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편>

15화. 평생을 불교와 싸운 유학의 아버지 - 한유

1. 맹신적인 종교가 국가를 망치는 것이다. 

중국 불교를 마무리 하면서 어떤 상징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쉽게 이해될까 고민하느라 포스트가 지연되었다. 오늘 이야기는 불교를 배척하면서 평생을 살아간 <한유>의 이야기로 중국 불교편을 정리하고자 한다.

중국 당나라 시기... 불교는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국가 권력과 밀착한 화엄종, 천태종 등 교종 종파 뿐 아니라, 백성에게 직접 뛰어들어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정토종, 선종에 이르기까지 불교천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힘이 너무 강해질 때마다 중국 황제는 종교에 태클을 걸었다. 그 이유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국왕이 불교를 용인하는 것은 불교가 왕권 강화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제에게 불교, 도교, 유학의 구분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종교가 황제권을 넘어서려 한다면 그 종파를 찍어 눌러야만 했다. 특히 유교, 도교, 불교라는 세 종파가 공존하던 중국 고대 사회에서 황제의 선택권은 넓었다. 황제가 불교에 위협을 느낄 때마다 유교, 도교를 이용하여 불교를 탄압하였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몇몇 <폐불사건>으로 알려진 것이다.

링크 : 불교편 9화. 서로 우위를 점하려던 도교와 불교의 한판 승부

특히 유교는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대세는 불교와 도교였고, 특히 불교는 당나라 측천황제(측천무후)의 불교 중흥 노력으로 최강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당나라의 국운이 기울던 당 말기부터 불교의 위세는 꺽이게 되었다.

당나라는 측천황제 이후, 불교가 사회를 지배하였다. 황제는 미륵의 화신으로 생각할 정도였고, 귀족들은 스스로가 보살이라고 여기며 성불을 기원했다. 천태종과 화엄종의 <경전>은 귀족들의 교양지침서였다.

공식적인 당나라의 통일 사상은 유학의 일종인 <훈고학>이었지만, 훈고학은 옛 성인들의 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수준이었다. 백성들은 불교를 믿고, 집집마다 향불이 올라왔다.

2. 유학자들의 반격

유학자들은 불교 세력이 성장하자 불교에 대한 비판을 공론화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황제권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불교 사원을 짓는다는 것은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고, 종교 사원은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을 누린다. 그것은 왕권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죽은 뒤 내세가 기다리며, 내세는 현생의 죄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과응보>에 대해 국가적 차원으로 비판하였다. 유학에서는 현실 사회에 대한 모순을 파악하고, 현실 개혁과 사회 안정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죽은 뒤 영혼이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현실성이 전혀 없으며, 백성들을 현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국왕으로서 당연히 막아야 되지 않겠는가?

셋째, 불교가 왕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당나라 이전의 불교는 왕권 강화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불교의 교리가 심화되어 강력한 <종파>가 생겨나자 문제가 발생했다. 불교가 석가모니의 참 뜻을 내세워 중국 전통 사회의 윤리에 도전한 것이다. 유학에서는 충성, 효도를 강조하지만, 불가에서는 출가릃 하여 부모와 국왕을 떠나는 것마저 허용하고 있다. 세금을 내야할 백성들이 줄어들고, 전통 윤리에서 멀어지는 것을 국가가 보고만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넷째, 불교 교단의 승려들이 <국사>가 되어 정치적 힘을 갖게 되었다. 왕권이 약해지는 시점에서는 이것도 골치아픈 것이었다. 백만대군보다 무서운 것이 종교적 힘을 가진 백만 민중 아니겠는가?

결국 당말기 폐불사건은 남북조시대 이후 계속 되어온 왕권과 불법의 대립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남북조와 수나라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폐불을 당해본 불교였지만, 당말기에 대놓고 진행된 폐불에서는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경전으로 중심으로 귀족층과 밀접했던 <교종>은 교단이 박살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간략한 선법 수행과 <믿음>을 강조했던 <선종>은 그 피바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나라 말기에 살아남은 불교 교파는 <선종>이었고, 결국 선종이 후대 중국 불교를 이끌어가게 된다. 그러나, 불교 자체가 위축된 만큼 불교의 힘은 떨어졌다. 당나라를 이은 송나라는 신유학인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았고, <교종> 교파는 송대 이후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었다.

3. 불교도 싫어, 귀족도 싫어...  NO 만을 외치던 <한유>

당송팔대가의 으뜸이라 불린 한유는,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불교>에서 찾았다.

백성들이 죽은 뒤 <윤회>를 생각하면서 현실을 암흑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귀족들이 불상앞에 재산을 기부하면서 사회적 역할을 못한다는 것을 모두 <불교>탓으로 여긴 것이다.

특정 종교에 매달려 모든 것을 버리는 행위가 생긴다면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종교가 <종파>적 철학까지 잃고 지배층이 맹신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면 국가 존립 자체가 위험해진다.

한유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신유학>을 제시하였다. 노장사상은 허무주의이며, 불교는 현실이 아닌 <내세>의 종교라고 주장하고 다닌 것이다.

한유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스스로 제자백가를 독서하고 과거에 합격한 뒤, 특출한 학식으로 승승장구 승진하던 엘리트 관리였다. 하지만, 지배층이 숭배하는 <불교>에 정면 도전하면서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당나라 덕종에게 지배층의 문란함을 비판하였다가 귀향을 갔었지만, 뛰어난 학식을 인정받아 다시 조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또 다시 지배층의 사상을 비판하여 귀향을 가게 되었고, 이것이 그의 일생에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귀향갔다 돌아왔다, 또 귀향갔다 돌아왔다....

특히, 한유가 미움을 받은 것은 당나라 헌종 때 <황제>의 불교 숭배를 비판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당 헌종이 법문사라는 절에서 석가의 손가락 뼈한마디를 구해 궁궐로 가져온 뒤 제사를 지내고 다시 절로 보낸 일이 있었다. 그것을 본 지배층 인사들과 백성들이 모두 그 뼈한마디를 찾아가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부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그 뼈마디에 기부했고, 백성들을 생업을 포기한채 뼈마디 앞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어찌 인도에서 죽은 석가모니란 인물이 중국 사회 전체를 흔들어놓는단 말인가? 진짜인지 알 수도 없는 석가의 썩어 문드러진 뼈조각이 국가를 망친단 말인가?

