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퀴즈
 

3문제입니다. 즐겁게 풀어보아요!!!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 난이도는 1하, 2중, 3상으로 구성됩니다.

 

 

1. (하) 다음은 어느 동양 사상가의 유명한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꿈에 술을 마시며 즐거워했던 사람이 아침에는 섭섭해서 웁니다. 반면, 꿈에서 울며 슬퍼했던 사람은 아침이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사냥하러 간답니다.
 

우리가 꿈을 꿀 때에는 그것이 꿈인 줄 모릅니다. 심지어 꿈 속에서 해몽도 하니까요. 깨어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드디어 크게 깨어나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한바탕 큰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항상 깨어있는 줄 알고 주제넘게도 이런 것들을 분명히 알고 있는 체 합니다. 임금이 무엇이고, 말과 소를 키우는 사람은 무엇인가요? 아, 정말 꽉 막혀도 한참이네요.

 

공자도, 당신도 다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공자나 당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역시 꿈일 뿐입니다. 이런 말이 괴상하게 들린다구요? 만번의 세상 후에라도 이 뜻을 아는 큰 성인을 만난다면 그 긴 시간도 아침저녁 하루 해에 불과한 것처럼 짧게 느껴질 것입니다.

 

나비가 된 꿈을 꾸었습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내가 나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지 않을까요?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나비인 내가 사람의 꿈을 꾼 것인지 구별해야 하는 이런 것을 '사물의 변화'라고 말합니다.

 

 

1. 위 지문에 나오는 나비의 꿈을 통해 세상과 사물은 서로 연결되어 돌고도는 인연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집착을 버려야 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지문과 관련된 철학자는 누구일까요?
① 맹자            ② 노자
③ 순자            ④ 장자            ⑤ 한비자

 

 

2. (중) 다음 고사와 관련이 있는 조선의 임금은 누구일까요?

생모인 윤씨는 사림파와 훈구파의 다툼 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바른 말을 하는 관리들이 싫었습니다. 홍문관, 사간원과 같은 삼사 관리들을 멀리했고, 성균관을 놀이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균관에서만 놀까요? 백성들의 집을 부순 뒤 사냥터로 만들어서 놀기도 했답니다.

 

아버지인 성종을 닮는 것이 싫었던 것인지 한글 사용도 금지시켰습니다. 그는 궁궐에 '흥청'이라는 여인들을 선발했습니다. 흥청은 춤과 노래를 담당하는 가수들을 말합니다. 나이어린 여자아이들을 가수로 뽑는 시험을 본 뒤 잔치를 벌이고 놀았답니다. 조선시대 k-pop 오디션이라고나 할까요?

 

이것을 본 백성들은 '흥청흥청' 하다가 나라가 망하는 '망청'이 들겠다라고 탄식했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없이 노는 것을 '흥청망청'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흥청망청' 노는 자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켜서 왕을 폐위시키는 조선시대 최초의 사건이 일어났답니다.

 

 

2. 위 고사 흥청망청과 관련있는 조선시대의 임금은 누구일까요?
① 광해            ② 정조
③ 인조            ④ 단종            ⑤ 연산

 

 

3. (상) 다음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조선시대, 성균관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출석 및 학습 확인을 해주는 동그라미를 주었다. 그것을 원점이라고 하는데 원점이 300점을 넘어야 과거시험을 볼 수 있었다.

 

지방 사람들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수도까지 걸어가야 했다. 선비들은 과거만 합격하면 개인과 가문에 영광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거 시험을 보러가는 길을 '영광을 보러간다'라고 말하곤 했다. '영광을 보다'를 한자어로 관광(觀光)이라고 한다.

 

즉, 오늘날 여행을 한다라는 뜻의 관광은 원래, 과거를 보기 위해 멀고 험한 길을 뚫고 올라간다라는 뜻이었다.

 

관광의 길은 매우 멀고 험했다. 먼저 소과는 고향에서 치루는 1차 시험(초시)를 통과한 뒤, 2차시험을 수도인 한양(복시)에서 보았다. 소과에 합격해야 성균관 대학에 진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오늘날 수능과 같은 시험이다.

 

반면, 공무원 취업을 위한 시험이 대과였는데, 대과는 1차시(초시), 2차시(복시)를 치른 뒤, 임금이 최종 순위를 결정(전시) 했다.

 

 

3. 위 과거시험에 대한 이야기 중 틀린 것은 무엇일까요?
① 대과 전시에서 1등을 한 사람을 장원 급제라고 했다.
② 전체 1등은 어사화를 쓴 채 말을 타고 3일동안 풍악을 울리는 축하 행사를 열었다.
③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치르지 않고도 집안 인맥으로 특채 채용할 수 있는 제도도 있었다.
④ 조선 선비들은 윤리를 강조했기 때문에 과거 시험을 볼 때 부정행위가 거의 없었다.
⑤ 사서삼경은 문과 시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학경전이었다.

 

 

아래 제출하기를 눌러서 정답을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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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사상의 이해 - 장자 3

장자는 누구인가?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아니, 난세는 엄청난 철학자들도 만든다구....

 

장자가 태어난 시기가 기원전 4세기라고 말했지? 이 무렵은 중국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다는 '전국시대'가 시작된 난세였어.

(기원전 4세기) 송나라의 위치를 보면 안쓰럽다.

 

자, 그럼 장자가 태어난 송나라의 위치를 위 지도로 살펴볼까? 가정환경... 아니, 국가 환경을 좀 알아야 장자가 왜 그렇게 철학에 뛰어났는지 알 수 있을테니 말야.

 

당시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였어. 춘추전국이란 용어는 학자들이 만든 저서에서 비롯된거야.

 

춘추란 말은 공자가 엮은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에서 비롯된 말이지. 그럼 전국이란? 훗날 한나라의 유향이 쓴 '전국책'이란 역사서가 있는데, 전국시대에는 각종 '책략'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시대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그럼 왜 굳이 춘추랑, 전국을 나눠둘까?

 

초기 '춘추시대'는 그래도 의리가 좀 있었어. 춘추는 봄, 가을을 뜻하지? 시대가 흘러가면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람들이 살아가던 시대야. 자기가 강하다고 길가는 넘 아무나 두둘겨 패면 그건 깡패잖아?

 

강한 나라도 때로는 약한 나라를 보호해주고, 정통왕조인 주왕실을 보호하면서 자신이 훌륭하다는 '인격'을 자랑하던 시대가 춘추 시대야. 어려운 말로,지지자들을 모아서 함께 세상을 보호한다는 '혈맹'의 시대라고도 하지.

 

근데, 장자가 태어난 전국 시대에는 사정이 좀 달라졌어. 깡패들도 지키는 의리와 기강이 무너졌거든. 당시 가장 강대국이 진나라였는데, 진나라를 모시던 3명의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켰어. 쉽게 말해 '형님'을 모시던 넘버 쓰리(3)들이 지들이 두목 해보겠다고 배신을 한거지.

 

즉,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가 형님국가인 진나라를 공격해서 국가를 일으켰는데, 이 때부터는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된거야. 형님도 사시미칼로 찔러 죽이는 세상에 어떻게 남들을 믿겠어?

 

이제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테고, 약한 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모략과 야비함을 총동원해서 살아남아야지. 이 때부터를 전국시대라고 불러. 전국시대를 상징하는 용어는 '혈맹'이 아니라 '군웅'과 같은 단어야. 힘쎈 놈의 시대라는 뜻이지. 특히 7명의 깡패가 이끄는 강대국을 전국 7웅이라고 불렀어.

 

하지만, 우리가 중국 역사를 그리 깊게 알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보통 일반인들은 그냥 '춘추전국시대'라고 묶어서 불러도 돼. 지금은 장자를 좀 알아야 하니깐 자세히 설명한 것 뿐이야.

 

 

자자, 이제 내용 좀 알았으니 지도 다시 보자. 장자가 태어난 송나라의 위치는?

 

와우... 그 전쟁의 한가운데 위치한 동네국가야. 패자인 진나라 및 제후국인 한, 위, 조가 옆에 붙어있고  남방의 패자인 월나라, 초나라가 송나라를 감싸고 있잖아. 즉, 7대 깡패조직의 딱 경계선에 송-나이트클럽 하나가 조그맣게 버티고 있는 거랑 같아. 그 나이트는? 뭐, 금방 접수 당하겠지.... ㅋㅋㅋ

 

결국, 백년이 지난 뒤 약소국인 송나라는 강대국들에게 허구헌날 핍박 당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거지.

(기원전 3세기) 송나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장자는 약소국인 송나라에서도 조그마한 고을인 칠원의 담당자였어. 본인은 똑똑하고 책도 많이 읽었지만, 미래의 운명은 뻔했던거지.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 벼슬을 한다는 건, 조만간 맞아죽거나, 전쟁통에 죽거나, 백성 보호한다면서 죽거나.... 어.. 어찌되었던... '죽거나' 뿐이거든.

 

송나라에는 사전지지(四戰之地)말이 있었어. 사방이 적 뿐이라서 버틸 수 없다는 거지. 송나라는 춘추전국시대를 통털어서 가장 전쟁이 많았던 지역이고, 기아와 유망이 끊이지 않은 나라였지. 중국에서는 송나라 사람은 '바보'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야.

 

사기의 일화를 하나 들어볼까? 어느 날, 초나라 위왕이 장자에게 재상 자리를 줄 테니 송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망명오라고 제의를 했지. 그러자 장자는 이렇게 말했어.

 

제사에 길러질 소가 있는데,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이고, 귀하게 길러지지. 그런데 마지막 죽는 날은 비단 옷을 입혀서 묘지에 보내는 거야. 그 때가 되어서 소는 평범한 돼지를 부러워하다가 죽게 된다는 거야.

 

장자는 소에 비유해서 이렇게 말했어.

 

돼지처럼 더러운 오물 속에서 뒹굴지언정, 나라일에 얽매이는 것은 싫다. 벼슬을 하느니 내 뜻대로 살겠다.... 뭐 이런 말이었지.

 

결국 장자의 철학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 탄생한거야.

 

어떻게 하면 끊이지 않는 전쟁, 모욕과 굴욕, 약자의 비애, 굶어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인간이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그것이 장자 철학의 출발점이었어.

 

그 결론은 간단해. 공자, 맹자, 한비자 등등 철학자들이 윤리나 규범, 법, 제도 등을 통해 세상의 상식과 규칙을 논했다면, 장자는 이 세속적인 가치를 우스꽝스러운 해학으로 비웃어 버리는거야.

 

아무리 근엄한 성인도 그가 우화로 표현하면 광대가 되어 버렸지. 절대 미인은 해골바가지와 동급이 되었고, 고상한 철학은 똥과 동급이 되는 거지. 그것은 단순히 증오에 차서 막 던지는 풍자가 아니었어. 상식적인 사고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오만하고 치졸한지를 정확히 꿰뚫고 핵심을 풍자하는 거지.

 

그 풍자는 험난한 시대를 살았던 장자가 인간의 추한 모습, 인간의 한계, 인간의 이기심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거야. 그럼 이제 '장자'라는 책의 유명한 구절들을 통해 장자 철학의 실제 모습을 한번 살펴볼까?

 

다음 편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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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사상의 이해 - 장자 1

 

'장자' 들어가기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은 무엇인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어떤 이데올로기도, 윤리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소국들의 입장이었다. 고대 철학은 그 경계선에서 출발한다.

 

사상사의 출발점에는 공통적인 현상 한가지가 있어. 그게 뭐냐구?

 

그것은 철학의 출발점이 '도시국가'가 출현하는 '청동기' 시대라는 것이지.

 

먼저 석가모니!!!

 

석가는 인도의 공화정이었던 소왕국의 왕자 출신으로서 소국들의 대립과 거대 왕국과의 마찰이 있던 브라만 시대의 인물이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당시 인도는 제국을 꿈꾸는 브라만 집단과 작은 소국을 꿈꾸는 공화정 집단들이 대립하고 있었지. 스타워즈의 제국과 공화국의 대립처럼 말야.

