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6화. 격의 불교 이야기...

1. 중국 불교는 청담에서 비롯되었다.

자, 이제 본격적인 중국 불교 이야기를 해보자. 중국에 불교가 처음 전파된 것은 후한 시대이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듯이 쿠샨 왕조의 적극적인 확장 정책과 외교정책으로 대승 불교가 각지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중국 한나라에서의 불교는 <교양> 철학 수준이었다. 중국 <한>나라는 가장 전통적인 중국 왕조이다. 중국 민족은 자신들이 <한족>이라고 믿고 있으며, 중국 전통 문화의 원류는 <한나라>에서 기반이 잡혔다고 생각했다. 가장 전통적인 <유학>도 한나라 시기에 완성되었다. 한무제가 <유교>를 국교화하고, <한자>의 정형틀을 완성시킨 것이다.

불교가 한나라에 전파되었지만, 그것은 외국 철학의 일종일 뿐이었다. 지배층이 교양을 쌓기 위해 읽어보는 수준이었을 뿐, 중국 지식인들은 관리 임용을 위해 <유학>을 익혔다.

그럼, 불교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부터일까?

후한이 멸망할 무렵부터이다. 중국 후한시대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원소, 조조 등 호족세력들이 판치는 무법천하였다. 백성들은 길고 긴 전쟁의 시대로 막 들어선 것이다.

위, 촉, 오의 삼국시대부터 남북조 시대의 분열까지 길고 긴 분열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시기가 되기에 윤리적인 측면이 강한 <유학>은 왕따당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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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의 중국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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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의 국가 먹이사슬>

혼란한 시기에 사람들이 찾는 종교는 <내세>라던가 <자연>을 강조하는 종교였다. 사람들은 유학이 아닌, 도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한나라가 망한 뒤, 실권을 잡은 것은 삼국 중 조조의 <위>나라였다. 위 나라는 강력한 법치주의에 의해 국가 통일을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정치가가 아닌 일반 학자, 사상가들은 <도교>에서 혼란의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당시 도교는 혼란의 원인을 <인간의 욕심>으로 보았다. 서로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탐욕자들이 싸우고 죽이는 탓에 백성들만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 않는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위나라의 학자들은 도가사상의 원리인 <자연으로 돌아가자>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렇게 노자, 장자 등의 철학에서 현실의 문제점을 발견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현학>이라고 한다.

<현학>은 노자와 장자의 철학에서 우주의 근본 원리를 규명하려는 학문이다. 우주의 근본 원리인 <도>를 <현>이라고도 부르기 때문에 현학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현학은 하안(190-249), 왕필(226-249) 등에 의해 전개되었다.

하안과 왕필 등의 사상가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문제점이 무언가를 따지려고 했는데, 이런 대화를 <청담>이라고 한다. <청담>이란 말 그대로 <깨끗한 세계의 담론>이란 뜻이다. 위나라에서 시작된 이들의 <대화>를 역사에서는 <정음시대의 현학>이라고 부른다. 하안은 노장사상으로 논어를 해석하였고, 왕필은 노장사상으로 주역을 해석하였다고 한다.

그럼 이들의 대화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간단하다. 도학에 나오는 사상들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는 것이었다. 도학의 문구들은 너무나 심오하다. 노자의 <도덕경>은 서양 학자들도 인정하는 동양 최고의 학술서이다. 노자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무위자연>, 국가는 작을수록 좋다라는 <소국과민>, 가장 행복한 삶은 자연에서의 삶이라는 <자연합치> 등을 주장하였다.

노자의 사상에 맞춰서 모든 사상을 재해석하는 것이 <현학>이다. 유교사상은 현실사회의 직접적인 문제와 인간 윤리를 주로 다룬다. 그러나 후한이 망한 뒤의 세상은 무법 천지이다. 인간 윤리는 이제 <전쟁없는 사회>라는 틀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청담 사상가들은 현실의 윤리보다는 <전쟁>의 참혹함, 사후세계는 어떤 것일까라는 내세에 대한 상상, 삶과 죽음과 인간관계에 대한 탐구에 더 집중한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답은 한가지였다. 대화를 나누던 청담 사상가들은 <전쟁>에 골몰하는 국가를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점점 현실과 떨어져 중국 전통 윤리를 비관하기 시작한다. 자, 그럼 청담 사상가들은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노자의 세계로 가기 위한 방편으로 어떤 철학을 찾았을까?

