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편>

15화. 평생을 불교와 싸운 유학의 아버지 - 한유

1. 맹신적인 종교가 국가를 망치는 것이다. 

중국 불교를 마무리 하면서 어떤 상징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쉽게 이해될까 고민하느라 포스트가 지연되었다. 오늘 이야기는 불교를 배척하면서 평생을 살아간 <한유>의 이야기로 중국 불교편을 정리하고자 한다.

중국 당나라 시기... 불교는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국가 권력과 밀착한 화엄종, 천태종 등 교종 종파 뿐 아니라, 백성에게 직접 뛰어들어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정토종, 선종에 이르기까지 불교천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힘이 너무 강해질 때마다 중국 황제는 종교에 태클을 걸었다. 그 이유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국왕이 불교를 용인하는 것은 불교가 왕권 강화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제에게 불교, 도교, 유학의 구분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종교가 황제권을 넘어서려 한다면 그 종파를 찍어 눌러야만 했다. 특히 유교, 도교, 불교라는 세 종파가 공존하던 중국 고대 사회에서 황제의 선택권은 넓었다. 황제가 불교에 위협을 느낄 때마다 유교, 도교를 이용하여 불교를 탄압하였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몇몇 <폐불사건>으로 알려진 것이다.

링크 : 불교편 9화. 서로 우위를 점하려던 도교와 불교의 한판 승부

특히 유교는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대세는 불교와 도교였고, 특히 불교는 당나라 측천황제(측천무후)의 불교 중흥 노력으로 최강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당나라의 국운이 기울던 당 말기부터 불교의 위세는 꺽이게 되었다.

당나라는 측천황제 이후, 불교가 사회를 지배하였다. 황제는 미륵의 화신으로 생각할 정도였고, 귀족들은 스스로가 보살이라고 여기며 성불을 기원했다. 천태종과 화엄종의 <경전>은 귀족들의 교양지침서였다.

공식적인 당나라의 통일 사상은 유학의 일종인 <훈고학>이었지만, 훈고학은 옛 성인들의 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수준이었다. 백성들은 불교를 믿고, 집집마다 향불이 올라왔다.

2. 유학자들의 반격

유학자들은 불교 세력이 성장하자 불교에 대한 비판을 공론화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황제권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불교 사원을 짓는다는 것은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고, 종교 사원은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을 누린다. 그것은 왕권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죽은 뒤 내세가 기다리며, 내세는 현생의 죄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과응보>에 대해 국가적 차원으로 비판하였다. 유학에서는 현실 사회에 대한 모순을 파악하고, 현실 개혁과 사회 안정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죽은 뒤 영혼이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현실성이 전혀 없으며, 백성들을 현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국왕으로서 당연히 막아야 되지 않겠는가?

셋째, 불교가 왕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당나라 이전의 불교는 왕권 강화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불교의 교리가 심화되어 강력한 <종파>가 생겨나자 문제가 발생했다. 불교가 석가모니의 참 뜻을 내세워 중국 전통 사회의 윤리에 도전한 것이다. 유학에서는 충성, 효도를 강조하지만, 불가에서는 출가릃 하여 부모와 국왕을 떠나는 것마저 허용하고 있다. 세금을 내야할 백성들이 줄어들고, 전통 윤리에서 멀어지는 것을 국가가 보고만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넷째, 불교 교단의 승려들이 <국사>가 되어 정치적 힘을 갖게 되었다. 왕권이 약해지는 시점에서는 이것도 골치아픈 것이었다. 백만대군보다 무서운 것이 종교적 힘을 가진 백만 민중 아니겠는가?

결국 당말기 폐불사건은 남북조시대 이후 계속 되어온 왕권과 불법의 대립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남북조와 수나라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폐불을 당해본 불교였지만, 당말기에 대놓고 진행된 폐불에서는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경전으로 중심으로 귀족층과 밀접했던 <교종>은 교단이 박살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간략한 선법 수행과 <믿음>을 강조했던 <선종>은 그 피바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나라 말기에 살아남은 불교 교파는 <선종>이었고, 결국 선종이 후대 중국 불교를 이끌어가게 된다. 그러나, 불교 자체가 위축된 만큼 불교의 힘은 떨어졌다. 당나라를 이은 송나라는 신유학인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았고, <교종> 교파는 송대 이후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었다.