한유는 헌종에게 <불교를 신봉한 군주들은 모두 단명했다>는 글을 올리며, 황제를 직접 비판하였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당나라의 지배층들도 비판하였다. 소위 <귀족>이라고 불리며, 남작, 백작, 자작 등 작위를 받고 살아가는 지배층들은 개념(槪念)이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지배층들의 문학인 <시문학>까지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사륙변려체 등으로 구절을 맞추어 술자리에서 돌려말하는 싯구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아무 의미없는 유흥일 뿐이다. 문학이란,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하며, 진정한 <도>를 깨닫기 위한 노력 속에서 나와야 한다.

당나라 지배층이 쓰는 화려하고, 아름답기만 한 문장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요즘으로 따지면 원더걸스나 빅뱅의 노래가 귀에 착 붙게 반복적인 멜로디로 구성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뜻은 아무 의미없는 것과 같다. NOBODY를 백번 외쳐봐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유는 한나라 이전의 고문들을 회복시켜 아무 의미없는 당나라 지배층의 문학을 부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왜 하필 한나라 이전의 고문으로 돌아가자는 고문부흥운동(古文復興運動)을 전개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불교가 한나라 이후에 성행했기 때문이고, 유학이 한나라 때까지 전성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지배층 성향을 가진 한유.... 그 결과는? 오랜 시간 귀향살이었다. 그러나, 인생의 절반이 중앙정권에서 배제된 그였기에 백성들과 직접 만날수 있는 기회도 많았고, 많은 친구를 사귈 수도 있었으며, 성리학의 토대가 된 저서들도 적을 수 있었다.

4. 불교를 비판했으나, 유학도 내 버려두지 않은 한유

한유는 불교, 노장사상 등을 비판했고, 그것을 신봉하는 지배층과 무지한 백성들을 동시에 비판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옛 유학을 그대로 옹호하지도 않았다.

한유는 한나라 이전의 유학들도 비판하기 시작한다. 공자와 맹자의 말씀부터 시작된 고대 유학을 당나라에서 <오경정의>로 압축하였다. 당나라에서는 과거시험의 명경과를 보기 위해 <오경>을 공부해서 암기해야 했다.

하지만, 한유는 그것을 비판한다. 왜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단순히 암기해야만 하는가? 그들의 사상이 절대적이라고 맹신한다면, 불교를 절대적으로 믿는 이들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어떤 사상에 대한 맹신은 결국 교조주의일 뿐이다.

한유는 불교 자체가 나쁜 것이라 말하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불교의 교조주의적 성향을 비판하기 위해 평생을 불교와 싸우며 살아갔다. 그의 역사관은 이렇다.

중국의 전설시대에는 인간 윤리를 지키며 살아간 태평한 시기(태평성대)가 있었다. 그러고, 중국인의 전통 윤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유학>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한나라 이후 불교라는 외래 종교가 유입되어 황제들이 단명하고, 국가의 전성기도 단축되었다. 위진남북조의 긴 혼란기가 불교의 전성기였으며,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황제는 불교를 견제하면서 국력을 낭비하였다.

따라서 고대 유학을 부흥해야 하지만, 시대가 달라진만큼 새로운 유교 철학이 필요하다. 한유는 새로운 유학 철학을 <성선설>에서 찾았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의 성을 인, 의, 예, 지, 신 등으로 구분한 뒤 본성이 착한가를 따지는 철학이었다. 반면, 한유는 성선설, 성악설을 모두 보완하면서 인간의 성품은 3가지로 나뉜다고 말한다.

성 상품

  태어나서부터 선한 성품

성 중품

  선과 악 어느쪽으로나 갈 수 있는 성품

성 하품

  태어나서부터 악한 성품

한유의 책 중에서 널리 알려진 책은 <진학해, 원도, 원성>이라는 3권의 책이다. 진학해는 자서전으로 불교비판에 대한 내용이 많이 실려있고, 원도는 유학의 나아갈 길과 불교의 문제점이 실려있다. 원성에서 성삼품설을 적어두었다고 한다.

5. 불교의 시대가 가고 성리철학의 시대가 오다.

당나라 말, 한유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 성리학의 태동은 불교의 입지를 비좁게 만들었다.

한유의 벗인 유종원은 한유의 철학마저 비판하면서 <유물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역사 발전의 핵심을 <세력>으로 파악하였다. 공자, 맹자와 같은 성인이 역사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 그대로 성인이거나 종교인일 뿐이다. 우주나 음양오행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우주는 단순한 음과 양이 모인 기(氣)일 뿐이다. 기(氣)는 살아있지도 않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우주의 기가 인간행위에 벌을 내린다거나, 복을 준다는 말 자체가 미신일 뿐이다. 결국, 인간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역사를 이끌어가려는 <힘있는 인간 집단>일 뿐이다.

유종원과 한유의 후학인 이고는 스승 한유의 철학에 선종 종파의 <수련법>까지 더하였다. 선종계열의 불가에서는 인간이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맹자가 인간의 성이 모두 선하다고 말한 것처럼, 부처 역시 누구나 착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성인이든, 군자든, 평민이든 모두가 선할 뿐이다. 단지,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외부(기 : 氣)의 영향을 받아서 훗날 선과 악으로 갈릴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선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의 수련법인 <선>을 행해야 한다. 선종의 명상법과 수양법, 좌선과 대화는 학문과 종파를 넘어서 모두에게 유용한 수련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말기, 새로운 유학 사상가들은 불교를 비판하면서도, 옛 유학의 참뜻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 하려고 노력하였다.

새로운 유학은 당나라 귀족층들이 농담따먹기 하듯 적어내는 의미없는 글귀나 고사모음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의 본성을 연구하는 <뜻>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이 고문부흥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문부흥운동은 화려한 문구의 시를 벗어나, 현실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을 철학적 명제로까지 끌어내려는 노력이었다.

당말의 유학자들은 국가 권력이나 지배층과 밀착된 교종 종단을 철저히 배척하였다. 그러나, 신유학 역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뜻을 찾는다는 점에서, 선종 교단의 수련법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였다.

