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의 사상 1 - 유가사상

1. 유가 사상의 특징

유가 사상은 춘추시대의 공자로부터 출발하여 그 제자들인 맹자, 순자로 계승된 사상입니다. 이 사상의 가장 핵심은 인간을 정치, 사회, 역사의 주체로 놓고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통해 삶의 원리를 발견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상은 인간이 살면서 지켜야 할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윤리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 사상은 자연속에서 진리를 찾는 도가적인 관찰자 역할을 무책임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법가적인 강압주의는 인간의 윤리를 근본적으로 깨닫는 이치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가사상가들은 자연과 강압의 가운데에서 <중용>을 통해 윤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후세계보다는 현실 속에서 인간이 살아야 할 방향을 탐구하였으며, 그것은 곧 정치 윤리로 연결되어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치국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갑니다. 따라서 유가주의자들의 논의는 상당히 지배계급의 이상적 당위성과 치국의 방법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또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내적인 윤리와 도덕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예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서주시대의 봉건적 질서와 예작제도를 중시하였으며, 그 원리에 따라 예법을 만들고 제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들은 군주는 덕치를 바탕으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윤리라고 말하면서도, 그러기 위해서 군주가 지켜야할 행동가짐은 예치로 규정해 놓습니다. 그리고 군주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다는 중용의 논리와도 일통합니다. 즉, 예치, 덕치, 중용에 입각한 덕치주의, 예약정치, 왕도주의는 군주의 필수 항목으로서 이러한 항목을 군주가 지켜가야 혼란한 시기를 구원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유가주의는 당시 공자 이래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면서 중삼-자사-맹자 계열, 자하-순자 계열의 사상이 달라집니다. 이들은 인간이 예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유가의 핵심 원리는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인간은 스스로 사회를 개척할 수 있는가, 패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등의 구체적인 부분에서 계열이 갈리게 됩니다.

2. 공자의 사상

공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인> 사상입니다. 어질게 사람이 사는 것이 곧 인간의 도리이자 윤리라고 주장하면서, 이 어진 삶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효, 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 - 효 - 제라는 핵심 도리를 말함으로서 이 도리가 가족윤리적임을 밝힌 것입니다. 즉, 가부장권을 옹하하면서 그 가족제도가 인간 삶의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효도와 우애를 국가적으로 확장하면 국왕에 대한 충성으로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상이었습니다. 국가에서도 국왕은 아버지가 사랑으로 가족을 감싸듯이, 덕으로서 백성들을 위무해야 합니다.

또 공자는 이렇게 인 - 효 - 제를 지켜가면서 윤리적으로 사는 이상적인 사람을 <군자>라고 지칭했습니다. 군자란 우애와 효도를 통해 <수신제가>를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평안하게 할 수 있는 마음 가짐을 가지고 <치국평천하>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공자가 말한 이상적 군자의 모범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입니다.

그는 군자란 윤리적인 측면이 강한 인물로서, 교양을 갖추되, 그 교양의 바탕에는 올곧은 지식을 근간으로 합니다. 따라서 정치의 목표는 소인배들을 군자로 끌어올라는 것이 곧 목표입니다. 공자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4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이것을 4등론이라고 합니다. 즉, 인간은 성인 - 현인 - 군자 - 소인이 있으며, 보통의 사람들은 소인이 되지 않고 군자가 되는 것이 곧 삶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인은 군자의 단계를 넘어선 지식과 정신을 겸비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성인은 선천적으로 성인의 천성을 타고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극한의 경지라고 말합니다.

공자의 이 4등론은 한나라 시대 한고가 인간유형을 9등으로 다시 세분하였고, 훗날 위진남북조 시기에 구품관인법을 실시해서 관인을 선발할 때의 기준으로 쓰입니다.

공자는 내적인 윤리(덕)와 외적인 예(예절)이 균형잡힌 사람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지식과 정신의 겸비를 다시 강조한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지와 정을 고루 갖추어 한곳에 치우침이 없는 것을 중용이라고 합니다. 중용은 관용과 타협정신을 가진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어 중국문화의 사상적 기반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용을 실시함에 있어 격식에 맞게 행하는 것은 서주의 예에 맞는 것으로, 예악정치도 강조합니다.