3. 불교도 싫어, 귀족도 싫어...  NO 만을 외치던 <한유>

당송팔대가의 으뜸이라 불린 한유는,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불교>에서 찾았다.

백성들이 죽은 뒤 <윤회>를 생각하면서 현실을 암흑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귀족들이 불상앞에 재산을 기부하면서 사회적 역할을 못한다는 것을 모두 <불교>탓으로 여긴 것이다.

특정 종교에 매달려 모든 것을 버리는 행위가 생긴다면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종교가 <종파>적 철학까지 잃고 지배층이 맹신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면 국가 존립 자체가 위험해진다.

한유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신유학>을 제시하였다. 노장사상은 허무주의이며, 불교는 현실이 아닌 <내세>의 종교라고 주장하고 다닌 것이다.

한유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스스로 제자백가를 독서하고 과거에 합격한 뒤, 특출한 학식으로 승승장구 승진하던 엘리트 관리였다. 하지만, 지배층이 숭배하는 <불교>에 정면 도전하면서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당나라 덕종에게 지배층의 문란함을 비판하였다가 귀향을 갔었지만, 뛰어난 학식을 인정받아 다시 조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또 다시 지배층의 사상을 비판하여 귀향을 가게 되었고, 이것이 그의 일생에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귀향갔다 돌아왔다, 또 귀향갔다 돌아왔다....

특히, 한유가 미움을 받은 것은 당나라 헌종 때 <황제>의 불교 숭배를 비판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당 헌종이 법문사라는 절에서 석가의 손가락 뼈한마디를 구해 궁궐로 가져온 뒤 제사를 지내고 다시 절로 보낸 일이 있었다. 그것을 본 지배층 인사들과 백성들이 모두 그 뼈한마디를 찾아가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부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그 뼈마디에 기부했고, 백성들을 생업을 포기한채 뼈마디 앞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어찌 인도에서 죽은 석가모니란 인물이 중국 사회 전체를 흔들어놓는단 말인가? 진짜인지 알 수도 없는 석가의 썩어 문드러진 뼈조각이 국가를 망친단 말인가?

한유는 헌종에게 <불교를 신봉한 군주들은 모두 단명했다>는 글을 올리며, 황제를 직접 비판하였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당나라의 지배층들도 비판하였다. 소위 <귀족>이라고 불리며, 남작, 백작, 자작 등 작위를 받고 살아가는 지배층들은 개념(槪念)이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지배층들의 문학인 <시문학>까지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사륙변려체 등으로 구절을 맞추어 술자리에서 돌려말하는 싯구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아무 의미없는 유흥일 뿐이다. 문학이란,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하며, 진정한 <도>를 깨닫기 위한 노력 속에서 나와야 한다.

당나라 지배층이 쓰는 화려하고, 아름답기만 한 문장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요즘으로 따지면 원더걸스나 빅뱅의 노래가 귀에 착 붙게 반복적인 멜로디로 구성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뜻은 아무 의미없는 것과 같다. NOBODY를 백번 외쳐봐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유는 한나라 이전의 고문들을 회복시켜 아무 의미없는 당나라 지배층의 문학을 부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왜 하필 한나라 이전의 고문으로 돌아가자는 고문부흥운동(古文復興運動)을 전개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불교가 한나라 이후에 성행했기 때문이고, 유학이 한나라 때까지 전성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지배층 성향을 가진 한유.... 그 결과는? 오랜 시간 귀향살이었다. 그러나, 인생의 절반이 중앙정권에서 배제된 그였기에 백성들과 직접 만날수 있는 기회도 많았고, 많은 친구를 사귈 수도 있었으며, 성리학의 토대가 된 저서들도 적을 수 있었다.

4. 불교를 비판했으나, 유학도 내 버려두지 않은 한유

한유는 불교, 노장사상 등을 비판했고, 그것을 신봉하는 지배층과 무지한 백성들을 동시에 비판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옛 유학을 그대로 옹호하지도 않았다.

