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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25 단 1표로 운명이 바뀐 역사들 (2)
  2. 2008.05.31 역사적으로 본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길고 긴 대립과정 (1) (2)

투표의 위력 : 역사를 바꾼 한 표들

 

한 표가 뒤바꾼 역사

 

우리 나라는 '투표합시다' 하는 날은 놀러가는 날, 쉬는 날, 또는 직장이 바빠서 나랑 상관없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얼마전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고는 투표율이 60%를 넘기는 경우가 많지 않거든요.

 

그러나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제도를 완성하기 위해 피눈물나는 투쟁을 했거나, 1표의 차이로 역사가 바뀐 전례가 있다면, 투표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겠죠? 선거 제도를 처음 도입한 선진국들은 1표의 소중함을 역사 속에서 배웠답니다.  물론 지금은 국민직선제이지만 백년전만 해도 대부분이 간접 선거 방식이거나, 여성 또는 노동자를 제외한 투표이기는 했지만 말이죠.

 

그럼 지금부터 역사를 바꾼 투표들, 특히 1표를 살펴볼까요?

 

 

먼저, 민중들이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했던 프랑스!!! 대혁명의 국가이죠.

 

프랑스 대혁명 때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앙투와네트는 오빠가 황제로 있는 오스트리아에게 군사파견의 밀서를 보냈습니다. 프랑스 혁명군은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열세를 보였는데, 그 이유는 왕비가 적군에게 프랑스 전력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기 과격파인 자코뱅파는 국왕 일가를 모두 사형시키자는 안건을 투표에 부쳤습니다. 그러나 내통의 결정적 증거가 없어서 투표 전날까지 국왕이 사형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세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 문서가 투표 전날 발견되었죠. 721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334대 387로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당시 자코뱅파와 지롱드파의 숫자가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하루 차이가 프랑스 역사를 바꾼 것이죠.

 

최초로 사형을 당한 루이 16세는 민중이 아버지인 '국왕'을 사형시키는 비윤리적인 만행을 허용한 투표제도가 프랑스를 망칠 것이라고 했지만, 프랑스의 투표 사례는 전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후, 프랑스는 왕국을 계속할 것이냐, 공화국을 할 것이냐를 놓고 1875년, 투표가 시행되었습니다. 이 선거는 프랑스의 국가형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투표였습니다. 당시 왕당파와 공화파의 국회의원은 똑같이 353명이었답니다. 투표 결과는 알 수 없겠죠?

 

그러나 막상 당일.... 왕당파 의원 한명이 급성 복통으로 투표에 불참하게 되면서 1표 차이로 공화파가 이겼답니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1,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프랑스를 이끌었던 제 3 공화국은 이렇게 탄생했답니다. 반면, 1940년에 3 공화국이 몰락한 것도 1표 차이었습니다. 공화당 의원 중 한명이 점점 우월의식에 빠진 공화당에 반기를 들면서 1표 차이로 공화당이 몰락했거든요.

 

 

이제 영국의 경우를 볼까요?

 

투표제도를 전세계에 확산시킨 영국... 영국 역사 역시 1표 차이로 운명이 바뀐 경우가 많았답니다.

 

1645년. 영국은 청교도인이었던 크롬웰이 독재관이 되어 정권을 잡았습니다. 대대로 왕정이었던 영국에서 의회대표가 독재권력을 잡은 일은 충격적이었지요. 크롬웰은 이후 항해조례와 같은 법령으로 북유럽에 자신의 업적과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또, 크롬웰의 독재를 참지 못한 개신교도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해 미국 동부연안 등을 개척하게 되면서 북미의 서부개척시대도 시작된답니다.

 

이렇게 역사에 이름을 남긴 크롬웰의 등장은 극적이었습니다. 성공회와 카톨릭, 청교도, 개신교 등 종교가 다양했던 영국 의회는 크롬웰을 영국 총사령관으로 임명할 지 치열한 논의끝에 투표를 시작했습니다. 투표결과는 91대 90... 한표 차이로 크롬웰이 임명되었고, 영국과 유럽, 미국의 역사가 바뀐 것이지요.

