리아와 바이샤가 많았던 도시 지역이었다. 당시 도시 국가에서는 2, 3계급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공화 부족들은 군주 부족과 달리 모든 일을 부족내 유력자들이 모여 회의하고 결정하였다. 신라의 화백회의와 같은 <만장일치제>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반면, 군주 부족들은 군주와 신관이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공화국의 부족국가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국가들에 의해 하나하나 멸망해가고 있었다. 곧, 강력한 군주가 인도 북부 전체를 통일할지도 몰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석가는 브라만 신관들의 독선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리고, 약소국가의 2계급으로 태어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을까?

4. 석가 <사문>의 형성

석가는 브라만의 가르침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브라만에서 말하는 <생명과 윤회>를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는 생로병사를 느끼고자 여러 브라만 수행자들을 만났다. 그러던 중 29의 나이로 출가했다. 그 때, 갓 태어난 석가의 아들이 <라후라>였는데, <라후라>란 <장애물>이란 뜻이다. 석가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난 것이다.

석가가 맨 처음 스승으로 모신 사람은 선정주의자들이었다. 선정주의자들은 <착한 일>을 많이하면 <해탈>한다고 말했다. 석가는 모든 이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착한 일을 아무리 해도 해탈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길을 떠난다.

석가가 두 번째로 택한 길은 <고행>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고행을 해도 <해탈>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석가가 마지막으로 택한 길은 <명상>이었다. 보리수 밑에서 명상을 하던 석가는 35의 나이에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다. 보리수란, 깨달음의 나무란 뜻이다. 또, 깨달은 사람을 <붓다>라고 하고, 성자를 <모니>라고도 하는데, 보통 <석가모니> 또는 <석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가 명상으로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중도>였다. 선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극심한 고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가야한다는 것이다.

석가의 <중도>사상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는 구름과도 같은 제자들을 얻어 <교단 : 승가>를 만들었다. 승가란, 모든 자들이 평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 집단을 말한다.

석가가 만든 승단은, 공화국 체제와 비슷하다. 바르나 제도와는 달리, 모두가 평등하며, 서열은 먼저 들어온 순서로 정한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뭉쳐진 그룹집단인 것이다.

불교도는 네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남성 출가자(비구), 여성 출가자(비구니), 남성신도(우바새), 여성신도(우바이) 이다. 이들간의 차별은 없다. 물론 가장 똘똘한 인물들을 10대 제자로 두긴 했지만, 그것은 어느 한 분야의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을 능력별로 인정해 준 것이다.

석가 사후, 석존의 가르침은 대부분 구전이었기 때문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을 정리한 사람은 100년 후 아소카왕 시대의 제자들이었다. 부처의 가르침을 경, 율법서를 율, 주석을 논 이라고 분류하여, 경,율,론 3장의 불교 지침이 성립된 것이다.

석가시대의 가르침을 보통 <원시불교 : 초기불교>라고 말한다. 원시불교란, <암송한 것>을 기억하여 가르침을 남긴 것이다. 석가와 같이 배우고 암송한 것을 함께 기억하고 되새겨 모아 적는다. 초기 석가의 가르침은 <아함경전>에 실려있다. 훗날, <아함경>으로 불리는 경전은 중국과 한반도에도 전파되었다. 경이 가르침이라면, 율은 율법서이다. 율은 출가자들이 지켜야할 조문들을 모두 모아놓은 조문집이다. 물론 주석인 <론>은 후대에 달아놓은 것들이다.

5. 석가의 가르침

석가의 핵심 가르침은 <번뇌>였다.

번뇌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통과 고민>을 말한다. 보통 <고집멸도>라고 불리는 이 번뇌는, 고(고통), 집(고통의 원인), 멸(고통의 소멸), 도(소멸의 법도)를 총칭한다. 이 4가지 고통을 해결하는 과정을 <4제>라고 한다.

석가는 이 고통을 없애는 방법으로 8정도를 제시하였다. 8정도란, 고통을 없애기 위해 8가지를 바르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지침이다.