6. 불가와 도가의 철학이 성리학의 <태극>으로 합쳐지다.

당나라 다음으로 등장한 송나라에서는 성리철학의 틀이 완성되면서 사회 지배철학으로 자리잡은 시기였다.

그 역사적 철학을 <태극>으로 정리한 이가 바로 <소강절>과 <주렴계>였다.

절에서 거주하면서 불교철학과 유학을 두루 공부한 소강절은 불교, 도교, 유학의 철학을 두루 정리하여 태극(太極)이라는 불변의 원리를 만들어내었다.

태극이란, 절대 불변하는 우주의 진리로서,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理)와 같다. 태극은 불변하지만, 그것을 알아채는 인간의 정신(神)이 사물을 파악하는 것을 기(器 : 물질)리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과 기는 돌고 돈다. 세상에는 시작점이 있는데, 이것이 정신으로 표현되며, 또 물질로 표현되며 물질이 소멸되면 다시 정신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의 이론과 비슷하다.

또, 돌고돌아 물질이 자연으로, 정신으로 돌아간다는 점은 도가의 무위자연과 추연의 음양오행설과 유사하다.(실제, 소강절이 불교, 도가의 철학을 의도적으로 인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돌고돈다는 법칙 자체는 변하지 않고 불변하는 진리로 남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태극>인 것이다. 태극은 모든 자연과 인간, 우주의 근본 법칙이다.

이 사상을 정리한 이는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인 <주렴계>이다. 그는 선종 선승들과 직접적인 교분이 있었고, 선종의 수양법으로 자신을 단련하면서 살았던 인물이다. 주렴계는 모든 현상의 근본 법칙인 태극에게 2가지 속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움직이는 것을 양(陽)이라 하고, 정적인 것을 음(陰)이라고 하는데, 이 음과 양이 돌고 돌아 우주의 법칙을 회전시킨다는 것이다. 음과 양은 오행(화,수,목,금,토)의 상극을 만든다. 양은 남성, 태양 등을 뜻하며, 음은 여성, 달 등을 뜻한다. 불(火)이 양이라면 나무(木)가 음이 된다.

그리고, 이 양과 음이 상호작용하면 우주가 돌게 된다. 만물의 생성을 주도하는 것이 건(乾)이고, 받아들이는 것이 곤(坤)이다. 하늘과 남자가 건이면, 땅과 여성이 곤이다.

주렴계의 철학은 결국 불교와 도교의 철학에서 파생되었다. 선종에서 말하는 공(空) 사상과 도가에서 말하는 무(無) 사상 등의 철학을 유가 형식에 맞춰 <태극>으로 정리한 것이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불교와 도가에서는 존재의 근거가 되는 불변의 진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논리적인 정신적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렴계는 <태극>이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님자, 여자, 하늘 등의 명칭을 가진 물질이라는 점에서 <유물론>적인 관점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태극의 실체를 리(理)라고 말하고 있다. (태극도설)

7. 선종 철학을 벗어나 이기론으로 향하는 성리학...

동시기를 살았던 장제는 좀 더 세밀하게 불교 철학과 성리학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불변의 본질인 태극 자체를 리(理)라고 말하면서, <리>는 단순히 변화의 법칙을 설명하는 원리라고 말하였다. 실제 우주를 구성하는 실체는 기운(기 : 氣) 인데, 이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존재자라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장제가 주장한 <주기론>은 불교사 입장에서 보면 아찔한 것이 된다. 불교의 <공>사상이나, 도가의 <무> 사상이 전면 부정되고, 우주에 실제 존재하는 기운(氣)이 명백히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장제의 입장에서 <기>란, 우주의 생성부터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며, 지금 이순간에도 변하고 있는 모든 사물인 것이다. 더 이상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은 어려운 말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우주의 기운(氣)를 받아 생겨나서 살아가다가 사라질 뿐이라고 말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내세도, 윤회도 이젠 없다. 기운(氣)은 살아있을 때 활동할 뿐이며, 죽은 뒤 사라질 뿐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정이천, 정명도 형제는 장제의 <기> 사상을 우주와 만물의 일치로 끌어올린다. 그들은 모든 만물에 기운이 있고, 그 기운은 우주에서 내려준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고, 모든 중화인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아는 단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의 기운(氣)은 불변하는 원칙인 이치(理)에 의해 움직이므로, 모든 우주의 기운에는 이치가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일물일리론 : 一物一理論)

이 이론을 정리하여 성리학을 완성한 이가 바로 성리학의 아버지 <주자>이다. 주자는 이치(理)와 기운(氣)의 상관관계를 정리하고, 그것을 중국민족의 우월성과 정당성으로 규정하면서 새로운 정치철학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불교의 교종 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정치철학으로 성리학에 지배권을 빼앗긴 불교는 이미 당나라 지배층이 무너지면서 정치적 실권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제 불교는 민중속으로 파고든 선종과 정토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송나라를 넘어 명, 청 시대로 이어지면서 서민 불교로 자리잡아간다. 그리고, 송나라 이후 역사적 변환점에 새롭게 자리잡게된 철학은 <유학>이었다.

자, 그럼 이 쯤에서 중국 불교이야기도 끝내고 한반도와 일본의 불교로 넘어가보자.

한반도의 불교는 인도, 중국 불교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될 것이다. 고조선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조계종까지의 불교를 역사와 관련해서 살펴보자. 그리고 일본의 불교는 우리 역사와 비교해서 다루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 했듯이 티벳이나 동남아 불교는 동아시아 역사와 큰 관련이 없기 때문에 관련 부분만 조금씩 이야기하려고 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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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지폐에 그려져 있는 이황, 북한에서는 반동분자로 평가받는다.

1. 성리학에 대한 북한 주체 사상식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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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주체사상의 이념도 <마르크스 사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철저하게 북한식 공신주의 사관으로 모든 역사를 바라보는 북한 역사학자들은 남한에서 1000원, 5000원권으로 쓰이는 유명한 성리학자인 이황과 이이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우리가 역사와 윤리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는 이황, 이이에 대한 평가와 북한의 평가는 상당히 다릅니다. 오히려 북한과 우리의 견해가 상당히 다른 반면, 남한과 일본의 견해가 더 비슷할 정도입니다. 그럼 한번 볼까요?