 

크롬웰은 1표 차이의 신임을 토대로 국왕인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영국을 공화정으로 바꿔 버립니다. 또 영국이 해외진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죠. 단지 청교도를 너무 좋아해서 영국 전역을 수도원처럼 만들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술도, 담배도, 자유연애도 엄격히 금지하는 그의 성향 때문에 영국인들은 감옥같은 세월을 보냈으니 말이죠.

 

 

결국, 영국의회는 크롬웰을 추방했습니다. 그리고 급히 독일에서 왕실의 후손인 하누버를 데려와 영국의 왕으로 삼고 영국 왕가를 다시 살리려고 했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왕실재건이 급해도 독일핏줄이 섞인 영국인을 왕으로 삼기는 무리겠죠? 영국의회는 독일인 등 타지역 사람들도 영국에서 살 수 있다는 '주거법'을 급히 만들어 투표를 실시하였습니다. 대부분 영국인들은 반대했지만, 주거지가 다른 웨일즈, 스코틀랜드 등 다른 지역 의원들은 주거법을 좋아했지요.

 

이 투표는 영국본토 국회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타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에 1표 차이로 통과되었습니다. 그래서 18세기 영국 하노버 왕조가 탄생하면서 영국 왕실의 전통이 이어진 것이지요.

 

1표 차이로 만들어진 이 주거법은 영국 왕실 뿐 아니라 영국 본토(잉글랜드) 외의 타주민들이 영국인들과의 지역 차별을 없애는 1등 공신이 되었답니다. 뭐, 왕도 수입하는데 노동자 이주 쯤이야 문제도 안되는 일이 된거죠.

 

이제.... 민주주의의 지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한번 볼까요?

 

미국의 초기 역사는 극적인 한표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초창기, 미국 대통령을 뽑는 하원의원 선거에 토머스 제퍼슨이 후보로 나왔습니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서 초안을 잡고, 미국의 행정 제도를 구상한  유명한 대통령이죠? 그는 강력한 후보인 아론 버르 후보를 단 1표차이로 이겼답니다.

 

미국 역시 초창기에는 상원, 하원 국회의원들이 간접투표로 중요안건이 결정되었습니다. 아직 국민투표도 없었고, 여성이나 노동자, 흑인은 지역대표를 뽑는 일조차 참여할 수 없었답니다. 따라서 100~300명이 투표했던 미국의 간접선거에서는 유독 1표차이의 결과가 많답니다.

 

잭슨 대톨령, 루서포드 대통령, 루즈벨트 대통령, 코픈비 대통령 등 많은 대통령들이 한표차이로 대통령이 되거나, 동점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회의장의 결정으로 대통령이 되었답니다.

 

대통령 뿐 아니라 미국의 50개 주도 1표 차이로 운명이 갈렸습니다.

 

1843년. 미국인들은 서부개척으로 얻은 워싱턴, 오리건, 아이다호를 미국의 주로 편입시킬 것이냐, 독자적인 지역으로 분류할 것이냐를 놓고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사유재산을 주장하는 이들은 개척으로 얻은 땅은 독립적인 지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미국을 하나의 연방으로 세울 것을 주장하면서 올-아메리카로 편입해야 한다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관련 국회의원들이 참여한 투표는 51:51로 팽팽했고, 미국의 운명을 가를 시간을 계속 지나고 있었습니다. 끝없는 토론 끝에 결국 상원의원 마티유가 찬성표로 돌아서면서 워싱턴은 미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남부의 텍사스도 마찬가지랍니다. 당시 텍사스 국회의원들은 26:26으로 텍사스의 미국 편입 찬반이 팽팽했습니다. 끝없는 토론이 계속되면서 미국 남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답니다. 결국 헤네가라는 상원의원이 편입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텍사스도 1표차로 미국 영토가 되었습니다.

 

 

자, 이제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운명을 바꾼 1표를 알아볼까요?

