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퀴즈
 

오늘은 간만에 o,x 퀴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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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10문항에 대하여 맞으면 O, 틀리면 X를 선택해 주세요.

 

1.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참형을 당했다.
O
X

2. 사물놀이에 쓰이는 4가지 쇠, 장구, 북, 징은 불교의식에 쓰이며,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목어, 운판, 법고, 범좀의 네 가지 사물이 변해서 쓰인 것이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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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안압지는 신라 문무황 때 만든 윌지라는 연못으로 신라가 망한 뒤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안압' 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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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황산벌에서 신라의 대규모 부대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백제의 명장군은 관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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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징기스칸이 죽은 뒤 몽골 본토인 몽골 제국을 물려받은 사람은 막내아들인 툴루이나, 실제 몽골의 2대 황제는 셋째아들인 오고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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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프랑스 대혁명 때 처형된 왕과 왕비는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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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선시대 지방관(수령)의 임기는 6개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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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병자호란은 청나라를 세운 거란족과 관련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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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세계문화유산인 직지심체요절은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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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여우 사냥' 작전을 전개한 러시아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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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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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혁명이 내 신념이라는 것을 믿고 죽음을 택하겠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데카브리스트의 12월 반란이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한 한 시인은 평소에 이렇게 노래하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 말리니....

그리고 얼마 후 러시아의 국민시인은 자국의 군인과 총을 들어 결투를 마친 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푸쉬킨이었다.

1장. 혁명은 끝났으나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나고 나폴레옹이 유럽을 한바탕 뒤흔든 이후.....

나폴레옹이 유배되면서 유럽의 국왕들은 혁명이란 단어를 너무나 끔찍하게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국왕은 신이 선택한 존재이기에 국왕에게 칼을 겨눈다는 것은 절대 금기로 만들어야 했다. 유럽의 왕들은 비엔나에서 회의를 열고 세상을 <혁명 이전>으로 돌리자고 결의했다.

메테르니히

유럽을 나폴레옹 이전의 시대로 되돌리자고 주장했던 오스트리아의 재상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서유럽과 동유럽, 그리고 러시아 대륙까지 깊은 흔적을 남겨 두었다. 나폴레옹과 싸웠고, 혁명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자유와 해방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민중들이 알게 된 것이다.

- 나폴레옹의 전쟁과정과 고뇌를 표현한 우표들 -

사실 그건 나폴레옹이 남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폴레옹이 자유로운 여러 나라에 쳐들어왔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국민들은 스스로 뭉쳐야 했고, 그 결과 <민족주의>라는 것이 탄생한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또한 자유란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사상도 나폴레옹과 싸우면서 배웠던 결과물이었다. 단지, 그 대상이 이젠 나폴레옹이 아니라 수백년간 자신들을 억압했던 국왕이라는 존재라는 사실만 변했을 뿐....

나폴레옹은 물러갔지만, 혁명과 전쟁이 무엇인지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를 <국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유럽 곳곳에서 자유를 찾기 위한 혁명의 횃불이 곳곳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총뿌리는 자신들을 억압했던 국왕에게 향하였다. 프랑스의 7월혁명, 2월혁명,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 독일의 학생운동, 이탈리아의 까르보니리 혁명 등은 모두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남긴 새 시대를 위한 유산이었다.

2장. 꿈은 다르나 목적이 같았던 혁명 장교들.

그리고 그 자유주의 운동은 유럽보다 한참 후진국이었던 제정 러시아에도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러시아의 군인들은 나폴레옹 전쟁 중 유럽 곳곳을 돌면서 전쟁을 한 탓에 유럽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자유와 평등 사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던 러시아의 장교급 청년들은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그들은 조국이 후진국에 머문 이유를 후진적인 황제제도, 즉 제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중세 서유럽에서나 있을 법한 농노제도 때문에 상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자본가 계급이 성장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낡아빠진 사회제도를 고쳐야겠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러시아에도 조국을 개혁하자는 마음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하려는 군인들의 비밀결사가 생겼다. 특히 남쪽 지방 비밀결사의 리더였던 베스테리황제도 왕도 없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꾸기 시작했다. 만약 국민들이 공화국의 개념을 알고, 군인들이 혁명에 가담한다면 세상이 바꿀 것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북쪽지방의 지식인들과 군인들은 현실적인 면이 강했다. 왕은 일단 그대로 두고 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법치국가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북부 지방의 리더인 뮈라뷔에프는 국왕이 백성들을 위해 법을 지키고,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인 입헌군주제도를 꿈꾸었다.

이 두 비밀결사 단체는 마지막 꿈꾸는 결과는 달랐지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은 공감했다. 그래서인지 두 결사단체는 서로 연락을 하면서 혁명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비밀 결사 사이에는 러시아의 민족시인인 푸쉬킨이 있었다.