북한의 역사인식은 소위 말하는 <유물론적 사관>입니다. 유물론적 사관을 간략히 말하면, 모든 현상은 눈에 보이는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마르크스의 견해입니다. 사회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르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인간의 마음이 만드어 낸 허구라고 말했습니다.

예로, 신의 존재는 증명된 적이 없지만 인간들은 신을 믿죠? 특히 서구사람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신이란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과 우주에 대한 무지를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의 어처구니 없는 불완전함을 인간식으로 해석하기에는 한계를 느껴 신이란 존재를 창조했다는 것이지요.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는 눈에 보이는 물질, 즉 사회경제적 물질의 소유관계에 따라 발전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토지, 자본 등 눈에 보이는 경제 물질을 놓고,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가 투쟁하면서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말했죠.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역사란, 눈에 보이는 물질(유물론)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신과 같은 존재(관념론)가 투쟁하는 역사이자, 물질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투쟁하는 역사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결국 완성되는 사회는 모든 물질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소유하는 <공산주의 사회>인 것이죠.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의 철학 이념은 물질과 경제 기반에 대한 <유물론적 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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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황은 유물론자가 아니라.

이러한 유물론 중심의 북한 철학은 역사의 주도층을 2가지로 분석합니다.

첫 번째는 관념론의 이념을 가진 자들로, 신이나 우주 법칙 등을 생각하는 비생산적인 계급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기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구질서를 유지하려는 인물들입니다.

두 번째는 유물론의 이념을 가진 자들로, 현실을 직시하고 경제 문제의 해결과 실제 삶에서의 평등한 가치를 찾으려는 자들이 있씁니다. 이들은 피지배계급인 백성을 생각하고 좀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생산력을 높이는 일에 주력하는 자들입니다. 인간이 생산의 주체이자 사회 변화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주체 사상을 가진 이들로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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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조선 성리학자들을 이 공식으로 이해합니다.

북한은 조선 시대 관념론을 이끌어 간 대표적인 학자는 이황이라고 규정합니다. 이황은 관념적인 주자성리학을 이끌어간 자로 규정합니다. 특히 이황은 아무런 사회적 개선책도 내 놓지 않고 윤리나 지배집단의 도덕정치만을 주장한 지배집단의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이황의 주리론적인 성리학을 관념론으로, 이후 조금 개방적인 주기론적 성리학은 조금 유물론에 근접한 학문으로 분류합니다. 이황에서 좀더 유물론적이고 현실론적으로 생각한 자가 바로 이이 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주의파들이었다고 말하죠.

이러한 관점은 철학을 관념론, 유물론으로 나누어 무리하게 분석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황의 업적이 어떤 것이든, 유물론의 입장에서는 이황의 철학이 물질세계와는 관계없는 나태하고 보수주의적인 철학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북한이 주체사상을 정리하면서 이황의 사상을 가장 반동적인 철학사상으로 규정하여 매도한 것은 북한 정권이 추구하는 핵심 사상이 <유물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이황이 주장한 사상 중에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천성이 정해져있다는 <인성론>은 두고 두고 계급차별적 발언으로 매도하였습니다. 사실, 이황이 대표적인 표적이었기 때문에 비판받은 것이지, 북한에서는 성리학 자체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습니다.

성리학의 왕도정치, 국왕과 신하의 공치주의 같은 이념은 백성들의 혁명과 무장봉기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공산주의 혁명 사상과는 맞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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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역시 북한에서 좋은 취급을 받는 학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이의 십만양병설이나 현실개혁 주장 등은 유물론적인 성향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이황정도로 처절하게 규탄받지는 않습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완성하였고, 일본에서는 성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황.... 북한에서는 이 성리학자를 가장 반동분자로 생각한다니.... 좀 의외이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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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3화. 전통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의 대결 속에서 탄생한 석가

1. 철기 시대의 사화 변화와 <정치, 사회> 계급의 성장

최고의 계급인 브라만은 우파니샤드 철학의 이념으로 <브라만>의 정당성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의 인도는 이미 <고대 신의 신비주의> 관념만으로 지배 계급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철기가 보급되고, 생산력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전사계급이 원하는 것은 <넓은 영토>였다. 물론, 신관들이 신의 계시를 내리고 전쟁을 도왔다고는 하지만, 전쟁에서 실제 필요한 것은 무력과 경제력이었다. 무력을 가진 자들이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이었으며, 재력을 가진 자들은 바이샤 계급이었다.

전쟁은 많은 민족간에 혼혈을 가져온다. 더 이상 순수한 <아리아인>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왔다. 크고 작은 부족 국가들이 통합되면서 거대한 영토를 가진 군주국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국가가 발달하면서 엄청난 토지를 가진 귀족과 재력을 가진 상인들 역시 입김이 쎄진다. 특히, 비옥한 겐지스강 유역을 장악한 부족들은 인도 북부를 통일하겠다는 꿈까지 가진 시기였다.

<브라만>이라는 최고 계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비옥한 겐지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점차 <브라만교 반대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 3계급은 브라만에게 반발하였다. 더 이상 특권을 유지하려는 브라만교를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특히, <제사를 지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만이 신과 접촉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었다. 제사 지내는 방법이야 누구나 배우면 되지 않는가?

브라만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직접 제사를 지내며 스스로 교단을 만들어 버린다. 특정 종교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종교의 사상을 벗어나 독자적인 종파가 된 경우를 <사문 : samana>이라고 한다.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원래 인도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문들은 브라만교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만들어갔다.

2. 사문들과 브라만과의 싸움

브라만교의 전통 철학은 우파니샤드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기본 원리는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과 생명의 원리인 아트만은 동일한 것>에서 출발한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중요한 점은,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이 창조주이자, 역사의 진행자이자, 생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브라만은 우주의 법칙 속에서 생명도 만들고, 죽음도 만들며, 윤회도 만든다. 우주는 브라만의 법칙에 의해 돌고 돈다. 해탈은 그 법칙을 알고 있는 <브라만>만이 가능하다.