3, 맹자의 사상

맹자는 공자의 제자로서 공자 사상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그는 일단 인간 윤리에 대한 전제로 인간은 선하게 태어난다는 <성선설>을 주장합니다. 인간의 선한 마음은 그 처음의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나가야 할 것으로 파악하고, 본성을 지키는 것이 곧 유교 윤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부여된 4가지 본성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사단이라고 합니다. 4단은 측은지심(인), 수오지심(의), 사양지심(예), 시비지심(지)입니다. 그리고 이 4단이 발하는 것은 인간의 욕정 때문인데, 이것을 희, 노, 애, 락, 애, 오, 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4단에 맞추어 인간은 다섯 가지 도리를 지키며 살아야 선한 본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것은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이라는 5륜입니다.

맹자는 부국강병을 위한 정치이론으로는 <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를 주장하였습니다. 왕도주의란, 국왕이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한점 부끄럼도 없이 정의에 의해 다스려야 함을 말하는데, 이것은 4단 중에서 <수오지심>과 관련된 것입니다. 즉, 의 = 정의를 뜻하는 것이지요.

제왕이 수오지심에 의거하여 정의로 백성을 다스리면, 천명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으로서 하늘이 스스로 제왕을 돕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천명은 곧 하늘의 정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덕이 없는 군주가 정치를 한다면 이것은 하늘의 정의를 버리는 일이고 백성들은 새로운 하늘의 정의를 세울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맹자의 사상 속에는 <혁명론>의 근거가 숨어있습니다. 이러한 혁명론적 사상이 내포되어 있기에, 맹자는 살아생전에 크게 존경받으면서도 군주들이 꺼려하는 유가사상가였습니다. 또, 이러한 천명의 변화라는 개념은 후대 <선양>이라는 선례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법가사상가들은 맹자의 사상은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4. 순자의 사상

순자의 사상은 유가주의이면서도 기존의 학설과 많이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규정하는 성악설을 배경으로 하는 철학입니다. 따라서 공자, 맹자가 인간의 본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가족윤리를 주장할 때,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므로 예절을 통해서 억눌러야 된다며 맹자를 적극 비판합니다.

인간에게는 4단이라는 윤리가 내제한 것이 아니라, 절대 악이 내제되어 있습니다. 이 절대악을 누르기 위해서 예악정치, 인간윤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순자의 사상은 유교적 도덕관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실현 방법에 있어서는 약간 패도적인 법가주의를 받아들입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3번 하면서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면, 순자는 아마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잘못된 길로 갈때 마다 체벌과 정신교육, 토론을 계속 할 것입니다.

또 순자는 공자가 주장하는 인효제라는 가족윤리는 허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순자는 가족 윤리는 작은 것이며, 이 작은 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큰 윤리가 있는데, 이것은 곧 <의>를 따라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의>를 따라 산다는 것은 소속한 사회, 또는 국가를 위한 헌신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러한 순자의 견해를 <충의론>이라고 합니다.

5. 유가를 비판하기 시작하다.

그럼 여기서 순자 외에 공자 사상을 비판한 수많은 제가 백가들의 비판 내용을 한번 볼까요?

도가에서는 공자의 유교사상을 도덕관념에 너무 얽매여서 인위적으로 구성된 모순덩어리의 사상이라고 말합니다. 또 유교사상이 인간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다보니, 국왕권과 밀착된 현생문제에만 몰두하여 인간이 가진 내면의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도가에서는 전제군주제를 비판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 <소국과민>을 추구하라라고 말합니다. 도가는 국가의 단위는 최소한 작은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유가는 절대군주권을 옹호하면서 지배층의 이념만을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법가는 유가사상을 허무한 형이상학적 이념이라고 비판합니다. 유가 사상은 도덕과 윤리로 사회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여서 과연 그것이 정치이념이 되었을 때, 실제 전쟁으로 굶고 있는 백성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를 이야기 합니다. 실제, 유가 사상은 부국강병책과는 거리가 멉니다.