올바른 견해(정견), 올바른 생각(정사유), 올바른 언어(정어), 올바른 행동(정업), 올바른 생활(정명), 올바른 노력(정정진), 올바른 기억(정념), 정신통일(정정) - 이 8가지를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8정도를 이끌어가는 방법이었다. 브라만에서는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에서 충실하기 위해서 <계급에 맞는 착힌 일>을 하라고 말한다. 반면 자이나교 같은 사문에서는 철저하게 <고통스런 고행>으로 악업을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래야 <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는 말한다. 선정이건, 고행 이건 단지 하나만으로 <해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중도>를 걸어야 한다고.... 그럼 왜 중도만이 고통을 없애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정>은 영적인 측면을 주로 강조한다. <고행>은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정신과 물질이 연결되어 일어난다.

석가가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은 상호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깨닫는 다는 사실 조차,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어떤 일을 겪지 않으면 깨달음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으로 얽혀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을 <연기>라고 한다.

우주가 단지 브라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물 자체가 인과관계에 의해 얽혀서 움직이고 있기에 절대적인 근본이라는 것은 없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데, 어떻게 아트만(생명)이라는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연기설>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존재하는 것이 같이 존재한다.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그 현상의 원인이 있다. 원인이 없다면, 현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만물은 서로 의존하여, 서로의 원인도 되고 결과도 되는 것이다. <연기>의 본질을 알게 되었을 때,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 <중도>를 모르고 한가지 길만을 추구하는 것을 <극단 : 탁자의 모서리>라고 말한다. <극단>은 <해탈>이 아니라 자신을 망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연기>의 세계를 깨닫는가?

석가는 깨달음을 아는 방법으로 삼법인(3개의 진리의 도장)을 말한다. <연기>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원인이 되어 돌고 돌기 때문에 결국 그 본질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이라는 3개의 진리로 표현된다.

제행무상이란? 제행은 <움직여 변한다>는 뜻이다. 무상은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여 변하므로 결국 인연에 의해 연결된 세계는 사간에 따라 변하게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다.

제법무아란? 제법은 <율법, 진리>를 말하고, 무아는 <나란 없다>는 뜻이다. 즉, 나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나란 육체와 정신, 생각, 역사 등등이 어떤 원인과 결과로서 만들어낸 순간적 존재이다. 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나이며, 내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아트만)이란 없다. 즉, 보편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열반적정이란? 열반은 <해탈>의 불교식 표현이고, 적정은 <소멸>을 말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연기>로서 돌고 도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고통과 번뇌>가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8정도를 행동으로 옮기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고통>이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지면 해탈한다는 것이다.

6. 석가의 가르침을 남긴 마가다국

석가의 이러한 불교 철학과 종단(승가)은, 갠지스 강 유역에 위치한 마가다국에 의해 보호되었다. 석가는 살아 생전에 갠지스 강 유역의 마가다 지방에서 깨달음을 찾으며 고행을 했었다. 또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포교 거점으로 삼았던 지역이 마가다 왕국이었다.

마가다 왕국은 북인도 16대 강국 중의 하나라 불교, 자이나교의 발상지로 불리는 국가이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석가를 신하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토를 주겠다는 말까지 했던 왕이다.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은 그 이후 불교와 자이나교의 성지가 되었다.

갠지스 유역을 통일했던 기원전 5세기의 마가다국과 달리 기원전 4세기의 마우리아 왕조는 북인도 전체를 통일하면서 불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마가다 왕국의 후손으로서 아리안 전통 직계인 마우리아 3대왕 아쇼카는 불교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석가의 연기설은 당시 통일국가 이념으로도 제격이었다. 연기설이란, 모든 사물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연결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것은 각 부족별로 흩어져있던 당시 사상 체계를 통합하는데 딱 좋은 사상이었다.

개체는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의 인과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즉, 개별적인 것들은 전체적인 것의 일부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부족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들은 좋던 싫던 다른 부족과의 관계에서 살아가게 되고, 궁극적으로 통일된 전체에 의해 규제받게 된다. 전체라는 것은 개별 부족을 넘어선 중앙집권국가의 지배자를 뜻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은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국가도 인연을 맺고 있다. 강력한 국왕이 출현한 것도 그 인과 관계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국왕은 모든 백성을 때려잡는 국왕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는 슬기로운 지배자이다. 브라만 신앙에서 내려오는 정법(정의)의 지배자를 <전륜성왕>이라고 한다. 즉, 마우리아 왕조의 절대자 아쇼카 왕이 곧, 전륜성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쇼카 왕은 이 전륜성왕의 브라만 신화와 불교를 연결시켜 버렸다. 전륜성왕의 통치를 돕기 위해 <미륵불>이 지상으로 내려와 백성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로서 <미륵불> 신앙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신앙이 등장하였다.