 

그런데 브라만이든, 공화정 집단이든 웬지 신라시대 귀족이랑 화랑들 같았어. 골품같은 고정적 신분이 있었지. 브라만교에는 카스트 제도 있는거 알지? 공화정에도 신라의 화백회의처럼 만장일치 귀족 회의가 있었지.

 

다음 공자!!!

 

공자와 장자, 한비자와 같은 사상가들 역시 춘추전국시대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공동된 고민을 했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인간이 사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밥먹고 그 고민만 했는지 후대에 남긴 어록도 무지 많아.

 

그런데, 그 정의로움을 법에서 찾는지, 도덕에서 찾는지, 자연에서 찾는지, 공리에서 찾는지는 각자 답이 달랐어. 도시국가가 많아서 밥먹고 전쟁하고, 사람 죽고, 또 전쟁하고, 통일한다고 설치고.... 

 

이런 지옥같은 무법천지인 세상을 법으로 다스릴지, 윤리로 다스릴지, 자연에서 답을 찾을지는 생각하는 사람맘 아니겠어? 그러니 철학이 발전하는거지... 철학과 과학기술은 전쟁의 참혹함에 비례해서 팍팍~ 발전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냐.

 

 

 

다음,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도시국가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의 인물이었어. 단지, 그리스 철학의 융성은 다른 지역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었지. 그건 또 뭐냐구?

 

다른 지역의 철학자들이 난세를 걱정했다면,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다른 소국을 점령하면서 쌓인 부를 활용하면서 철학이 성장했다는 거야.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어. 정치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농사짓는 사람 등 신분이 있고 역할이 있어야 세상이 돌아간다고. 그래서 아테네의 고귀한 신분들은 식민지 소국 노예와 상인들 덕에 철학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런걸 철인정치론이라고 하는데, 이러니 있는 넘들이 모두 싸잡아서 함께 욕먹는거지, 뭐... 철학자가 이러는데, 다른 지배층은 오죽하겠어?

 

 

 

 

그럼 플라톤의 제자는 누구? 그 분도 같은 말을 했겠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전쟁이 우리의 승리로 끝나고, 전리품인 노예가 끊이기 않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맘놓고 철학을 고민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야. 현자인 아리스토 아저씨도 노예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니,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국가관이 뭔지 알겠지?

 

자, 그럼 그 제자도 한번 살펴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인거 알지?

 

매듭 푸는 문제 던져주면 칼로 매듭을 잘라버린다는 그 월드헤비급 챔피언.... 세계 정복왕 말야. 알렉산더는 정복을 거듭하면서 정복지를 서로 연결하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수십개를 만들었어. 그리고 그 도시도시를 거쳐서 희귀한 동양의 물품들이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도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들을 부수고, 자르고, 해부하고... 또... 음.... 독극물도 넣어보고 하면서 과학을 발전시켰던 거야. 그가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건 헌신적인(?) 스승님의 지원이 있었던 거지. 지금이라면 독일이나 일본의 생체실험이라고 난리가 났겠지만, 당시에는 엄연한 과학발전 취급을 했던 거지, 뭐....

 

말했잖아... 난세에 철학과 과학이 발전한다고...

 

 

 

 

자, 이제 청동기 소국 시대에 철학들이 융성했던 것인지, 그 이유 중 중요한 몇가지만 간추려서 정리해 볼까?

 

첫째, 문자라는 것이 존재했던 시기와 청동기 후기가 일치한다는 점이 중요해.

 

문자가 존재하기 이 전에도 수많은 철학이 존재했겠지만, 그 기록이 명확하지가 않잖아? 내가 열살 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적이 있으면 뭐해? 커서 기억도 안나고 기록해놓은 것도 없는데.... 같은 원리야.

 

초기의 상형문자가 있긴 했어. 그런데, 그 수준이 초기 문자라서 초등학생 일기 수준이야. 알지? 아침에 밥먹었다... 친구랑 싸웠다... 엄마가 미워한다... 아빠가 사랑한다....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당연히 기록을 남기는 것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철학적인 생각은 부족했지. 그리고 그 정신없는 기록을 당대 혹은 후대인들이 해석하는 것도 어려웠어.

 

그럼, 철학이 되지 못한 초등 7세 수준의 기록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초딩들이 사용하는 글쓰기 방법이 있잖아. 엄마한테 혼났는데, 그래서, 아빠한테 갔는데, 그랬더니, 아빠가 칭찬해주는데....

 

그거야. 철학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은 접속사를 중심으로 전승되거나 이야기로 엮기게 되지, 그래서 그 이야기들이 뼈대를 잡고 스토리가 되면 신화로 정리되는 거야.

 

홍수가 났어. 그래서.... 다 죽어가... 그래서... 신에게 빌었어... 그랬더니? 다 죽지 말라고 방주 만들어 주더라....

 

뭐 이런 이야기가 성립되는 거지. 그래서 홍수 설화는 수메르 신화, 페르시아 신화, 구약성경 등 같은 지역의 모든 설화에 비슷하게 다 등장하잖아. 접속사만 바꿔서 말이야.... 그래서가 그러므로로 바뀌고, 짜라투스트라가 노아로 이름만 바뀌는 정도?

 

 

둘째, 청동기 시대의 국가가 소국가라는 것에 주목해야해. 

 

거대한 중앙집권적인 국가는 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의 '철학' 만을 인정하지. 그것이 철학이든 종교든 국가에게 유리하다면 그거 하나면 된거야. 별로 도움되지 않은 민중철학이나, 윤리철학이 국가철학에 도전한다면? 그건 이단, 반역, 마녀, 빨갱이... 등등의 수식어를 붙여서 다 처단해야지, 뭐....  

 

그래서 거대한 국가는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게 되는 거야.

 

 

 

하지만 다양한 소국가들이 등장해서 자웅을 겨루는 시기에도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해야 할까? 아니지...  당장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고,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데, 국가의 생존에 유익하다면 어떤 철학과 사상이라도 스카웃 해와야지.

 

당장 코리안 시리즈 우승해야 하는데, 이종범이 광주출신이라고 삼성이 안데려가고, 이승협이 대구출신이라고 기아가 버려야 하나? 돈이든, 명예든, 지도자 자리 하나 던져주든.... 무조건 데려와서 우승하고 나중에 생각해야 할거 아냐? 삼성이 김응룡, 선동열.... 데려가서 우승도 몇번하고, 이제는 지역 출신 감독 쓰잖아.

 

그런데, 팬들은 그렇게 생각 안해. 감히, 이승엽이 광주가서 기아 감독한다고 하면?

 

국민타자고 뭐고 광주에서는 난리날껄? 광주가 가진 명분과 역사가 있잖아...

 

 

 

철학 역시, 그 두가지를 다루고 있어. 소국이 살기 위해 누구든 스카웃하고 부국강병을 한다는 국가관을 지켜야 하면서도, 국민정서와 명분을 따지면서 윤리의식을 생각하는 것.... 그거야.

 

장자를 제일 먼저 소개하는 이유도 그거야. 그의 철학이 실리과 명분, 즉 국가관과 윤리의식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거든. 

 

셋째, 청동기 중기 이후 대대적인 정복 전쟁과 연관이 있지.

 

청동기 시대쯤 되면 생산력이 늘어나서 어느 정도 재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굶어죽지는 않을 수준이 되었어. 뭐 혹시나 굻어 죽을 것 같으면 무기 들고 나가서 약탈하면 되잖아...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겼어. 그러자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있다는 이기심도 점점 증가했지.

 

전쟁은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였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욕심이 생명보다 소중한가라는 근본적이면서도 당연한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거야. 

 

 

 

 

그러자 고대 철학자들도 두 흐름으로 나눠졌지.

 

죽이고 빼앗아서 국가가 잘먹고 잘살아야 백성이 잘산다는 부국강병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일단 백성이 안죽어야 농사를 짓던 세금을 내던 할테니 윤리문제부터 집중하자는 사람들도 등장했어. 누군가는 이 두가지를 함께 생각했고, 누군가는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도 했지.

 

부국강병을 이루는 방법에서 학파가 여러개로 나눠졌고, 윤리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원리에 따라 여러 분파가 생겨서, 수많은 사상들이 '내가 옳소' 라면서 싸우게 되는 거야. 그래서 혼란기에는 철학의 전성기가 열리는 것이지.

 

자, 생각해보자.

 

21세기는 국가관이 윤리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국가주의 사회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자원을 빼앗기 위해 약소국을 침략해. 그런데 솔직하지 못하지. 

 

침략 명분이 세계평화나 종교윤리, 나쁜 피 제거와 같은 따분한 이데올로기 이야기거든. 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야? 이쁜 수영복 입었다고 자랑질 한 뒤에 옆의 친구 탈락시키고는, 세계평화를 위해 살겠다고 30년째 외치는?

 

그 뿐인가?

 

에너지를 얻고 문명개발에 박차를 가하려는 국가의 노력은 자국의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자연의 질서를 역행하고 있어.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 가장 심한 곳이 가장 개발이 화려(?)했던 미국 남부잖아. 툭하면 몇백명 이상 사망자가 나오는 허리캐인이 속출하는... 거기에 요즘은 도시 개발의 후휴증으로 도심 곳곳에 발생하는 싱크홀까지 3종 세트가 다 등장했어.

 

도시에 수도관, 가스 등 매설하느라 대부분의 지하가 텅 비어있는 공간이 많아. 거기에 균열이 가면 갑자기 거대한 홀이 생기면서 지하 30미터 짜리 구멍이 뻥 뚫리는 거지.... 잠자다가 갑자기 30미터 아래로 쏙~ 떨어져서 실종되는 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잖아.

 

 

 

 

인간이 자연을 몸살나게 하고 있었지만, 자연은 조용히 기다렸지. 이제 인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거야.

 

장자는 이렇게 말했어.

 

인류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위장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인 '개발'은 결국 대자연의 복수를 불러온다고...생존은 개발이 아니라 순응에서 시작한다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과 싸우고 남의 것을 강탈하려는 대립은 결국 질서의 파괴를 가져오고 모두를 파멸로 이끌 뿐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대립보다는 '상생'을 찾아야 하고, 하나의 길만 달리려는 '획일성' 보다는 자연 속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함'을 인정해야만 자연의 복수를 피할 수 있는 거야. 

 

그걸 모르는 어리석인 인간들의 행동은 모두 무지에서 비롯되는 거야.

 

현대 사회의 환경파괴와 생태계 붕괴, 인간 존엄성의 파괴는 결국 환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장자님, 아니 장느님이 말씀하신거지. 장자가 21세기에도 중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야. 

 

 

 

이제 장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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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사상의 이해

 

동양 사상의 이해를 시작합니다.

 동양사상의 이해는 최근 인문철학교육이 강화된 초중학교, 동아시아사가 과목으로 신설된 고등학교 및 윤리 과목에서도 유용할 것 같습니다. 교과서와 주요사료, 수능 기출문제 등의 지문 등을 분석해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글을 올려봅니다.

 

동양사상은 장자, 석가, 순자, 공자, 맹자 등 고대 사상가들부터 이후 사상가들로 이어지는 맥락을 한번에 알기 쉽도록 작성할 예정입니다.

 

먼저 시작할 인물은 장자이며, 역사철학은 불교철학입니다. 다음 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장자가 이 장자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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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편>

15화. 평생을 불교와 싸운 유학의 아버지 - 한유

1. 맹신적인 종교가 국가를 망치는 것이다. 

중국 불교를 마무리 하면서 어떤 상징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쉽게 이해될까 고민하느라 포스트가 지연되었다. 오늘 이야기는 불교를 배척하면서 평생을 살아간 <한유>의 이야기로 중국 불교편을 정리하고자 한다.