묵가사상가들은 가장 신랄하게 유가를 비판합니다. 유가가 왕권이 강한 중원지역의 학맥을 가지고 있다면, 묵가는 가장 남방의 초나라 권역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유가가 중원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원리를 정당화하는 학문이라는 것에 묵가는 크게 반발합니다. 묵가는 유가의 인-효-제의 가족윤리는 자신들만 챙기는 이기적인 윤리이고, 그것을 확대한 가부장적인 군주관은 절대군주권을 옹호하는 지배층만의 사상이라고 비판합니다. 묵가는 가족애는 <차별애>이므로, 만민이 모두 평등할 수 있는 <겸애>를 실현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또 유가에서 말하는 <예절과 예악>은 허례허식일 뿐이며, 그런 절차가 과연 무슨 생산력 발전에 도움을 주느냐고 비판합니다.

묵가 사상가들이 유가에 대하여 비판한 부분은 너무 많습니다. 왕위를 세습하는 것은 차별적인 관습이다, 3년상은 허례허식이다, 예악정치는 낭비이다, 가족윤리는 차별애이다, 또 현세적인 유교적 치국주의는 노동력을 중시하는 생활상과 맞지 않는다 등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도가, 법가, 묵가의 사상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장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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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특징과 칭왕현상

1. 전국시대의 시작

전국시대가 시작된 배경은 춘추 전국시기 이후 출현한 군현제적 중앙국가체제의 등장과 연관됩니다. 14장에서 말했듯, 춘추 전국시대 중기에는 남방과 북방의 치열한 패자 다툼이 있었고, 이 시기에는 중화사상에 입각한 강력한 통일국가가 필요했습니다. 각 국가들은 주왕실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약소국을 멸망시켜 중원의 주인으로서 활약하려 하였고, 이것은 곧 군현제도의 가속화를 가져왔습니다.

전국시대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춘추시대 북방의 패자였던 <진>나라의 가신인 한, 위, 조가 하극상으로 각각 독립국을 세운 것을 기점으로 합니다. 이것은 가신계급인 경, 대부의 성씨집단들이 제후집단에 반란을 일으켠 것을 말하며, 이제 주왕실과 제후라는 봉건질서의 주체들 외에 경, 대부라는 국인층들도 건국 주체로 성장한 것을 상징합니다.

이제 주왕실을 지킨다는 존왕양이는 사라졌고, 주왕실의 국인으로서 같은 하늘의 백성이라는 의식인 <예>는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강력한 영토에서 자신을 지켜줄 강력한 군주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고, 군주는 자신을 보필한 현명한 인재와 강한 군대가 필요했습니다.

즉, 광대한 영역 국가에서 국왕인 인, 민을 직접 지배해야 했고,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에 거대한 관료지배체제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반맹을 거듭하는 회맹질서는 필요없게 되었고, 국왕은 가부장권을 가진 모든 지배층(인)과 피지배층(민)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지방은 왕이 직접 다스리게 되었 거대한 군, 현 제도가 등장하였습니다. 즉, 전국시대의 시작을 기점으로 봉건제적인 씨족제는 사라지고, 봉건제적인 혈연관계는 타도된 것입니다.

2, 전국시대의 왕들은 군현제를 실시하기 시작한다.

군현제는 말 그대로, 왕이 지배하는 전국을 군, 현으로 나누어 왕이 파견한 신하에 의해 전국을 직접 지배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 군현제는 현 - 군 - 향의 3층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현이란, 대국이 소급을 병합한 경우, 국가단위의 땅을 행정구역으로 개편한 행정구역입니다. 군은 변방지역이나, 작은 읍을 점령한 경우 설치한 작은 행정구역을 말합니다. 그런데, 전국시대의 현이 너무 큰 경우 몇 개로 쪼개어 다수의 군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향이란, 현 아래 설치된 행정구역인데, 씨족 공동체적 유제가 남아있는 씨족 마을을 말합니다. 현은 차춤 군에 흡수되어 소멸되어 가지만, <향>이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작은 공동체 마을을 지칭하는 말로 쓰입니다.

3. 칭왕 현상의 시작과 관제 개편

전국시대의 왕들은 이제 패자가 아닙니다. 이들은 주왕실을 모신다는 개념의 패자, 제후, 국군, 작이라는 칭호를 완전히 버립니다. 그들은 스스로 왕을 칭하는데, 이 시기는 각 국이 씨족적 기반을 버리고, 구귀족을 죽이며, 새로운 사회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한 변법의 실시 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이제 왕은 누군가에게 존속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가 하늘의 자손으로서 천하를 통일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라고 하는 이데올로기를 국가사회에 제시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신성화하기 시작합니다.