한유는 한나라 이전의 유학들도 비판하기 시작한다. 공자와 맹자의 말씀부터 시작된 고대 유학을 당나라에서 <오경정의>로 압축하였다. 당나라에서는 과거시험의 명경과를 보기 위해 <오경>을 공부해서 암기해야 했다.

하지만, 한유는 그것을 비판한다. 왜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단순히 암기해야만 하는가? 그들의 사상이 절대적이라고 맹신한다면, 불교를 절대적으로 믿는 이들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어떤 사상에 대한 맹신은 결국 교조주의일 뿐이다.

한유는 불교 자체가 나쁜 것이라 말하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불교의 교조주의적 성향을 비판하기 위해 평생을 불교와 싸우며 살아갔다. 그의 역사관은 이렇다.

중국의 전설시대에는 인간 윤리를 지키며 살아간 태평한 시기(태평성대)가 있었다. 그러고, 중국인의 전통 윤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유학>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한나라 이후 불교라는 외래 종교가 유입되어 황제들이 단명하고, 국가의 전성기도 단축되었다. 위진남북조의 긴 혼란기가 불교의 전성기였으며,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황제는 불교를 견제하면서 국력을 낭비하였다.

따라서 고대 유학을 부흥해야 하지만, 시대가 달라진만큼 새로운 유교 철학이 필요하다. 한유는 새로운 유학 철학을 <성선설>에서 찾았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의 성을 인, 의, 예, 지, 신 등으로 구분한 뒤 본성이 착한가를 따지는 철학이었다. 반면, 한유는 성선설, 성악설을 모두 보완하면서 인간의 성품은 3가지로 나뉜다고 말한다.

성 상품

  태어나서부터 선한 성품

성 중품

  선과 악 어느쪽으로나 갈 수 있는 성품

성 하품

  태어나서부터 악한 성품

한유의 책 중에서 널리 알려진 책은 <진학해, 원도, 원성>이라는 3권의 책이다. 진학해는 자서전으로 불교비판에 대한 내용이 많이 실려있고, 원도는 유학의 나아갈 길과 불교의 문제점이 실려있다. 원성에서 성삼품설을 적어두었다고 한다.

5. 불교의 시대가 가고 성리철학의 시대가 오다.

당나라 말, 한유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 성리학의 태동은 불교의 입지를 비좁게 만들었다.

한유의 벗인 유종원은 한유의 철학마저 비판하면서 <유물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역사 발전의 핵심을 <세력>으로 파악하였다. 공자, 맹자와 같은 성인이 역사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 그대로 성인이거나 종교인일 뿐이다. 우주나 음양오행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우주는 단순한 음과 양이 모인 기(氣)일 뿐이다. 기(氣)는 살아있지도 않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우주의 기가 인간행위에 벌을 내린다거나, 복을 준다는 말 자체가 미신일 뿐이다. 결국, 인간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역사를 이끌어가려는 <힘있는 인간 집단>일 뿐이다.

유종원과 한유의 후학인 이고는 스승 한유의 철학에 선종 종파의 <수련법>까지 더하였다. 선종계열의 불가에서는 인간이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맹자가 인간의 성이 모두 선하다고 말한 것처럼, 부처 역시 누구나 착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성인이든, 군자든, 평민이든 모두가 선할 뿐이다. 단지,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외부(기 : 氣)의 영향을 받아서 훗날 선과 악으로 갈릴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선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의 수련법인 <선>을 행해야 한다. 선종의 명상법과 수양법, 좌선과 대화는 학문과 종파를 넘어서 모두에게 유용한 수련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말기, 새로운 유학 사상가들은 불교를 비판하면서도, 옛 유학의 참뜻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 하려고 노력하였다.

새로운 유학은 당나라 귀족층들이 농담따먹기 하듯 적어내는 의미없는 글귀나 고사모음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의 본성을 연구하는 <뜻>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이 고문부흥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문부흥운동은 화려한 문구의 시를 벗어나, 현실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을 철학적 명제로까지 끌어내려는 노력이었다.

당말의 유학자들은 국가 권력이나 지배층과 밀착된 교종 종단을 철저히 배척하였다. 그러나, 신유학 역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뜻을 찾는다는 점에서, 선종 교단의 수련법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였다.