중국 당나라 시기... 불교는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국가 권력과 밀착한 화엄종, 천태종 등 교종 종파 뿐 아니라, 백성에게 직접 뛰어들어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정토종, 선종에 이르기까지 불교천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힘이 너무 강해질 때마다 중국 황제는 종교에 태클을 걸었다. 그 이유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국왕이 불교를 용인하는 것은 불교가 왕권 강화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제에게 불교, 도교, 유학의 구분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종교가 황제권을 넘어서려 한다면 그 종파를 찍어 눌러야만 했다. 특히 유교, 도교, 불교라는 세 종파가 공존하던 중국 고대 사회에서 황제의 선택권은 넓었다. 황제가 불교에 위협을 느낄 때마다 유교, 도교를 이용하여 불교를 탄압하였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몇몇 <폐불사건>으로 알려진 것이다.

링크 : 불교편 9화. 서로 우위를 점하려던 도교와 불교의 한판 승부

특히 유교는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대세는 불교와 도교였고, 특히 불교는 당나라 측천황제(측천무후)의 불교 중흥 노력으로 최강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당나라의 국운이 기울던 당 말기부터 불교의 위세는 꺽이게 되었다.

당나라는 측천황제 이후, 불교가 사회를 지배하였다. 황제는 미륵의 화신으로 생각할 정도였고, 귀족들은 스스로가 보살이라고 여기며 성불을 기원했다. 천태종과 화엄종의 <경전>은 귀족들의 교양지침서였다.

공식적인 당나라의 통일 사상은 유학의 일종인 <훈고학>이었지만, 훈고학은 옛 성인들의 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수준이었다. 백성들은 불교를 믿고, 집집마다 향불이 올라왔다.

2. 유학자들의 반격

유학자들은 불교 세력이 성장하자 불교에 대한 비판을 공론화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황제권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불교 사원을 짓는다는 것은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고, 종교 사원은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을 누린다. 그것은 왕권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죽은 뒤 내세가 기다리며, 내세는 현생의 죄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과응보>에 대해 국가적 차원으로 비판하였다. 유학에서는 현실 사회에 대한 모순을 파악하고, 현실 개혁과 사회 안정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죽은 뒤 영혼이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현실성이 전혀 없으며, 백성들을 현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국왕으로서 당연히 막아야 되지 않겠는가?

셋째, 불교가 왕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당나라 이전의 불교는 왕권 강화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불교의 교리가 심화되어 강력한 <종파>가 생겨나자 문제가 발생했다. 불교가 석가모니의 참 뜻을 내세워 중국 전통 사회의 윤리에 도전한 것이다. 유학에서는 충성, 효도를 강조하지만, 불가에서는 출가릃 하여 부모와 국왕을 떠나는 것마저 허용하고 있다. 세금을 내야할 백성들이 줄어들고, 전통 윤리에서 멀어지는 것을 국가가 보고만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넷째, 불교 교단의 승려들이 <국사>가 되어 정치적 힘을 갖게 되었다. 왕권이 약해지는 시점에서는 이것도 골치아픈 것이었다. 백만대군보다 무서운 것이 종교적 힘을 가진 백만 민중 아니겠는가?

결국 당말기 폐불사건은 남북조시대 이후 계속 되어온 왕권과 불법의 대립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남북조와 수나라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폐불을 당해본 불교였지만, 당말기에 대놓고 진행된 폐불에서는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경전으로 중심으로 귀족층과 밀접했던 <교종>은 교단이 박살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간략한 선법 수행과 <믿음>을 강조했던 <선종>은 그 피바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나라 말기에 살아남은 불교 교파는 <선종>이었고, 결국 선종이 후대 중국 불교를 이끌어가게 된다. 그러나, 불교 자체가 위축된 만큼 불교의 힘은 떨어졌다. 당나라를 이은 송나라는 신유학인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았고, <교종> 교파는 송대 이후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었다.

3. 불교도 싫어, 귀족도 싫어...  NO 만을 외치던 <한유>

당송팔대가의 으뜸이라 불린 한유는,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불교>에서 찾았다.

백성들이 죽은 뒤 <윤회>를 생각하면서 현실을 암흑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귀족들이 불상앞에 재산을 기부하면서 사회적 역할을 못한다는 것을 모두 <불교>탓으로 여긴 것이다.

특정 종교에 매달려 모든 것을 버리는 행위가 생긴다면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종교가 <종파>적 철학까지 잃고 지배층이 맹신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면 국가 존립 자체가 위험해진다.

한유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신유학>을 제시하였다. 노장사상은 허무주의이며, 불교는 현실이 아닌 <내세>의 종교라고 주장하고 다닌 것이다.

한유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스스로 제자백가를 독서하고 과거에 합격한 뒤, 특출한 학식으로 승승장구 승진하던 엘리트 관리였다. 하지만, 지배층이 숭배하는 <불교>에 정면 도전하면서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당나라 덕종에게 지배층의 문란함을 비판하였다가 귀향을 갔었지만, 뛰어난 학식을 인정받아 다시 조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또 다시 지배층의 사상을 비판하여 귀향을 가게 되었고, 이것이 그의 일생에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귀향갔다 돌아왔다, 또 귀향갔다 돌아왔다....

특히, 한유가 미움을 받은 것은 당나라 헌종 때 <황제>의 불교 숭배를 비판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당 헌종이 법문사라는 절에서 석가의 손가락 뼈한마디를 구해 궁궐로 가져온 뒤 제사를 지내고 다시 절로 보낸 일이 있었다. 그것을 본 지배층 인사들과 백성들이 모두 그 뼈한마디를 찾아가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부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그 뼈마디에 기부했고, 백성들을 생업을 포기한채 뼈마디 앞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어찌 인도에서 죽은 석가모니란 인물이 중국 사회 전체를 흔들어놓는단 말인가? 진짜인지 알 수도 없는 석가의 썩어 문드러진 뼈조각이 국가를 망친단 말인가?

한유는 헌종에게 <불교를 신봉한 군주들은 모두 단명했다>는 글을 올리며, 황제를 직접 비판하였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당나라의 지배층들도 비판하였다. 소위 <귀족>이라고 불리며, 남작, 백작, 자작 등 작위를 받고 살아가는 지배층들은 개념(槪念)이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지배층들의 문학인 <시문학>까지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사륙변려체 등으로 구절을 맞추어 술자리에서 돌려말하는 싯구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아무 의미없는 유흥일 뿐이다. 문학이란,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하며, 진정한 <도>를 깨닫기 위한 노력 속에서 나와야 한다.

당나라 지배층이 쓰는 화려하고, 아름답기만 한 문장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요즘으로 따지면 원더걸스나 빅뱅의 노래가 귀에 착 붙게 반복적인 멜로디로 구성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뜻은 아무 의미없는 것과 같다. NOBODY를 백번 외쳐봐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유는 한나라 이전의 고문들을 회복시켜 아무 의미없는 당나라 지배층의 문학을 부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왜 하필 한나라 이전의 고문으로 돌아가자는 고문부흥운동(古文復興運動)을 전개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불교가 한나라 이후에 성행했기 때문이고, 유학이 한나라 때까지 전성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지배층 성향을 가진 한유.... 그 결과는? 오랜 시간 귀향살이었다. 그러나, 인생의 절반이 중앙정권에서 배제된 그였기에 백성들과 직접 만날수 있는 기회도 많았고, 많은 친구를 사귈 수도 있었으며, 성리학의 토대가 된 저서들도 적을 수 있었다.

4. 불교를 비판했으나, 유학도 내 버려두지 않은 한유

한유는 불교, 노장사상 등을 비판했고, 그것을 신봉하는 지배층과 무지한 백성들을 동시에 비판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옛 유학을 그대로 옹호하지도 않았다.

한유는 한나라 이전의 유학들도 비판하기 시작한다. 공자와 맹자의 말씀부터 시작된 고대 유학을 당나라에서 <오경정의>로 압축하였다. 당나라에서는 과거시험의 명경과를 보기 위해 <오경>을 공부해서 암기해야 했다.

하지만, 한유는 그것을 비판한다. 왜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단순히 암기해야만 하는가? 그들의 사상이 절대적이라고 맹신한다면, 불교를 절대적으로 믿는 이들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어떤 사상에 대한 맹신은 결국 교조주의일 뿐이다.

한유는 불교 자체가 나쁜 것이라 말하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불교의 교조주의적 성향을 비판하기 위해 평생을 불교와 싸우며 살아갔다. 그의 역사관은 이렇다.

중국의 전설시대에는 인간 윤리를 지키며 살아간 태평한 시기(태평성대)가 있었다. 그러고, 중국인의 전통 윤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유학>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한나라 이후 불교라는 외래 종교가 유입되어 황제들이 단명하고, 국가의 전성기도 단축되었다. 위진남북조의 긴 혼란기가 불교의 전성기였으며,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황제는 불교를 견제하면서 국력을 낭비하였다.

따라서 고대 유학을 부흥해야 하지만, 시대가 달라진만큼 새로운 유교 철학이 필요하다. 한유는 새로운 유학 철학을 <성선설>에서 찾았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의 성을 인, 의, 예, 지, 신 등으로 구분한 뒤 본성이 착한가를 따지는 철학이었다. 반면, 한유는 성선설, 성악설을 모두 보완하면서 인간의 성품은 3가지로 나뉜다고 말한다.

성 상품

  태어나서부터 선한 성품

성 중품

  선과 악 어느쪽으로나 갈 수 있는 성품

성 하품

  태어나서부터 악한 성품

한유의 책 중에서 널리 알려진 책은 <진학해, 원도, 원성>이라는 3권의 책이다. 진학해는 자서전으로 불교비판에 대한 내용이 많이 실려있고, 원도는 유학의 나아갈 길과 불교의 문제점이 실려있다. 원성에서 성삼품설을 적어두었다고 한다.

5. 불교의 시대가 가고 성리철학의 시대가 오다.

당나라 말, 한유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 성리학의 태동은 불교의 입지를 비좁게 만들었다.

한유의 벗인 유종원은 한유의 철학마저 비판하면서 <유물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역사 발전의 핵심을 <세력>으로 파악하였다. 공자, 맹자와 같은 성인이 역사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 그대로 성인이거나 종교인일 뿐이다. 우주나 음양오행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우주는 단순한 음과 양이 모인 기(氣)일 뿐이다. 기(氣)는 살아있지도 않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우주의 기가 인간행위에 벌을 내린다거나, 복을 준다는 말 자체가 미신일 뿐이다. 결국, 인간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역사를 이끌어가려는 <힘있는 인간 집단>일 뿐이다.

유종원과 한유의 후학인 이고는 스승 한유의 철학에 선종 종파의 <수련법>까지 더하였다. 선종계열의 불가에서는 인간이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맹자가 인간의 성이 모두 선하다고 말한 것처럼, 부처 역시 누구나 착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성인이든, 군자든, 평민이든 모두가 선할 뿐이다. 단지,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외부(기 : 氣)의 영향을 받아서 훗날 선과 악으로 갈릴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선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의 수련법인 <선>을 행해야 한다. 선종의 명상법과 수양법, 좌선과 대화는 학문과 종파를 넘어서 모두에게 유용한 수련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말기, 새로운 유학 사상가들은 불교를 비판하면서도, 옛 유학의 참뜻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 하려고 노력하였다.

새로운 유학은 당나라 귀족층들이 농담따먹기 하듯 적어내는 의미없는 글귀나 고사모음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의 본성을 연구하는 <뜻>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이 고문부흥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문부흥운동은 화려한 문구의 시를 벗어나, 현실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을 철학적 명제로까지 끌어내려는 노력이었다.

당말의 유학자들은 국가 권력이나 지배층과 밀착된 교종 종단을 철저히 배척하였다. 그러나, 신유학 역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뜻을 찾는다는 점에서, 선종 교단의 수련법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였다.

6. 불가와 도가의 철학이 성리학의 <태극>으로 합쳐지다.

당나라 다음으로 등장한 송나라에서는 성리철학의 틀이 완성되면서 사회 지배철학으로 자리잡은 시기였다.