각 국의 왕은 이제 지방의 군현제 정비와 함께 중앙 관제를 정비하고 변법을 시도합니다. 중앙 관제의 개편 목적은 종래 세습귀족과 다른 새로운 관료들이 새로운 관직에 필요했기 때문이며, 그 특징은 보다 전문적인 관리를 양성하기 위한 관직의 세분화였습니다. 그리고 내용은 행정권 - 군사권 - 지방권을 분리시키는 일이었으며, 이 분리된 권한은 각각 왕에게 귀속됨으로서 모든 국가의 총괄책임을 왕에게 부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종래 세습귀족들은 이제 왕에게 반항할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세습귀족들의 모든 특권을 왕에게 돌려 왕이 직접 모든 백성을 다스리는 체제를 <제민지배체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민지배체제를 완성하기 위하여 사회 제도를 씨족적 질서에서 중앙집권질서로 통채로 바꾸는 것을 <변법>이라고 합니다.

그럼 새로운 제도를 살펴볼까요?

왕권 밑에서 행정을 총괄하고 재상으로서 활약하는 최고 전문직 관리를 <승상>이라고 칭합니다. 그러나 승상은 백관을 감시하여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할 뿐 독자적으로 가진 권한은 별로 없습니다. 감찰은 <어사>가, 토지는 <사도>가, 재정은 <소부>라는 부서가 담당했습니다.

또 효율적인 영토확장을 위해 징병제를 실시했지만, 이러한 군사제도 역시 문, 무 관리들을 분할하여 각각의 임무를 따로 두었습니다. 특히 장군 아래 <위>라는 호위대장을 두었는데, 이 위가 진시황의 통일 후 <태위>가 되어 군사권을 총괄하는 총수개념이 됩니다.

지방 제도도 확실히 분할합니다. 군의 태수는 <군수>, 현의 태수는 <현승>, 향리는 자치적인 토착세력, 지방 군사는 <위>에게 각각 분담하는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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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국>의 개념을 심화해보자.

1. 국이란 무엇인가?

앞에 중국사 12장에서 은-주-춘추시대까지의 지방체제와 국, 도, 비의 개념을 심층 분석하였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이 중 현재 국가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국>의 개념을 자세히 정리해 보도록 하죠.

국이란 원래 초기 씨족사회 및 군장사회에서 <족읍>이라는 독자적 취락을 기본으로 하던 공동체 사회를 말합니다. 주나라 시기 봉건제도에서는 이 <국>이라는 것은 왕이 하사한 봉토의 개념으로 제후가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던 곳이었죠. 그러나 사회 경제가 발전하고, 특히 철기 무기와 농기구가 등장하면서 국은 이제, 하나의 독립된 거대한 세력으로 발전합니다. 이 국이 주왕실의 <직할지> 수준에 맞먹는 생산력과 무기기술 단계에 들어서면 점차 독립하게 되는 것이지요.

은, 주 시기의 도시국가 수준에서의 <국>은 4개의 단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도>에 사는 사람들은 <도성>이라는 성을 쌓아 중심 수도를 이루었고, <국>전체에는 <외성>을 쌓아서 국과 그 밖의 지역(비읍)을 구분하였습니다. 비읍에 사는 자들은 지배층인 국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민이라 불렀습니다.

1. 국 - 내성, 외성으로 구성되어 왕에게 국을 분봉받은 제후가 거주하는 지역
   2. 읍 - 원래부터 씨족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거주하는 곳
   3. 도 - 원래 제후가 경, 대부에게 하사한 분봉 지역이었으나, 춘추시대 중기 이후 국가의 수도로 인식되는 지역
   4. 비 - 국의 외성 밖의 지역으로 작은 소읍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백지역