 

1939년,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군국주의 국가와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필요한 병력을 의무적으로 징병해서 군인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징병제도법'을 만들었답니다. 그러나, 징병법은 임시법이었습니다. 본토가 공격당한 것도 아니고, 원한다면 미국은 전쟁에서 빠지면 되거든요.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끝없이 내몰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세계 2차대전은 끝날 기미가 없었습니다. 1941년 8월. 미국은 징병제도법을 연장할 것이냐, 끝낼 것이냐를 놓고 전체 연방 의원들과 각 주의 대표들이 모여 투표를 했습니다. 전쟁과 관련이 없었던 주에서는 징병을 반대했고, 미국 참전의 필요성을 인식한 주에서는 징병법 연장에 찬성했습니다.

 

그 결과 단 1표 차이로 징병법의 18개월 연장이 통과되었답니다. 그런데 이 법안이 통과된지 4개월만에 일본이 미국령인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미국은 세계대전의 중심국가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징병법으로 마련된 군수물자와 병력으로 대항하였습니다. 일본은 자살특공대인 가미가제까지 동원하면서 미국의 군수자원과 병력을 감당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답니다. 만약, 징병법이 부결된 채로 미국이 일본에 전쟁을 했다면 좀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전쟁이 되지 않았을까요?

 

 

전국민이 투표에 참여하는 21세기에는 1표로 운명이 바뀌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니, 투표인단이 3000만명이 이르기 때문에 1표차의 역전이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3000만명 중에 '나하나 쯤이야'라고 생각하고 빠지는 사람이 0.3%인 10만명만 되어도 국가의 운명은 바뀔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단 몇천표 차이로 역전되는 지역이 많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몇십만표 차이정도로 운명이 바뀌니까요.

 

역사를 통해 1표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투표가 미래를 바꾸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표를 뽑는 선거는 대부분 표를 행사하는 투표로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투표가 귀찮다, 혹은 하기싫다고 생각한 40%의 국민들이 투표에 참여한다면 0.3%의 차이로 결정되는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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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 I S T O R I A > 
역사적으로 본...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길고 긴 대립과정

이 이야기에 나온 역사적인 이야기들과 법, 제도, 인물 등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라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해당되는 입장의 내용들만으로 씌여진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프랑스 혁명 : 자유부터인가, 평등부터인가...

서구 역사가들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을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찾곤 한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하면 <자유와 평등>을 떠올린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에서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실제, 근대 유럽의 자유와 평등은 전혀 같은 말이 아니였다.

프랑스 혁명을 처음 일으킨 것은 <귀족>세력에 반발한 <부르조아> 계급이었다. 그들은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인권선언을 발표하여 자본가들의 <재산권>을 인정받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철저한 <자유주의>를 표방한 첫 번째 혁명은 실패하고 말았다. 국민의회의 자본가들은 1791년 샤플리에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파업을 억누르려 했고, 재산이 있는 자만이 투표할 수 있다는 헌법을 만들었다. 자본가들을 믿고 <자유주의 물결>에 동참한 대중들은 분노하기 시작한다.

1년 뒤, 민중들은 8월 봉기를 일으킨다. 민중들은 <자본가>들의 세상을 다시 부수고, 프랑스 제 1공화정(국민공회) 시대를 열었다. 자본가들을 위주로 하는 지롱드파를 몰아내고, 민중적이고 급진적인 자코뱅파가 정권을 잡았으며, 국왕인 루이 16세마저 사형에 처한다. 93년 헌법에서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재산권 위주의 헌법을 폐기하고 <생존권과 노동권>을 기준으로 하는 혁명적인 헌법을 다시 만든다. 또, 모든 사람이 직접 선거할 수 있는 <보통선거>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는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평등파>와 대결하려 하였다. 로베스피에르는 <방토즈>법을 만들어 <재산가>들의 재산을 <혁명군과 애국시민>에게 분배하는 조치를 취한다. 서구의 근대사 최초로 <자유>가 <평등>에 의해 억압당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이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난 것이다.  <자유파 의원>들은 반혁명을 일으켜 다시 <자유>의 가치를 높이려 하였다. 공포정치로 자유를 탄압한 평등주의자 로베스피에르는 죽었고, 부르조아지들은 다시 <재산권>을 최고의 기치로 삼게 되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이 대립했지만, 최후의 승자는 <자유주의>였다.