아쇼카 왕은 전륜성왕과 미륵불 사상을 몸으로 실천하였다. 자신이 정법을 구현하는 왕이 되어 북인도를 통치함은 물론, 자신의 분신들을 주변국에 보내 불교의 참 뜻이 무엇인지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남부의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도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한다. 멀리는 이집트,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불교라는 종교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소카 왕 때의 불교는 <소승불교>라는 초기 불교였다. 아직 불교는 출가자들 위주의 불교였고, 국왕은 불법을 지키는 호법왕이라고 여겨졌다. 부처가 되는 것은 개인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함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전륜성왕

그러나 아쇼카 왕 사후, 기원전 2세기 무렵 불교는 또 다른 격동을 겪게된다. 아쇼카 왕이 죽은 뒤 약해진 마우리아 왕조는 서쪽에서 밀려온 이민족들에 의해 분열된다. 그리고, 만민 구원을 외치는 서방 종교와 서아시아 밀교 등이 들어오면서 <대중 전체의 구원>을 생각하는 불교가 등장한다. 이 때의 불교를 <대승 불교>라고 하며, 대승 불교는 비단길 등 교역로를 따라 중국과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대승 불교 이야기와 동아시아 불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여기서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나라까지 들어오게 된 <한국식 불교> 이야기이다. 동남 아시아로 내려간 소승 불교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겠다. 중국과 한반도로 넘어온 종파를 위주로 <대승 불교> 이야기를 좀 하고, 중국, 한반도, 왜로 넘어간 불교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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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불교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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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철학과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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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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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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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시간 구조대. 4: 붓다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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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 석가모니:그 생애와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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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비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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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담마빨라 (열린경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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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2화. 아리아인의 시대와 인도 초기의 종교들

1. 종교는 인간의 염원이 만든 것이 아닌가?

자, 이제 불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 종교 역시 크리스트교와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종교의 시작은 인간의 <열망>에서 시작된다.

역사가 인간들의 이야기이듯, 신과 종교의 탄생 역시 인간들의 당시 사회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각 종교에서는 그것을 신이 내린 <고난>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앞뒤가 바뀐 말일 수도 있다. 신과 종교를 만든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의 교리가 확립되는 것 역시 당대의 <사회 현상>을 해결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이 <여호수아>의 강림을 바랬던 열망은, 철기 시대에 접어오면서 심해진 핍박 때문이었다. 지금 인도에서 시작하려는 새로운 종교 역시 당대인들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정복민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사상적 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홍수나 번개 등 자연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수많은 열망들이 고대 인도에서 다양한 신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자 그럼 불교가 탄생한 고대 인도라는 나라의 종교부터 한번 살펴볼까?

2. 초기 인도 원주민들의 신앙

인도 지방의 초기 문명을 흔히 <인더스 문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더스 문명이라고 부르는 초기 문명에 대해 우리는 약간 오해를 가지고 있다. 인더스 문명이 곧 인도 문명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틀렸다. 세계 4대 문명은 모두 철기 시대 이전에 등장하였다. 인더스 문명 역시 청동기 시대의 문명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통일된 국가 체계가 없었던 초기 문명 시대였다. 문명이 등장하자마자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생길리는 없지 않는가?

기원전 2500년경 등장한 최초의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 강가>의 작고 초라한 문명을 말한다. 천년간 계속된 이 문명은 작은 도시국가 단위의 문명이었다. 우리가 고대 문명 유적지로 말하는 모헨조다로나 하라파 문명은 국가 문명이 아니라 작은 도시 문명을 뜻한다.