6. 불가와 도가의 철학이 성리학의 <태극>으로 합쳐지다.

당나라 다음으로 등장한 송나라에서는 성리철학의 틀이 완성되면서 사회 지배철학으로 자리잡은 시기였다.

그 역사적 철학을 <태극>으로 정리한 이가 바로 <소강절>과 <주렴계>였다.

절에서 거주하면서 불교철학과 유학을 두루 공부한 소강절은 불교, 도교, 유학의 철학을 두루 정리하여 태극(太極)이라는 불변의 원리를 만들어내었다.

태극이란, 절대 불변하는 우주의 진리로서,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理)와 같다. 태극은 불변하지만, 그것을 알아채는 인간의 정신(神)이 사물을 파악하는 것을 기(器 : 물질)리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과 기는 돌고 돈다. 세상에는 시작점이 있는데, 이것이 정신으로 표현되며, 또 물질로 표현되며 물질이 소멸되면 다시 정신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의 이론과 비슷하다.

또, 돌고돌아 물질이 자연으로, 정신으로 돌아간다는 점은 도가의 무위자연과 추연의 음양오행설과 유사하다.(실제, 소강절이 불교, 도가의 철학을 의도적으로 인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돌고돈다는 법칙 자체는 변하지 않고 불변하는 진리로 남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태극>인 것이다. 태극은 모든 자연과 인간, 우주의 근본 법칙이다.

이 사상을 정리한 이는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인 <주렴계>이다. 그는 선종 선승들과 직접적인 교분이 있었고, 선종의 수양법으로 자신을 단련하면서 살았던 인물이다. 주렴계는 모든 현상의 근본 법칙인 태극에게 2가지 속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움직이는 것을 양(陽)이라 하고, 정적인 것을 음(陰)이라고 하는데, 이 음과 양이 돌고 돌아 우주의 법칙을 회전시킨다는 것이다. 음과 양은 오행(화,수,목,금,토)의 상극을 만든다. 양은 남성, 태양 등을 뜻하며, 음은 여성, 달 등을 뜻한다. 불(火)이 양이라면 나무(木)가 음이 된다.

그리고, 이 양과 음이 상호작용하면 우주가 돌게 된다. 만물의 생성을 주도하는 것이 건(乾)이고, 받아들이는 것이 곤(坤)이다. 하늘과 남자가 건이면, 땅과 여성이 곤이다.

주렴계의 철학은 결국 불교와 도교의 철학에서 파생되었다. 선종에서 말하는 공(空) 사상과 도가에서 말하는 무(無) 사상 등의 철학을 유가 형식에 맞춰 <태극>으로 정리한 것이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불교와 도가에서는 존재의 근거가 되는 불변의 진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논리적인 정신적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렴계는 <태극>이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님자, 여자, 하늘 등의 명칭을 가진 물질이라는 점에서 <유물론>적인 관점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태극의 실체를 리(理)라고 말하고 있다. (태극도설)

7. 선종 철학을 벗어나 이기론으로 향하는 성리학...

동시기를 살았던 장제는 좀 더 세밀하게 불교 철학과 성리학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불변의 본질인 태극 자체를 리(理)라고 말하면서, <리>는 단순히 변화의 법칙을 설명하는 원리라고 말하였다. 실제 우주를 구성하는 실체는 기운(기 : 氣) 인데, 이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존재자라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장제가 주장한 <주기론>은 불교사 입장에서 보면 아찔한 것이 된다. 불교의 <공>사상이나, 도가의 <무> 사상이 전면 부정되고, 우주에 실제 존재하는 기운(氣)이 명백히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장제의 입장에서 <기>란, 우주의 생성부터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며, 지금 이순간에도 변하고 있는 모든 사물인 것이다. 더 이상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은 어려운 말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우주의 기운(氣)를 받아 생겨나서 살아가다가 사라질 뿐이라고 말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내세도, 윤회도 이젠 없다. 기운(氣)은 살아있을 때 활동할 뿐이며, 죽은 뒤 사라질 뿐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정이천, 정명도 형제는 장제의 <기> 사상을 우주와 만물의 일치로 끌어올린다. 그들은 모든 만물에 기운이 있고, 그 기운은 우주에서 내려준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고, 모든 중화인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아는 단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의 기운(氣)은 불변하는 원칙인 이치(理)에 의해 움직이므로, 모든 우주의 기운에는 이치가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일물일리론 : 一物一理論)