평등주의자들은 이 자유주의에 대한 반항을 계속하긴 하였다. 예로 1796년 혁명을 통하여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적> 사회를 추구한 이도 있었다. 그가 바로 유명한 사회주의의 아버지 <바베프>이다. 그는 재산권 자체를 부정하고, <자유>는 <평등>의 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총재정부를 타도하려는 그의 시도는 실패하였고, 자유주의자들은 그를 곧 바로 <사형> 시킨다. 그 이후 자유주의는 <절대적> 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자유주의는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나폴레옹은 <몰락한 프랑스 경제의 부활>과 <혁명적 자유>를 인정한다는 발표로 <황제>에 오를 수 있었다. 나폴레옹이 현재 프랑스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준 가장 큰 이유는 이 것  때문이다. 그는 <위대한 영웅>이었지만, 오로지 혁명의 성과를 <자유>로만 규정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자유주의 이념을 평등주의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독재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말이다.

나폴레옹은 혁명의 성과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부르조아지와 대토지 소유자>들의 권한을 인정하고, 그들을 프랑스의 위대한 국민이라고 광고하였다. 그리고 유럽 정복을 통하여 <재산권과 자유권>을 유럽 대부분에 전파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평등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평등을 주장하는 언론은 바로 군부에 의한 <탄압>에 들어갔다. <나폴레옹 법전>은 위대한 법전으로서 법적인 평등과 신앙, 재산, 직업의 자유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법전의 모든 조항은 개인을 위한 자유보다는 <국가 시민으로서의 자유, 재산권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나폴레옹 시대의 이념은 <자유이념>이 모든 이념을 포괄하여 유럽에 전파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초기 <자유주의 이념>이었고, 이 자유주의 이념은 유럽의 진보와 발전을 위한 최초의 이념이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근원이 된 혁명에서부터 <자유>가 <평등>을 누르고 세상의 빛을 보았으며, 이 후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겪으면서 서구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절대적 이념으로 부각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부터 <자유주의> 이념에 반기를 들고 노동자 계급의 <평등>이념을 부각하려는 시도는 수없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그 연약한 시도들은 대부분 <자유라는 인간의 절대 기본권>에 반한다는 이유로 모두 좌절되었다. 또한, <자유주의>이념은 <자유주의적 고전 경제학>과 맞물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절대적 지원사격을 받았다. 그 이후, 극단적인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에 이르는 <반자유투쟁>이 계속되었으나, 역사는 이러한 투쟁을 모두 실패로 기록하고 만다.

봉건귀족 세력의 역사적 역할 : 자유주의 이념에 반하는 <악마세력>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뒤, 유럽사회에서 <자유주의>는 금기어가 되었다. 유럽의 봉건 왕조들은 빈회의를 통해 혁명 이념인 <자유와 평등>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전 유럽을 <보수화>하려고 하였다. 유럽의 왕실이 특히 주목한 것은 평등보다는 <자유>이념이었다. 왕실과 귀족세력은 산업혁명 등을 통해 성장하고 있던 <자본가> 계급을 가장 큰 적으로 보았으며, <자유주의>는 이들 자본가 계급의 무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로서 유럽의 <정통 왕실>과 성장하는 <자본가>들은 서로 적으로서 대립하는 구도를 만들게 되었다.