<초기 인더스 문명의 도시 국가들>

이 문명을 이끌어간 사람들은 토착민인 <인더스인>들이었다. 인더스 인이란, 최초로 인도에 거주한 <드라비다인, 문다인> 등을 말한다. 이들이 만들어낸 청동기 문명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성곽과 도로가 정비되어 있었고, 홍수를 대비한 관개시설이 있었다. 이 시설들이 우선 만들어진 것은 인더스 강의 범람 때문이었다. 강은 농사를 짓기 위한 물을 제공하면서도, 큰 홍수 한방으로 주변 문명을 날려 버리기도 한다. 최초의 원주민들은 강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항상 홍수라는 큰 변수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초기 원주민들은 큰 목욕탕을 지어두었다.

목욕탕은 물(강)의 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장소였다. 그들의 종교는 단순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존재들에게 기도하는 것이었다. 큰 곡식창고를 만들어놓고, 커다란 범선을 이용하여 주변 메소포타미아와 교역을 했던 이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홍수였을 것이다.

또한 이들의 숭배대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성생식기였다. 노동력이 중요한 사회였기 때문에 남성의 <정자>를 신성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또, 소를 숭배하는 풍습도 이미 존재했었다.

<모헨조다로
족장집에서 나온 동상>

<모헨조다로의 춤추는 소녀상>

<하라파에서 나온 인장과 유물>

<하라파의 공동 시설물>

<하라파의 주거지>

<하라파의 사원>

<모헨조다로 유적지의 흔적>

<모헨조다로의 목욕탕>

<모헨조다로의 목욕탕과 배수시설>

3. 청동기 민족을 정복한 철기인들

크리스트교 이야기를 할 때, 유대인들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기원전 12세기라고 했었다. 기원전 12세기는 세계사적으로 큰 의의를 갖는다. 그 이유는, 청동기 시대가 철기시대로 변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기원줜 13세기무렵 히타이트 인으로부터 시작된 철기 문물은 유라시아 대륙을 모두 흔들어놓았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인도에 내려온 철기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중앙아시아 북부에 광범위하게 분포했던 <아리아> 인들이었다. 아리아 족은 역사적으로 많은 민족의 기원을 이룬다. 이들이 서부 유럽으로 이동하여 오늘날 많은 유럽인들의 선조가 되었다. 히틀러는 순수한 <게르만>인은 <아리아인>의 핏줄이라면서 엄청난 수의 유대인을 학살히기도 했었다.

반면,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인들은 인도 원주민인 <드라비다 인>들과 충돌하였다. 청동기 문명의 백성들이 철기 부족을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원전 15세기를 전후하여 인더스 강 유역(펀자브 지방)까지 진출한 아리아인들은 인더스 문명을 정복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들은 좋은 땅을 찾아 끝없이 진출하였다.

기원전 10세기, 아리아인들은 인더스 강을 넘어 갠지스 강까지 지배 영역을 넓혔다. 청동기 시절의 수많은 부족들이 이들에게 굴복하였다. 인도에 진출한 아리아인들을 유럽의 아리아인들과 구별하여 <인도-아리아인>이라고 부른다.

유목민족인 아리아인은 원주민을 정복하여, 화려한 도시 국가를 건설한다. 아리아인의 부족 족장은 <라진 : rajan)이라고 불렀는데, rajan은 <종교 : region>라는 의미의 어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아리아 인의 국가는 농경을 주로 하는 철기 국가였는데, 수많은 아리아 부족들이 각각 영토를 확보했기 때문에, 부족의 <신> 역시 각각이었다.

그러나, 아리아 인들은 정복민만 노예로 삼았을 뿐, 각 부족간의 전쟁에는 신중한 편이었다. 최소한 기원전 5세기 까지는 이런 부족단위 국가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부족간 평등주의를 바탕으로 전쟁을 참았기 때문에, 아리아의 각 부족들이 믿는 신은 모두 평등했다.

초기 아리아인의 브라만교를 보면 하늘, 지상, 공간의 3 구역에 모두 33명의 신(데바)이 있었다. 이 33명의 신은 모두 평등하다. 결국 33명의 자연신이 훗날 브라만교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브라만교의 경전인 <베다>는 이 33명의 자연신을 찬양하는 찬양가와 기도문 등을 모아놓은 것이다. 원래 <베다>는 <지식을 안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지식을 안다>는 것은 자연현상을 안다는 것과 같았다. 자연현상을 다스리는 것은 33명의 신이었고, 이 신에 대해 알고 있는 <신관>은 당연히 최고 지배층이었다.