이 이론을 정리하여 성리학을 완성한 이가 바로 성리학의 아버지 <주자>이다. 주자는 이치(理)와 기운(氣)의 상관관계를 정리하고, 그것을 중국민족의 우월성과 정당성으로 규정하면서 새로운 정치철학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불교의 교종 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정치철학으로 성리학에 지배권을 빼앗긴 불교는 이미 당나라 지배층이 무너지면서 정치적 실권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제 불교는 민중속으로 파고든 선종과 정토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송나라를 넘어 명, 청 시대로 이어지면서 서민 불교로 자리잡아간다. 그리고, 송나라 이후 역사적 변환점에 새롭게 자리잡게된 철학은 <유학>이었다.

자, 그럼 이 쯤에서 중국 불교이야기도 끝내고 한반도와 일본의 불교로 넘어가보자.

한반도의 불교는 인도, 중국 불교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될 것이다. 고조선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조계종까지의 불교를 역사와 관련해서 살펴보자. 그리고 일본의 불교는 우리 역사와 비교해서 다루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 했듯이 티벳이나 동남아 불교는 동아시아 역사와 큰 관련이 없기 때문에 관련 부분만 조금씩 이야기하려고 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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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3화. 전통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의 대결 속에서 탄생한 석가

1. 철기 시대의 사화 변화와 <정치, 사회> 계급의 성장

최고의 계급인 브라만은 우파니샤드 철학의 이념으로 <브라만>의 정당성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의 인도는 이미 <고대 신의 신비주의> 관념만으로 지배 계급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철기가 보급되고, 생산력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전사계급이 원하는 것은 <넓은 영토>였다. 물론, 신관들이 신의 계시를 내리고 전쟁을 도왔다고는 하지만, 전쟁에서 실제 필요한 것은 무력과 경제력이었다. 무력을 가진 자들이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이었으며, 재력을 가진 자들은 바이샤 계급이었다.

전쟁은 많은 민족간에 혼혈을 가져온다. 더 이상 순수한 <아리아인>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왔다. 크고 작은 부족 국가들이 통합되면서 거대한 영토를 가진 군주국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국가가 발달하면서 엄청난 토지를 가진 귀족과 재력을 가진 상인들 역시 입김이 쎄진다. 특히, 비옥한 겐지스강 유역을 장악한 부족들은 인도 북부를 통일하겠다는 꿈까지 가진 시기였다.

<브라만>이라는 최고 계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비옥한 겐지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점차 <브라만교 반대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 3계급은 브라만에게 반발하였다. 더 이상 특권을 유지하려는 브라만교를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특히, <제사를 지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만이 신과 접촉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었다. 제사 지내는 방법이야 누구나 배우면 되지 않는가?

브라만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직접 제사를 지내며 스스로 교단을 만들어 버린다. 특정 종교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종교의 사상을 벗어나 독자적인 종파가 된 경우를 <사문 : samana>이라고 한다.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원래 인도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문들은 브라만교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만들어갔다.

2. 사문들과 브라만과의 싸움

브라만교의 전통 철학은 우파니샤드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기본 원리는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과 생명의 원리인 아트만은 동일한 것>에서 출발한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중요한 점은,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이 창조주이자, 역사의 진행자이자, 생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브라만은 우주의 법칙 속에서 생명도 만들고, 죽음도 만들며, 윤회도 만든다. 우주는 브라만의 법칙에 의해 돌고 돈다. 해탈은 그 법칙을 알고 있는 <브라만>만이 가능하다.