3장. 뮈라뷔에프의 미완의 팜플렛

북부 비밀결사의 지도자인 뮈라뷔에프는 혁명이 일어나고, 새로운 세상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 러시아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 두었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줄 세금 제도와 새로운 세상을 위한 산업 발전책을 적고 또 적어가면서 꿈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뮈라뷔에프는 <어느 진기한 회화>라는 팜플렛도 만들어 두었는데, 이 팜플렛은 대중 계몽을 위해 대화체로 구성한 것이었다. 그 내용 중 질문을 제외한 답변만 보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자유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소수의 사람이 다수를 노예로 삼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했다. 고대 러시아에는 전제군주라는 것이 없었고, 모두가 규칙과 법에 의해서 평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제군주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제멋대로 빼앗고, 하나님이 만드신 토지를 자신의 것으로 하여 통치하는 자를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어떤 악도 만들어내지 않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제군주에 대하여.....

이 팜플렛이 미완인 것은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825년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죽고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자, 혁명가들은 12월 14일 페테르부르그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니콜라이 1세

그러나 혁명은 너무 빨랐다. 팜플렛이 미완이듯이, 아직 일반 대중과 하급 군인들은 혁명가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 몰랐으니까... 대중과 군대의 지지를 얻지 못한 혁명군은 황제의 군대에게 진압당하고 만다. 이 혁명은 12월에 이루어졌고, 12월을 러시아말로 데카브리라고 하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이날의 혁명을 <데카브리스트>라고 불렀다.

혁명의 독려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예정보다 빠른 이유는 남부 비밀결사를 이끌었던 이들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북부 비밀결사를 이끌던 이들은 성공과 실패를 따질 겨를도 없이 혁명을 일으켜야만 했다.

데카브리스트의 실패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비밀결사를 주도한 지도자들은 모두 사형을 당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평생을 시베리아와 같은 혹독한 땅에서 유배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 혁명의 실패로 러시아의 개혁은 오히려 훨씬 늦춰지게 되었다.

혁명군과 황제군의 싸움

그리고 니콜라이 1세는 반란을 진압한 뒤, 뮈라뷔에프가 쓰다 만 팜플렛을 읽은 뒤 이렇게 적었다. '도대체 얼마나 뻔뻔스런 짓을 한 것이냐' 라고. 그러나 그날 이후, 시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팜플렛을 대중들에게 돌렸다면 혁명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지도 모른다고...

이 이야기는 훗날 톨스토이라는 대문호에 의해서 소설로 남겨졌다. 그 소설은 나폴레옹 전쟁에서부터 시작한다. 민족과 자유, 평등을 알게 된 한 지식인이 나중에 데카브리스트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표현하였는데, 그 유명한 대작이 바로 <전쟁과 평화>라는 소설이었다.

영화로도 유명한 전쟁과 평화

4장. 난 신념이 아닌 것에는 굴복하지 않겠다.

러시아의 위대한 문호 푸쉬킨은 단지 글을 잘 적었기 때문에 대문호가 된 것이 아니었다. 톨스토이가 데카브리스트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표현해서 대문호가 되었다면, 푸쉬킨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위대한 인물이었다.

푸쉬킨은 시인이자 유명한 소설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인 <스페이드의 여왕>은 그가 어떤 운명을 이끌어갈지 암시하는 작품이었다.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주인공 헤르만은 빠져나올 수 없는 도박의 유혹과 세 장의 카드의 비밀을 풀기 위해 한 때 스페이드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백작부인을 총으로 협박하다가 백작부인을 죽게 만든다. 그리고 그 자신도 스페이드의 여왕이라는 카드 때문에 결국 백작부인을 따라 죽게 된다.

그는 자신의 소설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스스로 걸어간 인물이었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러시아 카테리나 2세 여제의 통치기 이야기이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니콜라이 1세의 독재 시대였다. 그리고 그는 비밀결사의 친구들과 함께 전제군주가 없는 자유로운 러시아를 꿈꾸었던 문학가였다.

그러나 1825년. 그의 친구들은 데카브리스트의 혁명에 가담하여 모두 죽고 말았다. 그러나 정작 푸쉬킨은 반정부적인 시를 적었다는 이유로 추방을 당했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하지 못했다.

어느 날 니콜라이 황제가 푸쉬킨을 불러 물어보았다. 만약 추방당하지 않았다면 혁명에 참여했을 것이냐고 말이다. 푸쉬킨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합니다. 제 친구들은 모두 혁명에 가담했으니, 저 역시 가담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폐하!

황제 앞에서 그는 죽기를 각오하였지만, 황제는 국민시인인 그를 죽일 수 없었다. 그러자 그는 혁명에 실패하고 차디찬 시베리아에 유배된 친구들을 위해 용감하게 시를 적었다.