<베다>는 500년간 계속 이어진 찬가들을 모으고 모아 4개의 찬가집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기원전 900년경에는 거의 정리가 끝나간 듯 싶다. 이 찬가집인 베다는 각각 독립적으로 4개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먼저, 찬가 자체는 <본집>으로 정리된다. 제사를 위한 찬송가 쯤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제사 규칙을 적어둔 <브라흐마나>가 있다. <브라흐마나>를 알고 있는 자는 <신>과 접촉하는 자로서 지배층이 된다. 다음으로 숲속의 비밀을 적은 <아란야카>가 있다. 마지막으로 브라만의 철학을 말하고 있는 <우파니샤드>가 있다.

물론, 베다 자체에 이 4가지가 다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베다>는 이 4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을 때 진정한 베다로 인정된다.

4. 바르나 제도의 엄격함

브라만교의 근본 철학은 <우파니샤드>이다. 그런데, 우파니샤드 철학이 완성된 것은 베다가 완성되고 한참 후인 기원전 5세기 경이다. 즉, 베다 문학보다도 400년 정도 이후인 것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초기 아리아인들은 굳이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신관>은 최고 계급이고, <노예>는 마지막 계급이다라고 말해 버리면 끝이다. 뭐하러 복잡한 철학체계를 인위적으로 만들겠는가?

<브라만의 모습 : 알타이 벽화>

 <우파니샤드에서 브라만 신>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브라만교의 철학을 위협하는 계급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브라만교를 만든 아리아인들은 사회 계급을 4계급으로 나누고, 그것을 <신>이 나눈 것 처럼 행동하였다. 즉, <제사> 규칙을 아는 자들이 최고 계급인 <브라만>이 된다. 브라만은 곧 신이거나, 신의 대리자이다.

왕족과 귀족은 브라만보다 낮은 제 2계급이다. 2계급은 정치와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이들을 크샤트리아라고 부른다. 일반 백성들은 3계급이며 바이샤라고 불렀다.  청동기시대부터 존재한 원주민들은 <노예>계급으로 수드라라고 부른다.

이렇게 4계급으로 사회를 나누고, <바르나> 제도라고 불렀다. <바르나>란, 색깔을 뜻하는 단어이다. 원래 아리아인이 유럽인과 같은 계통인 백인이기 때문에, 원주민인 드라비다 족과 구분하기 위해 바르나라고 불렀다.

우리는 인도의 신분 제도를 <카스트 제도>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15세기 경 유럽에서 건너온 포르투갈 상인들이 쓴 말이다. 카스트란, 바르나 제도의 4계급에서 계급마다 <출생> 족보를 따져서 수많은 계층으로 다시 분화한 것을 뜻한다. 즉, 직업, 결혼관계 등을 따져 여러 종족(종성)으로 분화되는데, 이것을 카스트(종성)이라고 다시 부른 것이다. 카스트는 바르나와 쟈티(JATI : 출생)이란 단어의 합성어이다. 즉, 카스트는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용어로 지금 인도의 신분계층을 분류하는 용어라고 할까?

   지금 말하고 있는 제도는 21세기 카스트 제도가 아니라, 고대 4계급이 존재했던 바르나 제도를 말하려는 것이다.

고대 <바르나>제도의 특성은 철저한 신분 차별에 있었다. 지배층은 피지배층의 신분 상승 자체를 막아 버렸다. 제사계급과 아리아인 계급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실제 정치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2계급(크샤트리아)이 제 1 계급인 브라만의 권위를 넘보기 시작한 것이다.

크샤트리아 계급은 철기시대의 보편적 현상인 정복 전쟁을 시작하였다. 작은 부족들은 큰 부족에게 통합되었고, 중앙집권국가의 시대가 열릴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또, 부족간의 전쟁과 부족간 통합은 물자 부족을 가져왔고, 3계급인 바이샤들이 상공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3계급은 통일된 국가가 필요했다. 커다란 국가에서 통일된 상업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국가의 통일은 다양한 관세나 규제 등의 장벽을 허무는 길이기도 했다. 동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것보다 국제적 무역이 더 효율적이지 않는가?