사문들은 브라만을 반대한다. 고행을 통하여 힘든 과정을 겪으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해탈이 가능할텐데 왜 <브라만>만 해탈한다고 하는가? 또, 착한 일을 하면 다음 생애에 <브라만>으로 태어난다고 하는데,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 지금의 선악과 내세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과격한 사문에서는 아예 <육체>가 죽으면 선악이 죽는다는 <유물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문은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들을 거론하면서 <영혼>도 결국 물질 현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혼>이 어떻게 현실과 격리될 수 있는가? 살이있는 인간들도, 자 <영혼>을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적인 사문인 <자이나교>의 <바르다마나>는 브라만교의 <선행> 개념 자체를 부인한다.

인도 나타족 왕자(2계급)인 바르다마나는, 착한 일을 한다면서 하늘에 제사나 지내는 형식적인 브라만들이 해탈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해탈>는 깨닫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정화>해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1계급들이 잘나서 1계급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아무도 증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해탈은 신분과 상관없이 <고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하고, 살생을 금지하며,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해탈의 기본 조건 아니겠는가?

자이나교의 교리는 단순하다. 사람은 살면서 실수를 한다. 고의든, 우발적이든 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영혼은 더럽다. 따라서 엄격한 계율 속에서 고통스러운 <고행>을 한다면 영혼이 정화되면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이나교는 대부분의 브라만 의식은 인정한다. 그러나, 브라만들만의 특권을 반대하면서, 모든 계층이 고행을 통해 <구원>받는 다는 교리를 설파한 것이다. 수많은 사문 중에서 지금까지 인도인들에게 살아남은 사문은 <자이나교>밖에 없다. 그 핵심은 <고행>이었다.

<자이나교-아디나타사원>

<자이살메르사원>

티르탄카라상

3. 도시 공화국에서 태어난 석가

기원전 5세기, 강력한 철기를 가지고, 인도 북부(겐지스강가)에 살아남은 국가는 모두 16개국이었다. 그러나, 강대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는 모두 <군주국>이었다.

군주국에서는 국왕과 브라만들이 독단적으로 정치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수드라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윤회설>을 강조하였다. 수드라인 너희가 천민으로 태어난 이유는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너희는 이번 생애 내내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이 무렵, 석가는 기원전 566년, 도시국가인 네팔(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 석가가 살았던 지역은 크샤트리아와 바이샤가 많았던 도시 지역이었다. 당시 도시 국가에서는 2, 3계급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공화 부족들은 군주 부족과 달리 모든 일을 부족내 유력자들이 모여 회의하고 결정하였다. 신라의 화백회의와 같은 <만장일치제>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반면, 군주 부족들은 군주와 신관이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공화국의 부족국가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국가들에 의해 하나하나 멸망해가고 있었다. 곧, 강력한 군주가 인도 북부 전체를 통일할지도 몰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석가는 브라만 신관들의 독선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리고, 약소국가의 2계급으로 태어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을까?

4. 석가 <사문>의 형성

석가는 브라만의 가르침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브라만에서 말하는 <생명과 윤회>를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는 생로병사를 느끼고자 여러 브라만 수행자들을 만났다. 그러던 중 29의 나이로 출가했다. 그 때, 갓 태어난 석가의 아들이 <라후라>였는데, <라후라>란 <장애물>이란 뜻이다. 석가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난 것이다.

석가가 맨 처음 스승으로 모신 사람은 선정주의자들이었다. 선정주의자들은 <착한 일>을 많이하면 <해탈>한다고 말했다. 석가는 모든 이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착한 일을 아무리 해도 해탈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길을 떠난다.

석가가 두 번째로 택한 길은 <고행>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고행을 해도 <해탈>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석가가 마지막으로 택한 길은 <명상>이었다. 보리수 밑에서 명상을 하던 석가는 35의 나이에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다. 보리수란, 깨달음의 나무란 뜻이다. 또, 깨달은 사람을 <붓다>라고 하고, 성자를 <모니>라고도 하는데, 보통 <석가모니> 또는 <석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가 명상으로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중도>였다. 선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극심한 고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가야한다는 것이다.

석가의 <중도>사상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는 구름과도 같은 제자들을 얻어 <교단 : 승가>를 만들었다. 승가란, 모든 자들이 평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 집단을 말한다.

석가가 만든 승단은, 공화국 체제와 비슷하다. 바르나 제도와는 달리, 모두가 평등하며, 서열은 먼저 들어온 순서로 정한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뭉쳐진 그룹집단인 것이다.

불교도는 네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남성 출가자(비구), 여성 출가자(비구니), 남성신도(우바새), 여성신도(우바이) 이다. 이들간의 차별은 없다. 물론 가장 똘똘한 인물들을 10대 제자로 두긴 했지만, 그것은 어느 한 분야의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을 능력별로 인정해 준 것이다.

석가 사후, 석존의 가르침은 대부분 구전이었기 때문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을 정리한 사람은 100년 후 아소카왕 시대의 제자들이었다. 부처의 가르침을 경, 율법서를 율, 주석을 논 이라고 분류하여, 경,율,론 3장의 불교 지침이 성립된 것이다.

석가시대의 가르침을 보통 <원시불교 : 초기불교>라고 말한다. 원시불교란, <암송한 것>을 기억하여 가르침을 남긴 것이다. 석가와 같이 배우고 암송한 것을 함께 기억하고 되새겨 모아 적는다. 초기 석가의 가르침은 <아함경전>에 실려있다. 훗날, <아함경>으로 불리는 경전은 중국과 한반도에도 전파되었다. 경이 가르침이라면, 율은 율법서이다. 율은 출가자들이 지켜야할 조문들을 모두 모아놓은 조문집이다. 물론 주석인 <론>은 후대에 달아놓은 것들이다.

5. 석가의 가르침

석가의 핵심 가르침은 <번뇌>였다.

번뇌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통과 고민>을 말한다. 보통 <고집멸도>라고 불리는 이 번뇌는, 고(고통), 집(고통의 원인), 멸(고통의 소멸), 도(소멸의 법도)를 총칭한다. 이 4가지 고통을 해결하는 과정을 <4제>라고 한다.