그럼 이 때 <지식인과 민중>은 누구 편을 들어야 했을까? 당시의 지식인들은 <평등주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독일, 프랑스, 영국의 대학생들은 <보수적 과거 세력>들인 왕실과 귀족에 대한 대대적인 규탄시위에 들어간다. 독일 대학생들은 부르센샤프트 운동을 벌였고, 나폴리에서는 카르보나리라는 비밀결사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중세적 왕실 질서는 또 다시 프랑스에서 대대적으로 규탄에 들어간다. 나폴레옹 사후의 프랑스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시민계급과 자본가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으나, 정부는 의회를 해산해 버리는 등 자유주의를 탄압하였다. 티에르 등 <자유주의자>들은 <민중>과 연합하여 1830년 7월. 다시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성공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다시 <평등주의자>들을 버린다. 민중이 원한 평등선거는 없었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부도 없었다. 단지, 자본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 선거권을 조금 더 주었을 뿐이었다. 특히 노동자들은 <샤플리에법>에 의해 정치적 발언을 할 수조차 없었다.

결국, 자유주의자와 평등주의자들이 모두 적으로 여긴 봉건귀족은 이 둘의 연합으로 몰락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평등주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자유>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프랑스 공화정 : 계속된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대립

이 이야기는 유럽의 대표적인 혁명을 이끈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혁명은 프랑스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당시 유럽 각지에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내걸고 일어난 혁명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자유주의 혁명을 이끈 선구적인 혁명이 프랑스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예로 든 것이다.

7월 혁명으로 프랑스 민중은 또 다시 <평등>의 기치를 잃어 버렸다. 이 때부터 프랑스 민중들은 <민중이 참여할 수 있는 보통선거>를 요구하게 된다. <자유>가 어느 정도 정착되자 <평등>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를 주장했던 학생들은 이제 농민의 편이 되어서 평등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1948년 2월. 프랑스에서는 또 한 차례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혁명은 국왕 루이 필립을 폐위시키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을 다시 수립하게 만들었다. 로베스피에르의 프랑스 혁명 공화정에 이은 <제 2 공화정>이었다.

그러나, <제 2 공화정>은 <자유주의>와 극심한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급진 평등파>들은 <자유주의>의 기본 이념인 <재산권>을 제한하려 하였고, 이것은 기득권을 가진 기존 <온건한 공화파>들 조차 놀라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립은 다시 극단의 혁명을 몰고왔다.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은 6월 봉기를 일으키고, <평등주의>의 완전한 실현을 주장하였다. 제 2 공화정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폭동은 불법이라면서 강하게 진압하였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타협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공화정은 <단원제 의회와 대통령제도>를 실시하여 국민투표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자유주의>에 대한 보완책으로 <민족주의>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자유주의자들은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을 체제안으로 포섭해야 했다. 특히 <평등>을 주장하면서 <계급>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국내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우애>의 개념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민중과 민족>이라는 개념을 국민에게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족>은 계급을 떠나 하나이다. 모든 계급의 통일체가 민족이고, 민족의 정부가 국민의 정부이다.

이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 3세>이다. 그는 이 <민족>개념으로 국민들의 <냄비같은 마음>을 한번에 사로잡았다. 물론 노동자들은 계속적으로 평등을 요구했고, 게드의 프랑스 노동당이 창립되기도 하지만 나폴레옹의 강력한 리더쉽 앞에 <평등주의>는 <민족주의>라는 이념에 묻혀 버렸다.

영국 : 자유주의가 제국주의 이념으로 전환되다

프랑스와 함께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이끌어갔던 영국의 <자유주의>는 무시할 수가 없다. 영국과 프랑스가 19세기 세계사적으로 미친 영향은 우리나라에까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화기부터 진행된 우리의 <자유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이념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론, 이들 나라의 문물을 먼저 수입한 청과 일본에 의한 것지만 말이다. 이건 다음 회에서 다루면 좋을 것 같다.

영국은 프랑스와 달리 철저한 <자유주의>를 표방하였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수많은 혁명을 목격한 <조용한 섬나라>는 이미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젠트리들에게 수많은 권리를 주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던 명예혁명 이후, 영국은 혁명이 아니라 조용한 타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난 국가이다. 그만큼 자본가들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한 나라였다. 무론 의회 내에서 귀족과 자본가의 대립이 있었지만, 자본가 위주의 휘그당은 <자유당>으로 명칭까지 개편하면서 <자유주의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귀족들은 <보수당>에 집결하여 정당정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19세기 영국은 곡물법을 폐기한다던가, 항해조례를 폐기하면서 자본가들이 해외무역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물론 영국의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19세기 차티스트 운동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주장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자유>의 이념은 <평등>이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영국 노동자들이 산업자본가와 같은 권리를 차츰 인정받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또 하나, 유럽 어느 나라이든 19세기 <여성의 평등>을 거론한 나라는 없다. 여성에게 똑같은 보통선거를 준 것은 선진적인 영국도 <20세기> 들어와서이다.