정복사업과 상공업의 발전은 2,3 계급이 브라만 계급에 도전할 명분을 주었다. 그리고, 기원전 5세기 드디어 브라만교에 대항하는 종교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자이나교와 불교였다. 새로운 종교들은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등장하였다. 그러나, 브라만교는 왜 브라만이 위대한지 설명이 부족했다.

브라만 족들은 급해졌다. 왜 브라만이 지배계급인지를 정당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브라만은 형식적으로 존재했던 우파니샤드 철학을 실제 사회에 맞는 철학체계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비로소, 브라만교의 걸맞는 사상 체계가 등장한 것이다.

5. 우파니샤드 철학의 <업그레이드>

브라만교의 철학인 우파니샤드는 <신관>들이 자신의 제자들엑게 입으로 전하곤 했다. 즉, 그들만의 구전 철학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 이 철학은 논리적으로 정리되고 편집되어 <철학>으로 정리되었다. 이 철학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이 철학의 기본 사상들의 영향을 받거나 반발하면서 석가모니의 <불교 철학>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알다시피 인도의 왕자 출신으로 제 2계급인 왕족이었다. 1계급의 독주를 막기 위한 역사적 사명이 2계급인 석가에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자, 그럼 브라만교의 우파니샤드 철학을 한 번 살펴보자.

이 철학의 핵심은 <우주와 인성의 일치>이다. 우주의 근원을 브라만이라고 하는데, 그 브라만은 개인의 인성(아트만)과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원래의 아트만은 myself라는 재귀대명사였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인간은 우주의 법칙으로 태어나고 죽는다. 그런데, 우주에 음양오행이 돌듯이, 인간 역시 끊임없이 돈다. 만약 착한일을 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는 우주의 법칙에 의해 다음 세상에서는 <브라만>으로 태어난다. 즉, 브라만이 제 1계급인 이유는 단순히 부모를 잘 만난 것이 아니라 전생에 덕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음 생까지 돌고 도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

대표적인 윤회설로는 <오행설>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죽은 자는 흙과 물이 된다. 물은 비가 되어 내리고 흙을 적셔주면서 다시 하나로 만난다. 흙과 물이 만나 곡식을 이루고, 남과 여는 그 곡식을 먹는다. 남자가 먹은 곡식은 정자가 되고, 여자가 먹은 곡식은 아기집이 된다. 정자와 아기집이 다시 만나면 죽었던 사람이 다시 하나로 태어난다.

즉, 개인의 생명(아트만)은 죽은 뒤 우주의 법칙(브라만)이 되었지만, 다시 윤회하여 생명(아트만)으로 재탄생 되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하면 브라만으로, 나쁜 일을 하면 수드라로 윤회된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데, 윤회의 예외로 <신도>가 있다. 신도란, 신의 길로 가 버린다는 뜻이다. 윤회의 법칙을 알고 있는 브라만이 숲속의 비전을 찾아 산 속으로 숨어 버리면 윤회하지 않고 <신의 영역>으로 가 버린 다는 것이다. 이미 윤회를 알기에, 더 이상 윤회하지 않고 떠난다는 것을 <업>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불교의 <업>설과 연결된다.

우파니샤드의 철학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브라만이 잘난 것은 전생에 착하게 살아서이고, <신>의 세상에 가는 것도 브라만 뿐이라는 것이다. 전생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수드라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수드라야 그렇다 치더라도, 크샤트리아와 바이샤는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우파니샤드 철학은 브라만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철학이었지만, 다른 계급의 반발을 불러오는 철학이기도 했다. 자, 그럼 2, 3계급이 어떻게 우파니샤드에 대해 반항했는지 한번 들여다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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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니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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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편집부 (풀빛,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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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동아시아 불교 전파사 - 1장.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되다

이번 페이지는 특별 기획으로 몇 편의 시리즈로 다루어 적어보겠습니다. 시리즈라고 해보았자,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오늘 출근 전에 다 마무리 하겠지만, 그래도 양은 많으니깐 시리즈가 되겠네요. 일단, 대학 때 모아논 자료들과 틈틈이 메모해논 자료들을 모두 꺼내놓고, 불교사에 대한 <전파과정 및 생성과정>을 포스팅 하려 합니다. 순서는 인도의 불교 - 중국의 불교 - 한국의 불교 - 일본의 불교 전파 과정으로 다루어 보고, 동남아시아나 소승불교 이야기는 차후 문제로 넘기도록 하죠.