석가는 이 고통을 없애는 방법으로 8정도를 제시하였다. 8정도란, 고통을 없애기 위해 8가지를 바르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지침이다.

올바른 견해(정견), 올바른 생각(정사유), 올바른 언어(정어), 올바른 행동(정업), 올바른 생활(정명), 올바른 노력(정정진), 올바른 기억(정념), 정신통일(정정) - 이 8가지를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8정도를 이끌어가는 방법이었다. 브라만에서는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에서 충실하기 위해서 <계급에 맞는 착힌 일>을 하라고 말한다. 반면 자이나교 같은 사문에서는 철저하게 <고통스런 고행>으로 악업을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래야 <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는 말한다. 선정이건, 고행 이건 단지 하나만으로 <해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중도>를 걸어야 한다고.... 그럼 왜 중도만이 고통을 없애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정>은 영적인 측면을 주로 강조한다. <고행>은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정신과 물질이 연결되어 일어난다.

석가가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은 상호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깨닫는 다는 사실 조차,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어떤 일을 겪지 않으면 깨달음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으로 얽혀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을 <연기>라고 한다.

우주가 단지 브라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물 자체가 인과관계에 의해 얽혀서 움직이고 있기에 절대적인 근본이라는 것은 없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데, 어떻게 아트만(생명)이라는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연기설>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존재하는 것이 같이 존재한다.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그 현상의 원인이 있다. 원인이 없다면, 현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만물은 서로 의존하여, 서로의 원인도 되고 결과도 되는 것이다. <연기>의 본질을 알게 되었을 때,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 <중도>를 모르고 한가지 길만을 추구하는 것을 <극단 : 탁자의 모서리>라고 말한다. <극단>은 <해탈>이 아니라 자신을 망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연기>의 세계를 깨닫는가?

석가는 깨달음을 아는 방법으로 삼법인(3개의 진리의 도장)을 말한다. <연기>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원인이 되어 돌고 돌기 때문에 결국 그 본질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이라는 3개의 진리로 표현된다.

제행무상이란? 제행은 <움직여 변한다>는 뜻이다. 무상은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여 변하므로 결국 인연에 의해 연결된 세계는 사간에 따라 변하게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다.

제법무아란? 제법은 <율법, 진리>를 말하고, 무아는 <나란 없다>는 뜻이다. 즉, 나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나란 육체와 정신, 생각, 역사 등등이 어떤 원인과 결과로서 만들어낸 순간적 존재이다. 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나이며, 내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아트만)이란 없다. 즉, 보편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열반적정이란? 열반은 <해탈>의 불교식 표현이고, 적정은 <소멸>을 말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연기>로서 돌고 도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고통과 번뇌>가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8정도를 행동으로 옮기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고통>이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지면 해탈한다는 것이다.

6. 석가의 가르침을 남긴 마가다국

석가의 이러한 불교 철학과 종단(승가)은, 갠지스 강 유역에 위치한 마가다국에 의해 보호되었다. 석가는 살아 생전에 갠지스 강 유역의 마가다 지방에서 깨달음을 찾으며 고행을 했었다. 또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포교 거점으로 삼았던 지역이 마가다 왕국이었다.

마가다 왕국은 북인도 16대 강국 중의 하나라 불교, 자이나교의 발상지로 불리는 국가이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석가를 신하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토를 주겠다는 말까지 했던 왕이다.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은 그 이후 불교와 자이나교의 성지가 되었다.

갠지스 유역을 통일했던 기원전 5세기의 마가다국과 달리 기원전 4세기의 마우리아 왕조는 북인도 전체를 통일하면서 불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마가다 왕국의 후손으로서 아리안 전통 직계인 마우리아 3대왕 아쇼카는 불교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석가의 연기설은 당시 통일국가 이념으로도 제격이었다. 연기설이란, 모든 사물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연결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것은 각 부족별로 흩어져있던 당시 사상 체계를 통합하는데 딱 좋은 사상이었다.

개체는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의 인과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즉, 개별적인 것들은 전체적인 것의 일부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부족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들은 좋던 싫던 다른 부족과의 관계에서 살아가게 되고, 궁극적으로 통일된 전체에 의해 규제받게 된다. 전체라는 것은 개별 부족을 넘어선 중앙집권국가의 지배자를 뜻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은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국가도 인연을 맺고 있다. 강력한 국왕이 출현한 것도 그 인과 관계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국왕은 모든 백성을 때려잡는 국왕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는 슬기로운 지배자이다. 브라만 신앙에서 내려오는 정법(정의)의 지배자를 <전륜성왕>이라고 한다. 즉, 마우리아 왕조의 절대자 아쇼카 왕이 곧, 전륜성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쇼카 왕은 이 전륜성왕의 브라만 신화와 불교를 연결시켜 버렸다. 전륜성왕의 통치를 돕기 위해 <미륵불>이 지상으로 내려와 백성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로서 <미륵불> 신앙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신앙이 등장하였다.

아쇼카 왕은 전륜성왕과 미륵불 사상을 몸으로 실천하였다. 자신이 정법을 구현하는 왕이 되어 북인도를 통치함은 물론, 자신의 분신들을 주변국에 보내 불교의 참 뜻이 무엇인지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남부의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도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한다. 멀리는 이집트,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불교라는 종교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소카 왕 때의 불교는 <소승불교>라는 초기 불교였다. 아직 불교는 출가자들 위주의 불교였고, 국왕은 불법을 지키는 호법왕이라고 여겨졌다. 부처가 되는 것은 개인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함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전륜성왕

그러나 아쇼카 왕 사후, 기원전 2세기 무렵 불교는 또 다른 격동을 겪게된다. 아쇼카 왕이 죽은 뒤 약해진 마우리아 왕조는 서쪽에서 밀려온 이민족들에 의해 분열된다. 그리고, 만민 구원을 외치는 서방 종교와 서아시아 밀교 등이 들어오면서 <대중 전체의 구원>을 생각하는 불교가 등장한다. 이 때의 불교를 <대승 불교>라고 하며, 대승 불교는 비단길 등 교역로를 따라 중국과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대승 불교 이야기와 동아시아 불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여기서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나라까지 들어오게 된 <한국식 불교> 이야기이다. 동남 아시아로 내려간 소승 불교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겠다. 중국과 한반도로 넘어온 종파를 위주로 <대승 불교> 이야기를 좀 하고, 중국, 한반도, 왜로 넘어간 불교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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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 I S T O R I A > 환타스티아 (6장)