시베리아 광산의 깊은 골짜기에서도 자랑스런 인내를 잊지 말 것이다.

그 숭고한 의지 속에서 그대들의 뼈져린 고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니.

푸쉬킨은 자유로운 조국을 만들고자 하는 신념이 없다면 이미 자신은 죽은 것이라 생각했으리라. 결국 황제는 국민 시인을 직접 죽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 시기는 데카브리스트 혁명이 일어난지 13년이나 지난 때였다. 그 방법이란 것은, 단테스라는 군인이 푸쉬킨을 모욕해서 둘이 총을 들고 결투를 벌이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그 결투를 중지시킬 마음이 없었다.

총소리가 들렸다. 스페이스의 여왕에서 죽음을 예감한 주인공이 <슬픔에 지친다>는 말을 했듯이 그는 오랜 세월동안 죽음을 생각하면서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가 남긴 시는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 말리니...

5장. 죽는 날까지 난 그를 애도하겠다.

푸쉬킨이 비열한 결투로 죽게 된 뒤, 사람들은 국민 시인을 애도하면서 황제가 너무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황제는 절대적이라는 믿음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한 시인이 황제의 절대권 앞에서 대중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러시아의 대문호들 : 톨스토이, 푸쉬킨, 레르몬토프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레르몬토프는 푸쉬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시인의 죽음>이라는 시를 적었던 것이다.

너희들의 검은 피를 모드 짜낸다 한들,

시인의 식어 버린 피를 씻어내지 못할 것이다.

니콜라이 1세는 이 시를 혁명을 부추키는 팜플렛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레르몬토프는 위험한 코카서스 전선으로 1년간 파견되어 유배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민중들의 가슴에 대시인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는 신념을 위해 끊임없이 시를 적었다. 그리고 황제는 그를 계속 코카서스 전선으로 추방하였다. 그리고 추방당할 때마다 그는 작품을 남겼다.

하늘아 구름아.... 누가 너를 쫒던가, 운명의 시킴인가?

... 그럴리 없지 너는 영원히 자유롭지 않느냐?

... 너에게는 조국도 없고 유배도 없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담은 소설 <현대의 영웅>을 남겼다. 그리고 또 다시 코카서스 전선으로 추방되던 중 함정에 빠지고 만다. 푸쉬킨이 죽었던 것처럼, 레르몬토프도 음모에 빠져 총을 들고 옛 친구와 결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웃었다. 상대는 바로 총을 쏘았고, 그는 총을 들어올리는 일을 서두르지 않았다.

푸쉬킨과 똑같은 신념을 갖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던 또 다른 대문호 역시 푸쉬킨과 똑같은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이후 니콜라이 1세는 자신의 독재에 반발하는 개혁가들을 멀리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 발전은 없었다. 그가 서아시아 진출을 위해 시도했던 오스만 투르크와의 크림전쟁은, 러시아의 대패로 끝나고 말았고, 대중들은 그를 원망하였다.

니콜라이 1세가 죽은 뒤 이후 독재자들은 새로운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여서 러시아를 후진국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했지만, 데카브리스트 이후 황제의 독재체제가 계속된 백여년간 러시아는 서양 세력에 비해 계속 후진국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이상적인 개혁가들. 그리고 그들의 뜻을 존중하고 그 신념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바친 대문호들. 근현대 러시아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대 작가들이 계속 나온 이유는 바로 옳은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이들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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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이야기 (NO.8)

번외편 : 마르크스로 <독일철학>과 <사회주의> 이해하기 (3)

- 마르크스 이전의 독일 역사 : 헤겔의 인생극장~

18-19세기 독일의 철학을 <관념철학>이라고도 하고, <고전철학>이라고도 부르곤 하지.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두 사람의 영향력 때문이야. 자... 여기서 유명한 말 한마디를 읽으면서 그 2명의 철학자가 누군지 한번 보자.

고대 <로마제국>은 유럽의 호수였다. 모든 고대의 문화를 흡수한 뒤, 유럽문화의 원형을 만들어 곳곳에 흘러들어갔다. 마찬가지로 칸트 이전의 모든 사상은 칸트로 흘러들어와 독일 관념론이라는 호수에 고여있었다. 그 호수는 헤겔을 통해 흘러나가 이후 모든 서양 사상의 원천이 되었다.

바로 이 두사람이다. 칸트 & 헤겔...

그럼 지금부터 칸트의 철학을 종합하여 <방대한 철학>을 완성시킨 헤겔이란 인물의 일생에 대해 알아볼꺼야. 물론, 헤겔 이야가 끝나면 제자인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시작되겠지. 일단, 아이유부터 보면서 안구 정화를 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고고...