그 역사적 철학을 <태극>으로 정리한 이가 바로 <소강절>과 <주렴계>였다.

절에서 거주하면서 불교철학과 유학을 두루 공부한 소강절은 불교, 도교, 유학의 철학을 두루 정리하여 태극(太極)이라는 불변의 원리를 만들어내었다.

태극이란, 절대 불변하는 우주의 진리로서,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理)와 같다. 태극은 불변하지만, 그것을 알아채는 인간의 정신(神)이 사물을 파악하는 것을 기(器 : 물질)리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과 기는 돌고 돈다. 세상에는 시작점이 있는데, 이것이 정신으로 표현되며, 또 물질로 표현되며 물질이 소멸되면 다시 정신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의 이론과 비슷하다.

또, 돌고돌아 물질이 자연으로, 정신으로 돌아간다는 점은 도가의 무위자연과 추연의 음양오행설과 유사하다.(실제, 소강절이 불교, 도가의 철학을 의도적으로 인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돌고돈다는 법칙 자체는 변하지 않고 불변하는 진리로 남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태극>인 것이다. 태극은 모든 자연과 인간, 우주의 근본 법칙이다.

이 사상을 정리한 이는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인 <주렴계>이다. 그는 선종 선승들과 직접적인 교분이 있었고, 선종의 수양법으로 자신을 단련하면서 살았던 인물이다. 주렴계는 모든 현상의 근본 법칙인 태극에게 2가지 속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움직이는 것을 양(陽)이라 하고, 정적인 것을 음(陰)이라고 하는데, 이 음과 양이 돌고 돌아 우주의 법칙을 회전시킨다는 것이다. 음과 양은 오행(화,수,목,금,토)의 상극을 만든다. 양은 남성, 태양 등을 뜻하며, 음은 여성, 달 등을 뜻한다. 불(火)이 양이라면 나무(木)가 음이 된다.

그리고, 이 양과 음이 상호작용하면 우주가 돌게 된다. 만물의 생성을 주도하는 것이 건(乾)이고, 받아들이는 것이 곤(坤)이다. 하늘과 남자가 건이면, 땅과 여성이 곤이다.

주렴계의 철학은 결국 불교와 도교의 철학에서 파생되었다. 선종에서 말하는 공(空) 사상과 도가에서 말하는 무(無) 사상 등의 철학을 유가 형식에 맞춰 <태극>으로 정리한 것이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불교와 도가에서는 존재의 근거가 되는 불변의 진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논리적인 정신적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렴계는 <태극>이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님자, 여자, 하늘 등의 명칭을 가진 물질이라는 점에서 <유물론>적인 관점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태극의 실체를 리(理)라고 말하고 있다. (태극도설)

7. 선종 철학을 벗어나 이기론으로 향하는 성리학...

동시기를 살았던 장제는 좀 더 세밀하게 불교 철학과 성리학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불변의 본질인 태극 자체를 리(理)라고 말하면서, <리>는 단순히 변화의 법칙을 설명하는 원리라고 말하였다. 실제 우주를 구성하는 실체는 기운(기 : 氣) 인데, 이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존재자라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장제가 주장한 <주기론>은 불교사 입장에서 보면 아찔한 것이 된다. 불교의 <공>사상이나, 도가의 <무> 사상이 전면 부정되고, 우주에 실제 존재하는 기운(氣)이 명백히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장제의 입장에서 <기>란, 우주의 생성부터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며, 지금 이순간에도 변하고 있는 모든 사물인 것이다. 더 이상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은 어려운 말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우주의 기운(氣)를 받아 생겨나서 살아가다가 사라질 뿐이라고 말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내세도, 윤회도 이젠 없다. 기운(氣)은 살아있을 때 활동할 뿐이며, 죽은 뒤 사라질 뿐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정이천, 정명도 형제는 장제의 <기> 사상을 우주와 만물의 일치로 끌어올린다. 그들은 모든 만물에 기운이 있고, 그 기운은 우주에서 내려준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고, 모든 중화인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아는 단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의 기운(氣)은 불변하는 원칙인 이치(理)에 의해 움직이므로, 모든 우주의 기운에는 이치가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일물일리론 : 一物一理論)

이 이론을 정리하여 성리학을 완성한 이가 바로 성리학의 아버지 <주자>이다. 주자는 이치(理)와 기운(氣)의 상관관계를 정리하고, 그것을 중국민족의 우월성과 정당성으로 규정하면서 새로운 정치철학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불교의 교종 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정치철학으로 성리학에 지배권을 빼앗긴 불교는 이미 당나라 지배층이 무너지면서 정치적 실권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제 불교는 민중속으로 파고든 선종과 정토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송나라를 넘어 명, 청 시대로 이어지면서 서민 불교로 자리잡아간다. 그리고, 송나라 이후 역사적 변환점에 새롭게 자리잡게된 철학은 <유학>이었다.

자, 그럼 이 쯤에서 중국 불교이야기도 끝내고 한반도와 일본의 불교로 넘어가보자.

한반도의 불교는 인도, 중국 불교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될 것이다. 고조선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조계종까지의 불교를 역사와 관련해서 살펴보자. 그리고 일본의 불교는 우리 역사와 비교해서 다루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 했듯이 티벳이나 동남아 불교는 동아시아 역사와 큰 관련이 없기 때문에 관련 부분만 조금씩 이야기하려고 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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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12화. 여황제 측천과 법장의 뜻이 딱 맞아 떨어진 이유는?

1. 모든 철학을 녹여 버리는 화엄의 철학

자 지금까지 우리는 <불교의 참뜻>을 알기위해 동분서주한 중국 불교의 혼란한 역사를 보았다. 위진남북조의 혼란기를 겪으며 성숙해진 불교는, 현장법사의 구법여행을 통해 <유식> 사상까지 포괄한 진정한 불교 교리를 모두 알게 되었다.

그럼 이제, 그 많은 불교 교리들을 통일해야 할 때가 왔다. 통일된 당나라에서, 통일된 종교 교리를 내세우는 종파가 있었으니, 바로 <화엄종>이다. 자, 그럼 화엄종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화엄종은 <화엄경>을 최상위 경전으로 규정한 뒤, 불법을 이야기하는 종파이다. 그럼 화엉경은 무엇인가?

화염경이란, <대방광불화엄경>의 약자로, <대>는 크다, <광>은 넓다는 뜻이다. <불>은 부처겠지? 한마디로 크고 넓은 부처들의 이야기이다.

화엄경은 보살 수행을 거쳐 부처가 된 <비로자나불>이라는 분이 <말씀하시는> 경전 이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간단하다.

   하나의 티클에 모든 세계가 들어있으니, 모든 세계는 즉 하나이고, 하나는 곧 전체인 것이다.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

무슨 말일까? 심오한 교리이지만, 역사적 배경 정도로 설명해보자.

혹시 양쪽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을 본 적이 있는가? 없으면 해 보시라. 거울을 일정거리에 두고 서로를 비추면, (ㄱ)의 거울에 (ㄴ) 거울이 비친다. 그런데, (ㄴ) 거울도 (ㄱ) 거울을 비추고 있으므로, (ㄱ)의 거울안에는 (ㄴ) 거울이 비추고, 또 그 안에 (ㄱ) 거울이 비치며, 또 (ㄴ) 거울이 비친다.

결국 (ㄱ) 거울 안에 (ㄴ) 거울, 그안에 다시 (ㄱ) 거울.... 이런 식으로 점점 작아지는 거울이 끝없이 비춰진다. 그러나, (ㄱ)의 맞은 편에 있는 (ㄴ) 거울을 치우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ㄱ) 거울은 다시 평온해진다.

우주가 그런 것이다. 거울이 거울을 비추듯, 우주란 어떤 사물의 상호 관계에 의해 이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ㄱ)이라는 거울 안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거울 안에 또 다른 거울이다. 그러나, 사실 그 본질은 (ㄴ) 거울인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은 가장 방대한 근원에서 출발하며, 그 카다란 근원이라는 것도 거울 안에서는 너무나 작은 존재일 뿐이다.

한마디로 하나(개체)는 전체(본질)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상>인 것이다. 이렇게 거울 속에 거울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것을 <인드라망>이라고 한다. 뭐 그 당시는 거울이 아닌 구슬 속에 구슬이라고 했지만...

이 거울이 비추는 세계는 4가지 세계이다. 먼저 거울이 비춘 현상세계(사법계), 거울 본체의 세계(이법계), 현상과 거울의 관계를 아는 세계(이사무애법계), 현상 세계에서 비춰진 각각의 사물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세계(사사무애법계) 이다.

우리는 거울 본체가 아니라 거울 안의 현상 세계에서 보이는 것이 진리라 믿고 살기 때문에 <사사무애법계>를 가장 먼저 알아야 한다.

현상의 세계는 인연(연기)로 이루어진다. 육체는 태어나고 소멸된다. 흙은 땅이 되고, 비는 물이 되며, 흙과 물이 곡식이 된다. 곡식은 인간의 식량이 되고, 인간이 먹은 식량으로 새 생명이 탄생한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이고, 하나는 모든 원리가 된다. 그리고 그 모든 현상을 비추는 것은 거울이라는 본체이다.

예로, <인간의 모습>을 들어보자. 눈은 눈이고, 코는 코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절대 분리될 수 없다. 떼어놓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기관들이다. 각각의 기관이 뭉쳐야 인간이 되는 것이고, 하나 하나가 스스로를 고집한다면 인간이라는 본체는 아무 의미 없다. 눈, 코, 입 등은 모두 각각의 것들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하나일 뿐이다.

이대로 대입해보자. 수없이 많은 사물들은 각각이지만, 그것을 비추는 큰 거울 앞에서는 하나와 같다. 결국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본질을 알면 모든 것이 결국 <본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먼지(티클)가 거울이요, 거울이 티클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사물을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진리를 찾는 것, 깨달음을 찾는 것, 수행을 하는 것, 말씀을 찾는 것, 노력하는 것....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거울>이 비추는 다른 모습일 뿐이다.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화엄의 사상을 <원융사상>이라고 한다.

이 화엄의 철학이 수, 당 나라의 통일국가에서 체계화 된 것은 한 두사람이 어쩌어찌 정리하다 보니 탄생한 우연이 아니다. 화엄의 철학은 가장 통일 국가의 철학에 걸맞는 사상적 이념을 제공해 준 것이다. 한반도와 왜에서도 화엄종은 통일 국가 시기에 융성하였다.

왜 화엄은 통일 철학일까?

간단하다.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근원으로 통한다는 것은, 모든 분열된 국가가 <통일된 왕조>로 귀속된다는 정치 이념과도 딱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이다.> 이 말을 정치적으로 해석해보자.

<하나>란, 국왕을 뜻한다. <전체>란 백성을 뜻한다. 그렇다면, 국왕은 곧 국가이고, 국가는 곧 백성들의 모임이다. 백성은 곧 국왕으로 귀속되고, 국왕은 백성의 평안을 위해 노력한다. 불가의 화엄 사상이 유교의 <덕치주의> 사상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만약 북한 김일성 일가가 불교도였다면, 제일 먼저 화엄 철학부터 북한 주체사상에 집어넣었을지도 모른다.

또, 통일된 국가에서는 통일된 종교 사상을 원한다. 위진남북조의 혼란기처럼 수많은 종파가 난립할 경우, 국가로서는 골치 아프다. 국가 철학을 지지해 줄 핵심 사상이 정해져 있는 것이 편하다.

그런데, 화엄경은 모든 불교 사상을 화엄 철학으로 녹여 버릴 수 있다. 열반경에서 말하는 <모든 인간은 불성이 있다>는 것도 화엄은 인정한다. 우주가 비추는 거울 안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결국 <거울>이라는 본질이 비추어진 것이므로, 당연히 모든 인간은 불성이 있는 것이다. 단, 불성은 인간만 있는 것이기에 무생물에는 없다고 말하여 차별을 둔다.