사문들은 브라만을 반대한다. 고행을 통하여 힘든 과정을 겪으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해탈이 가능할텐데 왜 <브라만>만 해탈한다고 하는가? 또, 착한 일을 하면 다음 생애에 <브라만>으로 태어난다고 하는데,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 지금의 선악과 내세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과격한 사문에서는 아예 <육체>가 죽으면 선악이 죽는다는 <유물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문은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들을 거론하면서 <영혼>도 결국 물질 현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혼>이 어떻게 현실과 격리될 수 있는가? 살이있는 인간들도, 자 <영혼>을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적인 사문인 <자이나교>의 <바르다마나>는 브라만교의 <선행> 개념 자체를 부인한다.

인도 나타족 왕자(2계급)인 바르다마나는, 착한 일을 한다면서 하늘에 제사나 지내는 형식적인 브라만들이 해탈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해탈>는 깨닫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정화>해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1계급들이 잘나서 1계급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아무도 증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해탈은 신분과 상관없이 <고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하고, 살생을 금지하며,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해탈의 기본 조건 아니겠는가?

자이나교의 교리는 단순하다. 사람은 살면서 실수를 한다. 고의든, 우발적이든 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영혼은 더럽다. 따라서 엄격한 계율 속에서 고통스러운 <고행>을 한다면 영혼이 정화되면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이나교는 대부분의 브라만 의식은 인정한다. 그러나, 브라만들만의 특권을 반대하면서, 모든 계층이 고행을 통해 <구원>받는 다는 교리를 설파한 것이다. 수많은 사문 중에서 지금까지 인도인들에게 살아남은 사문은 <자이나교>밖에 없다. 그 핵심은 <고행>이었다.

<자이나교-아디나타사원>

<자이살메르사원>

티르탄카라상

3. 도시 공화국에서 태어난 석가

기원전 5세기, 강력한 철기를 가지고, 인도 북부(겐지스강가)에 살아남은 국가는 모두 16개국이었다. 그러나, 강대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는 모두 <군주국>이었다.

군주국에서는 국왕과 브라만들이 독단적으로 정치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수드라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윤회설>을 강조하였다. 수드라인 너희가 천민으로 태어난 이유는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너희는 이번 생애 내내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이 무렵, 석가는 기원전 566년, 도시국가인 네팔(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 석가가 살았던 지역은 크샤트리아와 바이샤가 많았던 도시 지역이었다. 당시 도시 국가에서는 2, 3계급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공화 부족들은 군주 부족과 달리 모든 일을 부족내 유력자들이 모여 회의하고 결정하였다. 신라의 화백회의와 같은 <만장일치제>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반면, 군주 부족들은 군주와 신관이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공화국의 부족국가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국가들에 의해 하나하나 멸망해가고 있었다. 곧, 강력한 군주가 인도 북부 전체를 통일할지도 몰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석가는 브라만 신관들의 독선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리고, 약소국가의 2계급으로 태어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을까?

4. 석가 <사문>의 형성

석가는 브라만의 가르침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브라만에서 말하는 <생명과 윤회>를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는 생로병사를 느끼고자 여러 브라만 수행자들을 만났다. 그러던 중 29의 나이로 출가했다. 그 때, 갓 태어난 석가의 아들이 <라후라>였는데, <라후라>란 <장애물>이란 뜻이다. 석가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난 것이다.

석가가 맨 처음 스승으로 모신 사람은 선정주의자들이었다. 선정주의자들은 <착한 일>을 많이하면 <해탈>한다고 말했다. 석가는 모든 이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착한 일을 아무리 해도 해탈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길을 떠난다.

석가가 두 번째로 택한 길은 <고행>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고행을 해도 <해탈>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석가가 마지막으로 택한 길은 <명상>이었다. 보리수 밑에서 명상을 하던 석가는 35의 나이에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다. 보리수란, 깨달음의 나무란 뜻이다. 또, 깨달은 사람을 <붓다>라고 하고, 성자를 <모니>라고도 하는데, 보통 <석가모니> 또는 <석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가 명상으로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중도>였다. 선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극심한 고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가야한다는 것이다.

석가의 <중도>사상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는 구름과도 같은 제자들을 얻어 <교단 : 승가>를 만들었다. 승가란, 모든 자들이 평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 집단을 말한다.

석가가 만든 승단은, 공화국 체제와 비슷하다. 바르나 제도와는 달리, 모두가 평등하며, 서열은 먼저 들어온 순서로 정한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뭉쳐진 그룹집단인 것이다.