이러한 영국의 자유주의적 발전은 <자유주의 만능 이념>을 발전시키게 된다. 특히 자본가들의 <자유>를 철저하게 인정했던 분야가 바로 애덤스미스로 대표되는 <경제학> 분야이다. 애덤스미스는 국가가 국민의 자유에 절대 간섭하면 안된다는 이론을 주장하면서, 모든 것은 <가격>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멜더스는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이론을 내 놓는다. 그런데, 그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유>는 주되, <평등>은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빈곤은 노동자 책임이므로 모두가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는 없다. 빈민촌에는 소독도 해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이론이었다.

이것을 이데올로기로 정립한 사람은 <스펜서>이다. 스펜서는 이 모든 이론을 <사회진화론>으로 정립시켰고, 유럽인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사회진화론>이란,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는 것은 먹이사슬에 의한 정당한 행위이다. 사자는 강하고, 양은 약하다. 사자는 육식동물이고 양은 초식동물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이것을 사회 법칙에 대응하면?

노동자는 가난한데 그것은 유전자가 불량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빈곤할 수밖에 없다. 멘델의 유전의 법칙에 의하면 열성은 도태되어야 한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경제학자 리카도는 한가지 증명까지 시도하였다. 그것이 유명한 <임금의 철칙>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성경이다. 경제는 지대, 이윤, 임금의 3가지로 유지되는데 지대가 커지면 임금이 줄어든다. 노동력이 늘어나면 임금은 그만큼 준다. 노동력이 없다는 것은 수요가 없다는 것이므로 노동자의 임금이 늘어날 수 없다. 결국 노동자는 항상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가난은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 진화론을 국가간에 대입하면 이렇게 된다.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 점령당할 수밖에 없다. 강한 나라는 먹이감을 구하고, 자국의 문제를 해결한 탈출구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거나 식민지를 만둘 수밖에 없다. 강한 나라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과 같은 <사회적 법칙>일 뿐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사상은 윤리나 도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니라 <사회적 당위성>으로 설명해야할 사상이다. 약한 나라는 강한나라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힘을 키워서 사자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약자의 변명은 사회 속에서 통하지 않는다.

이로서 참신한 혁명 이념이었던 <자유주의>는 타락과 협상을 거쳐 다양한 사상과 연결된 결과, <제국주의>의 호수까지 흘러들어가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제국주의를 부정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개화기에는 <근대 사상과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으로 <자유주의>를 수용하였고, 그 결과 개화기 지식인들은 <제국주의>도 수용하였다.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이유는 <자유주의>를 받아들여 우리 역시 강력한 <제국주의>국가로 거듭나서 <제국주의로 제국주의를 물리친다>는 이이제이의 원칙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민족주의자인 신채호 선생도 초기에는 제국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였고, 실제로도 일제시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초기에는 <제국주의적인 군사실력 양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자유에 대한 <평등주의>의 반격...

사회진화론까지 나아간 <극단적 자유주의>에 대하여 <평등주의>자들은 수많은 반격을 하고, 저항을 하였다.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 이념을 계승한 이들은 중산계급의 하층민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면 어느 정도 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평등주의적 급진주의>를 주장하였다. 생시몽과 같은 이들은 폭력혁명이 아닌 대화와 설득으로 자본가와 협력하여 타협을 이끌어내자는 <공상적 사회주의>를 주장하였다.