법상종에서 말하는 <마음> 역시 화엄경은 받아들인다. <마음>도 <거울> 속에 비치는 것이 아닌가? 단, 화엄종에서의 <마음>은 인간의 번뇌와 고통이 아니라, 거울이 비춰주는 <깨끗한 마음>이다. 화엄종은 인간의 본질이 우주와 같이 때문에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쪽을 좀더 비중있게 말하는 것 같다.

수나라의 통일 철학인 천태종은 지식(교)과 깨달음(선)은 같은 것이라는 교선일치를 말한다. 화엄종은 이것 역시 받아들인다. 단, (교)와 (선) 중 어느 것이 먼저냐는 선후논쟁은 계속 전개한다.

모든 철학을 받아들여 녹일 수 있는 화엄의 <원융사상>은 통일된 왕조에서 통일된 철학으로 받아들이기 좋았다. 그럼 구체적인 화엄 철학을 한 번 볼까나?

2. 화엄의 교판 논쟁과 성기품설

혼란기인 남북조 시대, 화엄종도 초기에는 <도사>들과 싸우는 학단에 불과했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하나요, 하나란 모든 것이다>라는 이론을 도사들이 트집잡았던 것이다.

장자가 말하기를,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인 내가 꿈에서 인간이 된 것인가> 라고 하였다.

이 말에서 느낄 수 있는 장자의 철학은 이 것이다. 만물은 결국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하니,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된 내가 진짜 나이지 않을까? 결국 내가 만물 속의 하나이기에, 만물은 나이고, 나를 포함한 만물은 모두가 평등한 것이다. 진정한 평등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만물이고, 만물이 곧 나인 것이다.>

도사들은 장자사상과 화염 사상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격의 불교>시기엔 화엄종도 도교 이론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화엄학파는 <도사>들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받아들였다. 가장 먼저 열반종의 <불성>을 받아들인다. 만물 속에 인간이 있고, 인간은 결국 우주의 본질이다. 따라서 어떤 인간이든 우주의 본질인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품>이라고 한다. 따라서, 누구든 수양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 자체를 <성기품>이라고 하며, 그 수행 방법을 10가지로 나눠 놓은 단계를 <십지품>이라고 한다.

그와 동시에 <화엄경> 격상 작업이 시작된다. <화엄 철학>은 도교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모든 종교보다 화엄경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래서 5개의 종교와 열 개의 종파를 모두 순위를 매긴 후 <화염경>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화엄종은 산과 같고 바다와 같다. 산에 수많은 동물들(각 종파)가 산다면 화엄종은 산 그 자체이다. 바다에 수많은 생물(각 종파)가 산다면 화엄종은 그 모든 생물들을 끌어안고 생명을 주는 바다 자체이다. 그리하여, 흩어진 모든 종파는 화엄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는 것이다.

3. 법장과 측천무후

초기 화엄경은 두순(557-640)에서 시작한다. 두순은 도교의 도사들이 <화엄경>을 <노장사상>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발하였다. 그래서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기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열반종 사상을 화엄종에 포함시켰다. 그가 화엄종의 시조이다.

2대조 지엄은 화엄경의 주석서인 수현기를 저술하면서, <유식사상>을 화엄종에 포함시켰다. 전통 <공> 사상과 다르게 <마음>을 강조하면서, <모든 것은 마음이다>라는 사상도 화엄철학과 같다는 것이다. 지엄에게는 2명의 특출난 제자가 있었다. 한명은 한반도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이었고, 또 한명은 화엄학을 완성시킨 <법장대사>였다.

의상은 우리나라 사람이니, 우리 이야기에서 다루고 지금은 <법장>이야기를 해보자.

법장이 살았던 시기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중국 여황제였던 <무측천>의 시대였다. (유교사학자들은 보통 측천무후라고 부르며, 황제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 고조 - 당 태종 - 당 고종 - 당 중종 - 당 예종 - 측천무후 - 당 중종 (복위) - 당 예종 (복위) - 당 현종 - 당 숙종 - 당 대종 - 당 덕종 - 당 순종 - 당 헌종 - 당 목종 - 당 경종 - 당 문종 - 당 무종 - 당 선종 - 당 의종 - 당 희종 - 당 소종 - 당 애종

(표) 측천무후는 당 태종기부터 활동하여 당 현종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역사가들이 흔히 말하는 <여자의 난> 시기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데, 당나라 전성기를 모두 포괄하고 있으며, 당나라 역사의 1/4을 차지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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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의 젊은 시절, 고령의 시절 사진화>

무측천의 시기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특이한 시기였다. 무측천은 당 태종의 후궁으로 <무미랑>이라고 불린 여자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거대한 자금을 가진 개국공신으로서 산둥지방의 상인이었다. 그러나, 당 태종은 그녀의 집안 사정 문제로 무미랑을 멀리했다. 무미랑은 당시 황태자였던 <고종>을 사랑한다. 한 여자가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은 유교주의 입장에서는 상상 자체가 안되는 일이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고종의 왕비인 왕황후가 이쁜 첩들을 모함하기 위해 <무미랑>을 일부러 고종에게 붙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까? <무미랑>은 훗날 고종의 총애를 얻어 왕황후를 비참하게 죽여 버린다.

그러나 고종은 당나라 최전성기의 왕이었다. 그녀는 고종이 늙었을 때,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신의 아들과 남동생인 중종, 예종을 왕으로 두었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직접 여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유교사회였던 중국에서 여자만의 힘으로 여황제가 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창업공신과 남북조 시대 구귀족들의 대립을 이용하였다. 당나라 창업공신은 <관롱집단>이라 부르는 세력으로 북위 이래 이민족 집단에서 비롯된 인물들이었다. 무측천은 낙양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 <산둥귀족>들을 끌어들임으로서 창업공신 집단을 말살하고 새로운 나라인 <주>를 세웠던 것이다.

황제가 된 무측천은, 기존의 모든 사상과 종교를 새롭게 제시하였다. 창업공신의 특혜를 무시하고, <과거제도>라는 시험제도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였다. 장안 대신 낙양을 새 근거지로 하였고, 토지제도와 세금 제도를 고대 <주>나라의 제도로 복원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종교계에서도 새바람이 불었다.

당나라가 건국되고 국교는 <도교>였다. 남북조 시대 북위에서 구겸지가 <도교>를 창립한 이후, 도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아왔다. 불교 역시 철학체계와 교단, 종파를 두어 도교의 라이벌이 되었지만, 당을 건국한 이연은 도교에 좀 더 힘을 실어주었다. 

여황제가 즉위하자 국교인 도교와 달리 정권에 충실한 통일 종교 철학이 필요하였다. 이 때 법장이 등장한 것이다. 그동안 쌓인 중국 불교 이론을 집대성하여 <화엄학>을 완성하고, 그것이 얼마나 체계적인지 여황제에게 직접 설명하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일화가 바로 <금사자의 비유>였다.

비우컨대 이 금사자의 본체는 금이라고 하는 질료이고 사자의 모습은 현상에 불과합니다. 금사자의 형상은 허무하여 실제가 없고 변동합니다.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한 무더기의 금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은 한 무더기의 금으로 고양이나 개, 호랑이의 형상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바로 오늘의 홍안이 내일의 백발로 되어 버림을 우리가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지, 수, 화, 풍 등 네 개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현상으로서의 사건은 비록 변할지라도 볼질로서의 그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사자의 모습이 늙어갈지라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의 본질이란 결국은 그 현상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마치 금사자의 형상이 없다면 그 존재마저도 알 수 없음과 같지요. 마찬가지로 육체라고 하는 껍데기가 없다면 인간의 본질이라 할 정신도 발휘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과 그 원리는 상호 의존하고 보완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무측천은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물론, 법장이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했을 것이다. 이 말 뜻은 이렇다.

금사자를 볼 때, 우리는 당연히 <금사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금사자가 본질일까? 아니다. 녹여서 다른 동물로 만들어 버리면 바뀐다. 금고양이, 금호랑이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든 그 본질은 <금>이다.

결국 사물의 본질은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못 보는 것 뿐이다. 그럼 사물의 본질을 보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형식일 뿐, 그 실체는 <마음>으로 알아야 한다.

그럼 마음은 무엇인가? 진리를 바라보는 <거울>이다. (ㄱ)이라는 거울이 (ㄴ)이라는 거울을 비치면, (ㄱ)이라는 거울에는 수많은 (ㄱ) (ㄴ) 거울들이 점점 작아지면서 무한으로 서로를 보여준다.

거울과 거울은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그 안에 비친 모든 사물들도 서로 의존하고 보완되어 있다. 사물의 본질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거울이라는 본질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이다.

무측천은 생각했다. 여자들을 무시하는 유교는 필요없다. 개국공신들과 밀착된 도교도 필요없다.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된다는 화엄종이야 말로 시대가 원하는 철학이 아닌가?

무측천은 여황제의 귄위 강화를 위하여, 법장은 불교의 힘으로 도교를 누르기 위해여 서로 힘을 모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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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의 건릉 사진 : 입구>

다음 장에서 다룰 내용은 지금까지 불교와는 사뭇 다른 철학과 역사를 가진 종파 불교이다. 중국 정토종, 선종의 이야기를 한 번 다뤄볼까?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 불교사에 대한 이해 : 참고할 만한 책들

초기화엄사상사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오다 겐유 (불교시대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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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손에 넣고 중국을 치마폭에 담다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장석만 (부표,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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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이야기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초등역사교사모임 (늘푸른아이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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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세계 안에서의 나눔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안형관 (이문출판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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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히로 사치야 (황금가지,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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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명료한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스티브 하겐 (우리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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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불교 박사 되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석지현 (민족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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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선의 사기꾼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전윤 (신아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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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뜻깊은 불교 이야기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김달진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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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6화. 격의 불교 이야기...

1. 중국 불교는 청담에서 비롯되었다.

자, 이제 본격적인 중국 불교 이야기를 해보자. 중국에 불교가 처음 전파된 것은 후한 시대이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듯이 쿠샨 왕조의 적극적인 확장 정책과 외교정책으로 대승 불교가 각지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중국 한나라에서의 불교는 <교양> 철학 수준이었다. 중국 <한>나라는 가장 전통적인 중국 왕조이다. 중국 민족은 자신들이 <한족>이라고 믿고 있으며, 중국 전통 문화의 원류는 <한나라>에서 기반이 잡혔다고 생각했다. 가장 전통적인 <유학>도 한나라 시기에 완성되었다. 한무제가 <유교>를 국교화하고, <한자>의 정형틀을 완성시킨 것이다.

불교가 한나라에 전파되었지만, 그것은 외국 철학의 일종일 뿐이었다. 지배층이 교양을 쌓기 위해 읽어보는 수준이었을 뿐, 중국 지식인들은 관리 임용을 위해 <유학>을 익혔다.

그럼, 불교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부터일까?

후한이 멸망할 무렵부터이다. 중국 후한시대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원소, 조조 등 호족세력들이 판치는 무법천하였다. 백성들은 길고 긴 전쟁의 시대로 막 들어선 것이다.

위, 촉, 오의 삼국시대부터 남북조 시대의 분열까지 길고 긴 분열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시기가 되기에 윤리적인 측면이 강한 <유학>은 왕따당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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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의 중국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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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의 국가 먹이사슬>

혼란한 시기에 사람들이 찾는 종교는 <내세>라던가 <자연>을 강조하는 종교였다. 사람들은 유학이 아닌, 도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한나라가 망한 뒤, 실권을 잡은 것은 삼국 중 조조의 <위>나라였다. 위 나라는 강력한 법치주의에 의해 국가 통일을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정치가가 아닌 일반 학자, 사상가들은 <도교>에서 혼란의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당시 도교는 혼란의 원인을 <인간의 욕심>으로 보았다. 서로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탐욕자들이 싸우고 죽이는 탓에 백성들만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 않는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위나라의 학자들은 도가사상의 원리인 <자연으로 돌아가자>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렇게 노자, 장자 등의 철학에서 현실의 문제점을 발견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현학>이라고 한다.

