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6화. 격의 불교 이야기...

1. 중국 불교는 청담에서 비롯되었다.

자, 이제 본격적인 중국 불교 이야기를 해보자. 중국에 불교가 처음 전파된 것은 후한 시대이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듯이 쿠샨 왕조의 적극적인 확장 정책과 외교정책으로 대승 불교가 각지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중국 한나라에서의 불교는 <교양> 철학 수준이었다. 중국 <한>나라는 가장 전통적인 중국 왕조이다. 중국 민족은 자신들이 <한족>이라고 믿고 있으며, 중국 전통 문화의 원류는 <한나라>에서 기반이 잡혔다고 생각했다. 가장 전통적인 <유학>도 한나라 시기에 완성되었다. 한무제가 <유교>를 국교화하고, <한자>의 정형틀을 완성시킨 것이다.

불교가 한나라에 전파되었지만, 그것은 외국 철학의 일종일 뿐이었다. 지배층이 교양을 쌓기 위해 읽어보는 수준이었을 뿐, 중국 지식인들은 관리 임용을 위해 <유학>을 익혔다.

그럼, 불교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부터일까?

후한이 멸망할 무렵부터이다. 중국 후한시대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원소, 조조 등 호족세력들이 판치는 무법천하였다. 백성들은 길고 긴 전쟁의 시대로 막 들어선 것이다.

위, 촉, 오의 삼국시대부터 남북조 시대의 분열까지 길고 긴 분열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시기가 되기에 윤리적인 측면이 강한 <유학>은 왕따당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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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의 중국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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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의 국가 먹이사슬>

혼란한 시기에 사람들이 찾는 종교는 <내세>라던가 <자연>을 강조하는 종교였다. 사람들은 유학이 아닌, 도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한나라가 망한 뒤, 실권을 잡은 것은 삼국 중 조조의 <위>나라였다. 위 나라는 강력한 법치주의에 의해 국가 통일을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정치가가 아닌 일반 학자, 사상가들은 <도교>에서 혼란의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당시 도교는 혼란의 원인을 <인간의 욕심>으로 보았다. 서로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탐욕자들이 싸우고 죽이는 탓에 백성들만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 않는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위나라의 학자들은 도가사상의 원리인 <자연으로 돌아가자>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렇게 노자, 장자 등의 철학에서 현실의 문제점을 발견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현학>이라고 한다.

<현학>은 노자와 장자의 철학에서 우주의 근본 원리를 규명하려는 학문이다. 우주의 근본 원리인 <도>를 <현>이라고도 부르기 때문에 현학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현학은 하안(190-249), 왕필(226-249) 등에 의해 전개되었다.

하안과 왕필 등의 사상가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문제점이 무언가를 따지려고 했는데, 이런 대화를 <청담>이라고 한다. <청담>이란 말 그대로 <깨끗한 세계의 담론>이란 뜻이다. 위나라에서 시작된 이들의 <대화>를 역사에서는 <정음시대의 현학>이라고 부른다. 하안은 노장사상으로 논어를 해석하였고, 왕필은 노장사상으로 주역을 해석하였다고 한다.

그럼 이들의 대화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간단하다. 도학에 나오는 사상들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는 것이었다. 도학의 문구들은 너무나 심오하다. 노자의 <도덕경>은 서양 학자들도 인정하는 동양 최고의 학술서이다. 노자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무위자연>, 국가는 작을수록 좋다라는 <소국과민>, 가장 행복한 삶은 자연에서의 삶이라는 <자연합치> 등을 주장하였다.

노자의 사상에 맞춰서 모든 사상을 재해석하는 것이 <현학>이다. 유교사상은 현실사회의 직접적인 문제와 인간 윤리를 주로 다룬다. 그러나 후한이 망한 뒤의 세상은 무법 천지이다. 인간 윤리는 이제 <전쟁없는 사회>라는 틀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청담 사상가들은 현실의 윤리보다는 <전쟁>의 참혹함, 사후세계는 어떤 것일까라는 내세에 대한 상상, 삶과 죽음과 인간관계에 대한 탐구에 더 집중한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답은 한가지였다. 대화를 나누던 청담 사상가들은 <전쟁>에 골몰하는 국가를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점점 현실과 떨어져 중국 전통 윤리를 비관하기 시작한다. 자, 그럼 청담 사상가들은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노자의 세계로 가기 위한 방편으로 어떤 철학을 찾았을까?