푸리에는 한발 나아가 현존 제도를 모두 버리고, 심지어 결혼조차 부정하면서 성적인 자유까지 주장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간 사람들은 <무정부주의>라는 새로운 이상향을 생각하게 된다. 무정부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가 권력은 모두 <평등>을 억압한다고 본다. 경찰, 군대, 학교, 법원 등은 <자유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들 도구는 <평등>을 옹호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의 결론은 <국가의 완전 소멸>이 평등을 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은 국가를 없애고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생산수단을 가진 뒤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하는 일이 없는 평등한 노동의 세상을 말하였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직접 코뮌(자치집단)을 만드는 것이 <평등>사회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더 나가 러시아의 바쿠닌은 아예 폭력 혁명으로 모든 것을 부수자고 말하기도 한다. 크로포티긴은 바쿠닌의 사상을 계승하여 모든 것의 파괴는 새로운 창조를 가져온다고 말하고, 그 새로운 세상은 <평등>에 입각한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크로포트긴의 사상을 계승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부수고 민족의 평등을 이루자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신채호> 선생이다.

독일의 비스마르크 자유주의와 마르크스 주의의 대립

독일의 자유주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비스마르크이다. 비스마르크는 철저한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가 통일과 자본가 계층의 자본주의를 옹호하였지만, <평등주의>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대입장이었다. 비스마르크는 <반사회주의법>을 발표하여 평등주의자들의 모든 활동을 전면 금지시켰다. 그 이유는 독일의 현실 때문이다. 독일은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 된 이후 동독일의 토지귀족(융커)들과 서독일의 산업자본가에 의해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더 철저한 단결을 주장하게 된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평등 개념>은 이렇다.

세상은 불평등하다. 누군가 평등함을 추구하면, 누군가는 그것을 또 깨드린다.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현 사회의 모습과 일치한다. 단, 이 변증법은 철학적 개념이 아닌 실제 노동자들의 삶과 관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부조리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이 필요하다.

그런데 계급투쟁을 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경제적 생산력>을 기준으로 한다.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하부구조는 경제력인데, 상부구조인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독식한다. 역사는 그러한 모순(정)에 대한 투쟁(반)이었으며, 그 투쟁은 항상 새로운 결과(합)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역사는 발전하였지만, 아직도 평등하지 않다. 진정한 평등은 자유주의(자본주의 : 정)에 대한 평등주의(반)의 투쟁으로 새로운 세상(공산주의 : 합)을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혁명의 주체인 빈민층(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위해 제 1, 2 인터네셔널을 만들었고 이 국제 평등기구에는 독일계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각국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보다 <의회>에 진출하여 <자본주의>가 붕괴될 대를 기다리자는 이념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세계적 기구로 단결하여 훗날 세계 공산주의자들에게 지침을 내리는 기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1차 대전 후 러시아에 공산주의 국가가 성립됨으로서 이들은 해산하였다.

프랑스.... 왕정과 공화정의 반복 :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대립

프랑스는 제 2공화정이 몰락하면서 나폴레옹 3세가 다시 <자유주의적 가치>를 들고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내세운 것은 진정한 <자유주의>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평등>요구로 기득권과 자본가들이 <재산권>을 빼앗긴다는 우려를 했기 때문에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았고, 나폴레옹은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신헌법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독재권을 용인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학교에서 정치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의 큰 줄기였다. 나폴레옹 3세는 기득권을 위한 <쇼>를 많이한다. <자유주의>의 옹호자라는 말을 듣기 위해 은행설립, 철도 건설, 중공업 산업 육성 계획을 세워 자본주의 국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특히 파리시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불만은 많았다. 나폴레옹이 실시한 노동자를 위한 <평등> 정책은 실업자 구제책이었다. 실업자가 늘면 사회 불만 세력이 되고, 그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지 모른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평등이란 말 대신 <민족의 영광>이란 말로 모든 국민이 단결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은 점차 불만이 많아졌다. <민족>을 주장하면서도 결국 <부르조아>를 위한 정책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나폴레옹의 정책은 간단하였다. 나폴레옹을 소개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자유주의적 발전 정책에 불만을 품은 <민중>을 달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그것은 전쟁이었다. 지금이야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영화, 연예인 등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지만, 이 당시의 확실한 방법은 바로 전쟁이다.