<현학>은 노자와 장자의 철학에서 우주의 근본 원리를 규명하려는 학문이다. 우주의 근본 원리인 <도>를 <현>이라고도 부르기 때문에 현학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현학은 하안(190-249), 왕필(226-249) 등에 의해 전개되었다.

하안과 왕필 등의 사상가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문제점이 무언가를 따지려고 했는데, 이런 대화를 <청담>이라고 한다. <청담>이란 말 그대로 <깨끗한 세계의 담론>이란 뜻이다. 위나라에서 시작된 이들의 <대화>를 역사에서는 <정음시대의 현학>이라고 부른다. 하안은 노장사상으로 논어를 해석하였고, 왕필은 노장사상으로 주역을 해석하였다고 한다.

그럼 이들의 대화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간단하다. 도학에 나오는 사상들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는 것이었다. 도학의 문구들은 너무나 심오하다. 노자의 <도덕경>은 서양 학자들도 인정하는 동양 최고의 학술서이다. 노자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무위자연>, 국가는 작을수록 좋다라는 <소국과민>, 가장 행복한 삶은 자연에서의 삶이라는 <자연합치> 등을 주장하였다.

노자의 사상에 맞춰서 모든 사상을 재해석하는 것이 <현학>이다. 유교사상은 현실사회의 직접적인 문제와 인간 윤리를 주로 다룬다. 그러나 후한이 망한 뒤의 세상은 무법 천지이다. 인간 윤리는 이제 <전쟁없는 사회>라는 틀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청담 사상가들은 현실의 윤리보다는 <전쟁>의 참혹함, 사후세계는 어떤 것일까라는 내세에 대한 상상, 삶과 죽음과 인간관계에 대한 탐구에 더 집중한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답은 한가지였다. 대화를 나누던 청담 사상가들은 <전쟁>에 골몰하는 국가를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점점 현실과 떨어져 중국 전통 윤리를 비관하기 시작한다. 자, 그럼 청담 사상가들은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노자의 세계로 가기 위한 방편으로 어떤 철학을 찾았을까?

불교에 그 답이 있었다. 불교는 만민에 대한 구원, 내세에 대한 윤회와 열반 사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공> 사상을 강조하여 <허무주의>를 보여주면서도,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혼란한 시기에 딱 맞다. 얼마나 맞춤형 철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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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위진남북조 시기의 중국인들은 지긋지긋한 전쟁에 질려있었다. 삼국시대, 위의 조조, 서진시대, 5호 16국의 이민족 시대, 남북조의 분열시대.... 길고 긴 전쟁의 역사는 훗날 <수>나라가 통일국가를 세울 무렵에야 끝나는 것이다.

이 불안한 시기에 불교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인간은 죽은 뒤 자신의 업보에 의해 <윤회>를 하게 된다. 지금 현상에서의 고난은 전생에서의 죄를 씻는 과정이다. 그 업이 끝나고 현생에 덕을 쌓으면 내세에는 행복한 날이 기다리고 있다. (업설) 지금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많은 죄를 지은 것이고 생이 끝나면 죄를 받을 것이다.(인과응보론)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얼마나 딱 맞춤인 철학인가?

그렇다고 지배층과 국가가 불교를 탄압한 것도 아니다. 한나라가 망하고, 조조 일가의 시대가 끝난 뒤 중국은 5호 16국이라는 이민족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이민족의 왕들은 <유학>에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중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불교>가 이민족 취향에는 딱 맞았다.

이민족 왕들은 불교를 주술적 방편으로 이용하였다. 흉년이 들면 승려가 주술을 펼쳐주었다. 질병과 재난은 불제자들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큰 전쟁을 앞두고 학식이 높은 승려들에게 전쟁의 승패를 묻기도 하였다. 또, 인도의 아쇼카 왕이 했던 것처럼 왕 자체가 불법을 수호하는 <불교의 수호신>임을 자청하였다. 왕이 곧 불교의 신이라는 이념은 불교를 믿는 백성들을 한 마음으로 묶어줄 수 있었다.

왜 불교가 민간신앙이나 주술신앙, 국가 호국 불교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혼란한 이 당시에는 불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왕권 강화를 위한 <사상>으로 충분했다. 혼란기의 각국 지배자는 큰 사찰과 어마어마한 불상, 귀따가운 큰 법회를 열어가면서 왕권이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였다.

어렵고 험난한 시기에 불교의 원래 뜻이 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종교는 현실에 도움만 주면 되지 않는가?

3. 대충 때려맞춰서 이해한 격의 불교

초기 청담 사상가인 왕필은 유교, 도교, 불교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왕필은 도교의 기준에 맞춰 다른 종교의 특징을 규정하였다. 노자와 장자가 도가 사상을 창시하면서 우주의 근본 원리와 인간의 행동 가짐을 <도>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공자 역시 큰 <도>를 깨우친 사람이고, 석가모니도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성인들이 결국 <도>를 깨달았으니, 모든 믿음은 하나가 아니겠는가?

왕필이 주장한 <유,불,도교의 3교 일치설>은 지둔(314-366)에 의해 구체화 되었다.

지둔은 불교 스님이다. 왕필이 도교 기준으로 종교를 통합했다면, 지둔은 불교 사상을 중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보자. 중국 전통 사상은 <리기론>이다. <리>란, 우주의 근본 질서나 계절을 의미하는 불변의 진리를 말한다. 지둔은 이렇게 말한다.

<리>가 절대불변의 원리인 것처럼 불가에서 말하는 반야(지혜>는 영원 불변의 <깨달음>이다. 즉, <리>는 불가의 <절대적 깨달음>을 말한다.

다른 것도 대입해볼까?

불가의 <공>사상은 <만물은 돌고 돌아 그 형체를 알수 없다>는 뜻이다. 보이는 것은 곧 사라지고, 사라진 것은 다시 생겨난다.(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심오한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도교의 <무>로 설명한다. 사라진 것이니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부처가 <열반>한다는 것은 도교의 <무위>로 해석한다.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보살들을 도교의 <도>로 해석한다. 불가의 <진리>는 도교의 <근본>으로 해석해 버린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간편한 해석법인가?

이러한 불교 이해 방식을 격의 불교 방식이라고 한다. 격의란, 불교의 난해한 개념들을 중국 전통 사상에 이미 존재하는 비슷한 개념들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쉽게 이해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불교의 원래 뜻을 왜곡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방법을 중국 곳곳에 알리고 다닌 이는 축법아였다. 그러나, 4세기 이후 불교의 승려들은 축법아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격의 불교는 불교의 참 뜻을 알 수 없기에, 지배층들이 마음대로 해석하여 불교를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든다. 또, 일반 백성들은 토착신앙과 신비주의를 불교와 구분하지도 못하고 멋대로 불교를 이해한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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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 남북조 시대의 대립상황>

4. 불도징을 초빙하다.

불도징은 위진남북조의 혼란이 시작된 초기 인물이었다. 그는 서북인도와 관련된 구자국이라는 곳의 은거하는 불학자였다. 그가 70여살이 되었을 때, 중국의 백성들이 <위진시대>의 혼란기에서 희망없이 산다는 말을 듣고, 제자들과 중국으로 건너왔다. 드디어 불교가 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정통 <인도산 스님>이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런데, 불도징은 <불교의 참뜻>을 전파하지 못하였다. 당시는 혼란중에 혼란기인 5호 16국 시대였다. 5개의 이민족이 16개 국가를 세워 중국 대륙은 어딜 가나 전쟁 뿐이었다. 불도징은 후조 왕국의 석륵, 석호 부자에게 불법을 설파하였는데, 석륵은 불교를 아주 우습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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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기 : 5호 16국 시대의 후조 왕국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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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국가들의 민족 분포와 국가 창업자>

불도징은 불교 교리에 대한 철학 강의를 했지만, 석륵은 시큰둥했다. 결국 불도징은 교리로서 불법을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겼다. 불도징은 주문을 외워서 항아리에서 연꽃이 나오게 하는 등 신비로운 주술로 석륵을 감동시켰다. 결국 이 당시 불교 수준은, 뭔가 위대한 부처의 힘을 보여줘야 비로소 믿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불도징은 큰 뜻을 품고 중국 대륙에 왔지만, 단 한권의 책도 쓰지 못하였다. 이민족의 왕들이 원하는 건 신비로운 주술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 뿐이었다. 스님과 주술가, 점쟁이를 구분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석륵의 아들, 석호는 이 신비로운 스님을 존경하였다. 불도징은 석호에게 <국왕>이 해야 할 일을 설교하면서 중국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였다.

1. 살행을 금지하고 죄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말 것
   2. 포학한 행동을 피하고 자비심을 가지고 보시할 것
   3. 부처를 섬기는 데 있어 깨끗한 마음과 자긍심을 가지고 해야 할 것

불도징은, 인도에서 건너온 선구자라는 것 외에 크게 남긴 것이 없다. 중국 대륙에 자리잡은 이민족들은 불법이 뭔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중국 불교사를 바꿀 만한 거목들을 제자로 키웠다. 그들의 이름은 도안, 혜원 이였다.

중국 대륙에서는 부처의 참뜻이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다음장에서는 도안부터 시작되는 <불교 알리기>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중국 스님들이 제대로 된 불교를 알리고자 했던 노력은 수백년 동안 계속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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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5화. 불교의 외침 - 이젠 인도를 떠나고 싶어요 ~

1. 인도에 불교가 없다?

불교의 종주국은 인도이다. 그러나, 기원후 5세기가 지나고 인도에서는 더 이상의 불교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티벳이나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불교의 교리 논쟁이 활발하게 펼쳐진다. 특히, 4세기 이후, 불교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지역은 중국과 한반도 등 동아시아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석가의 가르침이 재정리되어 대승 불교로 정립된 인도의 불교는 아시아 각지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정작 인도 본토에서는 불교의 힘이 사라졌다. 그 이유는 새로운 정권의 성립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 마가다 왕국이 불교를 보호한 이래, 기원전 4세기 마우리아 왕조에서는 <왕이 곧 부처의 화신이다>라는 사상으로 불교를 옹호하였다. 대표적인 왕이 스스로 전륜성왕이라고 말하였던 아쇼카 왕이다.

기원후 3세기 까지도 인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왕조들은 불교를 인정하였다. 기원 전후 인도 남부에 브라만교를 신봉하는 안드라 왕조가 있었으나, 인도 중북부의 대부분 지역은 불교 문화와 간다라 미술을 인정하는 쿠샨 왕조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쿠샨 왕조는 쿠샨인(이란인) 계통의 왕조로 다양한 종교를 모두 인정하였다.

<쿠샨 왕조의 불상>

<쿠샨 왕조의 전성기>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2c)은 중국-이란-인도를 연결하는 헬레니즘 상권을 장악하면서 상권과 통행세를 받았고, 국경을 넘나드는 불자들을 보호하였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서아시아로 이르는 비단길과 인도를 거치는 바닷길은 불교 전파 경로와도 일치했다. 헬레니즘의 다체로운 문화는 대승 불교의 확대를 촉진하였고, 그 결과 중국, 한반도, 인도에 이르기까지 불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그러나, 4세기 말, 인도의 상황은 급변한다.

브라만 교를 신봉했던 아리아 인들의 강력한 국가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갠지스 강 유역에서 찬드라 굽타가 건국한 굽타왕조는 쿠샨 왕조를 멸망시키고 북인도 전체를 통일하였다. 그리고, 아리아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며 이민족들을 추방하기 시작한다.

투르크인, 샤카부족(석가부족), 이란인(쿠샨인)은 아리아인들의 세상에서 설 곳이 없었다. 이제 세상은 고대 브라만의 후손들이 아리아인의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아리아인들의 고대 사상의 복구를 꿈꾸며 강력한 인도 민족주의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이민족과 혼혈족, 반브라만 종교는 인도에서 추방되었다.