서구의 신화에 대한 깊은 환상 - 드루이드

드루이드에 대한 세가지 관심

<드루이드>는 유럽의 신화에서도 특별한 존재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신화 속의 신화>로 자리잡고 있는 존엄한 사제라는 이유 때문이죠. 환타지물과 같은 유럽 중세의 이야기 속에서 드루이드는 유럽 주류와는 다른 <신화 속에서도 신화적인> 이야기로 다루어집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록이 거의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신화를 이야기할 때,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경외감이나 공포심을 갖고 이야기를 바라봅니다. 알려지지 않은 그 이야기에는 어떤 숨은 뜻이 숨어있을까 하고... 그러나 고대 신화의 큰 맥락은 인류가 살았던 비슷한 시기의 다른 곳 이야기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드네요.

드루이드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최근에는 크게 3부류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첫 번째 사람들은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할 연구자들입니다. 신화와 민속학, 유럽에 대한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드루이드라는 존재와 그 존재가 중세 유럽에 나오는 문건들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겠죠. 특히 문학과 시가에 많이 나오니까요.

두 번째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게임매니아>들입니다. 환타지 소설에 드루이드는 선과 악을 동시에 행하는 이중적인 사제로 등장합니다. 또 <와우>와 같이 대중화된 RPG 게임에서도 드루이드는 자연 속에서 치유의 힘을 갖는 사제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소설과 게임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내용이 역사와 완전히 일치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드루이드의 배경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는 듯 합니다.

세 번째 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드루이드라는 단어에 대한 관심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그리스도교가 일반화 되면서 신화적 존재인 드루이드 사제나 고대 종교에 대한 왜곡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중세 교부철학자들은 가톨릭 교리와 다른 모든 신들의 역사를 이교의 역사로 단정했기 때문이죠. 왜곡된 종교적 공포심은 그 종교에 대한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드루이드>에 대해 진실을 알 수 없을까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이 <드루이드>에 대한 관심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초기 사회에서 <신관>의 존재

드루이드가 무엇인가를 정의내리는 부분을 저는 다른 서적들이 접근하는 것처럼 신화, 종교적인 접근이 아닌 역사적인 (개인적인) 생각으로 적어볼까 합니다.

인류 역사 단계상 국가가 성립한 단계는 (대부분이) 청동기 시대였습니다. 청동기 때 금속기 문명이 등장하면서 <금속기는 무기 용도>로 가장 크게 활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도의 물질 문명이 시작된 것과 달리 초기 금속문명 시대의 정신적 수준은 그다지 높지 못하였습니다. 부족을 다스리고 국가를 세워 나라를 통합하려는 시기에도 여전히 석기시대의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이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남아있었습니다. 실제 유럽에서 크리스트교가, 아시아에서 불교가, 중국에서 유교이념이 등장하기 전까지 석기시대의 종교는 개별적으로 그 지역에서 큰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이러한 석기시대의 종교적 이념은 그 지역에 따라 독특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자연환경과 사회구조에 따라 숭배하는 대상이 각기 달랐죠. 그러나, 초기 국가시대에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종교적 특장인 <신관>, 즉 <무당>이 존재하였다는 점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삼한 기록으로 자주 나오는 종교적 제사장 <천군>, 인도 신화의 <신관>, 유럽 신화에서의 <사제>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초기 국가 시대에는 <종교적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입니다.

초기 국가단계의 사회에서 종교적 지배자가 중요시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인류의 사회발전단계를 설명한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물론자인 마르크스는 <종교>의 근본 원인을 <공포>에서 찾았습니다. 인류는 자신이 알 수 없는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외심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신>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불합리한 문제를 가장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도구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알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무엇인가를 <신의 이름으로>라는 말 한마디면 간단히 해결되니까요. 초기 국가 사회에서는 동북아의 무당(샤먼)이나 인도를 경계로 서부의 사제(신관)계급이 신의 명령을 전달하는 매개체였고, 중세시대에는 <교황>이 신성을 상징하는 매개체였다는 것이죠.

초기 사회에서의 <사제>란 계급은 어느 지역이든 <경외감>과 <공포심>을 동시에 주는 절대자였습니다. 그러고, 그 중 북유럽와 브리튼 지역에서 활동했던 켈트족의 사제가 바로 <드루이드>입니다. 드루이드는 신화적 존재로 격상되었지만, 실제 초기 사회에 볼 수 있었던 <사제> 계급이었을 뿐입니다.

인도 신화에서 유럽, 북유럽 신화로...

학자들은 드루이드의 기원을 인도 문화권의 <사제>의 개념이 전파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초기 국가시대 중화권-만주, 요녕-한반도를 아울러 신관계급이 존재했던 것처럼 인도 문화권에서도 사제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인도 문화권에서의 초기 사제는 하늘과 땅을 중제하는 <무당 : 샤먼>의 개념이었습니다.

초기 인도 신화의 원형으로서 <아그니>라는 신이 있었는데, 이 신은 신과 인간을 중제하는 샤먼이었습니다. 이 신은 신들의 사자로 인간을 방문하고, 인간이 바치는 제물을 하늘의 신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초기 국가시대 각 국의 신관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짐승이나 인간 자체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와 비슷한 <제천행사>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그니는 인간으로서의 샤먼이 아니라 우주의 도처에 존재하면서 인간의 생활을 지켜보는 절대적인 신으로서의 샤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그니라는 말 자체가 <불>을 뜻하는 단어로서 인류를 지켜주고 문명을 발전시켜준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아그니와 같은 인도의 신은, 아시아 유목계 민족의 이동과 함께 인도-유럽문화권의 사제 개념으로 정착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예로, 동양에서의 힌두교 신은 브라만이 사제 계급으로서 역할을 한다면, 서양 켈트족의 드루이드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제로 발전했다고 보는 관점이죠. (실제 기록은 없고, 단지 고대 민족의 이동경로연구나 종교적 유사성을 근거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갈리아 전기에 등장한 드루이드...