불교도는 네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남성 출가자(비구), 여성 출가자(비구니), 남성신도(우바새), 여성신도(우바이) 이다. 이들간의 차별은 없다. 물론 가장 똘똘한 인물들을 10대 제자로 두긴 했지만, 그것은 어느 한 분야의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을 능력별로 인정해 준 것이다.

석가 사후, 석존의 가르침은 대부분 구전이었기 때문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을 정리한 사람은 100년 후 아소카왕 시대의 제자들이었다. 부처의 가르침을 경, 율법서를 율, 주석을 논 이라고 분류하여, 경,율,론 3장의 불교 지침이 성립된 것이다.

석가시대의 가르침을 보통 <원시불교 : 초기불교>라고 말한다. 원시불교란, <암송한 것>을 기억하여 가르침을 남긴 것이다. 석가와 같이 배우고 암송한 것을 함께 기억하고 되새겨 모아 적는다. 초기 석가의 가르침은 <아함경전>에 실려있다. 훗날, <아함경>으로 불리는 경전은 중국과 한반도에도 전파되었다. 경이 가르침이라면, 율은 율법서이다. 율은 출가자들이 지켜야할 조문들을 모두 모아놓은 조문집이다. 물론 주석인 <론>은 후대에 달아놓은 것들이다.

5. 석가의 가르침

석가의 핵심 가르침은 <번뇌>였다.

번뇌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통과 고민>을 말한다. 보통 <고집멸도>라고 불리는 이 번뇌는, 고(고통), 집(고통의 원인), 멸(고통의 소멸), 도(소멸의 법도)를 총칭한다. 이 4가지 고통을 해결하는 과정을 <4제>라고 한다.

석가는 이 고통을 없애는 방법으로 8정도를 제시하였다. 8정도란, 고통을 없애기 위해 8가지를 바르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지침이다.

올바른 견해(정견), 올바른 생각(정사유), 올바른 언어(정어), 올바른 행동(정업), 올바른 생활(정명), 올바른 노력(정정진), 올바른 기억(정념), 정신통일(정정) - 이 8가지를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8정도를 이끌어가는 방법이었다. 브라만에서는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에서 충실하기 위해서 <계급에 맞는 착힌 일>을 하라고 말한다. 반면 자이나교 같은 사문에서는 철저하게 <고통스런 고행>으로 악업을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래야 <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는 말한다. 선정이건, 고행 이건 단지 하나만으로 <해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중도>를 걸어야 한다고.... 그럼 왜 중도만이 고통을 없애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정>은 영적인 측면을 주로 강조한다. <고행>은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정신과 물질이 연결되어 일어난다.

석가가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은 상호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깨닫는 다는 사실 조차,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어떤 일을 겪지 않으면 깨달음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으로 얽혀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을 <연기>라고 한다.

우주가 단지 브라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물 자체가 인과관계에 의해 얽혀서 움직이고 있기에 절대적인 근본이라는 것은 없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데, 어떻게 아트만(생명)이라는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연기설>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존재하는 것이 같이 존재한다.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그 현상의 원인이 있다. 원인이 없다면, 현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만물은 서로 의존하여, 서로의 원인도 되고 결과도 되는 것이다. <연기>의 본질을 알게 되었을 때,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 <중도>를 모르고 한가지 길만을 추구하는 것을 <극단 : 탁자의 모서리>라고 말한다. <극단>은 <해탈>이 아니라 자신을 망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연기>의 세계를 깨닫는가?

석가는 깨달음을 아는 방법으로 삼법인(3개의 진리의 도장)을 말한다. <연기>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원인이 되어 돌고 돌기 때문에 결국 그 본질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이라는 3개의 진리로 표현된다.

제행무상이란? 제행은 <움직여 변한다>는 뜻이다. 무상은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여 변하므로 결국 인연에 의해 연결된 세계는 사간에 따라 변하게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다.