헤겔, 이 철학자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세무국 재무관이었어. 뭐, 공무원 집안이니 학비 걱정은 없이 학교를 다닐 정도는 되었겠지.... 웃~ 돈 좀 있는 중산층이닷...

처음에, 헤겔은 신학 대학에 진학해서 신을 섬기며 살겠다고 생각했었나봐. 그런데, 신학을 공부하다 보니 오히려 철학이 더 재미있다는 걸 느낀거지. 점점 어렸을 때의 맹세는 사라지고... 이제 이런 자기 합리화를 하겠지?

저기 굳이 신학을 안해도요... 철학을 하면서도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되지 않나요??? 아,, 어쩌나...

그래서 청년 시절 신학할까, 철학할까... 무진장 갈등했다고 하더라구... 아무튼, 이 사람이 철학을 하더라도, 신앙심을 완전 버리지 못했을 거라는 정도는 짐작이 가겠지?

그런데, 철학을 공부하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깐, 정말 당대에 잘나가는 대박~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어. 일단, 동갑내기인 유명한 문학가 <휄더린>.... 또, 음악가 베토벤과도 동갑이었구. 또, 5살 아래인 천재 철학자 <셸링>도 헤겔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었지... 암튼, 잘나가는 친구들은 주변에 무조건 많아야돼.

청년 헤겔은 휄더린이랑 같이 책을 읽고 논쟁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친해졌어. 피끓는 문학을 접하다보니, 자유니, 혁명이니, 세계시민이니.... 이런 말들도 많이 듣게 되었지. 그래서인지 소위 말하는 <좌파동아리>도 가입하고, 거기서 술먹고 토론하고, 노래하고... 했었지. 소위 말하는 낭만적인 대학생? 뭐, 그런 거야.

그런데 어느 날, 아니 어느 1789년.... 프랑스에서 엄청난 대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어. 헤겔은 그 말을 듣고 <굿굿굿~>을 외쳤겠지. 헤겔이 평소에 생각하던 자유니, 평화니, 인간존중이니... 그런 단어들이 <프랑스>에서 막 따끈따근하게 날아왔거든....

헤겔은 프랑스 혁명이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어. 그래서 소년구락부... 아니 아니 정치클럽의 회원이 되서 혁명을 찬양하고 다니기 시작한거야.

음... 보통 서양사 하는 분들 중 나이드신 분들이 <구락부>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건 그냥 <클럽>이라는 말이니깐 역사 공부하다가 <구락부>라는 말 나오면 걍 <단체, 클럽> 뭐 그런 뜻으로 해석하길 바래... <구락부>는 일본식 표현의 잔재거든...

암튼 말야. 헤겔은 친구들과 모여서 <루소 만세!>, <프랑스 만세!>를 외쳤지.

지가 무슨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주인공도 아닌데, 들판에 자유의 나무를 심어놓고 막 흐뭇해 했던 거야. 또, 프랑스의 혁명가이자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면서 스스로 <자유인>이라는 감상에 젖어 있었겠지. 헤겔은 프랑스 혁명의 자유로운 정신이 곧 <세계정신>이라고 믿었던거야.

 

<프랑스의 국가 : 라 마르세예즈>

헐... 근데 그 <프랑스 자유군>이 헤겔의 청춘에 태클을 걸었어.

프랑스 혁명군이 독일 예나 지역으로 진격하자 헤겔은 전쟁의 참혹함을 보게 되었거든. 일단 혁명군이 헤겔의 집을 약탈했지. 안그래도 공부한다고 아버지 유산을 다 까먹었는데, 약탈까지 당하니 헤겔은 점점 거지가 되가는 거야. 거기에 문교부 장관인 괴테가 주던 생활보조금도 전시중이라 끊겨 버렸어. 에휴... 그게 헤겔에게 닥친 현실 생활의 <세계정신>이었던거야.

그 와중에 출판사에서는 헤겔을 압박하고 있었어. 포탄이 날아오든, 약탈이 자행되던 간에 쓰고 있던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은 빨랑 완결하라는 거였지. 에구... 헤겔은 그 전쟁 중에도, 본인이 약탈당하면서도 19세기 최고 대작이라고 불리는 <정신현상학>을 완성하고, <세계정신>이 어쩌구... 하는 책을 출판한거야... 그리고나서 출판료 올려달라면서 편집장이랑 대판 싸우고 돌아다녔다나.... 하는 일화가 있지. 뭐, <정신>이 어쩌고 뭐고... 고상한 말도 중요하지만 돈은 받아야 굻어죽지 않고 살기 때문이지.