나폴레옹 3세가 국민들에게 전쟁의 이유를 설명한 것을 보면 명확해진다. 바로 <국민적 영광>을 위해 전쟁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크림전쟁, 이탈리아 통일 전쟁(샤르데냐 전쟁), 멕시코 원정, 오스트리아 전쟁 등 도대체 왜 하고 있는지도 불명확한 전쟁을 수많은 이유를 들어 시도하였다. 그러나, 독일 통일 전쟁(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비스마르크의 농간으로 패함으로서 <국민적 영광>은 상처로 돌아왔고, 국민들은 그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역사적인 <파리 자치정부>가 추진된다. 급진적인 자코뱅주의자, 프루동의 무정부주의자, 블랑키 주의자들은 <평등주의>의 이념을 내세우면서 연합하였고, 파리에 <노동자 정부>를 수립하였다고 선언한다.  그들이 진정 원한 건 혁명 자체가 아니였다. 그들은 자유주의에서 <평등주의>로 국가정책을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정부를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그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피의 일요일 전투>라고 역사는 부른다. 자치정부군은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항쟁하였다. 국가는 그들을 잡아 바로 바로 총살시켰고, 시위는 계속되었다. 정부는 죽이지 못한 이들을 파리 시내에 가뒤 굶겨 죽였다. 쥐를 잡아먹으며 항쟁했던 <자치정부>의 모든 이들은 엄청난 박해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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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2부에서 다룰 이야기 : 사회주의의 성장 드레퓌스 사건, 카톨릭 세력과 자유주의의 관계, 미국노예해방은 자유주의인가 평등주의인가, 러시아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자유주의를 버린 제국주의, 세계대전 중 평등사상, 히틀러와 자유주의, 냉전시대와 평등주의, 신자유주의 사상의 등장배경과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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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양장본)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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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 신자유주의는 강력한 사적 소유권, 자유 시장, 자유무역의 특징을 갖는 제도적 틀 내에서 개인의 자유 및 기능을 해방시킴으로써 인간 복지가 가장 잘 개선될 수 있으며, 국가의 역할은 이러한 실행에 적합한 제도적 틀을 창출하고 보호하는 데 있다고 제안하는 정치적ㆍ경제적 실행에 관한 이론이다. 이 책은 세계적 담론과 정책을 주도하는 핵심 용어가 된 신자유주의의 의미를 알아본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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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항소이유서에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를 인용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저자의 정치문화 에세이. '이 땅에서 자유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나는 국론통일이 싫다', '한국적 자유주의의 비극' 등 45여 편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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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는 진화하고 있는가'란 물음에 깊이 있게 고찰해 본『자유주의는 진화하는가』. 자유민주 이념에 바탕을 둔 교육을 받아 왔고 철학공부를 한 저자는 롤즈의『정의론』을 접하게 되면서 잠재의식적 자유정신을 의식화하고 자유주의를 향한 사회경제적 인프라를 각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자신이 나름대로 구상해 온 자유주의적 입장에 대해 총 5부로 나누어 마음껏 이야기한다. 1부에서는 자유주의와 그 적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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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민주시대의 새로운 장을 연 프랑스 대혁명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혁명의 추진자 겸 관찰자 역 할을 했던 베르트랑 바래르의 활동과 증언을 통해 살 핀 책. 혁명 이전 새로운 사상의 흐름과 베르트랑, 자코뱅 시대, 테르미도르 사건 등 6개 장으로 설명했다.

자유주의적 평등(한길그레이트북스 73) 상세보기
로널드 드워킨 지음 | 한길사 펴냄
로널드 드워킨의『Sovereign Virtue』를 번역한 책. 미국의 롤스 이후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드워킨은 이 책을 통해, 자유주의 평등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평등권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주장한다. 구좌파가 지나친 평등을 추구했다는 기존의 비판과는 달리, 오히려 구좌파가 추구하였던 평등은 진정한 평등이 아니라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현대 정치철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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