<4세기 굽타왕조의 영역>

그리고, 고대 브라만의 베다 문학을 재정리 하여 산스크리트 문학이 등장한다. 브라만교에서 유래한 힌두교가 인도 전통 민족 종교가 되었고, 인도인의 율법은 <마누법전>으로 정리되었다. 고대 브라만 민족의 위대함은 <대서사시>로 편집되었다. 그것이 유명한 힌두교 경전인 <마하바라타>, <라마야나>이다.

대서사시는 고대 신인 브라만을 찬양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비슈누, 시바 등 고대적 요소를 갖춘 전통신을 아리아 부족의 현실에 맞게 재편한 것이다. 그리고, 힌두의 신은 인도인을 괴롭혔던 모든 이민족을 물리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대세는 <불교>가 아닌 <힌두교>였다.

그럼, 그동안 불교는 뭘하고 있었을까?

불교의 교리는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지만, 강력한 굽타왕조에 맞설 힘은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특히 인도 북부의 불교 교단들은 이미 큰 싸움으로 지쳐있던 상태였다.

마우리아 왕조에서 쿠샨 왕조까지 이어지는 동안 불교는 북부 지역의 강대국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반면, 불교 사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북방 이민족들과 끊임없는 투쟁을 하였다. 특히, 쿠샨 왕조 시기 불교 교단이 주적으로 삼았던 이민족은 <훈족>이었다.

중국의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중국에서 밀려난 훈족들은 끊임없이 인도 북부 지역을 약탈하였다. 이 훈족들은 동으로는 중국 북부로, 서로는 게르만 사회로, 남으로는 인도로 진출하여 기원후 세계사의 여러 지역에 영향을 준다. 인도의 고대 여러 왕조들이 이 훈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였고, 서유럽에서는 서로마의 멸망을 이끌었던 게르만족의 이동까지 훈족의 영향력이 미쳤다.

그나마, 이란인이 세운 쿠샨 왕조가 기원후 4세기 무렵까지 버틴 것은 왕조를 지지했던 불교 교단의 협조 때문이었다. 그러나, 쿠샨 왕조는 망했고, 불교 교단은 훈족과의 투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불교는 없었다.

힌두교의 복고주의는 불교 사상을 원시 브라만 주의로 돌려놓았다. 수드라 계급에게 평등은 더 이상 없었다. 바르나 제도의 계급 차별은 확고했고, 모든 직업과 주거, 결혼까지도 계급별로 차등을 두었다. 마누법전은 힌두교를 믿는 아리안 민족만을 위한 법이었다. 하층민에게 <해탈>의 기회는 없었다.

아잔타 석굴 : 인도양식과 이전 양식들이 결합한 인도적인 양식. 동아시아에도 많은 영항을 주었다.

2. 불교는 <밀교>가 되어간다...

아리아 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운 굽타 왕조는 7세기가 되기 전에 멸망한다. 7세기 무렵, 불교를 옹호하는 바르다나 왕조가 출현하면서 중국 불교와 우호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대부분 인도의 작은 독립국들은 힌두교를 옹호하였다. 힌두교가 지배층의 종교로서 백성들을 통제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7세기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교는 힌두교의 교리에 포섭되어 그 의미를 잃어갔다.

인도에서 대승 불교는 점차 <밀교>가 되었다.

힌두교를 믿는 아리아인의 탄압으로 종교 집회는 비밀스럽게 열렸다. 불교도들은 교리를 찾는게 아니라 종교 자체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점점 종교의 교리는 희박해지고, 절대자나 유일신을 찾는 신비주의 종교로 변질되었다.

초기 논리적인 불교에서 볼 수 없었던 주술 신앙도 등장한다. 미륵이 바람과 불, 홍수를 몰고와 세상을 정화시킨다는 믿음이 등장한다. 또 민간 신앙과 불교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민간에서 믿었던 수많은 신들이 불교 안에 들어오게 된다.

그나마, 이런 변질된 <불교>조차 7세기 이후 사라져간다. 7세기 이후 인도에 마호메트의 이슬람교가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의 기본 사상은 <평등>이다. 계급간 <차별>을 강조하는 힌두교와는 상극이었다. 하층민들은 <차별>을 강조하는 힌두교가 싫어서 불교를 선택했지만, 이슬람교가 들어오자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한다. 어짜피 똑같은 <평등>을 주장하는 종교라면, 힘있는 <이슬람 정복자>들이 숨어지내는 불교도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는가?

10세기 이후 본격적인 이슬람 세계가 된 인도는 또 한번 문화적 격동을 경험한다. 힌두교 사원과 불교 사원은 동시에 파괴되었다. 이래 저래 불상은 정권의 놀림감이 되었다. 16세기 무굴제국이 성립했지만, 무굴 제국은 전통 아리아 종교인 힌두교와, 하층민 종교인 이슬람을 융합시키기에 급급했다. 불교가 설 자리는 없었다.

21세기 현재, 인도에서 불교도의 인구는 전체 인구 비율로 보았을 때 너무나 미미하다. 불교의 종주국은 대승 불교가 정립된 5세기 이후, 한번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힌두교와 이슬람교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던 것이다.

3. 불교의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중국 불교

5세기 이후, 불교의 종주국 자리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은 유가, 법가 등 다양한 사상체계가 이미 정비되어 있었고, 굳이 불교가 아니더라도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데 지장이 없는 선진국이었다.

중국과 인도는 전혀 이질적인 문화권이었다. 중국어는 한자(표의문자)이고, 인도어는 범어(표음문자)이다. 중국인들은 유가, 법가 사상등 국가와 인간의 사회적 현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성향을 가졌다. 반면, 인도의 불교는 인간의 인지구조를 <분석>하려는 특징을 가진 사상이었다. 인도는 수많은 소왕국이 분립하면서 생성과 멸망을 반복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제외한다면, 비교적 통일 국가체제를 유지해왔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불교가 중국 사상계를 장악해 버린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일까? 그리고, 중국은 자신과 다른 이 문화와 사상을 어떻게 중국식으로 바꿔 버린 것일까?

인도와 중국이 불교라는 문화를 공유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헬레니즘 문화 때문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활한 문화권을 만들고 떠난 뒤, 인도는 쿠샨 왕조 카니슈카 왕이 서역 지배권까지 확보하게 되었다. 쿠샨 왕조 자체가 이란계 왕조였던 만큼, 쿠샨 왕조는 동서 교역에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쿠샨 왕조는 동아시아의 중국, 한반도부터 서아시아의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무역을 전개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승 불교가 아시아 곳곳에 전파된 것이다. 특히, 쿠샨 왕조와 상업을 하던 실크로드 중간 중간의 국가들은 불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중국의 한 왕조까지 불교가 전파된 것이다. 또, 당시 인도와 중국간 직접 교역로는 바닷길이었기 때문에 <남방 바닷길>을 통해서도 불교 경전이 한 왕조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불교를 처음 접한 중국의 한족들은 불교를 사상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중국의 한나라는 한무제라는 강력한 왕이 <유학>을 국가 사상으로 공포했던 나라였다. 한 왕조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유학을 열심히 공부한 뒤, <구품관인법>이라는 관리 임용에 채용되어야 했다.

한 나라에서 불교는 중국 전통 사상인 도교에도 밀렸다. 한 나라의 지배층은 고품격 품위 유지 사상으로 도교의 <황로사상>을 숭배하였다. 황로사상은 노장사상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의 철학을 지배층의 교양철학으로 받아들인 것을 말한다.

처음 불교를 접한 한나라의 지배층은, 불교를 도교와 같은 교양 철학으로 생각했다. 도교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 백성들의 생활을 살펴라>라고 말한 것은 한나라 지배층의 우아한 집권 철학이었다.(물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말로만 생색내기 위한 교양 철학이었지만....)

불교 역시 같은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대승 불교의 <공> 사상을 접한 한나라의 지배층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허무함이겠구나. 아무 것도 없는 상태는 노자가 말한 자연으로 복귀한 상태이다. 공이란 곧, <없다>는 것이 아닌가? 공이란 것이 태초의 허무함이라면, 곧 자연 상태가 아니겠는가? 석가의 가르침은 노자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구나....

결국 한나라 지배층이 생각한 불교는 도교와 같은 것이었다. 현실 상태에서 필요한 것은 유학이었고, 교양이나 취미로 알아야 할 것이 도교나 불교 따위였던 것이다. 교양이나 취미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따라서 도교와 불교는 하나의 패키지 세트로 묶여서 교양철학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심심할 때 생각해보는 교양 철학이 어떻게 유가 사상과 맞먹는 거대한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자, 그럼 그 철학자들 이야기를 한번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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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춘추전국시대의 사상 2. 도가와 묵가

이번 장에서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의 2번째 편으로 도가와 묵가를 간략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이 두 사상은 전편에 다른 유가와 정면적으로 충돌한 사상으로, 유가와 비교해서 해석하면 재미있습니다.

1. 도가

도가의 기원은 노자, 장자의 노장사상을 흔히 말합니다. 도가는 유가와 함께 중국 2대 사상으로 발전하지만, 그 사상은 유가에 대한 반발적 경향이 강합니다.

도가 사상의 핵심은 유가에서 말하는 <도덕원리>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합니다. 그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덕이라는 것은 인간의 자연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가부장권을 이론적 근거로 하여 전제군주권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유가는 국가주의적인 기형아적 사상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춘추전국의 혼란은 인간이 욕심을 부려서 일어난 <인재>라고 보고, 인간이 욕심을 떠나서 자연 그대로의 삶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소위 <무위자연>이며, 도가에서는 국가생활을 떠나 자연생활에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보통 이러한 현실 부정의 사상은 중국 남부의 초나라 등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인도 등 남부 지역의 자연주의 사상이 중국에 전파된 것이라 보는 입장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상의 기원이 아니라 도가 사상이 실제 자연중심적이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중국 사상의 기반을 이룬다는 점이죠.

도가에서는 국가란 것의 규모가 커질수록 인위적인 사회라고 말합니다. 국가는 될 수 있으면 인간 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최소 단위인 것이 좋으며, 국가의 규제보다는 자연의 법칙이 더 커질 때 진정한 자유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것을  <소국과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따라서 국가가 만약 일반 백성의 삶을 지나치게 규제한다면, 백성들은 국가에 대하여 저항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도가에서는 <저항권>의 개념이 은연중에 나타나는 것이며, 중국 민란의 사상적 근거의 대부분이 훗날의 <도교>에서 비릇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2. 도가의 사상가

도가 하면 일단 노자를 떠올릴 것입니다. 도가의 창시자이자 무위자연, 소국과민이라는 용어도 노자에게서 비롯되니까요. 그는 전제군주제를 비판하였고, 백성들의 저항을 인정하였으며, 유가의 인위적 질서를 비판하였습니다. 그의 사상은 거의 전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노자가 은둔하기 직전 국경검문소 병사의 요청으로 그 자리에서 적어주었다는 <도덕경>만이 남아 있는데, 이 도덕경의 심오함은 계몽주의 시대 서구 사상가들마저 감탄하여 필독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장자는 도가사상에 종교성을 주입하여 <도교>를 확립하는데 기여한 철학가입니다. 그는 진리의 상대성을 주장하여, 어떤 진리도 절대적 근원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내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되었던 것인가, 내가 나비인데 지금 인간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라고 말한 부분은 진리의 상대성을 명확히 드러내주는 말입니다.

3. 묵가 사상

묵가는 묵자가 창시했는데, 유가의 형식주의와 불평등주의를 전면적으로 반발하고 나온 제자백가입니다. 묵가는 전국시대 당대에는 가장 활발했던 학파로서, 당대 사상을 이끌었던 핵심 제자백가입니다.