이런 헤겔의 상황을 불쌍하게 여긴 친구가 헤겔에게 고등학교 교장 자리를 던져 주었어. 이 때부터 헤겔 인생이 역전되기 시작한거지. 일단, 삐까번쩍한 직장이 있으니, 사람들 대우가 달라지지 않겠어?  나이 마흔에 명문가 딸과 결혼해서 행복한 시절이 시작되었구, 몇 년뒤부터 교수직도 얻게 된거야. 인생 역전~ 대박~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하자마자 2년만에 인기 강사가 되었어. 뭐, 대학 강사 이전에 미리 공부 많이하고 준비한 게 있으니 인기가 쑤욱~ 올라가기 시작했지. 거기에 운좋게도 철학자 피히테가 죽게 된거야. 그 후임으로 <베를린 대학>의 교수까지 되면서 최고 철학자 반열에 오르게 된 거지. 나중에 베를린 대학의 총장까지 하게 되니, 뒤로 갈수록 대박 인생이 된 인물인거지.

- 칸트 철학의 정리자 : 헤겔의 <정신현상학>

앞 시간에 정리했던 칸트 알지? <헤겔>은 칸트 철학을 연구해서 논문을 썼던 사람이야. 독일 관념론의 계보는 칸트 - 헤겔로 이어지고, 이 헤겔 철학을 유물론으로 전환시킨 사람이 바로 뒤에 다룰 <마르크스>인거지.

당연히 헤겔은 칸트 철학의 위대함을 몸소 배운 사람이야. 그런데 말야. 헤겔은 칸트 철학의 <핵심> 부분인 <현실세계와 신앙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달랐어.

칸트는 기성 종교인들이 오랜시간동안 쌓아온 종교 교리들을 <도덕>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고 말했지? 다시 한번 칸트가 생각한 현상과 종교에 대한 관점을 정리해볼까나?

칸트 : 솔직히 말하자면 말야. 지상에서 <인간>으로 살았던 예수는 이성적인 사람이였거나, 정이 많은 사람이었을거야. 얼마나 온화하고, 인간에 대한 배려가 많아?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는 참 따뜻한 사람이잖아.

그런데, 교회 지도자들은 그런 면을 쏙~ 빼 버렸어. 예수가 떠난 뒤, 교회가 만든 많은 내용들을 무조건 믿으라고 하고, 교회에 복종하라고 하잖아. 그리고, 그런 절대적인 복종이나 믿음을 <도덕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그것이 도덕이라는 건 <하나님>이 아니면 누구도 증명할 수 없잖아? 교황이 만든 법이 하나님이 만든 법이라는 걸 누가 증명할건데?

생각해봐. 철학은 <지상>에서의 일을 탐구하는 거야. 인간이 알 수 있는 유한한 세계의 것들만을 <지식>이라고 생각해야돼. 인간이 알 수 없는 것들은 하나님이 알려주실 거니, 우리가 고민할 필요도 없어. 한마디로 신앙은 단지 믿음일 뿐이지, 절대적인 지식이 아니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서 알아낸 것들이 <지식>일 뿐이야. 지식은 우리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인 거지.

자, 그런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헤겔은 신학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할만큼, 종교적인 마인드가 강한 인물이었지? 칸트를 아무리 존경했다고 하더라도, 생각이 좀 달랐을거야. 그럼 헤겔의 생각을 한번 볼까?

헤겔 : 칸트 형님의 말이 맞는 말인데 말야. 종교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 버리면, 문제가 하나 생길거야.

인간은 현실을 넘어서서 무한하고 궁극적인 실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하잖아.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런 거 알고 싶지 않아?  내 스스로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탐구하는 것도 <철학>이 해야 할 일이야. 그리고 그렇게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끝에 <종교>가 있는 거구...

인간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잖아? 그니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생각하면서 살 수밖에 없어. 신의 존재를 믿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것들도 생각하기도 하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람들은 이 두가지를 모두 생각하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나 : 자아>를 생각하곤 해. 그런데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철학>이 아닐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건, 인간의 <정신>이야. 현실, 도덕, 종교와 같은 것이 진리라는 것을 판단하는 것도 우리의 <정신>이지.

에구... 너무 심오하다. 헤겔의 말이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 그럼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을 인용해서 좀 체계적으로 이야기해 봐야겠다. 헤겔은 <정신>이 3단계를 거쳐가면서 완벽한 정신, 즉 <절대정신>으로 간다고 말하고 있어.

정신 1단계(무의식적인 도덕성) : 예를 들면 이런거야. 누군가 <사랑>하고 사세요... 라고 말할 때, 어린 아이들은 사랑이 뭔지 구체적으로 모르지? 하지만, 같이 살고 있는 부모, 형제, 친구들이 자신을 아낄 때 그냥 그게 사랑이라고 느끼지. 즉, 감각적으로 도덕적인 것들을 판단하는 거야. 이게 원시적인 정신, 즉 <감각적인 정신>이지.