그리고 국의 교외에는 소읍으로 비읍이 존재합니다. 비읍이란 국과 국 사이의 공백이 되는 모든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야인, 비인이라 불러 국에 사는 국인과 차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비인들은 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집단적인 개간을 통해 농업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철기 농기구가 도입되면서 집단 취락을 형성하여 생산력을 높이게 되었는데, 이로서 비읍의 생산력은 <국>의 생산력에 버금가는 생산력을 보이게 됩니다. 전국시대에 부국강병을 추구했던 각 <국>들은 이 비읍의 생산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고, 이러한 영토분쟁은 각 <국>의 영유권 주장으로 확대됩니다. 따라서 각 국은 이 비읍을 점령한 다음 <군>, <현>을 설치하여 이 지역을 행정구역화 한 뒤 세금을 걷어 상비군과 관료제를 유지한 제원을 확보하려 하였습니다.

2. 국의 신분질서

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는 바로 제후라 불린 국군(공)입니다. 국군이란 국에서 가장 높은 군주란 명칭이고, 제후는 왕이 분봉한 땅의 주인이란 뜻이며, 공이란 주왕실이 하사한 제후의 명칭입니다.

그러나 국을 지배하는 국군은 춘추중기까지만 해도 힘이 미약했습니다. 그들은 국에 사는 지배층(국인)들의 수장이자 대표자 정도의 위치였습니다. 군사, 제사는 국인들이 공동으로 하여 읍사공동체적 성격을 유지하였습니다. 특히, 제사란 조상신이 같다는 혈연적 유대를 유지하고 종법질서를 확인하는 절차로서 춘추시대 권력의 구조는 아직도 봉건제도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춘추 5패와 전국 7웅을 거치면서 강력한 패자 중심의 정치가 진전되면서 이런 구조는 군현제도를 통한 중앙집권적인 체제로 변화됩니다.

경, 대부는 원래 제후로부터 <채읍>를 분배받아 생활하였는데, 그들은 이렇게 받은 채읍 중 중심지를 <도>라는 본읍으로 만들어 독자적인 권한을 유지하는 지배층(국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땅을 분봉받은 대가로 전쟁에 적극 참여할 의무가 있었고, 공통의 제사를 통하여 종법적 혈연 관계를 확인하였습니다.

국에서 가장 낮은 지배층 계급은 <사>입니다. 사 역시 국인이었지만, 이들은 경, 대부보다 혈연관계가 소원해져서 하위 무사계급으로 추락한 지배층입니다. 그들은 전쟁 참여를 통해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였고, 특히 제후, 경대부와 함께 제 3의 세력으로서 국의 지배자 계승권 분쟁, 외교 분쟁 등에 관여했습니다. 만약 국인간에 내분이나 싸움이 날 경우 이 <사>계층이 누구편인가가 상당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이 사계급은 초기에는 몰락한 국인계급이 많았지만, 점차 부국강병을 통해 군사력이 중요해진 춘추 중기 이후에는 실력을 통해 성장한 평민층이 숫자가 많아집니다. 이들 새로운 평민 지배층은 전쟁참여의 대가로 토지를 분봉받은 영주이자, 학문을 통해 성장한 제자백가가 되기도 합니다. 또는 경, 대부로 신분상승하여 제후 밑에서 <재상>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 춘추전국시대의 많은 왕들은 현명한 인재나 강병한 장군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재상>, <장군>자리를 보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자, 맹자, 한비자 등은 각국에서 서로 초빙하려 했던 유명한 제자백가입니다.

여기까지가 지배층입니다.

이러한 춘추전국시대 지배층은 일반 백성인 농인, 공인, 상인, 천민 등과 구별되는데, 그 구별법은 <작>과 <예>라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작이란, 신 앞에서 지배층으로서의 의무를 선서해서 얻은 신분을 말합니다. 흔히 우리가 공작, 백작, 남작, 자작 할 때의 그 작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작을 행하는 의식과 예법을 <예>라고 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고결함의 상징을 이런 <예법>을 아는가로 따졌기 때문에, 이 <예>라는 의식을 행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문명인이자, 국인입니다. 이 예는 사 계층까지만 베풀어지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춘추전국시대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구별하는 방법이라고 하겠네요. 이 <예>라는 단어는 후대 <예절>이라는 뜻으로 인식되어 쓰입니다. 그리고 유가주의자들에 의해 <예>는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것으로, 꼭 인간에게 필요한 도덕으로 재인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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