불교에 그 답이 있었다. 불교는 만민에 대한 구원, 내세에 대한 윤회와 열반 사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공> 사상을 강조하여 <허무주의>를 보여주면서도,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혼란한 시기에 딱 맞다. 얼마나 맞춤형 철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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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위진남북조 시기의 중국인들은 지긋지긋한 전쟁에 질려있었다. 삼국시대, 위의 조조, 서진시대, 5호 16국의 이민족 시대, 남북조의 분열시대.... 길고 긴 전쟁의 역사는 훗날 <수>나라가 통일국가를 세울 무렵에야 끝나는 것이다.

이 불안한 시기에 불교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인간은 죽은 뒤 자신의 업보에 의해 <윤회>를 하게 된다. 지금 현상에서의 고난은 전생에서의 죄를 씻는 과정이다. 그 업이 끝나고 현생에 덕을 쌓으면 내세에는 행복한 날이 기다리고 있다. (업설) 지금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많은 죄를 지은 것이고 생이 끝나면 죄를 받을 것이다.(인과응보론)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얼마나 딱 맞춤인 철학인가?

그렇다고 지배층과 국가가 불교를 탄압한 것도 아니다. 한나라가 망하고, 조조 일가의 시대가 끝난 뒤 중국은 5호 16국이라는 이민족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이민족의 왕들은 <유학>에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중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불교>가 이민족 취향에는 딱 맞았다.

이민족 왕들은 불교를 주술적 방편으로 이용하였다. 흉년이 들면 승려가 주술을 펼쳐주었다. 질병과 재난은 불제자들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큰 전쟁을 앞두고 학식이 높은 승려들에게 전쟁의 승패를 묻기도 하였다. 또, 인도의 아쇼카 왕이 했던 것처럼 왕 자체가 불법을 수호하는 <불교의 수호신>임을 자청하였다. 왕이 곧 불교의 신이라는 이념은 불교를 믿는 백성들을 한 마음으로 묶어줄 수 있었다.

왜 불교가 민간신앙이나 주술신앙, 국가 호국 불교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혼란한 이 당시에는 불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왕권 강화를 위한 <사상>으로 충분했다. 혼란기의 각국 지배자는 큰 사찰과 어마어마한 불상, 귀따가운 큰 법회를 열어가면서 왕권이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였다.

어렵고 험난한 시기에 불교의 원래 뜻이 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종교는 현실에 도움만 주면 되지 않는가?

3. 대충 때려맞춰서 이해한 격의 불교

초기 청담 사상가인 왕필은 유교, 도교, 불교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왕필은 도교의 기준에 맞춰 다른 종교의 특징을 규정하였다. 노자와 장자가 도가 사상을 창시하면서 우주의 근본 원리와 인간의 행동 가짐을 <도>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공자 역시 큰 <도>를 깨우친 사람이고, 석가모니도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성인들이 결국 <도>를 깨달았으니, 모든 믿음은 하나가 아니겠는가?

왕필이 주장한 <유,불,도교의 3교 일치설>은 지둔(314-366)에 의해 구체화 되었다.

지둔은 불교 스님이다. 왕필이 도교 기준으로 종교를 통합했다면, 지둔은 불교 사상을 중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보자. 중국 전통 사상은 <리기론>이다. <리>란, 우주의 근본 질서나 계절을 의미하는 불변의 진리를 말한다. 지둔은 이렇게 말한다.

<리>가 절대불변의 원리인 것처럼 불가에서 말하는 반야(지혜>는 영원 불변의 <깨달음>이다. 즉, <리>는 불가의 <절대적 깨달음>을 말한다.

다른 것도 대입해볼까?

불가의 <공>사상은 <만물은 돌고 돌아 그 형체를 알수 없다>는 뜻이다. 보이는 것은 곧 사라지고, 사라진 것은 다시 생겨난다.(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심오한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도교의 <무>로 설명한다. 사라진 것이니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부처가 <열반>한다는 것은 도교의 <무위>로 해석한다.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보살들을 도교의 <도>로 해석한다. 불가의 <진리>는 도교의 <근본>으로 해석해 버린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간편한 해석법인가?

이러한 불교 이해 방식을 격의 불교 방식이라고 한다. 격의란, 불교의 난해한 개념들을 중국 전통 사상에 이미 존재하는 비슷한 개념들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쉽게 이해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불교의 원래 뜻을 왜곡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방법을 중국 곳곳에 알리고 다닌 이는 축법아였다. 그러나, 4세기 이후 불교의 승려들은 축법아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격의 불교는 불교의 참 뜻을 알 수 없기에, 지배층들이 마음대로 해석하여 불교를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든다. 또, 일반 백성들은 토착신앙과 신비주의를 불교와 구분하지도 못하고 멋대로 불교를 이해한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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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 남북조 시대의 대립상황>

4. 불도징을 초빙하다.