이 포스트는 불교에 대한 종교사가 아니라, 불교가 아시아에 전파되면서 어떠한 역사적 상황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관점의 포스트입니다. 예전 기독교사나 카톨릭사를 포스팅할 때 처럼 종교적 관점에서 댓글 다시면, 답변 드릴 수 없습니다. 전 항상 강조하지만 <다믿교>입니다. 다~~~ 믿습니다.

1. 기원전 10세기 : 인도에 종교다운 종교가 등장하다 - 브라만교

석가가 태어날 당시의 인도는 기원전 6세기 무렵입니다. 인도는 기원전 10세기부터 5세기 무렵까지 아리아족의 시대였습니다. 아리아족은 기원전 1500년경 인더스강 상류에서 청동기를 사용하면서 펀자브 지방에 진출하였는데, 기원전 1000년경 철기 사용이 확장되면서 갠지스 강 유역까지 진출한 민족입니다.

이들은 철기를 이용하여 기존의 <인더스 문명>을 철저히 파괴하였고, 기존의 인더스 문명인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브라만교>를 성립시켰습니다. 브라만교는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로서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라는 기본적인 계급 차별 구조를 갖추고, 이 4계의 계급을 또 다시 수십개로 세분화하여 신분차별을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계급구조를 보통 <바르나 제도>라고 하는데, 서양인들에 의해 카스트 제도라고 불리게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카스트 제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르나 = 색, 인종>이라는 뜻이 원어로 정확하다고 합니다.

이 바르나 제도의 특징은 아리아인들이 스스로 지배집단이 되기 위하여 선주민들을 차별하기 위해 등장하였습니다. 문제는 아리아인의 가장 높은 특권계급이 <브라만 : 사제계급>이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고대 사회의 특징인 <제사, 군사>개념이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만큼, 제사를 담당하는 브라만이 1계급, 정치, 군사를 담당하는 크샤트리아가 2계급을 이루었던 것이죠. 3계급인 바이샤도 상공업에 종사하면서 나름대로의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4계급으로 분류된 수드라는 아리아인이 아닌 비아리아족으로서 수공업에 종사하거나 노예계급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브라만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브라만교 포스트를 보시고, 일단 여기서는 개념만 알고 넘어갑니다.

2. 기원전 5세기 : 반브라만 운동이 시작되면서 등장한 철학은 <윤회논쟁>을 가져오다.

기원전 5세기 무렵 인도에서는 이제 <브라만의 신성성>에 대한 반발운동이 전개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신적 존재>, <신의 은총>이라는 신성성을 매개로 지배집단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선민사상>이 많았습니다. 유대교가 그러하였고, 고대 동아시아의 천손강림 사상도 그러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 발전과정에서 점차 <신성성>보다는 <현실정치의 이해관계>로서 선민사상이 극복되고, 국왕권이 강화되듯이 인도에서도 제사계급인 브라만을 극복하고 <정치세력의 결집>을 추구하는 운동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곧 제 2, 3 계급은 크샤트리아(도시국가 지배집단)과 비이샤(상공업 집단)의 세력 확대를 가져왔고, 크샤트리아 중심의 반브라만 운동은 인도에서 큰 이슈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 반브라만 운동이 본격적으로 성렵된 것은 철기를 사용한 정복사업이 확장되고, 정복사업 속에서 상공업 계층의 활약 무대가 넓어진 것에서 기인합니다.