드루이드라는 사제 계급이 역사에 등장하면서 이후 환타지 등 문학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바로 유명한 로마의 정복자 시저(카이사르)의 저서 <갈리아 전기>에 캘트와 게르만의 존재를 적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시저의 기록에 의하면, 고대 캘트족들은 전사계급과 사제 계급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이들 중 자유민들은 <전사단>을 구성하여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 전사단은 국가적 조직을 이루지 못하고 단순한 수준의 <민회>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민화는 정치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토론하고, 자유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의 단체였다고 합니다. 캘트인 중 하류 계급은 전사계급을 위한 식량 조달이나 일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캘트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계급은 <사제계급>인 드루이드였습니다. 이들은 <신의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샤먼의 역할을 하는 자들이었으므로 사회적 지위는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의 심판은 절대적이었고, 신의 심판에 불복종하는 사람은 <종교적 자유>를 박탈당하였습니다. 당시 원시 사회에서 종교적 자유의 박탈은 신과의 관계를 끊는 것으로 가장 큰 형벌이었다고 볼 수 있죠. 이들은 영혼불멸 사상을 믿었기 때문에 영혼을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드루이드>는 당시 가장 큰 특권층이었습니다. 삼한의 <소도>와 같이 제정이 분리된 사회에서 자신들만의 성지를 가지고, 신탁을 받았는데 이러한 신탁이나 법적 해석은 당시 사회의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범죄자들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기도 하였고, 가난한 자들을 산채로 제물로 바치는 풍속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독재적인 풍속은 훗날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이교도>라고 탄압받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드루이드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하면서 신의 명령을 지상에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고대 이집트의 신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종교관, 인도의 브라만, 동아시아의 신관이 모두 그런 역할을 하였죠. 이러한 초기 사회 신관들의 특징은 단순히 제사만 지내는 신관이 아니라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식인층이었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드루이드 역시 마찬가지였죠. 세습적인 계급으로서 드루이드는 사제이자, 신의 심판을 맡는 재판관이었고, 신의 명령을 전달하고 교육하는 교육자이자, 사회적 불만세력을 제거하는 조직체의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천제를 보고 천기를 읽거나, 달력을 제작하는 역할도 하였고 예언가로서의 역할도 했으며, 병자를 고치는 치유술사에서 마법사의 역할까지도 하였습니다. 판타지 소설에 나올만 하죠.

캘트족의 멸망과 드루이드 죽이기의 시작

쇠락한 민족은 그 종교성도 의심받기 마련입니다. 기원전후를 기점으로, 로마가 유럽 북부지방까지 세력을 떨치면서 켈트족의 종교인 드루이드교도 심한 타격을 받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갈리아 지방 통제 정책으로 개별적인 종교를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황제숭배>와 <로마교>가 유럽 북부지방에 들어온 것이죠. 제우스신을 정점으로 한 로마교는 무당역할을 하는 드루이드의 이념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드루이드가 사교도로 규정된 것은 유명한 교부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 때 부터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본질과 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종교도 부정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크리스트교를 위한 유명한 저서인 <신국론>에서 <하느님> 이외의 신을 인정하는 이교도의 사제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교도들의 생활에 대해 이전과 다른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교도들은 사람을 산 채로 묻어 죽인다던가, 심장을 먹는다던가, 난잡한 섹스를 즐긴다던가, 야만인같은 행위를 즐긴다던가 하는 내용들이 추가됩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문명인들인 로마인을 자극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의 공포심>을 이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종교의 근원을 <공포>라고 했듯이 교부 철학자들은 야민인들의 종교가 가진 <무서움>을 극대화하여 그 종교에 대한 반대 개념의 선으로 <크리스트교>를 강조한 것입니다.

특히, 로마 시대의 탄압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아일랜드 지방의 드루이드 사제들 조차 <하늘과 지상의 연결자>로서의 신성한 권한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빼앗기고, 드루이드는 이제 <공포를 낳는 이교도>로 낙인찍혀 서서히 사라지게 됩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들어오면서 원시종교인 샤먼과 토템이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정착되면서 원시 종교인 드루이드 등이 사라지게 된 것이죠.

드루이드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의 양면성

중세시대 캘트의 문학을 미화하는 여러 작품들은 드루이드를 신화적 소재로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드루이드는 아일랜드와 브리튼, 캘트 전설에 종종 등장하는데, 그 신비함은 환타지적인 소재로 딱이었죠. 온라인 게임인 <와우>에 등장하는 드루이드는 자연 속에 은둔하는 판타지 속 신화의 존재로 등장하면서 드루이드의 배경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 환타지 속의 드루이드는 선과 악의 양면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드루이드는 치유의 힘을 사용하여 밝음의 길을 걸으면서도, 반면 강력한 어둠의 힘을 이용하여 반대세력을 굴복시킨다고 표현합니다. 절대 선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설정이라는 것일까요?

반면, 중세이래 그리스도교, 특히 기독교에서는 드루이드를 마녀사냥의 도구로 이용하였습니다. 사탄의 힘을 이용하는 심령술을 행하는 자, 악령을 부르는 제사의식을 행하는 자 등을 드루이드로 설정한 것이지요. 할로윈 행사에 등장하는 각종 기괴한 호박머리와 가면 등은 드루이드의 악마성을 상징하는 물품으로 이용됩니다. 물론 드루이드 뿐 아니라 각종 초기 종교들이 중세 이래 <사탄의 종교>로 낙인이 찍혀 있기도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종교가 사람의 공포심을 극대로 자극한다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 드루이드를 닉인찍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주류 종교의 반대 개념으로 역사에 묻힌 종교를 꺼내 <악마의 종교>로 낙인찍어 버리면 주류 종교의 신성함이 돋보이게 된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죠. 실제 <악마의 종교>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중세시대 교황에 대한 믿음과 의존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드루이드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2가지입니다. 게임매니아들이 생각하듯이 재미있는 신화적 존재이자 즐길 수 있는 소재거리로서의 존재, 또 하나의 관점은 <악마의 속삭임>을 전해주는 오컬트 종교... 어느 쪽의 입장이던지 서구적 신화인 드루이드는 그냥 서구 사회 역사 속의 산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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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