불도징은 위진남북조의 혼란이 시작된 초기 인물이었다. 그는 서북인도와 관련된 구자국이라는 곳의 은거하는 불학자였다. 그가 70여살이 되었을 때, 중국의 백성들이 <위진시대>의 혼란기에서 희망없이 산다는 말을 듣고, 제자들과 중국으로 건너왔다. 드디어 불교가 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정통 <인도산 스님>이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런데, 불도징은 <불교의 참뜻>을 전파하지 못하였다. 당시는 혼란중에 혼란기인 5호 16국 시대였다. 5개의 이민족이 16개 국가를 세워 중국 대륙은 어딜 가나 전쟁 뿐이었다. 불도징은 후조 왕국의 석륵, 석호 부자에게 불법을 설파하였는데, 석륵은 불교를 아주 우습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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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기 : 5호 16국 시대의 후조 왕국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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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국가들의 민족 분포와 국가 창업자>

불도징은 불교 교리에 대한 철학 강의를 했지만, 석륵은 시큰둥했다. 결국 불도징은 교리로서 불법을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겼다. 불도징은 주문을 외워서 항아리에서 연꽃이 나오게 하는 등 신비로운 주술로 석륵을 감동시켰다. 결국 이 당시 불교 수준은, 뭔가 위대한 부처의 힘을 보여줘야 비로소 믿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불도징은 큰 뜻을 품고 중국 대륙에 왔지만, 단 한권의 책도 쓰지 못하였다. 이민족의 왕들이 원하는 건 신비로운 주술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 뿐이었다. 스님과 주술가, 점쟁이를 구분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석륵의 아들, 석호는 이 신비로운 스님을 존경하였다. 불도징은 석호에게 <국왕>이 해야 할 일을 설교하면서 중국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였다.

1. 살행을 금지하고 죄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말 것
   2. 포학한 행동을 피하고 자비심을 가지고 보시할 것
   3. 부처를 섬기는 데 있어 깨끗한 마음과 자긍심을 가지고 해야 할 것

불도징은, 인도에서 건너온 선구자라는 것 외에 크게 남긴 것이 없다. 중국 대륙에 자리잡은 이민족들은 불법이 뭔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중국 불교사를 바꿀 만한 거목들을 제자로 키웠다. 그들의 이름은 도안, 혜원 이였다.

중국 대륙에서는 부처의 참뜻이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다음장에서는 도안부터 시작되는 <불교 알리기>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중국 스님들이 제대로 된 불교를 알리고자 했던 노력은 수백년 동안 계속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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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 속 역사여행 10 - 불구대천의 어원과 고대의 <예 사상>

부모에 대한 예의가 첫 번째인 사회....

불구대천(不俱戴天)이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이야기를 정리한 <예기>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예기는 춘추전국시대부터 한나라까지 예(禮)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책입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예>라는 것을 무척 중요시 하였는데, 이 예기는 <시경, 서경, 춘추, 주역>이라는 유명한 책과 함께 5경으로 불리는 책이죠.

다른 유명한 책들은 모두 시경, 서경 처럼 <경>자를 쓰지만, 예기는 <예>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아 각주(주석)을 달았다는 뜻에서 <예를 모아 기록한다는> 예기로 전해져 옵니다. 예기는 1권의 책이 아니라 예와 관련된 모든 문헌을 모았는데, 여러 사람들이 여러 파트에서 모은 책들을 다시 정리해서 쓴 경전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어가면서 까지 예에 대한 책을 편찬하였을까요?

그 이유를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키워드로 풀어보도록 하죠.

불구대천 - 같은 하늘을 마주할 수 없는....

예기 곡례편에 나와있는 말을 한번볼까요?

자식된 자의 도리가 무엇인가?

겨울이 되면 부모님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여름이 되면 시원하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밤이 되면부모가 잘 주무시도록 해야 하며, 아침이 되면 문안을 드려야 할 것이다.