정신 2단계(도덕성의 자각) : 그러다가 학교에 다니고, 공동체 문화를 익히고 하다보면 점점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해서 결론을 내리게 되지.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의식적으로 실천하려고 할거야.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랑을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되지. 이 때의 정신은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정신>이 되는 거지.

정신 3단계(종교적 충만함) : 그리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자신의 가슴에 뿌듯함과 충만함이 채워지고, 절대자에게 다가가는 단계, 즉 절대적 진리를 깨닫는 단계를 알게 되지. 그게 바로 <진리>의 단계이며, <정신>이 현실과 통일되는 단계야. 이렇게 절대적 진리를 깨닫게 된 정신를 <절대정신> 이라고 해.

자, 헤겔이 말한 정신인가 뭔가를 3단계로 정리하면 이렇게 되는 거다. 

좀더 압축하면, 인간의 <정신>은 무의식적인 것, 의식적인 것, 절대적인 것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거지. 그럼 헤겔식으로 따지면 역사나 문화, 종교도 <정신이 발달하는 것> 이 되겠지? 이 부분에서 헤겔의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헤겔 :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정신>이 발달해가고 있는 과정이야. 그런데, 인간 <정신>의 최종 3 단계는 <절대자에게 다가가서 절대적 진리를 아는 것> 이라고 했지?

그니깐, 역사의 목적은 결국 <신의 목적>을 따라가는 거야.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발전하면서 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점점 더 잘 알게 되었지. 신이 원하는 건 인간이 <절대적 진리>를 깨닫는 거야. 그 절대적 진리는 도덕일 수도 있고, 자유일 수도 있지.

근데, 아주 옛 사회에서는 그런 걸 몰랐어.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구속해서 자유를 빼앗고 노예로 만들기도 했지. 또, 법이라는 걸 만들어서 인간의 자유를 빼앗기도 했어. 하지만, 인간의 정신이 <신의 섭리>를 알 정도로 발전하면 그런 구속들을 점점 사라지게 되지. 신이 진정 원하는 건 인간의 <자유>일테니까... 그럼 현실 세계에서 필요한 건 뭘까? 바로, 인간이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거야.

그럼 모든 인간이 가장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제도를 가진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그건 모든 개인에게 자유를 허용하고, 국가가 그것을 지켜주는 나라야. 따라서 왕이 있어도, 왕이 국민의 법을 지키는 <제한된 군주제>가 필요해.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국민의 자유를 지켜주어야 하고, 법은 자유민들에게 관대해야 하지. 재판도 다양한 배심원들이 함께 진행해야 하며, 국가의 중요한 일도 의회에 모인 국민대표가 함께 결정해야해.

물론, 역사가 다시 <발전>하면 기존의 제도에 뭔가 더 첨가되고 바뀌어서, 더 좋은 제도들이 등장하겠지.

뭐, 헤겔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역사>와 <국가>를 생각했던거야. 솔직히 프랑스 혁명의 세계정신이나 자유를 이야기하다가, 또 <군주제>를 인정한다는 식으로 말 바꾸기를 하니깐, 이 인간이 좀 이중적으로 보이기도 하겠네.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써 놓은 책이 <법철학강요>라는 책이었어.

- 고전 철학의 종결자 : 변증법적 발전 이론

자, 이번에는 헤겔하면 떠오르는 단어, <변증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변증법이란 이런거야. 하나의 현상이 존재(정명제)하는데 그것에 반대하는 현상(반명제)이 있다면 이 두가지를 절충하여 새로운 또 하나의 해답(합명제)을 찾는 거지. 대체 뭔 소리여? 오늘 아이유 스페셜이라고 했으니, 아래 아이유를 예로 들어 한번 살펴보자.

자, 조금은 이해되겠니...

원스 업펀어 타임 코리아... 쉽게 말해서 한 때... , 까칠, 도도, 블랙, 막말 서인영이 (스스로 우기기로는) 예능의 대세였지. 그게 기존의 대세인 정(正)이야.

근데, 갑자기 귀염둥이 아이유가 가요계를 평정하고 50억 소녀가 되서 대세가 되었어. 헐...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네. 새롭게 등장한 아이유가 반(反)이야.

자! 그럼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서인영의 선택은? 어느 날 신상 도도 까칠녀 서인영이 알록달록 아이유 잠옷을 입고 마시멜로우 춤을 추고 있었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한거지. 이게 바로 합(合)이야.

하지만, 내년, 내후년이 되면 아이유 스타일은 시대흐름에 밀리고 또 다른 컨셉의 가수가 예능의 대세가 되겠지? 그럼 또 반(反)이 나오고, 또.... 합(合)이 나오고... 뭐, 약간 억지스런 예이지만 쉽게 얘기할려고 가져다 붙여본거야...

자 그럼 이제, 진짜로 우아하게 변증법을 정리해보자.