불교에 그 답이 있었다. 불교는 만민에 대한 구원, 내세에 대한 윤회와 열반 사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공> 사상을 강조하여 <허무주의>를 보여주면서도,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혼란한 시기에 딱 맞다. 얼마나 맞춤형 철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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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위진남북조 시기의 중국인들은 지긋지긋한 전쟁에 질려있었다. 삼국시대, 위의 조조, 서진시대, 5호 16국의 이민족 시대, 남북조의 분열시대.... 길고 긴 전쟁의 역사는 훗날 <수>나라가 통일국가를 세울 무렵에야 끝나는 것이다.

이 불안한 시기에 불교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인간은 죽은 뒤 자신의 업보에 의해 <윤회>를 하게 된다. 지금 현상에서의 고난은 전생에서의 죄를 씻는 과정이다. 그 업이 끝나고 현생에 덕을 쌓으면 내세에는 행복한 날이 기다리고 있다. (업설) 지금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많은 죄를 지은 것이고 생이 끝나면 죄를 받을 것이다.(인과응보론)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얼마나 딱 맞춤인 철학인가?

그렇다고 지배층과 국가가 불교를 탄압한 것도 아니다. 한나라가 망하고, 조조 일가의 시대가 끝난 뒤 중국은 5호 16국이라는 이민족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이민족의 왕들은 <유학>에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중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불교>가 이민족 취향에는 딱 맞았다.

이민족 왕들은 불교를 주술적 방편으로 이용하였다. 흉년이 들면 승려가 주술을 펼쳐주었다. 질병과 재난은 불제자들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큰 전쟁을 앞두고 학식이 높은 승려들에게 전쟁의 승패를 묻기도 하였다. 또, 인도의 아쇼카 왕이 했던 것처럼 왕 자체가 불법을 수호하는 <불교의 수호신>임을 자청하였다. 왕이 곧 불교의 신이라는 이념은 불교를 믿는 백성들을 한 마음으로 묶어줄 수 있었다.

왜 불교가 민간신앙이나 주술신앙, 국가 호국 불교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혼란한 이 당시에는 불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왕권 강화를 위한 <사상>으로 충분했다. 혼란기의 각국 지배자는 큰 사찰과 어마어마한 불상, 귀따가운 큰 법회를 열어가면서 왕권이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였다.

어렵고 험난한 시기에 불교의 원래 뜻이 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종교는 현실에 도움만 주면 되지 않는가?

3. 대충 때려맞춰서 이해한 격의 불교

초기 청담 사상가인 왕필은 유교, 도교, 불교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왕필은 도교의 기준에 맞춰 다른 종교의 특징을 규정하였다. 노자와 장자가 도가 사상을 창시하면서 우주의 근본 원리와 인간의 행동 가짐을 <도>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공자 역시 큰 <도>를 깨우친 사람이고, 석가모니도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성인들이 결국 <도>를 깨달았으니, 모든 믿음은 하나가 아니겠는가?

왕필이 주장한 <유,불,도교의 3교 일치설>은 지둔(314-366)에 의해 구체화 되었다.

지둔은 불교 스님이다. 왕필이 도교 기준으로 종교를 통합했다면, 지둔은 불교 사상을 중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보자. 중국 전통 사상은 <리기론>이다. <리>란, 우주의 근본 질서나 계절을 의미하는 불변의 진리를 말한다. 지둔은 이렇게 말한다.

<리>가 절대불변의 원리인 것처럼 불가에서 말하는 반야(지혜>는 영원 불변의 <깨달음>이다. 즉, <리>는 불가의 <절대적 깨달음>을 말한다.