친구와 다투면 누가 부모에게 미칠지 모르니 다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략)

부부간의 다툼은 부모님을 근심케 하는 것이며,

형제간에 의가 상한다면 부모님에게 불효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효(孝)로부터 비롯하지 않는가?  (줃략)

아비의 원수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수 없고,

형제의 원수는 무기를 늘 가지고 다녀 언제나 복수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며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 하여 살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불구대천이란, <같은 하늘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뜻의 한자입니다.

예(禮) 란 무엇인가?

중국에서 <예>라는 것은, 원래 천자에게 <지배층>임을 증명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고대 중국의 이상국가라고 여겨졌던 주나라는 봉건제도가 있었죠. 봉건제도는 황제가 전 국토를 다스리되, 각 제후들을 지방의 번왕으로 임명하여 각 지역의 통치를 맡기는 제도였습니다. 또 각 제후들 역시 자신들의 신하(가신)들에게 자신의 땅 일부를 주는 대가로 충성을 요구하였죠.

지방의 유력한 제후들이 다스리는 가신집단이 <대부, 경, 사> 등의 신하였습니다. 그 신하들은 자신의 주군에게 충성을 서약해야 했는데, 그 서약식을 <작>이라고 합니다. 그 서약을 받는 것을 <작위>를 받는다고 하죠. 그리고 그 서약을 할 수 있는 교양과 덕망을 <예>라고 합니다. 즉, <예>란, 지배층이 될 수 있도록 <작>을 받는 의식을 아는 것을 말하죠. <예>를 알고 행하며 <작>을 받아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의>라고 합니다. 합치면, <예의>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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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에서는 <남작, 백작, 자작>과 같은 작위들이 있었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은데, 우리나라의 고려에서도 작위는 있었습니다. 토지를 받으면서 작위를 같이 받았죠.

작위는 관직과는 좀 다르네요. 관직이 자신의 주어진 위치라면, 작위는 자신의 도덕적 인품을 상징하면서, 자신의 영토에서 자신이 갖는 권위 비슷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예>라는 것에 대한 해석입니다. 원래 예라는 뜻은 윗사람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의 내용은 춘추시대를 통일한 진, 한 대에 바뀌게 됩니다. 특히, 한나라에서 <유교>를 국가사상으로 통일하면서 예는 <군주에 대한 신하의 도리>,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예의 으뜸은 효(孝)가 아닌가?

그럼 다시 <불구대천의 원수>로 돌아와보죠.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공자, 맹자, 순자 등 유가파가 등장했었습니다. 특히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함이 <가족윤리>가 파탄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죠. 공자의 핵심 사상은 <인 仁>인데, 이것은 사회적 관용과 가족간의 사랑을 한 글자에 압축시켜놓은 단어였습니다. 공자는 <인>이라는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찾기 위해서는 효도, 우애 등의 윤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이것을 맹자가 국가윤리까지 확대하였죠. 맹자는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군주가 신하를 사랑하는 <덕치주의>가 곧, 평화의 시작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핵심은, <가족윤리>였고, 가족윤리의 핵심은 곧 <부모>였습니다.

다시, 위에 적은 예기 <곡례편>을 보세요. 유학자들이 생각한 <예>는 군신관계, 부자관계, 부부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 등에서 지켜야 할 윤리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절대 윤리로서 이것을 어긴 자는 인간이 아닌 <짐승>이 된다고 여긴 것이죠.

유가에서의 살인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구대천의 원수는 죽여야 한다>는 이념은 왜 나왔을까요?

그건, 윤리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부모로부터 태어난 인간일것인데, 부모, 형제에 대한 윤리를 무시한 자는 인간이 아닌 <짐승>이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는 것이죠.

부모, 형제, 군주, 부부 등에 관련된 것들은 법에 의해 왈가왈부할 내용이 아닙니다. 인간의 절대 윤리이므로, <도덕>에 의해 판단해야 할 것들이죠. 이것은 법과 상관없이 인간이기에 어기면 처벌해야 할 것들입니다. 동아시아 전통 사회는 이 윤리에 의해 마을 공동체, 국가 공동체가 형성되고 유지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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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 법에 우선하는 사회...

우리는 보통 법이 잘 지켜지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구인들은 합리적인 법에 의해 통치되는 사회에 적응이 잘 된 편이지요. 그런나, 아시아 전통 사회에서는 <법이 도덕의 표현>이라는 의식이 강하였습니다.

법은 최소한으로 필요합니다. 고조선에서는 8조의 법만 있었고, 이 8가지 법만으로 사회가 유지되었습니다. 그 말은 법이 많지 않아도 사회가 운영될 수 있었다는 뜻이죠. 그러나, 지금은? 수백, 수백만 가지의 법이 있으면서도 그 법을 피해 범죄를 만들고, 또 그것을 막기 위한 법이 생겨납니다. 법이 많고, 합리적인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요?