정(正) : 칸트라는 철학자가 <인간의 경험>이 철학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어. 이게 기존의 이론이고, 이게 처음에는 맞는 말 같다고 해봐. 맞다는 걸 한자로 정(正)이라고 하자.

반(反) : 근데, 종교론자들은 경험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진리>와 같은 개념은 더 중요하다고 고 생각한거야. 이걸 반대된다는 뜻의 한자인 반(反) 이라고 할께.

이 <정>과 <반>을 어떻게 정리해야 더 나은 철학적 해답이 나올까?

합(合) : 그래서 헤겔은 <정>과 <반>이 합(合)쳐서서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 이 두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단어를 <절대 정신>이라고 표현한거야.

변증법은 이런 거다.

원래 가지고 있던 지식(정)이란, 새로운 상태의 지식(반)을 만나면서 변할 수밖에 없게 되는거지. 그럼 이 정과 반이 논쟁을 하면서 새로운 단계의 해답을 제시(합)하는데 그 속에서 사회는 <발전> 한다는 거야.

사실 변증법은, 서양 고대부터 있었어. 뭐, 소크라테스니 소피스트들이니 하는 사람들도 대화를 풀어나가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중 하나였지. 물론, 서양 중세시대에도 <변증법>이란 건 있었어. 특히, <아벨라르>나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중세시대 신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이 방법을 자주 사용하였다고 해.

중세 시대 신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알고 싶어 했어. 아니, 안다기 보다는 어떻게든 신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거지. 그래야 교회 활동이 정당하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겠어? 그런데, 그걸 증명하려고 했더니 서로 모순되는 2가지 사상이 있어서 좀 힘들었어. 그 2가지 사상이란 무엇일까?

그중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적 진리(이데아)를 강조했던 플라톤의 사상이야. 또 하나는 현실 세계의 경험(중용)을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었지.

이 두 철학자는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했다구해. 세상에는 <절대적 진리>가 있다... 라고... 

하지만, 그 절대적 진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이상세계에 있느냐, 아니면 현실세계이냐... 라는 관점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절충하기가 매우 어려웠지.

이런 모순되는 생각들을 종합해서 신의 존재를 합리화 시킨 사람이 중세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였다나 뭐래나... 그가 <신학대전>이란 책에서 써 먹은 변증법의 내용을 한 번 보면서 중세시대 변증법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까나... 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도들에게 써먹기 위해 질문과 답변을 해놓은 말들을 짧은 변증법으로 풀어보자.

질문 1 : 저기... 인간의 경험과 신의 섭리 중에 무엇이 더 현실 세계에서 유용한 것일까요?

1. 정 : 지상에는 감각적인 경험이 있는데 이러한 경험은 중요한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실재론 수용)
   2. 반 : 하늘에는 신의 섭리가 있는데 이것은 지상의 경험보다 중요한 것이다.(신플라톤 학파의 유명론 수용)
   3. 합 : 감각적 경험을 통하여 신의 섭리를 더 잘 깨달을 수 있으므로 2가지는 모두 중요하다.

질문 2 : 저기... 그럼 자연적인 경험과 신의 은총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닌가요?

1. 정 : 자연적인 경험과 진리는 항상 지상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
   2. 반 : 초자연적인 신의 은총은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플라톤)
   3. 합 : 자연의 진리는 초자연의 진리에 의해 보완되는 것으로, 신의 은총은 자연과 대립(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완성하는 것이다.

질문 3 : 그럼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은 지상에서의 행복인가요, 천국에서의 행복인가요?

1. 정 : 인간의 행복은 지상의 행복으로서 매우 중요하며, <행복>은 인간 삶의 목표이다.(아리스토텔레스)
   2. 반 : 카톨릭에서는 신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플라톤)

   3. 합 : 자연속의 행복도 중요하나 신앙과 자애라는 카톨릭의 덕목은 더욱 중요하다

질문 4 : 그럼 교회는 세속의 일과 영적인 일 중에 어떤 목적을 갖고 운영되는 것일까요?

1. 정 : 국가권력은 세속의 필요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될 문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
   2. 반 : 교회는 영적인 필요에 의해 인간을 신심으로 인도한다. (플라톤)

   3. 합 : 신과의 생활이라는 더 높은 초자연적인 목적이 있으므로, 교회는 초자연적 목적에 더욱 힘써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정, 반, 합을 이용해서 교묘히 교회 이론을 정당화 시킨거지. 하지만, <토마스 아퀴나스>의 변증법에는 역사가 <발전>한다는 내용은 없지? 그냥~ 두 철학자의 사상을 박수받을 만큼 논리적으로 햡쳐놓은 것 뿐이잖아.