다른 것도 대입해볼까?

불가의 <공>사상은 <만물은 돌고 돌아 그 형체를 알수 없다>는 뜻이다. 보이는 것은 곧 사라지고, 사라진 것은 다시 생겨난다.(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심오한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도교의 <무>로 설명한다. 사라진 것이니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부처가 <열반>한다는 것은 도교의 <무위>로 해석한다.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보살들을 도교의 <도>로 해석한다. 불가의 <진리>는 도교의 <근본>으로 해석해 버린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간편한 해석법인가?

이러한 불교 이해 방식을 격의 불교 방식이라고 한다. 격의란, 불교의 난해한 개념들을 중국 전통 사상에 이미 존재하는 비슷한 개념들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쉽게 이해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불교의 원래 뜻을 왜곡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방법을 중국 곳곳에 알리고 다닌 이는 축법아였다. 그러나, 4세기 이후 불교의 승려들은 축법아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격의 불교는 불교의 참 뜻을 알 수 없기에, 지배층들이 마음대로 해석하여 불교를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든다. 또, 일반 백성들은 토착신앙과 신비주의를 불교와 구분하지도 못하고 멋대로 불교를 이해한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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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 남북조 시대의 대립상황>

4. 불도징을 초빙하다.

불도징은 위진남북조의 혼란이 시작된 초기 인물이었다. 그는 서북인도와 관련된 구자국이라는 곳의 은거하는 불학자였다. 그가 70여살이 되었을 때, 중국의 백성들이 <위진시대>의 혼란기에서 희망없이 산다는 말을 듣고, 제자들과 중국으로 건너왔다. 드디어 불교가 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정통 <인도산 스님>이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런데, 불도징은 <불교의 참뜻>을 전파하지 못하였다. 당시는 혼란중에 혼란기인 5호 16국 시대였다. 5개의 이민족이 16개 국가를 세워 중국 대륙은 어딜 가나 전쟁 뿐이었다. 불도징은 후조 왕국의 석륵, 석호 부자에게 불법을 설파하였는데, 석륵은 불교를 아주 우습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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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기 : 5호 16국 시대의 후조 왕국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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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국가들의 민족 분포와 국가 창업자>

불도징은 불교 교리에 대한 철학 강의를 했지만, 석륵은 시큰둥했다. 결국 불도징은 교리로서 불법을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겼다. 불도징은 주문을 외워서 항아리에서 연꽃이 나오게 하는 등 신비로운 주술로 석륵을 감동시켰다. 결국 이 당시 불교 수준은, 뭔가 위대한 부처의 힘을 보여줘야 비로소 믿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불도징은 큰 뜻을 품고 중국 대륙에 왔지만, 단 한권의 책도 쓰지 못하였다. 이민족의 왕들이 원하는 건 신비로운 주술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 뿐이었다. 스님과 주술가, 점쟁이를 구분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석륵의 아들, 석호는 이 신비로운 스님을 존경하였다. 불도징은 석호에게 <국왕>이 해야 할 일을 설교하면서 중국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였다.

1. 살행을 금지하고 죄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말 것
   2. 포학한 행동을 피하고 자비심을 가지고 보시할 것
   3. 부처를 섬기는 데 있어 깨끗한 마음과 자긍심을 가지고 해야 할 것

불도징은, 인도에서 건너온 선구자라는 것 외에 크게 남긴 것이 없다. 중국 대륙에 자리잡은 이민족들은 불법이 뭔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중국 불교사를 바꿀 만한 거목들을 제자로 키웠다. 그들의 이름은 도안, 혜원 이였다.