고대 사회에서의 <법>은 국가의 지침서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법을 어긴자는 처형을 하지만, 그 법은 도덕을 기준으로 설정되며, 법에 없는 내용이라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면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대부분 전통왕조들은 아무리 나쁜 관리라 해도 <신하나 백성이 수령을 고발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면, 신하와 백성은 자식, 수령은 어버이이기 때문에 자식이 어버이를 고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인이 남편을 고발할 수 없고, 친구의 죄가 반역죄가 아닌 이상 눈감아주는 것은 <의리>로 생각하였습니다. 단, 자식이 아버지를 고발할 수 있고, 백성이 수령을 고발할 수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흔히 이런 경우는 <강상죄>를 범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즉, 수령이 아버지인 임금에게 반란을 하려고 한다던가, 형이 아버지를 죽였던가 등의 패륜은 고발할 수 있죠.

불구대천의 뜻...

정리하자면, 불구대천이란 <아비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을 볼 수 없다>는 유가의 가족윤리를 대변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지금은 속담처럼 쓰이게 된 것이죠.

유가사상은 지금 시대로 보면 고리타분한 사상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충성, 효도, 의리, 믿음, 열정 등을 실현하는 방법이 불과 10여년 전과 지금도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유가사상에서 강조하는 <인간의 근본>이라는 측면은 아직도 동아시아인들의 머릿 속에 크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른을 모시고, 벗을 사랑하며, 형제를 믿고, 부부간에 신의가 중요하다는 <보편적 진리>를 수용하고 살아가니까요.

술을 먹고 적어서 그런가? 오늘 이야기는 횡설수설이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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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

국학(國學)을 설치하고 경(卿) 1인을 두었다.

- 삼국사기 8권, 신라본기 8, 신문왕 2년 6월 -

국학(國學)은 예부(禮部)에 속한다. 신문왕(神文王) 2년에 설치하였다. … 교수하는 법은 주역(周易)·상서(尙書)·모시(毛詩)·예기(禮記)·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문선(文?BR> ?으로 나누어 학업을 닦게 하였는데, 박사(博士)나 조교(助敎) 1인이, 혹은 예기·주역·논어(論語)·효경(孝經)을 가르치고, 혹은 춘추좌전·모시·논어·효경을 가르치며, 혹은 상서·논어·효경·문선을 가르쳤다. … 혹은 산학박사(算學博士)나 조교 1인을 명해서 철경(綴經)·삼개(三開)·구장(九章)·육장(六章)을 교수케 하기도 한다. 모든 학생의 관등은 대사(大舍) 이하 무위(無位)에 이르기까지 하며, 나이는 15세에서 30세까지 모두 학업에 종사한다. 9년을 기한으로 하되, 만일 우둔하여 향상하지 못하는 자는 퇴학시키며, 만일 재주와 그릇됨이 성취할 만하되 미숙한 자는 비록 9년을 넘어도 재학하게 하여, 관등이 대나마(大奈麻)나 나마(奈麻)에 이른 다음에 내보낸다.

- 삼국사기, 38권, 잡지 직관 상, 국학 -

참고글 : 국학은 신문왕대 전제 왕권 강화와 관련됩니다. 국학의 설립 목적인 전제 왕권 성립기의 체재 재정비 차원에서 골품제의 모순을 운영상의 효율성을 통하여 극복하고, 타협점을 찾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즉, 유교이념을 국왕이 표방함으로서 왕실의 권위를 향상하고, 중앙의 귀족을 도태시키면서 지방의 세력을 흡수하는 관제정비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6두품들이 왕을 보좌하는 세력으로서 일정 부분 성장하였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6두품들의 성장은 곧 골품제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서 국학도 신라 하대에는 골품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점차 변질되어 갑니다.

국학에는 717년(성덕왕 16) 당으로부터 문선왕·십철·72제자의 화상)을 가져다 봉안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유교교육기관으로서의 체제를 완비하였는데, 경덕왕이 태학감으로 고쳤다가 혜공왕이 다시 국학으로 고쳤습니다. 고려시대에는 1275년(충렬왕 1) 국자감(國子監)을 국학으로 고쳤다가 후에 성균감(成均監)·성균관으로 고쳤고,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성균관으로 통일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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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