반대로 생각해보자. 헤겔의 변증법이 다른 사람들의 변증법보다 훨씬 더 유명한 이유는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서 <역사는 끊임없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 라는 뉘앙스의 단서를 박아놓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 단서를 바탕으로 역사의 발전 단계를 명확하게 구분해놓은 제자가 바로 <마르크스> 이거든. 그럼 다음 장에서 드디어 마르크스의 <변증법>과 <유물론>을 한번 다루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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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토막 역사 12화. 넥타이와 라-마르세예즈의 유래 등 3가지 일화

1. 넥타이의 유래

넥타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언제일까요?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넥타이는 기원전 고대 로마 병사들이 처음 착용하였다고 합니다. 로마 병사들은 포갈이라는 목도리를 착용하면서 제복다운 멋을 내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목도리와 넥타이의 중간쯤 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진정한 넥타이로는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넥타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태양왕 루이 14세가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이루었을 때입니다. 하이힐에 대한 고사 아시나요?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지을 때 너무 멋있게 짓던 나머지 화장실을 짓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르사유 궁전에는 더러운 오물들이 많았고, 그 오물을 피하기 위해 뒷굽이 높은 구두를 만들어 신었는데, 그것이 오늘 날 하이힐의 기원이 되었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넥타이도 그 베르사유 궁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느날 크로아티아 병사들이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파리에서 개선식을 할 때 루이 14세가 그 병사들을 보았습니다. 그 병사들은 루이 14세를 위해 활약한 외인부대(용병)이었습니다. 루이 14세가 자세히 보니, 그 용병부대는 자신들의 신원을 서로 알아보기 위해 앞가슴에 크라바트(크로아트아 용병입니다라는 뜻)라는 천을 매고 있었습니다. 루이 14세가 보기에 멋있었지요. 루이왕과 귀족들은 너도나도 그 크라바트라는 천을 목에 매고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넥타이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6세와 귀족들이 죽은 시점에서 넥타이는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넥타이가 다시 나타난 것은 19세기 프랑스 제 2공화정 이후였는데, 이 넥타이가 영국 등 유럽에서 유행하면서 그 형태가 차츰 오늘날의 넥타이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이 목에 매는 크라바트를 영국식 용어로 넥-타이(목에 매는 끈)으로 바꾸어 불렀고, 지금은 모두가 넥타이라고 부릅니다.

2. 프랑스의 국가인 라 - 마르세예즈의 유래

프랑스의 국가는 라 마르세예즈입니다. 이 말의 뜻은 <마르셰이유의 노래>란 뜻이지요. 그럼 이 국가의 유래를 한번 볼까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자 프랑스 왕과 친인척이었던 유럽의 각국왕들은 프랑스 왕가를 도우러고 서로 안절부절하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모국이었고, 프로이센은 프랑스 왕가의 친척국가였죠. 프랑스 입법의회의 국민들은 프랑스 왕가를 돕는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유럽과의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북프랑스의 루제 드 리르라는 젊은 군인 장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를 위해 의용병과 같이 전쟁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곳의 시장인 디트리크는 루제 드 리르에게 의용병을 위한 군가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였고, 그는 하룻밤만에 급한 마음으로 노래를 한 곡 만들었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라인군의 군가>라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막상 의용군이 출발하려고 하자 의용군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의용군들은 <라인군의 군가>를 부르며 용감하게 출정하였는데, 이 노래가 많은 의용군들에 의해 전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파리 베르사유 궁전으로 올라온 마르세이유 의용군들이 이 노래를 파리에서 부르며 행진을 하였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이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마르세이유의 군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국가를 <마르세이유의 근가>라는 뜻인 <라-마르세예즈>라고 부른 것입니다.

3. 간디는 몸으로 실천하는 실천가였음을 보여주는 일화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치아 보호와 비만 극복을 위해 아들이 사탕을 먹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그 여자는 먼 거리를 걸어와 성인인 간디를 만나 아들에게 사탕을 먹지 말 것을 권유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인도에서 누구나 존경하는 간디의 말이면, 아들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나,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군요. 한 달 뒤에 다시 오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 어머니는 간디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소홀히 대한다고 생각해서 기분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성인이 말이니 어쩔 수 없이 한 달 뒤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때의 간디는 어머니가 데려온 아들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아이의 손을 잡고 아주 공손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야, 사탕을 먹으면 치아가 상한단다. 사탕은 몸에 좋지 않아. 내가 너를 위해 신의 축복을 내려주마.>

그 아이의 어머니는 너무 의아했습니다. 한달 전에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간디가 지금은 너무 공손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너무 감사하면서도 이상해서 간디에게 왜 한 달 전에는 지금과 다른 태도였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한 달 전에는 나도 사탕을 먹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때 내가 해줄 말은 없었으니까요. 이제 저는 제가 아이에게 맹세한 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위대한 성인은 말 뿐만이 아니라 조그만 것 하나까지도 실천으로 보여준다는 일화같아서 소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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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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