중국 대륙에서는 부처의 참뜻이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다음장에서는 도안부터 시작되는 <불교 알리기>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중국 스님들이 제대로 된 불교를 알리고자 했던 노력은 수백년 동안 계속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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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 유교를 국교화하여 체계를 정립하다

이번 장에서는 한나라 시기의 가장 큰 업적인 한무제의 유교 국교화를 중심으로 한나라 시기 유교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1. 한나라 초기의 유교 사상

한의 초기, 건국자인 유방은 유교에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건국집단인 유협집단도 수준낮은 의리, 충성 등의 기초적인 이념만으로 뭉친 협객집단이었습니다. 따라서 건국초의 유방은 저명한 학자인 <육가>에게 학문적 교양을 배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육가>는 유명한 말을 하면서 유방에게 유교이념을 받아들일 것을 권합니다.

<말 위에서 천하를 달리며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말 위에서 국가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육가의 말을 듣고 공자묘를 만든 유방도 아직 유교이념에는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유방이 죽은 뒤 세력을 잡은 유방의 부인 여씨 일족은 유교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초기의 한에서는 유가보다는 오히려 도가가 유행하였습니다. 특히 도가에 있는 신비주의 사상이 유행하여, 신선이라던가, 불로장생 등의 미신적인 부분이 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흔히 이러한 신비주의적 도가사상을 황로사상이라고 합니다. 또, 왕조 개창의 이념이었던 음양오행설 사상(음양오행의 순환으로 새로운 왕조가 개창되었다는 믿음)이 민간에 유행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운명과 자연에 맡기는 경향도 많았습니다.

실제, 한 초기 문제, 경제의 태평천하도 이 음양의 순환 원리에 잘 따랐기 때문이라고 믿기도 하였습니다. 한 문제 시절의 <가의>는 예악으로 풍속을 교화해야지 미신으로 풍속을 교화할 수 없다며 황제에게 유교이념을 수용할 것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가의의 노력으로 일단, 유교가 한나라 사회에 침투할 수 잇는 여건은 마련되었지만, 아직도 한에서의 유교 수준은 미흡했습니다.

2. 한무제 : 강력한 유교주의를 통해 황제권을 강화하다

이러한 미신적인 풍조를 일시에 정리하고, 유교주의에 입각하여 황제지배권을 강화한 사람이 바로 한무제입니다.

한무제는 군주권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동중서의 <천인상응설>을 받아들이고, 법가적 유교정치를 완성합니다. 또, 유교를 관학화 하여 오경박사, 효렴과, 태학 등을 정비하여 유교질서에 입각한 현실적인 관료군을 육성합니다.

그리고 효제 도덕을 중시함으로서 지방 권력자들에게 일정한 제약을 줌과 동시에, 촌락을 유교 윤리 공동체로 이념화 하여 국가 권력에 대한 충성을 강조합니다.

이 한무제의 유교 관학화 정치는 국가가 유교를 보호하여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 윤리는 동아시아 문화의 성격을 유교주의로 만들어 버리는 대 사건이었으며,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가정윤리가 동아시아 사회에 정착되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3. 유교주의의 시작 : 동중서

동중서의 천인상응설은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이제 지겨울 때가 되었네요. 여기선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천인상응설은 하늘(천)을 중심으로 하여, 지상의 황제(인)을 끌어들인 정치도덕론입니다.

이 이론의 핵심은, 황제는 천의에 따라 정치를 행하므로, 황제가 도가 있다면 하늘이 감응하여 황제의 권위를 신성화 시켜줄 것이고, 황제가 도가 없다면 하늘이 알아서 심판할 것이라는 <천과 인간의 상응>입니다.

이것은 음양의 순환에 따라 왕조와 천자가 바뀐다는 음양오행설을 황제권에 대입한 유교원리로 한무제의 <천자 권위 확립>에 큰 역할을 한 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음양오행설이 맹자의 <혁명론>을 인정하여 왕조교체를 긍정적으로 보았다면, 동중서의 이론에서는 <황제권을 심판하는 자는 하늘>이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서 혁명이나 비정상적인 왕조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신하와 백성은 유교이념상 아버지인 황제를 벌할 수 없습니다. 황제의 부도덕함은 하늘이 심판할 뿐입니다.