묵가가 유가를 비판한 내용은 다양합니다. 일단 유가의 윤리성이라는 것이 너무 형식적이고, 비실용적이라는 점입니다. 묵가의 입장에서 유가를 바라볼까요?

유가에서의 예악정치란, 속마음을 숨기고 형식으로만 상대를 조롱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왕위세습이라는 것은 지배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든 사회적 제도 장치입니다. 유가가 말하는 어짐, 효도, 우애는 자신들의 가족만을 위한 가족윤리로서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사상에 맞지 않습니다. 묵가에서는 유가의 사랑을 <차별애>라고 하며 비난합니다. 또, 삼년상이란 쓸데없는 허례허식으로, 그 시간에 노동을 해서 이웃과 더불어 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유가가 말하는 정치철학은 너무 현세주의적이라 내세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서 다수 <백성>들의 삶에 위안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반대의 사상이 묵가 사상의 핵심입니다.

묵가사상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겸애,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비공, 모두가 평등하다는 상동, 모두가 일한 만큼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는 교리, 위인을 존경한다는 상현, 왕위와 높은 직책은 능력에 따라 열심히 일한자에게 준다는 선양 등을 주장합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꼭 갖추어야 하는 본성은 <가족윤리>가 아니라 <노동의 자세>라고 말합니다. 노동은 곧 생활이자, 사회적 능력이자, 이웃에 대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온정인 것입니다.

묵가사상에서 본 정치는 노동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공정한 능력 사회입니다. 이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너무나 크다고 묵가는 말합니다. 즉, 국가는 정치를 공정하게 할 수 있는 인물을 선거(선양)하여 그 인물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국가의 부강함, 인구의 증가는 모두 공정한 정치에서 나오며, 공정한 정치란, 노동자들에게 생산, 노동, 절약의 정신을 심어주고 가난한 자를 없애주는 정치를 말합니다. 특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을 <3환의 제거>라고 말하는데, 3환이란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 추위게 입을 것이 없는 것, 일하는 자에게 휴식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묵가는 묵자 이래 거대한 교단을 형성하여 사회 노동조직이자, 종교적 성향을 지닌 사학 집단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이웃에 대한 절대적 겸애를 바탕으로 한 <공리주의>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사랑>을 핵심 덕목으로 하는 사상체계였습니다. 그리고 철저한 노동과 금욕주의를 통하여 생산력과 개인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으므로, 게으른 자에 대한 귄위주의적 체벌과 훈련, 노동에 대한 복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묵가의 강력한 노동 중심의 권위주의는 묵가의 몰락을 초래합니다. 춘추전국시대 가장 강성했던 묵가가 몰락한 원인은, 그 사상이 너무나 철두철미하여 <중용>을 강조하는 중국사람들에게는 어려운 과업이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후의 묵가 교단은 중국 역대 왕조에서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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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의 사상 1 - 유가사상

1. 유가 사상의 특징

유가 사상은 춘추시대의 공자로부터 출발하여 그 제자들인 맹자, 순자로 계승된 사상입니다. 이 사상의 가장 핵심은 인간을 정치, 사회, 역사의 주체로 놓고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통해 삶의 원리를 발견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상은 인간이 살면서 지켜야 할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윤리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 사상은 자연속에서 진리를 찾는 도가적인 관찰자 역할을 무책임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법가적인 강압주의는 인간의 윤리를 근본적으로 깨닫는 이치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가사상가들은 자연과 강압의 가운데에서 <중용>을 통해 윤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후세계보다는 현실 속에서 인간이 살아야 할 방향을 탐구하였으며, 그것은 곧 정치 윤리로 연결되어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치국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갑니다. 따라서 유가주의자들의 논의는 상당히 지배계급의 이상적 당위성과 치국의 방법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또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내적인 윤리와 도덕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예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서주시대의 봉건적 질서와 예작제도를 중시하였으며, 그 원리에 따라 예법을 만들고 제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들은 군주는 덕치를 바탕으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윤리라고 말하면서도, 그러기 위해서 군주가 지켜야할 행동가짐은 예치로 규정해 놓습니다. 그리고 군주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다는 중용의 논리와도 일통합니다. 즉, 예치, 덕치, 중용에 입각한 덕치주의, 예약정치, 왕도주의는 군주의 필수 항목으로서 이러한 항목을 군주가 지켜가야 혼란한 시기를 구원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유가주의는 당시 공자 이래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면서 중삼-자사-맹자 계열, 자하-순자 계열의 사상이 달라집니다. 이들은 인간이 예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유가의 핵심 원리는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인간은 스스로 사회를 개척할 수 있는가, 패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등의 구체적인 부분에서 계열이 갈리게 됩니다.

2. 공자의 사상

공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인> 사상입니다. 어질게 사람이 사는 것이 곧 인간의 도리이자 윤리라고 주장하면서, 이 어진 삶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효, 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 - 효 - 제라는 핵심 도리를 말함으로서 이 도리가 가족윤리적임을 밝힌 것입니다. 즉, 가부장권을 옹하하면서 그 가족제도가 인간 삶의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효도와 우애를 국가적으로 확장하면 국왕에 대한 충성으로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상이었습니다. 국가에서도 국왕은 아버지가 사랑으로 가족을 감싸듯이, 덕으로서 백성들을 위무해야 합니다.

또 공자는 이렇게 인 - 효 - 제를 지켜가면서 윤리적으로 사는 이상적인 사람을 <군자>라고 지칭했습니다. 군자란 우애와 효도를 통해 <수신제가>를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평안하게 할 수 있는 마음 가짐을 가지고 <치국평천하>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공자가 말한 이상적 군자의 모범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입니다.

그는 군자란 윤리적인 측면이 강한 인물로서, 교양을 갖추되, 그 교양의 바탕에는 올곧은 지식을 근간으로 합니다. 따라서 정치의 목표는 소인배들을 군자로 끌어올라는 것이 곧 목표입니다. 공자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4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이것을 4등론이라고 합니다. 즉, 인간은 성인 - 현인 - 군자 - 소인이 있으며, 보통의 사람들은 소인이 되지 않고 군자가 되는 것이 곧 삶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인은 군자의 단계를 넘어선 지식과 정신을 겸비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성인은 선천적으로 성인의 천성을 타고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극한의 경지라고 말합니다.

공자의 이 4등론은 한나라 시대 한고가 인간유형을 9등으로 다시 세분하였고, 훗날 위진남북조 시기에 구품관인법을 실시해서 관인을 선발할 때의 기준으로 쓰입니다.

공자는 내적인 윤리(덕)와 외적인 예(예절)이 균형잡힌 사람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지식과 정신의 겸비를 다시 강조한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지와 정을 고루 갖추어 한곳에 치우침이 없는 것을 중용이라고 합니다. 중용은 관용과 타협정신을 가진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어 중국문화의 사상적 기반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용을 실시함에 있어 격식에 맞게 행하는 것은 서주의 예에 맞는 것으로, 예악정치도 강조합니다.

3, 맹자의 사상

맹자는 공자의 제자로서 공자 사상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그는 일단 인간 윤리에 대한 전제로 인간은 선하게 태어난다는 <성선설>을 주장합니다. 인간의 선한 마음은 그 처음의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나가야 할 것으로 파악하고, 본성을 지키는 것이 곧 유교 윤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부여된 4가지 본성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사단이라고 합니다. 4단은 측은지심(인), 수오지심(의), 사양지심(예), 시비지심(지)입니다. 그리고 이 4단이 발하는 것은 인간의 욕정 때문인데, 이것을 희, 노, 애, 락, 애, 오, 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4단에 맞추어 인간은 다섯 가지 도리를 지키며 살아야 선한 본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것은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이라는 5륜입니다.

맹자는 부국강병을 위한 정치이론으로는 <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를 주장하였습니다. 왕도주의란, 국왕이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한점 부끄럼도 없이 정의에 의해 다스려야 함을 말하는데, 이것은 4단 중에서 <수오지심>과 관련된 것입니다. 즉, 의 = 정의를 뜻하는 것이지요.

제왕이 수오지심에 의거하여 정의로 백성을 다스리면, 천명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으로서 하늘이 스스로 제왕을 돕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천명은 곧 하늘의 정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덕이 없는 군주가 정치를 한다면 이것은 하늘의 정의를 버리는 일이고 백성들은 새로운 하늘의 정의를 세울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맹자의 사상 속에는 <혁명론>의 근거가 숨어있습니다. 이러한 혁명론적 사상이 내포되어 있기에, 맹자는 살아생전에 크게 존경받으면서도 군주들이 꺼려하는 유가사상가였습니다. 또, 이러한 천명의 변화라는 개념은 후대 <선양>이라는 선례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법가사상가들은 맹자의 사상은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4. 순자의 사상

순자의 사상은 유가주의이면서도 기존의 학설과 많이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규정하는 성악설을 배경으로 하는 철학입니다. 따라서 공자, 맹자가 인간의 본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가족윤리를 주장할 때,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므로 예절을 통해서 억눌러야 된다며 맹자를 적극 비판합니다.

인간에게는 4단이라는 윤리가 내제한 것이 아니라, 절대 악이 내제되어 있습니다. 이 절대악을 누르기 위해서 예악정치, 인간윤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순자의 사상은 유교적 도덕관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실현 방법에 있어서는 약간 패도적인 법가주의를 받아들입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3번 하면서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면, 순자는 아마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잘못된 길로 갈때 마다 체벌과 정신교육, 토론을 계속 할 것입니다.

또 순자는 공자가 주장하는 인효제라는 가족윤리는 허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순자는 가족 윤리는 작은 것이며, 이 작은 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큰 윤리가 있는데, 이것은 곧 <의>를 따라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의>를 따라 산다는 것은 소속한 사회, 또는 국가를 위한 헌신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러한 순자의 견해를 <충의론>이라고 합니다.

5. 유가를 비판하기 시작하다.

그럼 여기서 순자 외에 공자 사상을 비판한 수많은 제가 백가들의 비판 내용을 한번 볼까요?

도가에서는 공자의 유교사상을 도덕관념에 너무 얽매여서 인위적으로 구성된 모순덩어리의 사상이라고 말합니다. 또 유교사상이 인간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다보니, 국왕권과 밀착된 현생문제에만 몰두하여 인간이 가진 내면의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도가에서는 전제군주제를 비판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 <소국과민>을 추구하라라고 말합니다. 도가는 국가의 단위는 최소한 작은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유가는 절대군주권을 옹호하면서 지배층의 이념만을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법가는 유가사상을 허무한 형이상학적 이념이라고 비판합니다. 유가 사상은 도덕과 윤리로 사회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여서 과연 그것이 정치이념이 되었을 때, 실제 전쟁으로 굶고 있는 백성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를 이야기 합니다. 실제, 유가 사상은 부국강병책과는 거리가 멉니다.

묵가사상가들은 가장 신랄하게 유가를 비판합니다. 유가가 왕권이 강한 중원지역의 학맥을 가지고 있다면, 묵가는 가장 남방의 초나라 권역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유가가 중원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원리를 정당화하는 학문이라는 것에 묵가는 크게 반발합니다. 묵가는 유가의 인-효-제의 가족윤리는 자신들만 챙기는 이기적인 윤리이고, 그것을 확대한 가부장적인 군주관은 절대군주권을 옹호하는 지배층만의 사상이라고 비판합니다. 묵가는 가족애는 <차별애>이므로, 만민이 모두 평등할 수 있는 <겸애>를 실현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또 유가에서 말하는 <예절과 예악>은 허례허식일 뿐이며, 그런 절차가 과연 무슨 생산력 발전에 도움을 주느냐고 비판합니다.

묵가 사상가들이 유가에 대하여 비판한 부분은 너무 많습니다. 왕위를 세습하는 것은 차별적인 관습이다, 3년상은 허례허식이다, 예악정치는 낭비이다, 가족윤리는 차별애이다, 또 현세적인 유교적 치국주의는 노동력을 중시하는 생활상과 맞지 않는다 등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도가, 법가, 묵가의 사상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장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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