그 결과 브라만교 내부에서는 <윤회나 해탈>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우파니샤드 철학이 등장합니다. 원래 브라만교에서는 <윤회>를 강조합니다. 이 윤회란, 전생에 신의 은총을 받은 자는 지배집단이나 높은 계급으로, 전생에 신에게 불경함을 지은 자는 노예로 태어나므로, 과거의 업이 모여 끊임없이 전생과 내세에 영향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파니샤드 철학은 우주인 브라만과 생명인 아트만을 알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배집단의 논리였던 브라만교를 철학적으로 만들어주는 데 큰 역활을 합니다.

하지만, 이 철학에서 주장한 <윤회>에 대한 개념에 대하여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의 입장은 사뭇 달랐습니다. 특히 크샤트리아 계급은 브라만의 <윤회>개념이 너무 브라만 계급 위주라는 것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3. 자이나교의 등장 - 윤회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고행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이러한 우파니샤드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윤회개념>을 종교적인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나타족의 왕자인 <바르다마나>입니다. 그는 브라만의 형식적인 제사라던가 신분차별에 반대하면서, 형식보다는 실제적 수행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그가 주장한 이러한 내용은 곧 <자이나교>의 성립으로 완성되는데, 자이나교는 3가지 내용을 통하여 브라만교를 비판합니다.

1. 인간의 구원은 형식적인 제사와 신의 은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고행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 인간과 자연은 근본적으로 평등한 우주 속의 생명(아트만)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살생은 금해야 한다.
   3. 모든 인간은 자연 속에서 신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계급에 따른 불평등은 있을 수 없다

이 자이나교의 교리는 브라만의 형식적인 측면을 실제적 <수행>으로 바꾸고, 차별적인 계급구조를 <평등한 부족개념>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윤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 쯤 죄를 짓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영혼에 때가 끼게 됩니다. 단지, 그 때가 적게 끼는가 많이 끼는가의 차이로 내세에 <좋은 윤회>인가, <나쁜 윤회>인가가 결정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윤회 자체를 부인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영혼에 낀 때를 제거하여 윤회를 벗어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바로 <혹독한 수련>, 즉 고행입니다. 고행을 해야 천상세계로 올라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현실의 고통을 참아야 합니다. 이 고통을 참는 다는 것에 <현세의 계급구조>는 더 이상 차별적일 수 없습니다. 단지, 낮은 계급은 더 많은 때가 끼었으므로 더 많은 고행을 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두가 <해탈>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반대로 브라만교에서는 <수드라>는 절대 현세에서 해탈할 수 없으며, 수드라가 지배집단에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 세상에서 <수드라>가 아닌 다른 계급으로 윤회하여, <다다음 내세에 해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더 많은 고행>을 낮은 계급에 강조하는 것 역시 완전한 평등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4. 불교 - 윤회는 고행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교는 자이나교의 이론에서 더 한걸음 진보적으로 나아갑니다. 불교는 윤회라는 개념을 다시 해석합니다. 즉, 윤회는 영혼에 때가 끼어 가혹한 수행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의 등장이 인도 사회의 큰 충격이었던 것은 <윤회>를 깨달음을 통한 <해탈>로 규정함으로서 <현세의 신분 계급>을 부정했다는 점입니다. 원래의 윤회설은 지배집단이 수드라 집단을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지배집단은, 수드라 집단에게 <너희는 전생에 악한 일을 많이 해서 수드라로 태어났어. 지금 너희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어>라고 규정하였고, 수드라가 지배집단에 충성함으로서 다음 세상에서 <아주 조금>의 악업을 씻을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브라만교에서는 무서운 내세를 당하지 않으려고 체계적이고 신성적인 <제사의식>이 강조되었고, 수드라는 절대적인 복종만이 강요되었습니다.

불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크샤트리아의 반발입니다. 크샤트리아와 바이샤는 <브라만>이 아니라고 해도 모두가 똑같이 <해탈>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종교교리나 이론면에서 전문가인 브라만과 싸워 이길 길이 없는 2, 3계급은 아주 단순한 논리로 <브라만>에 저항합니다. 이론보다는 <깨달음>만 있으면 된다고....

이 깨달음의 방법이 바로 불교의 팔정도와 수행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본체는 자비와 평등입니다. 이 자비와 평등을 깨달은 자는 계급적 차별이 무의미함을 알게 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인도의 불교 전개과정과 중국으로의 전파과정을 한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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