또, 이러한 유교사상의 이념 속에서 동중서는 태학(중앙), 군국학(지방) 등을 정비하고, 스스로 교수가 되어 5경 중심의 유교학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학문기관의 발달과 함께 인재 등용의 방법도 바꾸기 시작합니다. 원래 한 초기에는 낭관이라고 하여 궁정에서 일하는 관인 후보들을 관인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또는 부호가 재산을 납부하면 관료로 채용하는 자선제도도 있었습니다. 황제는 수시로 특명을 내려 현량한 자를 1인씩 추천하라 하여 관료로 쓰기도 했습니다.

동중서는 이러한 제도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통일합니다. 즉, 천거와 선발에 가장 효율적이고, 능력중심적인 방안으로 <효렴과>를 제시했습니다. 효렴과는 지방관이 효렴한 자를 지방에서 1인씩 추천하는 제도입니다. 이것을 동중서가 다시 재편하여 향거리선제라는 제도로 정착했습니다. 이 제도는 추천과 시험을 병용하는 제도로서 지방관이 관료를 선발하고, 현량, 효람한 향촌 자제를중앙에 천거할 수 있게 한 제도입니다.

시험을 봐야 하므로 유교적 소양이 필요하나, 실제는 추천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여, 지방관은 유력 집안의 호족들을 천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은 훗날 9품중정제로 이어져 호족이 호족을 추천하는 관례가 제도적으로 정착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4. 금문학파와 고문학파가 등장하다.

초기에 한대 유학을 연구할 때 학자들은 전국시대 이래로 구전되어오던 경전들을 한나라에서 사용하는 예서체로 필사하여 작성한 후 연구하였습니다. 이것은 한나라의 관학으로서 한무제 이래 후한말까지 한나라 유학의 주요 흐름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고대 문헌을 한대 글자로 필사한 문헌을 <금문경>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왕망의 신에서는 공자의 옛 터에서 발견된 경전 등 춘추시대 이래 당시 고문체로 쓰인 고본을 직접 연구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이렇한 고문을 <고문경>이라고 합니다. 이 고문경 연구는 후한 시대 <금문경>의 관학과는 달리 <민간>에서 연구되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대 학파의 두 파를 정리하여 완성한 사람이 곧 <정현>입니다. 고대학파(훈고학)은 정현에 의해 사상적 통일이 되었고, 이것이 당나라 시기에는 공영달의 <오경정의>로 완성됩니다. 오경정의란, 고대에 중요한 5경을 정리하였다는 것으로 최소한 당대 이전에는 4서보다는 5경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훈구학의 연구는 <고문경>이든 <금문경>이든 책의 자구 해석에 주력하는 경향이 강하여, 철학이나 사상으로 발전하기 보다는 어문학에 가까웠습니다. 이것은 그 해석된 문구를 그대로 믿어 버리는 폐단을 낳아서 유학이 획일화되고, 합리적이지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특히, 국가가 관학화 한 금문경은 고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서 동중서의 천인상응설, 왕망의 찬탈이론, 참위설과 음양오행설의 유교화 등의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딱 좋았습니다.

이러한 유학의 미신화, 정치화에 반대하여 유학도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학자가 <왕충>입니다. 그는 논형이라는 저서에서, 동중서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즉, 천인상응설이라는 개념에서의 천은 하늘과 인간이 상응하는 주체라고 동중서가 주장했는데, 왕충은 그것이 바보같은 소리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하늘은 우주라는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이 인간의 선악에 관여할 수 없고, 자연은 그냥 자연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황제권이 하늘에서 왔다던가, 신이 존재한다던가하는 말들은 모두 인간이 유교를 이용하여 지어낸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육체가 죽으면 정신도 사라질 뿐 내세도, 지옥도, 천국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그는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공자, 맹자마저 평범한 인간임을 주장합니다. 공자를 성인화하여 그의 말을 모두 <신성화>한다면 인간이 만든 또 하나의 신이 탄생할 뿐입니다. 따라서 그는 학문이라는 것은 과학적, 합리적인 측면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사상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타락한 유학을 비판했던 청담사상 등의 체제비판 사상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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