제법무아란? 제법은 <율법, 진리>를 말하고, 무아는 <나란 없다>는 뜻이다. 즉, 나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나란 육체와 정신, 생각, 역사 등등이 어떤 원인과 결과로서 만들어낸 순간적 존재이다. 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나이며, 내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아트만)이란 없다. 즉, 보편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열반적정이란? 열반은 <해탈>의 불교식 표현이고, 적정은 <소멸>을 말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연기>로서 돌고 도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고통과 번뇌>가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8정도를 행동으로 옮기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고통>이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지면 해탈한다는 것이다.

6. 석가의 가르침을 남긴 마가다국

석가의 이러한 불교 철학과 종단(승가)은, 갠지스 강 유역에 위치한 마가다국에 의해 보호되었다. 석가는 살아 생전에 갠지스 강 유역의 마가다 지방에서 깨달음을 찾으며 고행을 했었다. 또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포교 거점으로 삼았던 지역이 마가다 왕국이었다.

마가다 왕국은 북인도 16대 강국 중의 하나라 불교, 자이나교의 발상지로 불리는 국가이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석가를 신하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토를 주겠다는 말까지 했던 왕이다.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은 그 이후 불교와 자이나교의 성지가 되었다.

갠지스 유역을 통일했던 기원전 5세기의 마가다국과 달리 기원전 4세기의 마우리아 왕조는 북인도 전체를 통일하면서 불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마가다 왕국의 후손으로서 아리안 전통 직계인 마우리아 3대왕 아쇼카는 불교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석가의 연기설은 당시 통일국가 이념으로도 제격이었다. 연기설이란, 모든 사물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연결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것은 각 부족별로 흩어져있던 당시 사상 체계를 통합하는데 딱 좋은 사상이었다.

개체는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의 인과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즉, 개별적인 것들은 전체적인 것의 일부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부족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들은 좋던 싫던 다른 부족과의 관계에서 살아가게 되고, 궁극적으로 통일된 전체에 의해 규제받게 된다. 전체라는 것은 개별 부족을 넘어선 중앙집권국가의 지배자를 뜻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은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국가도 인연을 맺고 있다. 강력한 국왕이 출현한 것도 그 인과 관계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국왕은 모든 백성을 때려잡는 국왕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는 슬기로운 지배자이다. 브라만 신앙에서 내려오는 정법(정의)의 지배자를 <전륜성왕>이라고 한다. 즉, 마우리아 왕조의 절대자 아쇼카 왕이 곧, 전륜성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쇼카 왕은 이 전륜성왕의 브라만 신화와 불교를 연결시켜 버렸다. 전륜성왕의 통치를 돕기 위해 <미륵불>이 지상으로 내려와 백성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로서 <미륵불> 신앙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신앙이 등장하였다.

아쇼카 왕은 전륜성왕과 미륵불 사상을 몸으로 실천하였다. 자신이 정법을 구현하는 왕이 되어 북인도를 통치함은 물론, 자신의 분신들을 주변국에 보내 불교의 참 뜻이 무엇인지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남부의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도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한다. 멀리는 이집트,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불교라는 종교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소카 왕 때의 불교는 <소승불교>라는 초기 불교였다. 아직 불교는 출가자들 위주의 불교였고, 국왕은 불법을 지키는 호법왕이라고 여겨졌다. 부처가 되는 것은 개인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함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전륜성왕

그러나 아쇼카 왕 사후, 기원전 2세기 무렵 불교는 또 다른 격동을 겪게된다. 아쇼카 왕이 죽은 뒤 약해진 마우리아 왕조는 서쪽에서 밀려온 이민족들에 의해 분열된다. 그리고, 만민 구원을 외치는 서방 종교와 서아시아 밀교 등이 들어오면서 <대중 전체의 구원>을 생각하는 불교가 등장한다. 이 때의 불교를 <대승 불교>라고 하며, 대승 불교는 비단길 등 교역로를 따라 중국과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대승 불교 이야기와 동아시아 불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여기서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나라까지 들어오게 된 <한국식 불교> 이야기이다. 동남 아시아로 내려간 소승 불교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겠다. 중국과 한반도로 넘어온 종파를 위주로 <대승 불교> 이야기를 좀 하고, 중국, 한반도, 왜로 넘어간 불교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 참고할 만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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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